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금지 랜덤소설선 2
이지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8월
평점 :
품절



"좌절금지"란 이 그림.
얼마 전 회사를 떠난 한 선배의 책상에 붙어 있었다.
이지민의 <좌절금지>가 나오기 한참 전 부터....
그 선배의 메신저 아이디도 "좌절금지"였다.
긍정적 현상이었다.
왜냐구? "좌절금지" 로 바꾸기 전 아이디는 "우울모드"였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그 선배의 우울모드는 끝날 것 같지가 않았었다.

이 그림은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 앞에 있는 표지판이라고 한다.
절망으로 무릎 꿇고 쓰러진 사람 위에 쫙 - 붉은 줄을 긋고 경고 표시를 하고 있는 좌절 금지 표지판.

그 선배의 책상에 붙어 있던 이 그림을
몇몇 후배들이 복사해서 책상에 붙여 놓았다.
그래서 지금은 사무실 곳곳에서 이 그림을 볼 수 있다.

그 선배 환송회 때,
난 이지민의 <좌절금지>를 선물했다.

그 선배도, 옆에 있던 팀 사람들도 깜짝 놀랐다.
"이런 책이 다 있어?"

그 선배의 환송회가 9월 말이었고,
나도 이 책을 읽기 전이었다.
그냥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선물했다.

그 선배가 이 책을 읽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안 읽었을 꺼다.
읽었으면 잘 읽었다고 전화가 왔겠지....

이지민의 <좌절금지>, 정말 재.미.있.다.
특히 73~75년생들이 읽으면,
때론 웃느라 데굴데굴 뒹굴며
때론 웃다가 씁쓸함을 느끼며
때론 어렸을 때 기억에 잠기며
온갖 감상에 젖은 채로 책장을 넘길꺼다.

<좌절금지>의 작가 이지민도 74년생,
<좌절금지>의 두 주인공도 74년생,
<좌절금지>를 키득키득 거리며 읽은 나는 73년생,
우리들의 이야기였다.

이 소설을 읽으며 문득 배수아의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가 떠올랐다. 몇살 차이 나지 않지만, 확실히 60년대생과 70년대생은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엉뚱하기로 말하자면 <좌절금지>가 훨씬 엉뚱하지만,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보다 훨씬 신선하고 따뜻하다.

이지민은 등장인물 하나하나에 애정을 갖고 있다.
이지민의 소설에서 이유 없는 악역은 없다.
잠깐 등장하는 택시 기사 하나에 까지 애정을 담아 묘사한다.
기본적으로 이지민이 바라 보는 세상은 따뜻하다.

이 소설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

"커피,하면 딱 하고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나 이미지가 뭐야? 깊이 생각하지 말고!"

도림 : " 디 카페인"
락희(주인공) : " 음...커피란....7백원이지."

"이제 각자 대답을 부연 설명해봐."

도림 : "카페인을 자제해야 하니까.난 언제나 디 카페인 커피를 사놓는걸 잊지 않아."
락희 : " 에스프레소 커피 한 잔 원가가 7백원이래.나머지는 분위기 값이지.원가를 따져본 거야."

경원(질문한 친구) : "일종의 심리 테스트인데,커피라고 말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무언가가 그 사람이 생각하는 사랑의 이미지래.커피 이즈 러브인 거지."

( 친구들 셋이서 한참 웃다가...)

도림 : "그럼 내 심리 속에는 사랑을 자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거야?" ( 이 말에 웃음을 터뜨리는 락희를 향해)
도림 : " 그러는 넌.사랑에 원가 따지는 주제에."


* 각주 : 그대로 옮기려니 너무 길어서 내가 드라마 대본식으로 각색했다.ㅋㅋ

"커피"하면 생각나는 단어나 이미지?

수선 : " 아침에 일어나면 마시는거.안 마시면 자꾸 생각나는거."

그렇다.나는 커피 중독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한 잔 마셔야 잠이 깬다.
그리고 하루 종일 마신다.
너무 연한 커피도 싫어한다.
딱 던킨 도너츠 커피 처럼 찐한게 좋다.

그렇다면 나는 사랑 중독?
일어나자 마자 사랑을 찾는 사랑지상주의자?
하루 종일 사랑을 받지 못하면 허전해하는 사랑 의존증?

