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 브라자, 복효근 천년의 시작,2005.06)

 

련꽃 브라자 / 복효근

 목련꽃 목련꽃
예쁘단대도
시방
우리 선혜 앞가슴에 벙그는
목련송이만할까
고 가시내
내 볼까봐 기겁을 해도
빨래줄에 널린 니 브라자 보면
내 다 알지
목련꽃 두 송이처럼이나
눈부신
하냥 눈부신
저……

 

----------------------

 

이 시가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실렸단다.

선정적이다, 퇴폐적이다 등등의 논란이 있었다.

(이런 주장하는 곳이 대부분 방송 신문언론사다.ㅎㅎㅎ)

 

그래 얼마든지 주관적인 평가는 내릴 수야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일년에 시집이라도 한 권, 두 권이라도 구입해서

읽어 본 적이라도 있었더라면

과연 이 시를 바라보는 시선의 선입견은 어떻게 달라 졌을까?

 

사람들이 시에 대해서 왜 이렇게 매정한 것일까?

 

시인의 시집을 자주 사서 보고 감상하는 나로써는,

적어도 논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되묻고 싶다.

 

"선혜의 앞가슴.

빨래줄에 널린 브라자."

 

닥 두 개의 표현이 자극을 시켰던 모양이다.

(이 두개 의 문장을 빼면, 아무런 논쟁 거리도 아닐 것이고)

 

그래 말은 바로하자.

무슨 방 무슨 방의 밤문화에,

대실받는 모텔에,

방송과 신문에는 온통 포르노의 관음증을 자극하는데?

게다가 싸이트 조금만 뒤지면 헐 벗은 사진이 넘처나는데,

유독 시에서만큼은 되먹지도 않는 엄격한 까칠함을

들이대는 시선의 이유라도 있겠지.

 

그런데 말이다.

일단 시를 이야기할 자격이라도 갖추고 시부려....그럼, 들어 줄께....

 

적어도 시집 한 100권정도 읽으면

시가 조금은 다시 보일 것이다. 뉘미.....

 

시가 죽은 시대에 시를 깔 수 있는 안목이 부재한 시대에,

졸라게 까임 당하는 너무나도 시가 불쌍하다.

 

--------------

 

봄꽃 중에 비교적 먼저 피는 목련꽃(넓고 하얀 꽃잎)이 새봄 마냥 반가운 마음으로

풋풋한 시절의 가슴만나듯 설레임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사람들은 아니었던가 봅니다.

 

하여간 뭐 눈엔 뭐만 보인다더니만??? 그런 거였어?

겉으로는 어찌나 깔끔 떨면서도,

뒷의 모습은 온통 향략과 퇴패에 물들어 있다면,

당연히 이 시도 꾸리하게 보려 들 것이 틀림없다.

 

저런 가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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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는 시집으로 읽어야 제맛이다
    from 冊性愛子 2016-04-20 16:33 
    고등학생 때 국어 문제집을 풀다가 만난 시다. 시의 제목이 예사롭지 않다. 「토란잎에 궁그는 물방울 같이는」. ‘궁그는’은 ‘구르다’의 전라도 방언이다. 시인은 물방울이 토란잎에 동그랗게 구르는 장면을 귀엽게 표현했다. 그런데 내가 본 그 문장은 시가 아니었다. 객관식 문제의 예시 문항이었다. 네모난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신세였다. 문제의 답을 찾느라 시에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문제집을 덮는 순간, 문장은 영원히 탈출하지 못한다. 나는 문제집에 갇
 
 
별족 2016-04-20 1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음, 충분히 불편할 수 있는 시라는 생각이 들어서, 모르겠네요.
시집 속의 시의 표현과 지하철에 게시된 시의 표현은 달라야 하는 게 아닐까, 까지요.

yureka01 2016-04-20 15:50   좋아요 1 | URL
시내 길거리 바닥에 뿌려진 룸싸롱 홍보물보다는 덜하죠..

