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시의 논란에 부쳐.....

 

 

 

 

 

고등학생 때 국어 문제집을 풀다가 만난 시다. 시의 제목이 예사롭지 않다. 「토란잎에 궁그는 물방울 같이는」. ‘궁그는’은 ‘구르다’의 전라도 방언이다. 시인은 물방울이 토란잎에 동그랗게 구르는 장면을 귀엽게 표현했다. 그런데 내가 본 그 문장은 시가 아니었다. 객관식 문제의 예시 문항이었다. 네모난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신세였다. 문제의 답을 찾느라 시에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문제집을 덮는 순간, 문장은 영원히 탈출하지 못한다. 나는 문제집에 갇힌 문장을 구출했다. 생기 잃은 문장을 공책 칸에 옮겼다. 그러니까, 그때였다. 시가 날 찾아온 것은.1)

 

 

 

 

 

투명한 지하철 스크린도어 벽 속에 갇혀 있는 시다. 이 시의 제목도 예사롭지 않다. 「목련꽃 브라자」.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목련꽃 브라자」는 시가 아니라고 한다. 심지어 이 시를 얼른 빼라고 화를 낸다. 여성 속옷을 지칭한 ‘브라자’와 사춘기 소녀의 가슴을 비유한 ‘목련꽃’이라는 표현이 문제였다. 시를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들은 ‘브라자’와 ‘목련꽃’이 들어간 구절이 민망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 두 단어 때문에 감흥이 완전히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시는 점점 생기를 잃었다. 문자라는 육신만이 쓸쓸하게 남은 송장이 된다.

 

앞의 시는 무기력한 감성을 소생하는 시로 부활했다. 반면 뒤에 소개된 시는 사람들의 날카로운 시선 속에서 쓸쓸히 죽어간다. 서로 정반대의 운명에 처한 두 편의 시를 만든 사람이 누굴까. 사실 두 편 모두 한 사람이 썼다. 시인의 이름은 복효근이다. 복효근 시인은 1991년에 정식으로 등단했다. 그가 쓴 세 편의 시는 중고등학생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사람들은 시인의 이름을 모르지만, 학창 시절을 겪었다면 한 번쯤 그의 시를 만나봤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처음에 「목련꽃 브라자」 선정성 논란 소식을 접했을 때 「목련꽃 브라자」가 아마추어 시인이 쓴 글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오늘 이웃의 글을 보다가 「목련꽃 브라자」 원작자를 확인했다. 시를 많이 읽지 않은 나 자신이 무척 부끄러웠다. 스크린도어에 적힌 「목련꽃 브라자」의 원작자 실명이 공개되지 않았다면, 나는 「목련꽃 브라자」를 수준 미달의 시라고 끝까지 믿었을 것이다.

 

「목련꽃 브라자」가 정말 수준이 떨어진 시인지 직접 판단하지 않겠다. 다만, 이 시 하나만 가지고 시인의 창작 능력을 폄하하는 상황이 씁쓸하다. 시인이 오래 살아서 죽을 때까지 펜을 놓지 않으면 100편이 넘는 수의 시를 남긴다. 만약에 스무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서 여든 살에 죽을 때까지 딱 천 편의 시를 남겼다고 가정하자. 사람들은 다작한 시인의 왕성한 작품 활동을 칭찬한다. 그렇지만 천 편의 시 모두 결점 없이 완벽한 예술성을 갖춘 작품이 될 수 없다. 사람들이 즐겨 읽는 애송시로 등극하면 그건 시인의 대표작이 된다. 그러나 그 이외에 다른 시는 대표작에 2% 부족한 그저 그런 작품으로 남게 된다. 대체로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보는 눈이 정확하다. 작가들은 오랜 시간 투자해서 열심히 썼던 글에 미흡한 점이 발견되면 혹독하게 평가한다.

 

소설을 쓰든 시를 쓰든 죽을 때까지 글을 쓰는 사람들은 독자들이 실망하는 실패작을 남긴다. 작가도 사람인지라 무조건 좋은 작품만 쓰는 일이 불가능하다. 「목련꽃 브라자」는 모든 독자에게 공감을 주지 못한 실패작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시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소수의 독자를 무조건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시 한 편에 모두 달려들어서 설왕설래해봤자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이번 기회에 싸움을 멈추고 다른 시인의 작품을 읽어보는 게 어떨까. 그래야 시인의 진가뿐만 아니라 시 읽기의 매력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 시는 시집으로 읽어야 제맛이다.

