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이 노년의 삶을 어떻게 형성하는가
코리 M. 에이브럼슨 지음, 박우정 옮김 / 에코리브르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지난해 최고의 노래를 꼽자면 단연코 이애란의 ‘백세인생’이다. 이른바 ‘못 간다고 전해라~’ 신드롬을 탄생시키며 국민적 화제를 모았다. 노랫말은 백세까지 사는 인생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시켜주기에 충분했다. 병치레 없이 오래 살고 싶다는 바람은 단지 개인의 욕망 차원에 머무르진 않는다. 헌법에도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살아갈 권리’가 명시되어 있다. 노년 복지는 국민의 기본권 차원에서 다뤄져야 할 문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건강 불평등’이란 말이 갈수록 회자하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노인소득불평등지수는 OECD 국가 중 멕시코, 칠레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경제적 불평등이 장기화하면서 현재 40ㆍ50대가 노인이 되면 불평등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보유한 자원을 활용해 그나마 여유 있는 노후 준비를 할 수 있지만, 경제적 약자들이 문제다. 환경적 요인과 함께 사회경제적 여건이 개인의 건강·사망을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라는 사실이 최근 학계에서 잇따라 제시됐다. 삶의 여건이 평생 건강을 좌우한다.

 

장 자크 루소는 적어도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했지만, 코리 에이브럼슨의 책을 본다면 인간은 불평등하게 태어나는 순간 평생 불평등한 인생을 살다간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현실에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불평등하다. 《불평등이 노년의 삶을 어떻게 형성하는가》의 원제는 ‘The End Game’이다. 사회에서 태어난 인간의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은 ‘어떤 부모로부터 태어났느냐’이다. 돈 있고, 교육 수준이 높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와 돈 없고, 교육 수준이 낮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의 미래는 극명하게 갈린다. 여기서부터 한 사람 인생 전체를 의미하는 게임의 결과가 달라진다. 교육, 부 그리고 삶의 기회 격차가 벌어지면 후자의 인생 게임은 불공정하게 진행된다. 가난한 사람이 늙고 병들수록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백세인생에 대한 희망이 없다. 이미 예상된 인생의 슬픈 종지부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에이브럼슨은 인종과 민족이 다양한 미국의 중산층과 저소득층 거주지 2곳씩을 2년 6개월 동안 심층 인터뷰를 했다. 그 결과, 고령화 사회의 불평등이 각종 복지서비스 제공만으로 해소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나이가 들면서 오는 자연스러운 신체 노화와 질병은 불평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저소득층 노인은 질병을 치료하는 데 드는 비용의 증가를 감당하지 못한다. 특히 체력이 부족한 노인은 일상생활에 제약을 받는다.

 

 

“노인들에게 교통수단은 중요한 문제예요. 그들은 점점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죠. 그래서 걷기 힘든 대다수 노인은 그냥 집에 붙어 지냅니다. 먹고, 잠자고, 텔레비전을 보고, 약을 먹지만 어디에도 가질 못해요. 집에 갇힌 신세가 되는 거죠.” (74쪽)

 

 

활동량이 적은 노인들은 스스로 가족, 친구에게 버림받았다고 밝혔다. 교우 관계가 단절되면 우울증이 심각해지며 건강 악화의 원인이 된다. 중산층 노인 거주 지역과 저소득층 노인 거주 지역 간의 경제적 불평등 문제는 더 심각하다. 인간은 전 생애에 걸쳐 불평등한 사회의 각종 병폐를 경험하면서 살아간다. 그리하여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죽을 때까지 받는 차별적 경험만큼 건강도 차별적 영향을 받게 되어 건강 불평등이 양산된다. 중산층 노인 거주 지역은 노인 복지를 위한 정부 보조금 지원이 원활하게 진행되지만, 저소득층 노인 거주 지역은 비영리단체의 지원에 더 많이 의존한다. 당연히 중산층 노인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다. 반면 저소득층 노인은 의료 복지와 의료 기관에 회의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더 이상 삶에 의욕을 느끼지 못한다. 일부 노인은 공허한 분위기를 달래려고 술과 약물에 의존하는 성향을 보인다.

 

과거에는 건강을 개인의 책임 또는 타고난 유전적 문제로 인식했다. 비슷한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 중에서 어떤 이들은 건강한 생활을 하는 반면, 어떤 이들은 병원 신세를 진다. 결국 건강은 개인의 의지에 달려 있고, 개인의 책임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조금만 더 시각을 넓혀서 관찰해보면, 이러한 차이가 사회 계층별로 매우 구조화되어 있다. 불평등에서 비롯된 빈곤은 사회적 현상 그 자체로 머무는 것이 아니다. 환경에 영향을 받는 인간의 삶과 신체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그렇게 해서 사회적 불평등은 건강의 불평등을 발생시키는 근본적 원인으로 작동하게 된다. 사회 계층 간의 차별적인 환경과 장벽이 구조적으로 존재함을 고려하지 않고, 건강을 개인의 책임으로 결론을 내리면 건강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건강을 개인의 책임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삶의 질이 보장된 동일한 여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우리나라 절대빈곤 가구의 절반 이상이 고령가구다. 근로능력이 없는 노년층 가운데 적지 않은 인구가 최저생계비에 의존하고 있어서 소득불평등도가 더 높게 나온다. 우리나라의 빈곤문제는 현재 미국에서 일어나는 고령층 생계문제와 유사하다. 노년기의 불평등은 인생의 다른 시기에 겪는 불평등과는 다르다. 빨라진 은퇴연령, 늘어나는 평균수명, 고령층을 위한 사회안전망 부실 등 다양한 원인으로 노년계층의 경제난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순간, 우리 인생의 게임이 불행하게 끝날 수도 있다. 불평등 사회 속에 백세까지 있는 최종 단계까지 행복하게 살아가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미래가 어두운 ‘백세 불평등 인생’을 생각하면 ‘백세인생’ 노래를 즐겁게 따라 부를 수가 없다.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 너무 살기 힘드니 따라 간다고 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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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8 2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4-19 16:4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서글프지만, 아프지 않고 생의 소풍을 조용히 마치는 게 더 편하죠.

세실 2016-04-18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픈 현실입니다.
퇴직후 사십년을 뭐하며 지낼까 생각하면 답답합니다. 이십년이상은 병원 다니며 연명할수도...

cyrus 2016-04-19 16:49   좋아요 0 | URL
오늘 아침에 현 노년층 경제 상황이 암울하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지금 20대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걱정됩니다. 이 문제를 바로 잡지 않으면 노년 불평등이 다음 세대로 계속 대물림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