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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가설 - 부모가 자녀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탐구
주디스 리치 해리스 지음, 최수근 옮김, 황상민 감수 / 이김 / 201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아들아, 너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강북에서 쭉 살자꾸나.
강북은 네가 살기 좋은 곳이란다.”
“네, 아버지. 하지만 저는 친구들 따라 강남에 가고 싶어요.”
만약 “내 아이만큼은 제대로 키울 것이다”라고 다짐한 부모라면 《양육가설》(이김, 2017)을 읽고 당혹스러울 것이다. 이 책을 쓴 심리학자 주디스 리치 해리스(Judith Rich Harris)가 강조하는 교육방식은 일반적인 부모가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왜 아이는 부모가 키우는 대로 자라지 않는가?” 이것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아주 중요한 질문이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부모가 어떻게 행동하고 교육하느냐에 따라 자식도 그렇게 닮아간다는 뜻이다. 양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육 전문가들은 부모에게는 자식을 사랑하는 만큼 옳고 그름을 인식시켜줄 책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아동발달에 대한 교재를 썼던 해리스도 잘못된 행동을 한 아이의 책임은 부모의 양육 태도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해리스는 ‘양육’에 대한 믿음을 의심한다. 그녀는 ‘양육’과 ‘(가정)환경’을 동의어로 사용하는 교육법이 타당한지 검토하기 위해 ‘양육’에 대한 통념을 뒤집는 각종 연구결과와 사례 등을 제시한다. 그리하여 그녀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부모의 교육이 아이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양육은 하나의 가정(假定, assumption)에 지나지 않는다. 1998년에 《양육가설》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심리학계와 교육계는 이 책을 두고 찬반양론으로 첨예하게 맞섰다. 이제야 나온 국내 번역본은 2009년 개정판을 저본으로 삼았다.
심리학을 공부할 때 프로이트(Freud)와 B. F. 스키너(B. F. Skinner)를 지나칠 수 없다. 저자에 따르면 프로이트는 ‘양육가설의 진정한 창조주’다. 프로이트는 부모의 양육 방식과 교육을 본격적으로 접하는 유아기에 인간의 성격이 형성된다고 했다. 스키너는 행동주의 심리학을 완성한 학자로 유명하다. 그는 본성이냐 양육이냐 하는 논쟁에서 철저히 양육의 편을 들어줬다. 스키너는 모든 사람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보상체계를 만든다면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의 영향을 받은 교육심리학자들은 부모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유아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모든 사회에는 상황과 장소에 따라 다양하게 연결되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문화를 구성하게 된다. 작게는 가정에서부터 학교, 나아가 사회 전체에 이르는 다양한 관계가 형성되면서 사회질서의 모습을 그리게 되는 것이다. 가정은 인간의 사회화 과정에서 가장 근본적인 임무를 수행한다. 이런 이유에서 가정은 사회적 관습에 따른 올바른 가치판단의 기준이 형성되는 곳이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를 안정적으로 성장시킬 의무가 있다. 부모로부터 배운 각종 생활양식과 규범은 아이에게 그대로 전수되어 학교 교육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가정에서 부모의 역할이 아이의 일생을 좌우한다고 우리는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다. 그런데 《양육가설》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했던 ‘사회화’의 통념을 깨뜨린다.
해리스는 ‘양육 가설’을 대체하는 ‘집단사회화(group socialization)’ 이론을 제시한다. 성장 중인 아이들이 끼리끼리 또래 집단을 형성하고 집단 활동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한편 청소년기는 사회화가 가장 왕성하게 이루어지는 단계이다. 청소년들은 부모가 있는 가정환경보다는 자신을 둘러싼 같은 나이, 같은 성별의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외부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고 또 모방한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듯이 아이들은 서로 친할수록 비슷한 언어(특히 또래 친구들끼리 통하는 은어와 비속어)를 쓰고, 비슷한 행동을 한다. 그래서 해리스는 아이의 성격이 유전적 요인의 영향을 받게되더라도 언어 선택 및 비속어 사용은 환경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비속어를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듯이 가르쳐도 소용없다. 아이는 또래에 동화되기 위해 비속어를 쓴다. 비흡연자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는 비흡연자가 된다? 양육 가설을 믿는 부모는 ‘우리 남편은 담배를 싫어하고, 아이는 착해서 담배를 피우지 않을 거예요’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부모보다 친구들을 따라하려는 경향이 있고, 친구들의 영향을 받은 아이는 부모가 키우는 대로 자라지 않는다. 여러분의 ‘착한 아이’는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친구들과 맞담배를 피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는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부모를 속일 수 있다[1].
《양육가설》이 나온 지 이십 년이나 지났다. 부모의 의무교육 및 책임을 강조하는 기존 교육방식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리게 하는 그녀의 주장은 지금 봐도 과감하다. 최근 청소년 폭행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소년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고, 가벼운 죗값을 받는 폭행 가해자들을 감안해서 폭행 사건의 책임이 부모에게 전가해야 한다고 보는 여론도 있다. 양육가설에 따르면 폭행 가해자의 부모는 아이를 잘못 가르쳤으니 피해 학생들의 고통을 생각해서 법적 책무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양육가설을 ‘의심하는’ 해리스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본다면 가해자 부모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이 나올 수 있다.
양육가설을 의심하는 저자의 주장을 자세히 알고 싶거나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읽어보도록 권한다. 저자는 양육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저자는 자신의 주장이 자녀 교육을 소홀히 하는 철없는 부모들이 인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2].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시작할 때부터 ‘저자는 양육가설을 의심한다’라는 식의 표현을 반복해서 썼다(몇 번 썼는지 직접 세어보시라). 내가 이 글을 쓰기 위해 고심해서 선택한 단어인 ‘의심’을 ‘거부’의 의미로 해석한다면 곤란하다. 저자는 근거가 불충분한 양육가설이 모든 부모와 자녀들에게 적용되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자녀교육이 서툰 남편들은 자식의 행동에 마음에 안 들면 아내에게 불만 섞인 핀잔을 늘어놓는다. “아니, 도대체 애를 어떻게 키웠기에 이 모양이야!” 이 말인즉슨 “애를 잘못 키운 건 엄마 탓”이라는 뜻이다. 분명 양육자는 부모 두 사람인데, 일부 남편들은 아이를 낳아줬고 집에만 있는 아내를 ‘진짜 양육자’라고 여긴다. 남편들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은 자녀 양육에 책임이 없다고 믿는다.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서 내 아이만큼은 똑똑하게 키우고 싶다고 생각만 하는 남편이 《양육가설》을 읽는다면 아이를 노심초사 돌봐야 하는 아내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이다.
[1] 《양육가설》 453쪽
[2] 《양육가설》 4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