 

 

 

주 1) 파블로 네루다의 「시」가 시작되는 문장을 변주했음. 원본은 ‘그러니까 그 나이였다. 시가 날 찾아온 것은.’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16-04-20 1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4-20 20:42   좋아요 1 | URL
언론은 사소한 일을 괜히 크게 부풀려서 자극적인 뉴스로 만들려고 해요. 사실 작년에도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있는 시에 대한 시민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소개한 뉴스를 본 적이 있어요. 유명 시인이 쓴 시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 스크린도어에 소개했으면 시민들이 어떤 반응을 할지 궁금해요. 분명 시가 잘 썼는지 못 썼는지 따졌을 겁니다.

syo 2016-04-20 1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밌네요.

에, 사람마다 독법도 느낀바도 다를테니 어떤 이의 평만 절대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구조적으로 이런 건 좀 있다고 봐요.

부족한 제 눈에는 저 목련꽃 브라자에 나오는 ˝우리 선혜˝가 화자의 딸로 보이는데요,
풋풋하지만 한 명의 여성으로 잘 자라고 있는 딸을 보는 대견함을, 그러니까 뭐 공부를 잘 하거나 착한 일을 해서가 아니라 그냥 어엿한 여성으로 자라나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아름답고 대견한 딸을 그리는 시라고 읽었거든요.

근데 많은 사람들 눈에 그냥 사춘기 여성을 보는 어떤 중년 남성의 성적 시선만이 포착되는 것에는 일종의 사회적, 성적 편견이 작동한 부분도 있다고 봐요.

완전히 적절한 예는 아닐지 모르겠지만, 만약 완전히 같은 제재로 화자가 할머니고 대상이 사춘기 남자 아이가 된다면 -우리한테 다소 익숙한 `내 새끼 고추 잘 익었나 보자` 라는 식이랄까요?- 여하튼 그런 구도로 시가 나왔더라도 지금 저 시를 반대하는 사람 전부가 그대로 반대를 했을까요?

cyrus 2016-04-20 20:54   좋아요 0 | URL
syo님이 논란의 원인을 아주 정확하게 설명해주셨군요. syo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syo님이 사례로 든 할머니의 농담은 예전에는 웃고 넘어가면 그만이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못하죠. 복효근 시인의 시도 가벼운 유머를 염두에 두면서 썼는데, 반대로 사람들은 불편하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만일 시에 ‘내 새끼 고추 잘 익었나 보자’라는 구절이 들어있었으면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었을 겁니다. 요즘 성 범죄, 성추행, 성희롱 사건 빈도가 높아지니까 성을 주제로 한 대화나 언어적 표현을 쉽게 하지 못해요. 사람들은 여전히 시는 밝고 순화된 언어로 이루어진 글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복효근 시인의 표현이 낯설었을 거예요.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때 트위터에 떠돌던 야한 유머. 여자가 남친(남자 친구) 화 푸는 간단한 방법을 알고 나서 직접 실험을 해봤다. “가슴 만질래?” 한 마디 하니까 바로 남친의 기분이 풀렸다고 한다. 영국의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는 둥그렇게 생긴 가슴 형태가 성적 신호라고 했다. 그의 주장은 여성이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네 발 시절 남성을 유혹했던 엉덩이를 대신해 가슴을 키웠다는 가설을 뒷받침했다. 심지어 여성의 가슴이 남편의 구타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만큼 가슴은 다른 신체 부위보다 섹시하면서도 에로틱한 느낌을 준다. 이 유머가 남친 화 푸는 법이라는 제목이 붙은 짤방(글에 첨부된 이미지)으로 널리 알려졌다. 생각보다 유머에 공감하는 남자, 여자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유머를 가벼운 재미로 받아들이면, 그 속에 있는 불편한 진실을 보지 못한다. 남자를 달래주려고 가슴을 드러낸 여자, 그녀의 가슴을 보자마자 화색이 돌기 시작한 남자. 이 두 남녀의 모습은 남성성과 여성성이 왜곡되었다.

