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견문록
김홍신 지음 / 해냄 / 201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유년(丁酉年)이 시작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달력이 한 장 남았습니다. 올해 가을은 유난히 짧았던 것일까요. 어느새 겨울이 왔습니다. 인생에는 사계절이 있습니다. 유아기는 인생의 봄, 청소년기는 여름, 장년기는 가을, 노년기는 겨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인생의 겨울을 맞은 이들이 많습니다. 겨울은 누구에게나 외로운 계절입니다. 생동감 있는 봄과 여름을 접고 소멸로 가는 길목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삶의 황혼기를 맞은 이들에겐 볕이 길지 않음이 절감되는 계절입니다. 그래서 겨울은 삶을 성찰하게 만듭니다. 이 성찰의 계절에 책을 동반자 삼아 독서 삼매경에 빠져 보는 게 어떨까요. 지금부터 소개할 책은 삶을 되돌아보면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일깨워줍니다.

 

인생견문록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는 저자의 경험과 내적 성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책을 쓴 김홍신 작가는 평범한 일상 속에 감추어진 삶의 의미를 들춰냅니다. 그래서 독자는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일상 속에 함몰되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작은 진실과 만나고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작가는 단절과 고립 속에 놓인 현대인에게 어울려 사는 인생의 의미를 이야기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인연의 고리로 이어져 알게 모르게 서로 도움을 받으며 삽니다. 혼자서는 살 수 없지요. 그래서 좋은 사람을 만나 서로 즐겁게, 더불어 사는 재미를 누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상대가 있어 마음이 편안해야 하고 아픔은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어야 하지요.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며 살아야 합니다. (73)

 

사람은 외로운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너와 나, 이웃과 이웃이 더불어 사는 게 진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개인주의가 만든 단절과 고독은 우리의 삶과 세상을 왜곡시키고, 황폐화할 뿐입니다. 자기중심의 삶을 살게 되면 너 없어도 잘 살 수 있다’, ‘너를 넘어서야 내가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원적인 대립으로는 서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삶은 아름다움을 나누면서 살아야 진정한 삶이 됩니다. 이웃과 사랑을 나누고, 그리움을 나누고, 때로는 슬픔을 나누면서 살아야 따뜻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작가는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라고 알립니다. 그래서 그의 글에서는 사람 냄새가 가득합니다. 낯선 곳에서 스치듯 지나 가버린 만남일지라도 그에겐 귀중한 생의 인연으로 자리 잡습니다.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그토록 여리고 섬세하고 따뜻합니다.

 

사람의 일생은 끊임없는 욕구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적정수준의 욕구를 넘어선 욕망은 자칫 인생을 힘들게 하는 짐이 될 수 있습니다. 작가는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질긴 것이 자신의 마음이라 말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짓눌리는 마음의 무게입니다. 그 속에 내가 내려놓지 못한 것들이 있습니다. 식욕, 재물욕, 권력욕 등이 있습니다. 욕심대로 행동하는 사람의 얼굴은 추합니다. 관상은 자질구레한 욕망이 얼굴에 남긴 주홍글씨입니다.

 

관상은 먹고 생각하고 행동한 대로 몸이 변한 결과입니다. 사람들 눈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얼굴이지요. 관상은 타고난 생김새가 아니라 살아온 흔적의 증거입니다. (42)

 

그 많은 욕심과 욕망을 내려놓고 무욕(無慾)의 상태가 되면 한결 마음과 몸이 가벼워집니다. 작가는 자신만의 인생 속도를 유지하면서 인생길을 신나게 걸어보자고 제안합니다. 작가의 글 속에서 다시 한번 살아보자!”라는 소리 없는 울림이 느껴집니다. 김홍신 작가는 노년에도 꿈을 꾸는 사람입니다. 노년에도 꿈꾸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꿈꾸는 자는 절대로 늙지 않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아름다운 변화입니다. 어찌 보면 인생견문록평범할 수도 있는 인생론이지만, 우리는 그 책 속에 있는 삶의 교훈을 알면서도 싹 잊어버린 채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오로지 성공을 위해 맹목의 질주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혼자서 빨리 달리다가 인생의 종착역 가까이에 다다르면 그 모든 것이 얼마나 허무할까요. 노년이란 죽음을 기다리는 소모적인 시간이 아닙니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삶의 원숙함을 배울 수 있는 귀중한 여백 같은 시간입니다.

