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괴이하다 싶었는데 그 의미를 알고 나니 기괴한 기분이 들었다. 


일본 애니에서 그려지는 여고생은 일정하게 발랄하고 역시나 그렇게 소모적이다. 


외톨이 책벌레 남학생의 사회성 기르기에 소비되는 여학생 사쿠라도, 뜬금없이 여학생이 따라 붙는 찌질한 남학생 (이름도 그 유명한 春木 하루키)는 더 싫었다. 시한부 여학생, 약속 장소 가는 길에 사고. 정말 끝까지 대환장.


발랑 까진 여학생이 순수한 남학생과 바다로, 도시로 여행을 떠나고 호텔에서 아슬아슬한 하룻밤을 보내는 장면. 유혹과 우정, 아니면 성장의 그 순간을 남자 어린이 판타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수준에서 그리는 애니 '바다가 들린다'도 생각난다. 우리 나라 버전으로는 남이섬에서 일박이일 여행 후 커플이 된다는 칠공팔공 전설의 할아버지 로맨스가 있다. 


이 애니메이션 들은 넷플릭스에 있기에 싱크대 청소하면서 봤다. 짜증이 많이 나서 수세미질을 더 박박 했더니 부엌이 깔끔해졌다. 짜증은 가시질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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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로부터 30년쯤 시간이 흐른 뒤의 홍콩. 홍콩 사람들, 서양인들과 인도 이민 노동자들, 영어와 일어, 힌두어에 중국어의 여러 방언들이 뒤섞이고 폭력과 마약이 온갖 음식과 연기, 땀과 함께 범벅인 곳 충칭맨션 근처에 심야식당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라는 샌드위치 가게가 있다. 화양연화 때 보다 5년쯤 더 젊은 양조위가 경찰 633호로 나온다. 함께 나오는 금성무는 사복 경찰로 범인을 쫒아 달리며 권총도 쏘다가 무서운 누나도 만나지만, 양조위는 경찰복을 입고 동료와 함께 점심을 먹거나 밤 근무 중 커피와 (애인에게 건넬) 간식을 사는 조용한 경찰이다. 그리고 그 평온한 경찰복과 그의 눈빛은 어쩐지 상대를 무장해제 시키는 (그러니까 나 같은 관객의 마음에) 나름대로 강력한 무기다. 반면 근래 뉴스의 홍콩 경찰은 훨씬 과격하고 폭력적이다. 반환 삼년 전의 홍콩은 다시 화양연화였다. 


불법가택침입에 우렁각시, 제복 패티시즘이 넘치고, 인종 차별에 온갖 사랑 클리셰가 범벅인 이야기인데도 이 영화를 좋아한다고 (조금은 부끄러운 마음으로) 말한다. 94년, 5월이 나에게도 화양연화였기에.  


나무 하나는 목, 나무 둘은 림, 셋이면 삼. 


막내가 다시 집에서 줌으로 수업을 듣고 나는 떡을, 아니 밥을 한다. 그러다 축 늘어져서 물을 뚝뚝 흘리는 행주와 눈을 마주쳤다. 이렇게 춥고 축축한 날이면 캘리포니아와 홍콩을 생각하게 된다. 중경, 충칭의 매운 음식도. 



이 두 홍콩 경찰은 21세기에 와서 2000년 전 이야기 '적벽대전'의 주유와 제갈공명으로 만난다. 촉한(중경) 쪽 인물은 금성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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첸 부인(장만옥)과 차우 씨(양조위)는 같은 날 옆집으로 이사 들어오면서 서로의 짐이, 첸 씨의 책과 차우 부인의 구두가 잘못 뒤섞이고 인사를 튼다. 이웃들과 함께 격식 없이 저녁 식사를 하는 사교 생활, 혹은 모임을 꺼리는 첸 부인은 동떨어져 혼자 먹을 국수를 사러 나간다. 출장이 잦은 남편과도 거리가 느껴지는 첸 부인. 그녀의 직장 상사에겐 미스 유라는 애인이 있고 상사의 부인과 애인 사이의 스케쥴 조정도 첸 부인의 일과 중 하나다. 사람들 사이의 거리와 규칙을 의식하는 첸 부인.


그러다 첸 부인은 자신의 남편 첸 씨와 이웃 차우 부인이 불륜 관계라 확신하게 된다. 차우 씨도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고 그 둘은 문제를 논의 한다며 만나서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와 침묵을 나눈다. 둘 사이의 긴장감은 터질듯 팽팽하다. 그때 흐르는 음악.  



