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오랜 친구 JJ가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 니가 글을 쓰는건 좋은데,
작가들은 다 하루 종일 담배 피고, 불규칙적인 생활하고 그런거 아냐?
난 니가 글을 쓰는건 좋은데, 작가가 되는건 싫다.걱정돼."
많은 사람들이 작가,더 나아가 예술가들에 대해 이런 선입견을 갖고 있다. 꼴초에 작업이 안 되면 미친 듯 술을 퍼 마시고, 낮에 자고 밤에 작업하고, 사생활이 정돈되지 않고 등등....
작가나 예술가들이 정말 다 그럴까?
많지는 않지만, 내가 알고 지내는 몇몇의 예술가들은 아주 성실하다. 사실 성실하지 않으면 꾸준하게 작업을 할 수 없다.
소설 하나 쓰거나 그림 하나 그리고 죽을꺼 아니면 말이다.
며칠 전,신문을 보니 한국문인협회 소설분과라는 이름도 긴 단체의 소설가 100여명이 담뱃값 인상안 규탄 결의대회를 열었단다.
참....코미디언들은 생계 유지에 위기를 느낄 것 같다.
타직종 사람들이 이렇게 웃겨주니....
“담배는 소설가의 유일한 벗?” 한국문인협회 소설분과는 18일 성명을 내어, “경기 침체로 생업인 원고 집필이 점점 어려워지는데, 창작의 유일한 벗인 담뱃값을 올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정부는 담뱃값 인상 계획을 당장 철회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한겨레 18일자 기사 일부.
‘담뱃값 인상안 규탄 결의대회’에 참여한 소설가 100여명은
소설가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즉, 소설가 모두가 담배를 유일한 창작의 벗으로 삼으며,
담배값 인상에 반대하는 궐기대회에 참여하고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정치적 행동을 하는게 아니라는 거다.
"한국문인협회 소설분과".
조직 이름이 참 길다.
궁금해서 네이버 검색창에 "한국문인협회"를 치고,
이 협회의 싸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사단법인이라.....참 거창하다.
이상하게도 해병대 전우회가 연상되었다.
왜 작가들이 각각 독립적이고 자유롭게 글을 쓰면 되지, 친목모임도 아니고 사단법인까지 필요한거지?
만약 자유에 대한 동경으로 소설가가 되었다가
이런 "사단법인"에 가입해야 한다면 참으로 갑갑할 것 같다.
이런 소설가들이 "창작의 유일한 벗" 운운하느니,
차라리 공사장에서 일하시는 아저씨들이
하루 종일 안전하지 않은 작업장에서 힘 쓰고
소주 한 잔 하면서 모여 앉아 피우는 담배가 얼마나 맛있는데,
경기가 나빠서 옛날 만큼 수당도 못 받는 이 힘든 시기에
담배값 까지 올리는건 너무하지 않냐고 궐기대회를 하는게 더 설득력 있을 것 같다.
이 기사를 읽고,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를 다시 읽었다.
문학은 읽는 것이며 쓰는 것이지,논하는 것이 아니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소설쓰기를 목표로 하는 자는,문학론 따위와는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해야 한다.그리고 홀로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마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세상을 혼자 살아가겠다는 사고는 오만불손하기 짝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런 일을 하는 이상은 무리가 되더라도 혼자 사는 방식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샐러리맨 같은 생활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고독을 이길 힘이 없다면 문학을 목표로 할 자격이 없다.
세상에 대해,혹은 모든 집단과 조직에 홀로 버틸 대로 버티며 거기에서 튕겨나오는 스파크를 글로 환원해야 한다.가장 위태로운 입장에 서서 불안정한 발밑을 끊임없이 자각하면서 아슬아슬한 선상에서 몸으로 부딪히는 그 반복이 순수문학을 하는 사람의 자세인 것이다.
- <소설가의 각오>중에서.
글 쓰다가 막힐 때,
꽉 막혀서 단 한 줄도 더 써지지 않을 때,
그럴 때 담배 한 대가 큰 위안이 될 수 있다.
<흡연여성 잔혹사>의 저자 서명숙은 담배를 가르켜
"영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존재라고 말하기도 했다.
자신이 작업할 때 담배가 도움이 된다면 피우는거 좋다.
밤새 담배를 피우면서 작업하는게 도움이 된다면, 그건 소설가의 전적인 자유다.
하지만...
100명씩 마로니에 공원에 모여서 결의대회를 하고,
국회에 성명서를 제출하며 단체행동을 하는 것은....
코미디다.
소설가의 고뇌의 원천은 일상생활의 태도에 있지 않을까.그렇게 무질서한 생활을 하다 보면, 어떤 인간이든 기존 소설가와 비슷한 타입이 되지 않을까.요컨대 그것은 일종의 정신병이 아닐까.
내게는 물론 정신도 있지만 그에 앞서 육체가 있다.그런 당연한 사실을 깜박 잊고 있었던 것이다.소설을 쓰느냐,마느냐 하기 이전에,젊은 이 육체를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였다.
- <소설가의 각오>
이런 생각으로 마루야마 겐지는 시골로 내려가서,
자연의 품에 안겨 글을 쓰는데 전념했다.
소설가들이 다 마루야마 겐지 처럼 고독하고 절제된 생활을 할 필요는 없다.
다만..... 모임을 줄이고 혼자서 글을 쓴다면 담배값 오른 만큼의 생활비는 줄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