 

     

 

 

IBK기업은행 오프라인 매거진 & 웹진 <아름다운 은퇴> 겨울호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11-24 1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1-24 14:55   좋아요 1 | URL
다음에 만나면 제가 커피를 쏘겠습니다. ^^

2017-11-24 1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1-24 15:01   좋아요 0 | URL
저번에도 같은 질문을 했어요. ㅎㅎㅎ 저 은행원 아니에요. 대학교 행정실에서 일해요. http://blog.aladin.co.kr/haesung/9530671

stella.K 2017-11-24 19:20   좋아요 0 | URL
그랬다니까.ㅎㅎ
근데 그때 네가 어디서 일하는지는 안 알려줬다구.
오늘에야 그 의문이 풀렸네.
그럼 모교...?

cyrus 2017-11-25 12:12   좋아요 0 | URL
네. 운 좋게 그곳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

페크pek0501 2017-11-24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게재될 예정입니다,
와우 멋지군요.
축하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cyrus 2017-11-25 12:1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제 글을 눈여겨 본 알라디너 덕분에 좋은 경험을 하게 됐어요. ^^
 
은유가 된 독자 - 여행자, 은둔자, 책벌레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양병찬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은 독서에 대한 인상 깊은 명언을 남겨놓았다.

 

 “맛보아야 할 책과 삼켜야 할 책이 있다.

가끔은 잘 씹어서 소화해야 할 책도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독서 방법은 다양하다. 살짝 맛만 볼 책이 있고 씹으면서 음미할 책이 있으며 삼켜서 소화해야 할 책이 있다. 학술서적을 읽는 자세와 소설이나 시를 읽는 모습과 만화책을 보는 태도가 무조건 같을 수는 없다. 베이컨은 책을 음식, 독서를 먹는 행위에 비유했다. 베이컨뿐만 아니라 애서가들은 책을 먹는 것을 독서, 책 사랑하기에 대한 은유와 상징으로 본다. 인간은 종종 은유적 표현을 사용한다. 은유’, ‘비유를 뜻하는 메타포(metaphor)는 겉으로 드러난 문장에 진짜 의미를 숨기는 수사법이다. 독자들의 마음에 와 닿게 이야기를 전하려면 무언가에 빗대는 은유가 필요하다. 그러나 은유는 양날의 검이다. 글쓴이의 참신한 관점을 드러낼 더없는 기회지만, 독자가 주어진 은유에 숨겨진 의미를 찾지 못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인생과 독서를 주제로 한 은유가 된 독자는 은유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독서는 왜 고독한 여행일까? 애서가는 왜 바깥세상과 단절된 외로운 여정을 즐기는 것일까? 왜 책을 많이 읽으면 책벌레라는 별명을 얻게 되는 것일까? 작은따옴표를 붙인 단어 모두 독서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일상으로부터 탈출하여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란 너무나 어렵다. 그 떠남 대신에 여행을 통해 얻은 생각을 담은 책 한 권만으로도 여행을 다녀 온 듯한 느낌을 얻을 때가 있다. 은유가 된 독자는 독자에게 이러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책을 연 순간부터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똑똑한 여행 가이드 알베르토 망구엘(Alberto Manguel)와 함께 하는 동안 독자는 외롭지 않다.

 

책 속에 독자들이 살고 있다. 단테(Dante)는 자신이 창조한 또 다른 세계, 신곡이라는 텍스트 위를 걷는 여행자. 세상의 경험을 압축한 책은 하나의 세계 그 자체이다. 책을 읽는 것은 세상을 여행하는 일과 같다. 햄릿(Hamlet)상아탑에 갇혀 고뇌하는 인물이다. 원래 상아탑은 독서에 몰입하고 싶은 독자들의 안식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상아탑의 의미는 달라진다. 오늘날의 상아탑에는 현실을 외면하고 개인 안락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지식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돈 키호테(Don Quixote)와 보바리 부인(Madame Bovary)은 책을 사랑하는 책 바보이자 걸신들린 책벌레. 그들은 서로 다른 환경, 문화, 시간 속에서 살아왔지만 책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똑같다. 그들의 열정 속에서 독서 세계가 풍부하게 그려지는 것이다. 망구엘은 여행’, ‘상아탑’, ‘책벌레’, 이 세 가지 은유를 사용해가면서 독서와 글쓰기의 가치를 들려준다.