이 심리테스트를 믿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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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4-11-21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 " 커피? 뜨거운거. 식은 커피는 차라리 안마시지. "



이거....이거... 연애를 길게는 못할 스타일아닐까요? 후다닥 불꽃튀다가 금방 식는. 그나저나 다시 충전 되셨나 보죠? 글 올리신걸 보면. ^^V


kleinsusun 2004-11-21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애 가장 길게 해보신게 얼마쯤?ㅋㅋ

울팀 김대리는 1달을 못넘겨요. 지금도 어디서 선을 보고 있을 듯...

충전하고 있어요.근데 이번 감기 장난 아니네요.감기 조심하세요!

플레져 2004-11-21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지형에서 이지민으로 이동한 그녀가 부디 성공하기를 바래요. 제게 커피는, 불면증! 한 잔 이상 마시면 잠을 못잔답니다. 커피 중독에서 헤어나온 후 3년간 끊었다가 다시 마시면서 생긴 버릇이에요. 한 잔 이상은 안됨. 커피 금지! 추천 놓고 갑니다~ ^^

kleinsusun 2004-11-21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피 중독에서 해방되셨어요? 우와......대단한 의지력!!! 짝짝짝.

의사한테도 커피를 줄이라고 경고 받았는데, 정말 어렵네요.

나의 커피 탈출기 이런거 쓰신거 있나요? 좀 갈켜 주세요!ㅋㅋ

플레져 2004-11-21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안먹어요. 넘 시시하죠? 그냥 생각나도 안 마셔요. 정말 시시하넹... ㅎㅎ근데 그런 날들이 하루 이틀 쌓이면 어느날 커피 대신 유자차를 마시는 나를 만나게 된답니다...^^

비로그인 2004-11-22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나도 안 마신다라... 전혀 시시하지 않죠. 거의 impossible하게 느껴지는 군요. 마음이 일면 몸이 반드시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

kleinsusun 2004-11-22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병원 다녀 왔어요. 의사가 커피를 마시지 말라고 경고하더군요.

감기에 나쁘다고.... 그래서 유혹을 뿌리치고 녹차라떼를 마시고 있어요.

플레져님의 놀라운 의지에 다시 한번, 짝짝짝!

icaru 2004-12-24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커피란...담배의 대용품... 생을 관조해야 할 상황이 아닐 때에...생을 관조하게끔 하는 위력을 갖는...각성제!! ㅋ

님~!! 님의 문체가 귀엽고, 깨물고 싶게 발랄해서... 70년대 후반생으로 봤더라는 복순언니..ㅋ

저도 73과 75에 끼인 년생이그덜랑요..~ 님 반가워용

코마개 2005-02-21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흠.. 난 커피 하자마자 자판기 생각했는데. 하긴 나의 사랑에 대한 인식도 거기서 벗어나지 않음이 사실이예요. 그나저나 이 책 읽으면 좌절이 금지 되나요? 제가 지금 깊은 좌절의 늪에 빠져 있거든요.
 
살인자의 건강법 - 개정판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세계사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살인자의 건강법>(아멜리 노통 지음 / 김민정 옮김 / 문학세계사)를 두달 전 쯤 읽었다.

<살인자의 건강법>은 아멜리 노통의 첫번 째 소설이다.
25살에 이 소설로 화려한 데뷔를 했단다.

만약 <살인자의 건강법>이 내가 읽은 아멜리의 첫번 째 소설이라면, 난 아마도 반해 버렸을 꺼다.

그런데....
<살인자의 건강법>은 내가 읽은 아멜리의 4번째 소설이다.
<적의 화장법>,<두려움과 떨림>,<오후 네시>.

<살인자의 건강법>을 읽고 어떤 기분이었냐면,
좋아하는 발라드 가수의 새로운 앨범을 기분 좋게 샀는데,
지난 앨범과 노래 제목이랑 가사만 다르고 너무 비슷비슷해서
실망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살인자의 건강법>을 읽고,
여자의 생리에 대해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 스포일러 경고 : 이 소설은 추리소설 처럼 전개된다.
내용을 알면 읽는 재미를 놓칠 수 있으니, <살인자의 건강법>을 읽으실 분은 더 이상 이 글을 읽지 마시라!

