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매三昧

 

 

 

꽃이 피는 것은 내게도 큰 일이다. 벽과 벽과 천장이 만나는 곳에 거미가 집을 짓는 것도, 그 집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도 내게는 다 큰 일이다. 눈을 감지 않아도 시계 가는 소리, 새 우는 소리가 들리는 조용한 시간 속에서, 시끄럽지 않은 눈을 기르는 것이 요즘 내 직업이다. 묵묵한 것이 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몸의 균형을 잡는다. 보이는 것을 다 보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지 않는다.

 

맴도는 것들의 소란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흘러가는 시간의 표정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기 좋은 계절이다. 이 계절 빚은 얼굴로 남은 한 해를 또 꾸려낼 테다. 고단함이 있겠고, 나를 펴고 접고 휘두를 저 바깥의 장난이 있겠고, 마주 앉아 괜찮다 괜찮다 다독이고 어르는 손길도 있겠지만, 모두들 때가 되면 인사를 나누며 지나칠 것이다. 지금 여기는 일단 봄이다.

 

주초에는 대구에 있었다.

 

 

 

--- 읽은 ---



82. 아무튼, 인기가요

서효인 지음 / 제철소 / 2020

 

여수는 좋은 시집이었다. 나는 그 책을 움직이는 KTX 안에서 읽었다. KTX 창가 자리는 시 읽기 가장 좋은 공간이다. 시 한 편을 읽고 창 너머로 눈을 던지면 이미 달라져 있는 풍경이 계속 달라지고 있다. , , , 구름, 차들, 내가 빠르게 달려서 더욱 천천한 것들을 눈으로 더듬다 다시 고개를 떨구면 달라져 있는 시가 있다. 그렇게 창밖과 창 안에서 다투듯 번갈아 달라지고 반복적으로 달라지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출발지의 나와는 다른 내가 거기 그렇게 있곤 했다. 그렇게 읽기에 여수는 특히 좋은 시집이었다.

 

그래서 나는 서효인 선생님을 굉장히 진지하고 뭔가 끝없이 아련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듯하다. 역시 책 한두 권 읽고 사람됨을 넘겨짚는 건 위험하다. 아니다, 오히려 이롭다. 그 시와 이 산문이 내게 달리 다가와서, 산뜻한 기분으로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칼국수 달인 수제비 이야기는 하기도 지쳤다. 글잘잘-글은 잘 쓰는 사람이 잘 쓴다-도 식상하다. 지치고 식상한 말을 자꾸 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널려 있어서 이 세상은 위험하다. 아니다, 오히려 이롭다.

 

1995년 캠핑은 룰라가 지배했다. 다들 날개 잃은 천사가 된 듯 굴었다. 어지간한 아이들은 엉덩이를 씰룩대다 박자에 맞춰 골반을 쳤다.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일부러 얼굴 피부를 태웠다. 당시에는 카리스마로 무장한 싱어송라이터이자 개성 있는 래퍼였던 이상민은 시간이 흐른 오늘날에는 미운 우리 새끼이자 아는 형님으로 거듭났으며다른 남자 멤버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 김건모의 <핑계>를 흥얼거리던 친구들도 많았다. 밀리언셀러의 상징과도 같았던 그의 현재 모습은역시 언급하지 않는 게 좋겠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들이 무슨 연유로 불현듯 사라지는 걸까. 그것은 그들의 사정이다. 가끔은, 이럴 때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노래는 몸속 이름 붙이지 못한 장기 한구석에 숨어 이따금 등장한다. 하필이면 그때 그를 진정으로 좋아했던 나의 모습이 되어 돌아온다. 그러니까 노래는 기억을 불러오는 주술과 다름없는 것이다. 중학교 2학년은 대체로 용감하고 대책 없고 삐딱하고 뜨거워서 무슨 기억이든 아주 오래 머리와 몸에 남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열다섯 살에게는 실수하지 않는 게 좋다.

_ 서효인, 아무튼 인기가요

 

 

 


83. 흐름으로 읽는 프랑스 현대사상사

오카모토 유이치로 지음 / 차은정 옮김 / 포도밭출판사 / 2016


2회독이다. 


그 때문에 영어권의 철학(아카데믹하고 분석적인)이나 독일어권의 철학(분석적이지는 않지만 아카데믹한)에서 보면 프랑스 현대사상은 마치 현대미술이나 현대시처럼 난해하다. 제대로 독해해내지 않으면 의미 불명의 문장들뿐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스타일의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에크리튀르야말로 일반 사람들까지 끌어들여 사상의 유행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프랑스 현대사상이 아카데믹한 스타일로 쓰였다면 이 정도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_ 오카모토 유이치로, 흐름으로 읽는 프랑스 현대사상사

 

이 책의 주제가 되는 곳은 아니지만 이 대목에서 제일 오래 머물렀던 게 사실이다. 근본 없는 무국적 뜨내기가 철학 나라에 입국 한 번 해보겠다고 맨바닥 먼지 구덩이에 뒹굴며 울고 울었던 나날들이 주마등 같다. 어려워서 어려운 게 아니라 어렵게 해서 어려운 것 같은 책들, 아니 이걸 이렇게까지 한다고 싶던 문장들, 괜히 과학처럼 굴고 싶었는지 택도 없는 공식에 도식을 차용하는 바람에 진짜 과학과 공학에 익숙한 사람에게 끝도 없는 혼란을 초래하던 그 기호들…….

 

이 책이 그 모든 난해한 겉옷들을 풀어 헤치고 프랑스 현대 사상을 쉽게 쉽게 설명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실 무슨 책을 가져와도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개론서/입문서를 오래 읽으며 얻은 지혜라고는 딱 그거 하나다. 누가 설명을 해도, 심지어 사상가 본인이 본인의 사상을 설명할 때도, 이해가능성과 설명가능성 사이에는 반드시 trade-off가 존재한다. 거두절미한 생선은 먹기는 좋지만, 머리와 꼬리가 없는 물고기가 바다를 헤엄치는 일은 결코 없다.

 

 

 


84.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

조 퀴넌 지음 / 이세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

 

2회독이다.


웃기면서 신랄한 독후감을 읽고 싶은 욕망이 정기적으로 나를 찾아온다. 그저 웃긴 독후감도, 신랄하기만 한 독후감도 안 된다. 신랄하게 웃긴, 혹은 웃기게 신랄한 것들만 이 욕망의 불길을 잠재울 수 있다. 왜 때문에 이러는지 여태 모르고 살았지만 최근 들어 조금씩 알아가는 것도 같다. 그건 가슴 속에 화가 많아서 그래. 웃기면서 신랄한 글의 기저에 깔린 정서는 근본적으로 분노. 뜨겁거나 차갑거나 그것은 분노다. 심지어 미지근할 때도. 그 감정의 방향이 타인을 향해 있건 나를 향해 있건 어쨌든 그것은 분노다. 심지어 온 세상이 다 똥같다 싶을 때도. 웃김은 그 분노의 몸매고, 신랄함은 분노가 걸친 옷이다. 그리고 문체는 그 분노의 얼굴이다. 그래서 이런 욕망의 시간이 찾아오면, 얼굴, 몸매, 입성의 삼박자가 고루 취향에 맞는 몇몇 책들을 찾아 도서관 서가를 기웃거리는데, 그렇게 열심히 뒤졌으나 실제로 찾아낸 작가는 몇 안 된다. 닉 혼비, 금정연, 그리고 조 퀴넌.

 

아무 저의 없이 책을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몇 년 전 나는 필리핀에 거주하는 이블린이라는 여자에게 책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블린은 내 친구와 평생 펜팔을 했는데, 그녀가 운영하는 가게는 늘 자리가 잡힐 만하면 태풍에 싹 쓸려갔다. 그녀는 내가 보내는 거라면 뭐든지, 소설, 전기, 스포츠 서적, 잡지를 가리지 않고 읽을 것이다. 나는 가장 마지막 소포를 보내고 18개월이 지나서야 책이 드디어 도착했다는 기쁨에 찬 편지를 받았다. 소포는 1년 반이나 어딘가에 처박혀 있었고, 그제야 우체국에서 일하는 도적놈들은 어차피 값나가는 물건도 없으니 원래 수신인에게 보내주자고 결정한 것이었다. 필리핀에 있는 내 친구, 내가 만난 적 없는 그 친구는 책을 재미로 읽기도 하지만 가게가 태풍에 쓸려가는 현실을 잊으려고 책을 읽는다. 자신이 까막눈 도적놈들이 우글대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현실을 잊으려고 책을 읽는다.

_ 조 퀴넌,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

 

 

 


85. 공부의 철학

지바 마사야 지음 / 박제이 옮김 / 책세상 / 2018

 

2회독이다.


이건 공부법을 알려주겠다는 의도에서 쓴 책이라기보다, 나라는 철학자는 철학적 개념을 활용해 응용의 최전방인 공부법조차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한 인간임을 보여주겠다는 결의로 쓴 책 같다는 느낌이다. 프랑스 현대철학에 대해 입문서 수준의 지식을 지니고 있다면 이 사람이 누구의 뭘 가져와서 어떻게 비비고 있는지 알아챌 수 있다. , 저자가 이 책에서 드러내고 있는 철학적 지식의 수준 자체는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의 수준이 낮다는 게 아니다. 사이토 다카시나 오가와 히토시 같은 일군의 저자들 손에서 창조되어 바다를 건너온 철학-응용도서가 대체로 그렇듯, 그냥 그런 수준이다. 그리고 눈곱만큼 들어 있는 공부 방법론 역시 추상적이거나 피상적이고, 공부법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자기계발서에 비해서도 훨씬 모자란다. 즉 이 짬짜면은 한 그릇에 두 가지 요리가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짜장면은 집에서도 해 먹을 수 있는 수준이고 짬뽕은 맛이 없다.

 

깊이 있는 공부를 하면 기존의 동조가 빚어낸 바보 같은 짓이 일단 불가능해진다. ‘옛날에는 참 바보였구나라는 깨달음과 함께 이전의 동조 능력이 자취를 감출 것이다. 전체적으로 인생의 에너지가 사그라지는 시기에 돌입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견디면 이내 다가올 바보로 변신할 가능성이 열리리라. 이 책은 바로 그곳으로 가는 길을 제시하는 안내자다.

_ 지바 마사야, 공부의 철학

 

과연, 프랑스 현대철학 전공자답게, 문체에서 사짜 냄새 비슷한 것이 난다. 라캉, 들뢰즈에게서 그런냄새를 좀 맡았다. 깊이 생각해 보면 맞는 말도 희한하게 사짜처럼 하는.

 

 

 


86. 세상을 읽는 새로운 언어, 빅데이터

조성준 지음 / 21세기북스 / 2019

 

이것이 데이터고, 이렇게 분석하면 나오는 이것이 인사이트이다- 하는 리듬을 시종일관 유지하면서 빅데이터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얻을 수 있는지를 예시적으로 보여주는 데 열중하는 책이다. 기술적인 내용은 기술적인 책에서 배워야 하겠고, ‘빅 데이터는 겁나 빅한 데이터를 말하는 거 아니냐?’ 하는 수준의 이해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이다음 단계는, 빅데이터로 직접 밥벌이하지는 않더라도, 빅데이터를 사용해 우리를 밥벌이의 대상으로 삼는 이들에게 코 베이고 혀 짤리는 일은 피해야겠다 싶은 사주경계형 교양독자들을 위한 책 되겠다. 찾아봐야지.

