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레드스타킹 모임 후기를 썼다. 지난 달 초에 망명과 자긍심 독서 모임을 시작으로 오프라인 활동을 재개했다. 코로나가 유행한 석 달 동안 오프라인 모임이 중단되었다. 모임 활동 중단되기 전 마지막 모임은 28일 토요일에 있었던 글쓰기 모임(일명 레드라이터스’)이다. 마지막 독서 모임은 124일 설날이었고, 그 날 읽은 책은 박민정 작가의 아내들의 학교. 2월 말에 BL 진화론 독서 모임 일정이 있었는데, 하필 그 기간에 코로나가 대구를 점령하는 바람에 모임이 취소되었다.

 

독서 모임을 얼마 만에 다시 시작했는지 날씨를 세어봤다. 127일째 되는 날(4개월 7)에 모였다.

 

 

 

 

 

 

코로나에 빼앗긴 봄은 벌써 지나가고, 여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코로나의 기세가 좀처럼 꺾이질 않네요. 제발 올해 여름은 코로나 걱정 없이 편안하게 생활하고 싶어요. 5월 마지막 주 금요일 저녁에 독서 모임이 있었습니다. 우리 독서 모임에 두 분이 처음 오셨어요. 앞으로도 자주 뵈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어요. 레드스타킹 멤버들의 활동을 영상으로 기록한 진씨가 당분간 우리 곁을 떠납니다. 진○ 씨, 늘 건강하시고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 [레드스타킹 2020년 5, 6월 도서] 강화길 외 2020 11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문학동네, 2020)

* [레드스타킹 2020년 1월 도서] 박민정 아내들의 학교(문학동네, 2017)

    

 

 

2020 11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약칭 젊은 작가상’)은 박민정 작가의 아내들의 학교에 이어서 두 번째로 읽는 국내 소설입니다. 올해 젊은 작가상수상자는 강화길(대상), 최은영, 김봉곤, 이현석, 김초엽, 장류진, 장희원입니다. 일곱 편의 수상작에서 페미니즘과 성 소수자에 대한 작가들의 관심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국내 작가의 소설을 읽지 않는 편이에요. 그래도 최근 국내 문학의 흐름이 궁금해서 이 책을 읽었어요. 개인적으로 좋게 본 작품은 강화길 작가의 <음복>과 김초엽 작가의 <인지 공간>이에요.

 

<음복>은 독자들의 허를 찌르는 반전이 있는 소설이에요. <음복>은 가족의 일상적인 모습을 소재로 한 스릴러 소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에는 제사를 준비하는 어머니와 반대로 제사를 좋아하지 않는 고모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성이 나오는데요, 이 인물의 묘사가 진부하다는 의견이 있었어요. 소설 속 남성은 현실에도 있어요. 이런 사람은 명절에 제사상을 준비하는 일을 맡는 어머니와 아내의 고충을 몰라요.

 

<인지 공간>은 공동체가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에 묘사된 인지 공간은 공동체적 가치관과 공동 지식이 함축된 세상입니다. 소설의 화자는 인지 공간의 관리자가 되어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지만, 화자의 친구 이브진짜 세계를 보기 위해서 인지 공간을 떠나고 싶어 합니다. 인지 공간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브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들은 이브의 생각 자체가 위험하다고 단정합니다. 이 소설의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밖에 장류진 작가에 대해서 열띤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유명한 작가죠.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은 분들이 많았는데요, 작가의 여성 인물 묘사를 비판하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제가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지 않아서 장류진 작가의 소설에 대한 모임 참석자들의 의견들을 자세하게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젊은 작가상을 더 읽어보고, 다음 모임에 책에 관해서 이야기해보기로 했습니다. 모임 날짜가 확정되면 인스타그램에 공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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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6-02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자못 궁금하네요 :>

독서 모임, 그야말로 꿈같은 이야기네요.

달궁은 당분간 코로나가 더 진정될 때까지
무기한 연기에 들어갔답니다.

