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장정일 단상
장정일 지음 / 행복한책읽기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아름다운 설 연휴의 첫날,
토요일 오후 커피빈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장정일의 <생각>을 읽었다. 친구의 "늦는다"는 전화가 반가웠다.
오랫만에 만난 장정일의 글이었기에....

이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궁금하다.
이 책이 많이 팔렸다면
그건 장정일에게 "골수 팬"이 많음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나 같은...

이 책은 다섯 꼭지의 글모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 아무 뜻도 없어요 I 7
- 신작시 I 187
- 전영잡감 I 195
- 삼국지 시사파일 I 223
- 나의 삼국지 야야기 I 255

먼저 "아무 뜻도 없어요".
대부분 <장정일 화두,혹은 코드>에 그대로 실렸던 글들이다.

다음, "전영잡감".
장정일의 영화감상문 11편은 부산 모신문사에 연재했던 글들이다.

또, "삼국지 시사파일".
1년 전,그러니까 04년 2월~3월 문화일보에 연재했던 글들이다.

마지막으로 "나의 삼국지 이야기".
작가가 직접 쓴 "광고"다.
왜 장정일은 삼국지를 썼는가,
왜 독자들은 삼국지를,그것도 장정일의 삼국지를 읽어야 하는가...

다른 소설가가 이런 책을 냈다면,
절대 사지 않았을거다.
난 리메이크 앨범을 내는 가수들이나 신문에 연재했던 산문들에
천연색 일러스트레이션이나 사진만 몇개 끼워서 단행본을 내는 소설가들이 얄밉다.
요즘 돈이 없구나....이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장정일, 바로 장정일이 낸 산문집이기에
아껴가며, 친구가 좀 더 늦게 오기를 바라며 읽었다.
왜? 재미있으니까.

물려받은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변변한 졸업장도 없다. 배운 기술이라곤 글쓰기 뿐.
그래서 소설을 쓰지 못하고,절필할 때 하지 못하고 글판에
어기적거리다가 감옥까지 가게 됐다.
(p16)

장정일에게 "글쓰기"란
보통의 글쟁이들이 말하는 "삶을 지탱하는~" 어쩌구하는 요란한게 아니라,생계를 위한 "기술"이다.
이름도 긴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 소설분과" 소속 소설가 선생님들이 담뱃값 인상안 규탄 궐의대회를 하며 코미디언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을 때, 장정일은 한줄을 더 쓴다.혼자서.

장정일은 원고청탁을 많이 받는 것을 "자랑"으로 알고,
청탁을 받고나서야 글을 쓰는 사람들을 비웃는다.

내가 보기에 매문이란 자신의 시간을 바쳐 글을 쓴 대가로 응분의 원고료를 받는 일이 아니라,청탁을 받고나서야 글을 쓰는 일을 말한다.자발적인 동기에 의해 쓰여지지 않고 다른 사람에 의해 주어진 주제와 분량을 마감일에 맞추어 써내는 수동적이고 기계적인 글쓰기 행태는 죄다 매문에 속한다....(중략)......

하지만 대개의 문인들은 100% 매문에 다름 아닌 청탁에 의한 글쓰기를 영광스러워하고 즐거움과 자발성의 글쓰기 산물인 투고를 쪽팔려한다.....(중략)....투고야말로 가장 정당한 의미에서의 강한 섹트를 만들며 글쓰기의 경쟁력을 높인다.
(p27~28)

아....속이 다 시원하다.역시 장정일.
유명한 음악가 귀국연주회에 "초대권"을 받아 가는것을 자랑스러워
하고,스스로 잡지사에 전화를 걸어 "투고"하는 행위를 쪽팔려하는 그 엄청난 권위의식. "봤어? 나 이런 사람이야.거 참....그렇게 거절을 해도 편집자가 찾아오네..."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고(10권 세트를 사서 읽었다), 다시는 삼국지를 읽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 부터 삼국지를 모르면 어떻고, 삼국지를 세번 읽으면 어떻고 하도 얘기를 들어서 삼국지를 꼭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삼국지는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구나...
그리하여 신입사원 때, 사회인이 된 기념으로 이문열의 삼국지 10권을 읽었다.그리고...실망했다.아니 실망했다기 보다 끔찍했다.

