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기 만화 <The Simpsons>는 온갖 개그와 패러디로 뒤범벅이 되어 있다. 한두 번 보아서는 그냥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다. 매 편마다 원형이 조금씩 달라지는 수많은 오프닝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유튜브에 들어가면 오프닝만 따로 모아서 편집한 동영상들을 볼 수 있다.

 

영화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Guillermo del Toro)도 <The Simpsons> 오프닝 연출을 딱 한 번 담당한 적이 있다. <The Simpsons> 제작진은 매년 핼러윈 시즌에 ‘Treehouse of Horror’라는 이름으로 공포특집 에피소드를 내놓는다. 기예르모는 2013년에 방영된 공포특집 오프닝 연출을 맡았다. 판타지 및 호러 장르의 영화를 만들어내는 감독답게 그가 만든 오프닝 영상 속에는 ‘공포와 환상’과 관련된 가상의 존재 또는 관련 인물들이 순식간에 등장한다. 예전에도 이 오프닝 영상을 소개한 적이 있다.

 

 

 

 

 

 

 

 

 

※ Colla[book]ration #6 미국 공포문학의 아버지 : 포 X 러브크래프트

(2015년 2월 3일 작성)

http://blog.aladin.co.kr/haesung/7363627

 

 

 

 

약을 빤 듯한 영상에 기예르모 감독의 영화에 나온 캐릭터들이 나오고,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러브크래프트(Lovecraft)도 ‘심슨형 인간’이 되어 잠깐 출연한다. 여기에 ‘까마귀(The Raven)’‘크툴루(Cthulhu)’가 깨알같이 나온다. 이 녀석들은 각각 포와 러브크래프트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어트리뷰트(속성, Attribute)다.

 

 

 

 

 

 

포 옆에 덩치 큰 사나이의 몸에 그림을 그리는 노인이 있다. 그는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다. 그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문신을 새기고 있다. ‘문신을 새긴 사나이’는 브래드버리의 대표작 《일러스트레이티드 맨》(The Illustrated Man)에 나온다. 이 소설은 1968년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빵모자를 쓴 흰 수염의 노인은 리처드 매드슨(Richard Matheson)이다. 매드슨 옆에 괴상한 복장을 한 사람이 서 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변종 인간이다. 변종 인간은 빛을 피하려고 선글라스와 수도승 옷을 착용하며 주로 밤에 돌아다닌다. 이 가공의 존재는 1971년 찰턴 헤스턴(Charlton Heston) 주연의 영화 <오메가 맨(The Omega man>에 등장한다. 매드슨의 대표작 《나는 전설이다》(황금가지, 2005)는 이 영화의 원작이다.

 

브래드버리는 2012년에 세상을 떠났고, 기예르모가 만든 심슨 오프닝 영상은 이듬해에 공개되었다. 브래드버리가 이 영상을 봤다면, 대단히 흡족해했을 것이다. 공포 문학의 거장과 같이 있다는 것은 브래드버리 본인에게는 엄청난 영광이다. 어린 시절부터 독서를 꾸준히 해온 브래드버리가 포의 소설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포가 창조한 어둡고 음침한 상상력이 브래드버리를 포함한 후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브래드버리는 포의 소설을 오마주(hommage)한 작품을 두 편 썼다. 『화성의 미친 마법사들』(The Mad Wizards of Mars, 《일러스트레이티드 맨》 수록) 또는 『추방자들』(The Exiles, 《레이 브래드버리 : 태양의 황금 사과 외 31편》 수록)이라는 두 개의 제목으로 알려진 소설과 《화성 연대기》(샘터사, 2010)에 수록된 『2005년 4월 어셔2』(April 2005: Usher II)다.

 

『화성의 미친 마법사들』은 상상력을 ‘불법’으로 규정하여 규제하는 미래 사회를 그린 작품이다. 이 이야기의 연도는 서기 2120년. 이 시기로부터 100년 전에 지구인들은 공포 소설 또는 환상 소설을 ‘금서’로 지정하거나 불태웠다. 화성에는 작가의 영혼들이 거주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쓴 창작물을 불태우려는 지구인들을 막기 위해 전쟁을 준비한다. 지구인들이 책을 불태우면, 그 책을 쓴 작가의 영혼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전쟁을 지휘하는 수장이 에드거 앨런 포다. 앰브로즈 비어스(Ambrose Bierce), 앨저넌 블랙우드(Algernon Blackwood)의 영혼이 포를 보좌해주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포는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영혼에게 직접 찾아가서 전쟁에 협조하도록 요청하지만, 디킨스는 거부한다. 포의 요청을 거부하는 디킨스의 변명이 압권이다.

 

 

 “포 씨, 난 귀신 따위 믿는 사람이 아니에요. 공포 소설가도 아니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당신들과 달라요. 당신들 따위 인정하지도 않소! 난 마녀니 흡혈귀 따위 음산한 것들은 쓴 적이 없단 말이오!”

“그럼 『크리스마스 캐럴』은 뭡니까?”

“웃기고 있네! 달랑 그거 한 편이오. 그러고 보니 유령 나오는 이야기를 몇 편 쓴 것 같기도 한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거요? 난 기본적으로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안 쓰는 사람이오!” [1]

 

 

디킨스의 영혼은 자신이 ‘공포 소설가’가 아니라면서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디킨스는 1843년부터 1847년까지 크리스마스에 맞춰서 짧은 소설을 발표했다.

 

 

 

 

 

 

 

 

 

 

 

 

 

 

 

 

 

 

 

 

※ ‘signalman’이 수록된 국내 번역본

 

 

 

 

 

 

 

 

 

 

 

 

 

 

 

 

 

 

 

 

 

 

 

 

 

 

 

 

 

 

 

 

 

 

 

 

* 제목명: 신호원, 《세계 괴기소설 걸작선 3》 (자유문학사, 2004)

* 제목명: 신호원, 《빨간 구두》 (생각의나무, 2007)

* 제목명: 신호수, 《가든 파티》 (창비, 2010)

* 제목명: 신호수, 《세계의 환상소설》 (민음사, 2010)

* 제목명: 신호수, 《세계 서스펜스 추리여행 1》 (나래북, 2014)

* 제목명: 신호원, 《북극성호의 선장》 (지식여행, 2017)

 

 

 

이때 나온 작품 중 한 편이 바로 그 유명한 《크리스마스 캐럴》이다. 디킨스는 《크리스마스 캐럴》처럼 유령이 나오는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몇 편 썼다. 유령이 나오는 이야기를 썼다고 해서 디킨스를 ‘공포문학의 거장’으로 평가하기에 근거가 불충분해 보인다. 그렇지만 고전 공포문학 단편 앤솔로지에 자주 수록되는 『신호수』(signalman)는 ‘설명 불가능한 초자연적 현상’이 주는 공포감을 제대로 구현한 작품이다. 디킨스를 ‘근대적 환상문학의 거장’으로 소개한 《환상문학의 거장들》(자음과모음, 2001)에 보면 『신호수』를 ‘포를 흉내 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2]이라고 평가한 내용이 나온다.