 

책은 지식 전달이 아닌 삶의 지혜를 보는 안목을 키워 주는 소임을 충실히 한다. 삶 자체가 읽기의 과정이다. 우리 삶은 끊임없이 읽고 해석해야 할 것들의 연속체다. 사람들의 눈빛, 표정, 몸짓을 읽듯이 책의 속뜻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독서가 언제나 완결된 읽기에 도달할 수 없다. 우리가 평생에 걸쳐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해도 세계의 전체적인 모습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시간이 갈수록 세계는 더욱 불확실하고 모호해진다. 세계의 복잡성은 세계를 책 안에 모두 담아내는 일을 애초에 불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인터넷 세계에서는 사람들이 원하는 정보의 범위가 압축되어 있어서 정말로 필요한 정보를 금방 찾을 수 있다. 인터넷이 지배한 이 시대에 느린 여행의 매력을 아는 독서 여행자를 만나기가 어렵다. 망구엘은 전자책이 천천히 여행하는 독서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다고 생각한다. 그는 천천히, 깊게, 철저히 읽는 방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망구엘이 지향하는 독서는 한 권의 책을 읽다가, 중간에 다시 덮고, 그리고 다시 펴기를 반복하면서 새로운 무엇을 발견하는 경험이다. 따라서 독서란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무한정 자유로운 여행이다. 애서가를 매혹시키는 것은 책이다. 애서가는 멈추지 않고, ‘세상이라는 책을 향한 관심을 넓힌다. 애서가는 아직 걷고 있는 여행의 끝이, 목표점이 어디인지 찾지 못했어도 자체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더 잘 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galmA 2017-11-24 0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페이퍼 쓰며 제 독서에 대해 생각해 봤는데, 독서도 내릴 곳에서 두고 갈 배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인용에 인용을 거듭하며 계보를 좇으며 한평생을 살고 싶진 않더라는. 내 앎을 찾는 것, 그게 제 독서 목표더라는...

cyrus 2017-11-24 11:26   좋아요 1 | URL
지식에도 유효기간이 있듯이 더 이상 내 삶에 도움 되지 않는 지식은 버리는 게 좋아요. ^^
 

 

 

학명(Scientific Name)은 만국공용어에 해당하는 생물 이름이다. 인간의 학명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생물 종의 학명을 붙일 경우 이명법(二名法)을 따른다. 라틴어로 구성되어 있으며 속명(genus)과 종명(species)을 조합하는 방식이다. 학명의 ‘Homo’는 속명이고, 학명의 뒤에 오는 것이 종명이다. 속명의 첫 글자는 대문자, 종명의 첫 글자는 소문자로 표기한다.

 

 

 

 

 

 

 

 

 

 

 

 

 

 

 

 

 

 

*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김영사, 2017)

 

 

 

올해 국내에 출간된 유발 하라리(Yuval Harari)의 저서 제목은 호모 데우스. 번역본을 펴낸 출판사는 호모 데우스‘Homo Deus’로 표기했다. , 그렇다면 이 단어 표기는 맞는 것일까, 틀린 것일까?

 

학명 명명법에 따르면 ‘Homo Deus’는 틀린 표기다. (god)을 뜻하는 라틴어 ‘Deus’는 종명이다. 종명의 첫 글자를 소문자로 표기하는 방식을 따르면 ‘Homo deus’라고 써야 한다.

 

지금까지 알라딘에서 제목 표기를 날카롭게 지적한 리뷰를 두 편 봤다. 옳은 지적이다. 처음에 나는 그 의견에 동의했다. 그런데 ‘Homo Deus’가 틀렸다고 할 수 없다.

 

 

 

 

* ‘Homo Deus’가 틀렸다고 할 수 없는 이유 1 :

호모 데우스원서명은 ‘Homo Deus’.

 

 

 

 

 

 

 

라틴어 표기가 틀렸다고 해서 번역본을 만든 김영사가 잘못된 것일까? 그러한 문제 제기는 김영사 출판사 입장에선 억울하다. 원서를 펴낸 출판사에 라틴어 표기 문제를 따져야 한다. 아니면 호모 데우스를 처음으로 만든 유발 하라리에게 따지든가.

 

 

 

 

* ‘Homo Deus’가 틀렸다고 할 수 없는 이유 2 :

‘Homo Deus’는 정식 학명이 아니다.

 

‘Homo Deus’는 학명의 속명(Homo)‘Dues’를 결합한 합성어. ‘Homo Deus’는 유발 하라리가 만든 학명이 아니라 신조어. 학명의 유효성을 인정하는 국제 명명규약을 따른다면 ‘Homo Deus’ 표기는 틀렸다. 그렇지만 ‘Homo Deus’는 명명규약을 따를 필요 없는 신조어이며 정식 학명으로 등록되지 않았다. 호모 데우스는 학명이 아닌데, 학명 명명법대로 표기할 필요가 있을까?