뭐가 그렇게 끔찍했냐구?
유비가 여포에게 쫓겨 산길을 헤멜 때,
한 사냥꾼인지 농부가 유비를 대접했다.
그 고기는....마누라의 살이었다.
사냥꾼인지 농부는 아내는 또 얻으면 되니 어서 드시라고 한다.
유비는....기가 막히게도 유비는...감동한다.

이렇게 끔찍하거나 어이 없는 장면들이 가득한 삼국지를 읽으면서-
(남자들은 이런 장면이 있었는지 기억도 못할꺼다) - 왜 삼국지를 꼭 읽어야 하는가, 왜 삼국지를 안 읽으면 큰일 난다고 하는가...생각했다.

장정일이 쓴 "나의 삼국지 이야기"에는 장정일이 여성 독자들에게 쓴 편지가 있다.

....<삼국지>의 여주인공들은 각자 개성을 가진 인격체가 아니라,당대의 가부장적 국가이념을 널리 알리는 선전 수단으로 기용되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중략)....
남성들은 여성의 접근을 막아놓은 그들만의 흑막 뒤에서 유치한 놀이를 하지요....(중략)....
여성잔혹극이 두려워서거나 도저히 남성적 서사에 질려 아직껏 <삼국지>를 읽어 보지 못했던 여성 독자님들,<삼국지>를 읽어 보십시오.천하를 차지하기 위해 용호상박의 싸움을 벌이는 남자들의 전 생애가 위선과 자기 기만과 모략에 더하여 굴종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삼국지>를 보며 비웃어 주십시오!
(p279~282)

아...장정일.
장정일은 삼국지 10권을 사기 위해 지갑을 열 또 한명의 독자를 확보했다.

삼국지를 다 읽고 나서,
후회하지 않을 수 있기를,
행복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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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5-02-11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니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 차에, 수선님 리뷰를 읽으니, 어찌 아니 사볼소냐...껄껄... 헌책방에서 그의 독서일기 두번째 권을 구해서 읽었어요. 장정일이 감옥에 들어갔다 오는 바람에 과소평가 되버린 건 아닌지. 저두 장정일 삼국지에 올인입니다. (읽겠다는 거지요...^^) 추천합니다.

2005-02-12 0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야클 2005-02-12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삼국지를 보는 이유..... 술좌석이나 식사후 잡담시간에 남들 다 아는 유행어 혼자 몰라서 바보되는듯한 느낌 피하려고 억지로 시간내서 개그콘서트 보는 거랑 비슷하다고 할까요?
하여간 남들 다 읽어봤다는 건 읽어봐야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책 읽고 감동먹을 정도로 공감하느냐 비판적으로 읽느냐는 그 뒷 문제구요.
어쨌든 저는 별 의미없는 10권짜리 무협소설도 심심풀이로 잘 읽는 사람이니까 삼국지는 몇년에 한번씩 읽지요. 내년쯤 장씨 아저씨꺼는 사 볼 까나~~~ ^^

kleinsusun 2005-02-12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만약 <장정일 화두,혹은 코드> 안 읽으셨다면 <생각> 보다는 <장정일 화두,혹은 코드>를 권합니당. 장정일이라는 인간을 여러각도에서 조명한 글들을 읽을 수 있구요, 강금실의 글도 읽을 수 있답니다. <생각>보다 스펙트럼이 훨씬 넒어요.
야클님, "억지로 시간내서 개콘을 보다" 우하하. 요즘엔 억지로 시간내서 "우찾사"를 봐야해요.개콘은 이제 한물 갔어용.ㅋㅋ "우찾사" 보고 "생뚱맞게"를 따라해야 하는...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moonnight 2005-02-12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덕분에 장정일 작가의 글에 입문하게 될 거 같습니다. 더불어 삼국지에두요. ^^; 삼국지 몇 번 읽었네 거들먹거리면서 제가 들고 있는 책들을 소설 나부랭이라고 폄하하는 남자들이 너무 싫어서 삼국지를 외면했던 단순한 인간이 저였답니다. ^^ 리뷰 감사합니다. 항상 제 맘을 시워~언하게 해주시는 수선님의 글이 참 좋습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