네 음란적인 시선으로 보면 그렇게 보일지도요.

그런데 시적인 은유로 보면, 모란꽃을 빗댄 표현이니까요.

문장에 그렇게 깐깐한 잣대를 들이대는 분들의
이중성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런지..모를 일입니다.

시의 표현은 건전해야 하고 찌라시는 포르노급이더라도 된다는 이중 잣대는
좀 의문이긴 해서 말이죠..

별족 2016-04-21 15:37   좋아요 0 | URL
저는 제가 `시의 표현은 건전해야 하고, 찌라시는 포르노급이더라도 된다,는 이중잣대`여서 불편한가, 생각했는데, 그건 아닙니다. 시 중에는 고어,적인 그러니까 내장이나 창자가 어떻고, 피가 어떻고 하는 시도 있을 수도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고어 영화를 즐겨보지 않는 취향이 있는 사람이니만큼, 제가 선택할 수 없는 위치에서, 그런 표현을 만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아마도 저는, 그 시는 불편하니 교체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겁니다.
그리고, 저도 아래 잠자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선한 아버지일 수도 있는 시인에게 이입하다기 보다는 `내 볼까봐 기겁하는` 그 사춘기 딸에게 감정을 이입해서 불편한 거니까요.

yureka01 2016-04-21 15:50   좋아요 0 | URL
저도 딸 키우는 아빠의 입장에서는, 누군가가 제 딸아이의 관음의 타켓이 된다면
상당히 기분 나쁠 것은 분명합니다만,

주안점이 새 봄에 피는 모란꽃에 더 집중해서 이해하겠더군요.




2016-04-20 1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20 1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20 16: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20 18: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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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1 0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16-04-21 1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저는 이 시가 지적하신 그 부분 때문에 불편하지는 않았습니다. (˝선혜의 앞가슴 빨래줄에 널린 브라자˝) 지하철 역에서 이 시를 읽고는, 이 시의 시선, 관점이 너무도 불쾌했습니다. 선정적인 게 아니라, 이 시의 관점은 철저히 아버지 시선이죠? 아버지는 그러실 수 있겠지만, 자기 성장 발육을(특히나 가슴이라는...) 저렇게 바라보는 딸의 입장이 철저히 배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속에서도 딸은(여자는) 그저 대상이지요? 꽃에 비유한다고 해서 기쁠까요? 특히 저 나이대의 소녀들은 특히나 저런 부분에서 민감할 나이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시선이 너무도 관음적으로 느껴지네요. 특히 마지막 부분... ˝저.......˝ 단지 시를 안 읽는 사람들의 시를 보는 안목이 부족해서다, 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듯하네요. 제 주변에서 이 시를 보고 다들 불쾌감을 느낀 이유는 그때문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덧붙이자면 저를 비롯해서 제 지인들은 100권 정도 시집은 읽었으며, 1년에 한 두 권은 다들 사보는 사람들인데, 그들의 시를 보는 시선이 잘못 된 걸까요? 선입견이 아니라 감상입니다.

yureka01 2016-04-21 12:55   좋아요 0 | URL
이 시의 관점이 아버지이란 느낌 때문이었군요.
목련꽃을 소녀에 빚댄 해석도..무리는 없어 보이기도 하네요.하지만

길거리 나가도 선정적인 노출의 홍보물들이 널리고 널렸는데,
스크린 도어에 적힌 시가 선정적이고 퇴폐적이니까 시를 내려라고 한다는 게,
좀 슬푸더군요....

역시나 위에 트랙백 주신 cyrus님의 포스팅처럼 시집에서나 시를 읽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에 수긍이 가더군요..
(1년에 시집 한두권 사보는 사람들이라도 좀 많아졌음 좋겠습니다...^^.전인구 5000만명 중에 10%정도 잡고 500만이라도 1년에 한두권이면 가난한 시인은 많이 줄어들텐데 말이죠.)

2016-04-21 1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21 1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21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21 1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6-04-22 15: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제 제기, 좋군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