 

브래드버리는 『화성의 미친 마법사들』을 통해 ‘환상문학 덕후’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 소설에 환상문학으로 분류되는 작가와 작품들이 언급된다.

 

 

  스미스는 몸을 숙여 먼지 낀 책들의 제목을 읽어 보았다.

“『신비와 몽상에 관한 이야기들』, 에드거 앨런 포. 『드라큘라』, 브램 스토커.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나사의 회전』, 헨리 제임스. 『슬리피 할로의 전설』, 워싱턴 어빙. 『라파치니의 딸』, 너대니얼 호손. 『아울 크리크 다리 사건』, 앰브로즈 비어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버드나무 숲』, 앨저넌 블랙우드. 『오즈의 마법사』, 라이먼 프랭크 바움. 『인스머스의 기이한 그림자』,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더 있군요. 월터 델라메어, 웨이크필드, 하비, 웰스, 애스퀴스, 헉슬리…‥ 다 금서 작가 아닙니까? 핼러윈이 불법 판정을 받고 크리스마스가 금지되던 해에 불태운 책들인데!” [3]

 

 

 

월터 델라메어(월터 데라메어, Walter John De la Mare, 1873~1956)는 영국의 시인 겸 소설가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뛰어난 작가로 인정받았으나 오늘날에는 잊힌 이름이 되었다.

 

 

 

 

 

 

 

 

 

 

 

 

 

 

 

 

 

 

 

러브크래프트는 비평문 《공포문학의 매혹》(북스피어, 2012)에서 델라메어의 시와 소설들을 높이 평가한다. 델라메어는 ‘보이지 않는 신비로운 세계’[4]를 소재로 글을 썼는데, 우리말로 번역된 글을 찾아보기 힘들다. 흡혈귀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 『시튼의 이모』《뱀파이어 걸작선》(책세상, 2006)에 수록되어 있다.

 

 

 

 

※ ‘August Heat’가 수록된 국내 번역본

 

 

 

 

 

 

 

 

 

 

 

 

 

 

* 제목명: 염천, 《세계 괴기소설 걸작선》 (자유문학사, 2004)

* 제목명: 팔월의 열기, 《세계 호러 단편 100선》 (책세상, 2005)

* 제목명: 8월의 무더위, 《세계 호러 걸작 베스트》 (북타임, 2010)

 

 

 

※ 『다섯 손가락을 지닌 짐승』이 수록된 국내 번역본

 

 

 

 

 

 

 

 

 

 

 

 

 

 

*《세계 공포 문학 걸작선 : 고전 편》 (황금가지, 2003)

 

 

 

‘하비’는 윌리엄 프라이어 하비(William Fryer Harvey, 1885~1937)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대표작은 『팔월의 열기』(August Heat)와 『다섯 손가락을 지닌 짐승』(The Beast with Five Fingers) 등이 있다.

 

 

 

 

 

 

 

 

 

 

 

 

 

 

 

 

‘웰스’는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 ‘헉슬리’는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를 의미한다. ‘웨이크필드’와 ‘애스퀴스’는 정확히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수많은 부하들이 그(에드거 앨런 포-글 작성자 주)를 뒤쫓아 달렸다. 앨프리드 에드거 코파드 씨와 아서 매켄 씨도 합류했다. [5]

 

 

브래드버리가 영국 환상문학 쪽에 일가견이 있는 것 같다. 앨프리드 에드거 코파드(Alfred Edgar Coppard, 1878~1957) 역시 월터 델라메어와 비슷한 작가(생전에 명성을 얻었으나 지금은 존재감이 투명해진 작가)로 분류된다. 영문판 위키피디아(Wikipedia)에 그의 생애를 소개한 내용이 있으나 특기할 만한 정보가 없다. 코파드가 생전에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러디어드 키플링(Rudyard Kipling)의 작품을 싫어했다는 사실이 그나마 눈여겨 볼만한 정보이다.

 

 

 

 

 

 

 

 

 

 

 

 

 

 

 

 

에로틱 공포 단편을 모은 《호러 사일런스》(고려문화사, 1994)『실버 서커스』(Silver Circus)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다. 내가 알기로는 국내에 유일하게 소개된 코퍼드의 소설이다.

 

 

 

 

 

 

코퍼드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 있다. 미국의 작가 조 힐(Joe Hill)<Better Than Home>(국내 미번역)으로 코퍼드 상을 수상했다. ‘조 힐’은 필명이고, 본명은 조셉 힐스트롬 킹(Joseph Hillstrom King)이다. 그의 아버지가 ‘호러 킹’ 스티븐 킹(Stephen King)이다.

 

 

 

 

 

 

 

 

 

 

 

 

 

 

 

 

 

아서 매켄(Arthur Machen)은 웨일스 출신의 소설가다. 켈트 신화의 영향을 받은 환상 소설을 썼다. 매켄의 작품 선집을 리뷰한 적이 있다. 이 졸문에 매켄의 작품에 대한 글쓴이의 소개가 정리되어 있으니 참고해도 된다.

 

 

※ [이야기가 끝나도 지속되는 악몽의 여운]

(《불타는 피라미드》 리뷰, 2015년 2월 24일 작성)

http://blog.aladin.co.kr/haesung/7395283

 

 

 

사실 이 글에 앨저넌 블랙우드라는 작가를 소개하려고 했다. 그러나 글이 길어져서 더 쓸 수 없다. 더 쓰고 싶은 내용이 있었지만 자제했다. 블랙우드에 대한 글은 따로 작성해서 공개할 예정이다. 연휴 동안 참았던 나의 덕력이 폭발해서 작가들에 향한 ‘팬부심’을 부려봤더니 글의 전개가 산만하고, 글의 분량이 늘어났다. 북플에서 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대충 보는 사람보다 긴 글이라서 쳐다보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을 듯하다. cyrus가 쓴 글은 믿고 거르면 된다.

