예고 영상에서 처럼 <퀸스 갬빗>은 여자 아이가 남자들만의 세계에서 승승장구 하는 이야기이고 그 길은 험난하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빌런은 의외로 남자가 아니다. 장면 장면들은 전통적 남녀관계를 희화하고 뒤집는데 가만 들여다보면 남자들은 극복해야 할 한계요 넘어야 할 산으로 나오는 반면 여자들은 적극적인 가해요소로 함정을 파놓아 베스를 위험에 빠뜨린다. 


베스의 인생에서 약물과 알콜 중독을 심화시킨 인물들은, 내면의 갈등이나 허영을 부추기는 건 여자들이고 체스를 가르치고 사회에서 성장할 기회를 주는 건 남자들이다. 남자들은 자신들만의 세계에 침입한 당돌한, 게다가 반칙까지 하는 베스를 눈감아주고 끼워주고, 심지어 적극적으로 돕고, 인정해준다. 베스를 롤모델로 삼고 체스 클럽을 만들고 연습하는 건 남자아이들이다. 특히 마지막 장면, 민주적 미국이 아닌 소련, 그것도 따뜻한 실내가 아닌 실외 공원, 다수의 할아버지들이 하얀 백색의 코트를 입은 베스를 인정하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베스는 챔피언이라기 보다는 무해한 공주님 같다. 남자들이 졌으면 손에 입 맞추는 대신 무릎을 꿇어야 할 것 아니냐.


이 재미있는 7부작 드라마 내내 상투적인 '남성적 폭력'은 비켜간다. K드라마에서라면 아버지의 존재도 부각되었겠지만 그는 멀리 흐릿하게만 스쳐가고 대신 체스를 주신 아버지가 딸의 인사를 받는다. 남자 인물들이 나올 때 마다 혹시가 그가, 그들이 베스를 성적으로 심리적으로 착취할까 겁을 먹었다. 하지만 그들이 베스를 사람으로 대하자 그걸 감사하다고 적었다, 내가. 멍충이 같이. 대신 여성인물들인 어머니, 친구, 원장님과 여성 기자 들이 베스의 인생에 독약을 들여오고 그녀의 마음에 불안 허무 그리고 포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베스가 내내 그리워하고 '복기'하는 친어머니가 시작이었다. 여성들의 연대도 (특히 졸린의 엉성한 캐릭터라니) 헐겁고 작위적이라 남성 조력자 팀에 비하면 걸리적 거릴 뿐이다. 


재미있게 봐 놓고서 다음날 아침에 이렇게 투덜거릴 일이냐 싶지만 난 뒷북이 전문이니까.


드라마 내내 베스는 체스를 해나가며 점점 예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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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11-26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고아원 친군 러시아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잖아요. 양엄마도 그렇고,,,저는 양엄마가 그녀를 착취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암튼 저는 이 드라마 넘 재밌었어요!!! 재밌게 봤고, 여전히 제가 좋아하는 그런 종류의 드라마에요. 저는 왜 이런 스토리에 껌뻑 죽는지!

유부만두 2020-11-26 08:13   좋아요 0 | URL
네 양엄마나 졸린의 도움은 무시할 수 없죠. 그런데 양엄마의 ‘방임’이 너무나 커서 베스가 위험에 빠지는 게 무서울 정도에요. 졸린은 뭐랄까 너무 만들어진 조립식 캐릭터라 다양성에 대한 면피용 같고요. 여성인물들은 베스를 직접 착취하진 않지만 (그들 자신의 비극에 괴롭고) 베스를 중독으로 이끌어서 원망스러워요.

드라마 재미있게 봤어요. 성공 성장, 주제는 기운나게 하잖아요.
 

아이가 있는 상복의 여인이 되어버린 스칼렛. 애틀란타의 시댁에 시누 멜라니와 함께 남부군 후원 행사에 나섰다. 조신해야 하는데 흥겨운 행사 음악에 발이 절로 움직인다. 다시 맞닥뜨린 레트 버틀러. 그에겐 속마음, 남부 사람들의 웃기는 애국심과 자부심에 대한 멸시가 들켜버린다. 하지만 어떠랴, 춤만 출 수 있다면! 검은 상복이지만 날렵하게 스텝을 밟았고 추문을 듣고 달려온 아버지에게 곧 타라로 끌려가야만 한다. 그런데. 아버지는 벼르고 별렀던 것과 달리 그날 밤 레트 버틀러와 어깨동무하고 신나서 노래까지 부르며 불콰한 얼굴로 돌아오셨.... 아, 이거 우리나라 주말 드라마 같고요. 


