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소설가 - 오르한 파묵의 하버드대 강연록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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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이탈로 칼비노, 움베르토 에코에 이어 2008년 하버드 대학의 찰스 엘리엇 노턴강좌에는 오르한 파묵이 초청받았다. 이 책은 6차례의 파묵의 강연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1. 소설을 읽을 때 우리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소설을 읽는 것은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소설을 쓰거나 읽을 때 우리는 소설의 인위적인 면을 인식하지 못하거나(naive), 정반대로 인식하기도 한다(sentimentalisch)

 

파묵은 실러의 <소박한 문학과 성찰적인 문학에서>에서 이러한 개념을 빌려온다. 소박한 시인은 말이, 단어가, 시가 전체 풍경을 규명하리라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반면 성찰적인 시인은 단어들이 실재를 규명할지, 실재에 도달할지, 말들이 그가 원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지 등등의 문제로 불안해한다. 소박한 시인은 우뇌적 시인으로 성찰적인 시인은 좌뇌적 시인이라 불러도 될까. 파묵에 의하면 괴테는 소박한 작가이고 실러는 성찰적 작가다.

 

파묵은 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작업 가운데 중요한 9가지 사항을 언급하는데 그 중에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소설의 중심부가 아닐까.

 

포스터는 <소설의 이해>에서 소설의 가치를 결정하는 마지막 기준은 우리가 그것에 느끼는 애착이라고 말한다. 파묵에게 있어 소설의 가치는 우리로 하여금 소박하게 세계에 투사할 수 있는 중심부를 찾아 나서게 하는 힘에 있다. 이러한 파묵의 의견에 가장 적합한 소설의 형태는 교양소설이다. 플로베르의 <감정 교육>, 토마스 만의 <마의 산> 등등.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는 소설의 중심부가 주는 기본적인 지식, 그러니까 세계가 어떤 곳이고 삶이 어떤 것이라는 지식을, 단지 중심부뿐만 아니라, 소설의 모든 곳에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좋은 소설이란 모든 문장이 우리에게 진정 위대한 지식을, 이 세상에서 존재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이며 감각의 본질이란 어떤 것인지를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여행이, 그러니까 도시에서, 거리에서, 집에서, 방에서 자연에서 지나가는 우리의 인생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불확실한, 감춰진 의미를 찾는 과정이라는 것을 소설에서 배웠습니다.

 

2. 파묵씨 당신은 이러한 것들을 경험했나요?

파묵은 두 가지 부류의 독자를 경계하라고 말한다. 우선 전적으로 소박한 독자들이다. 옆에서 아무리 얘기해도 이들은 텍스트를 작가의 자서전 혹은 경험담이라고만 생각한다. 두 번째로 전적으로 성찰적인 독자들이 있다. 이들은 모든 텍스트가 철저한 계산 아래 만들어진 허구라고 믿는다. 분명 진실은 이 두 부류 사이에 있을 것이다.

 

3. 소설의 캐릭터, 플롯, 시간

 

소설예술의 본질적인 목표가 삶을 정확하게 그려 내는 것이라고 믿는 파묵은 캐릭터는 없다고 주장한다.

소설 예술에서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소설 주인공들의 개성이나 캐릭터가 아니라, 소설 속 세계가 그들의 눈에 어떻게 보이냐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이해하고 도덕적 판단을 내리려면, 우선 세계가 그 사람의 관점에서 어떻게 보이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지식뿐만 아니라 상상력도 필요합니다. 소설가로서 나의 주된 임무는 모든 등장인물과 되도록 일일이 동일화되고, 그들 눈에 보이는 것이 내 소설의 세계라는 것을 절대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의 캐릭터가 아니라 그가 세계의 여러 형태에 보이는 반응입니다. 세계의 모든 색깔, 모든 사건, 모든 과일과 꽃, 그러니까 감각이 가져다준 모든 것에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가 중요합니다.

 

파묵에 의하면 플롯이란 그것을 서사 구조, 사건의 연속, 이야기라고 부르던 우리가 설명하고 서술하고자 하는 지점들을 연결하는 하나의 선일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나뉘거나 다른 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원자들이 있듯, 나뉠 수 없는 순간들이 있고, 이 수많은 순간을 연결한 일직선을 시간이라고 한다. 플롯 역시 크고 작은 나뉠 수 없는 단위를 합친 선이다.

 

소설의 시간은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달리 객관적이지도 않고 일직선도 아니다.

 

소설을 쓸 때 주인공의 캐릭터를 창조하고 구성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고, 다른 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현실 삶의 세부사항들을 사건의 구조에 결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에게 소설 쓰기는, 풍경 속에서(세계에서) 소설 캐릭터들의 심리 상태, 감정, 생각 등을 포착해 내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내가 앞서 언급한 소설을 구성하는 그 수천 개의 작은 점들을 일직선이 아니라, 지그재그를 그리며 연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항상 느낍니다.

 

4. 단어, 그림, 사물

 

파묵에 따르면 단어적인 작가들이 있고 시각적인 작가들이 있다. 톨스토이의 세계가 감각적으로 배치된 사물들로 들끓고 있다면 도스토예프스키의 방은 텅 비어있다. 호메로스가 시각적이라면 피르다우시의 <샤나메>는 단어적이다. 파묵에 따르면 소설은 기본적으로 시각적 문학이다. 소설을 쓰기 전에 그림을 그렸던 파묵으로서는 당연한 귀결인 듯 싶다. 파묵에게 소설을 쓴다는 것은 단어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플로베르가 자신이 글을 쓸 때 모색했다고 말했던 가장 적절한 단어(le mot juste)’는 내가 상상했던 이미지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을 단어입니다. 소설가는 상상했던 것을 가장 잘 표현할 단어를 찾는 데 그치지 않고,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을 것을 상상하는 법도 배웁니다. 소설가는 눈앞에 떠올린 이미지가 오로지 단어로 옮겨졌을 때만 의미가 있으며, 단어로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상상하는 법을 배울수록 머릿속에 있는 시각적, 단어적 사고의 중심부들이 서로 가까워진다는 것을 느낍니다.

 

T.S 앨리엇은 평론을 통해 처음으로 객관적 상관물이라는 표현을 썼다. 객관적 상관물이란 예술가가 어떤 예술 또는 문학 작품에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제시하는, 그 감정과 객관적으로 연관되는 일련의 사물, 어떤 정황, 사건의 연쇄를 뜻한다. 왜 소설 속에서 사물들은 중요한가.

 

프랑스 소설을 한번 보도록 합시다. 발자크 작품에서 주인공의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 보인 물건은, 플로베르 작품에 와서는 개인의 취향과 캐릭터를 제시하며, 졸라에 이르러서는 저자의 객관성을 보여 주기 위한 도구로 쓰입니다. 같은 물건들이 프루스트의 작품에서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힘으로, 사르트르의 작품에서는 존재의 불안을 나타내는 징후로, 로브그리예 작품에서는 인간과 단절된 비밀스러운 독립체로 변합니다. 조르주 페렉의 작품에서 물건들은 리스트에서 상표와 함께 열거될 경우 시적인 면이 보일 수 있는 비밀스러운 것들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사물들은 소설 속 수없이 많은 짧은 순간들의 없어서는 안 될 일부일 뿐만 아니라, 이 순간들의 상징이자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5. 박물관과 소설

 

알려져있다시피 파묵은 <순수박물관>이란 소설을 썼다. 그는 박물관과 소설이라는 주제로 세 가지를 언급하는데 세 가지 주제는 서로 맞물려 있고, 그 공통점은 자긍심이다.

 

1. 자존감.

 

박물관이 사물을 보존하는 것처럼, 소설은 인간의 평범한 생각과 이 주제에서 저 주제로 건너뛰곤 하는 이성의 불연속성을 구어로 표현함으로써 언어의 묘미와 색과 냄새를 보존한다. 소설은 단어, 표현, 관용구만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일상대화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도 기록한다. 유르스나르의 주장에 따르면, 평범한 일상 대화는 소설 이전에는 기록되지 않았다. 박물관적인 소설이 있다면 그것은 생각을 일깨우기 보다는 잊혀지는 것에 저항하는 중점을 둔다. 박물관적인 소설은 역사가 단지 공허하고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무엇인가는 간직될 거라는 느낌과 자긍심을 지닌다.

 

2. 차별화되는 느낌

 

우리가 소설을 읽는 것은 결국 다른 사람들과의 차별성을 드러내고 싶기 때문이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독한다면 얼마나 차별스러운가. 박물관의 관람객 역시 비슷한 심리를 공유한다.

