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가설 - 부모가 자녀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탐구
주디스 리치 해리스 지음, 최수근 옮김, 황상민 감수 / 이김 / 201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아들아, 너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강북에서 쭉 살자꾸나.

강북은 네가 살기 좋은 곳이란다.”

 

, 아버지. 하지만 저는 친구들 따라 강남에 가고 싶어요.”

 

    

 

 

만약 내 아이만큼은 제대로 키울 것이다라고 다짐한 부모라면 양육가설(이김, 2017)을 읽고 당혹스러울 것이다. 이 책을 쓴 심리학자 주디스 리치 해리스(Judith Rich Harris)가 강조하는 교육방식은 일반적인 부모가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이기 때문이다.왜 아이는 부모가 키우는 대로 자라지 않는가?” 이것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아주 중요한 질문이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부모가 어떻게 행동하고 교육하느냐에 따라 자식도 그렇게 닮아간다는 뜻이다. 양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육 전문가들은 부모에게는 자식을 사랑하는 만큼 옳고 그름을 인식시켜줄 책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아동발달에 대한 교재를 썼던 해리스도 잘못된 행동을 한 아이의 책임은 부모의 양육 태도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해리스는 양육에 대한 믿음을 의심한다. 그녀는 양육‘(가정)환경을 동의어로 사용하는 교육법이 타당한지 검토하기 위해 양육에 대한 통념을 뒤집는 각종 연구결과와 사례 등을 제시한다. 그리하여 그녀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부모의 교육이 아이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양육은 하나의 가정(假定, assumption)에 지나지 않는다. 1998년에 양육가설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심리학계와 교육계는 이 책을 두고 찬반양론으로 첨예하게 맞섰다. 이제야 나온 국내 번역본은 2009년 개정판을 저본으로 삼았다.

 

심리학을 공부할 때 프로이트(Freud)B. F. 스키너(B. F. Skinner)를 지나칠 수 없다. 저자에 따르면 프로이트는 양육가설의 진정한 창조주. 프로이트는 부모의 양육 방식과 교육을 본격적으로 접하는 유아기에 인간의 성격이 형성된다고 했다. 스키너는 행동주의 심리학을 완성한 학자로 유명하다. 그는 본성이냐 양육이냐 하는 논쟁에서 철저히 양육의 편을 들어줬다. 스키너는 모든 사람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보상체계를 만든다면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의 영향을 받은 교육심리학자들은 부모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유아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모든 사회에는 상황과 장소에 따라 다양하게 연결되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문화를 구성하게 된다. 작게는 가정에서부터 학교, 나아가 사회 전체에 이르는 다양한 관계가 형성되면서 사회질서의 모습을 그리게 되는 것이다. 가정은 인간의 사회화 과정에서 가장 근본적인 임무를 수행한다. 이런 이유에서 가정은 사회적 관습에 따른 올바른 가치판단의 기준이 형성되는 곳이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를 안정적으로 성장시킬 의무가 있다. 부모로부터 배운 각종 생활양식과 규범은 아이에게 그대로 전수되어 학교 교육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가정에서 부모의 역할이 아이의 일생을 좌우한다고 우리는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다. 그런데 양육가설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했던 사회화의 통념을 깨뜨린다.

 

해리스는 양육 가설을 대체하는 집단사회화(group socialization)’ 이론을 제시한다. 성장 중인 아이들이 끼리끼리 또래 집단을 형성하고 집단 활동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한편 청소년기는 사회화가 가장 왕성하게 이루어지는 단계이다. 청소년들은 부모가 있는 가정환경보다는 자신을 둘러싼 같은 나이, 같은 성별의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외부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고 또 모방한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듯이 아이들은 서로 친할수록 비슷한 언어(특히 또래 친구들끼리 통하는 은어와 비속어)를 쓰고, 비슷한 행동을 한다. 그래서 해리스는 아이의 성격이 유전적 요인의 영향을 받게되더라도 언어 선택 및 비속어 사용은 환경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비속어를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듯이 가르쳐도 소용없다. 아이는 또래에 동화되기 위해 비속어를 쓴다. 비흡연자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는 비흡연자가 된다? 양육 가설을 믿는 부모는 우리 남편은 담배를 싫어하고, 아이는 착해서 담배를 피우지 않을 거예요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부모보다 친구들을 따라하려는 경향이 있고, 친구들의 영향을 받은 아이는 부모가 키우는 대로 자라지 않는다. 여러분의 착한 아이는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친구들과 맞담배를 피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는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부모를 속일 수 있다[1].

 

양육가설이 나온 지 이십 년이나 지났다. 부모의 의무교육 및 책임을 강조하는 기존 교육방식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리게 하는 그녀의 주장은 지금 봐도 과감하다. 최근 청소년 폭행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소년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고, 가벼운 죗값을 받는 폭행 가해자들을 감안해서 폭행 사건의 책임이 부모에게 전가해야 한다고 보는 여론도 있다. 양육가설에 따르면 폭행 가해자의 부모는 아이를 잘못 가르쳤으니 피해 학생들의 고통을 생각해서 법적 책무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양육가설을 의심하는해리스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본다면 가해자 부모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이 나올 수 있다.