icaru 2005-02-12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정일...하면 그의 독서일기가 생각나요...유일하게 읽은 그의 책이기도 하고요...제3권이었나 4권이었나 5권이었나 그랬는데...
장정일 화두,혹은 코드...흠...이것도 킁킁...수소문해봐야겠어요...

kleinsusun 2005-02-12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oonnight님, 삼국지랑 무협지 밖에 읽은 책도 없으면서 그 책이 세상의 모든 책인것 처럼 잘난 "척"하며 "순정만화" 읽는 사람 무시하는 남자들있죠? 저도 그런 사람들 주위에 있어요.사사건건 삼국지 얘기하는...ㅋㅋ 삼국지 안 읽으셨으면 한번 읽어보세요,장정일편으로! 야클님 말대로 삼국지에서 나오는 비유나 이야기거리들이 대화 중 넘넘 많거든요.행복한 주말 보내세용!
복순이 언니님, <장정일 화두,혹은 코드> 읽어보세요! 좋아하실꺼예요.
박완서 선생님 책 리뷰 2편 잘 읽었습니당. 행복한 주말 보내세용!

2005-02-12 1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kleinsusun 2005-02-12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산이신님, 감사합니다.제목을 틀렸네요.ㅋㅋ 아...정정일!
오늘 일하세요? 저는 연휴에 무리해서 놀고 감기가 들어 방콕하고 있답니다.ㅠㅠ

2005-02-12 17: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이 소설은 진.정. 웃기기로 유명하다.

이 소설을 읽은 수많은 사람들의 독후감을 요약하면
"통쾌하게, 눈물이 나도록 웃기는 책" 또는
"웃다가 허리가 휘어지는 책".

소설가 김영하도 "웃자"라는 제목의 리스트에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올렸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그 리스트에
성석제의 <조동관 약전>,
현태준의 <뽈랄라 대행진>
무라카미 류의 <69>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웃기는 책"으로 나를 유혹했다.

이 책을 산건 1년 전.
아....정말 읽고 싶었다.
책장에서 이 책과 눈이 마주칠 때 마다 읽고 싶었다.
그런데...왜 안 읽었느냐구? 아껴 읽고 싶어서?

아니다.아니다.아니다.

이 책을 읽기가 두려웠다.
뭐가 두렵냐구? 웃겨서 기절할까봐?

아니다.아니다.아니다.

난 "야구"가 두려웠다.
야구를 기억하는게 두려웠다.
난...야구를 잊고 살고 있었다.

내가 야구장에 처음 간건, 2000년 여름이었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2000년 여름 잠실, LG와 두산의 경기.

야구장은 생각 보다 훨씬 컸고,
처음 바다를 보는 것처럼 속이 후련했다.

야구에 전혀 관심이 없던 내가
야구장에 가게 된건....그건....
야구를 사랑하는 남자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별다른 취미도 특기도 없었던 그 남자.
야구 하나만은 정말 정말 좋아했다.
야구 얘기만 나오면 눈이 반짝거렸다.

새로운 일이나 관심거리를 만나면 항상 관련된 책을 찾아 읽는 나는 레너드 코페트의 <야구란 무엇인가 1~2>까지 읽었다.이 책... 야구경기 규칙 설명하는 그런 책 아니다. 전문서다.
"산업"으로서의 야구를 설명하는...