 

3. 정치

 

파묵에 따르면 박물관과 소설은 누군가를 대변했다가 자칫 정치적 책임을 지게 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서로 닮았다. 아마도 서구 국가의 작가나 독자들은 언뜻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한밤의 아이들>을 쓰고 암살 명령이 떨어진 살만 루시디를 떠올리면 금세 이해가 될 것이다.

 

6. 중심부

 

중심부의 의미가 모호하다면 보르헤스가 말한 <모비딕>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처음에 독자는 소설의 주제가 고래잡이들의 고단한 삶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나중에는 고래를 추적해 파멸시키려는 에이햅 선장의 광기가 주제라고 생각한다그러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이야기는 방대해지면서 어떤 우주의 차원에 이르게 된다.”

 

도스또예프스키는 <악령>을 집필한 1년 후 어떤 영감에 의해 처음부터 다시 쓰기로 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도스또예프스키는 240페이지 중에 고작 40페이지만을 다시 썼을 뿐이었다. 바뀐 것은 중심부만이었다. 한편으론 중심부가 너무 명확히 드러나면 작품이 지루해지기 십상이다.

 

나에게 소설의 중심부는 어떤 종국에 우리에게 삶에 대해 가르쳐 주고, 느끼게 해주고, 암시해 주고, 보여 주고, 경험하게 한 심오한 어떤 것입니다. 소설가가 삶에 관한 지식이나 경험들을 소설 밖에서 단어들로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면, 굳이 소설을 쓰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도 소설을 읽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순문학 소설에서 중심부가 무엇인지 쉽게 정의내릴 수 없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마치 삶이 그러하듯이 순문학 소설 역시 쉽게 의미를 찾을 수 없고, 다른 것으로 쉽게 환원될 수 없음을 상기해야만 합니다.

 

현대의 세속 독자들은 이런 노력이 부질없음을 내심 알고 있으면서도 읽고 있는 소설의 중심부를 찾으며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자신에게 묻지 않고는 견디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찾는 중심부는 바로 인생의 중심부이자 세상의 중심부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소설 읽기란 세상에 중심부가 있다는 것을 믿는 노력입니다. 위대한 순문학 소설들, 예를 들면 <안나 카레니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의 산>, <파도>같은 책들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작품입니다. 세상에 중심부와 의미가 있다는 희망과 생생한 환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상은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유지되며 우리에게 행복감을 안겨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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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2-19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중에 높임말 문체로 이루어진 내용은 책에 나오는 문장인거죠? 북플은 글의 문단 간격이 통일되어 있어서 불편해요. 그래서 컴퓨터로 접속해서 문단 구분을 확인하면서 다시 읽었습니다.


시이소오 2016-02-19 19:05   좋아요 0 | URL
이 부분을 좀 해결해야겠네요. 밑줄을 근다거나. 높임말은 전부 파묵의 문장이 맞습니다 ^^

cyrus 2016-02-19 19:31   좋아요 0 | URL
알라딘 서재에서 작성한 글을 북플에서 확인하면 아무리 열심히 밑줄 긋어도 줄이 나타나지 않으니 힘이 빠집니다. ^^;;

시이소오 2016-02-19 19:33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되도록이면 박스에 넣어야 겠어요 ~~
 
마션 -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
앤디 위어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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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션은 이상하게도 리뷰가 넘쳐난다.

고로 나는 짧게 써야겠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이 천재적인 작품을 화성판 삼시세끼라고 표현한 사람들의 상상력의 빈곤함이란!

웃자고 한 얘기겠지만 슬프다.

살기위해 먹는 것과 먹기 위해 사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거늘.

 

‘21세기 판 로빈슨 크루소가 좀 더 적확하다.

 

이 작품을 쓴 앤디 위어는 천재가 아닐까. 화성판 생존기임에도 영화나 소설이나 마치 누군가의 회고록을 보는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그만큼 작가가 구축한 작품의 리얼리티가 견고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만족스러운 면이 없진 않다.

 

주인공 마크 와트니가 왜 저렇게 아등바등 살려 하는지 납득이 안 갔다. 지구와 연락이 된 이후에는 그나마 이해가 된다. 그래, 살아 돌아가면 그는 영웅이 될테니까.

 

영화 <그래비티>의 산드라 블록은 꼭 살아야만 할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마크 와트니는 반드시 돌아가야 할이유가 없었다.

 

화성, 절대적인 고립무원의 상황임에도 이 소설엔 삶에 대한, 죽음에 대한 아무런 관점이 없다. 중력이 느껴지지 않는 소설이라니! 영화 <캐스트어웨이>의 배구공 윌슨에 대응할 만한 것도 없다. 와트니 주변의 모든 것은 도구에 불과하다.


그래서일까. 마치 게임을 보는듯한 느낌은.

 

한없이 가볍다. 그 가벼움을 선호하는 독자도 있겠지만 내 취향은 아닌 듯.

천재의 작품이긴 하나 감동이 없다.

밑줄 그을 문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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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오징어 2016-02-19 1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용이 책 무게에 비해 넘 가볍드라구요 ㅎ

시이소오 2016-02-19 11:49   좋아요 1 | URL
그렇죠? 날아가겠더라구여 ~~

transient-guest 2016-02-19 1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걸 미국적인 유머로 봤습니다 절체절명의 상황이지만 웃게 만드는 그런..ㅎ

시이소오 2016-02-19 12:02   좋아요 1 | URL
그럴수도 있겠네요.
미국인들이란^^

마녀고양이 2016-02-19 12: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시이소오님....
제가 어제 밤에 이 책을 들고 손에서 놓지 못해서 새벽 3시까지 읽었답니다.
뒤에 삼분의 일 정도 남았는데, 오늘 이 글을 보니 엄청 반가운거예요.

저 역시 저자가 천재인가 보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다만 저는 뭐랄까, 위대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흐흐, 저도 다 읽고 짧은 리뷰를 남기려구요.

시이소오 2016-02-19 12:39   좋아요 1 | URL
리뷰 기다릴께요^^

서니데이 2016-02-19 1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님, 좋은하루되세요.^^

시이소오 2016-02-19 13:07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도 활기찬 하루 되시길^^

물고기자리 2016-02-19 13: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중력이 느껴지지 않는 소설이란 말에 확 공감이 가네요ㅎ 영화론 괜찮지 않을까도 싶지만 소설로는 제 취향이 아니더라고요..ㅜㅜ

시이소오 2016-02-19 13:07   좋아요 2 | URL
그쵸? 영화론 나쁘지 않았는데요 ^^;;

꿈의달 2016-02-19 1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읽다가 너무 궁금해서 영화를 봐 버렸어요. 영화는 재미있더라구요. 끝까지 읽기는 해야 하는데 시이소오님께서 올려주신글 보고 덜컥 사버린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 미루고 있네요^^;;

시이소오 2016-02-19 16:20   좋아요 1 | URL
12권 짜리를, 대단하세요^^. 이 글을 더봄출판사 김덕문 사장님이 보셔야하는데 ㅋ

alummii 2016-02-19 16: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앞부분은 영화보기 전에 읽어야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시이소오 2016-02-19 16:50   좋아요 1 | URL
저는 영화보고 책을 읽었는데 책부터 읽었으면 더 재밌었을 것 같아요~~

깊이에의강요 2016-02-19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비티는 아주 재밌게 보았는데,
마션은 책도 영화도...아직입니다.
언제들 그렇게 책을 읽으시는지...
대단하시다는 말밖에...

시이소오 2016-02-19 16:52   좋아요 0 | URL
저 아무것도 안해요. 책만 봐요. 일하시면서 독서하시는 분들, 존경스러워요 ^^

깊이에의강요 2016-02-19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꿈에 그리던 삶인데요^^



시이소오 2016-02-19 17:11   좋아요 0 | URL
평생 읽기만 하면 좋을텐데. 뭔가 현실적인 고민을 해야해요. `다음달 월세는 어쩌란말이냐....`

깊이에의강요 2016-02-19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백하자면....
제 꿈은 무위도식 입니다 ㅋㅋ

시이소오 2016-02-19 17:20   좋아요 0 | URL
와우, 저랑 똑같네요 ^^
 
이방인 - 개정판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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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는 별 다섯개, 역자가 별 하나 삼켜버려 네 개가 됐네요. 