이 책이 이번 달 하순에 오디오 북으로 나온다고요?! 오모나!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5978


샘플 미리 듣기에선 문장은 차분한 목소리로 낭독하고 대사 부분은 드라마 같이 '연기'하고 있다. 과장하지는 않지만 읽는 책과 듣는 책의 경험은 조금 다를 것 같다. 하지만 나도 핸드폰 액정으로 가볍게 읽는중이라 어느 정도 변형된 방식의 독서를 하고 있는 셈이다. 더 빨리, 더 쉽게, 무게 빼고 스칼렛과 멜라니, 짐승 같은 레트 버틀러를 만나고 있다. 아슬아슬 스칼렛과 레트 버틀러의 춤추는 장면은 라노벨이 따로 없다. 


그나저나 스칼렛 고작 열일곱에 애 딸린 과부여. ㅜ ㅜ 


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955330.html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멜라니 역의 올리비아 하빌랜드가 올해 7월 별세했다. 향년 104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영화와 책에 대한 @2nd_rate 님의 트윗타래를 종이책으로 묶는 종이책 펀딩 프로젝트도 진행중이다. 이미 500% 달성. 영화를 중심으로 스칼렛과 멜라니의 '특별한 시스터후드', 마냥 조신한 여인 같았던 멜라니의 정치적 활약을 관찰한다. 


https://www.tumblbug.com/312f1bc4-4216-4c91-a6d6-b7d1d5fff0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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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등교를 하다 말다 내 일상(이랄 것도 없는 매일)은 발이 묶인 느낌이다. 창밖의 단풍이 지난주엔 예뻤는데 오늘은 가지만 남았다. 나는 매일 게으르고 바쁘면서 한가하다. 책의 문장이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스칼렛의 외모에 대한 묘사는 계속 바뀐다. 아름답고 매혹적이라는 묘사가 많은데 스칼렛이 작정하고 애슐리에게 고백하기로 마음먹고, 꿩대신 닭, 챨스의 청혼에 답을 해버린 날이라 더욱 그렇다. 


파티에서 만난 낯설고 무례한 레트 버틀러. 그에게 약점을 잡혀버린 스칼렛. 챨스와 애슐리에 대한 묘사가 우습지만 절묘하다. 하지만 곧 휘몰아친 전쟁 속에서 스칼렛은 순식간에 유부녀-미망인-애 딸린 미망인 으로 신분이 바뀐다. 예전보다 더 좁아진 활동 범위 안에서 우울은 그녀를 집어삼킨다. 


남편의 친척댁, 보기 싫은 멜라니의 초대로 애틀란타로 간다. 그곳은 전쟁이 몰고온 활기로 가득 찬 젊은 도시라 뭔가를 해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신분과 가문을 중시하는 딱딱한 조지아, 폐쇄적인 남부지만 새로운 생명을 뿜어내는 곳. 어쩌면 스칼렛도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이 소설의 조지아는 급변하는 세계 정세 따위는 무시하고 대지주 가문들 끼리의 무사태평만 노래하는 19세기 구한말 분위기와도 비슷하다. 백인 빈민층에 대한 멸시와 (인종차별은 깔고 있으면서) 북부 양키에 대한 적대감이 뚜렷하게 보인다. 마치 미대선의 민주당 공화당의 대결처럼. 링컨은 공화당이었다지만. 


영화 <스윗 홈 앨러배마>의 남부는 정겹고 투박하며 솔직한 흙과 함께 사는 고향의 모습이다. 대비되는 뉴욕 '양키'들은 겉치례와 계산 속의 거짓말, 무엇보다 얄미운 말투로 드러난다. 여전히 식민시대의 대저택엔 하녀복을 입은 흑인여인이 손님을 맞이하고 마을 축제는 남북전쟁을 재현하는 코스튬 플레이다. 들판에 화약 연기를 올리고 대포와 총포를 앞세워 달리고 쓰러져 시체를 연기하는 이들은 '남부 정신'을 외치며 결속을 다진다. 천방지축, 당돌한 남부의 아가씨는 7년만에 고향에 돌아와서 마음을 확인하며 자신의 가식을, 북부 억양과 양키 겉모습을 벗어버린다. 스칼렛과는 아주 다르지만 닮은 여인. 