 

 

 

 

 

[1] 레이 브래드버리 《일러스트레이티드 맨》 185, 186~187쪽

[2] 프랑수아 레이몽, 다니엘 콩페르 《환상문학의 거장들》 64쪽

[3] 레이 브래드버리 《일러스트레이티드 맨》 179쪽

[4] 러브크래프트《공포문학의 매혹》 107쪽

[5] 레이 브래드버리 《일러스트레이티드 맨》 1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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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17-10-11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이런 백스토리를 알고 보니 왠지 색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판타지의 거장 기예르모 델 토로가 TV쇼 심슨의 오프닝을 담당하다니요. 당장 유투브라도 찾아 봐야 겠습니다.

cyrus 2017-10-11 16:24   좋아요 1 | URL
‘기예르모 델 토로 심슨‘으로 입력하면 동영상이 나옵니다. 오프닝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디테일하게 하나하나 알려주는 영상도 있어요. 정말 재미있습니다. ^^

syo 2017-10-11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씩 cyrus님 무서울 때 있어요.

이럴 때요.

cyrus 2017-10-11 18:44   좋아요 0 | URL
syo님이 더 무서워요. 일주일에 읽는 책의 앙을 보면 저도 열심히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이 곳에 무서운 사람들이 많아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7-10-11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모든 인간이 총충동했네요. 러브크래프트 은근 닮았군요. 저도 이 심슨 에피소드를 무척 좋아합니다. 최고였죠. 킹 부자도 반갑네요. 이달의 당선작으로 적극 추천합니다.

cyrus 2017-10-11 18:46   좋아요 0 | URL
호러 영화를 좋아하는 곰발님이라면 오프닝에 나오는 캐릭터들 절반은 아실 것 같습니다. ^^

2017-10-11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0-11 21:26   좋아요 0 | URL
거의 집에서 시간을 보냈어요. TV 보면서 먹기만 했습니다. 심심하면 밖에 나가서 먹고 오구요.. ㅎㅎㅎ

transient-guest 2017-10-12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라와 SF 그리고 판타지가 없었다면 책읽는 재미가 상당부분 덜 했을 것 같습니다.ㅎ 그런데 절판된 책이 많아서 아쉽네요.

cyrus 2017-10-12 12:44   좋아요 0 | URL
절판본에 숨어 있는 걸작이 있습니다. 그래서 절판된 장르문학 단편 선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

짜라투스트라 2017-10-12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는 저 긴 글을 다 읽었어요^^ 제가 관심 가지고 있는 이름들이 다수 나와서 더 좋았어요

cyrus 2017-10-12 12:44   좋아요 0 | URL
말씀으로 해주시는 것만으로 고맙습니다.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로스(Eros, 로마식 이름은 쿠피도(Cupido))의 연인 프시케(Psyche)‘영혼’‘나비’를 의미한다. 그녀가 그림 속 주인공으로 등장하면 그녀 옆엔 나비가 날아다닌다.

 

 

 

 

 

 

 

 

 

 

 

 

 

 

 

 

 

 

 

 

 

 

 

 

 

 

 

 

 

 

 

 

 

 

 

 

 

 

 

 

 

 

 

 

 

 

 

 

*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황금 당나귀》 (매직하우스, 2007)

*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청소년을 위한 황금 당나귀》 (매직하우스, 2008)

* 오비디우스, 이윤기 역 《변신 이야기 1》 (민음사, 1998)

* 오비디우스, 천병희 역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도서출판 숲, 2005)

* 이윤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웅진지식하우스, 2000)

* 루치아 임펠루소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림으로 읽기》 (예경, 2008)

 

 

 

아프로디테(Aphrodite)의 미움을 받고도 갖은 고초 속에 에로스와의 사랑을 이룬 프시케는 순수한 영혼의 힘으로 천상의 사랑을 쟁취한다. ‘육체적 사랑’을 상징하는 쿠피도를 만나려는 프시케의 험난한 여정은 육체와 정신이 합일하는 ‘완전한 사랑’으로 성장하는 과정이다.

 

 

 

 

 

 

 

 

 

 

 

 

 

 

 

 

 

 

 

* 샤먼 앱트 러셀 《나비에 사로잡히다》 (북폴리오, 2005)

* 미야시타 기쿠로 《모티프로 그림을 읽다》 (재승출판, 2015)

 

 

 

나비는 세계 어디서나 사랑받는 곤충이다. 모든 대상을 이분법으로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는 인간은 곤충을 ‘익충’과 ‘해충’으로 나뉜다.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익충이 바로 나비가 아닐까 싶다. 나비는 ‘봄의 전령사’다. 겨울 동안 보이지 않던 나비가 따뜻한 봄과 함께 꽃들 사이로 날아다니면 누구나 반가움이 앞선다. 그래서 나비는 생명의 새로운 부활이 시작되는 봄과 잘 어울리는 곤충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묘지 주변에 날아다니는 나비를 망자의 영혼으로 생각했다. 애벌레가 번데기 상태가 되어 동작을 멈춘 모습은 사람이 관(棺) 속에서 지내는 것과 같다. 딱딱한 껍데기를 뚫고 나비로 변신해 날아다니는 모습은 육신에 갇혀있던 인간의 영혼이 해방돼 자유로워지는 것과 비슷하다. 아일랜드에는 다양한 요괴 및 요정이 등장하는 전설이 많다. 신비롭고 영적인 이야기를 많이 접한 아일랜드 사람들은 흰나비를 죽은 아이의 영혼이 있는 곤충으로 여겼다. 그래서 아일랜드 사람들은 흰나비를 함부로 죽이지 않았다고 한다. 폴란드의 유대인 강제수용소 건물에 가보면 벽에 그려진 나비 그림이 있다. 그곳에서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할 유대인 포로들이 부활을 염원하는 마음을 간절하게 표현하기 위해 나비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 김영하 《아랑은 왜》 (문학동네, 2010)

 

 

 

우리나라에서는 나비를 ‘한이 맺힌 영혼’이 깃든 영물로 취급해 왔다. 경남 밀양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아랑 전설’에 나비가 등장한다. 이조 명종 때 밀양부사의 외동딸인 아랑(阿娘, 본명은 윤동옥)은 자신을 탐하는 관노에게 억울한 죽음을 맞는다. 귀신이 된 아랑은 새로 부임하는 밀양부사들의 목숨을 빼앗는다. 신임 밀양부사인 이상사는 그녀의 한을 풀어주기로 약속했고, 아랑의 혼은 이상사에게 범인을 알려주기 위해 ‘흰나비’로 변신한다. 나비가 된 아랑의 혼은 자신을 죽인 관노의 갓 위에 앉았고, 그것을 확인한 이상사는 관노에게 벌을 내린다.