 

몇 천 년 동안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로 인식되었다. 남성이 외도하면 남자답다고 하면서 관대하게 여긴다. 이로써 남성은 남자답게 살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강화하게 된다. 반대로 여성이 외도하면 여자가 감히!’ 라고 매도한다.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남성들은 남성들과의 관계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려는 여성들에 대한 부당한 살인을 자행하였다. 남성들의 저항은 성차별적인 사회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거나 그것에 저항하는 여성들, 즉 페미니스트에 대한 낙인으로 이어진다. 이 낙인은 주류남성의 관계로부터 소외된다. 가부장제사회에서 남성의 관심 어린 시선에 벗어나면 여성들에게 의미 있는 자원을 획득할 기회 박탈로 연결된다. 따라서 여성은 고정화된 여성성에 맞춰 살아간다. 남성은 어렸을 때부터 용맹함, 진취적인 기상의 중요성을 배우면서 자란 반면에, 여성은 정숙, 순결, 아름다움, 순종, 심지어 아내로서의 덕성을 배운다.

 

지금도 여전히 남자는 남성적인 것이, 여자는 여성적인 것이 심리적으로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성 역할 구분은 현대 사회에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을뿐더러 인간이 타고난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는 데에 장애요인이 된다. 전통적으로 여성은 경제활동의 약자로 간주하여 왔다. 나이지리아 소설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강고한 남성적 질서의 문제점과 오해를 지적한다.

 

 

지금 우리가 남자아이들을 기르는 방식은 아이들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남자아이들의 인간성을 억압하고 있습니다. 남성성을 대단히 협소한 의미로만 정의합니다. 남성성은 좁고 딱딱한 우리와 같고, 우리는 그 속에 남자아이들을 밀어 넣습니다. (28)

 

 

여성은 단단한 남자의 기분을 맞춰주는 존재로 전락한다. 그래서 가슴을 드러내어 남성을 만족하게 한다. 이 유머에서 성 역할이 왜곡된 채 사회화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여성이 남성의 취약한 자아를 맞춰주는 존재로 보고 있다. 잘못된 여성성은 여성을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공격당한다. 가진 것이 없어서 그저 남자의 성적 욕망을 충족해주는 김치녀라고 비난한다. 결국, 남성과 여성에 대한 편견은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된다. 차별을 넘어서 혐오에 가까운 오해가 생긴다. 기존의 남성성, 여성성이 강화될수록 남자들도 감정조차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는 부담에 억눌린다. 남성들의 권위가 약화되는 좁은 세상 속에 사는 남자들은 불안감이 생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아 분노를 표출한다. 이로 인해 여성들은 불합리한 혐오에 고통 받는다.

 

누군가는 유머를 심각하게 보는 나의 태도에 속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하지 싶다. “설마, 당신도 페미니스트?” 가부장제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여성들은 주류사회로부터의 추방을 각오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페미니스트 담론은 개개인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SNS를 중심으로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고 선언하는 운동이 확산하였다. 페미니스트가 환영받는 시대라고 하지만, 이중 잣대는 여전하다. 여자들이 페미니즘을 들고 나오면 너는 왜 그렇게 사니?라고 하는 이들이 많다. ‘성 평등이 이미 낡은 단어로 느껴지지만, 현실은 아직도 성 평등과 무척 거리가 멀다. 사회는 물론이고 교육 현실 속에서, 그리고 교육이 시작되는 가정에서도 남자답게여자답게가 뿌리 깊은 게 사실이다. “남자아이가 그것도 못하고 계집애처럼 울면 되겠어?”, “여자애가 칠칠치 못하게우리가 자라면서 많이 듣던 이런 말을 자연스럽게 되풀이하고 있지는 않은지 주의해야 한다. 어려서부터 갖게 된 남녀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정말 무섭다. 무의식 속에서 오랫동안 박혀 있던 성의 고정관념이 가끔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정말로 다양하게 존재하는, 차이를 가진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서로 배려하면서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여성성·남성성이라는 이분법적 단어가 사라져야 한다. 아디치에의 사전에는 페미니스트가 오로지 여성 권리를 획득하기 위한 사람이라고 적혀 있지 않다. 페미니스트는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페미니스트의 자격요건은 반드시 여성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성 역할을 강요하는 사회에 불편함을 느껴 문제제기하는 사람들은 모두 페미니스트다. 페미니즘 담론은 인간 사이의 연대와 소통을 회복하는 방법을 찾으려는 고민이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이해를 배운다면 남성은 덜 힘들고 여성은 덜 아플 수 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ureka01 2016-04-19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이와 차별을 구분못하는 경우가 너무 비일비재합니다.
남여의 차이를 가지고 차별하면
남자나 여자나 둘다 불행하거든요...

cyrus 2016-04-20 07:46   좋아요 1 | URL
맞아요. 남녀 갈등과 혐오는 남자 여자 모두 정신적 상처를 주고받는 최악의 상황입니다.