 

예전에 보들레르로 논문을 쓴 적이 있었다. 불어 실력이 형편없어, 원문을 읽고 논문을 제출하자니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아 번역본을 토대로 논문 준비를 하기로 마음먹고는 <악의 꽃>을 먼저 읽었다.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서 다른 번역본을 찾아 읽었다. 그래도 이해가 안 가서 또 다른 번역본을 읽었지만 번역본들마다 의미가 다르니 점점 더 수렁 속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사전을 옆에 두고 단어 하나 하나를 찾아가며 원문을 읽었더니 그제서야 시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악의 꽃>은 김붕구, 김인환, 박은수, 윤영애 총 네 가지 번역본이 있지만, 이 중에 단 한편의 시라도 제대로 번역된 <악의 꽃>은 감히 말하지만 단 한 권도 없다. (최근에 나온 악의 꽃은 아직 확인 못했네요.) 

 

이 책처럼 작심하고 번역본과 원문을 대조해 읽다보면 숱한 오역들과 씨름할 수밖에 없는 걸까? 김화영 번역본의 오역들에 대한 번역자의 지적에 공감하고, 그보다도 번역에 대한 그의 철두철미한 태도에 우선은 존경을 표한다. 분명 여러 부분에서 오역들을 바로 잡아 준 번역가의 노고에 감사할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껄끄러운 부분들이 없지 않다. 기회가 된다면 전문을 다 비교해 보고도 싶지만 몇 가지만 지적하겠다.

 

Des odeurs de nuit, de terre et de sel rafraîchissaient mes tempes. La merveilleuse paix de cet été endormi entrait en moi comme une marée. À ce moment, et à la limite de la nuit, des sirènes ont hurlé. Elles annonçaient des départs pour un monde qui maintenant m'était à jamais indifférent. Pour la première fois depuis bien longtemps, j'ai pensé à maman.

 

그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것은 이제 나와는 영원히 관계가 없어진 한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김화영 역>

 

그때, 한밤의 경계선에서 사이렌이 울부짖었다. 그 소리는, 이제 영원히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이정서 역>

 

굳이 두 번역을 비교하자면 김화영 역의 뱃고동소리가 어울린다. 나라면 des sirènes세이렌들로 번역했을 것이다. 싸이렌들이 어떻게 울부짖을 수 있단 말인가?

 

세이렌은 이탈리아 반도 서부 해안의 절벽과 바위로 둘러싸인 사이레눔 스코풀리(Sirenum Scopuli)라는 섬에 사는 바다의 님프들이다. 하신 아켈레오스가 무사 멜포메네나 스테로페, 혹은 테르프시코라에게서 낳은 딸들로, 모두 3(피시오네·아글라오페·텔크시에페이아 혹은 파르테노페·레우코시아·리기아) 혹은 4(텔레스·라이드네·몰페·텔크시오페)이라고 한다.

 

세이렌은 여성의 유혹 내지는 속임수를 상징하는데, 그 이유는 섬에 선박이 가까이 다가오면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선원들을 유혹하여 바다에 뛰어드는 충동질을 일으켜 죽게 만드는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녀들이 특히 암초와 여울목이 많은 곳에서 거주하는 이유도 노래로 유인한 선박들이 난파당하기 쉬운 장소이기 때문이다.

 

일부러 번역가가 인용한 부분의 앞 뒤 원문을 더 실었다. ‘소금 냄새밀물이란 표현에서 바다를 연상할 수 있다. 뫼르소는 웽웽거리는 사이렌 소리를 듣고 엄마 생각을 했을까? 바다의 님프들인 세이렌들의 노래 소리 때문에 바다와 발음이 똑같은 어머니를 연상한 것이 아닐까?

 

여기서 세이렌은 또한 다가올 죽음을 상기시킨다. 그러므로 두 번역자의 뒷 문장들도 다시 번역해야 된다. ‘한 세계로의 출발은 무얼 뜻할까? 당연히 다가올 죽음의 세계다. 그 죽음의 세계는 나와 관련이 없는 세계가 아니라, 내가 살아있는 현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세계. 해석하자면 아래와 같다.

 

그때 밤의 저 끝에서 세이렌들이 노래했다. 그것은 현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Pour la première fois depuis bien longtemps, j'ai pensé à Marie.

 

이정서는 김화영의 오래간만에 처음으로라는 번역이 오역이고 아주 오랜만에 다시가 올바른 번역이라고 말한다. 처음인데 어찌 오래간만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아주 오랜만에 다시가 맞을까?

 

안타깝지만 둘 다 틀렸다. ‘처음으로 오랫동안의 뜻이다. 뫼르소는 마리에 대해, 엄마에 대해 물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전부 짧은 단상들 뿐이었다. 뫼르소는 감옥에 들어와서야 엄마나 마리에 대해 처음으로 오랫동안깊게 생각했다. 그 이전까지 그는 엄마의 , 마리의 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단지 자신의 욕망, 자신의 필요에 따라 타인을 생각했을 뿐이다.

 

전반적으로 이 정서 번역의 장점은 서술 부분과 묘사 부분이 매끄럽다는 것일 텐데, 대화로만 가면 이상해진다.

 

이정서는 뫼르소의 어머니 죽음 이후, 뫼르소의 단골 식당 가게 주인인 셀레스트의 대사 어머니란 단 한 분밖에 없는데의 김화영 번역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는 누구에게나 어머니는 한 분 뿐인 게지.”라고 번역한다. 분명 좀 더 원문에 가까운 적확한 역은 이정서 역이다. 그러나, 저렇게 말하는 한국 사람이 있나? 번역체 문장을 못 참아 하는 개인적 취향 탓일까? 나만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는 걸까?

 

......그런 게지.

김화영 역에 누구에게나만 삽입하면 끝날 일인데, 김화영 역을 피해가려다 보니 다소 무리수에 가까운 번역들이 흘러넘친다.

 

아마도 이러한 무리수 번역의 결정판이 ‘Je le descends?’ ‘Je le descendrai’일 것이다.

김화영의 해치워 버릴까?”, “내가 쏘아 버릴 테니까의 번역이 일관성이 없다며 이정서는 저 녀석 맛을 봬줄까?”, “ 그때 맛을 봬주지.”, “내가 맛을 봬줄게로 번역했다.

누가 봐도 김화영이 역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이정서 역처럼 말하는 사람이 요즘 있나. 이거 나만 웃긴 건가?

 

......그런 게지.

 

 

이런 식으로 쓴다면 번역가가 했듯 나 역시 매일 매일 블로깅을 해야 할 지경이니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지적하고 싶다.

 

이제 우리가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또 하나 있다. 지금까지 <이방인>을 읽은 대부분의 독자들은 뫼르소가 살인을 한 이유가 태양 때문이었다고 인식하고 있다. 사실 그것은 잘못된 번역이 만들어 낸 조작된 이미지다. 앞의 번역이 전부 잘못되어 있으니 이해를 잘 하지 못한 상태에서, 지금 뫼르소가 그것은 태양 때문이었다고 하는 저 말만 듣고 만들어 낸 오해였던 것이다. 기실, 저 문장에서 방점은 태양 때문이 아니라, ‘두서없이’ ‘터무니없는 줄 알면서도에 찍히는 것이다. 앞서 밝힌 바대로 뫼르소가 총을 쏜 것은 햇빛에 반사되어 눈을 찌르는 위협적인 칼날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보다시피 지금 뫼르소가 총을 쏜 가장 큰 이유는 눈을 찌르는칼날 때문인 것이다. 그 번쩍이는 칼을 든 사람은 앞에서 친구(레몽)를 잔인하게 찔렀던 바로 그 위험한 사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 바로 정당방위인 것이다.

 

......정당 방위로서의 첫 발, 그리고 약간의 텀을 두고 발사되는 네 발의 총알,.......정당한 이유로서의 한 발과, 위장된 도덕, 종교, 권위,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를 향한 무의식적인 발사.

 

 

이정서의 주장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태양 때문이 아니라 정당방위였다는 것이고, 김화영의 오역 때문에 독자인 우리가 뫼르소의 살인의 동기를 태양 때문에라고 오해했다는 것이다.

 

 

어안이 벙벙해졌다. 왜 저러는 걸까? 애초부터 전략적으로 노이즈 마케팅을 기획한 걸까? 물론 정당방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자면 첫 발이 정당방위였는지 아니였는지 우리로선 알 수 없다. 아랍인과 뫼르소와의 거리가 어느 정도였는지 작가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뫼르소의 눈을 파고든 칼날에 반사된 빛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를 촉발했다는 것이다.