 

양육가설을 의심하는 저자의 주장을 자세히 알고 싶거나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읽어보도록 권한다. 저자는 양육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저자는 자신의 주장이 자녀 교육을 소홀히 하는 철없는 부모들이 인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2].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시작할 때부터 저자는 양육가설을 의심한다라는 식의 표현을 반복해서 썼다(몇 번 썼는지 직접 세어보시라). 내가 이 글을 쓰기 위해 고심해서 선택한 단어인 의심거부의 의미로 해석한다면 곤란하다. 저자는 근거가 불충분한 양육가설이 모든 부모와 자녀들에게 적용되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자녀교육이 서툰 남편들은 자식의 행동에 마음에 안 들면 아내에게 불만 섞인 핀잔을 늘어놓는다. 아니, 도대체 애를 어떻게 키웠기에 이 모양이야!” 이 말인즉슨 애를 잘못 키운 건 엄마 탓이라는 뜻이다. 분명 양육자는 부모 두 사람인데, 일부 남편들은 아이를 낳아줬고 집에만 있는 아내를 진짜 양육자라고 여긴다. 남편들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은 자녀 양육에 책임이 없다고 믿는다.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서 내 아이만큼은 똑똑하게 키우고 싶다고 생각만 하는 남편이 양육가설을 읽는다면 아이를 노심초사 돌봐야 하는 아내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이다.

 

 

 

 

[1] 양육가설453

[2] 양육가설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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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6 1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2-07 16:45   좋아요 0 | URL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양육 책임을 묻는 듯한 말을 여러 번 한 적이 있어요. 그 말을 옆에서 들을 때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페크pek0501 2018-02-07 13: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을 키우면서 흔히 놓치기 쉬운 점이 있어요. 두 형제가 똑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 똑같은 환경에서 자랐다고 착각해서 놓치는 것. 두 아이의 환경이 같지 않다는 것이에요. 아이들은 님께서 쓰신 것처럼 친구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또래 집단의 힘은 세지요. 어떤 친구를 사귀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변수이고 또 어떤 경험을 했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변수예요. 그러므로 똑같은 환경에서 자라나는 건 아니라는 걸 부모가 놓치면 안 될 것 같아요. 두 형제가 학교 환경까지 같지는 않잖아요.

어쨌든 좋은 부모가 된다는 건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저도 아이 키우면서 많이 부족했던 저 자신을 느끼곤 했어요.

cyrus 2018-02-07 16:49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남매, 형제, 자매뿐만 아니라 쌍둥이의 성격 또한 모두 같을 수 없어요. 자녀는 부모라는 내부 변수보다는 친구라는 외부 변수에 더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어떤 친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성격이 달라질 수 있어요.

최수근 2018-02-07 1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자입니다. 서평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cyrus 2018-02-07 16:52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책 읽는 데 가독성에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책의 만듦새가 좋았습니다. ^^
 

 

 

이토 준지 컬렉션 3화 첫 번째 에피소드

사거리의 미소년

 

 

 

 

 

 

 

원제는 「사자(死者)의 상사병」. 나즈미시 마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사거리의 미소년’이 등장한다. 마을에 사는 소녀들은 ‘사거리 점(占)’을 보기 위해 안개가 자욱한 사거리에 숨어서 기다린다.

 

 

 

 

 

 

 

 

 

 

 

 

 

 

 

 

 

 

* 이토 준지 《이토 준지 공포박물관 10 : 사자의 상사병》 (시공사, 2008)

* [구판 절판] 이토 준지 《사자의 상사병》 (시공사, 1999)

 

 

 

사거리 점을 보는 방법은 간단하다. 사거리를 걸어가는 소년을 만나면 그에게 다가가서 자신의 운세에 관련된 질문을 하면 된다. 그러면 소년은 즉각 답변해준다. 그런데 대부분 답변이 부정적이다. 사거리 점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 소녀들은 자살하게 된다. 사거리 점을 보다가 자살을 선택한 죽은 자들의 영혼은 끔찍한 모습으로 사거리를 돌아다닌다.

 

 

 

 

 

 

이토 준지 컬렉션 3화 두 번째 에피소드

달팽이 소녀

 

 

 

 

 

 

짧은 분량의 이야기. 이 이야기 역시 「지옥의 인형 장례식」(이토 준지 컬렉션 1화 두 번째 에피소드)과 마찬가지로 불가사의한 현상의 원인을 보여주는 ‘기승’이 없고, 충격적이고 강렬한 그로테스크를 보여주는 ‘전결’만 구성되어 있다. 유코라는 소녀는 달팽이를 싫어한다(만화 단행본에서만 나오는 설정).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녀의 입에 민달팽이가 계속 나오게 되고, 혀는 커다란 민달팽이로 변해버린다. 유코가 사는 집 주변에는 유코의 입에서 나온 민달팽이들로 가득하다. 유코의 부모는 유코의 몸속에 생기는 민달팽이를 제거하기 위해 소금을 잔뜩 푼 욕조에 유코를 눕히는데…‥.

 

 

 

 

 

 

 

 

 

 

 

 

 

 

 

 

 

 

 

 

* 이토 준지 《이토 준지 공포박물관 8 : 백사촌 혈담》 (시공사, 2008)

* [구판 절판] 이토 준지 《지옥탕》 (시공사, 1999)

 

 

 

구판(이토 준지 공포만화 콜렉션) 단행본 제목은 ‘달팽이 소녀’였고, ‘공포박물관’ 시리즈로 재출간되었을 때 제목이 ‘민달팽이 소녀’로 변경되었다.