이 소설의 주인공 타슈는
어렸을 때 또래의 사촌 동생을 사랑한다.
소년과 소녀는 어른이 되면 꼬마 때 처럼 행복하지 못할 것이라고,많은 것들이 변해 버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년과 소녀는 사춘기를 맞이하지 않기로 선서한다.
영양가 있는 음식은 안 먹고, 잠도 거의 안 자고,
신체의 발육을 막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타슈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영원히 아름답고 순수한 소녀로 남아 있어야 하는 사촌동생 레오폴딘이 생리를 하는 것을 보고,
사랑의 이름으로 레오폴딘을 죽인다.

몇 십년이 흐른 후, 타슈는 말한다.

"끔찍한 의식이란 말이오,신화적인 삶에서 호르몬적인 삶으로,영원한 삶에서 순환적인 삶으로 넘어가는 것이니,식물적인 인간이라야 순환적인 영원에 만족할 수 있다오."(page 205)

"대개 살인자들이란 희생자의 피를 보게 마련인데, 난 피를 보기는커녕 난 레오폴딘을 죽여서 계속 되풀이될 출혈을 미리 막아주었을 뿐 아니라 그애를 원초적인 불멸의 상태,출혈 없는 불멸의 상태로 되돌려놓았잖소."(p218)

주인공 타슈가 하는 말들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자의 생리를 지저분한 것, 또는 창피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약국이나 편의점에서 생리대를 사면,
약사나 종업원은 생리대를 까만 비닐에 넣어준다.
왜? 생리대가 보이면 안되는 걸까? 위험한 걸까?

메사츄세스에서는 슈퍼에서 술을 사면
비치치 않는 종이 봉투에 넣어준다.
술병을 그냥 들고 다니거나, 투명한 비닐에 넣고 다니면 안된다.
차에도 술은 보이지 않게 트렁크에 넣거나, 종이 봉투에 싼 채로 뒷 좌석에 놓아야지, 뒷좌석에 맥주 박스를 그냥 얹어두면 경찰한테 걸린다. 메사츄세스 주의 법이다.

그런데.... 왜 생리대는 까만 비닐에 넣어서 주위에 남자 손님이 있나 없나 조심스레 살피면서 후다닥 사고 나와야 하는걸까?
뭐 잘못했나?

예전에 나도 그랬다.
생리대를 사는게 부끄러웠다.
생리대를 사야할 때면 여자 약사가 하는 약국이나,
여자 아르바이트가 있는 편의점,
그것도 아니면 손님이 거의 없는 데서 샀다.
누가 보는게 부끄러워서....

그런데 왜 그랬을까?

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교육 받았다.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애들이 생리대를 사는걸 창피해 했다.
혹시라도 아는 남자애가 볼까봐 조마조마했고,
생리할 때 옷에 묻으면 어쩌나 전전긍긍했다.

남자들이 이런 말 하는거 들어 본 적 있을꺼다.
" 너 서서 오줌 쌀 수 있어? "

정말 한심하다.
아무리 자랑이 없어도 그렇지....
어쨌든 남자들은 그런 생물학적 특징을 자랑스러워 한다.

여자들은 생리를 한다.
생리를 하는건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숨겨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자랑스러운 거다.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에서 교육을 받고 성인이 되어 여자로서의 "생물학적 자긍심"을 가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한 가정에서 자랐거나,
초경을 시작했을 때 기뻐해 주는 엄마가 없었다면...

이 땅에서 여자로 태어나,
여자로서의 정체성에 눈뜨고,
여자로서의 생물학정 자긍심을 갖는 것.
노력이 필요하다.

아직도 생리대 사러 가는 것이 부끄럽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유명호의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자궁>.
자궁을 가졌다는 것에 자긍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책을 많은 남편들이, 남자 친구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알면 사랑한다."
이 말을 누가 했지?

아는 만큼 서로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 오해 없이.

수선이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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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뽀스 2006-06-02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인자의 건강법이 7번째 노통소설이었던 저는, 95%의 익숙함과 5%실망감을 맛봤습니다. 마음에 드는 작가의 대표작을 나중에 읽는게 좋은 데 보통 제일 처음 읽다보니 갈수록 실망하게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내 오랜 친구 JJ가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 니가 글을 쓰는건 좋은데,
작가들은 다 하루 종일 담배 피고, 불규칙적인 생활하고 그런거 아냐?
난 니가 글을 쓰는건 좋은데, 작가가 되는건 싫다.걱정돼."