표맥(漂麥) 2016-04-20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 드니 아내의 눈치만 보게 되던데... 아내여~ 남편을 배려하고 이해하라! 이해하라! 이해하라~~~ (철없는 남편)^^

cyrus 2016-04-21 15:17   좋아요 0 | URL
저는 미혼이라서 누구 눈치 볼 필요가 없습니다. ^^;;

만두 2016-04-30 1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실 `미혼`도 여성주의에서는 지양하는 단어중 하나에요(결혼을 당연한 전제적 과업으로 상정하고있으므로..) 무튼 믿고 읽는 cyrus님 리뷰...! 잘읽엇습니당

cyrus 2016-04-30 18:57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현재 전 세계 사람들이 작은 섬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섬에 사는 사람들은 억울하다. 파나마의 수도 파나마시티에 있는 로펌회사 때문에 파나마가 조용할 날이 없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로펌회사 모색 폰세카(Mossack Fonseca)의 비밀서류를 조사하면서 사상 최대의 조세 회피 사실을 폭로했다. 이로 인해 전 세계 조세 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를 설립한 유명 인사들의 이름이 드러났다. 이 문건에는 부자뿐만 아니라 정부 고위인사, 왕족, 축구선수 등도 포함되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 장남이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사실도 확인되었다. 조세피난처 가운데 원조는 단연 스위스 은행이다. 오랜 세월 엄청난 규모의 ‘검은 돈’을 숨겨준 든든한 금고 구실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구린 돈이 오가는 거래를 차단하기 위해서 스위스의 모든 은행은 계좌 정보를 스위스 정부에 알려야 한다.

 

 

 

 

 

 

 

로버트 러들럼의 소설 《오스터맨의 주말》은 옛날 옛적에 세계 부자들이 달러 지폐에 불붙여 담배 피우던 시절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그 시절 부자들은 스위스 은행 계좌 하나만 잘 숨겨 놓아도 재산을 은닉할 수 있었다. 로버트 러들럼은 첩보 스릴러 장르를 개척한 미국의 작가다.

 

 

 

 

작가 이름이 생소해도 그의 대표작 ‘제이슨 본 시리즈’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본 아이덴티티》, 《본 슈프리머시》, 《본 얼터메이텀》 은 그의 동명 소설 원작으로 만든 영화다. 1980년에 발표된 《본 아이덴티티》가 2002년 영화로 개봉할 때만 해도 이 영화가 4탄 <본 레거시>까지 이어지는 시리즈가 되리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작가는 영화화된 자신의 작품을 보지 못한 채 2001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본 레거시>는 작가로 활동한 러들럼의 친구가 썼다고 한다. 러들럼은 작가가 되기 전에 연극배우와 제작자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42세라는 늦은 나이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첫 작품은 1971년에 나온  <The Scarlatti Inheritance>이다. 러들럼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딱 어울린다. 그는 해마다 소설 한 편씩 써내려갔다.

 

자, 러들럼이 누군지 알았으니 본격적으로 그가 쓴 《오스터맨의 주말》이 어떤 작품인지 알아보자. 《오스터맨의 주말》은 1972년에 발표된 러들럼의 두 번째 소설이다. 유명 TV 뉴스 진행자인 존 터너는 뉴저지주에 있는 평온한 마을 세들 벨리에 거주한다. 세들 벨리는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상류층들이 거주한다. 그래서 이곳은 마치 외부와는 전혀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고, 세들 벨리 사람들은 다른 지역 사람들의 접근을 반기지 않는다. 일요일 오후에는 뉴저지주 소속 순찰차가 마을 전체를 순찰한다. 존 터너 부부는 버나드 오스터맨 부부, 조셉 카르돈 부부, 변호사 트리메인 부부를 자신의 저택으로 초대해 만나기로 한다. 오스터맨은 작가, 조셉 카르돈은 주식중개업자, 트리메인은 변호사다. 네 사람 모두 남들 부러워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풍족한 삶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행복한 일상을 깨뜨리는 사람이 터너에 접근한다. CIA 소속 요원 로렌스 퍼세트는 터너에게 세 쌍의 부부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이라고 알려준다. 그들의 정체는 소련 군국주의자들과 손잡아 거대한 음모를 꾸미는 비밀 조직단 오메가 일원이다. 퍼세트는 오메가를 일망타진하기 위한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 터너에게 협조를 요청한다. 말이야 협조지 터너는 반강제적인 퍼세트의 태도에 못 이겨 순순히 받아들인다. 그 대신 자신들의 가족이 CIA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는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퍼세트와 CIA 요원들은 폐쇄 회로 CCTV를 통해 터너 가족의 행적을 감시한다. 퍼세트는 오스터맨, 카르돈, 트리메인이 서로 의심하여 갈등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교란 작전을 펼친다. 이럴수록 터너의 입장이 더욱 난처해진다. 세 사람은 동료의 배신으로 인해 자신들의 비밀이 터너가 알게 될까 봐 노심초사한다. 드디어 운명의 주말이 다가왔다. 터너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세 사람을 만나지만, 긴장감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만일 자신의 사소한 행동 때문에 퍼세트의 계획이 발각되면, 오메가 체포 작전이 실패됨을 물론이거니 자신과 가족의 목숨이 위태롭다.