 

그들이 함께 하며 웃는 경우는 드물고 그들의 '연애'는 껴안거나 침대에서 뒹굴기 보다는 차우 씨의 예전 꿈, 열정인 소설쓰기의 연장이다. 첸 부인이 원고를 읽고 의견을 말하면 차우 씨가 고쳐쓰거나 등장 인물을 더해서 이어 쓴다. 어질러진 음식 그릇, 찻잔, 담배 연기, 맨발. 그들의 감정을 이웃들 모두와 관객들이 잘 알고 있는데 그들만 아닌 척한다. 우린, 달라, 동침하지, 않아, 라는 알량한 고집. 그런다고 연애가 연애 아닌 것이, 그것도 속칭 불륜 아닌 것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당신들 눈빛은 어쩔건데.


소설의 끝이 있듯 이들의 만남도 위기를 몇 번 갖고, 사람들의 의심을 받고, 끝을 준비한다. 끝은 쉽지 않다. 아무리 연습을 한다해도. 그리고 몇 년 후, 다시 몇 년 후, 그 시절이 얼마나 아름다웠는가를 떠올리며 조용하게, 지금도 충분히 아름답게 영화는 마무리 된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끝나지 않고 계속 된다. 어쩌면 가장 평범한 외도 혹은 비밀.


예전엔 나보다 나이 든 아줌마 아저씨 들의 불륜 영화로, 붉고 어두운 장면들로만 알았는데 날렵하고 화사한 치파오 원피스 수십 벌의 장만옥과 기름 발라 넘긴 머리에 피부 팽팽한 양조위는, 삼십대 후반의 한창 때 그야말로 화양연화 꽃 다운 모습이다. 새출발 하기 딱 좋은 나이였어. 1960년대 불안한 홍콩이 배경이었는데 화려한 80년대를 지나 그곳은 이젠 다시 가기 어려운 도시가 되었다.


영화 속 빗소리에 창 밖 빗소리가 섞여 들렸다. 케샤스, 케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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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11-19 16: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흐미 좋으네요. 너무 젊으세요, 이 두 분이요^^

유부만두 2020-11-20 09:57   좋아요 1 | URL
장만옥 배우가 맘에 들었어요. 남주보다 살짝 키가 큰데 그 조합이 좋았어요.
좁은 공간에서 서로 스치듯 지나가는 것, 둘 사이의 긴장감, 시선.
줄거리는 평범하고 시간 배치는 불친절한데 두 배우의 힘이 대단해요.
젊어요, 두 배우가. 너무 예쁜 시절 영화라 울컥한 마음도 들었어요.
전 이 두 사람보다 한참 더 늙어버렸고 ...하아....

하나 2020-11-20 05: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다고 연애가 연애 아닌 것이 되지는 않는다 - 그러니까요 ^^ 마지막에 양조위가 사원 가서 벽에 고백하고 풀로 턱 막아버릴 때 너무 아름다운 답답함 느껴버렸어요 ㅋㅋㅋ

유부만두 2020-11-20 09:59   좋아요 1 | URL
네, 그 아름다운 답답증이 이 영화의 주제인지도 모르겠어요.
비밀과 침묵, 그리고 따로따로인 두 사람.

이 영화를 예전에 봤다면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나이가 들어서 또 비 오는 초겨울에 만나서 즐길 수 있었어요. 나이들고 보니 연애도 기운 있는 젊을 때나 하는 거에요;;;;

하나 2020-11-20 11:33   좋아요 1 | URL
ㅋㅋㅋ 저 거기 나오는 놈이랑 진짜 비슷한 사람한테 하도 시달려가지고 퀴사스.. 만 나오면 경기해요 ㅋㅋㅋㅋㅋ 뭘 다음에 만나.. 그냥 만나.. 저는 너무 어릴 때 이런 영화 좋아해서 망한 듯 ㅋㅋㅋㅋ 저도 어떻게 불륜까지 하는지 체력이 대단하다고 늘 생각하는 사람;;;

유부만두 2020-11-22 03:55   좋아요 1 | URL
정말 호된 경험을 하셨군요. ^^

라로 2020-11-20 12: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적어도 세 번은 본 것은 같은데,,, 유부만두 님의 글을 읽으니까 또 보고 싶다!

