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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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트위터에 떠돌던 야한 유머. 여자가 남친(남자 친구) 화 푸는 간단한 방법을 알고 나서 직접 실험을 해봤다. “가슴 만질래?” 한 마디 하니까 바로 남친의 기분이 풀렸다고 한다. 영국의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는 둥그렇게 생긴 가슴 형태가 성적 신호라고 했다. 그의 주장은 여성이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네 발 시절 남성을 유혹했던 엉덩이를 대신해 가슴을 키웠다는 가설을 뒷받침했다. 심지어 여성의 가슴이 남편의 구타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만큼 가슴은 다른 신체 부위보다 섹시하면서도 에로틱한 느낌을 준다. 이 유머가 남친 화 푸는 법이라는 제목이 붙은 짤방(글에 첨부된 이미지)으로 널리 알려졌다. 생각보다 유머에 공감하는 남자, 여자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유머를 가벼운 재미로 받아들이면, 그 속에 있는 불편한 진실을 보지 못한다. 남자를 달래주려고 가슴을 드러낸 여자, 그녀의 가슴을 보자마자 화색이 돌기 시작한 남자. 이 두 남녀의 모습은 남성성과 여성성이 왜곡되었다.

 

몇 천 년 동안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로 인식되었다. 남성이 외도하면 남자답다고 하면서 관대하게 여긴다. 이로써 남성은 남자답게 살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강화하게 된다. 반대로 여성이 외도하면 여자가 감히!’ 라고 매도한다.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남성들은 남성들과의 관계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려는 여성들에 대한 부당한 살인을 자행하였다. 남성들의 저항은 성차별적인 사회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거나 그것에 저항하는 여성들, 즉 페미니스트에 대한 낙인으로 이어진다. 이 낙인은 주류남성의 관계로부터 소외된다. 가부장제사회에서 남성의 관심 어린 시선에 벗어나면 여성들에게 의미 있는 자원을 획득할 기회 박탈로 연결된다. 따라서 여성은 고정화된 여성성에 맞춰 살아간다. 남성은 어렸을 때부터 용맹함, 진취적인 기상의 중요성을 배우면서 자란 반면에, 여성은 정숙, 순결, 아름다움, 순종, 심지어 아내로서의 덕성을 배운다.

 

지금도 여전히 남자는 남성적인 것이, 여자는 여성적인 것이 심리적으로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성 역할 구분은 현대 사회에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을뿐더러 인간이 타고난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는 데에 장애요인이 된다. 전통적으로 여성은 경제활동의 약자로 간주하여 왔다. 나이지리아 소설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강고한 남성적 질서의 문제점과 오해를 지적한다.

 

 

지금 우리가 남자아이들을 기르는 방식은 아이들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남자아이들의 인간성을 억압하고 있습니다. 남성성을 대단히 협소한 의미로만 정의합니다. 남성성은 좁고 딱딱한 우리와 같고, 우리는 그 속에 남자아이들을 밀어 넣습니다. (28)

 

 

여성은 단단한 남자의 기분을 맞춰주는 존재로 전락한다. 그래서 가슴을 드러내어 남성을 만족하게 한다. 이 유머에서 성 역할이 왜곡된 채 사회화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여성이 남성의 취약한 자아를 맞춰주는 존재로 보고 있다. 잘못된 여성성은 여성을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공격당한다. 가진 것이 없어서 그저 남자의 성적 욕망을 충족해주는 김치녀라고 비난한다. 결국, 남성과 여성에 대한 편견은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된다. 차별을 넘어서 혐오에 가까운 오해가 생긴다. 기존의 남성성, 여성성이 강화될수록 남자들도 감정조차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는 부담에 억눌린다. 남성들의 권위가 약화되는 좁은 세상 속에 사는 남자들은 불안감이 생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아 분노를 표출한다. 이로 인해 여성들은 불합리한 혐오에 고통 받는다.

 

누군가는 유머를 심각하게 보는 나의 태도에 속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하지 싶다. “설마, 당신도 페미니스트?” 가부장제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여성들은 주류사회로부터의 추방을 각오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페미니스트 담론은 개개인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SNS를 중심으로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고 선언하는 운동이 확산하였다. 페미니스트가 환영받는 시대라고 하지만, 이중 잣대는 여전하다. 여자들이 페미니즘을 들고 나오면 너는 왜 그렇게 사니?라고 하는 이들이 많다. ‘성 평등이 이미 낡은 단어로 느껴지지만, 현실은 아직도 성 평등과 무척 거리가 멀다. 사회는 물론이고 교육 현실 속에서, 그리고 교육이 시작되는 가정에서도 남자답게여자답게가 뿌리 깊은 게 사실이다. “남자아이가 그것도 못하고 계집애처럼 울면 되겠어?”, “여자애가 칠칠치 못하게우리가 자라면서 많이 듣던 이런 말을 자연스럽게 되풀이하고 있지는 않은지 주의해야 한다. 어려서부터 갖게 된 남녀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정말 무섭다. 무의식 속에서 오랫동안 박혀 있던 성의 고정관념이 가끔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정말로 다양하게 존재하는, 차이를 가진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서로 배려하면서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여성성·남성성이라는 이분법적 단어가 사라져야 한다. 아디치에의 사전에는 페미니스트가 오로지 여성 권리를 획득하기 위한 사람이라고 적혀 있지 않다. 페미니스트는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페미니스트의 자격요건은 반드시 여성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성 역할을 강요하는 사회에 불편함을 느껴 문제제기하는 사람들은 모두 페미니스트다. 페미니즘 담론은 인간 사이의 연대와 소통을 회복하는 방법을 찾으려는 고민이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이해를 배운다면 남성은 덜 힘들고 여성은 덜 아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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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4-19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이와 차별을 구분못하는 경우가 너무 비일비재합니다.
남여의 차이를 가지고 차별하면
남자나 여자나 둘다 불행하거든요...

cyrus 2016-04-20 07:46   좋아요 1 | URL
맞아요. 남녀 갈등과 혐오는 남자 여자 모두 정신적 상처를 주고받는 최악의 상황입니다.

표맥(漂麥) 2016-04-20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 드니 아내의 눈치만 보게 되던데... 아내여~ 남편을 배려하고 이해하라! 이해하라! 이해하라~~~ (철없는 남편)^^

cyrus 2016-04-21 15:17   좋아요 0 | URL
저는 미혼이라서 누구 눈치 볼 필요가 없습니다. ^^;;

만두 2016-04-30 1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실 `미혼`도 여성주의에서는 지양하는 단어중 하나에요(결혼을 당연한 전제적 과업으로 상정하고있으므로..) 무튼 믿고 읽는 cyrus님 리뷰...! 잘읽엇습니당

cyrus 2016-04-30 18:57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