 

데이터는 신대륙과도 같다. 그 존재를 모를 때는 좁은 구대륙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싸웠지만, 이제 바다 건너 신대륙의 존재를 알게 됨으로써 경쟁 없는 그곳에 가서 새로이 원하는 만큼 땅을 확보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뿐만 아니라 전 세계 데이터를 대상으로도 가능한 일이다.

  빅데이터는 정부나 대기업을 위한 혁신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일반 소비자이자 데이터 생산자인 우리에게도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빅데이터는 잘 쓰면 약이요 못 쓰면 독이 된다. 우리가 항상 봐야 하는 관점은 이익과 비용이다. 빅데이터로부터 우리가 얻는 이익이 무엇이고 그에 따른 비용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만 정확히 그 실익을 저울질할 수 있다.

_ 조성준, 세상을 읽는 새로운 언어, 빅데이터 

 

 



87. 폴리나

바스티앙 비베스 지음 / 임순정 옮김 / 미메시스 / 2011

 

표지를 보고서, 저 수염 난 아저씨가 저 애기한테 설마? 했다. 도대체 나는 뭘 보고 들으며 어떤 세상을 살아왔는가. 그런 거 전혀 없고, 겁나 아름다웠다. 마치 먹으로 그린 그림을 보는 것처럼, 선 속에, 공백 속에, 뭔가 있다!

 

동작이 더 가벼워야지. 힘들어 보이면 안 돼. 힘들어 <보이지 않는> 게 중요한 거야. 관객들은 네가 전달하는 감정 이외에 그 어떤 것도 봐서는 안 돼. 잊지 말아라, 폴리나. 우아하고 유연해 보이지 않으면 관중들에겐 네게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만 보일 거야.

_ 바스티앙 비베스, 『폴리나』

 

 

 


88. Chaeg 2021. 1. 2

()(월간지) 편집부 지음 / ()(잡지) / 2021

 

월간지는 사랑이 없으면 꼼꼼히 읽기가 어렵다. 한 번이라도 꼼꼼히 읽어봐야 사랑에 빠진다. 한번 궤도에 올라타면 오래도록 이어질 이 사랑과 열중의 닭-달걀 나선으로의 최초 진입은 우연의 작품일 때가 많다. 그런 우연은 소중하다.

 

그리고 전지윤 선생님은 소중하다.

 

그래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기 자신과 서로의 삶을 바라보는 진실한 이야기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마음의 근육을 단련시켜주는 글을 읽고, 서로간 격려의 말을 주고 받고, 이를 곰곰이 되새기며 명상이나 수행을 하려는 움직임도 많아지고 있는 요즘입니다. 화면 속 이야기들도 모두를 구해내는 수퍼히어로가 아닌 우리의 시선이 미처 닿지 않는 곳에서 피어나는 작고 아름다운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누구나 그럴싸한 사진과 영상을 제법 잘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이 모든 것들을 만들어내는 동력은 결국 진심과 진실이라 생각합니다. 따뜻한 온기를 가진 사람의 어여뿐 마음 같은 것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수많은 서사를 진실하게 담고 있는 책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_ ()(월간지) 편집부, Chaeg 2021. 1. 2

 

 

 

 

--- 읽는 ---

잘생긴 개자식 / 크리스티나 로런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 나카야마 시치리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세계사 / 우야마 다쿠에이

정적을 제거하는 비책 / 마수취안

헤겔과 그의 시대 / 곤자 다케시

알수록 쓸모 있는 요즘 과학 이야기 / 이민환

을의 민주주의 / 진태원

애덤 스미스 구하기 / 조나단 B. 와이트

대멸종 / 시아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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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3-18 1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부의철학>너무 반갑네요! 게다가 2회독을 하셨다니요.!!
어찌보면 간단한 얘기를 어렵게 했던것도 같아요. 읽다가 내가 글을 읽는건지 퍼즐을 푸는건지 자주 헷갈렸어요. 지금도 생각하니 조금 어지럽습니다.

syo 2021-03-18 13:51   좋아요 2 | URL
오, 미미님도 읽으셨군요!
결국 이거 읽고 나서 공부에 도움이 되었는가 안 되었는가가 실제적인 문제인 건데, 제 입장에서는 단호하게 1도 쓸모 없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ㅎㅎㅎㅎ
이건 그냥 철학이라는 것이 여기저기에 비빌 여지가 있는 고무찰흙같은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책 같아요.

미미 2021-03-18 14:01   좋아요 1 | URL
제가 건진거 하나. 자기 인생에 대해서 년도별로ㅡ 사회적 이슈와 결합해 ㅡ정리해보라고 한거 좋았어요ㅋㅋㅋ아직 완성은 못했는데 저에 대해 객관적으로 조금 이해하게 되더라구요. 고무찰흙ㅋㅋ👍

syo 2021-03-18 19:34   좋아요 1 | URL
이런 책에서 시키는 대로 해보는 편이시군요 ㅎㅎㅎㅎ
저는 하고 싶던 것도 남이 시키면 죽어라 안하는 희한한 녀석이어서 ㅋㅋ

2021-03-18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18 1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연 2021-03-18 14: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부의 철학!!!! 읽고 영어 잘하는 법 알아내겠습니다!!!!

syo 2021-03-18 19:35   좋아요 1 | URL
못 알아내요. 그 책 읽고는 아마 안 될 겁니다 ㅎㅎㅎㅎ

302moon 2021-03-18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효인 시인이 아무튼, 시리즈 중 한 권 내셨다는 거 이제 알았습니다.<- 신간 리스트 작성을 안 하다 보니 뒤늦게 알게 되는 거 같아요. 그냥 읽고만 가려다 댓글 달아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매번 읽을 때마다 생각해요, 글을 엄청 맛있게 잘 쓰시는 듯! :)

라로 2021-03-18 20:41   좋아요 0 | URL
앗! 처음엔 엔신님인 줄 알고 너무 반갑다는 댓글 달다가, 다른 분이라 실수 할 뻔 했다는 댓글을 달다가 어쨌든 아는 분을 떠올려주셔서 감사하는 댓글로 마무리합니다. 이 댓글은 그냥 읽고만 가려다 댓글 다신 분의 댓글을 보고 반가와 그냥 반갑다고 생각하려가 댓글 단 사람의 댓글이 되겠네요. ^^;;

syo 2021-03-21 19:45   좋아요 0 | URL
산문 읽으니까 오랜만에 서효인 선생님 시도 또 읽고 싶어지더라구요.
좋은 글 쓰는 사람은 글 하나 읽으면 다른 글도 읽고 싶게 만들지요.
칭찬 말씀 감사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3-18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 퀴넌 뒤에 내 이름도 달고 싶다 감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21-03-21 19:44   좋아요 1 | URL
조만간입니다. 얼른 반작가님 되세용 ㅎㅎㅎ

유부만두 2021-03-19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의 페이퍼를 2회독 했습니다.

syo 2021-03-21 19:4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시간을 허공에 투척하셨군요..... 기쁘면서 슬프네요...

공쟝쟝 2021-03-25 1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쭉 읽어내리다 눈에들어오는 <잘생긴.. 개자식...> 그러고 보니 라캉 네가 한국에 와서 참 고생이 많다...ㅋㅋㅋㅋㅋ
 

 

생각이 바퀴고 말이 수레

 

 

 

말 농사를 퍽 오래 지었지만 아직도 시큼텁텁하여 남 먹이기에 모자란 말들만 수확하는 건, 아무래도 말의 당도는 사람의 온도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지. 고작 이 작은 이치 하나를 깨닫는 데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다니. 그러면서 갈아엎은 글이 얼마며 파묻어 버린 말은 또 얼마야.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은 바라본 그림과 그려본 그림만큼 달라서, 우리는 모든 것을 단숨에 알 수 있는 세상을 살면서도 오랜 시간을 들여 이미 아는 작고 쉬운 것들을 다시 깨닫는 비경제적인 일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거겠지. 그렇게 죽을 때까지 읽어도 남들 다 알고 심지어 나도 아는 것들의 극히 일부분만 깨닫는 데에 그치듯, 역시 죽는 날까지 쟁기를 끌고 호미를 휘둘러도 나는 내가 원하는 당도의 말을 거두어들이지는 못하겠어도, 물론 그럴 줄은 알았지만 그렇다는 걸 깨닫는 것은 또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서, 쟁기를 차게 내던지던 날이 있었듯 호미를 꺾고 방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는 날이 또 있겠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밭 위에 서서 그 부끄러움, 그 땀, 세상에 뿌려진 수많은 말들의 그 복잡미묘한 맛, 그런 것들 덕분에 조금은 더 적합한 온도가 된 내 자신을 알아채거나 혹은 모른 채로, 거친 풀들을 베어내고 땅을 뒤집는 일부터 다시 시작해보자, 다시를 다시 해보자, 처절하지만 철저하게, 나는 늘 시작을 사랑하니까, 시작을 잘하니까, 처음부터 다시 일구는 사람의 지나간 모든 처음들이 쌓여 반복된 처음을 처음 만나는 처음으로 만들어 주는-이 또한 작은 하나의-이치를 믿고서, 내가 잘 하는 것들을 잘하는 것으로, 그리고 잘하는 것들을 잘 하는 것으로, 고작 나만큼의 달콤한 말을 만들기 위해 나의 온도를 조금 더 올리는 것으로, 말을, 말을 하자.

 

 

 

--- 읽은 ---



78.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를 바라보는 한 여자

시리 허스트베트 지음 / 김선형 옮김 / 뮤진트리 / 2018

 

문장 문장을 환하게 빚어내는 기예만 가지고는 글을 잘 쓴다는 말을 들을 수가 없다. 문장과 문장들, 문장의 덩어리인 문단과 문단들의 밀도와 배치를 글의 목적에 조응시켜 읽는 이들이 저마다 해석의 별자리를 짚어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능력, 그런 힘이 없다면 좋은 문장가는 될 수 있어도 좋은 작가가 되기는 어렵다. syo가 작가가 되는 것을 일찌감치 포기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나는 아무리 써도 내가 만족할 만한 글을 쓸 수가 없다. 이미 뼈저리게 알았으므로 다시 새롭게 뼈저릴 필요는 없는데, 세상에 좋은 글이 너무나 많아서 책 읽는 syo의 뼈는 365일 저리다.

 

하던 대로 발췌는 하는데, 한 꼭지 글 속의 모든 문단이 하나의 이야기를 향한 버릴 수 없는 포석이다 보니, 이렇게 한 문단 떼오는 일이 별로 의미가 없는 것 같다. 꼭지를 통째로 따 먹어야 한다.