 

 

 

 

* ‘Homo Deus’가 틀렸다고 할 수 없는 이유 3 :

‘Homo Deus’는 하라리가 의도한 ‘Deus Homo’의 패러디일 가능성이 있다.

 

 

 

 

 

 

 

 

 

 

 

 

 

 

 

 

 

 

 

 

 

가톨릭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가톨릭에 관한 모든 것(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07)‘Deus Homo’을 설명한 항목이 있다. ‘Deus Homo’예수를 가리키는 라틴어다. 예수는 (Deus)과 인간(Homo)의 특성을 동시에 지닌 신인(神人)이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볼 때 ‘Homo Deus’신이 된 인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예수가 신이 된 인간인지 아니면 인간이 된 신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여기까지 파고들면 글이 엉뚱한 방향으로 향할 수 있으니 이 문제는 제쳐 두자. 예수를 신이 된 인간으로 본다면 ‘Deus Homo’‘Homo Deus’는 표현상 같은 의미다. 그러나 하라리가 만든 ‘Homo Deus’의 진짜 의미(정보와 데이터를 숭배하는 미래의 인류, 호모 사피엔스의 능력을 초월한 인류)를 생각한다면 가톨릭 용어와 무조건 같다고 하면 안 된다. 본질적으로 의미가 같은 두 단어는 서로 다른 갈래에서 설명해야 한다.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김영사, 2015)

    

 

 

나는 하라리가 ‘Deus Homo’에 착안해서 책 제목을 정했을 거로 생각한다. 하라리의 주장에 따르면 종교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의미 있는 발명이라고 했다. 인간이 인본주의를 지향하기 전에는 종교에 의지했고, 자신들이 창조한 (Deus Homo)’을 숭배했다. 호모 데우스는 신도, 인간도 아닌 데이터를 숭배한다. 이제 미래의 인류는 신 대신 기술에 의존한다. 호모 데우스의 은 노화와 죽음을 극복하는 불멸의 존재, 성서에 등장하는 신이 아니다. 미래의 'Deus'는 현실에서 가능할 법한 신이다. 이 견해는 개인적인 추정이므로 반론이 제시되면 폐기될 수 있다.

 

 

 

 

 

 

* annotate (입력: 20171123일 PM 16:27)

 

‘Homo Deus’‘D’가 대문자로 표기된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했다. 책 제목으로 사용된 단어의 첫 글자는 대문자로 쓴다. (syo님의 의견) 호모 데우스원서의 본문에 ‘Homo deus’로 표기된 것을 psyche이 확인했다. 따라서 책 제목의 ‘Homo Deus’ 표기는 문제 될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필자의 두 번째 의견과 세 번째 의견은 무용하게 되었다. 아주 간단한 이유가 있는데도 미처 알지 못했고, 헛다리를 짚었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11-23 1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1-23 13:03   좋아요 0 | URL
유발 하라리의 책을 철저하게 평가하려면 책 한 두번 읽어선 안 될 거예요. ^^

syo 2017-11-23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그냥 궁금해서 여쭤보는건데요,
원래 책 제호는 of 같은 것만 빼고 단어마다 다 첫글자를 대문자로 쓰지 않나요?

제가 원서를 못봐서 그러는데, 책에서 제호를 나타내는 게 아니라 그냥 명사로 사용할 때도 D를 대문자 표기하고 있나요? 유발하라리 홈페이지에서는 구분을 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cyrus 2017-11-23 13:0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책 제목의 단어 첫 글자는 대문자로, 전치사의 첫 글자는 소문자로 표기해요.

유발 하라리 공식 웹사이트를 확인해봤어요. 책 제목을 ‘Homo Deus‘라고 표기했지만, 책 내용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Homo deus‘라고 나와 있어요. 프시케님 말씀대로 원서 본문에는 ‘Homo deus‘라고 적혀 있군요. ^^

psyche 2017-11-23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의 표기법에 대해서도 이렇게 깊은 생각을 할수있군요. 저는 암 생각 없었는데... syo 님의 말씀이 맞는거 같아요. 제목이기 때문에 첫글짜를 대문자로 쓴거 같은데요? 혹시 해서 아마존에서 이북 샘플 가서 확인해봤더니 본문에는 Homo deus 라고 되어있어요.

cyrus 2017-11-23 13:12   좋아요 0 | URL
저도 syo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책 제목 첫 글자를 대문자로 표기하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어요. 글을 수정할 때 syo님과 프시케님의 의견을 반영하겠습니다. ^^

