觀自在菩薩行深般若波羅蜜多時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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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syo가 알라딘에 나타나지 않는 동안 이웃들이 궁금해마지 않았을 알라딘의 반강제 인싸, 동거남 三에 관한 소식이다. 비보悲報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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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三은 이직을 감행했다. 더 작지만 더 비전 있는 회사로 연봉의 손실 없이 옮겨갔고 원하는 직무도 맡을 수 있었으니 노난 셈. 심지어 회사가 집에서 고작 8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여차하면 걸어갈 수도 있지만 여차할 일은 없다. 그것이 三. 그는 하루가 다르게 살이 오르고 있는데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몸이 돼지가 되어서 사람이 나태해지는 것이 아니다. 돼지의 태도가 먼저 갖추어져 있었고, 몸은 그저 태도의 뒤를 따라 돼지까지 온 것이다. syo보다 5센티 크지만 5킬로 가벼웠던 전성기의 三은 이제 없다. 안녕. 물론 그때도 너는 초라했지만 그래도 지금만큼은 아니었으니 빛나는 과거라고 해 두자. 아름다운 때가 있었다고 착각해 보자. 지금 너는 반인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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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밤 9시 30분. 주말 내내 잘 먹고 잘 논 덕에 그나마 사람 꼴을 하고 출근했던 三은 술독에 절여진 비루먹은 짐승이 되어 돌아왔다. 검은 마스크에 하얗게 묻어 있는 ‘그것’을 보았을 때 나는 깜짝 놀랐고, 아침에 내가 빌려주었던 갈색 카디건이 그의 손에 무슨 스포츠신문처럼 구겨진 채 들려 있는 것을 보고 불안한 예감에 전율했으며, 아, 그가 카디건을 바닥에 던졌을 때,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으나, 그런 나를 보는 그의 눈은 이미 초점이 하나도 맞지 않는 상황이었다. 주머니를 뒤지더니 이것저것 막 꺼내서 다 탁자 위에 던져놓는데, 거기에는 84,000원이 찍힌 호프집 영수증도 있어서 syo를 재차 빡치게 했다. 술도 잘 못 마시면서 겁나 호기롭게 주는 대로 다 받아 쳐먹는 이 새끼의 모습과 돈도 잘 못 벌면서 호기롭게 술값을 계산하는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왠지 내 주머니 털린 기분이 든 것. 그러거나 말거나 三은 옷을 다 벗어던지고 팬티만 입은 채 작은 방으로 들어가 새 팬티 하나를 챙겨서 화장실 쪽으로 향하더니 갑자기 우웩질을 시작한다! 이윽고 화장실에서는 되새김질하다 기도에 지푸라기 걸려서 헛기침하는 황소 울음소리 같은 것이 울려펴졌고, 그 소리는 샤워기 물 떨어지는 소리가 시작된 이후에도 적절한 타이밍에 불결한 화음을 이루며 등장하여 관객의 귀를 꾸준히 더럽혔다. 한 20분 지났으려나, 다 죽어가는 얼굴로 나온 녀석은 챙겨간 팬티는 어쨌는지 깨벗고 튀어나와서 젖은 수건으로 검열삭제를 가리는 둥 마는 둥, 막걸리 마신 좀비 걸음걸이로 곧장 큰방으로 들어가 제 자리에 그대로 퍼져 눕는다. 앓는 소리는 끝없어서 가엽다. 와, 내가 저걸 보는구나. 같이 목욕탕 다니던 어린 시절 이후로 한 번도 안 봤던 저걸 오늘 나는 무슨 죄로 봐야만 하는가. 뭐 그런 상념에 젖어 있었지만,
syo가 보기 싫어도 봐야만 했던 것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생각건대, syo가 필력을 총동원하여 그 상황을 묘파한다면, 내 어제 느꼈던 기분의 오 할 정도는 여러분께도 전달할 수 있고, 그것만으로도 여러분이 alt+F4를 누르거나 핸드폰을 집어던지는 건 기정사실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올해의 목표도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므로,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겠다. 그냥 한 마디만, 내가 왜 내 집 안방 바닥을 닦으면서 저 새끼가 저녁에 홍합탕을 먹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데-