 

장르를 막론하고 편안한 소설을 묘사하는 단어는 '가독성'이다. 희한하게도 가독성은 그 자체로 좋은 것으로 간주된다. 접근이 쉽고 아무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술술 읽히는 책은 우리가 예전에 읽은 적이 있는 소설들과 몹시 닮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사람은 별로 없다. 물론 이런 픽션들로 충족되는 욕구가 있기 마련이다. 기존의 세계관을 확인받고 싶은 욕구, 자기와 똑같은 차를 모는 등장인물의 삶에 참여하고 싶은 욕구, 1990년대에는 루콜라를 먹다가 몇 년 후부터는 케일과 퀴노아를 먹는 사람들의 욕구 말이다. 그런 디테일 자체만 놓고 보면 나쁠 것이 전혀 없다. 디테일은 시간과 장소와 계급 속에서 서사를 갈아낸다. 하지만 이미 뻣뻣하게 경직되어 수상쩍은 진실로 변해버린 문화적 클리셰를 비추는 거울 역할 말고는 독자에게 아무런 의미도 전하지 못하는 픽션의 도구가 되어버리면, 그때는 시시콜콜한 묘사 역시 바싹 메말라 무의미해지고 만다.

_ 시리 허스트베트,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를 바라보는 한 여자

 

 

 


79.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

이주윤 지음 / 한빛비즈 / 2016

 

두 번째 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전 그때는 그저 호오, 재밌군- 하는 감각만 있었지, 이주윤 선생님에 대한 지금과 같은 불타는 애정이 없던 시절이었다. 20184월이었으니 벌써 삼 년이 지났다. 재미있게도, 당시 syo는 이 책에 대해 이런 짧은 평을 남겼다.

 

낄낄 웃다가 끝났다. 확실히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맞춤법 책. 저자의 필력이 예사롭지가 않다. 다른 작품들, 이를 테면 에세이 같은 거, 기대해 본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에세이 같은 거를 읽고 사랑에 푹 빠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데는 거기가 아니고, 맞춤법 책을 읽고 쓴 평에다 당당하게도 이를테면이를 테면이라고 적어놨다는 것, 그 지점이 웃음 포인트다. 그 부분을 빼면, 나머지 감상은 세월의 공격을 잘 회피한 것 같다.

 

심지어 내가 에게 이 책을 추천해줬던 모양인데, 당시 은 자신이 글고자라는 사실에 좌절하고 글쓰기에 도전했다가 즉시 포기하는 패턴을 계절마다 반복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syo는 알라딘에 글을 쓰라는 처방을 내려주었고, 가끔이지만 은 그 말을 듣기도 했다. 그래서 의 서재에 가면 일 년 한 개꼴로 리뷰가 있는데, 2018년 알라딘 서재를 완전히 떠난 이 마지막으로 남긴 짧은 리뷰가 또 이 책이다. 재미있는 인생. 물론 의 글은 다시 봐도 형편없기가 세상에 짝이 없는 경지다. 2018이나 2021이나, 안 될 놈은 안 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인생.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출생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는 1.24명에 그친다고 합니다 이 말인즉슨, 대한민국 여자는 평생을 살면서 아이 한 명을 낳을까 말까 한다는 얘기이지요. 상황이 이러한데 여자에게 경우도 없이 낳았느냐 묻는 것은 굉장히 실례가 되는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질병과 관련된 경우에는 낫다를, 출산과 관련된 경우에는 낳다를 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지만 정 헷갈리신다면 그냥 낫다라고 쓰시기를 조심스레 권해 봅니다. 여러분과 만나고 있는 여자가 무언가를 낳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할 것이며, 여러분이 무언가를 낳을 일도 없을 테니 어지간하면 상황에 맞을 겁니다.

_ 이주윤,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

 

 

 


80. 한국 칸트철학 소사전

백종현 지음 / 아카넷 / 2015

 

요건 뭐랄까, 팜플렛 느낌이라서 소소하게 읽을 수 있었다. 백종현 선생님은 요거 말고도 비슷한 컨셉의 <칸트 이성철학 95>라는 책을 내셨고, 또 이 책의 거대화 버전이라 할 수 있는 <한국 칸트사전>이라는 책도 내셨다. 그건 1100쪽이 넘는 대작이다. , 이 책보다 읽음직한 책들이 많다는 이야기.

 

인간은, 요컨대, 세계 인식에서 존재자의 존재를 규정하는 초월적 주관이자, 행위에서 선의 이념을 현실화해야 하는 도덕적 주체이고, 상상력과 지성이 합치할 때 생명감을 느끼고, 세계의 전체적인 합리성과 합목적성을 요청하고 희망하고 믿는 반성적 존재자이다. 칸트의 이성 비판은 이로써 우리가 과학적 엄밀성을 가지고 발언할 수 있는 것은 인식의 세계, 즉 진리의 세계에 대해서뿐이지만, 그러나 인간에게 가치 있는일은 논리적 사고 활동뿐만 아니라, 아니 오히려 그보다도 더, 도덕적 완전성, 아름다운 세계, 그리고 인간의 이상이 마침내 실현된다는 희망 내지 확신을 가지고 역행하는 일임을 일깨워준다.

_ 백종현, 한국 칸트철학 소사전

 

 

 


81. 이선 프롬

이디스 워튼 지음 / 손영미 옮김 / 문예출판사 / 2009

 

최근에 워튼의 징구를 읽었는데, 친구는 그렇다면 꼭 읽어보라며이선 프롬을 권했다. 밀리에 있어서 일단 책장에 담아두고는, 언제나 그렇듯 다른 책들을 읽느라 혼 빠진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조 퀴넌의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에서 이디스 워튼을, 특히 이선 프롬을 상찬하는 부분을 발견했다. syo의 독서월드에는 단기간에 두 명의 작가로부터 추천받은 책은 독서 목록의 최상단에 즉시 진입시키는 훌륭한 규칙이 있고, 그 규칙의 작동은 늘 성공을 낳았다. 이번에는 어땠을까?

 

당연히 성공이었다. 헨리 제임스의 싸다구를 날리는 이디스 워튼의 심리 묘사 실력은 든든했고, 그 심리가 사랑을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징구보다 이 책이 더 좋았다. , 저 불쌍한 애들은 결국 뽀뽀 한두 번 해보고 저렇게…….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고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 지난 세기쯤 완전히 멸종하는 바람에,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하는 말은 웃자고 하는 말이 되었다. 사랑이 변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변하는 거라는 말도 있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을 놓고 사람만 변할 수가 없고, 사람을 놓고 사랑만 변할 수도 없다. 사랑이 변하면 사람도 변하고 사람이 변하면 사랑도 변하지만, 그건 인과관계나 선후관계보다는 진행하는 전자기파에서 발생하는 전기장과 자기장 변동관계와 더 유사하다. 쉽게 말하면 닭이냐 달걀이냐의 관계긴 한데, 그 닭이 1초에 1달걀을 낳고 그 달걀이 1초에 1닭으로 태어나는 속도랄까. 헛소리 같긴 해도, 그러니까 사람과 사랑은 거의 동시에 변하고 변함 당하는 관계라고 보는 게 현실적이다.

 

  “그럼 제가 오해한 거네요. 이제 그런 생각 안 할게요.”

  “그래, 깨끗이 잊어버려, !”

  매티는 이렇게 말하는 그의 말투가 갑자기 열기를 띠는 걸 눈치채고 다시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이번에는 갑작스런 홍조가 아니라, 그녀의 마음속에 서서히 퍼져가는 어떤 생각을 내비치듯, 느리고 섬세하고 그녀의 볼이 붉어졌다. 그녀는 일감을 손에 걸친 채 말없이 앉아 있었다. 이선은 뭔가 뜨거운 것이 둘 사이에 놓인 그 좁은 헝겊을 타고 전해오는 것 같아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그 끝을 만졌다.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걸로 보아 그녀도 그의 손짓을 보며 이쪽에서 마주 흘러가는 열기를 느끼는 것 같았다. 그녀는 헝겊의 저쪽 끝에 두 손을 올려놓고 가만히 있었다.

_ 이디스 워튼, 이선 프롬

 

 

 

--- 읽는 ---

아무튼, 인기가요 / 서효인

인기 없는 에세이 / 버트런드 러셀

철학의 슬픔 / 문성원

HOW to READ 라캉 / 슬라보예 지젝

공부의 철학 / 지바 마사야

나의 외국어 학습기 / 김태완

대멸종 / 시아란 외

머신 플랫폼 크라우드 / 앤드루 맥아피, 에릭 브린욜프슨

폴리나 / 바스티앙 비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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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3-15 11: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글 읽고서 三 님의 리뷰를 읽고 싶어지는 것은 저뿐만은 아닐 거라고 확신합니다. ㅋㅋㅋㅋ
오늘 三 님 서재 조회수 폭발하는 거 아닙니까. ㅋㅋㅋㅋㅋ

‘이를 테면 낫다,낳다 / 하루,2틀/눈을 부라리며,불알이며 등등은 도저히 참고 봐줄수가 없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서 보고 왔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3-15 11:51   좋아요 0 | URL
저도 삼님의 리뷰를 읽으러 당장 가겠습니다!

syo 2021-03-15 12:10   좋아요 1 | URL
저도 다시 읽었습니다. 서른 넘은 놈이 열세살 짜리도 안 쓸 독후감을 써놔서 한층 재미가 있었습니다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3-15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선 프롬 좋지요? 헤헤. 다시 읽어도 좋더라고요. 샤라라랑-
그래도 읽으면서 아아, 나는 별로였다 이런 거 나오면 어떡하지, 좀 쫄렸어요. ♡

syo 2021-03-15 12:12   좋아요 0 | URL
민음사 번역으로 다시 읽어보려구요. 뭔가 이 책의 맛을 다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 책의 맛이 원래 어떤 맛인지 1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ㅋㅋㅋㅋㅋ

blanca 2021-03-15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디스 워튼 최고죠.. 삼님 ㅋㅋㅋㅋ 위에 댓글 읽고 쓰러집니다. 이 페이퍼 읽고 상처받고 두 분 싸움 나는 건 아니겠죠? 그 정도로 얕은 관계는 아닌 거죠. ㅋ

syo 2021-03-15 12:13   좋아요 0 | URL
우리는 싸우지 않습니다. 인간이 어패류와 싸울 수는 없잖아요. 그냥 먹을 뿐입니다 으하하하하

tomatosoup 2021-03-15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리 허스트베트 글을 참 잘 쓰는 것 같아요 저는 최근에 <에로스의 청원>을 읽었는데 처음에는 빌려 읽었다가 너무 좋아서 구매했어요 ㅎㅎ

syo 2021-03-15 12:14   좋아요 0 | URL
저도 읽은 건 저 책이 처음인데, 줄줄이 독서를 이어나가야겠다고 생각중입니다 ㅎㅎㅎ 이제야 발견했다니....