울 동지들과 신나게 털어야 하는데...
삶의 낙이 하나 없네요.

cyrus 2020-06-02 17:54   좋아요 1 | URL
장류진 작가에 대한 대화 내용이 꽤 길었어요. 대화에 참여한 분들이 장류진 작가의 소설을 깊이 있게 읽으신 분들이라서 전 대화에 끼지도 못했어요. 저는 그저 듣기만 하고 있었어요.. ㅎㅎㅎ

달궁 카페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생각날 때마다 숨어서 봅니다.. ㅎㅎㅎㅎ 코로나가 우리 삶의 소소한 즐거움마저 빼앗아버리네요... ㅠㅠ

stella.K 2020-06-02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복은 나도 읽었는데 너는 스릴러로 봤구나.
난 좀 아쉽던데. 뭐가 있을 것 같은데 밋밋했어.
그리고 모셔만두고 있다.
이 책이 어느 기간만 싸게 팔고 나중에 가격이 오르더라구.
쌀 때 사 두긴했는데 진도가 안 나가네.ㅠ
오랜만에 만나서 좋았겠구나.
나도 교회 성경 공부 맴버들 저번에 만났는데 어찌나 반갑던지.
전쟁 휴전중 만난 것 같더라구.ㅎㅎ

cyrus 2020-06-02 23:18   좋아요 0 | URL
<음복> 해설 제목이 ‘여성주의 가족 스릴러’라고 되어 있어요. 해설가가 <음복>을 ‘스릴러’로 평가했으니 그렇게 생각한 거예요. ^^

잘 지내고 계시죠? 코로나 때문에 유익한 모임도 눈치 봐가면서 해야 될 지경이네요.. ㅠㅠ

페넬로페 2020-06-02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대구에 산다면 꼭 cyrus님의 독서 모임에 참여하고 싶어요~~글쓰기모임도요^^

cyrus 2020-06-02 23:20   좋아요 1 | URL
제가 사람을 대할 때 조금이라도 제 마음에 안 들면 일부러 만나지 않으려고 해요. 그만큼 제가 사람 만나는 일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데 지금까지 독서모임에 꾸준히 참석하고 있어요. 독서모임에 자주 만나는 분들 모두 좋아요. ^^
 

 

 

 

* 2020년 2월 8일 세 번째 글쓰기 모임. 스몰토크에서 이 글을 쓰다

 

 

 

내 대학교 전공은 행정학이다. 대학교 2학년 2학기와 3학년 1학기에 타과 전공과목 수업을 들었다. 2학년 때 들은 과목은 서양미술사이고, 3학년 때 들은 과목은 현대미술론이다. 두 과목 모두 회화과에 입학한 학생이라면 반드시 수강 신청을 해야 한다. ‘서양미술사1학년 학생들의 전공필수과목이며 현대미술론3학년 학생들의 전공필수과목이다. 나는 독학으로 미술사를 공부한 적이 있어서 회화과 수업을 듣는 것에 부담감은 느끼지 않았다. 수업에 충실히 참여하면 학점을 잘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과목의 담당 교수는 김○○ 교수님이다. 그분은 웃음이 많았다. 시원시원하게 웃는 교수님의 모습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기분을 좋게 했다. 만약 다시 대학교에 입학한다면 김 교수님의 미술사 수업을 다시 듣고 싶다. 8년 전에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분의 수업이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서양미술사현대미술론수업 교재는 김 교수님이 직접 쓰고 편집한 것이다. 수업 도중에 교재에 나오지 않는 예술가들을 언급할 때가 있었다. 교수님은 구글의 검색 기능을 이용하면서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개했다. 그중에 가장 인상 깊은 예술가는 신디 셔먼(Cindy Sherman)이다.

 

셔먼은 현대미술을 이끄는 최고의 사진작가이다. 대부분 사람은 회화와 사진이 서로 연관이 없는 별개의 예술 분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대미술에서 회화와 사진의 경계가 무너진 지 오래되었다. 셔먼은 원래 회화과를 전공했다. 그러나 그녀의 관심사는 사진과 퍼포먼스 미술이었다. 그녀는 1970년대 중반 이후 30여 년간 사진을 발표했다. 이 작가의 모델은 늘 작가 자신이다. 그녀는 자신을 옛 명화 속 모델이나 영화배우 또는 주부처럼 정교하게 분장하고 치장해 촬영, 배우 겸 연출자처럼 여성을 재현한 500여 점의 사진을 발표해왔다. 셔먼은 여성의 신체에 주목한 사진작가이다. 특히 여성의 정체성을 욕망과 쾌락, 사랑과 고통, 소외와 고립 등의 다양한 측면에서 집중 조명해 왔다. 그녀는 사진 한 장으로 여성이 살아가면서 직면하는 억압적인 상황들을 함축해서 보여주었다.    