 

왜 뫼르소는 아랍인의 몸에 네 발의 탄환을 더 쏘았을까?

번역에 상관없이 뫼르소의 주장대로

태양 때문이다.

 

태양 때문인지 번역가는 차분히 앉아서 Pour la première fois depuis bien longtemps’ 생각해보길 바란다.

번역가는 첫 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오늘 엄마가 돌아가셨다.’로 바꿀까 하다 고민 끝에 그대로 두었다고 하는데 정말 잘한 일이다. 만약 그렇게 바꿨다면 나는 이 책을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직 이해를 못한 것 같은데 왜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번역해야 했는지 이것 역시도 처음으로 오랫동안다시 한 번 고민해 보길 바란다.

 

 

메모한 문장

 

p168. 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제던가, 모르겠다. (내 멋대로 해석)

 

p87. 나는 땀과 햇볕을 떨쳐 버렸다. 나는 내가 한낮의 균형을, 스스로 행복감을 느꼈던 해변의 그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려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는 미동도 않는 몸뚱이에 네 발을 더 쏘아 댔고 탄환은 흔적도 없이 박혀 버렸다. 그것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같은 것이었다.

 

 

p99. 하느님을 믿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는 분개하며 앉았다.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으며, 심지어 그분을 외면하는 사람들조차 그렇다고. 그것이 그의 신념으로, 만약 그것을 조금이라도 의심하려든다면 자신의 삶이 무의미해진다고 그가 말했다. “당신은 내 삶이 무의미해지길 바랍니까?” 하고 그가 소리쳤다. 내 생각에, 그건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라 그에게 그렇게 말했다.

 

p154. “그래, 그렇다면 난 죽는 거지.” 다른 사람보다 더 빨리. 그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가치 있게 살아가는 인생이라는 게 별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본질적으로, 서른이나 일흔이나 죽는다는 것에는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나도 모르지 않았다. 자연적으로, 어떤 경우에라도 또 다른 남녀들이 살아갈 테고, 수천 년간 그럴 테니까. 요컨대 그보다 명백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죽게 될 것은 언제나 나였다.

 

p161. “ 이 모든 돌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땀을 흘리고 있네. 나는 그것을 안다네. 나는 고통 없이 그것들을 본 적이 결코 없네. 그러나 나는 가슴 깊이 아네. 자네들 중 가장 비참했던 자도 그것들의 어둠으로부터 드러난 하느님의 얼굴을 보았다는 것을. 그것이 자네가 보기를 요구받게 될 얼굴일세.”

 

나는 조금 기운을 차렸다. 나는 수개월간 이 벽의 돌들을 바라봐 왔다고 말했다. 이 세상에 내가 이것보다 더 잘 아는 것도, 더 잘 아는 사람도 없었다. 아마도, 아주 오래전에, 나는 거기에서 어떤 얼굴을 찾았었다. 그러나 그 얼굴은 태양의 빛깔과 욕망의 불꽃을 띠고 있었다. 그건 마리의 얼굴이었다. 나는 그것을 찾아보았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이제 그것은 끝났다. 그리고 나는 어쨌든, 땀 흘리는 돌에서 무언가 솟아오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p163. 그는 너무나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확실성은 여자 머리카락 한 올의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그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기 때문에 살아 있다고조차 확신할 수 없는 것이었다. 반면에 나는 마치 빈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나에 대해, 모든 것에 대해, 그가 확신하는 것 이상으로, 나의 삶을, 다가올 이 죽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다. 내겐 그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그 진실이 나를 꼭 움켜쥔 만큼 그것을 꼭 움켜쥐고 있었다.

 

나는 옳았고, 여전히 옳았으며, 항상 옳았다. 나는 이런 식으로 살아왔지만 다른 식으로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했고 저것은 하지 않았다. 나는 어떤 건 하지 않았으나 또 다른 건 했다. 그래서? 나는 마치 이 모든 시간 동안 이 순간을, 이 이른 새벽을, 나 자신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기다려 왔던 것 같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고, 나는 그 이유를 잘 알겠다.

 

p164 내가 살았던 부조리한 삶 내내, 내 미래의 저 깊은 곳에서부터, 아직 오지 않은 수년의 시간을 건너서 어두운 바람이 내게로 거슬러 왔다. 그 바람은 이 여정에서, 내가 살았던 시간보다 더 사실적일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당시 내게 주어졌던 모든 것들을 그만그만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다른 이의 죽음이나 어머니의 사랑이 내게 뭐가 중요하며, 그의 하느님이나 우리가 택하는 삶, 우리가 정하는 운명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p166. 누구도, 그 누구도 그녀의 죽음에 울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준비가 되었음을 느꼈다. 마치 이 거대한 분노가 내게서 악을 쫓아내고, 희망을 비워 낸 것처럼, 처음으로 신호와 별들로 가득한 그 밤 앞에서, 나는 세계의 부드러운 무관심에 스스로를 열었다.

 

이 세계가 나와 너무도 닮았다는 것을, 마침내 한 형제라는 것을 실감했기에, 나는 행복했고,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위하여, 내가 혼자임이 덜 느껴질 수 있도록, 내게 남은 유일한 소원은 나의 사형 집행에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2014. 9.19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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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강요 2016-02-18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본을 읽다가
집어던지고
아~이 언어부터 해야 할까? 진심 고민한적이...ㅎ

시이소오 2016-02-18 14:47   좋아요 0 | URL
오에 겐자부로의 방법이 좋을것 같아요. 일단 번역본 읽고 의심가는 부분을 체크해놨다가 원문으로 읽는데요. 구럼 훨씬 빨리 읽을 수 있다고 하네요^^

cyrus 2016-02-18 15: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014년에는 이 책 한 권 때문에 난리였죠. 알라딘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불문학 전공자가 아니라서 누구의 손을 들어야할지 몰랐지만, 아무튼 논쟁이 치열했습니다.

시이소오 2016-02-18 15:03   좋아요 1 | URL
아, 그랬었군요. 2014년에 알라딘을 왔었으면 재밌었겠네요. ^^

깜장앨리스 2016-02-18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본을 읽을 때면 항상 의문이 들어요. 이 대목! 뭔가 이상한데? 원문을 읽고 싶다....특히나 고전은 더욱 그런 욕망에 시달리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고전은 고전인 게 엉망으로 번역해도 고전은 그 힘이 있어 감동을 주더라고요.
그래도 제대로 된 번역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저도 고등학생 때 이방인 처음 읽고 뫼르소는 사이코인가...왜 햇빛 때문에?? 이상한 놈이다. 생각했던 적이 있었죠. 이후엔 몇 번이나 다른 번역본들을 읽었었는데....
이 책 나올 때 저도 참으로 반겼었어요. 근데 시이소오님처럼 저도 중간중간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대목들이 눈에 띄더라고요. ㅠㅜ

시이소오 2016-02-18 15:07   좋아요 0 | URL
작년 말에 김화영 교수님 번역본이 새로 나왔다니 궁금하네요^^

프레이야 2016-02-18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작년인가 ‥이 책 번역문제가 대두되었을 때 다시 찾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불문학전공이신가 봐요.

시이소오 2016-02-18 17:40   좋아요 0 | URL
전공이라고 하기엔.....부끄럽네요^^;;

짜라투스트라 2016-02-18 2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논란이 많은 번역이었죠.ㅎㅎㅎ 아무리 번역이 마음에 안들어도 다른 번역자를 짓밟는 느낌이 들어서 저는 개인적으로 별로였습니다. 번역에 과연 정답이 있는지도 의문스럽구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태양 때문에`가 더 괜찮은 번역이라는 생각에 공감합니다.

시이소오 2016-02-18 20:17   좋아요 0 | URL
저도 역자가 좀 밉더라구요 ^^;; 말씀하신대로 번역에 오답은 있어도 정답은 없는것 같아요^^

moonnight 2016-02-18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보들레르로 논문을.이라니요.@_@; 이과전공자로서 무한존경@_@;;; 잘 읽었습니다^^

시이소오 2016-02-18 21:39   좋아요 0 | URL
문과전공자로서 이과가 더 존경스럽습니다^^ 그리고 제 논문은 정말 허접했어요. 불 태워야 되는데 ^^;;

오늘도 맑음 2016-02-19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을 그것도 이렇게나 멋지게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게 너무 멋집니다~!!