그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
난 정말 야구에 관심이 없었다.
야구 규칙도 제대로 몰랐다.
<아는 여자>에서의 이나영 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었다고나 할까...

2000년 여름.
그 남자를 만나면서 나는 야구를 알게됐다.
야구장에 가고,
야구장에서 실컷 소리를 지르며 응원을 하고,
KFC 팝콘치킨과 맥주를 마시며 좋아라 하고,
<야구란 무엇인가> 책까지 읽으며 공부를 했다.
기왕 시작하면 "파고야" 마는 내 생격은
야구를 "공부"하게 했다.
야구는...참 재미있었다.
어찌 야구를 모르고 인생을 살아왔을까...이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남자와 헤어진 후...
다시 야구에 관심이 없어졌다.

야구장에 한번도 가지 않았고,
TV에서 야구중계를 하고 있어도 드라마로 돌려 버렸고,
누가 야구 얘기를 하면 하품을 했다.
이번 시즌에 어떤 팀이 우승을 했는가 하는
그냥 신문만 대충 봐도 알 수 있는 정보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정말 정말 웃긴다는,
너무 웃겨서 읽으면서 기절할 뻔 했다는 소설이...
하필 야구를 소재로 한 거였다.

야구를 멀리 하듯이,
난 이 소설도 멀리 했다.
의식적으로 멀리하지 않아도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어제...
설 연휴를 달랑 하루 남겨두고
이 책을 읽었다.

정말....눈물이 나도록...웃겼다.
읽으면서 연신 키득거렸다.
아....웃겨,웃겨,정말 웃겨.
앞으로 박민규가 책을 내면 계속 사주고 싶을 정도로 웃기다.

"가벼움"과 "진지함"이,능숙한 성석제의 칵테일처럼 잘 섞이지 않고,
진지할 때 갑자기 너무 진지해져서 읽는 이를 당황하게 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이렇게 웃긴 소설을 읽고 쓸데 없는 "썰"을 푸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자제한다.
썰이야 나같은 회사원들 가만 있어도 평론가 아저씨들이 넘쳐나게 푸시니깐...

68년생 소설가 박민규.그가 쓴 작가의 말.

이 소설을 시작했을 무렵엔, 아무 대책이 없었다.
4번의 이직 끝에 결국 사표를 냈고,내친김에 빚을 얻어 노트북을 사버렸다.여름이었다.늘 그랬든 모든 게 엉망이었지만,기분은 좋았다.언제나 그랬듯,맴맴맴.

그래서 간 곳이 삼천포였다.삼천포도 처음,소설을 쓰는 것도 처음이었다.모든 게 처음이었지만,여전히 기분은 좋았다.바라던 소설을 쓸 수 있어 모든 게 흡족.단지 비타민 C가 조금 부족한,서른 두 살의 나이였다.


박민규처럼 낙관적이면 좋겠다.
연휴를 하루 남겨둔 2월, 실컷 놀고 감기에 걸렸다.콜록 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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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2-11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웃긴 소설을 읽고 쓸데없는 썰을 푸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호호호~~~ 왕창 웃고 갑니다.^^

nemuko 2005-02-11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구 감기 걸리셨군요. 푸욱 쉬실래도 이젠 연휴가 끝나버린건가요...
이 소설이랑은 상관없는 얘긴데. 저도 스포츠랑 친하지 않은 관계로 월드컵 전까지는 축구에 포지션이란게 있다는 것도 몰랐답니다. 다같이 우루루 뛰다가 젤 앞에 있는 사람이 골을 넣는 건줄 알았다지요. 어제 밥먹다 그 이야길 꺼냈는데 어찌나 무시를 당했던지 ㅠ.ㅜ
여튼 감기 얼른 나으시길 빕니다^^

kleinsusun 2005-02-11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진정 웃기기에 썰풀기가 미안한 책이예요. 로드무비님도 읽으셨나요?
numuko님,"다같이 우루루 뛰다가 젤 앞에 있는 사람이 골을 넣다". 넘 재미있어요!!!
저도 월드컵할 때 축구장 첨 가봤어요. 한국-터키 3~4위전 보려고 대구까지 갔었죠.
TV 중계볼 때는 클로즈업도 해주고, 해설도 있고 한데 축구장에서 보니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더군요.심지어 누가 골을 넣었는지... 누구나 스포츠를 좋아할 수 있나요? 설날에도 축구 안봤어요.ㅋㅋ