표맥(漂麥) 2017-11-23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읽고 있는 책인데... 한번도 이런 방향으로 생각조차 못했답니다... 부럽(?)습니다...^^

cyrus 2017-11-24 11:27   좋아요 0 | URL
부러워해야 할 일이 아니에요.. ㅎㅎㅎ 알아두면 쓸데없는 내용입니다. ^^;;
 
담론과 진실 미셸 푸코 미공개 선집 2
미셸 푸코 지음, 오트르망 옮김 / 동녘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의 별명은 미친 소크라테스였다. 이 별명을 붙여준 사람은 소크라테스(Socrates)의 제자 플라톤(Plato)이다. 진중권의 설명을 빌리자면, 소크라테스는 입으로 논증하는 철학자였다면 디오게네스는 몸으로 논증하는 철학자였다.[1] 실제로 디오게네스는 자기 생각을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행동파철학자였다. 세계 정복을 나선 알렉산드로스(Alexandros)가 디오게네스를 부러워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디오게네스는 평생을 거리에 버려진 커다란 통 속에서 살았다. 그는 햇볕을 쬐기 위해 통 밖으로 나와 있었는데, 마침 알렉산드로스가 디오게네스를 만나러 왔다. 알렉산드로스는 철학자에게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말해 보라고 했다. 디오게네스는 왕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햇빛을 가리고 있으니 비켜주세요.” 디오게네스는 이 말 한마디로 콧대 높은 젊은 왕을 납작하게 만들었다. 왕의 부하들이 무례한 디오게네스를 꾸짖으려고 하자, 왕은 부하들을 말리면서 만약 내가 알렉산드로스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었을 것이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알렉산드로스는 모두가 부러워하고 숭앙하는 권력자였다. 디오게네스는 돈도 권력도 없는 거지였지만 당당했다. 한 사람은 세계 정복을 열망했고 다른 한사람은 햇빛이면 만족했다. 디오게네스는 정치권력뿐만 아니라 기존의 지식의 가치를 조롱하고 비판했다. 그의 냉소적인 철학을 견유주의(Cynicism)라고 부른다. 디오게네스가 권력을 냉소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권력자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했다. 디오게네스의 발언 태도는 모든 것을 말하기’, ‘솔직하게 말하기’, ‘진실을 말하기 등에 가깝다. 이 말하기 행위는 고대 그리스어로 파레시아(parrhesia)’라고 한다. 파레시아는 고대 그리스, 로마 철학자들이 지향했던 삶의 원칙이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인생 말기에 파레시아를 주목했다. 담론과 진실, 파레시아1982년 프랑스에서 진행되었던 파레시아1983년 미국에서 총 여섯 번으로 진행되었던 담론과 진실 강연 내용을 채록하여 정리한 것이다.

 

파레시아라는 단어는 그리스도교 텍스트에서도 등장한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파레시아는 신과 교인과의 관계 속에서 신의 교리에 진실성 있게 접근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그리스도교의 파레시아는 고대 철학자들과 푸코가 이해하는 파레시아와 전혀 다른 개념이다. 푸코의 파레시아는 신이 아닌 사회 전체에 적용되며 비판적 실천에 초점을 맞춘다. 푸코는 강연에서 에우리피데스(Euripides)의 비극(悲劇) 작품, 플라톤 등 고대 그리스 · 로마 시대의 문헌들을 인용 소개하여 파레시아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설명한다. 파레시아는 권력자 앞에서 담대하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이며 민주정 체제가 허용하는 시민(아테네 시민권에 여성과 노예는 포함되지 않았다. 아테네의 여성은 정치 참여에서 제외되었다. 파레시아의 시대적 한계이다)의 기본 권리이다. 파레시아를 행하는 파레시아스트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대중의 분노와 역반응을 감수하면서 발언한다.

 

푸코는 소크라테스와 견유주의의 파레시아를 비교, 분석한다. 소크라테스는 윤리적 파레시아다. 소크라테스가 강조한 명제 너 자신을 알라(Nosce Te Ipsum)’는 자기 자신에게 향한 질문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사고방식에 대해서 의심하고 반성하는 행위가 함축되어 있다. 즉 자기를 이해하는 것은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는 자기 돌봄이다. 자신의 무지를 정확히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 그것은 진실을 말하는 파레시아 개념과 중첩하게 된다. 견유주의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급진적 파레시아다. 견유주의 철학자들은 과격한 방식으로 기성 질서를 비판한다. 소크라테스는 기성 질서를 비판하면서도 현재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지만, 견유주의 철학자는 주류를 거부한다.

