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시비돌이 > (펌) 임헌영 "공지영은 한국 장편소설의 마지노선"

 

임헌영 "공지영은 한국 장편소설의 마지노선"
문학평론가 임헌영, '문화예술의 미래' 심포지엄에서 한국문단 현실 비판



"우리나라에 장편 없다고 상 만들고 하는데, 상금 아무리 올려도 좋은 장편 안 나온다. 우리나라는 이미 장편의 시대는 갔다. 작가들이 장편 쓸 능력이 없다. 공지영이 최후 마지노선이다. 그 연배나 후배들 장편을 보면 수필집이다. 서사구조가 없다. 역사가 서사구조의 기본골격인데, 역사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개인이든 민족이든 지방이든 세계든 역사가 없다."


지난 22일 기초예술연대(위원장 김지숙ㆍ방현석)가 마련한 '한국사회와 문화예술의 미래' 심포지엄 현장. 이날 두번째 발표자로 나선 문학평론가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장)씨는 주최 측에서 미리 배포한 자료집의 발표문과는 달리 한국문단 현실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일관했다.


그에게 예정된 주제는 '변화하는 세계, 문학의 가치는 무엇인가'. 자료집에는 문학의 가치를 주장하고, 그에 대한 정책 지원을 강조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현장의 발표 내용은 사뭇 달랐다.


그는 먼저 "발표문에는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 적었지만 난 '문화의 세기'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20세기는 전쟁과 살육의 세기"이고 그 뒤를 이은 "21세기는 문화에 의한 정복의 세기로 이는 세계화와 똑같은 위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다운 문화를 만들어 오히려 그 같은 문화 정복에 대해 역공할 때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미학의 가치기준이 없어졌다"면서 "윤동주 서시를 읽으면서 어떻게 친일파를 옹호할 수 있느냐"고 따졌다. 그렇기에 "예술적 안목이 굉장히 중요"하고, 이를 위해선 "초등학교 교사들부터 어떤 게 진짜 아름다운 것인지 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참여정부 실패의 상당 부분은 문화예술이 책임져야 한다고 본다"고도 말했다. "조중동의 논리가 국민들에게 먹히는 것은 그만큼 우리(문화예술인)가 국민에게 올바른 미의식을 심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에 대해 "민예총 예총 문화연대 회원들 모두 반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최근 '민족문학' 명칭 논란과 관련 민족문학작가회의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작가회의는 '민족'자 떼고 안 떼고 논의할 필요도 없다. 이미 비민족적인 집단이다. 민족문학이란 흔적도 없어지고 형해만 남았다." 그는 심지어 "변화된 시대에 새로운 미래를 예측하여 문화예술적으로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전혀 없이 예산 따내서 행사나 하는 단체로 전락했다"면서 "내가 문화부장관이라면 그런 단체에 돈 안 주겠다"고까지 했다.


한편 그는 자신의 "희망"이라는 단서를 달아 "문학이 모든 문화예술의 기본이며, 그 중핵은 문학적 상상력이다"면서 문학의 가치를 강조했다. 그런데 지금은 "작가들이 창의력과 문화적 상상력을 잃어버린 상태"로 그에 따라 "문학의 헤게모니를 다른 장르에 빼앗겼다"고 평가했다. 그는 "80년대 중반부터는 문학이 드라마에도 뒤지기 시작했다"면서 "<모래시계> 드라마만큼 문학에서 광주항쟁을 대중적으로 감동적으로 쓴 작품을 못 봤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광주항쟁 다룬 작품이) 몇 편 있지만 읽어보면 재미가 없어서 몸살이 난다. 그런데도 평론가들은 좋다고 줄을 섰다. 그러면서 '장사 안 된다, 독자 없다'고 하소연한다. 누가 독자 없게 만들었나. 소설가 자신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는 특히 문학에서 서사구조가 없어지면서 좋은 장편소설이 나오지 않는 현실을 개탄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지영을 '장편의 최후 마지노선'으로 평가했다. "공지영은 인문학적 지식도 있고, 역사를 보는 눈도 있고, 격랑을 겪기도" 해서 "세상을 보는 눈"이 있다는 것이다. 또 "공지영의 소설은 십대부터 팔십대까지 다 읽을 수" 있는데, 지금 나오는 소설들 가운데는 평론가들조차 제대로 읽기 어려운 소설이 많다고 비판했다.


