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독 꿈꾸는돌 15
다케우치 마코토 지음, 윤수정 옮김 / 돌베개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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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이켜보자면 나의 중고교 시절은 한없이 무난하게 지나갔던 것 같다.

요즘 아해들도 대부분 그러하겠지만 별다른 사건은 -그래봐야 누가 연애를 하는지 누가 고백했다 차였다던가

일생에 그닥 도움이 되지 않았던 시덥지 않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고 발랑 까진 몇 놈들과 몰래 술을 먹는다던가 아니면 200원짜리 백자 담배를 친구 아빠의 주머니를 뒤져 훔쳐 빨아대던 한심한 나날들이 끝없이 이어질 줄 알았던, 지루해서 미칠 것 같아 무협지나 야설을 탐독하며 벌겋게 달아오는 얼굴이 가끔 생각이 나 실없이 웃을 때가 있다. 그래도 동물은 제법 좋아하는 편이었고(지금도 개 한마리를 집에서 키우고 있는데 가끔은 정말로 나를 사랑하는 유일한 존재가 아닐까 싶어 눈이 시큰거리기도 한다만) 큰 누이가 얻어온 잡종 발바리를 꽤나 예뻐했는데 엄마나 아버지는 그 녀석 이름을 얼룩이라는 촌스런 이름을 붙여 주셨다. 이유는 다들 그럼 그렇지 싶을 정도로 아주 단순했는데 그저 온몸이 얼룩이 져서 였다. 하긴 얼룩덜룩이라 짓지 않는게 어디였겠는가. 아마도 이름이 길면 부르기 귀찮아 덜룩을 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 무심한 이름이었지만 이내 친숙해지면 그런 불만따위는 없이 얼룩아 하고 그 흔하디 흔한 - 아마 1988년에는 전국의 개 100만마리 정도의 이름은 죄다 얼룩이였을 것이라고 내 새끼손톱 1센치 정도를 걸어 볼 정도로 자신이 있다. 한동안 개를 키우지 않던 부모님께 몇 년 전 혈통이 좋다던 진도개 한마리를 사다 드렸는데 어엿하게 내가 이름을 지어 드렸음에도 불구하고(나도 어쩔 수 없이 늙었거나 귀찮았거나 아니면 짱구를 좋아하던 아들 놈이 붙여 준 흰둥이란 네이밍을 그럭저럭 마음에 들어 했었는데) 당장에 백구라 명명 하셨으니 뭐라 할말도 없다. 아버지는 그게 자연스러운 거라 말씀하셨지만 정작 자신의 첫 손자가 태어났을때는 온갖 좋다는 한자들의 궁합과 부수와 글자의 획수까지 점검하시면서 멋진 이름을 지어주셨다가 며느리에게 까임을 당하시고 그래도 고집을 꺽지는 못하시고 임씨 문중에는 본인이 정한 이름을 올리시고는 못내 아쉬워 하셨는데 사실 돌림자를 쓰는 항렬이 하필이면 '순'자이었으니 여간해서는 어울리지 못했으리라. 그 아래 항렬이 '빈'이라 아마 내 손자나 손주는 멋진 이름을 가질 수 있겠다. 하긴 요즘 항렬을 누가 따져 쓰겠는가 더군다나 '순'이라니 아내가 고집을 피울만도 했고 나는 뭐 중간에 병신처럼 웃다 눈총만 받았었던 기억이 새롭다. 


뭐 그러했다.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처지와 기억과 삶을 비교해 볼 것이며 기승전나(我)로 욕을 하던지 눈물을 흘리던지(늙으면 역시 눈물이 많아진다) 아니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한시간 내로 사라지는 경험을 수시로 하게 된다. '원더독'은 사실 나에게 있어서는 환상소설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묘하게도 이 소설이 처음 시작되는 1989년 고등학교 입학식 배경은 나와 동일한 시간 선상에 존재한다. 그때 이 소설에는 이후 원더독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유기견을 발견하여 학교로 데리고 오다 교통사고를 당해 교복이 찢어지고 관자놀이에도 덜마른 피가 엉켜붙어 있는 고마치 겐타로가 등장한다. 아.... 한없이 착한 녀석의 등장이다. 나의 고등학교 입학식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 기억도 없다. 지나가는 개에게 돌을 던졌을지도 모를 일이고 친구녀석들과 킬킬대며 같은 반이 된 여자들을 훔쳐보며 평판을 해댔을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병신같은 머리를 쥐어 뜯으며 생각을 해봐도 - 하긴 그때를 기억하는 사람이 누가 있으랴.... 해도 아마 입학식때 첫사랑의 열병을 앓던 누구누구라면 뭐 생생히 기억날 수도 있겠다 싶다....지만 이건 아무래도 확률상 공리주의 입각해 보자면 반칙에 가깝다.