 

푸코는 파레시아를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현실 전체를 제대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삶의 기술로 이해한다. 따라서 파레시아스트가 되려면 먼저 자아비판이 이루어져야 하며 대중 앞에서 떳떳하게 진실을 알리는 담대한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파레시아스트도 상대방의 정당한 비판을 받을 수 있으며 상대방의 의견에 경청해야 한다. 파레시아스트의 말 속에는 세상을 바꾸기 위한 실천 의지가 반영되어야 한다.

 

 

    

 

 

과연 우리 사회에 자발적으로 비판하는 파레시아스트가 많이 나올 수 있을까? ‘숙의(熟議)’, 말 그대로 깊이 생각하고 충분한 의논을 통해 문제를 판단하는 사회 분위기가 정착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자유로운 논의를 위해 판을 잘 깔아야 한다. 숙의민주주의 발전이 더딘 사회에 파레시아스트의 등장을 바라는 것은 근시안적인 기대감이다. 썩은 내 나는 입으로 민주주의를 들먹이면서 파레시아스트인 것처럼 행세하는 형편없는 자가 나올 수 한다. 우리는 '진실'의 가면을 쓴 사기꾼을 경계해야 한다.

 

 

 

 

[1] 진중권 앙겔루스 노부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prenown 2017-11-21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에서 퍼질러 앉아 있는 디오게네스가 생각납니다.^^. 사리사욕을 버려야 ‘파레시아‘가 가능하겠지요...

cyrus 2017-11-22 14:04   좋아요 1 | URL
주류에서 파레시아스트가 나오기 힘들어요. 주류를 비판하면 주류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잃어버려요. 사익을 포기하면서까지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주류로부터 배척당해요.

2017-11-21 2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1-22 14:10   좋아요 1 | URL
대구 경북은 보수의 텃밭이 아니라 순실그네가 활개치던 놀이터에요.
 

 

 

 

주말에 TV 채널을 돌리다가 케이블 채널에 하는 <차트를 달리는 남자>를 보게 됐다. 내가 본 방영분은 54미확인 생물체이다. 방송 중간 부분부터 봤는데 두 MC가 미확인 비행물체 로드(Rod)’를 소개하고 있었다. 로드가 7위로 소개됐고, 6위는 반인반수 박쥐 인간악어 인간이었다. 방송은 박쥐 인간과 악어 인간 미라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개했다. 이 사진들의 출처는 위클리 월드 뉴스(Weekly World News)’였다.

 

위클리 월드 뉴스가짜 뉴스를 진지하게 사실인 것처럼 보도하는 미국의 신문이다. 1979년에 창간된 주간지였으나 2007년에 폐간되었고 현재는 인터넷 신문으로 제작되고 있다. 이 신문을 인용한 기사가 있으면 믿고 거르면 된다. 그리고 위클리 월드 뉴스에서 나온 사진은 조작된 것이다. 작년에 위클리 월드 뉴스를 짧게 소개한 글을 쓴 적이 있다.

 

 

 

* [인간의 변신] 20161022일 작성

http://blog.aladin.co.kr/haesung/8851097

 

 

 

이 신문의 정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위클리 월드 뉴스의 엉터리 기사를 진짜라고 믿는다. 국내 기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8, 90년대 해외 사정을 잘 몰랐던 국내 언론들은 이상하고 재미있는 해외 토픽을 전달하기 위해 위클리 월드 뉴스를 자주 인용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위클리 월드 뉴스를 인용한 수준 미달의 기사가 나오고 있다.

 

 

 

* [박쥐소년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재포획’] (코리아헤럴드, 20151124)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44&aid=0000164138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박쥐 인간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웃긴 건 탈출한 박쥐 인간이 다시 포획된 해가 1997년이다. 코리아헤럴드 소속 기자는 십 년이나 지난 가짜사건을 실제로 일어난 일인 것처럼 뻔뻔하게 기사를 썼다.

 

 

 

* [오바마-레이건, ‘큰바위 얼굴조각상 합류 각축전?] (연합뉴스, 2013124)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6057815

 

연합뉴스가 인용한 위클리 월드 뉴스 기사 내용이 황당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러시모어산에 자신의 얼굴 조각을 새기는 작업을 착수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네티즌 한 명이 위클리 월드 뉴스를 인용한 연합뉴스 소속 기자의 글에 비판 댓글을 달았으나 기자는 피드백을 하지 않았다‥….

 

 

 

* [23세 유명 여가수, 5세 연하 아이 임신설] (문화일보, 20121218)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1&aid=0002138027

 

2012년에 위클리 월드 뉴스는 두 번이나 최악의 기사를 퍼뜨렸다. 하나는 2012구탄 행성지구 종말설, 또 하나는 미국의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 임신설이다. 말도 안 되는 루머를 버젓이 인용한 국내 기사가 한 두 개가 아니다.