"보편성을 잃어버린 것은 문학이 아니다. 비문학인도 읽는 문학이 진짜 문학이다. 조정래 소설이 왜 많이 팔리는가? 비문학인도 읽기 때문에 팔리는 것이다. 문학인 중에서는 아예 30대 넘으면 내 소설 못 읽는다 이렇게 치고 나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경계를 허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는 그 같은 경계를 허물고 독자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또한 다시 문학적 상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작가들이 "만날 술집에 앉아서 술이나 먹고" 그럴 것이 아니라, "현장을 뛰든지 취재를 하든지 치열하게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서울 대학로 중앙대 공연영상예술원에서 열린 이날 심포지엄에는 이밖에 김지하 시인이 '문화의 시대, 미학적 사유'란 주제로 기조강연을, 그리고 김영민 한일장신대 교수(인문사회과학부)가 '한국문화와 세계문화, 그리고 예수의 역할',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이 '시각예술의 가치와 미래'에 대해 주제발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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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교수의문학산책] 진실의 기록과 사실의 증언
한겨레
» 김윤식/문학평론가·명지대 석좌교수
김윤식 교수의 문학산책
-윤동주와 야나기 무네요시의 경우

윤동주의 대학 후배이자 함께 하숙까지 했던 국문학자 고 정병욱 씨의 글 속엔 이런 대목이 있소.

“내가 공부하는 분야가 고전문학이고 앞으로 고전문학사를 써볼 욕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현대문학사도 공부가 진행되는 데까지 정리해보고 싶은 욕심도 버리지 않고 있다. 비록 이러한 나의 지나친 욕심들이 설령 이루어진다손 치더라도 내가 평생 해낸 일 가운데 가장 보람 있고 자랑스런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동주의 시를 간직했다가 세상에 알려줄 수 있게 한 일이라고 대답할 것이다.”(<나라사랑> 제23호)

정병욱 씨가 갖고 있던 윤동주의 육필 원고 19편이 아니었던들 민족 문학의 고전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가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음을 가리킴이지요. 이 시집 원고의 보존 경위를 말하는 대목에서 정씨는 또 이렇게 적었소. “동주가 검거된 후 나는 소위 학병으로 끌려가게 되었다”라고.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마당이기에 씨는 그 원고를 모친께 이렇게 말하면서 맡겼다 하오. “동주나 내가 다 죽고 돌아오지 않더라도 이 원고를 간수했다가 조국 해방의 날엔 세상에 알려주십시오”라고. 다행히 목숨을 보전하여 귀가하자 모친께선 “명주 보자기로 겹겹이 싸서 간직해두었던 동주의 시고를 자랑스럽게 내주시면서 기뻐하셨다”고 씨는 적었소.

그러나 진상은 이와는 달랐소. “그건 장롱 속에 감춘 게 아니라 실은 마루 밑에 감추었던 것”(정씨의 누이 정덕희 씨의 증언. 송우혜, <윤동주 평전>)이라고. 그렇다면 정씨는 거짓말을 한 것인가. 이 대목이 제겐 예사롭게 생각되지 않았소. 학병 세대 글쓰기의 한 가지 유형이 거기 살아 숨쉬고 있다고 판단됐기 때문이오. 학병 세대인 정씨에게 마루 밑이란 바로 장롱이며 또 명주 보자기가 아닐 수 없는 것. 그러기에 사실의 증언이란 이 진실의 기록에 비해 실로 미미한 법. 학병 세대 글쓰기를 검토함에 이 점을 놓치면 소중한 많은 것을 잃는 셈이오.

이와 비슷한 경우를 일본 민예관의 창설자이자 조선 민예품을 기리며 광화문을 헐지 말라고 외치기도 하여 한국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의 평전(쓰루미 순스케 저)에서도 잠시 엿보았소. 야나기가 만년에 이른 경지는 <미의 법문(法門)>, 곧 <나무아미타불>(1955)에서 찾아진다 하오. 아미타여래의 48원 중 제4원에 씨는 평생을 바쳐온 민예운동과 그 사상을 집약했다 하오. 무유호추(無有好醜)의 원이 그것. 설사 내가 득도했다 해도 세상에 형색이 같지 않고 아름다움과 추함이 있는 한 나는 성불하지 않겠다는 대원이 그것. 씨의 이러한 경지란 종교일까 또 불교일까. 일본식 관례에 따라 씨의 장례식에서 사용된 계명(戒名)은 불생원석종열(不生院釋宗悅)로 되어 있었소. 민예의 세계가 종교의 경지에 닿아 있는 형국.