시이소오 2016-02-19 00:2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2016-02-19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뫼르소의 살인행위를 `정당방위`로 해석한 새움 본의 번역은 여러모로 놀랍네요. 이방인을 거듭해 읽다 보면 개인적으로 전보다 더욱 마음에 걸리고 납득하기가 어려워지는 부분이 바로 뫼르소의 `살해동기`이고 그가 실제로 살인자라는 사실인데요. `이방인`의 카뮈에서 `페스트`의 카뮈로의 이행이랄까 카뮈의 양면성이랄까 하는 부분의 흥미로움도 있고.

뫼르소의 아랍인(아랍인이 맞던가요? 기억이 가물가물...) 살인에 관해 아랍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깔려 있다는 시각에서 해석한 소설이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정작 소설과 작가의 이름을 잊어버렸네요. 혹시 알고 계시다면 알려주세요. ^^

시이소오 2016-02-19 12:42   좋아요 0 | URL
저도 잘 모르겠네요. 죄송합니다^^;; 애초에 까뮈를 잘 몰라요 ^^:;

2016-02-19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뇨. 죄송하실 건 전혀... ^^;

시이소오 2016-02-19 18:25   좋아요 1 | URL
혹시라도 알게되면 댓글달러 방문할께요^^
 
영이 02 - 김사과 소설집
김사과 지음 / 창비 / 2010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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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를 듣지 않는 놈들은 다 죽여버리겠다.

왜냐하면 내가 말하고 있으니까.

 

무서워서 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작가가 말한다고 독자가 꼭 읽어야 하는 것도 아닌.....이러다 칼침 맞을라.

혹은 영이의 아빠처럼 삽으로?

 

김영찬 평론가는 김사과를 혹은 그의 소설을 앙팡 스키조(enfant schizo)’로 부르자고 제안한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미친년이다.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미친 아해’.

 

표제작, <02> 혹은 <영이>를 비롯한 모든 단편에서 폭력과 분노, 분열을 목도할 수 있다.

분열은 영혼을 넘어 육체로까지 전이된다. (개가 되는 영이의 아빠, <영이> 돼지가 되는 누나,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참으로 신기한 날이다>)

카프카적인 변신.

혹은 육체에서 영혼으로.

한마디로 분열은 영혼을 잠식한다.

아니다. 이제는 잠식할만한 영혼조차 남지 않았다.

 

단편집을 읽으면서 이상을 떠올렸다. 이상은 미친놈문학의 원조 아니던가.

김사과는 21세기 작가답게 좀 더 더 더 더 더 미쳤다.

(리뷰 쓰는 나도 미쳐가는 듯)

 

왜들 이리 미치는 걸까?

작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미치는 거 나쁜 거에요?”

 

내가 미치게 그냥 놔둬. 내가 죽게 내버려둬. 오늘을 견디면 내일이 올 뿐인데.

또 같은 날이 올 뿐인데. 차라리 미쳐버리는 게 낫지 않겠니? <영이>

 

텔레비전에 비치는 세상은 환영이다. 아니, 개인을 둘러싼 모든 것이 환영이고 거짓이다

브랜드 아파트의 네온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환각이고 망상이라는 걸 인식하기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시스템하의 헬조선. 아무런 희망도 동정도 없는 세상.

미치는 게 낫지 않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김영찬의 말처럼 김사과 소설의 분열증이 구원의 제스처로 반전되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시스템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의 표출마저도 값진 현실이 아닌가.

김사과는 분노하는 와중에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웃으면 안 되는데 몇 번이나 웃었던지.



그녀 소설에 유머가 없었더라면 정말 미쳐버렸을지도.

특이한 재능이다.

 

 

밑줄 그은 문장

 

p25. 영이는 길고 길게 죽고 싶다고 느낀다. 그러니까,

(11pt, 명조체, 오퍼씨티 25% 정도의 비명) 제발 죽여주세요.

 

p32. 개새끼가 정말로 개가 됐네!

 

p41. 난 비누를 노려보았다. 꽤 오랫동안. 그러다 갑자기 그걸 깨물어먹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정신을 차리자 혓바닥엔 온통 비누조각이 달라붙어 구역질나는 향을 풍기고 있었고 비누는 사라졌다. 맙소사. 난 미친 게 분명하다. 난 화장실에서 나와 정수기로 달려갔다. 물을 다섯 잔 연속으로 마셨다. 이제 몸속에서 뭉게뭉게 거품이 피어오르겠지. 비누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난 온몸에서 뭉게뭉게 거품이 피어오르며 죽어버릴 거다. 그건 근사한 생각이었다.

 

 

편의점이 보였고, 난 그리로 들어갔다. 난 더 토할 것 같았다.......결국 편의점의 그 매끈한 바닥에 토하려는 찰나 고추장을 발견했다. 내 손은 그 빨간색 튜브를 멋지게 움켜잡았다. 천팔백원. 나는 거스름돈을 주머니에 넣자마자 뚜껑을 따고 그것을 입에 물었다. 아르바이트생이 놀란 눈으로 날 쳐다보았던 것 같다. 그길고 고추장이 내 목구명으로 밀려들어오는 순간, 모든 게 편안해졌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때 나는 셰로토닌이 280배쯤 증가한 상태였다.

 

p90.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켜면 긴 생머리에 커다란 눈에 뾰족한 턱의 여자애가 부자와 연애를 해요. 여자애는 내 맘에 쏙 드는 옷을 입고 내 맘에 쏙 드는 신발을 신고 내 맘에 쏙 드는 화장을 하고 내 맘에 쏙 드는 머리를 하고 있어요. 나는 화가 나요. 도대체 저런 구두는 어디서 파는 건가. 아아, 나는 어제 백화점에서 진짜로 내 마음에 쏙 드는 원피스를 봤어요. 사실팔만 육천원인데 쎄일기간이라 삼십 퍼쎈트 디스카운트를 해준대요. 다음주에 월급을 받으면 나는 그 원피스를 살 거예요. 이번에 시급이 올랐어요. 옷을 사야 해요. 언제나 옷이 부족해요. 어젯밤에는 근사한 꿈을 꿨어요. 꿈에서 나는 보이지 않는 남자와 새벽의 텅 빈 학교 캠퍼스를 뛰어다녔어요. 새벽의 캠퍼스는 텅 빈 채로 옅은 안개에 싸혀 있었어요. 아무도 없고 우리 둘뿐이었어요. 나는 한 손에는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한 손에는 도장이 여덟 개 찍힌 쿠폰을 들고 있었어요(그러니까 두 번만 더 마시면 돼요).

 

- 머지않아 흉한 씨멘트 덩어리는 값비싼 브랜드의 아파트로 완성이 되겠죠. 그러나 내 삶은 여전히 뿌옇게 모호한 채로 남아 있겠죠.

 

p92. 나는 왜 이렇게 늙어가지 왜 이렇게 늙었지 나에게도 빛나는 브랜드의 시절을 가질 권리가 있다 있다 있다 있다.......더 가지고 싶다 더, ....

 

p103. 너는 정말 구제가 불가능한 인간이야 아니 니가 인간이기는 하냐 이 그래프를 좀 봐 사회성이 팔이라고 도대체 평균이 오십사고 가장 낮은 녀석도 십구야 그런데 그 십구인 녀석이 누군지 아니? 정은호! 정은호라고 그 약간 모자란 정은호 아이큐가 칠십칠인 정은호도 사회성이 십구가 나왔는데

 

한문선생님이 그러시더라 너 오엠알 카드 마킹 삼번으로 통일했다며

 

p123. 공원 입구 벤치에 앉아 있으면 할아버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와의 대화는 언제나 지루했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내 아들은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너는 어느 대학에 다느느냐. 내가 대답했다. 나는 대학에 다니지 않습니다. 내 딸은 연대 경영학과에 다니고 씨티은행에서 인턴을 한다. 너는 뭘 하느냐.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내 손자는 하바드와 스탠퍼드에 동시에 합격하는 것이 꿈이다. 너는 꿈이 뭐냐. 나는 아무런 꿈도 없습니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실망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나는 조금 쓸쓸해졌다. 쓸쓸해진 나느 할아버지 그 개새끼가 미웠다. 언젠가 그 개새끼한테 복수할 거라고 굳게 결심했다.

 

p125. 일곱 시 반에 젊은 여자가 와서 소주 세 병을 마시고 갔다. 여자는 말했다. 나는 스무살입니다. 나는 여자입니다. 나는 재수생입니다. 나는 오늘 학원에 갔습니다. 나는 대학에 가고 싶습니다. 나는 죽고 싶습니다.