 

 

 

 

 

 

 

 

 

 

 

 

 

 

 

 

 

 

 

 

* [절판] 얀 본데손 《자연의 장난 원숭이 여인》 (일빛, 1999)

* [절판] 에르빈 콤파네 《두 개 달린 남자 네 개 달린 여자》 (생각의날개, 2012)

 

 

 

인간의 몸에서 동물이 나오는 괴이한 현상은 고대 구전 신화에 등장하는 설정이다. 고대 이집트, 바빌로니아, 노르웨이의 전설 및 각종 문헌 등에 몸속에 산 뱀, 개구리, 도마뱀에 대한 기록이 있다.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는 독한 술을 과하게 마셔서 죽은 사람의 목에 뱀이 기어 나온 사례를 언급했다. 고대 로마의 박물학자 플리니우스(Plinius)는 뱀과 개구리가 사람의 소화 기관에 기생한다고 주장했다. 불가사의한 의학 현상들을 소개한 《자연의 장난, 원숭이 여인》(일빛, 1999)이라는 책에 고대 및 중세에 기록된 개구리, 두꺼비, 뱀을 뱉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볼 수 있다. 아쉽게도 이 책엔 ‘민달팽이를 뱉은 사람’에 대한 사례는 없다.

 

 

 

 

 

 

 

 

 

 

 

 

 

 

 

 

 

 

* 서민 《서민의 기생충 열전》 (을유문화사, 2013)

 

 

 

고대, 중세 사람들은 뱀이나 개구리 알이 있는 물을 마시면 몸속에 부화한 뱀과 올챙이가 성체가 될 때까지 자란다고 믿었다. 그들은 인간의 몸속에 자란 동물을 ‘기생동물’로 봤다. 아마도 옛 사람들은 몸속에 나오는 기다란 기생충(회충)을 ‘다 자란 뱀’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회충은 인간의 몸에서 생활하여 대변을 통해 밖으로 이동한다. 《서민의 기생충 열전》(을유문화사, 2013)에 회충이 식도를 타고 입으로 나오는 사례가 나온다. 뱀과 개구리에 기생하는 스파르가눔(Sparganum)이라는 기생충은 다 자라면 만손열두조충이 된다. 이 녀석이 인간의 몸, 특히 인간의 뇌에 자리 잡으면 극심한 두통을 유발한다. 만손열두조충이 일으킨 두통에 시달린 환자의 몸을 수술했는데, 그 환자의 몸에서 꺼낸 만손열두조충의 전체 길이가 72cm이었다고 한다.

 

 

 

 

 

 

《자연의 장난, 원숭이 여인》, 《두 개 달린 남자 네 개 달린 여자》(생각의날개, 2012)열일곱 마리의 토끼를 사산(死産)한 메리 토프트(Mary Toft)라는 여성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여성의 소식이 영국 전역에 알려지자 그녀의 토끼 출산을 보기 위해 의사들이 직접 구경하러 올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 기이한 사건은 메리의 자작극으로 밝혀졌다. 결국, 그녀는 사기죄로 교도소로 수감되었다. 놀랍게도 메리 토프트의 허술한 사기극에 속아 넘어간 의사들이 많았다. 인간의 거짓말은 끝이 없고, 순진한 사람들은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는 실수를 반복한다. 자극적인 기사를 보도하는 황색 언론들은 ‘도마뱀을 낳은 여인’, ‘사람을 낳은 침팬지’라는 터무니없는 제목의 기사를 만들었다. 지금까지도 이런 황당한 보도를 전달하는 콘셉트로 일관하는 언론이 있는데 그게 바로 ‘위클리 월드 뉴스(Weekly World News)’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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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8-02-06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잼있씁니다. 전 이토준치하면 항상 달팽이가 생각납니다..

cyrus 2018-02-06 16:31   좋아요 0 | URL
<소용돌이>에 나오는 달팽이 인간도 유명하죠. 호러 영화를 좋아하는 곰발님의 취향을 생각하면 곰발님은 영화 버전 <소용돌이>도 보셨을 것 같아요. ^^

2018-02-06 1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2-06 16:32   좋아요 1 | URL
‘기레기의 역사’라는 책을 쓰게 된다면 한 권으론 부족할걸요. ㅎㅎㅎ

목나무 2018-02-06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애니로 열심히 챙겨보고 있네요. ^^ 자기전에는 차마 못보고. . ㅋㅋ

cyrus 2018-02-06 16:33   좋아요 0 | URL
설해목님도 이 애니를 보시는군요. 만화책을 먼저 봐서 그런지 애니로 보면 무서운 느낌이 나지 않아요. ^^;;

카스피 2018-02-07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애니 보았는데 역시 재미있더군요^^

cyrus 2018-02-08 14:24   좋아요 0 | URL
만화를 다 보고나면 다음 편 에피소드가 뭘지 궁금해요. ^^
 

 

 

1859찰스 다윈(Charles Darwin)종의 기원을 출판하면서 지구의 생명체는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진화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화론은 다윈이 처음으로 정립한 학설이 아니다. 다윈 이전에 여러 형태의 진화론이 등장했다.