한갓 제국주의적 오리엔탈리즘에 중독되어 있으면서 이를 깨닫지 못한 사상이라든가 민예품을 기능 면에서 보지 못한 색맹이라든가 등등 씨에 대한 비판이란 이 ‘미의 법문’ 앞에 서면 얼마나 초라할까. 물론 씨도 인간인지라 인간스런 한계도 있었을 터. 가족의 눈엔 이 점이 잘 띄게 마련. 씨의 장남의 증언엔 이런 것도 있소. “부친의 글을 읽고 사람들이 위대한 스님인가 보다고 여긴다면 이는 큰 착오다”라고. “절이나 신사에 가서도 예배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라고. 만년 병으로 잠 못 이룰 때 염불을 외어보면 어떻겠느냐고 부인이 권하자 “염불 따위가 들을 것 같나”라고 성을 냈다는 것 등등. 아마 사실의 증언이리라. 그럼에도 ‘미의 법문’은 진실하다고 할 수 없을까. 불교나 종교와는 상관없이 씨의 염원은 민예의 세계에 있었으니까. 종교까지도 그 구경적(究竟的) 방편이었으니까.

문학평론가·명지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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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25 1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2-25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교까지도 구경적 방편이었다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염원이 닿아 있었다는 민예의 세계란 어떤 것이었을까요?
갑자기 그 방면에 대한 궁금증이 솟습니다.
그에 대한 가족의 증언도 재미있고 인간적이라는 생각.
찾아보니 평전이 나와 있네요.^^
 
역사의 기억 역사의 상상 - 우리시대의 지성 5-011 (구) 문지 스펙트럼 11
주경철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선물 받았다.
누구에게?
<로맨틱 홀리데이>를 보고 "교환은 생산이다." 라고 말한 남자.
Eric Clapton 콘서트 때, "Wonderful tonight"을 들으며 눈물을 글썽인 남자.

"책 한권 줄까요?"
그는 술 마시다 갑자기 생각이 난 것처럼 말했다.

그러더니 점퍼 주머니에서 이 책을 꺼냈다. 불쑥.
(문지스펙트럼 시리즈는 포켓북 사이즈다.)

그가 읽던 책이라 군데군데 그가 친 밑줄이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알았다.
책을 읽으며 먼저 읽은 사람의 흔적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을!

서점에 갈 때 마다 뜬금 없이 전화를 해서
"야, 뭐 읽을만한 책 없냐?" 묻는 친구가 있다.
얼마 전 그 친구에게 전화가 왔을 때 이 책을 추천했다.

피렌의 「중세 유럽의 도시」, 포스탄의 「중세의 경제와 사회」,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맥네일의 「전염병과 인류의 역사」, 합하우스의 「역사를 바꾼 씨앗 5가지」, 크로스비의 「녹색 세계사」, 토드의 「유럽의 발견-인류학적 유럽사」등
12권의 중요 역사서들(한국어 미번역서 포함)을 요약한 이 책은
크게 세가지를 선물한다.
- 관심 영역의 확장
- 12권을 모두 읽은 것 같은 착각 또는 대리 만족
- 소개된 책들을 정독하고 싶은 강한 열망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학부 수업용 프린트물로
이 책에 실린 글들을 썼다고 한다.
※ 수업 한번 알차다! 요즘 대학 등록금 정말...살인적으로 비싸다.
값을 하려면 모든 강의가 이렇게 알토란 같아야 한다.
요즘 대학에는 제발.....열정도 사전학습도 없이 중얼중얼 하다 시간 채우고 나가는
늙은 꼰대들이 없기를 바란다.

이 책을 읽으며 낄낄 거리며 웃기도 했고,
분노에 떨기도 했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가장 인상에 남는 chapter는
<흰 설탕, 검은 비극 - 노예 무역의 잔혹사>.

