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몇몇 호텔 커피숍은 선 보는 남녀들로 넘쳐 난다.
한 눈에 봐도 딱 알아볼 수 있다. 어찌나 어색한지....
이 많은 커플 중 도대체 몇 커플이나 다시 만날까?
이런 생각을 하며 유심히 둘러 보면, 확률은 20% 도 안될 것 같다.

나이,키,가족관계,학력,직업,종교,연봉 등 상대방의 신상정보를 이미 파악하고 만난
여자와 남자가 오고 가는 질문 속에 서로를 탐색하는 자리.
난 정말,진정,참으로 '선'이 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몇 번 선을 본 적이 있다.
벌써 몇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남자가 있다.
어찌나 여러 가지로 웃겨 주셨던지...

그 남자는 정말 수많은 질문들을 했다.
무슨 면접관들처럼 질문 리스트가 있는 것 같았다.
난 최대한 예의 바르게 대답하려 각고의 노력을 하다가,
슬쩍 장난이 치고 싶어 말했다.
" 왜 그렇게 질문을 많이 하세요? 선 볼 때 마다 그래요? "

그 남자는 약간 당황하며 대답했다.
" 질문을 해야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으니까요."

난 그만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수선 :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아까처럼 "어른을 공경하세요?"라고 질문할 때,
"아니요."라고 대답하는 여자도 있나요?

맞선남 : (역력히 당황한 표정으로)
물론....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죠.
하지만 말을 하는 방법이나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죠.

그러고도 그 남자는 몇 가지 질문을 더했다.
" 결혼하면 남편한테 아침밥을 차려 줄 수 있나요? "

난 자기가 '부채 도사'라고 착각하는 그 남자를 좀 놀려 주고 싶어 씩 웃으며 말했다.
" 아침에 뭐 드시는데요? "

그 남자는 자세히도 대답했다.
" 저 서울에 혼자 사는 거 들으셨죠? 대학 1학년 때부터.
이젠 정말 아침에 빵 부스러기 먹는 게 지겨워요.
요즘엔 빵이 너무 지겨워서 빵집에서 파는 샐러드를 먹거든요.
그런데 그것도 차가워서 싫어요.
이젠 정말....밥이 먹고 싶어요. 따뜻한 밥이랑 된장찌개."

난 그 말을 들으면서 혹시 그 남자가 바보가 아닐까 생각했다.
"아침밥을 해줄 수 있나요?" 라는 질문에
"네, 그럼요. 어떻게 남편을 빈 속으로 보내겠어요." 라고 닭살 돋게 대답해도,
결혼하고 나서 밥 안 해주면 그만이다.

물론 그 남자에게 있어서 '아침밥'이란 결혼조건 1번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네" 라는 대답을 들어야 마음이 놓이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은 상황에 따라 '변동적'이라는 걸
그 남자는 모르는 걸까?

그 다음 선에서, 또 그 다음 선에서, 그 다음 다음 선에서
계속 그런 질문을 할 그 남자를 마주 보고 있으니,
슬며시 불쌍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남자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소개해 주신 분을 생각해서 참았다.
그 때 하지 못했던 말.

" 결혼하면 아침밥을 할지 안 할지, 지금은 당연히 알 수 없죠.
그건 결혼 해 봐야 알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출근 시간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거구요.

그런데....그거 아세요?
여자들은요, 아니 여자건 남자건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요,
상대방에게 뭐든 해주고 싶어해요.

만약 제가 보신탕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남자를 사랑한다면요,
전 개라도 잡을 수 있어요.

그런데...처음 보는 남자가 아침 밥을 해줄 수 있냐고 물어 보면
할 말이 없어요. 아마 다른 여자들도 그럴꺼예요.

질문에 대한 대답에 너무 연연하지 마시구요,
차라리 연애를 한 번 해 보세요.
어쩌면, 어쩌면 빵이 다시 좋아질지도 몰라요.빵을 좋아하는 여자를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아침에 고생하는 게 싫어서 밥을 먹기 싫을지도 몰라요.
아니면 직접 아침을 차릴지도 몰라요.

그렇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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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오 2006-05-10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 참. 그 남자는 알까요. 여자들은 아침밥 해줄 수 있는 여자를 찾는 남자를 무지 부담스럽고 싫어한다는 사실을... 그렇게 먹고 싶었음 진작 본인이 밥을 좀 하지.. 그나저나 수선님 말씀이 정말 맞아요. 사랑하면 뭐든지 해주고 싶기 마련...