많은 사람들이 작가,더 나아가 예술가들에 대해 이런 선입견을 갖고 있다. 꼴초에 작업이 안 되면 미친 듯 술을 퍼 마시고, 낮에 자고 밤에 작업하고, 사생활이 정돈되지 않고 등등....

작가나 예술가들이 정말 다 그럴까?
많지는 않지만, 내가 알고 지내는 몇몇의 예술가들은 아주 성실하다. 사실 성실하지 않으면 꾸준하게 작업을 할 수 없다.
소설 하나 쓰거나 그림 하나 그리고 죽을꺼 아니면 말이다.

며칠 전,신문을 보니 한국문인협회 소설분과라는 이름도 긴 단체의 소설가 100여명이 담뱃값 인상안 규탄 결의대회를 열었단다.
참....코미디언들은 생계 유지에 위기를 느낄 것 같다.
타직종 사람들이 이렇게 웃겨주니....

“담배는 소설가의 유일한 벗?” 한국문인협회 소설분과는 18일 성명을 내어, “경기 침체로 생업인 원고 집필이 점점 어려워지는데, 창작의 유일한 벗인 담뱃값을 올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정부는 담뱃값 인상 계획을 당장 철회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한겨레 18일자 기사 일부.

‘담뱃값 인상안 규탄 결의대회’에 참여한 소설가 100여명은
소설가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즉, 소설가 모두가 담배를 유일한 창작의 벗으로 삼으며,
담배값 인상에 반대하는 궐기대회에 참여하고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정치적 행동을 하는게 아니라는 거다.

"한국문인협회 소설분과".
조직 이름이 참 길다.
궁금해서 네이버 검색창에 "한국문인협회"를 치고,
이 협회의 싸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사단법인이라.....참 거창하다.
이상하게도 해병대 전우회가 연상되었다.
왜 작가들이 각각 독립적이고 자유롭게 글을 쓰면 되지, 친목모임도 아니고 사단법인까지 필요한거지?

만약 자유에 대한 동경으로 소설가가 되었다가
이런 "사단법인"에 가입해야 한다면 참으로 갑갑할 것 같다.

이런 소설가들이 "창작의 유일한 벗" 운운하느니,
차라리 공사장에서 일하시는 아저씨들이
하루 종일 안전하지 않은 작업장에서 힘 쓰고
소주 한 잔 하면서 모여 앉아 피우는 담배가 얼마나 맛있는데,
경기가 나빠서 옛날 만큼 수당도 못 받는 이 힘든 시기에
담배값 까지 올리는건 너무하지 않냐고 궐기대회를 하는게 더 설득력 있을 것 같다.

이 기사를 읽고,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를 다시 읽었다.

문학은 읽는 것이며 쓰는 것이지,논하는 것이 아니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소설쓰기를 목표로 하는 자는,문학론 따위와는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해야 한다.그리고 홀로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마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세상을 혼자 살아가겠다는 사고는 오만불손하기 짝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런 일을 하는 이상은 무리가 되더라도 혼자 사는 방식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샐러리맨 같은 생활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고독을 이길 힘이 없다면 문학을 목표로 할 자격이 없다.
세상에 대해,혹은 모든 집단과 조직에 홀로 버틸 대로 버티며 거기에서 튕겨나오는 스파크를 글로 환원해야 한다.가장 위태로운 입장에 서서 불안정한 발밑을 끊임없이 자각하면서 아슬아슬한 선상에서 몸으로 부딪히는 그 반복이 순수문학을 하는 사람의 자세인 것이다.

- <소설가의 각오>중에서.

글 쓰다가 막힐 때,
꽉 막혀서 단 한 줄도 더 써지지 않을 때,
그럴 때 담배 한 대가 큰 위안이 될 수 있다.

<흡연여성 잔혹사>의 저자 서명숙은 담배를 가르켜
"영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존재라고 말하기도 했다.

자신이 작업할 때 담배가 도움이 된다면 피우는거 좋다.
밤새 담배를 피우면서 작업하는게 도움이 된다면, 그건 소설가의 전적인 자유다.

하지만...
100명씩 마로니에 공원에 모여서 결의대회를 하고,
국회에 성명서를 제출하며 단체행동을 하는 것은....
코미디다.