노예무역이 잔혹했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지는 몰랐다.
책에 실려 있는 노예들의 "중간 항해" 그림을 보고 경악했다.

아프리카에서 구입한 노예를 배에 싣고 대서양을 건너는
소위 '중간 항해 middle passage'는 처참한 비극이었다.
90톤급 배가 390명, 또는 100톤급 배가 414명을 실어나른 기록이 있다. 이 경우 각 노예들에게 할당된 공간은 대략 167cm*40cm여서 흑인들은 '책꽂이의 책들처럼' 실려갔다.
이들은 두 사람씩 서로 쇠사슬에 묶여 항해를 해야 했다.
한 사람의 오른쪽 다리, 오른쪽 팔이 다른 사람의 왼쪽 다리, 왼쪽 팔과 묶여 있어서 관 속에 누운 것보다도 더 비좁은 공간만 허락되었다.
이런 상태에서 전염병이 돌기라도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특히 배가 적도 무풍대에 들어서면 한 달 이상 배가 거의 제자리걸음을 하는 수도 있었다.
자살 방지를 위해서 노예들을 쇠사슬로 묶어두었기 때문에 자신의 분뇨 속에서 몇 달 간 공포의 여행을 해야 했다.
(p204)

노예 상인들에게 흑인 노예들은 "상품"이었고,
농장 주인들에게 흑인 노예들은 "자산"이었다.
그 누구도 흑인 노예들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1783년 종Zong호 사건이 이를 입증해 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선상에 물이 부족하자 이 배의 선장은 132명의 노예를 바다에 던져 버렸다.
선장은 살인 혐의로 구속되는 대신, 보험 회사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자신의 행동은 배가 위험에 처했을 때
"상품"을 바다에 투기함으로써 배와 선원을 구하는
"해상 위험"의 경우에 해당한다는 사유로.
더 놀라운 것은....보험 회사는 이 경우가
'바다에 말(馬)을 던진 것과 똑같다.'고 보고
흑인 1인당 30파운드씩 계산해서 손해 보상금을 지불했다.

세상에.......이런 일이 있었다.
불과.....224년 전에!

이 책을 읽고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6권을 완독할 계획을 세웠다.
번역자가 주경철 교수라 번역에도 신뢰가 간다.

이런 좋은 책을 선물해준 그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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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2-25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겉보기에는 별로 재미없을거 같이 보이는데, 재밌나봅니다. 역사에는 다소 무관심한 저도 찜해놓겠습니다. 근데 그 남자분이랑 어떤 사이일까요 =333

kleinsusun 2007-02-25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이 책 정말 유익하고 잼 있어요. 강추!
어떤 사이냐구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ㅋㅋ

외로운 발바닥 2007-02-25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가 누군지 궁금해지네요. ^^
앞으로 맘 편하게 독서할 날이 얼마 없는 저에게는 여러 권을 읽은 듯한 대리만족을 주는 이 책이 참 유용할것 같네요. ^^ 보관함에 넣고 갑니다.

kleinsusun 2007-02-25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로운 발바닥님, 곧 일을 시작하시나 봐요. 축하드려요!^^
네...이 책 강추! 주머니에 쏙 넣고 다니며 읽기도 좋답니다.

BRINY 2007-02-25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저도 이 비슷한 구성으로 보충교재를 만들어보고 싶네요. 3월용 보관함으로~~

2007-02-25 1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kleinsusun 2007-02-25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INY님, 와.......기대기대! 보충교재 나오면 저도 한권 부탁드려욤.^^

사마천 2007-02-25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로델 책의 경우 아마 노력은 이 책의 100배가 들 것입니다. 한번에 사지는 마세요 저도 몇권이 고스란히 놓여서 일부만 읽고 남아 있습니다 흑흑 ^^;

kleinsusun 2007-02-25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사마천님, 한권만 먼저 사서 읽어볼께요.^^

다락방 2007-02-25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렇듯 좋은책을 선물하시고 게다가 감성까지 풍부한 그 남자분은 누구실까요? 호홋. 어쩐지 수선님의 서재가 앞으로 더 흥미진진해질것 같은데요. :)

릴케 현상 2007-02-27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행 상황이 심상치 않아요^^

바람돌이 2007-03-03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경철씨의 책은 예전에 <테이레시아스의 역사> 한권 봤는데 좋았어요. 역사를 보는 관점을 아주 쉽게 잘 써놨더라구요. 근데 이런 책도 나왔네요. 님덕분에 좋은 책 한권을 더 안게 됐습니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다 사놓고 엄두를 못내서 몇년째 제 책꽂이에서 먼지를 안고 있는 책입니다. ㅠ.ㅠ
 

이틀 전 목요일, 오후 2시쯤.