 

 

 

 

 

 

 

 

 

 

 

 

 

 

 

 

 

 

* 에른스트 곰브리치 서양미술사(예경, 2003)

 

 

 

김 교수님은 수업 시간에 여성 예술가들을 많이 소개해주었다. 그분의 수업을 들으니까 내가 미술사를 잘못 공부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지금까지 알려진 미술사는 남성 중심으로 서술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두꺼운 검은 베개처럼 생긴 그 유명한 <서양미술사>라는 책에 단 한 명의 여성 예술가가 언급되지 않았다. 언급된 여성 예술가는 열 여섯 명에 불과했다. 나는 김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여성주의 미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을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김 교수님은 내가 페미니즘에 눈을 뜨게 해준 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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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2-09 2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서양 미술사>에는 16명의 여성 예술가가 나온다고 일주일 전 네이버 기사에 있었습니다. 물론 인류 예술사 비해 책에 절대 많은 여성 예술가 아닙니다. ^^

cyrus 2020-02-09 20:4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맞는 정보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정하겠습니다. ^^

Angela 2020-02-09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때부터 페미니즘에 관심가지셨네요. 역사는 강자와 남성중심으로 쓰여졌으니까요.

cyrus 2020-02-11 07:32   좋아요 0 | URL
네. 저는 과거 중에 제일 좋았던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대학생 시절을 선택했을 거예요. 아, 물론 군에 입대하기 전의 대학교 1학년이 아니라 전역하고 나서 학교에 복학한 시기를 말합니다... ㅎㅎㅎㅎ

2020-02-25 1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3-01 19:03   좋아요 0 | URL
학생들에게 유익한 지식을 알려주고 싶어서 수업 자료를 열심히 준비하는 교수들이 있어요. 저는 그런 분이라면 졸업하고 나서도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
 

 

 

* 2020131일 두 번째 글쓰기 모임. 스몰토크에서 이 글을 쓰다

 

 

 

내가 지금까지 산 페미니즘 도서가 몇 권인지 잘 모르겠다. 사 모은 책들은 모두 내 방에 있다. 이제는 책을 꽂아둘 공간이 없다. 그래도 어머, 저건 사야 해!’라고 생각하는 책이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사들인다. 책을 너무 좋아해서 그런지 가끔 서점이나 책방에 가서 책을 사는 꿈을 꿀 때가 있다. 나는 예지몽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서점에 가는 꿈을 꾼 날에는 반드시 책을 산다. 왠지 서점이나 책방에 가면 사고 싶은 책이 있을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드니까. 실제로 예감이 들어맞은 경우가 많다. 오늘도 책을 사는 꿈을 꾸면서 아침에 일어났고, 저녁에 헌책방에 갔다. 그곳에서 네 권의 책을 샀는데 모두 다 만족스럽다.

 

나는 이동진처럼 수집한 책들을 분야별로 분류해서 보관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고 싶지만 많은 책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 책을 꽂을 수 있는 빈칸만 있으면 좋다. 빈칸이 보이는 대로 책을 꽂는다. 내 서재는 자유분방하면서도 무질서한 상태로 놓인 책들로 채워져 있다. 그래도 페미니즘 책은 항상 내 눈에 보이는 곳에 둔다. 특정 분야의 책을 보려는 특혜는 아니다. 페미니즘 독서 모임에 참석하면서 페미니즘을 더 많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페미니즘 책에 더 많이 눈길을 주게 되었다.

 

내 방에 동생이 가끔 들어온다. 동생은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다. 집에 동생의 빈 자리가 길어지게 되면서 동생의 방은 자연스럽게 사라졌고, 그곳은 어머니가 자주 드나드는 창고가 되었다. 그래서 동생이 대구의 집에 오는 날이면 내 방은 남매의 방이 되기도 한다. 동생은 내가 샀거나 도서관에 빌린 페미니즘 책을 보면 항상 오빠는 진짜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네라고 말한다. 그 말의 의도가 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페미니즘에 관심 많은 오빠가 대견스러워서 하는 말인지 아니면 페미니즘에 관심 많은 오빠가 평소와 다르게 이상하게 느껴져서 그런 말을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나는 그런 말을 듣는 게 부담스럽다. 다행히도 동생은 내가 어떤 이유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인지 꼬치꼬치 캐물은 적이 없다. 그런 상황이 오게 되면 난감하다. 진지하게 설명하기도 귀찮고, 아무리 열심히 말해도 내 독서의 목적을 이해해줄 리 만무하다. 나는 요즘 같은 시대에 페미니즘을 모르면 안 되잖니라는 식으로 말한다.