 여튼 학교에서 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그래봤자 국민학교때나 토끼나 닭 그리고 꿩(우리때에는 칠면조도 키웠는데 교장 선생님께서 꽤 독특한 교육 철학을 가지셨는지도...)같은 조류나 키웠지 개를 키운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물론 관사에 홀로 기숙하시는 당시 선생님들이 목줄을 메어 키우다 복날 다릿간에 목 매달리는 가여운 신세가 될 똥개가 아주 잠시 있어 주기는 했지만 아이들도 녀석의 신분 상태를 알았는지 지나칠때마다 발로 걷어 차 낑 낑 우는 처지였지 원더독처럼 사랑을 받는 다는 것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잔인하다. 순진함에서 묻어나오는 그 무지의 잔인함에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자신에게 치를 떨 때도 있지만 보통은 중학교를 졸업할 수준의 지식과 그에 걸맞는 인성을 가지게 되면 보통의 아이들처럼 가여움과 동정심으로 무장을 하게 되지만 다 그런 것도 아니니..... 여튼 그런 점에서 보자면 원더독은 아까 말한대로 해피엔딩으로 가득찬 환상소설임을 재확인해 주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기껏해야 악인으로 등장하는 단 하나의 인물이 개 키우는 것에 반대하다 그나마 허락해 주시는 교감선생님이니 말이다. 하긴 1318이 읽는 소설이니 그럴 수도 있지 않은가. 늙은 꼰대의 시큰하고 시니컬한 냉소적인 눈으로 보자면 헛웃음이 나올 법도 한 소설인데 여튼 잘 읽힌다. 그러다가 예전에 키웠던 얼룩이와 시골집에서 부모님을 지키고 있는 백구와 지금 내 곁에서 얕은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별이와 원더독이 겹쳐진다.


같은 세월을 공유한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싶다. 꼬맹이로 내 곁에 처음 왔을때 다리를 들고 영역표시를 처음으로 하던 날, 같이 달리기를 하고 산책을 하다 볕 좋은 가을 날 돋자리에서 나란히 누워 달콤한 낮잠을 즐겼던 어느 일요일 오후, 불현듯 보니 어느새 나이를 나보다 먼저 먹어 산책하기도 어려운 날에 가슴에 안고 쓸쓸한 겨울 밤을 한바퀴 돌고 들어왔을때, 그리고 마지막 숨을 헐떡이며 내가 돌아오기만 기다리다 눈을 마주치고 떠났던 날...... 원더독처럼 따스하고 사랑스러운 소설을 읽으면 녀석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하였고 행복했노라는 결말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지만 그레 뭐 대수랴......


 원더독이 커가면 갈수록 아이들도 자라고 학년이 올라가고 떠나 가지만 학교에 들어오는 아이들로 다시 채워지고 그 아이들이 같이 커가고 그리고 마침내 처음 원더독을 주웠던 고마치 겐타로가 교생이 되어 학교로 돌아왔을때 그리고 원더독을 기억하고 사랑했던 반갤부원의 세대차이를 뛰어넘는 동창회를 열기까지 십여년의 세월동안 까까머리였던 누구는 회사원이 되었고 선생님이 되었지만 여전히 원더독은 그 자리에서 있는 마지막 장면은 흐믓함이 느껴질 수 밖에 없으리라.


원더독은 학교에서 키우는 개 이야기가 전부는 아니다. 개를 키워 나아가면서 같이 배워 나가는 아이들의 여러 모습을 통해 결국엔 한마리의 유기견에 불과했던 원더독이 이렇게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배품을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알려주는 뭐 청소년 뿐만이 아니고 어른도 읽어볼만한 상큼한 책인 것 같다.