택배가 왔다고 해서
"주문한 책도 없는데...뭐지?"
고개를 갸우뚱하며 소포를 찾으러 나갔다.

뜻밖에도....인천공장의 P대리가 보낸 소포였다.

뭘까? 잔뜩 궁금해하며 소포 상자를 뜯었다.
순간....눈물이 핑 돌았다.

P대리가 직접 십자수를 뜬 앙징 맞은 쿠션이었다.
정성들여 뜬 십자수는 어떤 그림이냐면....
수줍게 뽀뽀를 하고 있는 전통혼례복을 입은 신부와 신랑!

쿠션에는 분홍색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올해 꼭 좋은 인연 만나서 행복한 날들 보내세요."

생일도 아니고, 크리스마스도 아니고....
정말 뜻밖의 선물이었다.

P대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문자를 보냈더니
곧 답장이 왔다.
"과장님같이 밝은 분이 따뜻하고 행복한 가정을 가지면
넘 좋을것 같아요.^^ 늘 건강하세요~"

그녀의 문자에서 어떤... "진정성"이 느껴졌다.
어찌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고맙기도 하고
또한...미안하기도 했다.

솔직히....난 P대리한테 별로 잘해 준 일도,
밥 한번 사준 적도 없다.
도대체 내가......이런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나?

태교에 좋다고 해서 십자수를 했다는 그녀.
신부의 연지, 곤지에 알록달록한 실로 십자수를 놓으며
나를 떠올렸을 그녀.

십자수를 뜨는 P대리의 모습을 떠올리자 마음이 짜~안 했다.
아.....그녀는 왜 이렇게 나를 감동시키는 걸까?

P대리와 나는 비슷한 시기에 입사를 해서
일주일간 사내교육을 같이 받았다.

마지막 날 회식을 할 때,
P대리는 이런 질문을 했다.
"어렸을 때 꿈이 뭐였어요?"

난 P대리의 쌩뚱 맞은 질문에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었다.
"......네? 왜...요?"

P대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띄고 말했다.
"회사원 할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요. 하하"

근무지가 틀려서 P대리를 자주 만나지 못했다.
일년에 3~4번 밖에는.
그럼에도...가끔 P대리를 보면 기분이 좋았다.

쌩뚱 맞게 어릴 때 꿈을 물어 준 그녀가 고마웠다.
내 한몸 챙기기도 힘든데,
그냥 아침에 일어나서 늦지 않게 통근버스 타는 것 만도 버거운데,
만삭의 몸으로(그것도 둘째 아기!) 씩씩하게 회사를 다니는
P대리를 보면 어떤 경외심 마저 들었다.

아...난 P대리에게 어떤 선물을 줄 수 있을까?
P대리 문자처럼 "따뜻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서
초대를 해야 하나? 음하하하.

곧 출산휴가가 시작되는 P대리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하나 보내야 겠다.
또.... P대리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아야 겠다.

이런 감동적인 선물을 받은 나는
How happy I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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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25 0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2-25 0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7-02-25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수선님이 워낙 착하시니깐 없던 선물도 생기네요. ^^

kleinsusun 2007-02-25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대략 난감". ㅋㅋ
어쨌든... 감사합니당.^^

프레이야 2007-02-25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참 아름다운 사람이 곁에 있군요. 정말 행복하시겠어요.^^
어릴 적 꿈을 물어준 사람, 참 따뜻하네요.

kleinsusun 2007-02-25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네...P대리는 정말정말 따뜻하고 고운 사람이예요.
저는 P대리에게 어떤 선물을 하면 좋을까요?^^

2007-02-25 1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7-02-25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정말 근사해요, 수선님.
주변에 괜찮은 사람이 많다는 건, 내 스스로가 괜찮은 사람이라는게 제 결론이예요. 수선님이 근사한 분이시니, 주변에 따뜻한 분이 있는거예요. 게다가 그 따뜻함을 느끼고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시다니. 이 얼마나 멋진 분이신가요!