 

여덟시 반에 젊은 남자가 와서 소주 세 병을 마시고 갔다. 남자는 말했다. 나는 스물세살입니다. 나는 남자입니다. 나는 대학생입니다. 나는 오늘 학교에 갔습니다. 나는 친구가 하나도 없습니다. 나는 학교에 다니기 싫습니다. 나는 죽고 싶습니다. 나는 학교에 다니고 싶습니다. 나는 죽고 싶습니다.

 

아홉시 반에 젊은 여자와 젊은 남자가 와서 소주와 맥주를 열 병 마시고 갔다. 여자와 남자는 말했다. 우리는 노래방에서 만났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합니다. 우리는 결혼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돈이 없습니다. 우리는 죽고 싶습니다.

 

열한시 반에 나이 든 남자가 와서 소주 한 병을 마시고 갔다. 남자는 말했다. 나는 회사에 다닙니다. 나는 딸이 있습니다. 나는 돈을 벌어야 합니다. 내 딸을 미국 대학에 보내야 합니다. 나는 빚이 많습니다. 나는 오늘 회사에 갔습니다. 나는 죽고 싶습니다.

 

새벽 두 시에 술집이 문을 닫을 때까지 죽고 싶은 사람 아홉 명과 살고 싶은 사람 아홉 명 다 합쳐서 아홉 명이 샤넬에 왔다 갔다.

 

p129. 우리는 중국산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중국산 플라스틱 젓가락으로 중국산 쏘시지가 들어간 김밥을 중국산 단무지와 중국산 김치와 함께 먹었다. 천국에 김밥천국이 있다고 생각해봐. b가 말했다. 아니면 김밥천국이 진짜 천국이라고 생각해봐. 그것은 중국식 대화였다.

 

p146. 처음에 그건 씨발, 오빠, 제발, 이 개 같은 년, 잘못했어, 용서해줘, 이게 어디서, 꺼져, 와 같은 짤막한 단어들이었다. 그 위로 엄숙한 목소리의 내레이션이 드리워졌다. 김씨는 갑자기 옷을 벗기 시작했습니다. 재킷을 벗고 허리띠를 풀더니 벗어든 신발로 바닥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최씨의 새로운 남자친구는 당황한 표정으로 전봇대 아래 서 있었습니다.

 

김씨는 신발을 집어던지더니 최씨의 팔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가기 시작했습니다. (신음소리, 비명, 빠른 발소리) 그것을 보고 최씨의 새로운 남자친구가 뛰어오기 시작했습니다. (, 흐느낌, 주먹질) 저희 취재진이 끼어들어 만류해 보려고 하였으나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괴성, , 흐느낌, 괴성, 욕 다시 욕, 주먹질)

 

p157. 한에게는 그의 인생이, 새벽부터 밤까지 야구게임기 앞에 서서 날아오는 공을 끊임없이 쳐내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물론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갚아야 할 돈이 많았다.

 

p231.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봤을 때 서울은 강남구 신사동 사백칠십삼다시칠번지에 있었다. 해체주의적 관점에서 봤을 때 서울은 용산구 이태원동 오십칠다시십이번지에 있었다. 하지만 지정학적 측면에서 봤을 때 서울은 평양에 있었으며, 심리학적 측면에서는 은평구 뉴타운에 있었고, 낭만주의적 관점에서 봤을 때 그것은 롯데월드에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볼 때 서울은 뉴욕 주 뉴욕 시 파크 에버뉴와 렉싱턴 애버뉴 사이에 있는 이스트 씩스티 쎄컨드 스트리트에 있었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하여 우리는 서울의 지도를 그려보았다. 완성된 지도는 미국식 아침식사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p234. 우리가 그동안 만들어온 월간 <예쁜 기계>와 주간 <기계>, 격주간 <기계인간>은 모두 실패했다.

 

p235. 우리는 결국 정신적/물질적 빈곤을 벗어날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결국 세계를 바꿀 수 없으므로 우리는 이제 그만 세계를 끝내려고 한다.

 

p243. 결국 이곳에서 사람들은 단 한순간도 자신을 위한 삶을 살지 못했다. 매순간 삶은 타인들에게 증명되기 위해 갱신된다.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 지금 쓰이는 이 글과, 저 책, 그리고 무엇보다 끊임없이 지어지는 아파트를 위해서, 부서지고, 다시 생겨나는 서울은 이미 혁명의 땅이다. 사람들의 눈은 모두 미래에 고정되었고 그래서 천천히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아무도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한다.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꿈과 환상이 도시를 지탱한다. 꿈의 장면은 디즈니랜드, 밤마다 잠들지 못하게 하는 악몽, 새벽의 버스와 지하철, 광고판에 붙은 청사진, 구호, 그리고 깃발들, 네온라이트로 이루어져 있다. 그 꿈은 벽에 걸린 스크린 속에서 반복해서 재생된다. 돌아서면 탁자 위에 미국식 아침식사가 놓여 있다. 깨끗한 창 너머로 보이는 것은 아파트다. 그것은 살아 있다. 새하얗게, 태어나는 중이다, 영원히.

 

p245. 더 이상 나는 이해하지 않는다, 영혼이 없으므로, 그리고 그 점에서 나와 도시는 평등하다. 우리는 같은 고통으로 고통 받으며, 영혼이 없다.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환상과 고통, 그리고 그걸 위로해줄 마취제이다. 다시 거울이 거울을, 도시가 도시를 비춘다. 모두가 모두를 반사한다. 더 이상의 언어는 필요 없다. 우리에겐 거울이 있다. 도시는 이제 지도 밖에 존재한다. 내 곁에, 공간 밖에 존재한다. 꿈과 테러로 둘러싸인 채, 거울 속에서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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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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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책을 읽다 거짓말이 아니고 수십번 마주친 문장이 있다.

심지어 송호근의 <나는 시민인가>에서도.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의 첫문장이다. ‘눈의 고장은 니가타 현의 에치고 유자와 온천이다. 발레에 대한 글을 비정기적으로 쓰는 것 말고는 하릴없이 무위도식하는 시마무라는 그의 손이 기억하는게이샤 고마코를 찾아간다. 시마무라는 기차 안에서 만난 요코 (등불이 켜진 여자)를 보고 호기심을 품지만, 시마무라에 대한 고마코의 연정은 눈의 고장에서도 식을 줄을 모른다. 아니, 해가 갈수록 시마무라에 대한 고마코의 애정은 깊어만 간다.

 

벌써 세 시간도 전의 일로, 시마무라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왼쪽 검지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여 바라보며, 결국 이 손가락만이 지금 만나러 가는 여자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군, 좀더 선명하게 떠올리려고 조바심치면 칠수록 붙잡을 길 없이 희미해지는 불확실한 기억 속에서 이 손가락만은 여자의 감촉으로 여전히 젖은 채, 자신을 먼데 있는 여자에게로 끌어당기는 것 같군, 하고 신기하게 생각하면서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고 있다가, 문득 그 손가락으로 유리창에 선을 긋자, 거기에 여자의 한쪽 눈이 또렷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러나 이는 그가 마음을 먼데 두고 있었던 탓으로,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아무것도 아닌, 그저 건너편 좌석의 여자가 비쳤던 것뿐이었다. p10

 

시마무라의 손은 고마코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정작 그 손가락이 가리킨 것은 고마코가 아니라 요코였다.

 

거울 속에는 저녁 풍경이 흘렀다. 비쳐지는 것과 비추는 거울이 마치 영화의 이중노출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등장 인물과 배경은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게다가 인물은 투명한 허무로, 풍경은 땅거미의 어슴푸레한 흐름으로, 이 두가지가 서로 어우러지면서 이세상이 아닌 상징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었다. 특히 처녀의 얼굴 한가운데 야산의 등불이 켜졌을 때, 시마무라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가슴이 떨릴 정도였다.

 

 

이 소설의 결정적 순간은 아래의 장면이다. 연회에 참석했다가 술에 취해 돌아온 고마코는 여관 전체가 떠나갈 정도로 시마무라를 찾는다. 그리고는 시마무라의 품에 안긴다.

 

그러나 여자는 이제 그의 손바닥에 몸을 맡기고 그대로 낙서를 시작했다.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쓰겠다며 연극이나 영화배우들의 이름을 이삼십 개 남짓 늘어놓고 나서, 이번에는 시마무라라고만 무수히 적어나갔다.