소설가의 고뇌의 원천은 일상생활의 태도에 있지 않을까.그렇게 무질서한 생활을 하다 보면, 어떤 인간이든 기존 소설가와 비슷한 타입이 되지 않을까.요컨대 그것은 일종의 정신병이 아닐까.

내게는 물론 정신도 있지만 그에 앞서 육체가 있다.그런 당연한 사실을 깜박 잊고 있었던 것이다.소설을 쓰느냐,마느냐 하기 이전에,젊은 이 육체를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였다.

- <소설가의 각오>

이런 생각으로 마루야마 겐지는 시골로 내려가서,
자연의 품에 안겨 글을 쓰는데 전념했다.

소설가들이 다 마루야마 겐지 처럼 고독하고 절제된 생활을 할 필요는 없다.

다만..... 모임을 줄이고 혼자서 글을 쓴다면 담배값 오른 만큼의 생활비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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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4-11-20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코미디다...
 

누가 사다 놨는지,
(아마도 막내동생이 지하철에서 심심해서 산 것 같다)
집에 <좋은생각> 11월호가 있었다.

대충 페이지를 넘겨 보다가,
이명원이 쓴 글을 발견했다.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를 읽고,
내가 "데이트 하고 싶은 남자"라 칭했던, 바로 그 이명원.

이명원이 쓴 글의 제목은 '드럼'에서의 몽상

내 마음을 살짝꿍 두드린 그의 글을,
내가 110% 공감하는 그의 심정을 이 공간에 옮겨 적는다.

나는 독신자다.그것이 과연 나의 의지 때문인지 혹은 상황에 의해 불가피하게 주어진 것인지,가끔 나조차도 알쏭달쏭하다.30대 중반을 넘어선, 중년도 아니고 그렇다고 푸릇한 청년이라고도 할 수 없는 세월이 간혹 하중으로 느껴지는 것은,
어떻게 된 것이 이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는 홀로 몽상에 잠길 공간 하나 찾기 힘들다는 점 때문이다.독신자도 밥을 먹고,차를 마시고,술을 마시며,몽상에 잠기건만,이 나라의 카페와 술집들은 획일적으로 두 사람 이상의 손님들에게 어울리는 떠들썩함으로 가득하다.


내가 오래 전 부터 해온 생각이다.
가끔은....혼자 있고 싶다.
가끔은....혼자 몽상에 빠지고 싶다.
가끔은....혼자서 술을 마시고 싶다.

여자 혼자서 술 마시는 걸 바텐더가 부담스러워 하는 그런 공간 말고,
게임하며 술 마시는 애들 때문에 떠나갈 것 같은 그런 시끄러운 술집 말고,
오랜만에 글빨 받아서 무서운 속도로 써내려 가는데 옆 테이블에서 티격태격하는 커플 때문에 신경 거슬리는 그런 카페 말고,

그냥 좀 조용하고,
음악도 좀 신경 써서 틀고(아예 틀지를 말든가, Bugs Top 1000 전체듣기 틀어 놓는 집이 제일 싫다),
늦지도 않았는데 술 취해 떠드는 사람 없고,
얼치기 손님 들어와 마이크 성능 시험하듯 크게 떠들지 않고,
쫙 빼입고 와서 묻고 답하기 놀이 하는 소개팅하는 사람들 좀 없고,
인테리어에 너무 돈을 쳐발라서 왠지 더 촌스러운 그런 공간이 아닌,

혼자 있어도 부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편안한 곳.
그런 cafe 없을까?

내가 백조였을 때,
딱 그런 cafe를 하나 찾았었는데,
그래서 거의 매일 차를 몰고 가서(백운호수 구석에 있는거라 버스나 지하철로 갈 수 없다)
책 한 권을 다 읽고, 낙서를 하고, 좀 졸기도 하다가 집에 왔다.

자주 가니까
아저씨가 음악도 내 마음대로 틀고,
커피도 알아서 타 마시고 하라고 했다.

참....행복했다.
통유리 창으로 보이는 나무들도 참 예뻤다.

농협에서 명퇴를 하고 자기가 살던 집을 개조해서 카페를 하던 아저씨.
그 카페에는 정말 사람이 없었다.
별로 돈을 버는데 관심이 없는 사람 같았다.
무슨 Jazz 동호회를 하면서, 일주일에 한번씩은 홍대 앞에 있는 Jazz house에 가서 연주를 한다고 했다.

cafe에 사람이 너무 없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시 일이 하고 싶어졌을까?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일까?