앞으로도 쭈욱~ 아름답고 행복하게 지내셔요!!

아영엄마 2007-02-26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담긴 선물을 받으셨군요.(저는 아직 십자수 못 배웠지만 열심히 수 놓아서 완성하고 나면 아까워서 선물로 못 줄 것 같아요. ^^*) 정말 행복하시겠어요. 보내주신 분께 그 행복한 기분을 담은 선물로 화답하시어요.

릴케 현상 2007-02-27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이 담긴 선물이라니... 정말 좋으시겠습니다^^
 

[동무와연인] 통속을 거부한 ‘커플 실험’/김영민
글과 남자 사이에서 ‘동무’ 선택한 보부아르
그들의 사귐은 ‘말’ 서로의 ‘입’을 서로의 ‘귀’를 지적 반려자로 원했다
한겨레

동무와 연인/①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는 죽는 날까지 자신의 정체를 작가로 고집했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와 나란히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생활이에요!”라고 말하곤 했다. (물론 이것은 ‘스타벅스’ 커피점의 2층 풍경이 아니다.) 글과 남자! 이 20세기 여성주의의 대모는 글과 남자의 사이에서 여자의 길을 선구적으로 뚫어냈다. 하지만, 정작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삶이었으며, 그 속에서 남자는 변치않는 고민거리였다. 당대의 누구보다도 먼저 ‘동무’의 가치를 꿰뚫어본 이 비범한 여성도 사랑이 종종 삶의 더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조금 늦게 알아챈 것일까? 뚜렷한 주관을 갖고 행동함으로써 전통적 여성상에 맺힌 남성의 오해를 떨어내려던 보부아르였건만, (그녀가 비웃었던 미국여자들처럼) 사랑했던 남자를 만족시키려고 안달을 부리기도 했다.

“사트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야말로 내게는 순수한 의식이며 자유 그 자체였어요!”라며 특유한 동무 관계를 자만했지만, 실상 그는 순수한 의식과 자유만이 아니라 왕성한 성욕 그 자체이기도 했다. 여성들은 그의 못난 외모와 명성 사이의 괴리에 매혹되기도 했고, 사르트르는 오직 오쟁이를 지울 목적으로 매력없는 유부녀들을 탐하기도 했다. 모국어를 사랑했던 사르트르가 건들지 않는 여성이라고는 외국여자들뿐이었는데, 아무튼 이들 동무/연인 사이의 기나긴 갈등에는 사르트르의 쉼없는 바람과 보부아르의 맞바람이 한 몫을 했다. 사르트르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아무런 철학 없이 연애에 빠졌고, 보부아르는 나름의 연애철학(‘과거에 고착되거나 그것을 내팽개치지 말고 새 미래를 만드는 데 애쓰자’, 는 W. 제임스 식의 실용주의 준칙)을 제시하긴 했지만, 결국 그녀는 사르트르보다 적게 섹스하고 많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보부아르의 글 역시 가히 대가급이다. 그러나 사르트르와의 관계에서만은 오히려 삶(사람)을 내세웠고, 대신 글의 세계라면 사르트르에게 조금 양보했다. 사르트르의 길은 정반대였다. 그렇기에 사르트르에게 연인관계는 늘 부차적이었지만, 보부아르는 그럴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늘 일차적, 우선적인 사안도 아니라는 자가당착이 그녀의 문제였다.) 스스로 밝히곤 했듯이, 보부아르의 행복은 사르트르와의 ‘상호 이해’에 의해서 보장된 것이었다. 그리고 육체의 향락은 환영할 만했지만 세상을 향한 지식에 비해 애써 요구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최고의 소망은 “내 인생이 끝나는 날까지 ‘살고’ 싶은 것”(sola vita!)이었고, 사랑은 그 삶의 귀한 부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르트르에게 글쓰기보다 더한 삶은 없었다. 그는 아버지(초자아)가 없는 시공간을 글로 채우며 스스로를 창조해 나갔다. 여행 중에도 풍경보다 수첩을 들여다 보고 있었고, 자동차 본네트를 깔고 앉아 몇 시간씩 프랑스어 문장을 만드느라 동행들을 성가시게 했다. 그는 <말>(1964)에서 고백했듯 우선적으로 책과 글 속에서 세상을 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보부아르가 아는 여자의 생활은 ‘제2의 성’의 운명처럼 먼저 남자들의 세상 속에 내던져지고 부대끼는 게 우선이었다. (잘난 남자는 대개 추상적이지만 잘난 여자라도 현실적일 수밖에 없는 것. 이 괴리 속에서 연인의 길과 동무의 길은 희비극적으로 어긋난다.)