 

이야기는 일요일 오후부터 시작해서 다음 주말까지 시간상으로 이어진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인물 간의 긴장감이 더욱 고조된다.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비밀을 숨긴 채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면서 행동한다. 터너는 퍼세트가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한다. 오스터맨, 카르돈, 트리메인은 퍼세트의 교란 작전 속에서도 자신들의 비밀을 철저하게 숨긴다. 비밀을 지키느라 서로서로 의심하는 상황까지 연출된다. 터너와 퍼세트와의 기 싸움도 볼 만하다. 러들럼은 긴장감이 팽팽하게 감도는 이야기로 독자의 몰입을 높인다. 후반부에 이를수록 그동안 쌓여 있던 다이너마이트가 한꺼번에 터지듯이 폭발적으로 전개된다. 주인공은 이제야 진실의 적이 누군지 깨닫고 결단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한다. 터너는 영웅 모드로 전환하여 오메가에 직접 맞서는 용감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오메가의 실체를 알게 된다. 진짜 오메가는 퍼세트였다. 전직 CIA 요원이었던 그는 자신의 복수를 위해서 오메가와 손잡았다. 오스터맨, 카르돈, 트리메인은 오메가 일원이 아니었다. 단지 그들 모두가 진짜로 숨기고 싶었던 비밀은 바로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비밀계좌였다. 오메가는 이들의 비밀계좌를 노렸고, 복수심에 불타는 퍼세트를 이용해 터너에 접근했다.

 

《오스터맨의 주말》은 1970년대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당연히 지금 읽기에는 러들럼의 반전이 큰 감흥을 주지 못한다. 그렇지만 이 소설이 높게 평가 받을 만한 자격은 유효하다. 러들럼은 거대한 사회 체제 속에서 저항하는 주인공의 감정을 밀도 있게 묘사했다.

 

 

 

퍼세트는 웃었다.

 

“지금 현재 세들 벨리에는 13명의 정보원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의 좋은 이웃으로서 그 지방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설마!”

 

터너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웰의 1984년 그대로가 아닙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종종 그것을 요구하니까요.”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까? 전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거로군요.”

 

(《오스터맨의 주말》 중에서, 74쪽)

 

 

 

터너는 퍼세트의 24시간 감시를 견디지 못해 일부러 돌발적인 행동을 한다. 그러면서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희생을 강요하는 정부조직의 권력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는 감시 체제의 암울한 현실을 씁쓸하게 받아들인다. 

 

 

 

 

 

터너는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스스로 지켜내는 영웅처럼 그려지지만, 실상은 이중의 권력 집단에 감시받는 미약한 개인이다. 터너가 오메가가 조종당하고 있었을 때, 그들을 소탕하려고 진짜 CIA가 주도면밀하게 감시하고 있었다. 가까이 보는 놈 위에 멀리서 보는 놈이 있었다. 차가운 냉전의 긴장감은 사라졌지만, 개인을 감시하는 권력의 서늘한 눈은 살아 있다. 우리는 개인의 삶을 침해하는 감시 체제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사회 보호’라는 안전한 명목에 순응한다. 오늘도 빅 브라더는 우리를 향해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권력은 당신을 원한다. 《오스터맨의 주말》은 ‘감시를 위한 통제’가 평범한 일상을 어떻게 변하게 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수작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yureka01 2016-04-19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본주의가 타락하는 욕망이 결국 검은 돈의 액수와 같은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cyrus 2016-04-19 21:00   좋아요 1 | URL
페이퍼 컴퍼니 이거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닌데 우리나라는 너무 조용하네요.