    

 

 

 

 

 

 

 

 

 

 

 

 

 

 

* 찰스 다윈 종의 기원(한길사, 2014)

 

 

 

 

 

 

 

 

 

 

 

 

 

 

 

 

* 찰스 다윈 종의 기원(동서문화사, 2016)

* 찰스 다윈 종의 기원(동서문화사, 2013)

* 찰스 다윈 종의 기원(동서문화사, 2009)

 

 

 

 

 

 

 

 

 

 

 

 

 

 

 

 

* 양자오 종의 기원을 읽다(유유, 2013)

* 재닛 브라운 종의 기원 이펙트(세종서적, 2012)

 

 

 

 

 

 

 

 

 

 

 

 

 

 

 

 

* 장 바티스트 드 라마르크 동물 철학 (천줄 읽기)(지만지, 2009)

 

    

 

다윈의 할아버지 이래즈머스 다윈(Erasmus Darwin)<주노미아>(Zoonomia)라는 책에서 진화의 개념을 언급했다. 프랑스의 생물학자 라마르크(Lamarck)는 기린의 목이 길게 진화된 과정을 사례로 용불용설을 주장했다. 용불용설은 사용하는 신체기관은 발달하고, 사용하지 않는 신체기관은 퇴화한다는 학설이다. 라마르크는 하나의 생물이 어떤 행위를 통해 얻은 획득형질이 유전된다고 생각했다. 태어날 때부터 오른손으로 물건을 집거나 글을 쓰기 시작하면 오른손잡이로 살아간다. 이것이 생물이 후천적인 행위를 통해서 얻게 된 성질, 획득형질이다. 라마르크의 획득형질의 유전학설에 따르면 오른손잡이 부모에게서 자란 자식도 오른손잡이가 된다는 것이다.

    

 

    

 

 

 

 

 

 

 

 

 

 

 

 

* 팀 스펙터 쌍둥인데 왜 다르지?(니케북스, 2017)

* 네사 캐리 유전자는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해나무, 2015)

* 리처드 C. 프랜시스 쉽게 쓴 후성유전학(시공사, 2013)

 

    

 

사실 다윈은 라마르크의 학설을 부분 인정했으나 라마르크의 학설은 다윈의 자연선택설에 가려져서 거의 폐기처분 되다시피 했다. 라마르크는 병고와 가난이 겹친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여생을 마쳤다. 그의 딸은 아버지의 업적이 후대에 재평가될 거로 확신했고, 그 마음을 아버지의 묘비명에 담아 새겼다고 한다. 최근에 후성유전학이 주목받으면서 잊힌 라마르크의 학설도 주목받고 있다. 후성유전학은 환경이나 행동으로 인해 변화된 유전자 정보가 후손에게 유전되는 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좀 더 많은 후속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후성유전학은 환경적 요인을 받지 않는 유전자가 인간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유전자 결정론을 반박하는 학문으로 성장할 수 있다.

 

우리 삶에서 유전자 결정론의 뿌리는 깊고 넓다. 학술지나 언론에 비만 유전자’, ‘공부 유전자같은 단어가 심심찮게 등장했다. 최근에 유전자가 지능 발달, 학업 부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1] 정말로 공부 유전자의 실체가 확증된다면 인간 본성을 유전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많아지게 될 것이다.

    

 

 

 

 

 

 

 

 

 

 

 

 

 

 

 

 

 

 

 

 

 

 

 

 

 

* 염운옥 생명에도 계급이 있는가?(책세상, 2009)

* 앙드레 피쇼 우생학 : 유전학의 숨겨진 역사(아침이슬, 2009)

* 김호연 우생학 : 유전자 정치의 역사(아침이슬, 2009)

* 박진빈 백색국가 건설사(앨피, 2006)

 

 

 

 

 

 

 

 

 

 

 

 

 

 

 

 

* 조너선 마크스 인종주의에 물든 과학(이음, 2017)

* 박경태 인종주의(책세상, 2009)

    

 

 

 

 

 

 

 

 

 

 

 

 

 

 

* 스티븐 제이 굴드 다윈 이후(사이언스북스, 2009)

* 스티븐 제이 굴드 인간에 대한 오해(사회평론, 2003)

* 매트 리들리 본성과 양육(김영사, 2004)

 

    

 

그런데 과거에 유전자 결정론을 적극 지지하는 학문을 이용해 인간의 성향과 기질에 대한 개선을 촉구하는 시도가 있었다. 그 학문이 바로 생명과학의 흑역사로 기억되는 우생학이다. 다윈의 사촌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은 우생학을 만들어 유전자 결정론을 옹호했다. 그는 인류의 진보를 위해서 상태가 불량한 나쁜 유전자를 없애고(네거티브 우생학), 우수한 좋은 유전자가 후손에게 전달(포지티브 우생학)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영국, 미국, 독일 등에서 정신 이상자, 범죄자, 장애인 등을 사회로부터 제거하는 동시에 몸과 정신이 건강한 일등 국민을 양산하는 우생학적 정책들이 시행되었다.

 

우생학은 다윈의 진화론을 오용 또는 악용한 학문으로 알려져 있다. 유전자 결정론과 인종주의를 반대하는 과학자들은 우생학의 등장으로 초래한 반인륜적인 사건의 모든 책임을 다윈의 진화론을 잘못 이해한 정치인 또는 사회학자에게 전가한다. 그런 논리라면 우생학은 과학이 아니라 과학의 탈을 쓴 사이비 학문이 된다. 그러나 과학자들도 위험한 학문을 방조한 것에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19~20세기 유럽에 도입된 우생학 정책들을 분석한 앙드레 피쇼(Andre Pichot)와 김호연우생학인종주의의 관계 또는 우생학사회진화론의 관계 등으로 이루어진 과학과 정치의 불온한 혼합[2]에 주목하여 우생학이 생명과학 분야의 지적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렇게 되면 우생학을 단순히 비과학적 측면으로만 비판해선 안 된다. 우생학이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시기에 유전학은 지금과 같이 체계적인 학문이 아니었다. 그 당시에 멘델(Mendel)의 유전법칙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아웃 오브 안중으로 인식되었다. 어정쩡한 유전학이 조금씩 성장하는 맹아기에 과학자들은 우생학을 학문으로서의 위치를 올려놓았다.