보부아르는 “나는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불리하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강변하곤 했다. 그러나 여자라는 사실이 속박도 알리바이도 아닌 여자는 거의 없다는 객관적 사실 속에 이미 그녀의 운명은 깊이 얽혀들어 있었다. 깬 여성들에게 남성의 언어와 그 표상이 마치 맞지 않는 신발처럼 어색하다면, 보부아르가 <제2의 성>(1949)을 쓰게 된 것은 필연이었다. 익명의 개인(남성)을 주제로 그 개인의 의식과 자유를 분석하거나 계급 갈등에 개입하는 사르트르의 철학적 청사진만으로는 아직 여성의 세계를 다 그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의 계약결혼마저 전형적인 갈등의 요소를 피할 수는 없었다. 이 세기의 연인/동무들에게 인간은 새로 창조되어야 할 존재이며, 그들은 함께 미래의 인간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남녀를 얽어 옥죄는 낡은 타성은 고스란히 반복되었다. 과연, 사랑은 누구에게도 통속한 것일까? 그러나 이 통속을 막으려는 공동의 노력 속에 그들의 성취가 있었고, 그 성취 속에서 동무의 가능성은 빛난다.




그 성취와 가능성은 ‘말’이었다. 마찬가지로 둘의 사귐에서 보부아르가 특별한 것은 그녀의 육체가 아니라 ‘귀’였다. 사르트르의 보부아르는 육체(연인)가 아니라 그녀의 귀(동무)였을 것이다. 물론 보부아르가 만난 사르트르도 ‘작고 못생긴데다 그나마 사팔뜨기인’ 그의 육체(연인)가 아니라 그의 입(동무)이었던 것은 재론할 것도 없다. 사르트르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죄다 털어놓을 수 있는 지적 반려자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남자인데, 관계의 요체는 바로 여기, ‘지적 반려자’에 있었다.

» 김영민/전주 한일대학교 교수·철학
보부아르가 두려워한 여자는 육체로 승부하는 바비 인형들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적 반려자의 자리였고, 사르트르의 주변에 그 싹이 돋을라치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연인 넬슨 올그렌(N. Algren)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면서도, “어떤 경우에도 사르트르와의 우정만은 결코 포기할 수 없어요”라고 단언했다. 사르트르처럼 편집병적이진 않았지만, 그녀의 삶에서도 말과 글은 뺄 수 없는 부분이었다. 보부아르에게 죽음이란 (바흐친과 비슷하게) ‘다시는 내게 말을 걸지 않는 것’이었다. 사르트르의 죽음을 놓고 그녀가 가장 슬퍼한 것은 물론 ‘그의 말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말년의 보부아르가 그들 사이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결산하면서 요약한 부분도 ‘말’이었다. “사르트르와 나 사이에는 늘 말이 있었어요.”

김영민/전주 한일대학교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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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2-25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한겨레 어디에 가야 볼 수 있나요. 주소가 없어서.

kleinsusun 2007-02-25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42872.html
저 한겨레 정기구독하는데요, 바로 금욜 "책과 지성" 때문이예요. 읽을 거리가 정말 많답니다.^^

마늘빵 2007-02-25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18도씨 금욜에 구입해놓고 아직 안봤어요. ㅋㅋ 거기에 있겠군요.

kleinsusun 2007-02-25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이건....7월달에 실렸던 글이예요.ㅋㅋ

마늘빵 2007-02-25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헙. -_- 그렇구나. ^^ 씨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