반유행열반인 2021-03-15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보다 삼님 서재를 구경해보니 나도 안 읽은 수많은 고전 읽으셔서 놀랐어요 ㅋㅋㅋsyo님 아직 못 읽은 안나카레니나도 읽으심ㅋㅋㅋ존중해드립시다.

syo 2021-03-15 18:41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안나 카레니나 같이 읽자 해놓고 저만 토낌 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3-15 18:55   좋아요 0 | URL
그럼 올해는 저랑 안나카레니나 읽어 보실까요 ㅋㅋㅋ(펭귄 시리즈 소진해야 한다...종이책도 있긴 한데..) 약속해도 또 토끼?실 것 같지만ㅋㅋㅋㅋㅋ

syo 2021-03-15 19:02   좋아요 1 | URL
🐰요? ㅎㅎㅎ
그럼 안나 한번 같이 가실까요?

반유행열반인 2021-03-15 19:05   좋아요 0 | URL
프루스트로 시간 잃어버리기 보다는 좀 더 난이도 낮아보여서요...먼저 읽은 사람한테 늦은 놈(벌써 놈이다)이 뭐 쏘기 이런 거 하죠 ㅋㅋㅋ쏘고 나서도 한 해 안에 읽기 안 읽으면 다음 해에 또 쏘기...(다독가 취준생한테 도전장 던졌어...겁대가리 어디갔어...)

페넬로페 2021-03-15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님 서재 닉네임을 알고 싶어요~~
삼 입니까?

잠자냥 2021-03-15 17:51   좋아요 1 | URL
설마했는데 정말 ‘三‘이더라고요. ㅋㅋㅋㅋㅋ
저 책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 클릭하고 나서 리뷰 12개 중 구매자 리뷰 말고 전체 리뷰 보다 보면 ‘三‘이라는 글자가 떡하니 보입니다. ㅋㅋㅋㅋ

페넬로페 2021-03-15 17:56   좋아요 0 | URL
설마요? ㅎㅎ
감사합니다, 잠자냥님♡♡

syo 2021-03-15 18:41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 원래는 다른 닉네임이었는데 제가 핸드폰 뺏어서 바꿨습니다 ㅋㅋㅋㅋㅋㅋ

라로 2021-03-15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나만 삼님의 서재를 찾지 못하는 건가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암튼 저 문법책 저도 많은 도움 받았는데, 하나도 기억 못하고 (내용 말고 가르친 문법) 사용할 때 더 헷갈린다는 것이 제 문제,,다시 읽어봐야겠어요.ㅋㅋㅋㅋ 아,,, 그리고 종이책으로 2권(두 권,,아니라 2권,,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더 샀어요. 애들 주려고,,, 토비님이 책 많이 팔았어!!ㅋㅋ

syo 2021-03-15 18:4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찾아봐야 뭐 없습니다
어차피 다시 오지도 않는 삼인걸요

라로 2021-03-15 19:49   좋아요 0 | URL
오케이! 그럼 그것이라도 시간 아끼는 걸로~~~!!😉

북다이제스터 2021-03-15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삼 님 글에 조회 수 하나 보시했습니다. ㅋ
근데 전혀 잘 못 쓰신 글은 아니라고 생각 들었습니다. ㅋㅋ
제가 그 정도 쓰려면 한참 걸릴 듯 합니다. ㅠ

syo 2021-03-16 09:42   좋아요 0 | URL
무슨 말씀이세요 ㅋㅋㅋㅋ 절대 아닙니다. 걔가 쓴 거 그건 글 아니죠. 그낭 글자입니다 ㅋㅋㅋ

난티나무 2021-03-15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달려가고 싶지만 참는다...요. ㅎㅎㅎ
책 또 사야 되네요.ㅠㅠ

syo 2021-03-16 09:42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알라디너가 알라디너한테 책을 파는 동안 웃는 놈들은 알라딘....

psyche 2021-03-16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달려가서 보고 왔네요. ㅎㅎ

syo 2021-03-16 09:43   좋아요 0 | URL
정말 딱 그정도가 적확한 리액션인 것 같습니다. ˝ㅎㅎ˝
 

  

MTCD

 

 

 

1



이 매력적인 맞춤법 책의 파워를 드러내기 위해 좀 길지만 한 꼭지를 거의 그대로 따와 보기로 한다. 이 꼭지는 햇수/횟수를 설명한다.

 

지영에게서 등을 돌린 채 누워 있는 상경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동정을 잃은 사내의 복잡다단한 심정을 그 누가 설명할 수 있으랴. 그런 그의 모습이 애처로운 한편 갑갑하기도 했던 지영은 담배 연기와 함께 긴 한숨을 내쉬며 상경에게 말했다.

  “작년 가을에 너를 만나 올해 겨울이 다 되도록 내가 얼마나 참아 왔는지 너는 모른다. 번번이 내 손을 뿌리치며 새침하게 집으로 향하는 너의 뒷모습이 나를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었는지도. 오늘에야 비로소 네가 내 것이 된 것만 같다. 앞으로의 일은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를 책임진다.”

  지영의 믿음직스러운 목소리에 상경의 마음속을 채우고 있던 두려움들이 하나둘씩 물러서기 시작했다. 상경은 참았던 눈물을 와락 터뜨리며 지영의 품에 안겼다. 지영은 상경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남은 콘돔, 마저 다 써야 하지 않겠니.”

  상경이 무어라 대답하려는 찰나 테이블 위의 전화기가 울려 댔다. 어느덧 약속했던 퇴실 시간이 다가온 것이었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 지영의 너머로 상경이 손을 뻗어 수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저희 그냥 숙박할게요.”

 

문제 1. 상경과 지영이 만난 지는 햇수로 몇 년 되었을까요?

12345

문제 2. 상경과 지영은 그날 밤 횟수로 몇 번이나 했을까요?

1351015번 이상

_ 이주윤,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

 

문제 2의 해설이야말로 포인트.

 

2.

횟수는 돌아오는 차례의 수를 뜻합니다. 모텔에 비치된 콘돔은 대개 한 박스에 세 개가 들어 있습니다. 지영이 상경에게 남은 콘돔을 모두 사용하자고 제안했으니 상경의 몸만 따라 주었다면 횟수로 세 번 했을 것입니다. 콘돔이 한 박스에 몇 개나 들어 있는지 몰라서 정답을 맞힐 수 없었다는 분들은 아랫도리에 손을 얹고 반성하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피임을 게을리했거나, 피임을 했더라도 콘돔을 한 개 이상 사용해 본 적이 없어서 개수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니 어느 쪽이든 용서할 수 없습니다.

_ 같은 책

 

ㅋㅋㅋㅋㅋㅋㅋ 아 선생님 사랑해요.

 

 

 

2

 

그렇지만 여러분, 웬만하면 콘돔은 좋은 거 사서 상비하시길. 아시겠지만 모텔에 비치된 콘돔은 뭐랄까, ,

 

 

 

3

 

콘돔에 얽힌 사연 하나 없는 사람 누구 있으랴. 계산대에 콘돔을 올려놓을 때 어떤 이는 죄도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얼굴을 붉히는 반면 또 어떤 이는 무슨 알렉산더랑 칭기즈칸을 버무려 놓은 것처럼 의기가 양양하다. 꼭 있어야 할 순간에 없는 바람에 이런저런 분쟁이 일어나기도 하고, 오늘 좀 다른데 싶어서 신났다가 끝나고 보니 터져 있어서 기겁(두 사람이 동시에 육성으로 비명을 질렀다)하는 일도 생긴다. 오백 개쯤 써 봤지만(안 세어봤을 것 같죠?) 앞뒤를 맞춰 단번에 드르륵- 착용하는 빈도는 여전히 50%에 그친다. 물론 껍질을 뜯은 다음 얘가 어떻게 말려 있는지 진득하게 살펴볼 기회가 단 한 번이라도 있었다면 그 이후로는 일단 대보고 뒤집는 일 따위는 없었겠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그 긴박한 상황에서 콘돔의 구조에 탐구심을 가진다는 것은 비현실을 넘어 초현실에 가깝다. 배송지를 확인하지 않고 주문하는 바람에 대구 집에서 엄마가 콘돔 박스를 받았지만 보낸 이 이름에 뜬금없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적혀 있는 덕분에 간신히 민망의 골짜기를 에둘러 간 적도 있었다. 당신들 진짜 좋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연들 하나하나가 저마다 한 바닥 넘는 글이 될 수 있겠지만, 알라딘, , 이 품행 방정한 이들의 요정 나라는 아직 저 피 끓는 사연들의 어덜트어덜트하면서도 절절한 디테일을 감당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니까, syo는 여기서 눈물을 머금고 그냥 돌아섭니다요😏

 

 

 

4

 

그래도 이건 보건위생적으로도 중요한 정보인 것 같아서 언급해도 괜찮겠다. 터졌던 그것은 일본 유명회사의 0.01이었다. 당신의 플레이 스타일이 마법사보다 광전사狂戰士 쪽에 가깝다면 부디 조심하시기를. 하여간 기술이 없으면 몸 고생 맘고생이다. 그래서 우리 할머니가 사람은 기술을 배워야 된다고 그렇게 그렇게…….

 

그러나 이생망인듯.

 

 

 

--- 읽은 ---



73.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페르낭 브로델 지음 / 김홍식 옮김 / 갈라파고스 / 2012

 

"경제계"라는 개념도 재미있지만 이른바 "삼층집 모델"이 흥미롭다. 그러니까 <자본주의 = 시장 경제>가 아니라 3층 건물의 2층에 시장 경제, 3층에 자본주의를 올려놓은 것이다. 마르크스의 "상부구조-하부구조"하고도 다른데, 그건 하나가 옳고 하나가 그르다기보다는, 어떤 개념구조를 건축으로 은유하는 과정에서 저자의 인식 차이를 반영하는 느낌에 가깝다. 예를 들어, 어느 쪽이 기반인가-하는 감각으로 접근하면 토대가 중요한 느낌이지만, 그렇게 고층 건물을 지었을 때 최고 권력자의 사무실은 그 건물의 1층에 있는가 최상층에 있는가- 하는 감각으로 바라보면 또 뭐를 꼭대기에 올려야 할지 달라지는, 그런 차이랄까. 이건 이거대로 저건 저거대로 설명력이 있어서 좋다. 다른 말을 하는 책들을 읽는 재미가 이런 데 있다.

 

비유컨대, 그 심해 깊은 곳으로 잠수하고 나오는 순간, 우리가 태곳적의 물속에 살고 있구나 하는 강렬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언제부터였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오래된 역사, 200~300년 혹은 1,000년 전에도 있었을 역사인데, 어느 순간 우리 눈앞을 보면 오늘날에도 옛 모습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역사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물질생활을 나는 다음과 같이 이해합니다. 즉 물질생활은 인류가 이전의 역사를 지나오는 동안 자신의 삶 아주 깊숙한 곳에 결합해온 것이다, 마치 우리 몸속의 내장처럼 깊숙한 곳에 흡수되어 있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오래 전에 경험하고 중독되고 세뇌당한 것들이 일상생활의 필수적인 것이 되고, 또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됩니다. 그래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게 됩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74. 그들은 어떻게 세상의 중심이 되었는가

김대식 지음 / 21세기북스 / 2019

 

대체 왜 이런 선입견이 생긴 건지는 모르겠는데, 김대식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 항상 그 관점이 폭넓다는 감탄에 앞서 아는 것 많아 좋겠네 하는 비꼼의 감정이 먼저 생긴다. 모르겠다.

