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용 식탁

 

 

 

어떤 것도 당연하다고 쉽사리 말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매번 끼니를 차려내는 일을 당연히 여길 수 있는 사람이 얻는 것은 그저 한 차림의 밥상에 그치지 않고, 뭐랄까, 어떤 근본적인 것, 그러니까, 당연함을 당연하게 인지하고 수락하는 일에 타인의 강압이 조금도 개입하지 않았을 때, “이건 당연한 거잖아라는 말이 족쇄가 아니라 삶의 굳건한 기반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기도 하다.

 

그런 감각은 다른 누구도 함께하지 않는 밥상에서 오직 나 하나 먹을 나만을 위한 식사를 준비할 때에만 오는 것 같다. 다른 이를 위해 먹을 것을 준비하는 일은 물론 숭고하지만 하나도 당연하지 않기 때문에, 그저 양을 조금 늘리고 수저 하나 더 놓는 정도의 수고가 더해질 뿐이라고 해도 그것은 혼자 먹을 것을 만드는 일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고 완전히 다른 감정이 뒤따른다.

 

또한 그저 허기를 쫓아내려는 의지가 앞설 때나, 누가 해줬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런 사람이 없는 처지에 목숨 부지하려면 어쩔 수 없이 내가 할 수밖에 없어서 할 때, 결국에 차려진 밥상 자체는 같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밥상을 차리는 마음이 다르면 밥상이 차리는 마음도 같을 수 없다. 온전한 혼자의 부엌에는 수많은 들여다봄이 있기 때문이다. 냉장고를 열기 전에 먼저 자신을 열고, 지금 내가 무엇을 먹고 싶은지 들여다보고, 지금 내게 무엇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들여다보고, 지금 내게 무엇을 새로이 시도할 수 있는 의지가 있는지 들여다본다. 그렇게 한소끔 들여다본 다음, 그전의 나와는 살짝 다른, 나를 몇 번 더 들여다본 나, 들여다보는 일에 얼마간 더 익숙해진 내가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 선다. 그런 일을 당연하게 반복하는 사람. 내게 무엇이 필요하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뜻이 있는지를 잠깐이지만 거듭 생각해 보는 연습을 하루에 두어 번은 꼭 해내는 사람. 매번 끼니때마다 조금 더 그런 사람이 되는 일요리는 음식을 만드는 일이겠으나 요리의 반복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게 되는 일그런 일들이 쌓여가고 있으므로 숟가락을 들 때마다 자신이 조금씩 더 어여뻐지는 요즘이다.

 

간결하게 말해 보면 이렇다내가 먹을 음식을 내가 만들 때마다 나는 나에게 조금씩 더 좋은 사람이 된다.

 

 



  혼자 사는 게 안쓰럽다고

  반찬이 강을 건너왔네

  당신 마음이 그릇이 되어

  햇살처럼 강을 건너왔네

 

  김치보다 먼저 익은

  당신 마음

  한 상

 

  마음이 마음을 먹는 저녁

함민복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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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22-04-06 02: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간만에 syo 님 글 반갑습니다! 요 밑에 보니 며칠 전에 오셨군요. 웰컴 백! 재기넘치는 syo님 글 기대하겠습니다.

syo 2022-04-10 16:32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 프님! ㅎㅎ

독서괭 2022-04-06 04: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밥 차리는 일을 항상 하기 싫은 노동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맘을 좀 바꿔먹어봐야겠어요. 물론 나만을 위한 밥상 이야기지만요^^

syo 2022-04-10 16:31   좋아요 1 | URL
저도 차리는 일은 즐거운데 차려주는 일은 엿..... 밥그릇에 엿이나 가득 담아서 먹여주고 싶을 때가 많답니다 ㅋㅋㅋㅋㅋㅋ

scott 2022-04-06 0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쇼님 웰컴백
따스한밥 든든히
건강잘 챙겨요

syo 2022-04-10 16:31   좋아요 1 | URL
스캇님 반갑습니다.
슥 둘러보니 여전하셨네요. ㅎ

유부만두 2022-04-06 0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치 보다 먼저 익는 마음! 먼저 시어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군내가 나서도 안돼고요. 근데, 김치에 마음을 비유하자니 겉절이 마음은 어떤걸까, 궁금해졌어요.

syo 2022-04-10 16:31   좋아요 1 | URL
전 신 김치 좋아하는데 ㅎㅎ 오히려 겉절이에 손이 잘 안 가더라구요.
같이 사는 놈은 또 신 김치 싫어해서 밥하는 제 입장에서는 뭐 니가 겉절이를 좋아해도 밥하는 내가 신김치 내놓고 찌개 끓이고 볶으면 니가 어쩔건데 하는 식이 되어서 이득이 있네요 ㅎ

딴 이야기를 실컷 했군요.

책읽는나무 2022-04-06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데 왜 갑자기 눈물이 핑~ 도는지?
이건 쇼님 뱅기 태워드릴려고 하는 말 아닙니다. 구구절절 왜 눈물이 핑~ 돌았는지 나열하려 했지만, 멀미약 챙겨 드실까봐 참습니다. 진짭니다. 약은 자주 먹어 좋을 게 없어요. 건강한 밥상만 챙겨 드세요^^

syo 2022-04-10 16:28   좋아요 2 | URL
쓰는 저는 즐거운 마음에 썼는데 눈물이 핑 도셨군요....
저는 끼니 챙겨먹는 게 하루에 하는 일 가운데 제일 크고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일 정도로 별일 없는 삶이어서 늘 잘 챙겨먹고 있습니다. 책나무님도 건강한 밥상 화이팅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2-04-07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이 글을 읽고 곱씹다가 오늘 수학 여섯 시간 하고 집에 와서 고생한 저한테 스파게티를 해 주었습니다ㅎㅎ그러니 syo님도 계속 syo님 어여삐 대해 주세요ㅎㅎㅎ

syo 2022-04-10 16:27   좋아요 2 | URL
스파게티 그것이 3일전 일이로군요.
수학 여섯 시간이라면 스파게티 여섯 그릇 드실 자격이 있으시네요!

저만큼 자기 자신을 어여삐 여기는 사람도 흔치 않을 거예요 ㅎㅎㅎ 반님도 힘껏 반님을 어여쁘다 어여쁘다 해주세요. 수학 여섯 시간이라면 어여쁘다 육천 번 드실 자격이 있으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