코마개 2005-02-21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의 차라리 웃기던 그 80년대를 더더욱 웃기게 쓴 책이죠. 성석제 소설중에 '아빠 아빠 불쌍한우리아빠'도 죽여주죠.

야클 2005-04-10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hanks to 한방! ^^
 
사랑해야 하는 딸들 - 단편
요시나가 후미 지음 / 시공사(만화)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몇년 전 MBC <느낌표>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는 "어떤 책을 즐겨 읽으세요?"라는 질문으로 거리 인터뷰를 했다. 만화책을 즐겨 읽는다는 대답에 유재석과 김용만은 웃음을 터뜨렸고, 이 사건으로 <느낌표> PD 및 유재석,김용만은 배 터지게 욕을 먹었다.

이 사건은 만화를 무시하고,
독서라 하면 제목부터 뭔가 "그럴듯해 보이는", "있어 보이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편견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라 하겠다.

독서에 관한 이런 "편견"에 부딪힐 때 마다 갑갑하다.
왜 사람들은 "어려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느낌표> 추천 도서들이 서점을 장악하고,
지하철에 탄 수많은 사람들의 손에 하나 같이 "느낌표 추천 도서"가 들려 있는 것도 참말로 웃기는 일이다.

책 읽을 때, 우리는 행복해야 한다.
책 읽는 순간이 즐거워야 한다.

이 추운 날,
방 바닥에 배깔고 누워 뒹굴뒹굴하면서 좋아하는 책을 읽을 수 있다면...그건 완벽에 가까운 행복!

말이 길었다.
너무도 훌륭한 만화책을 읽고,
만화책을 무시한 <느낌표>가 생각나는 바람에...

<사랑해야 하는 딸들>.
"요시나가 후미"의 전작주의자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요시나가 후미가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을 공부한 적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요시나가 후미는 그 어떤 어려운 단어 하나 쓰고 있지 않지만, 사랑에 빠진, 또는 사랑 불능 상태인 여자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고 있다. 놀라움에 빠져 책을 읽었다.

자신에게 폭력적인, 나쁜 남자만을 사랑하는 여자,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는 철저한 자기부정에 시달리는 여자,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자기애를 상실해 가는 여자,
못생겼다는 컴플렉스에 짓눌려 이쁜 자신의 딸을 학대하는 여자,
사랑은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닫고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대하기 위해 수녀가 되는 여자...

요시나가 후미의 만화 속에는 각기 다른 사랑을 하는, 각기 다른 아픔을 겪는 많은 여자들이 등장한다.

총 여섯편의 만화 속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야코 이야기.

사야코의 할아버지는 마르크스주의자였다.
어렸을 때 부터 할아버지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고 가르치셨고,
사야코는 "사람을 차별해선 안된다"는 강박증에 시달려 왔다.
착한 사야코는 이 강박증 때문에 연애 한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남자 친구와 다른 남자들을 똑 같이 대하니 그럴 수 밖에...

선을 본 남자와 사랑에 빠진 사야코.
사야코는 친구에게 말한다.

"사랑을 한다는 건 사람을 차별한다는 거쟎아."

그렇다. 사랑을 한다는 건 사람을 차별한다는 거다.
한 사람을 특별히,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랑하는 거다.

너무너무 당연한 것 같지만,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 사야코 같은 사람들을 몇번 만난 적이 있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들...
그래서 항상 "오해"를 받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자기의 잘못(?)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잘해준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누구에게도 잘해 주지 못한다는 말이 될 수 있다.