 

'로마의 흥성과 멸망'에서 지혜를 뽑아 '오늘날의 문제'들을 헤쳐나갈 방법을 모색한다는 컨셉인듯 한데 두 주제가 착 붙는 느낌은 아니다. 특히 마무리 부분으로 가면 뭔가 시급하게 정리하기 위해 박학다식을 늘어놓은 느낌이라 뭐랄까, 헐겁다.

 

셰익스피어는 인생은 연극이고, 세상은 무대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세상이라는 연극 무대에서 주연과 조연은 왜 언제나 미리 정해져 있는 것 같을까? 진화론 없이 생물학적 의미를 이해할 수 없듯, 역사 없이 오늘과 미래를 이해할 수는 없다. 우리의 미래 그리고 앞으로 세상의 중심이 될 자들을 이해하기 위해 세상의 중심이었던 과거의 제국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다.

_ 김대식, 그들은 어떻게 세상의 중심이 되었는가

 

저런 주장 역시 틀린 말인지 맞는 말인지 확인할 수 없는 문장일 뿐이다. “진화론 없이 생물학적 의미를 이해할 수 없듯역사 없이 오늘과 미래를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고, 그냥 구도적 유사성을 이용한 수사적 표현에 그친다.

 

 

 


75. 누구나 한 번쯤 계단에서 울지

김나랑 지음 / 상상출판 / 2020

 

구청은 일하기에 괜찮았다. 동료님들도 좋았고, 나도 뜻밖에 서비스직에 적합한 성격이었던 거라, 가끔 등장하는 분노한 어르신들도 끝내 누그러져 발길을 돌리신 다음 웃으며 다시 찾아오시곤 했다. 일도 양이 많아서 그렇지 망해서 혼쭐나본 적은 없는지라, 뭐랄까, 피를 토했으면 했지 눈물이 날 것 같은 적은 없었다. 오히려 눈물을 비롯한 내 몸의 물이란 물들이 메말라 가는 느낌. 계단에서 울어볼 만큼 일해보지 않고 관뒀으니, syo는 사실상 직장인이 뭔지 모르는 거나 진배없는 것도 같다. , 일이란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고, 알 만큼 알고 나면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아파 있을 것 같기도 해서 제대로 알기도 겁나고. , 일이란, 진짜.

 

정 주지 않으려면 기계적으로 일해야 하는데, 그 또한 인생의 일부를 앗아가지 않을까. 365일 중에서 300일을 회사에 앉아 있는데 그 시간들을 기계적으로만 대한다면, 삶이 너무 건조해져 바삭하고 으스러지지 않을까? 그래도 뭐, 어느 정도 차용해 볼 만하다. ‘사회에서 만난 인간관계의 법칙을 일에 대입해 본다. 일은 일일 뿐 가족이나 친구처럼 나를 아껴주거나 위하지 않는다. 철저한 기브 앤 테이크의 관계. 나는 그에게 시간과 노력을 주고, 그는 나에게 보수와 성취감을 준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되 똑같이 주고받아야 한다. 자잘한 정이나 헛된 기대 따위 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까지 열정을 퍼부었는데, 너는 어째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냐? 나를 이렇게 대할 수가있어?’ 같은 상황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아주 깔끔하게 계산적으로 일해야 한다(물절적 보수뿐 아니라 성취감도 해당한다). 그러면 계단에서 우는 열 번 중 세 번 정도는 줄지 않을까?

_ 김나랑, 『누구나 한 번쯤 계단에서 울지』

 

 

 


76. 모든 곳에 존재하는 로마니의 황제 퀴에크

김솔 지음 / arte(아르테) / 2019

 

로마니라는 게 우리가 집시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뜻한다고 한다. syo는 집시가 라이프스타일이나 직업에 가까운 단어인 줄 알았는데, 그게 민족이었을 줄이야.

 

모든 곳에 존재하는이라는 수식어는 황제가 아니라 로마니를 꾸민다. 모든 곳에 존재하므로 그 어느 곳에서도 가장 낮고 비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 가운데, 더 이상 모든 곳이 아니라 어떤 곳에 존재하려는 희망을 지닌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일단 희망이 태어나면 그 다음에는 그 희망을 실현하려는 사람과 이용하려는 사람이 태어난다. 그리고 최후에는 필연적으로(설령 그 희망이 실현되었더라도) 좌절하는 사람이 태어난다. 이 얇은 책은 그렇게 순차적으로 태어나는 것들을 둘러싼 이야기이다.

 

나는 로마니 희생자, 특히 로마니의 마지막 왕과 관련된 자료를 찾게 되면 연락해달라고 부탁했다. 이틀이 지나서 그녀는 이메일로 수많은 자료를 보내왔는데, 유감스럽게도 그것들은 유대인과 로마니의 차이를 선명하게 부각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선별된 것들이었다. 그 자료에 따르면, 나치는 수용자들이 스스로를 동물과 동일하게 여기도록 만들려고 노력했단다그래야 죄책감을 덜 느낄 수 있었을 테니까그래서 몸을 씻거나 음식을 양보하지 못하도록 강제했다. 하루에 고작 물 한 잔이 배급되었는데, 그걸 한꺼번에 마신 자들은 모두 소각실로 보내어진 반면에, 절반을 남겨 세수를 하거나 비축한 자들은 끝까지 살아남았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그런 행동이 유대인에게는 항상 가능할지 몰라도 로마니에게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나 역시 인정했다. 하지만 그 차이가 두 민족의 현재를 결정했다는 주장은 결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여자에게 전화를 걸어 격렬하게 항의했고, 그 여자는 급히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음 날, 내가 반유대쥬의자인지 확인하기 위한 이메일이 도착했다.

_ 김솔, 모든 곳에 존재하는 로마니의 황제 퀴에크

 

 

 


77. 딱 하나만 선택하라면,

데비 텅 지음 / 최세희 옮김 / 월북 / 2021

 

특별할 것은 없는데, 이런 류의 책을 여러 권 읽다 보니 나도 좀 변한 것 같다. 예전에는 오, 나도 그래, 나도 이래! 이러면서 좋아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그냥 뭐 그렇지 뭐 책 좋아하면 뭐 그럴 수 있지 뭐 우리만 이러나 뭐 특별할 거 뭐 있나 뭐- 이렇게 반응하고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고, 우리의 행동이 닮아있으면 더 반갑고, 또 그 행동이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특별한것이라고 인식할수록 더 신난다. 정체성을 인정하고 인정받는 거래 속에서 즐겁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꼭 특정한 책, 특정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야 즐거워진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을 발견하는 것에서가 아니라, 책을 많이 읽는 사람 속에서 책을 발견할 때 즐거워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근본적으로 우리는 책을 사랑하는 사람인 것이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안에 있는 책을 사랑하는 것이 먼저다. 물론 내가 사랑하는 것을 품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사랑스럽겠지만.

 

책덕후가 행복할 때

 - 카페에서 제일 좋은 자리에 앉게 될 때

 - 책 할인 이벤트를 발견할 때

 - 도서관에서 한꺼번에 많은 책을 빌릴 때

 - 책을 다 읽고 감상을 나눌 때

 - 서점 특유의 중독성 강한 향기를 맡을 때

 - SNS에서 좋아하는 작가를 팔로우한 후 친한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걸 때

 - 내가 추천한 책이 정말 좋았다고 말해줄 때

 - 사고 싶었던 책을 깜짝 선물로 받을 때

_ 데비 텅, 딱 하나만 선택하라면,

 

 

 

--- 읽는 ---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 / 조 퀴넌

세상을 읽는 새로운 언어, 빅데이터 / 조성준

마키아벨리 다시 읽기 / 곽준혁

라캉 읽기 / 숀 호머

이선 프롬 / 이디스 워튼

환경과 생태 쫌 아는 10/ 최원형

디 앤서 / 뉴욕주민

스스로를 아는 일 / 앙드레 지드

잊혀진 여성들 / 백지연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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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1-03-13 12: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야한 글을 투척하고 거기에 좋은 문장을 조금씩 끼워넣는 방식의 글은 이런 것이로군요. 어덜트어덜트해서 알라딘한테 계정 정지 먹는 꼴도 왠지 한 번 보고 싶은 사악한 팬심입니다...

syo 2021-03-13 19:15   좋아요 2 | URL
저는 순박한 젊은이일뿐입니다.
계정 정지 수준의 어덜트어덜트 그런 거 잘 몰라요......🙄

난티나무 2021-03-13 1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이 품행 방정 공간이었군요!!! ㅎㅎㅎ

syo 2021-03-13 19:16   좋아요 0 | URL
가장 고상하고 방정한 공간 아닐까요? ㅋㅋㅋㅋㅋ

북다이제스터 2021-03-13 16: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대식 무척 싫어하는데, 왜 싫은지 딱 꼬집어 이유를 대체 모르겠습니다. ㅋㅋ
일단 저만의 편입견이 아니란 점에서 맘 놓입니다. ^^

syo 2021-03-13 19:17   좋아요 0 | URL
보면 북다님이랑 저랑 불호 부분에서 겹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웬만큼 까는 글 쓰면 북다님께서 늘 호응해주시잖아요 ㅋㅋㅋ

독서괭 2021-03-13 17: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푸하하 (주)좋은사람들에 빵 터져서 읽다 말고 일단 중간 댓글 달고 마저 읽겠습니다 ㅋㅋㅋㅋㅋ

독서괭 2021-03-13 1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저 읽고 왔습니다. 품행방정공간인가요?? 그게 아니라면 syo님의 이분야 진면목을 더 볼 수 있는 건가요?? 기대됩니다앗 _

syo 2021-03-13 19:18   좋아요 0 | URL
이 아름답고 정갈한 공간에 흙탕물을 뿌려서야 되겠습니까.
실은 ‘진면목‘이라고 할만큼 뭔가 그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것도 아니라서요.....

라로 2021-03-13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식 시간 10분 남았음. 여기서 그 시간을 댓글 다는 것에 다 사용할 수 없어서 이만 총총. (어덜트 어덜트 더 어덜트 한 소리 할까봐. 😅😅😅. 누구? 내가. 😝😝😝)

syo 2021-03-15 10:38   좋아요 0 | URL
우리는 모두 어덜트인데 왜 마음껏 어덜트어덜트하지를 못하는 걸까요 ㅋㅋㅋㅋㅋㅋ
하라고 해도 못하겠는 이유는 무엇일까 ㅋㅋ

바람돌이 2021-03-14 02: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행가서 제일 많이 외치는 단어 중 하나가 어덜트인데 말이죠. 어덜트 투, 칠드런 투 이러면서 각종 매표소에서 소리높여 외치는데 이젠 그 말 할때마다 콘돔이 생각날텐데 아 민망해라.... 예 저는 품행방정한 알라디너입니다. ㅎㅎ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6권 우리집 책장에 예쁘게 꽂혀있어요. 저걸 다보면 하산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손도 못대고 있습니다. 하산하기 싫어서.... ㅎㅎ

‘내가 이렇게까지 열정을 퍼부었는데, 너는 어째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냐? 나를 이렇게 대할 수가있어?’ 이 마음이야말로 모든 관계와 나의 자존감을 파먹는 헛된 주문임을 25년간이나 직장생활하면서 겨우 깨달았는데 누군가는 저렇게 빨리 깨달았군요. 역시 세상에 고수는 많다고 깨닫습니다.

syo 2021-03-15 10:40   좋아요 0 | URL
알라딘이 다정하고 아름다운 이유는 방정한 사람들이 잔뜩 있기 때문이겠지요^-^
저는 이 평화롭고 잔잔한 연못에 콘돔을 집어 던지는 장난꾸러기 캐릭터에 꽂혔나 봅니다ㅎ
산신령님이 나타나서는 이 금 콘돔이 니 콘돔이냐.....