 

일본인들도 나비를 망자의 혼이 변한 곤충이라고 생각한다. 오키나와에서는 밤에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을 불길한 징조로 여긴다. 저작권을 무시하고, 일본의 요괴 모음집을 참고하여 만든 《세계의 요괴 도감》(사과나무, 1992)에 나비에 관한 일본 전설이 나온다.

 

 

 

야마가타 지방의 자오 산 기슭을 걷던 한 여행자가 한 채의 초가집을 발견했다. 몹시 지쳐서 잠시 쉬었다 가려고, 여행자는 문을 두드리며 주인을 불렀다. 그러나 아무도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여행자는 그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 순간, 여행자는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초가집 안은 몇 천 마리나 되는 나비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정신을 가다듬은 여행자는 이 나비 떼들을 자세히 살펴보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들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나비들은 일제히 날아올라 마치 무지개처럼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그 나비들이 다 사라지고나자, 여자의 검은 머리카락만 남아 있는 백골이 나타났다.

 

여행자는 무서운 나머지 여행의 피로도 잊고,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달려갔다. 마을에서 사람을 만나 그 이야기를 하자, 마을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 집에 살던 여자는 살아 있을 때 나비를 무척 좋아해서 언제나 나비를 따라다니며 살았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어느 날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녀의 시신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곳에 방치되었어요. 시간이 지나니까 몸 안에서 구더기가 생겨나, 그것이 나비가 되었을 겁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여행자는 여자가 죽어서 나비가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 《세계의 요괴도감》에서 발췌함.

 

 

 

 

 

 

 

 

 

 

 

 

 

 

 

 

 

 

 

 

※ 히사오 주란의 『곤충도』가 수록된 번역본

 

* 정태원 역 《공포특급 6 : 일본 편》 (한뜻, 1996)

* 이진의, 임상민 역 《스릴의 탄생 : 일본 서스펜스 단편집》 (시간여행, 2010)

* 엄진 역 《그림자 없는 범인 : 일본 추리소설 단편집》 (페가나북스, 2012, e-Book)

 

 

 

일본의 소설가 히사오 주란(久生十蘭)의 『곤충도』는 ‘망자의 혼=나비’ 모티프를 소재로 한 쓴 짤막한 분량의 소설이다. 추운 11월인데도 어느 화가의 집에 있는 다다미방 안에 파리 떼가 날아다닌다. 일주일 뒤에는 엄청나게 많은 나비 떼가 나타난다. 이 소설에서 나비는 비밀에 가려진 소름 끼치는 진실을 알려주는 자연적인 신호다. 그러나 화가 부부는 다다미방 안에 숨겨진 ‘진실’이 무엇인지 눈치 채지 못한다.

 

 

 

 

 

 

 

 

 

 

 

 

 

 

 

 

 

* 허버트 조지 웰스 《허버트 조지 웰스 : 눈먼 자들의 나라 외 32편》

(현대문학, 2014)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나방』은 나방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해플리는 사람을 죽인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는 자신이 죽인 사람의 혼이 나방을 변한 것이라고 믿게 되고, 나방을 볼 때마다 무서움에 벌벌 떤다.

 

 

 

 

 

 

 

 

 

 

 

 

 

 

 

 

 

 

* 구사노 다쿠미 《환상동물사전》 (들녘, 2001)

 

 

 

나방도 나비와 비슷하게 생겨서 그런지 인간의 지나친 상상력 때문에 사악한 존재가 된다.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에 나방 형체의 괴생명체 ‘모스맨(Mothman, 나방 인간)’을 목격했다고 사람들의 증언과 모스맨으로 추정되는 동영상들이 나왔다. 도시 전설에 따르면, 큰 사고가 일어나기 직전에 모스맨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래서 모스맨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모스맨이 재앙을 예고하는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팔랑거리는 나비를 뒤 따라가 보았던 어린 시절이 있을 것이다. 내년 봄이 올 때까진 날갯짓을 팔랑거리며 너울너울 허공을 나는 나비를 볼 수 없다. 아니다. 봄이 와도 나비를 영영 보지 못할 수도 있다. 푸르른 들판 위에는 칙칙한 회색빛 콘크리트가 얹혀있고, 꽃이 있어야 할 자리에 건물이 우뚝 솟아 자란다. 나비를 볼 수 없는 도시의 봄은 상상되지 않는다. 그래도 도시에서 나비를 볼 수 없는 상황이 온다는 것은 인간에게 경고하는 자연의 위험 신호다. 나비가 없는 도시는 ‘영혼이 없는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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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9-27 2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나비 이야기가 나온 김에 어이없는 이야기 하나. 제가 4살 때 노란 나비와 흰 나비를 보고 노란 오줌을 누면 노란 나비가, 하얀 오줌을 누면 하얀 나비가 날아온다고 생각했었던 기억나네요.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 오너라. 노란 나비 흰 나비 춤을 추며 오너라.˝♪♬ 이 노래를 들으면 그렇게 멋대로 연관지었나 봅니다 ㅋ

cyrus 2017-09-27 20:56   좋아요 1 | URL
그러면 검은 나비는... 응..ㄱ... 아닙니다.. ㅎㅎㅎ

겨울호랑이 2017-09-27 20:58   좋아요 0 | URL
^^: 검은 나비는 건강이 좋지 않은 응가인가 봅니다 ㅋ

cyrus 2017-09-27 21:01   좋아요 1 | URL
네. 공장 연기에 찌든 나비입니다. ^^

북프리쿠키 2017-09-27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주도에 프시케월드가면
나비 꽉~있어요ㅎㅎㅎ

cyrus 2017-09-27 21:20   좋아요 1 | URL
제주도에 그런 곳이 있군요. <알쓸신잡> 시즌 2 제주도 편이 제작되면 어느 출연자가 프시케월드에 가게 될까요? 저는 김영하 작가 아니면 정재승 교수라고 생각해요. ^^

transient-guest 2017-09-28 0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나 잠자리를 보면 그렇게 반가울수가 없어요.ㅎ

cyrus 2017-09-28 12:36   좋아요 0 | URL
어렸을 때 잠자리는 잡다가 손가락을 물린 적이 있어요. 그 이후로 잠자리를 못 잡았어요.. ^^

이하라 2017-10-01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느 산사를 오르는 길에서 뱀이 자동차 타이어에 터져 죽은 시체위에 나비가 흡입관을 꽂고 있던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더군요 나비가 뱀시체의 피를 빨고 있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기이함으로 제 기억 속에 새겨져 버렸습니다

행복한 추석되시라고 인사 여쭈러 와서는 이상한 글을 남기고 있군요 ㅋ
cyrus님 행복한 추석연휴 보내세요^^

cyrus 2017-10-02 10:24   좋아요 1 | URL
정말 독특한 장면을 보셨군요. 나비들도 썩어가는 사체에서 나오는 향기를 맡지 싶습니다.