그 아저씨는 다시 취직을 했다며,
cafe 문을 닫는다는 충격 선언을 했다.
그 때는 내가 우아한 백조생활을 끝내고 한참 바쁠 때라,
거의 한달에 두세번 밖에 그 cafe에 못 갔기 때문에
더더욱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그 cafe는 없어졌다.
새로운 주인은 그 cafe를 철저히 상업적인 공간으로 변형시켰다.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듯,
cafe는 철저하게 주인이 결정짓는 공간이다.
하루 종일 어떻게 하면 매출을 더 올릴까 생각하는 여자 사장이 cafe를 운영하자, 정말 신기하게도 손님이 많아졌다.
심지어 그 외딴 곳에 단체 손님까지 온다.
하지만....난 이제 그 cafe에 가지 않는다.

홀로 몽상에 잠길 아늑한 공간.
그런 cafe 어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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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 주 스트레스를 너무 받았는지,
몸을 너무 혹사 시켰는지,
그래서 몸이 제발 신경 좀 쓰라고 반항을 하는건지,

어쨌든......아.프.다.

목이 아프다. 편도선이 퉁퉁 부었다. 심술 처럼....
열이 난다.으슬으슬 떨린다.
자꾸만 콧물이 난다. 크리넥스 한 통을 다 쓸 것 같다.

아프다.
그리고...... 외롭다.

누가 만화책이랑(펑펑 울 수 있는 순정만화)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다 주면 좋겠다. 그래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만화책을 보고 싶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참 애교가 많으시네요. 막내예요?"

난 첫째다.
딸만 셋 중에 첫째.

난 참 책임감이 강하다.미련할 만큼.
엄마 아빠한테 어리광을 부려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래서....
밖에 나가면 더 까부는 것 같다.
까불 까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촐싹거림.

아프다.
자꾸만....센티해 진다.

얼마 전에 만난 시 하나가 자꾸만 아른거린다.

올 겨울엔 나도
빨랫줄에 간신히 매달린 흰 치마 같은
금욕의 처절함을 해제하고
이글이글한 정사를 치뤄볼 것이다.

어떻게 - 슬픔의 체위를 바꾸면서
어디서 - 헤어지지 않을 곳에서
누구랑 - 헤어지지 않을 사내랑
왜 - 헤실헤실 웃는 아기를 가질까 해서
뭔가 꽉 잡고만 싶어서.

-<립스틱과 매니큐어> 중에서,신현림



아프다.
나도....뭔가 꽉 잡고 싶다.

아프다.
싸구려 감상이 뭉개 뭉개 피어난다. 담배 연기 처럼.

아프다.
누구한테 막 징징거리고 싶다.

아프다.
내가 밍키라면 아기로 변신하고 싶다.

아프다.
빨리 이 지랄 같은 우울함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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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4-11-20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신현림 시는 이글거려요... 해질녘 마다 아픈 몸들이 많은 걸 알고는 시집으로 내놓고... 아플때 잘 아프시구요, 낫거든 많이 즐거우시길... 즐찾하고 자주 오겠습니다~ ^^

kleinsusun 2004-11-20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저....근데 이 글을 보고 친구가 아이스크림이랑 삼계탕, 만화책 10권을 주고 갔어요.

감동했어요. 크리넥스 한통을 다 쓰면서 골골 거리는 토요일 오후도 아름답네요.ㅋㅋ

야클 2004-11-20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바쁘게 사셨나봐요. 푹쉬세요. 그나마 내일이 일요일이라 다행이군요. 근데.... 열나고 몸이 으슬으슬할때 아이스크림이 생각나세요? 신세대네요. *^^*

kleinsusun 2004-11-20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감기 들고 집에 있으면 아이스크림이 넘 먹고 싶어요.ㅋㅋ

크리넥스 한통과 베스킨라빈스 한통을 다 비우는 토요일.

프레이야 2004-11-20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에 열나고 목이 타니까 아이스크림 먹고 싶겠네요. 전 억지로 따뜻한 걸 마셨지만요^^ 어서 낫기바래요. 몸이 알아서 쉬어가라고 붙잡나봐요.

kleinsusun 2004-11-20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몸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럴까....몸한테 미안해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04-12-28 1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