공쟝쟝 2021-03-25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윤... 언니... 와.. 언니... 저 책이 저런 책이었어요? 언냐...

syo 2021-03-29 12:51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 이주윤 르네상스가 오고 있군요. 내가 시발점이었어 시발점. 보고 계신가요 작가님.....

감은빛 2021-03-26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고 나니 장바구니에 담아만 둔 저 책을 빨리 주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주문한다고 바로 읽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요. 일단 지난 달에 도착해 책상 위에 쌓여있는 책들이 저를 노려보고 있지만, 저는 매일 무시하며 지나치고 있어서요.

오래 쉬다가 다시 일터에 복귀해보니 진짜 출근하기 싫고 일하기 싫더라구요. 가능하다면 일은 안 하고 먹고 살면 좋겠는데, 가능하지 않으니 일을 할 수 밖에 없네요. 저도 일이란 게 뭔지 모르고 살아보고 싶어요. ㅎㅎ

syo 2021-03-29 12:52   좋아요 0 | URL
일이라는 게 진짜 몰리는 사람한테만 몰리는 느낌이더라구요.
바쁜 사람은 바빠서 계속 바쁘고, 안 바쁜 사람은 안 바빠서 그런가 계속 안 바쁘고.....
힘내세요 감은빛님.

그리고 나중에 파전에 막걸리(는 감은빛님만 드시고)랑 사이다(는 저만 먹고) 한 잔....
 

  

구린--타입캡슐

 

 

 

1

 

아주 가끔 있는 일이지만, (15년이 다 되었으니 진짜 이다) 여친과 두런두런 지난날을 회고할 때마다 진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이십 대 초중반의 syo는 후짐의 클리셰로, 클리셰적 후짐으로 중무장한 후지미네이터였지만, 이십 대 후반쯤 인식론적 단절과정을 거치면서 과거의 부끄러웠던 나새끼를 깊은 마음 속 어두운 쓰레기장에 매립한 후 의도적으로 잊고 살았다. 그러나 억압된 모든 것은 반드시 돌아오는 법. 구린 시기를 함께 겪어낸 전우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재구성되는 옛-syo는 진짜 손발을 확 다 잘라 버리고 싶을 정도인데, 실제로는 늘 지금-여기-syo의 손발이 오그라들다 소멸한다.

 

증언에 따르면, 스물너댓 쯤의 syo가 헤어진 여친에게 무려 다음과 같은 대사를 날렸다고 합니다, 여러분.

 

넌 사랑받을 줄 모르는 사람이야!”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내손발…….

 

 

 

2

 

언젠가, 친구가 내게 뭔가 저지르기 전에 10년 뒤쯤 후회할지 아닐지를 생각해 보면 많은 잘못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해주었는데, 그 말을 듣던 당시에도 그건 내게 별 효과가 없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오늘날 이 시점에 그 생각은 확신이 되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분명 저 드러운 멘트를 치던 당시의 난 내 인생의 서사시에 길이 보존될 겁나 멋진 발언을 하고야 말았다고 생각하며 뿌듯함의 내적 댄스를 추고 있었을 것이다. 주옥같은 대사가 알고 보니 족같은 대사였다는 것은 알고 봐야알 수 있다. 당시에는 무슨 수를 써도 모른다. 일단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취해있기 때문이지. syo는 그런 놈이야…….

 

 

 

3

 

지금 여기서도 분명히 그런 일들은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내가 모르고 있을 뿐. 입조심 해야 한다.

 

 

 

4

 

그러나 이런 다짐은 큰 의미가 없다. 오늘의 나는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미래의 내가 부끄러워하지 않을 만큼의 안 구린 내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시공을 초월하여 인간의 입에서 나오면 안 될 말 정도나 겨우 틀어막을 수 있지, 결국 어떻게든 구린 말을 싸고야 말 것이다.

 

 

 

5

 

그래도 최선을 다해 말조심하자.

 

 

 

6

 

그렇지만 역시 의미 없겠지.

 

 

 

7

 

그래도…….

 

 

 

8

 

그래봤자…….

 

 

 

999999

 

……지금 뭐 하냐?

 

 

후   지게 산 건

회   복이 안 된다.

_ 유병재, 말장난

 

나는 예전부터 예술에 대한 경험은 오로지 관람자와 미술 오브제의 조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 예술의 지각 경험은 말 그대로 관람자에 의해, 관람자 안에서 체현된다. 우리는 사실에 입각한 외부의 현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과거에 정립된 패턴들을 통해 우리가 바라보는 것을 능동적으로 창출한다. 이런 학습된 패턴은 자동적이다 못해 무의식에 가깝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동반해 미술작품에 접근한다. 자아들과 과거들, 여기에는 우리의 민감한 감수성과 명민한 지성뿐 아니라 편견과 맹점도 포함된다. 작품의 객관적인 질은 관객의 눈에서 생명을 얻고 살아나지만, 이 모습은 또한 기억과 잘 정립된 지각 습관perceptual habit의 형태이다. 기억이 없으면 인식도 없다. 그러나 좋은 예술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좋은 예술은 우리로 하여금 예측의 방향을 틀어 패턴을 깨게 만들고 새로운 방식으로 보게 한다.

_ 시리 허스트베트,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를 바라보는 한 여자

 

육체가 말을 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육체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이 육체를 통해 말을 하는 것이죠. 좀 더 정확히 하면, 언어처럼 구조화된 무의식이 육체를 통해 말을 하는 것이겠죠. 그렇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육체의 언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단 하나의 언어, 인간의 언어만이 존재할 뿐이고 그러한 언어가 말을 하는 다양한 매개물들이 있을 뿐입니다.

_ 맹정현, 프로이트 패러다임

 

 

 

--- 읽은 ---



68.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 안인희 옮김 / 돌베개 / 2016

 

syo는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그지 같다. 공무원 시험 준비할 때 악착같이 외운 것들은 시험 종료 종 울리는 시점부터 날아가기 시작해서 합격자 발표 시점의 syo는 벌써 태정태세문단세 레벨로 돌아와 있었다. 난 왜 이렇게 역사가 안 되지? 하는 마음에서 역사책을 좀 읽어보리라고 마음먹었는데, 그랬더니 이 역사라는 거대하고 섬세한 케이크의 어느 지점에 숟가락을 찔러 들어가야 할지를 모르겠는 거라. 그렇게 숟가락 들고 케이크 주변에서 강강수월래 돌기도 지쳐가던 어느 날, 결국 못 참고 대충 푹 찔렀더니 거기가 비스마르크. syo의 역사책 독서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syo는 보통 한 달에 300번쯤 뭔가를 시작한다. 당연히 그중에는 예전에 시작했으나 언제 끝났는지 누구도 몰랐다가 강제로 재시작당한 것들도 수두룩하다. 앞날이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책에 대해서는 다음 인용문이 많은 것을 설명하므로,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도이치 제국’, 이는 두 가지 의미를 지녔다. 먼저 프로이센이 통치할 수 있을 만큼의 도이칠란트, 또는 도이칠란트가 지배할 수 있는 만큼의 유럽 세계라는 두 가지 의미였다. 앞의 것이 비스마르크의 생각이고, 뒤의 것이 히틀러의 생각이었다.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에 이르는 길은 도이치 제국의 역사이며 동시에 그 몰락의 역사이다.

_ 제바스티안 하프너,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

 

 

 



69. 비전공자를 위한 이해할 수 있는 IT 지식

최원영 지음 / T.W.I.G / 2020

 

이래 봬도 전공자다. 동학농민혁명시절에 대학 나온 바람에 다 까먹었을 뿐이다.

 

이 책은 재미있고 쉽긴 한데, IT 회사에 갓 입사한 비전공자, 안 보는 척하지만 격하게 주변 선배들 눈치를 보고, 안 듣는 척하지만 누가 볼펜 돌리다 떨어뜨리는 소리만 나도 벌떡 일어나면서 관등성명을 댈 비전공 신입사원이 입사 첫 주에 읽기 좋은 책이다. 업무관련성이 없는 사람, 혹은 후속 공부가 이어지지 않는 비전공자들에게는 아마도 봄날 바람 같은 추억으로 스쳐 지나갈 것이다.

 

  만약 IT 산업에서 자동차를 만들고 싶다면, 자동차의 완벽한 기획에서 출발해선 안 됩니다. 왜냐하면 지금 떠올린 자동차의 모습이 6개월, 1년 뒤에도 완벽한 자동차의 모습이라고 장담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처음에는 이동수단이라는 핵심기능에 중점을 두어서 스케이트보드 형태의 자동차를 만듭니다. 이후 꼭 필요한 기능들을 붙여서 킥보드 형태로 발전시켜 나가죠.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기술과 기능들이 탄생하게 되고, 이러한 것들을 차차 반영하여 자동차의 모습으로 만들어 나갑니다. IT 산업에서는 이런 식으로 점진적 발전만 있을 뿐입니다. 변화의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를 정해놓고 만드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_ 최원영, 비전공자를 위한 이해할 수 있는 IT 지식

 

 

 


70. 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지음 /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3

 

섹시와 처음 맞닥뜨렸던 밤을 기억한다. 그건 정말 맞닥뜨렸다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그 단편은 이 책의 한가운데 있었지만 나는 그대로 책을 덮고 침대에 누워 한참을 생각에 빠졌다. 그게 어떤 것들이었는지 전부 잊어버렸지만 하나는 기억난다. 불 꺼진 형광등을 눈으로 어루만지며 나는 생각했다. 섹시는 기술적으로 완벽한 단편이라고. 그 밤은 그렇게 끝났고, 나는 섹시뒤에 붙은 다른 작품을 건드리지도 않고/못하고 몇 개의 밤을 그냥 흘려보내야 했다.

 

그때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지금은 모르겠다. 여전히 섹시는 훌륭하지만, 나는 이 작품을 '기술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때의 나보다 못한 내가 되고 만 것인지, 더는 이 작품이 어떻다고 단언할 자신도 의지도 없다. 그러나 내가 책장에서 먼지 쌓인 이 책을 다시 꺼내며 제일 크게 기대한 작품이 섹시였고, 다시 한 번 생각해도 가장 좋았던 작품은 섹시. 기술이 아니어도, 설령 기술이 뭔지조차 모르는 내가 되었어도, 아니 오히려 그런 내가 되었기에 더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다시 이 책을 책상 위에 올려 놓을 그 어느 날의 내가 가장 기대할 작품도 섹시가 되리라는 것.