 

 

 

실제로 다윈은 사촌이 만든 우생학에 대놓고 지지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과학으로서의 우생학이라는 관점에서 우생학을 본다면 다윈의 자연선택설이 우생학을 정당화하는 논거로 작용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불행하게도 자연선택설은 다윈이 의도치 않는 방향으로 왜곡, 변질되었다. 따라서 우생학의 어두운 역사를 살펴보려면 다윈의 자연선택설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생학은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미국과 독일에서 가장 발전한다. 미국과 독일의 중산계급은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확보, 유지하기 위해 국가적 차원의 우생학 운동을 지지했다. 중산계급은 사회주의의 영향으로 급속도로 조직화하여 계급 상승을 시도하는 하층 노동자계급의 등장을 반가워하지 않았다. 우생학에 매료된 중산계급은 하층 노동자계급을 생물학적 열등 계급’, ‘적자생존에 도태되어야 할 계급으로 인식했고, 국가 발전에 저해하는 사회문제의 모든 책임을 하층계급에 전가했다. 미국은 앵글로색슨족의 위대함을, 독일은 게르만족의 우수함을 강조하기 위해 악명 높은 우생학적 법률과 정책을 내세웠다. 미국과 독일의 우생학자들은 유전적으로 열등 인자를 가졌다고 판단된 여성들에게 강제로 불임 수술을 시키는 정책을 제안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생학 정책을 지지한 세력 중 하나가 페미니스트들이다. 미국 산아제한 운동을 주도한 마거릿 생어(Margaret Sanger)는 우생학을 지지한 페미니스트이다. 그녀는 건강한 여성의 몸으로 더 많은 아이를 낳으려면 산아제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히틀러(Hitler)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우생학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교육기관이 설립되었는데 이곳에 등록한 학생 대다수는 여성이었다. 그 이유는 우생학자들은 여성이 남성보다 개인의 육체적 · 정신적 기질을 정확하게 볼 줄 안다고 생각했고, 생식 문제는 오로지 여성과 관련되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생학의 역사를 정리한 앙드레 피쇼와 김호연(이 책에 몇 개의 오탈자가 보인다), 염운옥의 책은 우생학을 단편적으로 비판해서 접근하는 담론(과학이 아닌 정치학으로서의 우생학으로 비판하는 담론)의 한계를 지적한다. 염운옥의 책은 우파와 좌파를 사로잡은 영국의 우생학 정책을 중점으로 다루었고, 박진빈의 백색국가 건설사(앨피, 2006)는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내세운 미국의 혁신주의 속에 자리 잡은 우생학과 인종주의의 그림자를 보여준다. 결국 우생학은 과학자와 정치인들의 무지와 방관, 그리고 진보에 대한 지나친 낙관론이 결합하여 탄생한 최악의 학문이다.

 

 

[1] [“공부해도 성적 안 오르는 이유절반은 유전자 탓”] 서울신문, 2018124

[2] 김호연 우생학 : 유전자 정치의 역사(아침이슬, 2009)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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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8-02-04 17: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생학에서 ‘학’자를 빼고 싶어요. 학문을 가장한 오만과 편견 덩어리 같다고나 할까요.

cyrus 2018-02-04 17:35   좋아요 1 | URL
권위 있는 과학자들이 인간을 차별하는 편견을 그럴듯한 학문으로 포장했어요. 과학 발전의 역사를 공부할 때 우생학의 탄생 배경을 알아야해요. 가끔 정신 못 차리는 과학자들이 사이비 과학, 유사과학을 잘 만들어내거든요.

짜라투스트라 2018-02-04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역시 우생학 또한 단일관점으로만 바라보면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네요^^

cyrus 2018-02-05 14:03   좋아요 0 | URL
네. 저는 처음에 우생학을 ‘정치학‘의 관점으로 해석해서 ‘과학으로서의 우생학‘을 평가하지 못했어요. ^^
 
[전자책] 세 반구 이야기
로드 던세이니 / 페가나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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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책은 독자의 악평을 피할 수 없다. 책을 쓴 저자나 책을 공들여 만든 출판사 관계자들은 악평과 비난으로 상처를 받겠지만, 인격모독이나 근거 없는 비방이 담겨있지 않다면 악평이라도 받아들여야 한다.

 

 

 

 

 

사진출처 : 페가나북스 공식 블로그 (http://pegana.tistory.com/186)

 

 

 

페가나북스(Pegana eBooks)는 영국의 소설가 로드 던세이니(Lord Dunsany)의 작품들을 꾸준히 번역, 출간하는 1인 전자책 출판사다. 작년 11월 말에 세 반구 이야기(Tales of Three Hemispheres)를 선보였다. 이것까지 합하면 페가나북스가 번역한 던세이니의 작품이 총 여덟 편이다. 아직 출간되지 않는 던세이니의 작품이 두 권 남았다.