사랑은 항상 이렇듯 "딜레마"를 만든다.
자기의 원칙을 다 지키면서 사랑에 빠지는건 넘넘 어려우니까...
그래서....연애는 재미있다.
때론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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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5-02-10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누구에게나 잘해주지만 어느 누구에게는 "특별히 더" 잘 해준다는 얘길 듣고싶어요. 그게그건가???
연휴 마지막 날인가요? 아니면 3일이 더 남았나요? 전 오늘이 마지막. ㅠ.ㅠ

kleinsusun 2005-02-10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아주 이상적이죠. 누구에게나 잘해주고, 어느 누구에겐 "특별히" 잘해 준다면...
저도 내일 출근해요.그래도 내일은 상무님,팀장님 다 없어요.월,금중에 선택해서 쉬거든요.ㅋㅋ....

2005-02-11 0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kleinsusun 2005-02-11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랜만에 출근했어요. 오늘도 쉬는 회사들이 많아서 출근길이 한산하더군요.
저희는 월,금 선택 휴무라 사무실이 텅 비었어요.상무님, 팀장님 다 안계시답니다.아싸~ ㅋㅋ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icaru 2005-02-11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히~! 수선 님...오늘 조금 널널하셔도 되겠다~!
님도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로드무비 2005-02-11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감기 걸리셨다더니 이제 괜찮으신 거예요?
저도 어제 책꽂이 정리 좀 했습니다.
연휴 그냥 보내는 게 좀 아쉬워서요.
요시나가 후미 리뷰도 역시 좋습니다.
미혼 때는 그 '차별'이 끔찍하게 싫게 여겨지더니
이젠 암시랑토 않습니다.
어차피 가족이 되었는데 내가 사랑 안해주면 우짤낍니까?ㅎㅎ

kleinsusun 2005-02-11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오늘 널널한 하루를 즐기고 있어용.ㅋㅋ
평소에도 이러면 회사생활이 즐거울것 같아요.
요시나가 후미의 <더 이상 말하지마> 샀어요. 요시나가 후미 멋져요!
 
조용한 열정
조은 지음, 정경자 사진 / 마음산책 / 2004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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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 시인의 <벼랑에서 살다>를 읽고
그 치열한 자기고백과 솔직하고 절제된 문장에 반했었다.
멋부리지 않은 절제된 문장과 어울어진 김홍희의 여운이 남는 사진도 좋았다.
그래서 조은 시인의 두번째 산문집을 망설임 없이 샀다.읽었다.
그리고....실망했다.

<벼랑에서 살다>는 일상을 보듬는 시인의 글들과 그 일상을 겸손하게 담아낸 사진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마치 동양화 속의 겸손한 산과 여백처럼...

<조용한 열정>에 가득한 사진들은
시골 아줌마가 요란한 짝퉁 헤르메스 스카프를 둘러매고 있는 것처럼 어색하다. 뭔가 "억지"스럽다.사진의 제목도 하나 같이 요란하고 작위적이다.

"굳어버린 것의 아픔","비껴가는 마음"."구분되는 내면","어둠을 뚫는 시선","기다림에는 체온이 남는다" 등 사진의 제목들은 하나 같이 거창하다. 차라리 제목이 없으면 좋을 것 같다. 어둠 속에 희미한 실루엣만 드러나는 사진들이 대부분이라 도대체 이 거창한 제목의 사진들이 뭘 말하려 하는지 모르겠다. 사진전도 아니고, 사진집도 아니고, 산문집 속의 사진이 산문과 어울어지지 않고 너무 튄다.

<벼랑에서 살다>가 시인의 일상에서 건져올린,생활에서 길어올린 건강한 글이라면,
<조용한 열정>은 기억을 붙잡아 쓴, 기억에 의지해서 쓴 글이다.

어렸을 때 지독하게 편식을 했던 이야기, 언니들의 사회과부도를 엿장사에게 팔아 친구들에게 엿을 사준 이야기,학생 때 극장에 갔다가 선생님께 들킨 이야기, 친구들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준 이야기...