빨강앙마 2016-04-19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페이퍼컴퍼니 관련해서 뉴스를 보고 관심이 가긴했는데....... 결국 자그마한 섬...

cyrus 2016-04-19 21:01   좋아요 0 | URL
작고 평화로운 지역이나 섬에 부자들 금고가 숨겨져 있어서 아이러니합니다.

영혼을위한삼계탕 2016-04-19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처럼
감추고 싶어하죠
애석하건 ˝해적선보물˝ 처럼
사람들에게
잊혀진다는거죠^^

cyrus 2016-04-19 21:10   좋아요 0 | URL
그 많은 돈을 꽁꽁 숨기면 제대로 쓰긴 할까요? 죽을 때까지 돈을 다 쓰긴 힘들텐데... ㅎㅎㅎ

2016-04-20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20 1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불평등이 노년의 삶을 어떻게 형성하는가
코리 M. 에이브럼슨 지음, 박우정 옮김 / 에코리브르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지난해 최고의 노래를 꼽자면 단연코 이애란의 ‘백세인생’이다. 이른바 ‘못 간다고 전해라~’ 신드롬을 탄생시키며 국민적 화제를 모았다. 노랫말은 백세까지 사는 인생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시켜주기에 충분했다. 병치레 없이 오래 살고 싶다는 바람은 단지 개인의 욕망 차원에 머무르진 않는다. 헌법에도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살아갈 권리’가 명시되어 있다. 노년 복지는 국민의 기본권 차원에서 다뤄져야 할 문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건강 불평등’이란 말이 갈수록 회자하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노인소득불평등지수는 OECD 국가 중 멕시코, 칠레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경제적 불평등이 장기화하면서 현재 40ㆍ50대가 노인이 되면 불평등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보유한 자원을 활용해 그나마 여유 있는 노후 준비를 할 수 있지만, 경제적 약자들이 문제다. 환경적 요인과 함께 사회경제적 여건이 개인의 건강·사망을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라는 사실이 최근 학계에서 잇따라 제시됐다. 삶의 여건이 평생 건강을 좌우한다.

 

장 자크 루소는 적어도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했지만, 코리 에이브럼슨의 책을 본다면 인간은 불평등하게 태어나는 순간 평생 불평등한 인생을 살다간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현실에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불평등하다. 《불평등이 노년의 삶을 어떻게 형성하는가》의 원제는 ‘The End Game’이다. 사회에서 태어난 인간의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은 ‘어떤 부모로부터 태어났느냐’이다. 돈 있고, 교육 수준이 높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와 돈 없고, 교육 수준이 낮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의 미래는 극명하게 갈린다. 여기서부터 한 사람 인생 전체를 의미하는 게임의 결과가 달라진다. 교육, 부 그리고 삶의 기회 격차가 벌어지면 후자의 인생 게임은 불공정하게 진행된다. 가난한 사람이 늙고 병들수록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백세인생에 대한 희망이 없다. 이미 예상된 인생의 슬픈 종지부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에이브럼슨은 인종과 민족이 다양한 미국의 중산층과 저소득층 거주지 2곳씩을 2년 6개월 동안 심층 인터뷰를 했다. 그 결과, 고령화 사회의 불평등이 각종 복지서비스 제공만으로 해소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나이가 들면서 오는 자연스러운 신체 노화와 질병은 불평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저소득층 노인은 질병을 치료하는 데 드는 비용의 증가를 감당하지 못한다. 특히 체력이 부족한 노인은 일상생활에 제약을 받는다.

 

 

“노인들에게 교통수단은 중요한 문제예요. 그들은 점점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죠. 그래서 걷기 힘든 대다수 노인은 그냥 집에 붙어 지냅니다. 먹고, 잠자고, 텔레비전을 보고, 약을 먹지만 어디에도 가질 못해요. 집에 갇힌 신세가 되는 거죠.” (74쪽)

 

 