20년쯤 전, 대학 OT에서 한 선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누군가 술 취해서 잔다고 방에 들어가면, 3분 뒤에 멀쩡한 사람 하나가 따라 들어가서 그놈을 뒤집어 놓으라고. 천장보고 자다가 풔ᅟᅩᆼㄹ네바ㅓ루피하면 지 ㅇ허ㅔ뎧 ㅑᅟᅢᆼㄹ픠ㅏ에 질식사 하는 수가 생긴다고. 나는 또 한번 저 새끼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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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내내 시간 단위로 화장실로 달려가던 녀석은 아침에도 역시 물 한 잔 마시고 세 잔 치를 게워내더니 회사에 전화해서 못 간다고 하더라. 9시 반에 병원 문 열면 갔다 오라고 당부했지만, 술은 가끔 취해도 게으름에는 늘 취해있는 녀석은 결국 11시 반까지 도합 7번의 잔소리를 더 들은 후에, 이제 진짜 한 번만 또 같은 말 하게 하면 홍두깨로 뚝배기 깰 거니까 내과 가고 싶으면 지금 일어나고 외과 가고 싶으면 계속 누워 있어 보라는 소리까지 듣고서야 침대에서 기어나와서, 주사 한 방 맞고 약 한 봉지 들고 돌아왔다. 그런 이유로 오늘 점심 메뉴는 참치와 새우살을 넣은 죽이었다. 조개 다시다를 넣었더니 삼삼하니 간이 괜찮았다. 녀석은 반 그릇 뜨고는 방에 누워서 웹툰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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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같이 사는 남자의 저딴 드러운 꼴을 보고 그 뒤치다꺼리까지 하는 비극적 운명을 돌파해 이러구러 오늘에 도착한 인격재벌이 서재이웃님들 중에도 반드시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해서, 동병상련의 정이라도 한 번 나누고 싶다. 제가 요즘 이렇게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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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정말이지 오랜만에 책이라는 것을 읽게 되었다. 이런 고난을 헤쳐나갈 방법은 늘 스토아철학이기 때문에. syo가 이해하는 스토아철학이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로부터는 어찌되지 않는 인간이 되는 방법을 공부하는 학문이다. 저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이고, 나는 저것으로부터 내 일상을 흔들림없이 지켜나가야 한다.
저자는 이 책이 목표하는 바를 이렇게 말한다.
이쯤에서 이 책의 목적이자 당신이 얻게 될 가치가 어떤 것인지 정리해 보자. 이는 다음과 같다. 더 명확해지고, 덜 두려워하기. 목적을 더욱 분명히 하고, 덜 무기력해지기. 더 집중하고, 덜 산만해지기. 마음을 더욱 다스리고, 감정적인 반응 덜 하기. 더 감사하고, 덜 분노하기. 바꿀 수 있는 일은 더 열심히 하고, 바꿀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덜 불안해하기. 주인공이 되기 위해 더 노력하고, 피해자가 되는 경우는 더욱 줄이기. 더 용기를 갖고, 덜 후회하기. 더 인정하고, 덜 걱정하기.
한 마디로 이 책은 당신이 고통을 덜 받으면서 더 많은 걸 이루도록 도와줄 것이다.
_ 마르코스 바스케스, 『스토아적 삶의 권유』
아니, 이 책은 고작 그런 걸 도와주려는 게 아니구만, 보니까. 그냥 더 간단하게 이 책이 너를 신으로 만들어준다- 이렇게 쓰지 그러셨어요.
--- 읽는 ---
스토아적 삶의 권유 / 마르코스 바스케스
탁석산의 공부 수업 / 탁석산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시집 / 강혜빈 외
외롭지 않은 말 / 권혁웅
일상생활의 혁명 / 라울 바네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