 

 

 

* [러 푸틴, “내가 오바마 조종할 것”] (매일경제, 201231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9&aid=0002659317

 

위클리 월드 뉴스는 러시아의 푸틴 총리가 오바마를 위해 1억 달러의 대선 자금을 기부했다고 보도했다.

 

 

 

* [신출귀몰 칠면조에 동네 발칵12명이나] (매일경제, 2012310)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9&aid=0002659020

 

칠면조를 무시무시한 괴물로 둔갑한 위클리 월드 뉴스 클라스‥….

 

 

 

* [독일 정부, ‘UFO·외계생명체극비 문서 공개할까] (서울신문, 20111230)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81&aid=0002246947

 

서울신문 기사에 히틀러와 외계인과 만나는 장면이 찍힌 사진이 게재되어 있다. 설마 이 사진을 진짜로 믿는 사람이 있으려나?

 

 

* [코카콜라 맛의 비밀이 인간의 침이라고?] (한겨레, 201112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8&aid=0002078322

 

이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려 있다. “이젠 펩시만 마셔야겠군.” 이래서 가짜 뉴스는 위험하다.

 

 

 

 

 

위클리 월드 뉴스는 단순히 재미를 위해 설립된 특이한 언론사이다. 위클리 월드 뉴스 창간한 제네로소 포프(Generoso Pope Jr.)는 타블로이드 가십 매체인 <내셔널 인콰이어러(The National Enquirer)> 소속 언론인이었다. (악이 악을 낳는다?) 위클리 월드 뉴스 편집장을 맡은 에디 클론츠(Eddie Clontz)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는 기사를 전달하는 것이 위클리 월드 뉴스의 일차적 목표라고 밝혔다.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로 시작된 요지경 박물관시리즈는 위클리 월드 뉴스에 보도된 내용들을 소개한 책이다. 요지경 박물관 1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악어 인간 미라에 관한 내용이 있다. 어렸을 때 그 책을 보면서 정말로 악어 인간이 있는 줄 알았다. 이 책이 잘 팔렸는지 출판사는 제목을 은근슬쩍 바꿔 가면서 후속 작을 냈다.

 

 

 

요지경 박물관 1: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요지경 박물관 2: 아니, 세상에 이럴 수가

요지경 박물관 3: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또

요지경 박물관 4: 아니, 세상에 또 이럴 수가

요지경 박물관 5: 아니,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요지경 박물관 6: 아니,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요지경 박물관 7: 아니, 세상에 정말로 이런 일이

요지경 박물관 8, 9: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출판사가 새로운 제목을 정하는 것이 귀찮았는지 8부와 9부 제목은 1부 제목과 똑같다.

 

 

 

 

 

 

 

 

 

 

 

 

 

 

 

 

 

* 요지경 신문(하나로, 1997)

 

 

 

요지경 박물관 시리즈를 만든 출판사는 신문지 형태로 편집한 요지경 신문을 펴내기도 했다.

 

 

 

 

 

 

 

 

 

 

 

 

 

 

 

 

 

 

* 노아 스트리커 (니케북스, 2017)

 

 

 

노아 스트리커의 에 위클리 월드 뉴스를 인용한 내용이 나온다.

 

 

 

2012위클리 월드 뉴스(Weekly World News)는 자신들만의 이론을 발표했다. “적대적인 흰올빼미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며 미국 시민들을 공격하기 위해 외계 군단과 손을 잡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흰올빼미들은 201111월에 지구에 착륙하여, 페루 돌고래의 떼죽음을 일으키기도 한 구탄 행성인들과 내통하고 있었다. (146~147)

    

 

 

2012년 지구 종말설이 슬슬 유행하기 시작할 때 위클리 월드 뉴스도 대중을 속일 수 있는 '떡밥'을 던졌다. 이 언론사는 구탄 행성에 사는 외계인들이 2012년에 지구를 침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흰올빼미들이 미국 시민들을 공격하기 위해 구탄 행성 외계인들과 손을 잡았다는 황당한 소설도 썼다. 의 저자는 위클리 월드 뉴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냥 이런 황당한 주장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 진중권 아이콘(씨네21북스, 2011)

* 진중권 이미지 인문학 1(천년의상상, 2014)

 

 

 

 