 

사랑하는 남자 앞에서 사랑한다 차마 말하지 못하고 남자의 이름만을 무수히 손바닥에 적어갈 수 밖에 없던 게이샤 고마코. 소설 속에서 이보다 안타깝고도 애잔한 순간이 있었던가. 이러한 장면 외에도 이 소설엔 형용할 수 없는아름다움들의 순간들로 넘쳐난다.

 

새하얀 눈의 나라. 강렬한 시각적 대비와 청각적 이미지들이 흘러넘친다. 그야말로 감각의 향연이다. 무채색의 시마무라는 적과 흑(고마코와 요코)의 아름다움에 둘러쌓인다. 시마무라는 은하수안으로 흘러든다. 시마무라는 자신에 대한 고마코의 마음을 알지만 그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않을뿐더러 사랑의 감정에 빠져들려고도 하지 않는다. 고마코의 말대로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여자이기 때문일까.

 

눈의 고장에 비견할 만한 한국 작품은 단연 안개의 마을’.


김승옥의 <무진기행>이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언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뺑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 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 김승옥, <무진기행> 민음사, 10~11

 

고마코의 애절한 사랑의 마음은 장아이링의 <,>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 <,>에서 이선생(양조위)앞에서 막부인(탕웨이)이 차파오 차림으로 노래하는 장면 때문일까. 아니면 절대로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해버린 여인의 이야기이기에. 어쩌면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여자뿐일지도.

 

 

밑줄 친 문장

 

 

아득히 먼 산 위의 하늘엔 아직 지다 만 노을빛이 아스라하게 남아,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먼 곳까지 형체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색채는 이미 다 바래고 말아 어디건 평범한 야산의 모습이 한결 평범하게 보이고 그 무엇도 드러나게 주의를 끌 만한 것이 없는 까닭에, 오히려 뭔가 아련한 커다란 감정의 흐름이 남았다


이는 물론 처녀의 얼굴이 그 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차창에 비치는 처녀의 윤곽 주위를 끊임없이 저녁 풍경이 움직이고 있어, 처녀의 얼굴도 투명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정말로 투명한지 어떤지는, 얼굴 뒤로 줄곧 흐르는 저녁 풍경이 얼굴 앞을 스쳐 지나는 듯한 착각을 일으켜 제대로 확인할 기회가 잡히지 않았다.

 

기차 안도 그리 밝은 편은 아니었고 진짜 거울처럼 선명하지도 않았다. 반사가 없었다. 그래서 시마무라는 들여다 보는 동안, 거울이 있다는 사실을 점차 잊어버리고 저녁 풍경의 흐름 속에 처녀가 떠 있는 듯 여기게 되었다.


바로 그때, 그녀의 얼굴에 등불이 켜졌다. 이 거울의 영상은 창밖의 등불을 끌 만큼 강하지는 않았다. 등불도 영상을 지우지는 못했다. 그렇게 등불은 그녀의 얼굴을 흘러 지나갔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을 빛으로 환히 밝혀주는 것은 아니었다. 차갑고 먼 불빛이었다. 작은 눈동자 둘레를 확 하고 밝히면서 바로 처녀의 눈과 불빛이 겹쳐진 순간, 그녀의 눈은 저녁 어스름의 물결에 떠 있는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야광충이었다.

 

(....)시마무라가 요코를 오래 훔쳐보면서도 그녀에게 실례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은, 저녁 풍경을 담은 거울이 지닌 비현실적인 힘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 그 신호소를 지날 무렵, 이미 창에는 어둠뿐이었다. 건너편 풍경의 흐름이 사라지자 거울의 매력도 사라지고 말았다. 요코의 아름다운 얼굴은 여전히 비쳐지고 있었지만, 그 따스한 동작에도 불구하고 시마무라는 그녀 안에서 뭔가 투명한 차가움을 새삼 발견하고 거울이 흐려지는 것을 닦아내려고도 하지 않았다.

 

저녁 풍경이 비친 거울 속에서 요코가 보살펴주었던 환자는 시마무라가 만나러 온 여자가 사는 집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는 것을 알자, 자신의 가슴속을 뭔가가 스쳐 지나간 듯 느꼈지만, 이 우연한 만남을 그는 별로 신기하게 여기진 않았다. 신기하게 여기지 않는 자신을 도리어 신기하게 여겼을 정도였다.

 

손가락으로 기억하는 여자와 눈에 등불이 겨킨 여자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쩐지 시마무라는 마음속 어딘가에 보이는 듯한 느낌이다. 아직 저녁 풍경이 비치던 거울에서 덜 깨어난 탓일까. 그 저녁 풍경의 흐름은, 그렇다면 흐르는 시간의 상징이었던가 하고 그는 문득 중얼거렸다.

 

여자의 인상은 믿기 어려울만큼 깨끗했다. 발가락 뒤 오목한 곳까지 깨끗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초여름 산들을 둘러보아 온 자신의 눈 때문인가 하고 시마무라가 의심했을 정도였다.

 

적당히 피로해졌을 무렵, 문득 방향을 바꾸고는 유카타 자락을 걷어올려 한달음에 뛰어내려와, 발밑에서 노랑 나비가 두 마리 날아올랐다.

나비는 서로 뒤엉키면서 마침내 국경의 산들보다 더 높이, 노란빛이 희게 보일때까지 아득해졌다. 28.

 


얼굴엔 눈부시게 가득 미소를 머금고 있었으나, 그러면서도 <그때>를 회상하는지 마치 시마무라의 말이 그녀의 몸을 서서히 물들여 가는 듯했다. 여자가 샐쭉해서 고개를 숙이자, 목덜미가 훤히 드러나고 등줄기까지 붉어진 것이 보여 흠뻑 젖은 알몸을 고스란히 내놓은 것 같았다. 새카만 머리색 때문에 더욱 그렇게 여겨졌는지도 모른다. 앞머리가 촘촘하게 숱이 많은 것도 아닌데 머리카락이 남자들처럼 굵고 귀밑머리가 거의 없어 뭔가 시커먼 광석이 지닌 묵직한 빛이었다.


아까 손으로 만져보고 이렇게 찬 머리카락은 처음이라며 깜짝 놀란 것도 찬 공기 탓이 아니라 바로 이 머리 때문이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방의 눈 얼어붙는 소리가 땅속 깊숙이 울릴 듯한 매서운 밤 풍경이었다. 달은 없었다. 거짓말처럼 많은 별들은, 올려다보노라니 허무한 속도로 떨어져 내리고 있다고 생각될 만큼 선명하게 도드라져 있었다. 별무리가 바로 눈앞에 가득 차면서 하늘은 마침내 머언 밤의 색깔로 깊어졌다. 서로 중첩된 국경의 산들은 이제 거의 분간할 수가 없게 되고 대신 저마다의 두께를 잿빛으로 그리며 별 가득한 하늘 한 자락에 무게를 드리우고 있었다. 모든 것이 맑고 차분한 조화를 이루었다.

 

시마무라는 그쪽을 보고 움찔 목을 움츠렸다. 거울 속 새하얗게 반짝이는 것은 눈이다. 그 눈 속에 여자의 새빨간 뺨이 떠올라 있다. 뭐라 형용하기 힘든 청결한 아름다움이었다.

 

세 번째 곡으로 미야코도리를 켜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이 곡이 지닌 농염한 부드러움 탓일까, 시마무라는 더 이상 몸이 오싹해지는 느낌도 없이 포근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고마코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러자 육체의 친근감이 생생하게 전해져왔다.

 

가늘고 높은 코는 다소 쓸쓸하게 마련인데 뺨이 활기 있게 발그레한 덕분에, 나 여기 있어요, 하는 속삭임처럼 보였다. 아름다운 윤기 도는 입술은 작게 오무렸을 때조차 거기에 비치는 햇살을 매끄럽게 어루만지는 듯했다.

