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과장님은 꿈이 뭐예요? 혹시...임원이 되는 겁니까?"

얼마 전, 워크샵 끝나고 같은 차로 올라오던 신입사원 K가 물었다.

"야! 사장도 아니고 임원이 뭐냐? 기왕 물어보는 거 좀 크게 써라!"

씩~웃으며 뚱~땅 대답하고 넘겼다.

"꿈이 뭐예요?"
내가 자주하는 질문이다.

나는...꿈이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
70대 노인이건, 수능 결과를 가슴 졸이며 기다리는 고딩이건
그 누구건...꿈이 있는 사람이 아름답다.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남자"는
꿈이 없는 남자다.

주말에는 늘어지게 자고,
실컷 자고 일어나서는 출근하듯이 집앞 골프연습장 가서
감각 잃지 않을 만큼만 공을 좀 쳐주시고,
융자를 근근히 갚으며 집값이 쑥쑥 오르기를 기도하고,
번듯한 명함에 기대어
"오늘도 무사히!"를 좌우명 삼아 살아가는 소심한 남자.

슬픈 건...이런 남자들이 너무 많다는 거다.

이번 대만 출장에서 거래선 구매부장님과 식사를 했다.
군인의 아들로 태어나 근검,성실하기가 "아시아 최강"인 50대 남자.

화기애애하게 농담 따먹기를 하다가
크리스마스에는 뭐하냐? 연말에 좋은 계획 있냐?
이런 얘기가 나왔다.

난 부장님은 "new year's wish"가 뭐냐고 물었다.
부장님은 1초도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고3이 되는 아들놈이 공부를 좀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고!

" My son is my future!
You know...? I'm old man. I don't have any future."

아... 이 얘기를 들으며 가슴이 먹먹했다.
새우가 가득 들어있는 덤플링을 입에 넣다가
하마터면... 뱉을 뻔 했다.

"I don't have any future!"

이런 말을 "I have a new car." 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중년 남자 앞에서 칼칼한 비애를 느꼈다.

갑자기 아빠가 생각났다.
울 아빠에게도 내가 "future"였던 적이
단 한번이라도, 단 한순간이라도 있었을까?

아빠의 얼굴이 대답과 함께 떠올랐다.
No! Absolutely No!

울 아빠는 62세.
그럼에도 불구하고...소년 같은 남자다.
당신의 감수성은 영악한 20대 남자들 보다 훨씬 맑고 여리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작은 일에도 감동 받고,
항상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남자.

최근에는 나름대로 금강경을 해설(?)하여
지인들에게 더듬더듬 독수리 타법으로 이메일 시리즈를 보내신다.

주위에서는 책을 내라는 사람들도 있다.
금강경에 대해서, 불교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글 자체가 무척이나 깊고 그윽하다.

울 아빠는 70세가 되어도, 80세가 되어도
계속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돋보기를 쓰고 몇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 이메일을 쓸 사람이다.

아름답지 않은가?
이런 아빠가 있어서...행복하고 또 고맙다.

또 한명, 온 마음으로 응원하고 싶은 아름다운 남자가 있다.
그는 바로...신중현!
그의 나이는 67세,
아저씨 보다는 할아버지에 가까운 주름 투성이 얼굴.

일주일 후, 그의 은퇴공연이 있다.
공연 타이틀은....<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

타이틀만 들어도...가슴이 뛴다.
어쩜 마지막 공연이 될지도 모르는 그의 콘서트에 가고 싶다.

그런데....같이 갈 사람이 없다.
주위에 락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ㅠㅠ

그나마 신중현을 좋아할 것 같은 두명의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그것도 내가 표를 사주겠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들은 "No"라고 말했다.
"야! 할배 이제 목소리도 잘 안나오더라.
내가 CD 구워줄께!"

아...슬프다.
혼자 가기도 뻘쭘하고.
너무도 아름다운 그의 마지막 공연을 함께 하고 싶은데!

더듬더듬 독수리 타법으로 이메일을 보내는 나의 아버지에게,
혼신의 힘을 다해 은퇴 공연을 하고 있는 신중현에게
감사와 찬사를 보낸다.

그들은 젊고 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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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0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2-10 2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리스 2006-12-10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한테는 왜 안물어본겨! 같이 가자고. 버럭~~~

바람돌이 2006-12-10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거리만 좀 가까우면 저랑 가자고 해볼걸요. ^^ 아름답게 나이가 든다는건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답니다. 자식을 자신의 미래로 삼지는 말아야지 늘 생각합니다. 훌륭하고 멋진 아버님을 둔 수선님 정말 복도 많으셔요. 우리 아버지 세대에서 그런 분 정말 드물지 않을까 싶어요. ^^

비로그인 2006-12-10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한테도 왜..;;;

깐따삐야 2006-12-10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아빠는 사위와 함께 마시기 위해 다양한 술을 모으고 계시는데 제가 결혼할 생각을 안하고 있으니, 그 다정하신 꿈이 언제쯤 이뤄질지 미지수랍니다. ㅋ

프레이야 2006-12-10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깊고 그윽한 글을 쓰시는 수선님 아버님에게 먼저 찬사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아버지를 사랑하는 님의 그윽한 마음 또한 부럽습니다. 신중현씨는 얼마전 러브레터에서 보았는데 정말 목소리는 잘 나오지 않았지만 이야기하는 품새과 좋아보였어요.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윤도현에게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조용조용, 진중하게요..

글샘 2006-12-11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 한장 부탁합니다. 비행기표는 제가 끊을게요. ㅋㅋ
신중현도 좋고, 산울림도 좋죠.
future 이게 자식이 되는 삶. 자식을 소유물이라 착각하는 불쌍한 사람이네요.
미래는 시간도, 공간도, 소유물도 아닌, 바로 <나>의 변형일 뿐인데 말이죠.
내가 어떻게 변화되어 있으면 좋겠냐... 뭐, 이런게 미랜데... 미래소년 코난을 보여줄깝쇼?

다락방 2006-12-11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수선님.
아버지와 함께 가서 보는건 어떠세요? 제가 보기엔 너무나 멋진 그림이 될 것 같은데 말예요. :)

코마개 2006-12-11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아저씨, 늙은이여서 아무런 미래가 없는게 아니라 아무런 미래도 꿈꾸지 않아서 중늙은이가 된겁니다.

잉크냄새 2006-12-11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꿈이 있기는 있어요. 근데 보편적인 시각으로는 좀 비현실적이고 몽상적인 느낌을 많이 받더군요. 꿈을 말할때 가장 기억나는 것은 김광석이 그의 공연장에서 이야기한 내용입니다. 환갑이 되면 할리 데이비슨을 탈 것이고 연애를 해보고 싶다는 내용이었죠.

2006-12-11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혜덕화 2006-12-11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아버지의 독수리 타법으로 쓰신 금강경 이야기를 저도 받고 싶단 욕심이 드네요.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고 계시는군요. 아버님께 화이팅 전해 주세요.

moonnight 2006-12-27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님 너무 멋지세요. 역시 수선님 아버님 다우시네요. 저도 그렇게 나이들고 싶어요. 평생 꿈꾸고, 평생 공부하고, 평생 책 읽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