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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 장정일 단상
장정일 지음 / 행복한책읽기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아름다운 설 연휴의 첫날,
토요일 오후 커피빈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장정일의 <생각>을 읽었다. 친구의 "늦는다"는 전화가 반가웠다.
오랫만에 만난 장정일의 글이었기에....
이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궁금하다.
이 책이 많이 팔렸다면
그건 장정일에게 "골수 팬"이 많음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나 같은...
이 책은 다섯 꼭지의 글모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 아무 뜻도 없어요 I 7
- 신작시 I 187
- 전영잡감 I 195
- 삼국지 시사파일 I 223
- 나의 삼국지 야야기 I 255
먼저 "아무 뜻도 없어요".
대부분 <장정일 화두,혹은 코드>에 그대로 실렸던 글들이다.
다음, "전영잡감".
장정일의 영화감상문 11편은 부산 모신문사에 연재했던 글들이다.
또, "삼국지 시사파일".
1년 전,그러니까 04년 2월~3월 문화일보에 연재했던 글들이다.
마지막으로 "나의 삼국지 이야기".
작가가 직접 쓴 "광고"다.
왜 장정일은 삼국지를 썼는가,
왜 독자들은 삼국지를,그것도 장정일의 삼국지를 읽어야 하는가...
다른 소설가가 이런 책을 냈다면,
절대 사지 않았을거다.
난 리메이크 앨범을 내는 가수들이나 신문에 연재했던 산문들에
천연색 일러스트레이션이나 사진만 몇개 끼워서 단행본을 내는 소설가들이 얄밉다.
요즘 돈이 없구나....이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장정일, 바로 장정일이 낸 산문집이기에
아껴가며, 친구가 좀 더 늦게 오기를 바라며 읽었다.
왜? 재미있으니까.
물려받은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변변한 졸업장도 없다. 배운 기술이라곤 글쓰기 뿐.
그래서 소설을 쓰지 못하고,절필할 때 하지 못하고 글판에
어기적거리다가 감옥까지 가게 됐다.(p16)
장정일에게 "글쓰기"란
보통의 글쟁이들이 말하는 "삶을 지탱하는~" 어쩌구하는 요란한게 아니라,생계를 위한 "기술"이다.
이름도 긴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 소설분과" 소속 소설가 선생님들이 담뱃값 인상안 규탄 궐의대회를 하며 코미디언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을 때, 장정일은 한줄을 더 쓴다.혼자서.
장정일은 원고청탁을 많이 받는 것을 "자랑"으로 알고,
청탁을 받고나서야 글을 쓰는 사람들을 비웃는다.
내가 보기에 매문이란 자신의 시간을 바쳐 글을 쓴 대가로 응분의 원고료를 받는 일이 아니라,청탁을 받고나서야 글을 쓰는 일을 말한다.자발적인 동기에 의해 쓰여지지 않고 다른 사람에 의해 주어진 주제와 분량을 마감일에 맞추어 써내는 수동적이고 기계적인 글쓰기 행태는 죄다 매문에 속한다....(중략)......
하지만 대개의 문인들은 100% 매문에 다름 아닌 청탁에 의한 글쓰기를 영광스러워하고 즐거움과 자발성의 글쓰기 산물인 투고를 쪽팔려한다.....(중략)....투고야말로 가장 정당한 의미에서의 강한 섹트를 만들며 글쓰기의 경쟁력을 높인다.(p27~28)
아....속이 다 시원하다.역시 장정일.
유명한 음악가 귀국연주회에 "초대권"을 받아 가는것을 자랑스러워
하고,스스로 잡지사에 전화를 걸어 "투고"하는 행위를 쪽팔려하는 그 엄청난 권위의식. "봤어? 나 이런 사람이야.거 참....그렇게 거절을 해도 편집자가 찾아오네..."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고(10권 세트를 사서 읽었다), 다시는 삼국지를 읽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 부터 삼국지를 모르면 어떻고, 삼국지를 세번 읽으면 어떻고 하도 얘기를 들어서 삼국지를 꼭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삼국지는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구나...
그리하여 신입사원 때, 사회인이 된 기념으로 이문열의 삼국지 10권을 읽었다.그리고...실망했다.아니 실망했다기 보다 끔찍했다.
뭐가 그렇게 끔찍했냐구?
유비가 여포에게 쫓겨 산길을 헤멜 때,
한 사냥꾼인지 농부가 유비를 대접했다.
그 고기는....마누라의 살이었다.
사냥꾼인지 농부는 아내는 또 얻으면 되니 어서 드시라고 한다.
유비는....기가 막히게도 유비는...감동한다.
이렇게 끔찍하거나 어이 없는 장면들이 가득한 삼국지를 읽으면서-
(남자들은 이런 장면이 있었는지 기억도 못할꺼다) - 왜 삼국지를 꼭 읽어야 하는가, 왜 삼국지를 안 읽으면 큰일 난다고 하는가...생각했다.
장정일이 쓴 "나의 삼국지 이야기"에는 장정일이 여성 독자들에게 쓴 편지가 있다.
....<삼국지>의 여주인공들은 각자 개성을 가진 인격체가 아니라,당대의 가부장적 국가이념을 널리 알리는 선전 수단으로 기용되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중략)....
남성들은 여성의 접근을 막아놓은 그들만의 흑막 뒤에서 유치한 놀이를 하지요....(중략)....
여성잔혹극이 두려워서거나 도저히 남성적 서사에 질려 아직껏 <삼국지>를 읽어 보지 못했던 여성 독자님들,<삼국지>를 읽어 보십시오.천하를 차지하기 위해 용호상박의 싸움을 벌이는 남자들의 전 생애가 위선과 자기 기만과 모략에 더하여 굴종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삼국지>를 보며 비웃어 주십시오!(p279~282)
아...장정일.
장정일은 삼국지 10권을 사기 위해 지갑을 열 또 한명의 독자를 확보했다.
삼국지를 다 읽고 나서,
후회하지 않을 수 있기를,
행복할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