문체는 가볍고 경쾌하여 서너시간이면 충분히 읽을만한 분량이니 금요일 저녁 꽃청춘이 끝이 나면 심야책방에 드른 것 처럼 한시가 넘어가기 전까지 한번에 눈으로, 가슴으로 기분좋게 읽어봄이 어떨지 싶다.     

아주 귀여운 유기견이예요. 제발 누가 키워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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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독 꿈꾸는돌 15
다케우치 마코토 지음, 윤수정 옮김 / 돌베개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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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읽는 환상소설이자 아이들이 보는 성장소설, 그리고 개를 키우는 이라면 빠져들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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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로 맛보는 와삭바삭 프랑스 역사 이케가미 슌이치 유럽사 시리즈
이케가미 슌이치 지음, 김경원 옮김, 강혜영 그림 / 돌베개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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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을 보러 갑니다.
아들녀석의 발길은 마트안 과자코너로 달려가고 있고 어느새 몇개 낼름 집어와  넣어두고는 징그러운 애교를 부립니다. 달콤한 과자야 저도 마다하지 않는 편이라 관대한 표정으로 넘어가는데 과자의 종류가 그렇게 많아도 실은 거의 검증된(?) 것들 위주로만 사다 보니 가끔 색다른 맛을 느끼고 싶어서 수입과자 전문점에 들러 종류별로 골라 오기도 하지요. 제가 사는 동네에 있는 가게에는 나름 규모가 큰 편이라 다양한 나라에서 수입해 온 녀석들로 입맛을 다시게 하는데요 그 중에 가끔 프랑스과자를 골라 오곤 합니다. 어쩐지 다른 과자에 비해 굉장히 고급스러운(!) 느낌을 가지게 하는데 아마도 과자는 역시 프랑스가 원류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되어지기 때문이 아닐까도 싶습니다.


 글쎄요. 정말 과자의 원류는 프랑스가 맞은 것일까요. 오랫동안 프랑스는, 아니 현재도 속지주의를 즉, 혈통을 기준으로 해서 국민이 되는 게 아니라 자국 영토에 들어와 사는 사람을 기준으로 국가가 형성되기 때문에 프랑스라는 경계가 비교적 넓고 느슨하게 열려 있다고 합니다. 즉슨 다양한 인종이나 문화를 폭넓게 수용할 수 있는 상대주의적 정신이  이전부터 내려온 바, 받아들여서 동화시키는 나라인 프랑스가 역사를 움직이는 문화의 힘 때문에 그러하다고 생각되어진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나쁘게 말하자면 약탈의 명수(저자의 말을 빌어보자면)인 프랑스는 이탈리아 나 스페인 등 곳곳에서 가져온 것들로 과자를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마르셀 프루스트의 위대한 장편소설인 '잃어버리 시간을 찾아서'에서 소설의 시작점이 되는 중요한 것이 바로 가리비처럼 긴 부드럽고 촉촉한 과자 마들렌인데요. 이 과자의 유래는 논란이 분분합니다만, 통상 폴란드 연회에서 비롯한 것이 확실하다고 합니다. 19세기 중반 마들렌의 명성이 파리로 퍼져 나가면서 이후 저녁식사 후에 마들렌을 먹는 것이 귀족들의 습관이 되었고 이리하여 마들렌은 파리의 과자가 되었고 프랑스를 대표하는 과자가 되었다는 점은 꽤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과자는 일상적인 것과 비 일상적인 것 중 오래전부터 후자에 속해져 왔습니다. 따라서 일반인들은 쉽게 접할 수도 없었을 뿐더러 만드는 것 조차 금지되어 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신과 사람을 이어주는 과자라고나 했을까요. 지금도 카톨릭의 세례시 먹는 우블리(동전만한 하얀 얇은 성체 과자)나 오스티아는 예수의 은총을 나누고 구원을 받기 위한 귀한 과자로 인정 받기도 합니다.  