 

지금 느낌으로는 오히려 기술적으로 더 완벽한 작품은 일시적인 문제같다. 다음엔 또 어떨지, 모를 일이다. 아무래도 나는 기술을 잘 모르는 모양이다.

 

  "그림 그려주세요."

  그녀는 파란색 크레용을 골랐다. "뭘 그리면 좋을까?"

  아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 이게 좋겠어요." 아이는 거실에 있는 소파, 감독 의자, 텔레비전, 전화기 같은 물건들을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하면 기억할 수 있어요."

  "뭘 기억한다는 거야?"

  "우리가 함께 보낸 날." 아이는 다시 쌀 과자를 집었다.

  "왜 기억하고 싶은 거니?"

  "우린 앞으로 다시는 만나지 못할 테니까요."

  그 표현이 정확해 깜짝 놀랐다. 약간 우울한 기분을 느끼면서 아이를 바라보았다. 로힌은 우울해 보이지 않았다. 아이가 스케치북을 톡톡 내리치며 말했다. "어서 그려요."

_ 줌파 라히리, 섹시

 

 

 


71.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탄생

마일즈 J. 웅거 지음 / 박수철 옮김 / 미래의창 / 2019

 

이미지라는 게 참 무서워서, 마키아벨리라 하면 대충 뭐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책을 쓴 썬오브개자식이라는 정도의 (그릇된) 일반상식을 갖추는 것에서 충분하다고 (알게 모르게) 여기곤 한다. 그런 이미지를 탑재하고 마키아벨리를 읽으면, 그냥 덩실덩실 칼춤 추는 마키아벨리만 읽힌다. 물론 어떻게 읽을 건지, 책에서 뭘 캐낼 건지는 남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마키아벨리의 책으로부터 피묻은 칼만 발견한다 해도 딱히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칼을 찾는 마음으로 읽는 사람은 이솝 우화에서도 백만 개의 칼을 벼려낼 것이고. 하지만 읽는 이들이 마키아벨리를 갈아서 뭘 만들든, 일단 마키아벨리라는 인간이 지옥문을 열고 불쑥 지상으로 솟아오른 독버섯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아둬서 나쁠 건 없겠다. 박진감 넘치는 책은 아니지만(마키아벨리가 그렇게 살지를 못했다) 그의 인생이 그의 시절과 얽혀 있는 바, 쏘쏘한 재미는 있었다.

 

살아생전에 그는 세속적이고 야심만만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을 만한 무언가를 하고자 했고, 실제로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성공을 거뒀다. 마키아벨리가 사후에 누린 명성은 그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오랫동안 이상한 자들과 엮일 수밖에 없어서, 또 자신의 발언이 부적절한 명분과 결부된 채 이상한 용도로 쓰여서 당황스러워할지 모르지만, 마키아벨리는 이미 그 모든 난관을 극복할 만큼 우주의 예측 불가능성에 충분히 적응해 있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는 결코 자기 존재의 희극적 양상을 놓치지 않았고, 본인의 우스꽝스러움을 인정하는 자세가 남들에게 조롱당하지 않는 최선의 길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틀림없이 그는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찾아온 불후의 명성도 얄궂은 미소로 바라봤을 것이다. 살아 있을 때 그는 불운하게도 오해와 과소평가에 시달렸고, 죽어서는 친구나 적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었다.

_ 마일즈 J. 웅거,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탄생

 

 

 


72. 알아두면 쓸모가 생길지도 모르는 과학책

마티유 비다르 지음 / 김세은 옮김 / 반니 / 2020

 

과학 공부는 어느 위치에서 시작하든 결국 원리 방향과 응용 방향 양쪽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그것 빼고 남은 길은 그냥 암기뿐이다. 그러나 과학이 제공하는 낱개 지식을 모조리 암기하는 건 불가능하다. 운과 재능과 노력과 여유를 타고나 그 불가능한 일에 기어이 성공한다한들, 그때쯤 과학은 벌써 저만큼 멀리 달아나 있을 것이다.

 

흥미는 생길 수 있겠다. 하지만 쓸모라는 게 언제 찾아올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아마 그때쯤이면 이미 다 까먹고 없을 것이다.

 

음핵clitoris은 인체에서 유일하게 쾌감을 느끼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으로, ‘실질적으로하는 일은 하나도 없다. 음핵에는 무려 8천 개에 이르는 신경말단이 분포하는데, 이는 신체 어느 부위보다 훨씬 많고 심지어 음경의 귀두보다도 많은 양이다. 음핵은 음경과 달리 해부학 연구에서 오랫동안 소홀히 취급되어 왔으며, 음핵의 해부학적 구조도 1998년에 이르러서야 파악되었다.

_ 마티유 비다르, 알아두면 쓸모가 생길지도 모르는 과학책

 

 

 

--- 읽는 ---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 페르낭 브로델

누구나 한 번쯤 계단에서 울지 / 김나랑

루이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 루크 페레티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 / 조 퀴넌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 / 이주윤

한국 칸트철학 소사전 / 백종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 안드레 애치먼

혐오의 시대, 철학의 응답 / 유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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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1 2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11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11 2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3-11 22: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후회할 말 줄이기-는 결국 말 줄이기, 말 삼키기로 귀결되더라구요...못 믿으시겠지만 이래뵈도 저 말 많이 줄였습니다...ㅋㅋㅋㅋ

syo 2021-03-11 22:47   좋아요 2 | URL
우와, 그러고 보니 정말이네요! ‘못 믿으시겠지만‘쪽이 정말이에요! ㅋㅋㅋㅋ

독서괭 2021-03-11 2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대 중반의 syo님은.. 드롸마 좀 보셨나 봅니다 ㅎㅎ 저도 20대에 빠졌던 자기연민-자아도취 굴레를 생각하면 손발소멸 합니다...

syo 2021-03-11 22:48   좋아요 1 | URL
네, 바로 그렇습니다.......
하지만 20대 때 말똥 안 싸고 서른 된 사람이 과연 세상에 존재할까요???

미미 2021-03-11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어의 연금술사란 말입니까? 뿌듯함의 내적댄스ㅋㅋㅋㅋ👍

syo 2021-03-13 12:23   좋아요 1 | URL
우리 모두 저마다의 내적 댄스 하나쯤 품고 살지 않습니까 ㅋㅋㅋㅋㅋ

행복한책읽기 2021-03-12 1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불가능의 가능에 대한 구린글로 여는 글을 길게 쓴 syo님. 글을 줄여주시오. 나 그대 애독자인데 눈깔^^;; 아파 눈물약 넣고 눈깜박거림 수십 번 끝에 이 긴 글 다 읽었음요. 자꾸 이렇게 잼나게 쓰기 있기 없기. 있기!! 자아도취는 계속 하는 걸로. 고것이 syo다움^^

syo 2021-03-13 12:24   좋아요 1 | URL
눈을 보중하세요. 그리고 기어이 안력을 사용하시겠다면 부디 syo의 똥글을 읽기보다 좋은 시, 좋은 책들을 읽으시기를.... 눈 아까워요 책읽기님....
 

  

 

초겨울사거리 2

 

 

커피를 마실 건지 물으면 너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물음을, 되돌려주는 작은 입술을 바라본다. 아직 한기가 남은 아침을 밟아 여기에 왔을 것이다, 입술은, 낙낙한 공간을 숨겼고 단맛이 난다. 식빵 한 조각 허겁지겁 집어 먹은 게 다라고 말하며 커피를 한 모금 삼킬 때 설핏, 나타났다 사라지는 목넘김이 어떤, 메시지 같다. 서둘러 풀어 헤쳐주기를, 기다리는 의미의 꾸러미 같다. 서두르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생각은 늘 생각에, 그친다. 커피의 입김이 방을 한 조각 덥히고 방은 한 모금, 습해진다. 뜨거운 것들이 늘 그랬다. 덥히고 적신다. 눅는 것은 공간만이 아니어서, 접히는 시간, 수축하는 간격, 누르면 누르는 대로, 무한에 가깝게 새어, 나오는 이미지, 무한에 가깝게 맞, 닿아도 닳지 않는 신호체계, , 짓들, 말들, 말썽들, 잊어, 버리는, 잠깐, 이라는 말에 세차게 고개를, 젓는, 휘젓는, 젖는, , , , 없는, 없어지, , , 감고 보면, 영원히 감겨, 있는, 잇는, 잇ㄴ, , , , , ,

 

숨을, 쉬었다,


 

 

 

이제쯤 그들은 서로에 대해 몇 가지를 알게 된다. 그들이 함께 기댈 수 있는 지금 같은 것이 있다. 그 만남은 그 자체의 정수를 취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들 둘 다 그 정수가 무엇인지 정의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그들 둘 다를 채워준다. 이기적이지 않은 사랑의 의례 속에서 그들은 행복하게 최선을 다한다. 둘 중 하나가 얼마나 많이 가져가는가 하는 것 역시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한계가 없는 육체다. 그것은 그저 잊힐 뿐 결코 고갈될 수 없다. 우리는 그 사실을 결코 받아들이려 하지 않지만.

_ 제임스 설터, 스포츠와 여가

 

그렇게 말하는 경애를 산주가 안거나 끌어당기면 분명히 따뜻해졌다. 너무 선명하고 가까이 있던, 아주 세세하고 세밀하던, 그러니까 어느 크고 순한 개의 털이나 풀잎의 잔가시들을 만질 때 느껴지는 그 작고 촘촘한 살아 있음.

_ 김금희, 경애의 마음

 

 

--- 읽은 ---



63. 생활 속 법률 상식 사전

김계형, 이재호 지름 / 길벗 / 2019

 

syo는 전문가주의를 혐오하는 구시대적 인간인데도, 법과 병에 관해서는 절대 내 선에서 뭘 어떻게 해보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기회가 될 때마다 입이 마르도록 의사들 욕하면서도, 그들의 전문적 지식에 저항할 생각은 정말 1도 없다. 문제가 생겼을 때,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자. 이 책은 전문가의 도움을 대신할 만한 책은 아니고, 그저 내게 도움을 주는 전문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는 데에 힘을 보태주는 정도다.

 

 

 


64. 머더봇 다이어리 : 인공상태

마샤 웰스 지음 / 고호관 옮김 / 알마 / 2020

 

이른바 소설을 읽으며 우리는 이 책 속에 등장하는 것들이 책 밖에 있는 우리와 근본적으로 어떤 시스템을 공유할 거라고 당연하게 가정한다. 간혹 어떤 SF는 그런 가정을 당연히 무시하고, 오히려 너희가 전혀 생각해본 적도 없는 시스템이야말로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사전 설명도 없이 무례하게 그냥 툭 내뱉는다. 그럴 때 우리는 정말로 다른 세계에 도착한다. 불완전한 말과 유치하기 짝이 없는 표정, 아무리 애를 써도 전하고 싶은 바를 그대로 전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글, 그런 고장 난 매질을 이리저리 조잡하게 조합해 메시지를 전하려 아등바등하고, 또 그 일에 끊임없이 실패하고, 그러나 그것에 익숙해져 뭐가 잘못된 건지도 모르고 사는 우리가, “그리고 내 기억장치에서 꺼낸 짤막한 기록을 첨부해 그게 정확히 어떤 느낌인지 알려주었다.”와 같은 문장을 맞닥뜨렸을 때, 거기서부터는 사실 서사나 문장의 생김새 같은 건 아무려면 어떤가 싶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SF가 오히려 소설의 상위범주는 아닌가 곰곰 생각해보게 된다.