일부러 연휴 인사말을 남기지도, 받지 않으려고 며칠 동안 북플에 접속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래도 직접 인사말을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이하라님도 추석 연휴 잘 보내시고, 좋은 글로 다시 만나요. ^^

2017-10-01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2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표맥(漂麥) 2017-10-03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길을 가다가 손바닥만한 긴꼬리제비나비를 봤습니다.(음... 내 손이 조막손?) 그 자유로움에 한참을 바라봤죠... 여유로운 연휴 되시길...^^

cyrus 2017-10-03 13:57   좋아요 0 | URL
표맥님은 나비 이름을 정확히 아시는군요. 가만히 있는 나비를 몇 분간 관찰하는 일이 어려워요. 우리 인간이 나비를 관찰할 수 있는 여유가 없는 걸까요, 아니면 나비에게 여유가 없는 걸까요? ㅎㅎㅎ

직접 서재에 접속해서 연휴 인사말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표맥님도 연휴 잘 보내세요. ^^

나비종 2017-10-08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와 나방을 앉은 모습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나비는 두 장의 날개를 겹치듯이 세워서 앉고, 나방은 양쪽으로 납작하게 펼쳐서 앉는다구요. 앉는 방식마저 ‘참 나비스럽다‘ 생각했죠.
벌레를 매우 무서워하지만, 곤충 중에서 비교적 거부감없이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이 나비입니다. 한 번도 만져본 적은 없지만요.^^; 부들부들한 느낌이겠죠?

cyrus 2017-10-10 08:04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니 나비가 날개를 납작하게 펼쳐서 가만히 앉아있는 것을 보지 못했어요. 나비종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역시 이름값 하시는군요. ^^

페크pek0501 2017-10-10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책도 보여 반갑군요.

연휴 잘 보내셨는지요?

지금 갑자기 창문을 통해 빗소리가 들립니다. 비오기 시작인가 봐요.
굿밤 되세요...


cyrus 2017-10-10 23:17   좋아요 0 | URL
정말 행복했던 열흘이었습니다. 이런 황금연휴는 언제 올까요? ^^;;

여기 대구는 비 소식이 없습니다. 8월에 비하면 약해졌지만, 아직은 날씨가 따뜻해요.
 
일러스트레이티드 맨 - 문신을 새긴 사나이와 열여덟 편의 이야기 환상문학전집 35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좋은 소설을 읽으면 잠시 책을 덮고,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힌다. 피가 솟아오르는 흥분을 멈추고 나면 가슴속에 뜨거운 무엇이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우리가 이 이미지가 넘쳐흐르는 시대에 문학이라는 지푸라기를 잡고 있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요즘처럼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에 언어 텍스트가 주는 재미를 느끼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그렇다고 영상 텍스트가 주는 감동이 문학보다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문학이 마음속에 단단한 무엇이 자리 잡게 해준다면 영화는 우리 마음을 어떤 방식으로든 슬쩍 쓰다듬고 간다. ‘미디어는 마시지다(The Medium is the Massage)’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이 의미심장한 말을 꺼낸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은 미디어는 인간 능력의 확장이고 미디어는 인간 오감을 어루만지면서 애무한다고 말했다. 매클루언이 말하는 미디어란 신문이나 TV와 같은 언어와 이미지적인 소통뿐 아니라 광고까지 포함한다. 그는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언어적 소통 명제에서 나아가 ‘미디어는 마사지다’라는 신체적 소통 명제로 의미를 확장한다. 미디어가 특정 감각 기관을 연장해주고 강화한다. 그 감각기관의 기능을 관장하는 두뇌에 마사지를 가하게 되며 결국 사고방식, 행동 양식이 달라진다.

 

매클루언은 미디어를 ‘인간(감각기관)의 확장’이라고 했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미디어는 인간의 눈, 입, 귀의 역할을 한다. 시간이 좀 지나면 미디어는 손을 뻗어 인간의 촉각을 자극한다. 매클루언에게는 실례가 되는 말이지만, 미디어의 위력을 일찍 먼저 감지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다. 매클루언의 명제가 세상에 처음 알려졌던 시기가 1960년대 초반이다. 브래드버리는 1950년대에 미디어에게 마사지를 받으면서 생활하는 인간의 생활상을 묘사한 단편소설을 썼다. 1951년에 발표된 연작 소설집 《일러스트레이티드 맨(The Illustrated Man)》에 수록된 『여는 글: 일러스트레이티드 맨』『대초원에 놀러오세요(The Veldt)』는 상상 이상의 현실을 만들어내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의 위력을 정확히 내다보고 있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일러스트레이티드 맨’을 우리말로 풀어쓰면 ‘문신을 새긴 사나이’다. ‘사나이’는 한창 혈기가 왕성한 젊은 남자를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소설에 나오는 ‘문신 남자’가 젊다고 보기 어렵다. 문신 남자의 말에 따르면 스무 살이었던 1900년에 서커스단에서 일했으며 불행하게도 일하다가 다치는 바람에 사십 년 동안 일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면 그의 나이는 대략 60대로 추정된다. 문신 남자의 몸에는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문신이 남아 있다.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나’는 이 불가사의한 문신 남자를 만나면서 몸속에 새겨진 열여덟 편의 이야기를 확인하게 된다. ‘나’는 누운 채로 문신 남자의 몸을 바라본다. 그는 현실감 있는 영상을 보는 듯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그가 본 첫 번째 문신에 담긴 이야기가 『대초원에 놀러오세요』다. 이 이야기는 벽에 아프리카 대초원의 풍경이 그려진 아이들의 놀이방이 나온다. 아이들의 부모는 놀이방을 만든 것에 후회한다. 특히 입체 스크린 속에 입을 활짝 벌리면서 포효하는 사자의 모습을 볼 때마다 꺼림칙한 기분을 지우지 못한다. 부모는 놀이방에서 놀기만 하는 아이들이 걱정되어 놀이방을 폐쇄한다. 그러나 가상현실의 마사지에 푹 빠져버린 아이들은 부모의 결정에 반대한다.