 

 

 

* 페가나의 신들(2011, 2)

* 시간과 신들(2012, 2)

* 웰러란의 검(2013)

* 몽상가의 이야기(2013)

* 경이의 서(2014)

* 판의 죽음(2014)

* 경이로운 이야기(2017)

* 세 반구 이야기(2017)

* 우리가 아는 땅 너머(근간 예정)

* 엘프랜드의 공주(근간 예정)

 

 

 

던세이니는 환상적인 분위기의 소설들을 많이 남겼다. 사후에 판타지 소설의 대가로 인정받았고,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일랜드의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는 던세이니 작품에 드러난 신화적 요소를 극찬했다. 보르헤스(Borges)는 작가에 대한 자신의 해제를 덧붙인 던세이니 단편 선집을 출간했다. 이 책이 바로 바벨의 도서관시리즈 중 하나인 얀 강가의 한가한 나날(바다출판사, 2011)이다. 이렇듯 던세이니의 환상소설은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그렇지만 품성에 대한 작가들의 호응과 대중의 반응이 반비례한다는 통념이 있다. 던세이니의 작품도 이 부정적 통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던세이니는 소설뿐만 아니라 시, 희곡, 라디오 드라마 대본 등을 썼을 정도로 왕성한 집필 활동을 했으나 한량 귀족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작가 던세이니의 업적이 묻혔다. ‘귀족(lord) 던세이니의 모습은 작가 던세이니의 진면목에 접근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던세이니는 다작 작가에 속한 편인데, 작품들의 완성도와 작품성의 편차가 심하다. 진짜 솔직히 말해서 어떤 작품들은 재미가 없다. 세 반구 이야기에 수록된 총 여섯 편의 짤막한 단편소설은 상업적으로 팔릴 글이라 볼 수 없다. 작품의 결말에 드러나는 반전이 인상적이지 않다. 던세이니 작품의 한계는 페가나북스 대표이자 번역가인 엄진 씨도 인정했던 부분이다(페가나의 신들2권 작가 해설 참조).

 

사실 세 반구 이야기는 완역본이 아니다. 원래는 총 15편의 작품(1910몽상가의 이야기를 통해 발표된 얀 강가의 한가한 나날을 제외하면 총 14)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 여섯 편만 번역되어 있다. 1976년에 출간된 세 반구 이야기는 던세이니의 작품을 비평한 러브크래프트(Lovecraft)의 글(1922년에 작성)을 수록한 유일한 판본이다. 러브크래프트의 팬으로서 이 글이 번역되지 않은 게 아쉽다.

 

 

 

* The Last Dream of Bwona Khubla (붜나 쿠블라의 마지막 꿈)

* How the Office of Postman Fell Vacant in Otford-under-the-Wold (고원 아래 옷포드에서 집배원이 공석이 된 이유)

* The Prayer of Boob Aheera

* East and West

* A Pretty Quarrel

* How the Gods Avenged Meoul Ki Ning (신들은 어떻게 머울 키닝의 복수를 했나)

* The Gift of the Gods (신들의 선물)

* The Sack of Emeralds (에메랄드 자루)

* The Old Brown Coat (낡은 갈색 코드)

* An Archive of the Older Mysteries

* A City of Wonder

* Beyond the Fields We Know

- Publisher’s Note

- First Tale: Idle Days on the Yann (얀 강가의 한가한 나날, 세 반구 이야기미수록)

- Second Tale: A Shop in Go-By Street

- Third Tale: The Avenger of Perdóndaris

 

 

 

단편집 첫 번째 수록작 붜나 쿠블라의 마지막 꿈몽상이라는 소재를 이용하는 작가의 글쓰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신들의 선물낡은 갈색 코트는 상황에 따라 쉽게 변하는 인간의 마음을 우의적으로 풍자한 작품이다. 특이한 점은 단편집 표제가 된 세 반구 이야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던세이니의 작품을 읽으면서 표제의 의미를 알아내려고 하는 것은 무의미한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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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3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2-03 14:37   좋아요 0 | URL
제 글을 보는 것이 부담스럽거나 글에서 드러나는 제 생각이 맞지 않으면 친구 삭제할 수 있어요. 그 점에 대해선 ***님이 사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남긴 댓글을 일방적으로 삭제한 것은 유감스럽습니다. 그냥 궁금해서 여쭤본 것인데 그게 기분 나쁜 일입니까? 지난 달에 그 글을 분명히 읽었고, ‘좋아요‘ 를 눌렀어요. 저는 ***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지 않았지만, 매일 ***님의 글 한 두편씩 읽어봤어요. 그래서 같은 글이 또 등록되어 있기에 궁금해서 여쭤어봤습니다.

상대방의 댓글을 삭제하는 것. 그건 ‘소통‘하는 자세가 아닙니다.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는 자세입니다.

2018-02-03 14: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2-03 15:02   좋아요 1 | URL
평소에 자주 서재에 접속하셨으면서 오랜만에 서재에 들어오신 것처럼 말씀하십니까? ㅎㅎㅎ

재미없고 내용이 긴 제 글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북프리쿠키님 대구에 사시죠? 시간이 되면 yureka01님과 함께 만났으면 좋겠어요. ^^

북프리쿠키 2018-02-03 15:07   좋아요 1 | URL
ㅎㅎ 접속은 습관적으로 했으나 댓글로 소통은 뜸했어요. 네~저도 두분과의 만남은 늘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ㅎㅎ

sprenown 2018-02-03 1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나세요 세분이서 독서얘기,세상얘기하면서 즐거운 시간 가져보세요!

cyrus 2018-02-04 09:16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기대됩니다. ^^

조그만 메모수첩 2018-02-03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얀 강가의 한가한 나날>을 장바구니에 덩크인 했습니다. 무척 기대되어요. 멋진 리뷰 감사드립니다!

cyrus 2018-02-04 09:18   좋아요 1 | URL
던세이니의 소설이 메모수첩님 취향에 맞지 않을 수 있어요. 도서관에 빌려 읽어보시는 게 낫습니다. ^^

서니데이 2018-02-04 08: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입춘입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 올해도 좋은 일들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cyrus님, 좋은 일요일 보내세요.^^

cyrus 2018-02-04 09:19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오늘도 장난 아니게 날씨가 춥네요. 건강 조심하시고 주말 잘 보내세요. ^^
 