여튼 이쯤해서 같이 읽고 있는<파스타로 맛보는 후룩후룩 이탈리아 역사>와 비교를 해보자면 여기에는 프랑스 역사에 대한 이야기의 깊이가 훨씬 더 많고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는데요. 역시 저자가 프랑스에서 유학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확실히 우리나라에서도 세계사를 배울때의 비중이 프랑스쪽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 파스타 편은 사실 이탈리아의 역사라기 보다는 파스타의 역사쪽에 근접한 면이 있습니다. - 것이라고 이해할 수 밖에요. 그럼에도 불고하고 저자는 끊임없이 프랑스의 역사와 과자의 상관성에 대해 근사하게 다리를 놓고 연결하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이 맛나는 책은 한번 손에 쥐면 쉬 놓아주지 않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주말 오후에 커피 한잔을 내려 과자와 함께 먹으면서 읽으면 정말 근사하지 않을까요. 갑자기 비가 내려 쌀쌀한 오후에 쇼파에 누워 라디오를 들으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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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로 맛보는 후룩후룩 이탈리아 역사 이케가미 슌이치 유럽사 시리즈
이케가미 슌이치 지음, 김경원 옮김, 김중석 그림 / 돌베개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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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언제 파스타를 처음 먹어 보았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만, 아마도 제 나이 또래 라면 누군가의 결혼식 부페에서 접해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밀가루로 뽑은 것이라고는 기름에 튀긴 뽀글뽀글 라면도 아닌 것이 국수는 면발이 가는 고명을 올려 놓은 잔치국수요, 굵은 것이라면 알싸한 청양국수에 반들반들한 애호박을 채썰기로 곱게 넣고 바지락을 가득 채운 칼국수 정도였던 우리네 억을꺼리에 언제부턴가 아주 자연스럽게도 파스타란 친숙한 음식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마트에 가면 집에서도 간단하게 해 먹을 수 있게 파스타면과 각종 소스가 그득하고 요리 잘하는 남자가 대세(?)인 요즘에는 TV를 틀때마다 잘생긴 녀석 셰프들이 - 아... 뭐 쫌 질투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ㅎㅎ - 요리대결을 하거나 소개를 하는 흔한 음식이 파스타가 되어버린 지금 아.... 파스타가 이탈리아 음식이었던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무 생각없이 먹었는데 돌배게 출판사에서 재미있는 책이 나왔네요.


음식과 함께 맛보는 이탈리아 역사라니 역시 이런 식의 책을 맛있게 쓸 줄 아는 작가가 일본인이라니 부럽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물론 우리나라도 미시사를 접목하여 이런 말랑말랑하고 꽤 괜찮은 책이 요즘에는 간간히 나오기는 하지만 일본에서는 꽤 오래전부터 이런 하이브리딕한 출판물이 풍성하게 쏟아져 나왔고 우리나라에도 번역이 많이 되었는데 말입니다.


여튼 우리가 보통 세계사 관련 책을 볼 때에는 유럽사나 동아시아 처럼 대륙별로 묶어 뭉텅거린 간략한 것이 많은 편이고 이는 아마도 우리나라의 역사가 아닌 다는 개별 나라의 역사를 읽기에는 전공자가 아닌 이상에야 꽤 부담스럽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결국 대중들에게 눈에 들기 위한 저자나 출판사의 전략은 아마도 예를들면 이 책처럼 파스타란 음식과 이탈리아 역사를 접목하여 호기심을 적절히 이끌어내어 대중들에게 읽는 즐거움과 시각적인 아기자기함을 보여주는 세련된 기획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자, 이 책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보통 짐작하다시피 일본 최초의 파스타와 전후 미국식 스파케티와 일본의 국수문화와 파스타에 이르기까지 아.... 참 맛깔나게 풀어나갑니다.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이탈리아 역사와 파스타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사실 파스타란 음식에 대해 이렇게도 많은 이야기가 나올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예전에 인사이트 아시아-누들로드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었는데 인상 깊은 장면이 많아서 머리에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데 그때의 파스타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예를 들자면 생파스타와 아랍인인 가져다 준 지금의 건조 파스타의 만드는 장면들과 파스타의 원형과 만두 파스타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무엇보다 이 책의 미덕은 곳곳에 숨어 있는 아기자기한 그림과 이미지들 입니다. 아이들이 그린 듯한  꾸밈없는 그림들은 원시의 순수한 감정과 함께 유쾌한 힘이 보여지는 듯하며 다른 역사책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중세시대의 그림은 세월을 넘어선 기시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탈리아에 꼭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이탈리아 지도를 그려 놓은 곳에 각 주의 명물 파스타를 소개한 페이지는 정말이지 로또라도 맞는다면 당장이고 떠나 다이어트 걱정없이 일 일곱개의 주를 한달돌안 돌아다니면서 먹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도록 말이죠. '저명한 저널리스트인 체사레 마르키가 한 말 그대로 파스타는 이탈리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이며, 파스타의 역사는 이탈리아 역사의 역사 그 자체라는 사실(p.245)'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파스타에 담긴 여러 사실을 이렇게 재미 있게 만나는 행운을 여러분도 맛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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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과 반전의 순간 Vol.1 - 강헌이 주목한 음악사의 역사적 장면들 전복과 반전의 순간 1
강헌 지음 / 돌베개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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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어디에서 착각을 했던 걸까요? 저는 강헌님이 책을 여러 권 내신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요는 제가 음악 관련 책을 많이 접해보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에 비해 제가 강헌이라는 이름을 어디에선가 많이 들어 꽤 익숙해 있었다는 건데 가끔 방송매체나 벙커에서 들었던 코딱지 만큼의 관심도에서 기인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워낙 말을 잘하시는 분이라 기대에 걸맞게 책이 너무 재미있어 다소 놀랐습니다.