 

『콘크리트 믹서(The Concrete Mixer)』는 미디어 시대의 병적인 중독 현상을 풍자한다. 소설의 제목은 영상에 지배되는 현대인의 의식을 상징한다. 이 소설에 나오는 미래의 지구인들은 영화가 흘러나오는 스크린에 지배당한 상태다. 이 기계의 창조주인 지구인은 소유물의 노예가 되어 영화를 생산한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영상 매체를 비판적으로 바라본 작가이다. 이 작품은 미디어 영상이 지배하는 미래에 대한 작가의 비관적 전망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작품 중 일부는 영화나 TV 드라마로 재탄생되었고, 작가는 자신이 만든 문자 텍스트가 영상 텍스트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봤다.

 

작가는 영상 미디어가 인간의 삶에 깊숙이 침투한 세상을 순순히 인정할 걸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미디어의 긍정적인 효과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일상성을 조물조물 마사지하듯 지배하는 미디어의 힘을 경계한다. 미디어의 마사지에 익숙하면 다른 생각을 가질 여유를 주지 않고, 몰입하게 만든다. 심지어 미디어가 주는 쾌락을 독차지하기 위해 폭력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방문객(The Visitor)』의 최면술사 레너드 마크는 상대방이 보고 싶은 세상을 눈앞에서 재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의 최면술을 경험한 솔 윌리엄스는 최면술사를 ‘소유’하려는 욕심을 느낀다. 레너드 마크는 최면술사가 아니라 ‘영상 전달자’다. 스마트폰은 현대인을 즐겁게 해주는 최면술사다. 지금 그것은 우리에게 최면을 걸고 있다. 중독성이 강한 감각적 자극을 잊지 못한 우리는 스마트폰 화면에 나오는 영상에 눈을 떼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인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언어의 시대 최후의 이야기꾼’이다. 지금처럼 생동감 있는 영상을 보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에 사람들은 그의 재주에 홀딱 넘어가 마치 영화가 눈앞에서 상영되는 것 같은 재미에 흠뻑 빠질 수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미디어 영상이 언어 대신 현실을 재구성하고, 이제는 미디어 영상이 우리를 매일 즐겁게 해준다. 이야기의 재미가 외면받는 시대 속에 레이 브래드버리는 문학의 설 자리를 다시 마련하기 위해 창작욕을 불태웠다. 영상에 밀려 종이책을 외면하는 이 시대에 미래에 가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미래의 풍경을 자세히 이야기해주는 레이 브래드버리와 같은 이야기꾼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 레이 브래드버리의 재능을 반만 닮은 이야기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이 시대의 재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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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9-27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아주 좋은 책인가 보다. 세계 어떤 영화 감독도 다 책에서 영감을 받았고, 엄청난 독서광이라잖아. 그런 걸 보면 책의 위력은 약화될 수는 있어도 소멸되지는 않을 것 같아. 네가 이렇게 쓰니 이 책 읽고 싶어진다.^^

cyrus 2017-09-27 18:26   좋아요 0 | URL
레이 브래드버리의 단편소설을 드라마로 각색한 프로그램도 있어요. 영어 실력은 안 되지만, 유튜브로 드라마를 보고 있어요. 브래드버리의 단편을 읽어보면 재미있어요. 어떤 이야기는 허를 찌르는 결말이 나오고, 또 어떤 이야기는 감동을 주기도 해요. ^^

북프리쿠키 2017-09-27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디어의 긍정적인 효과를 부정하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사실 미디어 그 자체로서 순기능도 많을건데요. 만약 우리 시대가 미디어의 늪을 벗어날 수 없다면
부정적인 담론만 확대 재생산하여 피하려고만 하는게 좋은 방법일지,
아님 잘 활용하는 방안으로 갈지..
또 다른 길이 있는지...고민해 볼일인거 같네요.
다방면으로 좋은 글 쓰시는 싸이러스님 감사합니다^^;

cyrus 2017-09-27 18:29   좋아요 1 | URL
미디어의 부정적인 문제점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내세우되 미디어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말은 쉽지 실제로는 어려운 일이죠. 이미 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져서 문제점을 막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미디어의 문제점을 해결한다고해서 미디어 활용을 규제하고 제한하면 역효과가 일어납니다. ^^;;
 
말의 품격 - 말과 사람과 품격에 대한 생각들
이기주 지음 / 황소북스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대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후 노아(Noah)의 후손은 하늘에 닿을 수 있는 탑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간의 오만한 행동에 괘씸하게 여긴 야훼(Yahweh)는 인간의 언어를 혼란에 빠뜨려 뿔뿔이 흩어지게 함으로써 탑 쌓기를 중단시킨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벨탑(Tower of Babel)’ 이야기에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 상황에 대한 인간의 절망감이 잘 묘사돼 있다. 바벨탑의 교훈은 말 잘하기의 필요성이 갈수록 절실해지는 지금도 유효하다. 살다 보면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 간에 뜻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 때때로 찾아온다. 예를 들면 진심으로 이야기했는데 소통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또 기껏 생각해서 이야기했는데 화만 내는 사람이 있다.

 

대화는 발화자가 상대방(수신자)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전달하기 위해서 특정한 형태의 말을 의도적으로 보낼 때 성립된다. 이처럼 너무도 단순해 보이는 과정이지만, 우리의 현실 속에서는 참으로 어렵고 힘든 작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사실 인간사의 모든 갈등은 대화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탓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곡되고 엇갈린 대화는 개인과 사회조직의 건강성을 해친다. 대화는 가정과 사회생활을 성립시키는 기초적인 행동이다. 이것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개인과 사회 모두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된다. 같은 언어를 사용해도 개인이나 조직의 서로 다른 경험과 이해, 가치관으로 인해 말의 차이 못지않은 대화의 장애를 겪는다.

 

우리는 지금 말 잘하기의 필요성이 갈수록 절실해지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생산적인 말하기를 위해 말하는 법도 공부해야 한다. ‘말하기’도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한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각종 대화법과 화술을 배양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들이 앞 다투어 쏟아져 나온다. 이런 책들이 비뚤어지고 휘어진 언어 습관을 교정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복용해야 하는 약이라면, 《말의 품격》(황소북스, 2017)가시 돋친 언어에 상처받아 허해진 마음을 북돋아주는 십전대보탕(十全大補湯)이다.