여성론 까치글방 42
이우구스트 베벨 / 까치 / 1990년 7월
평점 :
품절


 

 

 

 

 

 

여성의 종속과 만연한 매춘에 기대고 있는 부르주아 가족은 그 경제적 토대인 사유재산을 없애면 자연히 붕괴할 거야! (아우구스트 베벨) [1]

 

 

다수자는 소수자에게 자기들의 법률을 강요하거나 박해를 가한다. 그러나 여자는 미국의 흑인이나 유태인들처럼 소수자가 아니다. 지구 위에는 남자와 같은 수의 여자가 있다. 최초에 이 두 무리는 서로 독립해 있었다. 예전에는 쌍방이 서로 모르고 지냈거나 또는 어느 편이나 상대편의 자주성을 허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고, 그 결과 약자는 강자에게 굴복하게 되었다. 유태 민족의 분산, 미국의 노예 제도의 등장, 식민지 정복 등은 획기적인 역사적 예들이다. 이 경우에 피압박자들은 최소한 지난날의 추억을 간직한다. 그들은 과거와 전통, 때로는 종교와 문화를 공통적으로 소유하고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베벨(August Bebel: 여성론자, <부인론>의 저자, 1840~1913)이 묘사한 여자와 프롤레타리아와의 비교는 아주 훌륭한 근거가 있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는 수적으로 열세하지도 않고 또 그들의 개별적인 집단이 최근까지 형성된 일이 없었다. 비록 과거에 사건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여자와 프롤레타리아의 존재를 계급의 범주 내에서 설명을 하고, 특정한 개인을 이러한 계급 속으로 끌어들여 이유를 밝힌다는 것은 하나의 역사적인 발전이다. 프롤레타리아라는 것이 언제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자는 언제나 있었다. 여자는 그 생리 구조에 의하여 여자이다. 역사를 한껏 소급해 보아도 여자는 늘 남자에게 종속되어 있었다. (시몬 드 보부아르) [2]

 

 

마르크스와 엥겔스 이전의 사회주의 사상가들이었던 푸리에와 오언, 베벨 같은 이들은 단지 선의의 미덕에 의해 계급 특권과 착취가 존재해서는 안 되는 이상세계를 상정하면서 현존하는 사회적 불평등에 관하여 설교하는 것 이상을 하지 못했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3]

 

 

보부아르(Beauvoir)《제2의 성》(을유문화사, 1993) 1권슐라미스 파이어스톤(Shulamith Firestone)《성의 변증법》(꾸리에, 2016)의 앞 장을 읽다가 말았다. 독서를 포기한 것이 아니다. 문장을 따라가던 내 눈이 두 권의 책 초반부에 나온 ‘생소한 이름’ 앞에서 멈췄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트 베벨(August Bebel). 그 이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보부아르와 파이어스톤의 책을 잠시 덮고 베벨의 《여성론》(까치, 1990)을 펼쳤다. 2보 전진 독서를 위한 1보 후퇴 독서다.

 

 

 

 

 

 

 

 

베벨은 여성해방론을 주장한 독일의 사회주의자다. 그는 마르크스(Marx)의 사회주의를 지지하여 사회민주당을 창설, 지도자로 활동했다. 그가 1879년에 발표한 <여성과 사회주의(Die Frau und der Sozialismus)>사회민주당원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여성론》과 《여성과 사회》(보성출판사, 1988)는 이 책의 번역본이다. 일본에서는 이 책이 ‘부인론’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다. 《여성론》의 초판은 180여 쪽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기존의 내용을 보완하거나 새로운 자료를 계속 추가하면서 중판이 여러 번 출간되었고 1910년에 400쪽이 넘는 개정 50판이 출간되었다. 《여성론》 완역본은 저자 생전에 마지막으로 나온 개정 50판을 번역한 것이다. 1987년에 책의 1~3부를 번역한 책이 나온 적이 있다. 1990년에 4부를 온전히 번역한 완역본이 출간되었다. 까치 판 《여성론》을 헌책방에 만나게 되면 이 책이 완역본인지 아닌지 잘 살펴봐야 한다. 《여성론》 완역본 앞표지에는 ‘완역본’이라는 글자가 있다.

 

베벨은 여성의 평등을 주장하는 부르주아지(bourgeoisie, 시민계급)의 여성운동에 부정적 견해를 드러낸다. 그는 남녀 평등사회가 실현된다고 해도 여성들은 남성만 유리한 ‘결혼과 매춘’에 예속된다고 주장한다.

 

 

  시민계급의 여성운동이 주장하듯 남녀의 완전한 평등권이 실현된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여성의 예속상태―거의 모든 여성들에게 현재의 결혼제도는 바로 이러하다―나 매춘 그리고 남성에 대한 경제적 예속 등과 같은 악덕들이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명백한 일이다. 좀 더 혜택 받은 계층에 속하는 몇몇 여성들이 교직과 의료직, 학문과 관리 생활 등에서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하여 여성의 지위 전반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남녀 사이의 관계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서론, 9쪽)

 

 

  노동여성들을 가장 괴롭히고 있는 임금제와 또 현존의 재산 및 산업질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성적 노예제를 없애기 위해 국가 및 사회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바꿔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여성들도 상당수에 달한다.