활동량이 적은 노인들은 스스로 가족, 친구에게 버림받았다고 밝혔다. 교우 관계가 단절되면 우울증이 심각해지며 건강 악화의 원인이 된다. 중산층 노인 거주 지역과 저소득층 노인 거주 지역 간의 경제적 불평등 문제는 더 심각하다. 인간은 전 생애에 걸쳐 불평등한 사회의 각종 병폐를 경험하면서 살아간다. 그리하여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죽을 때까지 받는 차별적 경험만큼 건강도 차별적 영향을 받게 되어 건강 불평등이 양산된다. 중산층 노인 거주 지역은 노인 복지를 위한 정부 보조금 지원이 원활하게 진행되지만, 저소득층 노인 거주 지역은 비영리단체의 지원에 더 많이 의존한다. 당연히 중산층 노인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다. 반면 저소득층 노인은 의료 복지와 의료 기관에 회의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더 이상 삶에 의욕을 느끼지 못한다. 일부 노인은 공허한 분위기를 달래려고 술과 약물에 의존하는 성향을 보인다.

 

과거에는 건강을 개인의 책임 또는 타고난 유전적 문제로 인식했다. 비슷한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 중에서 어떤 이들은 건강한 생활을 하는 반면, 어떤 이들은 병원 신세를 진다. 결국 건강은 개인의 의지에 달려 있고, 개인의 책임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조금만 더 시각을 넓혀서 관찰해보면, 이러한 차이가 사회 계층별로 매우 구조화되어 있다. 불평등에서 비롯된 빈곤은 사회적 현상 그 자체로 머무는 것이 아니다. 환경에 영향을 받는 인간의 삶과 신체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그렇게 해서 사회적 불평등은 건강의 불평등을 발생시키는 근본적 원인으로 작동하게 된다. 사회 계층 간의 차별적인 환경과 장벽이 구조적으로 존재함을 고려하지 않고, 건강을 개인의 책임으로 결론을 내리면 건강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건강을 개인의 책임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삶의 질이 보장된 동일한 여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우리나라 절대빈곤 가구의 절반 이상이 고령가구다. 근로능력이 없는 노년층 가운데 적지 않은 인구가 최저생계비에 의존하고 있어서 소득불평등도가 더 높게 나온다. 우리나라의 빈곤문제는 현재 미국에서 일어나는 고령층 생계문제와 유사하다. 노년기의 불평등은 인생의 다른 시기에 겪는 불평등과는 다르다. 빨라진 은퇴연령, 늘어나는 평균수명, 고령층을 위한 사회안전망 부실 등 다양한 원인으로 노년계층의 경제난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순간, 우리 인생의 게임이 불행하게 끝날 수도 있다. 불평등 사회 속에 백세까지 있는 최종 단계까지 행복하게 살아가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미래가 어두운 ‘백세 불평등 인생’을 생각하면 ‘백세인생’ 노래를 즐겁게 따라 부를 수가 없다.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 너무 살기 힘드니 따라 간다고 전해라~"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04-18 2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4-19 16:4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서글프지만, 아프지 않고 생의 소풍을 조용히 마치는 게 더 편하죠.

세실 2016-04-18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픈 현실입니다.
퇴직후 사십년을 뭐하며 지낼까 생각하면 답답합니다. 이십년이상은 병원 다니며 연명할수도...

cyrus 2016-04-19 16:49   좋아요 0 | URL
오늘 아침에 현 노년층 경제 상황이 암울하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지금 20대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걱정됩니다. 이 문제를 바로 잡지 않으면 노년 불평등이 다음 세대로 계속 대물림됩니다.
 

 

 

 

 

 

 

 

4월 21일 목요일 오전 11시부터 인터넷 교보문고, 광화문 교보문고 매장에 판매

 

4월 22일 금요일에 전국 교보문고 매장 판매

 

 

 

* 71, 72번째 책 : 《지봉유설》 이수광 저 / 남만성 역

 

《지봉유설》은 조선 중기 실학의 선구자 이수광이 1614년에 완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류다. 조선의 일은 물론 중국과 일본, 베트남과 타이, 자바를 비롯해 프랑스, 영국 등 유럽 제국의 문물까지 담아내 문화백과사전으로 평가받는다. 지봉(芝峰)은 이수광의 호. 그는 성리학만 고집하지 않았다. 성리학에서 실용적 요소를 찾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또 성리학 이외의 학문이라도 국력 증진과 민생 안정에 유용한 것이라면 모든 학문을 폭넓게 수용하는 개방성을 보였다. 그는 중국 사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외국 문물을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가 실학의 선구자로 인식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현재까지 나온 《지봉유설》 완전 국역본과 정선본(《지봉유설 정선》 현대실학사)은 절판되었다. 올재 판 《지봉유설》은 을유문화사 판을 재 간행한 것이다.