마늘빵 2006-05-10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흐. 선보신건가요? ㅋㅋ

2006-05-10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Koni 2006-05-10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들이 생존력이 떨어진다는 건 바로 저런 문제인가봐요. 요즘 세상에 전기밥솥에 밥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데... 하지만, 아침에 밥을 차려주는 파트너란 건 멋지겠죠. 아침밥을 해주는 남자를 꼭 원하는 건 아니지만, 만약 그런 남자가 있다면 전 물불 안 가리고 사랑에 빠질 것 같아요.^^

조선인 2006-05-10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요, 저도 아침밥 해주는 사람 있었으면 좋겠어요. ㅋㅎㅎ

프레이야 2006-05-10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 보셨군요.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직접 밥을 차릴지도 모르죠.. 정말.. 신혼땐 사소한 줄다리기 많이 하지만 세월이 가면 다 하잖고 그저, 먼저 하고 마는 거 많아요. 수선님, 너무 이것저것 재면 결혼 어려워요.^^

BRINY 2006-05-10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으로 선을 본 지 1년이 지났습니다. 이젠 주위 사람들도 좀 지쳤고, 무엇보다 엄마도 '별볼일 없는 선'에 지치셨나 봅니다. 그래도 엄마가 가끔 흘리는 얘기를 들어보면 선 얘기는 여전히 들어오나 보던데, 저한테 오기 전에 엄마가 끊으시나 봅니다. ㅎㅎㅎ

nada 2006-05-10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하하하 당황했을 그 부채도사님 얼굴이 선하네요~

비로그인 2006-05-10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보는 남자가 아침 밥을 해줄 수 있냐고 물어 보면 할 말이 없어요.
->정말 동감이에요.
근데 이 남자, 집안일에 대한 사고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이기적이기도 하고.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은 상황에 따라 '변동적'이라는 걸
그 남자는 모르는 걸까? ->직업으로 인해 생활패턴이 다를 경우엔 차려주지도 못할 수 있는건데, '아침 차려줄 수 있나요?'이렇게 묻는 건 정말 바보같아요. 힘들게 일어나서 차려준다고 해도 미안해서라도 그러지 않아야죠.
그리고 사실, 아침 차려줄 수 있나요 라고 물을 수 있는 건 '집안일은 여자의 몫이다'라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가 있죠???
정말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절대 사소한 문제가 아닌.

BRINY 2006-05-10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한가지. 아침 차려줄 수 있나요?라고 물어보면서, 대신 절대 맞벌이 안하고 아내를 집안일에만 전념하게 하겠다고 자신있게 얘기하는 남자 본 적이 없는 것도 문제인 거 같아요.

비로그인 2006-05-10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정말 BRINY님 말에 동감입니다.

마태우스 2006-05-11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이해가 안가는 질문이군요. 아침을 그렇게 좋아하면 자기가 차려먹으면 되지, 그걸 왜 상대방에게 강요하는지. 밥 먹는 것만 좋아하고 밥이 되기까지의 과정엔 눈을 감는 사람이라, 으음.

이리스 2006-05-11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골때리는 질문 베스트 탑이죠. ㅎㅎ
자기 밥을 왜 못차려 먹는지와 자기 어머니 밥은 또 왜 못차려드리는지. 그 대리.. 대리.. 인생은 언제까지 갈건지 헛, 참.. 팔순 노모가 밥 차려드시는게 안쓰러워서.. 라고 하는 말 자주 해대는 인간 치고 요리솜씨 이딴거 다 접어두고라도 자기 손으로 어머니 밥 챙겨드리는 사람 많이 못봤네요.
남한테 뭘 바라는 대신에 자기가 뭘 해줄 수 있는지 먼저 이야기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런 사람이 선만 주구장창 볼리가 없겠죵? -.-

세벌식자판 2006-05-11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약 제가 보신탕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남자를 사랑한다면요,
전 개라도 잡을 수 있어요.
----> (^o^)=b 보고 감동한 문장!!!