그런 남부가, 조지아가 이번엔 바이든에게 표를 주었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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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20-11-15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지아 다시 봤다는!

유부만두 2020-11-15 07:32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놀랐어요.
 

계속 되는 집밥에 나도 아이들도 물리기 시작했다.

국수를 많이 먹었고, 김밥도 많이 만들었다. 

가지와 오크라 튀김이 인기 있는 가을이었다. 몸무게가 늘지 않았다면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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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11-02 2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쮸릅쮸릅!!!!!! 정말 말로 형언하기 힘든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영양만점 완전집밥이네요! 👍🏼👍🏼👍🏼👍🏼👍🏼

유부만두 2020-11-03 09:37   좋아요 0 | URL
영양만점...은 자신 없고요, 완판 완료 증량 보장 입니다.
사진 중 하난 외식 ‘마라샹궈‘ 에요. 역시 외식이 더 낫다고 깨달았어요.

잠자냥 2020-11-03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진짜 풍요롭습니다.... 츄릅... 하 배고프다.
가지 튀김 파스타 먹어 보고 싶어욧. ㅎㅎ

유부만두 2020-11-04 08:54   좋아요 0 | URL
가지 튀김 정말 맛있어요. 굽거나 볶아도 좋지만 튀김은 정말 !!!!
 

오늘 아침은 빵도 있고 죽도 있어서 여유를 부릴 수 있다. 커피 대신 녹차를 우려 마시고 있다. 마루에 널어둔 아이 교복은 다 말랐다. 식탁 위에는 밤새 큰아이가 간식을 먹은 흔적이 남아있다. 책을 읽기전에 블로그에 들어왔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스칼렛이 드디어 파티장에 들어섰다. 그리고 레트 버틀러를 만났다. 그에 대한 나쁜 소문을 들었지만 어쩐지 그의 검은 눈동자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그래도 스칼렛의 마음 속에선 애슐리에게 고백하고 야반도주 하려는 당찬 계획이 진행중이다. 인물들 묘사가 흥미롭다. 사람들은 자신의 관심사를 감추질 못한다. 그 관심사가 그 사람 자체가 되어 온몸에 드러나서 옷이나 표정처럼 감싸고 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읜 맏딸은 집안을 건사하느라 자신을 가꾸질 못하고 부끄럼장이 미남은 여자들의 장난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속마음을 감추지 않는 이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혈통'이다. 키우는 종마 처럼 그들은 '핏줄'에 집착한다. 친척끼리만 결혼하는 집안들에대해, 그들의 유럽 전통 가문에 대해 헐뜯으며 '좋은 혈통'을 받아서 대를 잇는 것에 대해 고민한다. 곧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델러웨이 부인>은 천천히 읽고 있는데 그렇게 읽어야 맞는 책 같다. 단어는 쉽지만 쉼표가 많고 문장은 계속 이어진다. 조금씩 끊어 읽으며 쉬엄쉬엄 이 부인의 회상, 기억, 관찰과 추측을 함께 짚어가고 있다. 옛날 남자 피터를 떠올리다 그 '멍청한' 인도 여자들에 까지 생각이 가 닿는다. 시혜하는 기분으로 걷는다. 우아하려고 애쓰는 부인. 꽃집 밖에 서 있던 그 차, 타고 있던 고관대작, 어쩌면 왕가 사람에 대한 생각과 길을 건너던 부부의 이력을 거쳐 어쩐지 고결한 기분에 꼿꼿하게 몸을 세우고 거리를 걸어내려간다. 이층버스 위에 아무렇게나 탄 '서민'들에 대해 까탈스런 시선을 던지고 먼 미래에 이 도시에 남을 것들에 대해서 상상하고 있다. 


시간이 금방 간다. 오늘은 점심 약속이 있는데 오랜만이라 외출에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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