 

《말의 품격》은 ‘상대방을 위한 말하기’란, 기본적으로 나와 상대방을 이어주는 과정이란 인식에서 출발한다. 상대방을 알려면 그가 어떤 말을 하는가를 보면 된다. 사람은 때로 상대방의 말 속에 숨은 생각을 읽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내 마음대로 상대방의 말을 판단하지 않고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잘 들어야 한다. 섣부르게 상대방의 말에 개입하거나 끊어버리는 태도는 상대방의 발화를 막는 일방적인 자세이다. 상대방의 말 위에 자신의 말을 아무 생각 없이 얹어 버리면 서로가 이해할 수 없는 소음으로 변한다. 에머슨(Emerson)은 말이란 말하는 사람의 마음에 있는 소리라고 했다. 책의 저자도 말은 ‘마음의 소리’라고 말한다. 말이 정갈하게 모여 쌓이면 사람의 품성으로 완성된다.

 

한마디 말이 상황뿐만 아니라 인생을 바꾼다. 우리의 주변에 좋은 말 한마디 때문에 성공과 행복을 거머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말 한마디 때문에 인생을 망친 사람도 있다. 말은 이렇게 인생을 뒤바뀌게 하는 힘이 있다. 많은 말을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말은 소통이 목적이지 자신의 과시가 목적이 아니다. 저자는 침묵이 ‘말실수를 하는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침묵이 항상 좋은 처세도 아니다. 적절한 말을 적절한 때에 하는 것이야말로 잘하는 말이다. 상대방의 진심을 들여다보고 싶으면 침묵을 깨고 질문을 하는 것도 좋다.

 

저자는 《말의 품격》을 쓰기 위한 재료로 공자, 맹자, 장자, 《손자병법》 등 동양고전에서 찾아낸 질 좋은 문장들을 사용한다. 내가 왜 이 책을 열 가지 한약 재료를 넣어 만든 십전대보탕으로 비유한 이유가 있다. 몸에 좋은 동양고전의 문장들과 편안하고 쉬운 저자의 말을 함께 달인 《말의 품격》은 차가운 언어로 얼어버린 독자들의 몸과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어 준다. 하지만 한약재를 잘못 먹으면 부작용이 일어나는 법.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고 이 책을 읽는다면 세속적 차원의 대화를 지향하는 것이 된다. 말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면 형식적인 말에 불과하다. 상대방이 알아듣고 통하는 말의 특징은 마음에서 곧장 흘러나와 단순하면서도 감동을 준다. 말은 상처받은 이들이 위로받고, 낙심한 이들이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생산적인 도구가 되어야 한다. 좋은 말은 사람을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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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7-09-27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말은 사람을 살리듯이 나쁜 말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요.

품격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품격 높은 정치 좀 보고 싶군요.ㅋ

cyrus 2017-09-27 18:44   좋아요 0 | URL
야당이든 여당이든 어느 정당이 제1정당이 되어도 막말하는 정치인은 매년 한두 명씩 튀어나옵니다.. ㅎㅎㅎ
 

 

 

 

1807나폴레옹(Napoléon)이 이끈 프랑스군은 포르투갈을 점령한 후 곧바로 스페인으로 향한다. 당시 스페인의 내정은 불안정했고, 왕실은 무능하고 부패했다. 페르난도 7(Ferdinand VII)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폐위되었다. 스페인을 점령한 나폴레옹은 페르난도 7세를 쫓아냈고, 그 자리에 자신의 형 조제프 나폴레옹(Joseph Napoleon)을 임명했다. 동생 덕분에 조제프는 호세 1(Jos I)’가 된다. 그러자 스페인 민중들이 반기를 들고 일어났다. 민중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힌 프랑스군은 무력을 동원한 강제 진압에 나섰다. 프랑스군은 이집트 원정 중에 데리고 온 이집트 용병 맘루크(Mamlūk) 기병대까지 동원하여 스페인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 고야, 영혼의 거울(다빈치, 2011)

* 함순용 상처 입은 지성, 그로테스크 고야(함박누리, 2017)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스페인을 점령할 무렵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de Goya)는 스페인 최고의 궁정화가로 명성을 얻고 있었다. 그는 6년 동안 프랑스군이 스페인에서 자행한 사건들에 영감을 받아 최고의 걸작을 내놓게 된다. 82점으로 이루어진 판화집 전쟁의 참화. 이 판화집은 전쟁의 공포를 관람자의 눈앞에 바짝 들이댔다. 고야는 당시 상황을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신의 방식대로 그려냄으로써 표현의 자유와 현실성을 동시에 확보하게 된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고야의 하인이 전쟁의 참화에 포함될 판화를 그리고 있는 고야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왜 이런 비참한 것을 그리려고 하십니까?” 그러자 고야는 인간에게 경고하기 위해서 이 그림을 그렸다, 이렇게 잔혹한 것을 두 번 다시 용납해선 안 된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1] (이때 고야는 이미 청력을 잃은 상태다. 그런데 고야는 어떻게 하인의 질문을 듣고 대답했을까? 귀는 들리지 않아도 상대방의 말을 알 수 있는 고야만의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조제프 나폴레옹은 스페인의 구체제를 지탱하는 봉건 제도, 종교재판 등을 없애고, 개혁을 시도한다. 그리하여 프랑스 혁명과 계몽주의에 깊은 인상을 받은 친불파 스페인 사람들의 지지를 얻는 데 성공한다. 고야 역시 자유주의와 계몽주의를 지지했다. 프랑스군이 저지른 만행을 알면서도 고야는 생계를 위해 스페인을 지배하는 프랑스 왕에게 충성을 바쳤다. 하지만 조제프의 권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독립을 갈망하는 스페인 민중들의 시위가 들불처럼 번졌고, 조제프는 왕위에 오른 지 6년 만에 폐위되었다. 쫓겨났던 페르난도 7세가 다시 왕위에 오르는 데 성공한다. 고야는 부역자로 찍힐 뻔했으나 고야의 능력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페르난도 7세는 그를 궁정화가로 재임명한다. 그러나 페르난도 7세는 민중의 기대를 저버리고 전제정치 강화에 나섰다.

