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명(Scientific Name)은 만국공용어에 해당하는 생물 이름이다. 인간의 학명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다. 생물 종의 학명을 붙일 경우 이명법(二名法)을 따른다. 라틴어로 구성되어 있으며 속명(genus)과 종명(species)을 조합하는 방식이다. 학명의 ‘Homo’는 속명이고, 학명의 뒤에 오는 것이 종명이다. 속명의 첫 글자는 대문자, 종명의 첫 글자는 소문자로 표기한다.
*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김영사, 2017)
올해 국내에 출간된 유발 하라리(Yuval Harari)의 저서 제목은 ‘호모 데우스’다. 번역본을 펴낸 출판사는 ‘호모 데우스’를 ‘Homo Deus’로 표기했다. 자, 그렇다면 이 단어 표기는 맞는 것일까, 틀린 것일까?
학명 명명법에 따르면 ‘Homo Deus’는 틀린 표기다. 신(god)을 뜻하는 라틴어 ‘Deus’는 종명이다. 종명의 첫 글자를 소문자로 표기하는 방식을 따르면 ‘Homo deus’라고 써야 한다.
지금까지 알라딘에서 제목 표기를 날카롭게 지적한 리뷰를 두 편 봤다. 옳은 지적이다. 처음에 나는 그 의견에 동의했다. 그런데 ‘Homo Deus’가 틀렸다고 할 수 없다.
* ‘Homo Deus’가 틀렸다고 할 수 없는 이유 1 :
《호모 데우스》 원서명은 ‘Homo Deus’다.

라틴어 표기가 틀렸다고 해서 번역본을 만든 김영사가 잘못된 것일까? 그러한 문제 제기는 김영사 출판사 입장에선 억울하다. 원서를 펴낸 출판사에 라틴어 표기 문제를 따져야 한다. 아니면 ‘호모 데우스’를 처음으로 만든 유발 하라리에게 따지든가.
* ‘Homo Deus’가 틀렸다고 할 수 없는 이유 2 :
‘Homo Deus’는 정식 학명이 아니다.
‘Homo Deus’는 학명의 속명(Homo)과 ‘Dues’를 결합한 합성어다. ‘Homo Deus’는 유발 하라리가 만든 학명이 아니라 ‘신조어’다. 학명의 유효성을 인정하는 국제 명명규약을 따른다면 ‘Homo Deus’ 표기는 틀렸다. 그렇지만 ‘Homo Deus’는 명명규약을 따를 필요 없는 신조어이며 정식 학명으로 등록되지 않았다. 호모 데우스는 학명이 아닌데, 학명 명명법대로 표기할 필요가 있을까?
* ‘Homo Deus’가 틀렸다고 할 수 없는 이유 3 :
‘Homo Deus’는 하라리가 의도한 ‘Deus Homo’의 패러디일 가능성이 있다.
가톨릭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가톨릭에 관한 모든 것》(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07)에 ‘Deus Homo’을 설명한 항목이 있다. ‘Deus Homo’는 예수를 가리키는 라틴어다. 예수는 신(Deus)과 인간(Homo)의 특성을 동시에 지닌 신인(神人)이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볼 때 ‘Homo Deus’는 ‘신이 된 인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예수가 ‘신이 된 인간’인지 아니면 ‘인간이 된 신’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여기까지 파고들면 글이 엉뚱한 방향으로 향할 수 있으니 이 문제는 제쳐 두자. 예수를 ‘신이 된 인간’으로 본다면 ‘Deus Homo’와 ‘Homo Deus’는 표현상 같은 의미다. 그러나 하라리가 만든 ‘Homo Deus’의 진짜 의미(정보와 데이터를 숭배하는 미래의 인류, 호모 사피엔스의 능력을 초월한 인류)를 생각한다면 가톨릭 용어와 무조건 같다고 하면 안 된다. 본질적으로 의미가 같은 두 단어는 서로 다른 갈래에서 설명해야 한다.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김영사, 2015)
나는 하라리가 ‘Deus Homo’에 착안해서 책 제목을 정했을 거로 생각한다. 하라리의 주장에 따르면 종교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의미 있는 발명이라고 했다. 인간이 ‘인본주의’를 지향하기 전에는 종교에 의지했고, 자신들이 창조한 ‘신(Deus Homo)’을 숭배했다. 호모 데우스는 신도, 인간도 아닌 데이터를 숭배한다. 이제 미래의 인류는 신 대신 기술에 의존한다. 호모 데우스의 ‘신’은 노화와 죽음을 극복하는 불멸의 존재, 성서에 등장하는 신이 아니다. 미래의 'Deus'는 현실에서 가능할 법한 신이다. 이 견해는 개인적인 추정이므로 반론이 제시되면 폐기될 수 있다.
* annotate (입력: 2017년 11월 23일 PM 16:27)
‘Homo Deus’의 ‘D’가 대문자로 표기된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했다. 책 제목으로 사용된 단어의 첫 글자는 대문자로 쓴다. (syo님의 의견) 《호모 데우스》 원서의 본문에 ‘Homo deus’로 표기된 것을 psyche님이 확인했다. 따라서 책 제목의 ‘Homo Deus’ 표기는 문제 될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필자의 두 번째 의견과 세 번째 의견은 무용하게 되었다. 아주 간단한 이유가 있는데도 미처 알지 못했고, 헛다리를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