 

 

 

 

* 73번째 책 : 《종의 기원》 찰스 다윈 저 / 이민재 역

* 74번째 책 : 《비글호 항해기》 찰스 다윈 저 / 권혜련, 김정석, 박완신, 이혜진 역

 

곧 다가오는 4월 21일은 과학의 날이다. 내일은 찰스 다윈이 세상을 떠난 날이다. 1934년 발명학회가 찰스 다윈의 기일을 맞아 ‘과학 데이’로 정한 것이 지금의 ‘과학의 날’의 시초로 본다. 올재 출판사가 이 중요한 날에 맞춰 다윈의 대표작 두 권을 선보인다. 올재 출판사는 오래 전에 나오다가 절판된 고전 번역본을 재출간한다. 이민재 역의 《종의 기원》은 을유문화사 ‘세계의 사상’ 시리즈로 나온 것이다. 올재가 선택한 《종의 기원》 번역본이 너무 오래된 감은 있다. 사실 올재의 《지봉유설》도 그렇다. 알라딘에는 을유문화사 《종의 기원》의 출간 연도를 1995년으로 소개하고 있지만, 이것은 개정판이다. 구판은 1983년에 나왔다. 번역 오류와 오래된 문체를 다듬어서 펴낼 것이라 믿는다.

 

 

 

 

 

 

 

 

 

 

 

 

 

 

 

 

 

 

 

네 명의 역자가 공역한 《비글호 항해기》는 2006년 샘터사에 나온 판본이다. 그래도 내용 구성면에서는 극지 전문가 장순근 박사가 번역한 《비글호 항해기》 결정판이 좋다. 장순근 역 《비글호 항해기》에는 관련 그림이 많이 수록되었고, 해설과 주석이 상세하게 잘 나와 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6-04-18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봉유설은 모르겠고, <종의 기원>하고 <비글호 항해기>는 사야겠네요. 단 소장용으로.

cyrus 2016-04-18 17:54   좋아요 0 | URL
<비글호 항해기>를 제외하면 소장용이죠. ^^;;

붉은돼지 2016-04-18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18차분이 나왔군요^^
cyrus 님 덕분에 올재를 알게되어서 열심히 사 모으고 있습니다.
사 모은지는 벌써 4번째가 되는군요..읽은 건 하나도 없어요 ㅜㅜ

cyrus 2016-04-18 17:55   좋아요 0 | URL
저는 얇은 분량의 책만 골라서 읽습니다. 이번에 나올 책 전부 책장 장식품 각입니다. ㅎㅎㅎ

dimeola 2016-04-19 18: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이네요 ^^
`지봉유설`은 1974년 을유문화사에서 남만성 선생의 최초 국역본이 나왔고 1994년에 다시 개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완전 국역본이, 그리고 2001년도에 가로본이 한번 더 나왔는데 아마 2001년도 판본으로 올재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종의 기원`은 교수신문에서 최고의 고전 번역에 선정되기도 하였으나 전체적으로 워낙 어려운(한글로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와 문장)터라 최초 완역본임에도 상당히 읽기가 ㅎㅎ 국내에서는 제대로 된 번역본이 아직까지 없다고 하는데 저는 그린비 출판사에서 나온 리라이팅 클래식 `종의 기원, 생명의 다양성과 인간 소멸의 자연학`과 동서문학사 송용철 역본을 가지고 있어서 고민 입니다.
`비글로 여행기`는 리젬에서 개정판 나오기 전 전파과학사에 1991년에 나온 판본을 가지고 있어서.. 이번 올재는 지봉유설만 사고 싶으나 뭐 여튼 다 살 것 같은 슬픈 예감이....
가격이 깡패이니 말입니다 ~~

cyrus 2016-04-19 21:08   좋아요 0 | URL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제가 찾은 정보가 적어서 쓸 게 없어서 난감했어요. ㅎㅎㅎ

동서문화사 판본은 한길사 판 나오기 전에 조금 읽어봤습니다. 리라이팅 클래식은 끝까지 읽을 자신이 없었어요. 이 책은 꼭 사서 읽어야 되겠더라고요.

올재 판은 판형이 가벼워서 들고 다니기 편하죠. 번역을 다시 손봤다고 했으니 이왕에 다 구입하시는 것이 좋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