  시민계급 여성운동에 참여하는 여성들은 이와 같은 근본적 변혁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들은 특권적 지위에 있으므로 계속 확산되어나가는 노동여성운동을 위험하고도 부당한 투쟁이라 생각하면서 저지하기 위해 애쓰기도 한다. 현대사회의 모순이 심화되면서 첨예화된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계급적 대립이 여성운동 내부에서도 날카롭게 부딪히기 시작한 것이다. (서론, 9~10쪽)

 

 

책의 1부는 각종 인류학적 연구 성과를 동원하여 원시사회부터 ‘모권(母權)’을 가진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밝힌다. 베벨은 루이스 헨리 모건(Lewis Henry Morgan)《인류사회》(문화문고, 2005)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두레, 2012)을 인용하여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대우할 수 있는 정당성을 내세운다. 분업과 경제가 발달하면서 모권 중심의 원시사회는 자연스럽게 부권(父權)과 일부일처제가 가능한 부권 중심의 농경사회로 전환되었다.

 

 

고대의 씨족조직이 와해됨과 아울러 여성의 영향력과 지위도 급격히 하락하였다. 결국 모권은 소멸되고 부권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으며, 사유재산 소유자로서 남자는 이제 그가 ‘적출’로 인정하여 자신의 재산을 상속케 할 자식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라 ‘아내가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금하였다.’ (1부, 36쪽)

 

 

2부는 사유재산제의 자본주의 사회가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 무산계급 또는 노동계급)와 여성을 억압하는 각종 사례를 논한다. 베벨을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과 마찬가지로 결혼이 ‘여성을 노예로 만드는 사회제도’라고 규탄한다. 그는 부르주아지 여성 운동가들이 외면한 프롤레타리아 여성 노동자(기혼 여성)들의 비참한 상황을 열거하여 여성과 프롤레타리아를 ‘자본주의 사회 속에 고통받는 존재’로 인식한다. 또 매춘 행위를 금지하면서도 ‘공창’을 용인하는 국가의 이중적인 자세가 여성을 불리하게 만드는 사회제도라고 지적한다.

 

3부에서 베벨은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 간 갈등과 양극화 현상을 언급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위기를 주시한다. 베벨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을 억압하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찾아 여성을 해방할 방법을 진지하게 모색한 마르크스주의자였다. 그는 이 책의 결론이라 할 수 있는 4부에 사회주의가 여성해방운동과 함께 앞으로 나가야 할 청사진을 제시했다.

 

밀의 《여성의 종속》(책세상, 2006)이 남성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의 경전이라면 베벨의 《여성론》은 남성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의 경전이다. 부르주아 여성들이 선호하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사회 개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베벨은 《여성론》을 통해 ‘사회주의 국가의 실현’을 위한 여성의 적극적인 노동 운동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 책도 시대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베벨은 중세 여성을 성적으로 억압한 나쁜 문화의 사례로 영주의 초야권(初夜權, 영주가 결혼하는 농노의 신부와 첫날밤을 보낼 권리)을 언급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초야권을 유럽 중세 시대에 성행한 적이 없는 문화로 보는 견해가 지지받고 있다. 베벨은 동성애를 ‘자연에 반하는 성욕 만족’, 동성애자를 ‘방탕아’로 표현했다. 그 당시에 동성애를 ‘정신질환’의 형태로 보는 사회적 편견이 있었다. 베벨은 남녀 모두 균등하게 교육받을 수 있는 전면 무상 교육을 주장했다. 그리고 고된 가사노동에 시달리는 여성을 위해서 완벽한 조리 도구와 각종 가전제품이 마련된 ‘공산주의적 취사장’을 제안하기도 했다. 성능 좋은 조리 기구와 부인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가전제품이 생겨도 여성의 가사노동은 남성보다 많은 실정이다. 그런데 베벨은 남성도 가사노동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파이어스톤의 지적대로 베벨의 사회주의 유토피아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언론 자유가 전혀 없다는 저 단순하기 그지없는 생각이야말로 부르주아 사회를 가장 완벽한 사회로 규정해놓고 적대감으로 사회주의를 비방하고 깎아내리는 억지임에 틀림없다. 부르주아 사회를 마치 진정한 언론자유의 보루인 양 말하는 것 자체가 벌써 명백한 거짓이다. (4부 484쪽)

 

 

사회주의 국가가 세워지길 바라는 열망이 너무나도 컸던 베벨은 간간이 자본주의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는 사회주의 내부의 문제점을 바라보지 못했고, 그는 사회주의 사회가 언론 자유를 보장할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마르크스, 바벨과 같은 사회주의자들이 꿈꿨던 국가는 그들의 이상과 정반대의 모습으로 발전했다. 스탈린(Stalin)은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스탈린 체제는 가족 제도 유지를 강화하는 국가 정책을 전면으로 내세웠고, 베벨이 지지한 ‘여성의 자유연애’를 금지했다. 여성 노동자들은 쉴 틈 없이 공장 노동과 가사노동을 모두 맡아야하는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이렇듯 사회주의도 ‘가장 완벽한 사회’라고 볼 수 없다.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나 피차일반이다.

 

 

 

 

 

[1] 수전 앨리스 워킨스 《페미니즘》 (김영사, 2007) 90쪽

[2] 《제2의 성 1》 (을유문화사, 1993, 구판) 16~17쪽

[3] 《성의 변증법》 (꾸리에, 2016) 15~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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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3 0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2-03 11:34   좋아요 1 | URL
<여성론>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여성의 지위는 그 민족의 문화를 측정하는 데 가장 적절한 척도이다.” (127쪽)

여성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것은 정의롭지 않습니다. 따라서 여성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인식이 팽배한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