술자리에서 누군가의 어렸을 때 얘기나 군대 얘기가 너무 길어지면 지루하다. 하는 사람은 신나기 때문에 말릴 수도 없다. 온통 기억을 불러온 글들은 힘이 딸린다.

기대가 커서였을까....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사족) 조은 시인의 계속되는 "그녀들"이라는 표현이 거슬린다.
무슨 영어소설을 번역한 글도 아니고 왜 그렇게 끊임 없이 "그녀들"이라는 표현을 쓰는지...
"언니들은..." 하면 될 것을 "그녀들은...",
"친구들은..." 하면 될 것을 "그녀들은...".
꼭 "그녀들"이라고 호칭할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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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5-02-09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작가건 항상 좋은 글만 쓸 수는 없겠죠. 아무리 착하더라도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으로 보여지기 힘들듯이. 그나저나 수선님, 연휴 잘 보내세요. 즐겁게. 그리고 행복하게. ^^

moonnight 2005-02-09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조은 시인의 <벼랑에서 살다>를 참 좋아했었어요.
몇 번이나 읽었고 그녀가 살았던 조그만 한옥집을 머리속에 열심히 그려보았었죠. 신경숙 작가가 그렇게 편하게 잠들수 있었다는 그곳이 어찌 그렇게 한 번 보고 싶던지. ^^..
그러면서도 어쩐지 작가의 말투에 정이 가지는 않더라구요. 건강한 자존심을 지나 독선과 아집같은 게 언뜻 언뜻 느껴져서 마음이 좀 불편했었어요. <벼랑에서 살다>가 조은 시인의 작품을 읽은 걸로는 유일해요.
사진이 너무 좋아서 김홍희 작가의 다른 책들을 찾아 본 것과는 많이 달랐죠. ^^;
역시 솔직하고 소박한 글이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나봐요.
리뷰 감사합니다. ^^ 음력으로도 확실히-_- 새해가 시작되었군요. 명절, 많이 바쁘지 않으신가요? 느긋하고 평온하게 보내실 수 있길 바래요. 건강하세요! ^^

kleinsusun 2005-02-09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moonnight님, 편안한 연휴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 부모님께서 새뱃돈을 주셨어요. "머쓱"하더군요.
이젠 안주셔도 된다고 사양하는데, 카드까지 써서 주시니...
moonnight님, 예리하시군요.건강한 자존심을 지난 독선과 아집.
<조용한 열정>은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한 책이었어요.
남은 연휴 행복하게 잘 아껴 쓰세용!
 

요즘 많은 남자들이 "에쎄" 같은 삐쩍 마른 담배를 핀다.
"버지니아 슬림" 같은 슬림한 담배들은 니코틴 섭취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패션"일꺼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다.

근데...
난 남자들이 온갖 폼 다 잡고 이런 삐쩍 마른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웃음이 난다.그것도 아저씨들이 너무도 진지한 표정으로 에쎄를 피우고 있으면...

끊을려면 끊던지,
피울려면 그냥 통통한 놈을 맛있게 피우던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금연빌딩 23층에서 고속 엘레베터를 타고 1층까지 내려가서 오들오들 떨면서 에쎄를 피우는 모습이란...
딴 생각을 하며 애써 웃지 않으려 해도 웃음이 난다.우하하하하하.

이 추운 날에,
이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모습으로,
짧고 두리뭉실한 손가락으로 삐쩍 마른 길쭉한 담배를
오들오들 떨면서 피우고 있으니 좀 불쌍해 보이기도 한다.

담배들의 이름이 자꾸 길어진다.
OOOOOOO Light
OOOOOOO Super Light
이제 좀 있으면 "Ultra" Super Light도 나올꺼다.

담배에도,음료에도 Light,Super Light, Ultra Super Light....
조금이라도 몸에 나쁜 성분이 덜한걸 사라고 광고들이 꼬신다.