 

 

 일부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재즈를 속칭 고급진(?) 음악으로 로큰롤, 락을 10대나 즐기는 천박한 - 아이들이 즐기면 천박하다는 논리는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 수는 없지만 - 음악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음악에 정통하지 못한 저 같은 사람에게 재즈와 로큰롤은 한 뿌리이며 노예의 후손인 하층게급인 아프리칸 아메리칸에서 연유되었다는 놀라운 사실과 더불어 전복의 역사로서 재즈의 탄생과 더불러 재즈가 진정 무엇인지에 대해 개념을 콕 잡아 줍니다.  간단하게 말하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클래식은 그냥 엄격한 음악이요. 재즈는 규칙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에서 기인하다고 하는데 사실 여기에는 슬픈 사연이 숨어 있더군요. 재즈의 고향이라 일컫는 항구도시인 뉴올리언스에는 스토리빌이라는 매춘 밀집 지역이 있었다고 합니다. 책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새로운 도시에 욕망을 찾아 나선 젊은이들을 속칭 삐끼가 데리고 가 오랫동안 머물수 있게 하는 정말 처절하게 살아남기 위한 서바이벌 음악 - 강헌님은 여기에서 재즈를 우리말로 꼴림이라고 번역하려고 합니다만.. -

이었던 셈입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필요했던 악기... 이 슬픈 미시사 음악역사를 읽노라면 꽤 가슴이 메어집니다... 

 

아, 그리고 우리가 흔히 막연하게 알고 있던 재즈의 스윙에 대해 강헌님은 명쾌하게 설명해 줍니다. 어디 음악이나 그 느낌을 몸으로 체득하지 못하면 표현해 낼 수가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가난한 흑인들의 음악이었던 재즈를 돈이 될만하니 백인들이 쓸어가는 이상한 구조의 역사 - 뭐 어느 나라도 대부분 그렇지만... - 의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일예로 1970년대 전 세계를 뒤흔든 디스코는 흑인 게이의 공동체 문화였지만 돈을 번 이들은 비지스와 존 트라볼타와 같은 백인들이고 그것은 힙합 역시 마찬가지라는 점 입니다. - 힙합은 이후 그나마 흑인들이 영역을 거의 확실하게 잡아가긴 했다는 재 생각이지만 역기 그 시스템에서 돈은 버는 것은 백인이지요. 이건 인종차별 발언하고는 다른 이야기 입니다만...

 

 

여튼 재즈가 슬슬 예술로 승화(?) 하며 대중들과 멀어지는 순간 나타난 로큰롤은 순식간에 어른들의 세계를 무너뜨리게 되는데 - 뭐 그러한고로 아직까지 옛날 어른들은(아... 이 범위가 참 애매합니다만... ) 아직도 본인의 가진 기득권의 세력을 저해하는 사탄의 음악이라고도 하더군요 - 그 기반에는 1950년대 풍요와 번영을 누렸던 백인 중산층의 자녀들이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로크롤이 일부 유행하지 못하고 사그러져 간 대신 통기타의 시대가 열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린 그 당시 졸라 가난해서 씨바 그 비싼 악기를 사고 앰프를 달 수가 없었다는...)  뭐 아시는대로 강헌님이 주제로 잡은 마이너리티가 문화의 주인이 된 시대에 지금 살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이여기를 맛나게도 잘 풀어 재낍니다. 멋진 형님이시네요 ^^     