객지에서 직장생활하면서 배운거 하나.
전기밥솥, 세탁기는 위대한 물건이다~~~~ ^^;

글샘 2006-05-11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글 중에 가장 수선님의 개성을 잘 드러낸 문장이었습니다.
개라도 잡을 수 있어요... ㅋㅋ
밥은 남자가 해도 되는데요, 아침에 같이 마주보고 먹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거죠.
그 남자가 뭘 모르는군요. 아, 한국 남자들은 정말 뭘 모릅니다.

코마개 2006-05-11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아침밥 소리만 들으면 속에서 울컥 합니다.
제가 저런 질문 받으면 바로 답해줍니다. "니가 해 처먹으세요."
이혼 소송하면 꼭 한마디씩 들어가요. '아침도 안해주고...나불 나불"
아침밥 못 먹고 '뒈진' 조상이 있는지.

다락방 2006-05-11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하고 된장찌개를 먹고싶어요. 아침밥을 해 줄수 있나요?" 라고 묻는 남자보다는 "아침마다 따뜻한 밥과 된장찌개를 차려줄게요.(덤으로 설거지도 제가할게요.)" 라고 말하는 남자를 찾기 때문에 저는 아직도 솔로인걸까요? ^^;;

kleinsusun 2006-05-11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 그러게요...그 질문이 얼마나 사람을 부담스럽게 만드는지 모르나봐요.어떻게 보면 순진한 남자일수도...ㅎㅎㅎ

아프락사스님, 벌써 3년 전 얘기랍니다.^^

kleinsusun 2006-05-12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냐오님, 누가 차려 주지 않으면 밥을 못먹는 남자들이 의외로 많아요. 제가 아는 어떤 남자는요.... 혼자 사는게 너무 "불편"해서 일찍 결혼했다고 떠들고 다닌답니다.ㅠㅠ

조선인님, ㅎㅎㅎ 저도 차려 준다는 남자는 좋아요.^^

kleinsusun 2006-05-12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너무 이것저것 재면 결혼 어려워요." 제 주위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예요.ㅎㅎㅎㅎㅎㅎ 그럼에도 불구하고....혼자서 밥도 못먹는 남자는 싫어요. ^^

Briny님, 이제 Briny님의 엄마도 스스로 들어온 선을 통제하고 끊는 경지에 이르셨군요. 저희 집하고 상황이 유사하네요.ㅎㅎㅎㅎㅎㅎㅎㅎ

꽃양배추님, 그 부채도사 정말 당황했었어요. 똘똘이 스머프 스타일이었어요.ㅎㅎㅎ

kleinsusun 2006-05-12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를 찾아서님, 맞아요. "집안일 = 여자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남자들이 많아요. 아직도.... 요즘 대학생들 중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애들이 있어서 놀란 적이 있답니다.헉.....

Briny님, 나를 찾아서님, 맞아요. 바로 그 "이중적" 잣대가 문제라니깐요.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맛있게 끓여주고, 빨리 출근 준비를 해서 돈도 많이 벌어오는 여자를 찾는 남자들이 많아요.ㅎㅎㅎㅎㅎ

kleinsusun 2006-05-12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그죠?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남자들이 아직 넘 많아요. 마태님이 선봉에 서서 지도편달을 하심이...^^

낡은 구두님, 맞아요.맞아. "리모콘 효도"를 하려는 남자들이 넘 많아요.
노모가 직접 밥 차려드시는 게 안스러워서 빨리 결혼을 해야 겠다...이렇게 말하는 남자들이 넘 많아요. 그 말이 이상하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 같아요. 그 때 그 남자는 골 때리는 질문 베스트 10을 다 했다니깐요.ㅎㅎㅎ

자판님, 진짜라니깐요. 전 개라도 잡을 수 있어요. 저요....학교 다닐 때 남친 도시락 싸준 적도 있어요. 요리 책 보고....ㅎㅎㅎ

글샘님, 제 개성이 잘 드러나나요? ^^
그 남자는 지금쯤 매일 누가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있을까요? ㅎㅎㅎ

강쥐님, 맞아요. 이혼하는 이유에 "밥도 안해주고..." 가 많이 들어가더라구요. 기가 막혀서.... 그런게 이혼사유로 법정에서 인정도 되나요? 설마?

다락방님, 우리 싱글들은 오들도 꿋꿋하게 즐거운 하루를!^^
전 오늘 하루 휴가랍니다.랄랄라~

2006-05-15 1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