 

앞부분 서른 페이지 남짓 읽으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공은 살인을 목적으로 태어난 /인간 구성체라는, 인간 입장에서 보면 사이보그 비슷한 존재인데, 도입 시점에서 이미 지배에서 벗어나 여기저기로 도망다니는 모양이다. 그는 수송선에 올라타기 위해 수송선을 속이고 거래를 하는데, 자기는 자유로운 봇으로 주인에게 돌아가는 중이며 자기를 태워주면 영화, 드라마, , 음악 등등으로 구성된 미디어 팩을 제공하겠다는 것. 그렇게 수송선에 올라타고 나서야 주인공은 사실은 자기가 수송선을 속인 것도 아니고, 이 수송선도 그냥 평범한 수송선이 아니며, /인간 구성체 따위는 한방에 짜부라뜨릴 수 있을 정도의 데이터 공격이 가능한 막강 파워의 고급 시스템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고래뱃속에 든 새우깡 꼴이 된 주인공은 이내 자포자기하고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고, 수송선은 계속 주인공의 드라마 피드 근처를 기웃거린다. 그건 주인공 입장에선 마치 큰 소리로 숨을 몰아쉬며 내 등 뒤에 기댄 채 어깨너머로 개인용 디스플레이를 엿보고 있는 덩치 큰 사람같은 느낌이라고 하는데. 심지어 수송선은 주인공에게 아까 본 드라마를 한 번만 더 보자고 요청하기까지 한다. 이 수송선은 스스로 미디어를 볼 때는 바이러스와 악성 코드와 다른 위험요소를 조사하는 방식으로 플레이할 수 밖에 없는 구조고, 결국 다른 개체가 미디어를 재생할 때 그 반응을 보며 우회적으로 내용을 이해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게다가 인간의 상호작용 구조는 수송선의 시스템과 너무 달라서 인간 승무원의 반응은 수송선에게 의미 있는 데이터가 될 수 없는 실정, 결국 수송선이 드라마나 영화를 소비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봇/인간 구성체인 주인공이 드라마를 보는 것을 보는 것뿐, 그래서 수송선은 모른 척 주인공을 태웠던 것, 뭐 그런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둘은 같이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는데, 이 거대하고 위대한 시스템은 막상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자, “별 비중 없는 인물이 하나씩 죽을 때마다 동요했다. 스무 번째 에피소드에서 주요 인물 한 명이 죽자, 녀석은 봇이 진단을 돌려야 하는 척하면서 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것에 해당하는 행동을 하며 7분 동안 피드에 머물러 있었고 나는 재생을 멈춰야 했다. 그리고 네 편 뒤에 그 인물이 다시 살아나자 너무 안도하는 바람에 우리는 그 에피소드를 세 번 보고서야 넘어갈 수 있었다같은 아주 귀여운 모습을 보여준다. 심지어 드라마 속 우주선이 파괴되고 승무원들이 죽거나 다쳤다는 암시가 나오자 겁을 먹고 드라마를 보지 못하기도 한다. 마침내 드라마가 끝나자 10분 동안(그 거대한 시스템이 1나노초 동안 해치울 수 있는 수많은 연산작업을 생각하면 10분이란 영겁에 가깝다) 가만히 있다가 마침내 하는 말. “다시 보게 해줘.”


이런 초월적인 지능을 가진 존재가, 너무 인간적이라 인간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뭔가를 배워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이상하게 훈훈하다.

 

  묘사가 비현실적이야.

  (아까도 말했듯이 녀석이 하는 말은 전부 가능한 한 빈정거리는 투로 상상하시길)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비현실이 있고, 모든 사람이 우리를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비현실이 있지.”

_ 마샤 웰스, 머더봇 다이어리 : 인공상태

 

 

 


65. 사회학의 쓸모

지그문트 바우만 외 지음 / 노명우 옮김 / 서해문집 / 2015

 

너무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 같지만, 이 책은 교양 수준에서 사회학을 익히려는 사람, 그러니까 사회에 털리지 않기 위한 자기보호 본능의 발현으로 사회학적 지식을 장착하려는 정도나 그 이하에 해당하는 열정을 가진 이들에게 과잉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을 인터뷰한 책이니 당연히 바우만의 사회학에 대한 바우만 자신의 설명이 일부 들어있고 그에 관한 사적 정보들도 녹아 있으니 바우만의 팬이라면 사회학적 목적이 없더라도 읽을 만할 것이다. 사회학에 대해 공부수준의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뚫고 지나가는 일이 한 번쯤 해볼 만한 경험인가에 대해서 syo가 할 수 있는 말은 없겠다.

 

그럼에도 역시 바우만은 바우만이라서 사회학에 직접 관련되지 않은 다른 매력적인 이야기들이 꽤 있다. 예를 들어, 44, 45번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써 바우만이 펼쳐내는 은유에 관한 사유는 사회학 바깥 영역에 서 있는 독자에게도 이 책의 쓸모를 충분하게 입증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멋있는 사람이 되려면 다양한 방면으로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잔뜩 든다…….

 

만약 호문쿨리homuncili로 태어나 시험관에서 배양된 석연치 않은 지식들로 넘쳐나는 진리가 아니라 실제의 세상 살이real life’에 대한 진리를 추구한다면, 카프카, 무질, 보르헤스, 페렉, 쿤데라, 미셸 우엘벡 등으로부터 힌트를 얻는 것 외에 좋은 방법을 선택할 수 없을 겁니다. 또한 세계--존재로서 자기만의 고유한 방식에 대한 진리를 발견하려는 열망이 강한 독자들과 협력하고 싶다면, 그리고 탐색되지 않았거나 간과되었거나 무시되었거나 혹은 시야에서 가려져 있던 대안들을 탐지하고 싶다면, 그들에게 메시지를 보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메시지는 독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말로 표현하기 위해 스스로 적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언어로 구성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경험과 관련된 친숙한 이슈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만약 사회학자가 이러한 사명을 해내지 못할 때 벌어지는 일은 뻔하지요. 당신의 메시지는, 메시지를 비인간화하여 고분고분함으로 가공해내는 경영자를 거들어주는 제안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매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기만적이기까지 한 것이 될 게 뻔합니다.

_ 지그문트 바우만 외, 사회학의 쓸모

 

 

 


66. 외로움을 씁니다

김석현 지음 / 북스톤 / 2020

 

가끔 이런 실험을 생각한다. 작은 방 한 가운데 큰 테이블이 놓여 있다. 그 위에는 에세이라는 장르를 달고 출간 된 책 스무 권이 올려져 있다. 이제 참가자가 방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책을 한 권씩 읽으면서, 이런 것도 에세이라고! 라는 생각이 드는 책들을 방 구석에 비치된 파란색 휴지통에 집어넣는 것이다. 그 옆에 있는 빨간색 휴지통은, 이따위 건 도대체 책이기나 한 건가? 싶은 책들을 위해 특별히 배치한 것으로, 이 통에 들어간 책들은 실험이 종료되면 즉시 소각장으로 가게 된다는 정보가 참가자에게 주어진다.

 

이제 두 쓰레기통에서 나온 책들을 분석해 보면, 실험참가자가 문학을 대하는 태도부터 시작해서, 심지어는 성격의 일부까지도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syo 이 책을 쓰레기통에 던지겠다는 이야기는 당연히 아닙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났다는 거죠….

 

생각이 고인다는 표현을 즐겨 쓴다. 생각이 고이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생각이 고여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외로움도 다르지 않다. 외로움이 고이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이 외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외로움이 고일 여유조차 없는 것일지도. 이렇게 생각하면 외로움도 외롭지만은 않다.

_ 김석현, 외로움을 씁니다

 

 

 


67. 왜 칸트인가

김상환 지음 / 21세기북스 / 2019

 

이런저런 시험을 준비하면서 얻은 좋은 지혜 중 하나는 회독수올리는 게 덮어놓고 짱이라는 것이다. 반복해서 읽다 보니, 반 년이나 지난 뒤에 다시 봤는데도 일부분이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두세 번쯤 더 보고 나면 이번 생에 이 책과 다시 마주할 일은 없어지겠구나 싶다.

 

나는 철학 입문 강의에서도 칸트가 발휘하는 놀라운 효력을 일찍부터 실감했다. 칸트의 3대 비판서를 중심에 놓고 가르칠 때 학생들이 가장 열렬한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이론철학, 실천철학, 예술철학을 균형 있게 골고루 소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아마 칸트가 철학의 근대적 정체성을 확립한 철학자라는 점에서, 그러나 무엇보다 인간 사고의 다양한 측위를 분석하면서 근대인에게 생각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친 위대한 스승이라는 점에서 보다 큰 이유를 찾아야 할 것이다.

_ 김상환, 왜 칸트인가

 

 

 

--- 읽는 ---


인기 없는 에세이 / 버트런드 러셀

축복받은 집 / 줌파 라히리

흐름으로 읽는 프랑스 현대사상사 / 오카모토 유이치로

철학의 슬픔 / 문성원

라캉 읽기 / 숀 호머

천사의 음부 / 마누엘 푸익

마키아벨리 / 김경희

그들은 어떻게 세상의 중심이 되었는가 / 김대식

바른 마음 / 조너선 하이트

사회주의 페미니즘 / 낸시 홈스트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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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1-03-08 16: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르크스 좋아해도 유물론자 아니고 관념론자랬는데...틀렸네요. 관능론자네... ㅋㅋㅋㅋㅋㅋㅋ오늘 페이퍼에 나도 똑같이 읽은 거 세 권이나 이써! 이게 뭐라고 뿌듯합니다.ㅎㅎ

syo 2021-03-08 16:11   좋아요 2 | URL
항상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상황에 따라, 야한 건 좋은 거다? ㅋㅋㅋㅋㅋ

2021-03-08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08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08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08 2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1-03-08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뭔가 에로틱하게 애틋한 느낌의 시로군요. 시에도 능력이 있으셨다니... 저는 시인은 일단 무조건 존경하는 관계로 오늘의 syo님을 존경하겠습니다. ^^

syo 2021-03-08 22:47   좋아요 0 | URL
‘시‘까지는 못 되겠으나, 뭔가 야하게 써봐야지 하고 노린 건 사실입니다*^-^*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일단 주신 존경의 유통기한이 1시간 15분 남았으니 감히 그냥 반납 없이 남은 시간 즐기다가 흩어버리기로 할게요 ㅎ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