 

 그리고는 슬쩍 1970년대 우리나라 청년문화의 바람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 요즘 아이들이 정말 부러워할만한 속칭 현재는 꿀빠는 세대였다고 하는 삼촌세대.... 정말로 그랬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  지금은 의외로 팝을 듣는 아이들이 거의 없지만 1960년대 말 이후부터 슬슬 과열되기 시작한 입시경쟁으로 심야 FM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공부하는 문화가 생긴 덕에 당시에는 팝송만 주구장창 들었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아이들이 당시 가요라고 하던 노래들이 흔히 말하는 뽕짝 이외에는 없었으니 당연하게도 말도 못 알아먹지만 뭔가 근사해 보이고 흥겨운 비틀즈나 밥 딜런의 노래를 들을 수 밖에 없었을 듯 싶기도 합니다. 그러다 흔히 세시봉 세대라고 일컫는 통기타 문화가 급속도록 인기를 끌면서 우리나라도 이제 겨우 뭔가 청년들이 들을만한 노래가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외 당시 정권에 찍혀 노래가 금지되고 가수들의 핍박에 시달린 사연을 읽다 보면 아... 우리 윗 세대들이 얼마나 자유롭지 못하게 살아왔는지 다시금 깨닫게도 됩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강헌 선생만의 독특한 시대적 문화에 대한 평이 맛깔나게 들어 있는데요. 가령 1980년대 10대 여고생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수용 형태(성적 정체성)를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가령 내가 남자를 밝히는 여자가 아니고 진짜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스타가 필요했는데  좋아하는 오빠의 사진을 방 안에 붙여 놓았을 때 엄마가 들어와서 음.. 괜찮네. 우리 딸년이 미친년이 아니구나 하고 어른들이 인정할만한 수 있는 - 예를 들어 변집섭. <- 제 의견은 아닙니다 - 스타만 크게 성공했고 박혜성이나 김승진같은 잘생긴 꽃 미남은 크게 성공하지 못한 못했다고 정리합니다. 당시 시대상 분위기상 충분히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당시에는 그렇게 은폐해야만 어른들에게서 살아남았다고 하는데 그것을 깬 세대가 바로  X세대 - 씨바 좋으면 그냥 좋다고 해 -라고 정의 하는데 딱딱한 평론이 아닌 당시 대중들의 생홯상을 그대로 들여다 보면서 쓰는 글이라 흥미와 더불어 재미도 있습니다.

 

 3장은 클래식 속의 안티클래식을 주제로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투쟁에 대한 이야기 인데 솔직하게 저는 클래식을 그리 좋아하지 않음에도 술술 읽혀 읽혀졌습니다. 클래식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바로 잡는 계기도 되었고 그 둘의 숨은 이야기도 흥미로웠습니다.

 

 

 

4장인 두개의 음모 <사의 찬미>와 <목포의 눈물> 속에 숨은 비밀에 관한 이야기 - 예전에 모 TV에서 이에 관한 음모론적 이야기인 윤덕심이 과연 자살을 했는가에 대한, 혹은 둘은 연인관계였는가에 대해 방영한 것을 본 적이 있는 터라 관심있게 읽어보았는데 강헌 선생은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배후와 그 배경에 대해 폭로(?) 하였는데 사실 관계를 떠나 일제 치하에서 살았던 우리 민족의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 나와 씁쓸하기도 하고 여튼 가볍게 한 꼭지씩 읽어 나가자 마음 먹었는데 한번에 쭈욱 읽어내릴만큼 재미가 있었습니다. 강헌님의 팟 캐스트를 들으신 분이라면 당시 기억을 상기하여 페이지를 넘기는 맛도 꽤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무더운 여름 휴가에는 에어컨 틀어 놓고 늘어지게 누워 이런 책을 읽는 맛이 개인적으로 최고라 생각이 듭니다.

비싼 돈 들여가며 더운 곳에서 낯설은 곳에서 숙박하고 부대끼느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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