유부만두 2020-11-22 03:33   좋아요 1 | URL
가을에 잘 어울리는 영화에요. 특히 가을비 오는 밤에요.
 

포스터와 영화 첫 부분 까지 봤을 땐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정도 겠거니 하고 봤는데, 예쁜 영상의 호러.... 가족의 비미르.... 


천식으로 고생하는 안나는 입양 부모와 함께 산다. 이제 중학생, 학교에서는 겉돌고 딱히 괴롭힘을 당하지 않지만 아무와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집에 와서도 늘 무표정. 그 이유는 자기를 아껴주는,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는 현실' 때문이다. 입양한 어머니의 친척이 사는 바닷가 마을로 요양차 떠나는데 취미인 그림 그리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던 안나, 왠지 눈에 익은 낡은 2층집과 그곳에 사는 신비한 소녀 마니를 만난다. 그리고 둘은 비밀의 우정을 맹세한다. 


이때 감 잡았어. 말 없는 외국인 어부, 낮엔 낡고 어스름에만 생생해지는 집, 귀신 나온다는 낡은 탑, 그리고 안나 눈에만 보이는 마니. 푸른빛이 도는 안나의 눈동자. 몇 번이나 정신 잃고 길에 쓰러진 안나를 보면서 아, 저 시골 먼친척 아줌마는 사람은 좋아 보이는데 아픈 아이를 저리 안 챙기시나 안타까웠다. 


일본 애니에선 귀신이나 요괴 나오는 게 일도 아니고, 시간 여행이나 '알고 보니 내가 그 사람' 플롯도 흔하다. 그래도 이야기 한 편 한 편 따로따로에선 어찌 그리 애절한지. 역시 장르의 문제일까. 안나는 순정만화로, 안은영은 명랑액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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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공개된 신작 넷플렉스 영화. 원작 소설 시리즈도 영화에 맞추어 리커버로 나옴. 


오빠가 홈즈, 그 셜록 홈즈인 십대 소녀 (자칭) 준비된 '탐정'. 시골 영지(?)에서 홈스쿨링 하던 늦둥이 여동생의 열여섯 생일날 어머니가 사라진다. 오빠들과 배다른 동생이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싸가지 없는 오빠들 태도가 아무리 빅토리안 시대라지만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인다. 엄마가 왜! 어디로! 그러니까 왜! 사라졌을까. 엄만 날 사랑하니까, 엄만 날 만나길 원할거야. 엄마가 여기 저기 숨겨놓은 힌트로 에놀라, Enola, Alone 당차게 혼자서기를 한다. 그것도 당시 세계의 수도 런던에서.  


사라진 귀족 청년을 돕기도, 찾기도, 함께 싸우기도 하는 에놀라. (내 눈엔 조이와 로리가 보인다) 위험 천만한 일을 계획하는 엄마는 아마도 시대를 한참 앞선 서프레제트 운동가 비슷한 존재로 보인다. (영화 서프레제트에도 헬레나 본엄 카터가 나옴) 


하지만, 에놀라 홈즈 영화에선 (아마도 시리즈의 첫 영화라서) 많은 떡밥만 깔아두고 귀족 청년 이야기도 너무 쉽게 덤벙덤벙 해결하고 만다. 런던에서 열여섯이 돈뭉치 들고 그렇게 살기가 쉽...지가 않잖아. 어린이용 영화로 만든 건 아니겠지만 .... 긴장감이 너무 없고 몰입도 잘 안되고 귀족 청년도 (로리를 연기했던 티머시 셀러메이의 미모를 못 따라가서 안타깝고) 주인공 에놀라도 (어린시절의 스칼렛 조한슨이 떠오르지만) 그닥 큰 인상을 주지 못했다. 홀로 서기하는 남자 귀족 구해주는 여자 영웅 이야기도 애매한 로맨스 같아서 뭔가 찜찜했다. 게다가 엄마 헬레나 본엄 카터도 조금 밖에 안나와. ㅜ ㅜ 그런데 셜록 홈즈가! 사각턱에 느끼한 눈길로 나한테 2탄을 기대하라고 말하고 있더라고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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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9-25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1권 읽다가 다른 책에 밀려 서둘러 반납을 해버렸답니다.
다시 읽을까 말까 고민되네요 ㅠㅠ

유부만두 2020-09-25 07:28   좋아요 0 | URL
책을 많이 각색한 영화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전 영화가 평범해서 책은 읽을 마음이 줄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