 

구름이 끼어 응달진 산과 아직 햇살을 받고 있는 산이 서로 중첩되어 음지와 양지가 시시각각 변해 가는 모습은 왠지 싸늘해지는 풍경이었다. 이윽고 스키장도 한꺼번에 어두워졌다. 창 밑으로 시선을 던지자, 시든 국화 울타리에 우무처럼 서릿발이 서 있었다. 그러나 지붕 위의 눈이 녹아 떨어지는 홈통의 물소리는 쉴 새없이 들렸다. 68

 

국경의 산을 북쪽으로 올라 긴 터널을 통과하자, 겨울 오후의 엷은 빛은 땅밑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 듯했다. 낡은 기차는 환한 껍질을 터널에 벗어던지고 나온 양, 중첩된 봉우리들 사이로 이미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는 산골짜기를 내려가고 있었다. 이쪽에는 아직 눈이 없었다. 75

 

그러나 요코가 이 집에 있다고 생각하니 시마무라는 고마코를 부르기가 왠지 꺼려졌다. 고마코의 애정은 그를 향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아름다운 헛수고인 양 생각하는 그 자신이 지닌 허무가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고마코의 살아가려는 생명력이 벌거벗은 맨살로 직접 와 닿았다. 그는 코마코가 가여웠고 동시에 자신도 애처로워졌다. 이러한 모습을 무심히 꿰뚫어 보는, 빛을 닮은 눈이 요코에게 있을 것 같아, 시마무라는 이 여자에게도 마음이 끌렸다. 110

 

그걸로 족해요.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건 오직 여자뿐이니까.” 112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잊은 듯, 오래 머물렀다. 떠날 수 없어서도, 헤어지기 싫어서도 아닌데, 빈번히 만나러 오는 고마코를 기다리는 것이 어느새 버릇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고마코가 간절히 다가오면 올수록 시마무라는 자신이 과연 살아 있기나 한 건가 하는 가책이 깊어졌다. 이를테면 자신의 쓸쓸함을 지켜보며 그저 가만히 멈춰 서 있는 것뿐이었다


고마코가 자신에게 빠져드는 것이 시마무라는 이해가 안 되었다. 고마코의 전부가 시마무라에게 전해져 오는데도 불구하고, 고마코에게는 시마무라의 그 무엇도 전해지는 것이 없어 보였다. 시마무라는 공허한 벽에 부딪는 메아리와도 같은 고마코의 소리를, 자신의 가슴 밑바닥으로 눈이 내려 쌓이듯 듣고 있었다. 이러한 시마무라의 자기 본위의 행동이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는 없었다.


눈 내리는 계절을 재촉하는 화로에 기대어 있자니, 시마무라는 어번에 돌아가면 이제 결코 이 온천에 다시 올 수 없으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134

 

여관 주인이 특별히 꺼내준 교토 산 옛 쇠주전자에서 부드러운 솔바람 소리가 났다. 꽃이며 새가 은으로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솔바람 소리는 두 가지가 겹쳐, 가깝고 먼 것을 구별해 낼 수 있었다. 또한 멀리서 들리는 솔바람 소리 저편에서는 작은 방울 소리가 아련히 울려퍼지고 있는 것 같았다. 시마무라는 쇠주전자에 귀를 가까이 대고 방울 소리를 들었다. 방울이 울려대는 고마코의 자그마한 발을 시마무라는 언뜻 보았다. 시마무라는 깜짝 놀라, 마침내 이곳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은하수예요. 예쁘죠?”


고마코는 중얼거리고는 하늘을 쳐다보며 다시 달려나갔다. 아아, 은하수, 하고 시마무라도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순간, 은하수 속으로 몸이 둥실 떠오르는 것 같았다. 은하수의 환한 빛이 시마무라를 끌어올릴 듯 가까웠다. 방랑중이던 바쇼가 거친 바다 위에서 본 것도 이처럼 선명하고 거대한 은하수였을까. 은하수는 밤의 대지를 알몸으로 감싸안으려는 양, 바로 지척에 내려와 있었다. 두렵도록 요염하다


시마무라는 자신의 작은 그림자가 지상에서 거꾸로 은하수에 비춰지는 느낌이었다. 은하수에 가득한 별 하나하나가 또렷이 보일 뿐 아니라, 군데군데 광운의 은가루조차 알알이 눈에 띌 만큼 청명한 하늘이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은하수의 깊이가 시선을 빨아들였다.

 

불똥은 은하수 속으로 퍼져나가며 흩어져 시마무라는 또 한번 은하수 쪽으로 끌어올려지는 느낌이었다. 연기가 은하수로 흐르는 것과 반대로, 은하수가 쏴아 하고 흘러 내려왔다. 지붕을 비껴난 펌프의 물줄기 끝이 흔들려 물안개처럼 희뿐연 것도 은하수 빛이 비추기 때문인 것 같았다. 어느 틈에 다가왔는지 고마코가 시마무라의 손을 잡았다. 시마무라는 돌아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줄곧 불을 지켜보는 고마코의 약간 상기된 진지한 얼굴에 불길의 호흡이 일렁거렸다


시마무라의 가슴에 격한 감정이 복받쳐왔다. 고마코의 머리카락은 흐트러지고 목은 길게 빼고 있었다. 거기로 저도 모르게 손을 가져갈 듯, 시마무라는 손가락 끝이 떨렸다. 시마무라의 손도 따스했으나 고마코의 손은 더 뜨거웠다. 왠지 시마무라는 이별할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 149

 

요코가 떨어진 2층 관람석에서 나무기둥이 두세 개 무너져내려 요코의 얼굴 위에서 타올랐다. 요코는 그 찌르듯 아름다운 눈을 감고 있었다. 턱을 내밀어 목선이 길었다. 창백한 얼굴 위로 불빛이 흔들리며 지나갔다.


몇 해 전인가, 시마무라가 이 온천장으로 고마코를 만나러 오는 기차 안에서 요코의 얼굴 한가운데 야산의 등불이 켜졌을 때의 모습을 문득 떠올리고, 시마무라는 다시 가슴이 떨렸다. 일시에 고마코와 함께한 시간들이 환히 비쳐진 것 같았다. 뭔가 애절한 고통과 비애도 여기에 있었다. 고마코가 시마무라 곁에서 달려나갔다. 고마코가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가린 것과 거의 같은 순간이었다. 사람들이 앗 하고 숨죽인 바로 그때였다.

 

물을 뒤집어쓴 타다 남은 시커먼 나무들이 어지러이 흩어진 속에서, 고마코는 게이샤의 긴 옷자락을 끌며 비틀거렸다. 요코를 가슴에 안고 돌아오려 했다. 필사적으로 버티려는 얼굴 아래, 요코의 승천할 듯 멍한 얼굴이 늘어져 있었다. 고마코는 자신의 희생인지 형벌인지를 안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저마다 소리를 지르며 우르르 달려나와, 두 사람을 에워쌌다.

비켜요, 비켜주세요.”

그는 고마코의 외침을 들었다.

이애가 미쳐요. 미쳐요.”

 

정신없이 울부짖는 고마코에게 다가가려다, 시마무라는 고마코로부터 요코를 받아 안으려는 사내들에 떼밀려 휘청거렸다. 발에 힘을 주며 올려다본 순간, 쏴아 하고 은하수가 시마무라 안으로 흘러드는 듯했다.

 

- 2015. 6. 19 


어제 소복히 내린 눈을 보다 감상에 젖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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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17 16: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필사한 문장들을 읽는 재미가 좋네요. *^

시이소오 2016-02-17 16:42   좋아요 0 | URL
다행이네요. 스크롤 압박을 드려 죄송했었는데^^;;

룰루라떼 2016-02-17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자꾸 부딪히는
문장때매 시작했는데...
안읽혀지더라고요~ㅠㅠ^^ㅎ

시이소오 2016-02-17 18:54   좋아요 0 | URL
시마무라가 여성독자 입장에선 별 매력이 없을것도 같아요. 양다리잖아요. 아내도 있고
재수없어 그러신건 아닐지요 ^^;;

룰루라떼 2016-02-17 1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
시이소오님 정답^^ㅋ

나와같다면 2016-02-17 1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때로는 마음보다 몸이 먼저.. 그리고 나중까지 기억할때도 있어요

시이소오 2016-02-17 20:15   좋아요 1 | URL
동감이에요. 경험에 의하면 그래도 몸보단 마음이 더 오래가더러구요 ^^

서니데이 2016-02-17 2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시이소오 2016-02-17 20:16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님도 저녁 맛있게 드셨길^^

컨디션 2016-02-17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크롤 좀 해야 하긴하지만, 설국과 무진기행 비교체험(?)의 기회를 제공하신 솜씨와 노고에 박수를~^^ 지금 북플이라 이따 pc로 정독하러 다시 올게요 ㅎㅎ

시이소오 2016-02-17 21:36   좋아요 0 | URL
고생하셨어요^^;;
저는 이따가 오자들을 수정해야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