 

 

 

 

 

 

 

 

 

 

 

 

 

 

 

 

* 자닌 바티클 고야 : 황금과 피의 화가(시공사, 1997)

 

 

 

조제프 나폴레옹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보다 한 살 위인 이다. 그런데 고야 : 황금과 피의 화가(시공사, 1997) 97에 보면 조제프를 나폴레옹의 동생으로 나와 있다. 최근에야 이 책의 오류를 발견했다. 이 책은 나온 지 20년이나 된 책이다. 지금까지 쇄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이 사소한 오류를 바로잡았는지 모르겠다.

 

 

 

 

 

 

 

 

 

 

 

 

 

 

 

 

 

* 로제 마리 하겐, 라이너 하겐 고야(마로니에북스, 2010)

* 웬디 버드 디스 이즈 고야(어젠다, 2016)

 

 

 

 

오늘날까지도 고야의 생애 대부분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이렇다 보니 고야 관련 책들을 꼼꼼하게 살펴보면 고야의 행적에 대해 서로 엇갈린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고야(마로니에북스, 2010)디스 이즈 고야(어젠다, 2016). 이 두 권의 책으로 종군 화가로서의 고야의 활동 여부에 대해 어떤 관점을 취하는지 대조해보면 흥미롭다.

 

 

전쟁의 참화는 프랑스 혁명의 이상 혹은 고야의 영광스러운 국가 이름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대량 학살, 그리고 종종 어느 편의 사람들이 죽이고 죽임을 당했는지 알기 힘든 장면들을 보여준다. 이것은 서구 미술사에서 새로운 것이었다. 전투에 대한 기존 묘사는 승리에 대한 영광을 그려왔다. 고야는 혼돈과 전쟁으로 인해 어떻게 평화롭던 시민들이 잔혹한 야수로 변하는지에 흥미를 갖는다. 고야가 전쟁 특파원은 아니었기 때문에 상상력을 동원했다.

 

(로제 마리 & 라이너 하겐, 고야55~56, 57, 글 작성자가 임의로 편집하고 인용함)

 

 

180810, 고야는 호세프 파라폭스 장군과 동행해 사라고사로 갔다. 사라고사는 6월에서 8월까지 포획된 상태였다. 이 시기에 그린 그림들은 전쟁의 재앙연작에 사용된다. 11월에 고야는 도피했다. 12월에 두 번째 포위가 시작되자 고야는 자신이 그린 스케치 작품들 중 일부를 없애 버렸다. 이는 그 작품들이 프랑스 군들의 손에 들어가는 일을 막기 위해서였다.

 

(웬디 버드, 디스 이즈 고야63)

 

 

※ 『전쟁의 재앙전쟁의 참화를 말함.

 

 

 

고야가 프랑스군의 공격을 받은 자신의 고향 사라고사에서 머무른 건 사실이다. 고야 : 황금과 피의 화가에서도 이 사실이 언급된다.

 

 

1808615, 프랑스군이 사라고사를 공략했다. 공략에 실패한 프랑스군이 마침내 8월에 퇴각하자 돈 호세 데 팔라폭스 장군는 고야에게 시민들의 영웅적인 행동을 그릴 수 있도록 도시의 참상을 돌아보고 조사하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12월에 프랑스군이 다시 돌격해 오면서 이 계획은 중단된다.

 

(자닌 바티클, 고야 : 황금과 피의 화가100)

 

 

 

돈 호세 데 팔라폭스(José de Palafox) 장군의 요청으로 고야는 프랑스군에 짓밟힌 고향의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팔라폭스는 프랑스군에 저항하는 스페인 민중들을 이끈 장군이다. 그러므로 고야는 비정규군 소속 종군 화가로 볼 수 있다

 

고야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전쟁의 참화』를 형상화했다. 하지만 판화에 나오는 일부 장면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비록 고야가 직접 보고 들은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내기 어렵지만, 고야는 안전한 곳에서만 머무르면서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다. 따라서 “고야가 전쟁 특파원은 아니었기 때문에 상상력을 동원했다라는 구절이 독자들한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고야가 전쟁터에 직접 가보지 않고 오로지 상상력을 동원해서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엄연히 따지자면 전쟁 특파원종군 화가는 동일한 직업이 아니다. 전쟁 특파원은 전쟁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직업이라면, 종군 화가는 전쟁 상황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애국심을 고취하는 선전용 전쟁화를 그리기도 한다. 고야는 도시의 참상을 직접 목격했고, 이성과 인간성마저 파괴하는 전쟁의 위력을 전달하려고 전쟁의 참화를 제작했다. 그는 전쟁 특파원으로서 역할을 충분히 했다. 다만 그는 전쟁의 선전에만 몰두하는 종군 화가는 아니었다. 그는 프랑스군에 맞서 싸우다가 희생한 스페인 민중들을 빛나는 영웅으로 묘사하지 않았고, 민간인을 잔혹하게 죽이는 프랑스군을 살육 기계로 묘사하지도 않았다. 고야는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철저히 배제하여 전쟁의 회오리에 휘말려 광기 어린 분노를 표출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려고 했다.

 

고야를 안다고 생각한 사람들(필자도 포함된다)전쟁의 참화일부만 보고 있을 뿐이다. 나무에 목매달려 죽은 스페인 민중의 시체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 벌거벗은 민간인의 성기를 절단하고, 여성을 강간하는 등 만용을 저지르는 프랑스군을 묘사한 그림들만 보게 되면 프랑스군의 광기만 각인된다. 그렇지만 고야가 목격한 전쟁은 서로 간에 피를 흘릴수록 프랑스군과 스페인 민중 모두 파멸하는 증오와 광기의 전쟁이었다. 고야는 이성을 잠재우는 전쟁의 광기를 판화로 기록하려고 했다. 전쟁의 참화는 전쟁을 통해 인간의 이성이 얼마나 약한 것인지, 또 인간의 광기란 얼마나 잔인한지를 보여준다.

 

 

 

 

[1] 함순용, 상처 입은 지성, 그로테스크 고야(함박누리, 2017),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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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6 1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26 14:25   좋아요 0 | URL
전쟁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지 모르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네이버 댓글창에 기웃거리죠.

2017-09-26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전에 도서관에서 미술사강의 듣다가 재미없어서 나왔어요.
고야도 잠깐 나왔는데 cyrus님 강의로 보충하고 갑니다.
재밌게 잘 읽었어요^^

cyrus 2017-09-26 17:24   좋아요 0 | URL
사실 미술은 재미없어요. 그림 하나를 알려면 그림과 관련된 열을 알아야 할 때가 있어요. 확실한 것은 미술을 주제로 쓴 제 글도 읽어 보면 재미없어요. 제가 핵노잼형 글을 쓰는 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