가짜만 전달하는 위클리 월드 뉴스가 못마땅해도 그들의 뚝심 있는 행보에 긍정성을 읽어낼 수 있다. 가짜를 양산해 내는 위클리 월드 뉴스 소속 기자들은 파타피직스(Pataphysics)’의 유희를 즐긴다. 파타피직스는 형이상학(Metaphysics)를 패러디한 것으로, 진짜와 가짜가 섞인 우스꽝스러운 부조리를 지향한다. 파타피직스는 인간을 뛰어난 지성을 가진 존재로 돋보여주는 이성에 반발하는 학문이다. 인간이 아무리 똑똑해도 가짜에 익숙해지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못한다. 파타피직스 세계에 있는 자는 상상력을 하나의 자양분으로 삼고 자라난다. 현실의 한계를 깨뜨리는 전복적 상상력은 예술 창작의 힘이 된다. 하지만 뭐든지 지나치면 독이 된다. ‘가짜를 악용하는 자들은 현실을 왜곡하여 사회 불안을 조장한다. 우리가 사는 파타피직스 세계에 악마가 있다. 그 악마란 바로 우리를 속이고 위협하는 가짜이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prenown 2017-11-21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해요.. 이 많은 기사와 자료들을 어떻게?

cyrus 2017-11-21 18:52   좋아요 0 | URL
작년에 처음 위클리 월드 뉴스를 알게 되면서 관련 자료를 스크랩했어요. 사실 검색만 하면 한 시간 안에 기사 네다섯 개 금방 찾아낼 수 있어요. ^^

서니데이 2017-11-21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짜뉴스인 걸 알고서 보면, 일어나지 않은 가상의 일들에 대한 창의적인 기사를 매일 써야하는 기자의 어려움도 이해할 수 있을지도요.오늘은 어제보다는 조금 덜 춥습니다. cyrus님 좋은 오후 보내세요.^^

cyrus 2017-11-21 18:55   좋아요 1 | URL
창작 재능이 가짜 뉴스 만드는 일에 낭비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위클리 월드 뉴스 소속 기자들은 마음대로 기사 내용을 꾸밀 수 있어서 만족한답니다. 우리나라에선 불가능한 일이죠. 명예훼손죄로 고발당해요.. ^^;;

2017-11-21 16: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1-21 18:55   좋아요 1 | URL
그 노래가 히트했을 때, 요지경 박물관 시리즈가 나왔어요. ^^

이하라 2017-11-21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래전에 빌클린턴 미전대통령이 그레이 외계인과 악수하고 있는 시진을 본 기억이 있어요. 진짜라고 믿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런 식의 뉴스들을 필터링을 거치지않고 진짜로 믿어버릴만큼 정교하게 유통시키는건 정말 문제가 큰 것 같아요. 그런 재치는 좋지만 확실히 가짜뉴스인걸 알수 있도록 명시해 주어야 하지않나 싶어요.

cyrus 2017-11-21 19:02   좋아요 0 | URL
빌 클린턴과 힐러리. 위클리 월드 뉴스가 좋아하는 먹잇감(?)입니다. 힐러리가 정계 활동을 하고 있었을 때 힐러리 외계인 아기 임신설이 보도된 적이 있어요. 위클리 월드 뉴스는 자신들의 임무가 가짜 뉴스 전달하는 것이라고 알렸어요. 문제는 국내 언론 기자들이 가짜 뉴스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보도하는 행태입니다. 그래서 외신 기사를 보면 반드시 출처를 확인해야 됩니다.

transient-guest 2017-11-22 0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그런데 일부 교회들이 전도나 종말론을 피력하면서 사용한 찌라시를 보면 이런 신문들의 기사를 모은 것이 많이 있습니다. 1980년대와 90년대의 찌라시에서 제가 기억하는 건 모두 미국에 와서 타블로이드 신문들 일면에 나온 것들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1) 천문학자가 먼 우주에서 천국의 실제 사진을 찍었다 (그리스/로마양식의 조잡한 합성사진), (2) 땅을 파들어가다가 지옥을 발견했다, 소리가 난나, (3) 천사나 악마를 봤다, (4) 타 종교에 대한 공격, 등등. 그 전에는 아마 소년중앙이나 새소년 같은 어린이잡지에서 기획기사에 이런 것들을 많이 가져다 쓴 것 같아요 맥락상. 지금도 ‘일부‘ 언론에서는 영국과 미국에서 발행되는 황색신문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참 알 수 없는 일입니다.

cyrus 2017-11-22 14:17   좋아요 0 | URL
우주에 예수 형상이 찍힌 조작 사진도 있어요. 어렸을 땐 순수해서 실제로 있다고 믿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별 희한한 내용들이 많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