"디지털"이 한참 유행할 때는 술집 안주까지 "디지털"이런게 있더니,
이젠 어디가나 "웰빙","웰빙"이다.

얼마 전 회사 지하 식당가가 보수를 하고 새로 문을 열었는데,
라면집 이름이 "웰빙"이다. 웃기다.우하하하하하.

라면 처럼 환경을 오염시키고, 몸에 나쁜 음식도 드문데,
라면에 산삼 넣어서 끓여 주는것도 아닌데
왜 하필 하고 많은 이름 중에서 라면집 이름을 "웰빙"이라고 지었을까?

구천원 짜리 "웰빙세트"도 있다.
김밥 + 순대볶음 + 쫄면 + 만두.
뭐가 웰빙인지는....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대체....웰빙이란 뭘까?

먹는거, 마시는거, 피우는거를 고를 때,
사람들은 "Light"를 찾고,"Super Light"를 찾고,"웰빙"스러운걸 찾는다.

콜라 중독인 사촌동생이,
살찔까봐 코카콜라 라이트를 마시고 있던 내게 말했다.
"그거 무슨 맛으로 먹냐? 차라리 마시지 말지?"

그렇다.
스트레스 넘치게 받고, 디스 플러스 대신 에쎄를 핀다고 해서
건강해지지는 않을거다.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 된다.
담배갑에 "Light" 써있는거 피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인생을 "Light"하게 사는게 중요하다.

가볍게, 가볍게, 콧노래를 부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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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2-02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처럼~랄랄라~!~

icaru 2005-02-02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을 "Light"하게라~...
마자요...몸이 무거우면...기분이라도 라이트하게...룰루~!

세벌식자판 2005-02-02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들한테 종종 잔소리 하거든요.
건강 생각해서 담배 좀 끊으라고요...
그럴 때마다 친구들이 이런 대답을 하더군요.

"임마! 담배 만큼 정신 건강에 좋은 식품(?)이 있늘 줄 아냐?! ^^; " 라구요.

안 피는게 좋죠 뭐... ^^;

moonnight 2005-02-02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서 기분이 좋아졌어요. ^^
술 좀 작작 마시라는 -_- 지인들에게 기분좋게 마시면 약이라고 주장했거든요. ^^; 물론 많이 마시면 안 되지만요. ㅠㅠ
웰빙.. 요즘 정말 어딜 가나 등장하는 말인거 같은데 수선님 말씀처럼 정말 중요한 건 마음이겠지요.
스트레스 덜 받기, 많이 웃기, 가볍게 가볍게.. 저도 인생을 lighter하게 살아볼래요. 멋진 글 감사합니다. 추천!! ^^

코마개 2005-02-02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못먹어 스트레스 받느니 먹고 즐겁자. 가려먹고 골라먹는다고 무공해 청정 되지도 않을거...근데 죽으면 꼭 화장해야지. 각종 약품으로 천년만년 안썩을지도 모르니 ㅎㅎㅎ

글샘 2005-02-03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게 바로 수선님 글이 좋은 이유랍니다. 가볍게 가볍게 이야기하면서, 일관성 있는 <생각> 말이죠. 담배 옆구리에 보면 타르 양이 적혀 있는데요, 라이트가 그 수치가 낮은 거래요. 글쎄, 담배나 술 안 피우고 안 마시는 사회를 만드는 것도 중요할텐데요... 웰빙 바람은 상업용이니 그렇다 쳐도, 정말 '잘 사는'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좌충우돌 성대리의 글을 읽는 맛도 '잘 사는'걸 도와줍니다. 잘 읽고 갑니다.

nemuko 2005-02-05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기분도 light 해 지셨는지^^ 명절이건 뭐건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던데. 그래도 결혼을 하고 나니 제 맘대로 무관해 지지 않네요. 맛난 떡국이라도 꼭 드시구 설연휴 푸욱 쉬시길 바래요^^

2005-02-06 0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