 

과연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상황이 생기면 어떤 반응을 보일 거고, 어떻게 대응할까? 가족이나 친구가 페미니즘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페미니스트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페미니스트도 서운하거나 외로운 감정을 느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약이 된다고 했던가. 주변 사람들의 참견을 한 쪽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 넘기는 페미니스트들도 있을 것이다. 나도 가족이나 친구가 나의 페미니즘 공부에 왈가왈부한다면 일단 듣는 척하고 무시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주변 사람이 내가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책을 읽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페미니즘 책을 나만 아는 비밀 공간에 따로 보관하려는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공간에 또 다른 책(솔직히 고백하자면 빨간 딱지가 붙어 있는 책들이다)이 있어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대구에 페미니즘 전문 책방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페미니즘 책방이 생긴다면 내가 사 모은 페미니즘 책들을 기부하고 싶다. 그러면 책장에 빈 곳이 생기고, 그 자리에 새로운 책들이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당연히 새로 들어온 책 중에 페미니즘 책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면 또 책장에 책을 꽂아둘 자리가 없어서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애서가라면 죽을 때까지 마주해야 할 악순환이다. 일단 고민을 잊고 책을 안으면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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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0-02-01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0 분동안 쓴 글!
훌륭하십니다^^

cyrus 2020-02-02 14:41   좋아요 1 | URL
별말씀을요. 저는 가벼운 에세이를 썼는데요. 사실 그날 글쓰기 모임에 참석한 멤버는 소설을 썼어요. 미완성 상태이지만, 결말을 궁금하게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

stella.K 2020-02-02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남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그게 뭐 문제가 될까 싶기도한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가부장이 지배하는 나라니
페미니즘을 읽는다는 이유만으로 따나 안 시키면 그것도 다행이겠다 싶다.
언젠가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을 읽는 것만으로도 어깨 피고 읽을 날이 꼭 오리라고 믿는다.^^

cyrus 2020-02-02 21:42   좋아요 0 | URL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남자들의 모임에 대한 신문기사를 봤는데요, 거기에 달린 댓글에 페미니즘 공부하는 남자들 욕하는 내용이 많아요. 그래서 저는 친구들에게 페미니즘 공부한다고 얘기하지 않아요... ^^;;
 

 

 

누구에게나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있다. 글을 쓸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없으면 창작에 대한 욕망을 유보한 채 살아가게 된다. 글 쓰는 행위는 자신이 살면서 느낀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들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일이다. 창작의 욕망에는 작품이 되는 자신의 글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 욕망만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존재를 드러내는 욕망도 한데 섞여 있다. 이러한 욕망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점을 과시하는 행위를 의미하지 않는다. 글쓰기란 타인의 시선들이 겹겹이 쌓여서 만들어진 라는 외피 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는 진짜 내 모습을 발견하고 드러내는 일이다. 대부분 사람은 글쓰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글 쓰는 일을 주저한다. 그러나 타인이 만든 외피를 입지 않은 진짜 내 모습을 공개하는 것이 부끄러워서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한때 필자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글을 쓰게 되면 상대방에게 겉으로 밝히지 못한 내밀한 감정 또는 치부를 드러낼 때가 있다. 상대방이 확실히 편한 존재이거나 신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면 나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기가 쉽지 않다. 글을 쓰려면 시간상으로 여유가 있어야 하고 글을 편안하게 쓸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그보다 제일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내 글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야 하며 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최적의 환경이라면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글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지난달 20일에 (대구 페미니즘 북 클럽) 레드스타킹 멤버들이 처음으로 글쓰기 모임을 진행했다. 이 역사적인 모임에 나는 참석하지 못했다. 그날 모임에 불참해야 하는 특별한 사정은 없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때까지 나는 진짜 내 모습을 드러내는 글쓰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고, 혼자 있을 때 글 쓰는 일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글을 쓰거나 완성된 글을 그 자리에 공개한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다.

 

첫 번째 글쓰기 모임에 참석한 분들은 글 쓰고 낭독하는 시간이 너무 재미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두 번째 글쓰기 모임에 오라고 부추겼다. 결국 어제 있었던 글쓰기 모임에 참석했다. 나는 모임 전날에 뭘 써야 할지 고민했고,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글이 잘 써질지 걱정했다. 모일 당일에도 글감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일단 해보자는 심정으로 글을 쓰게 되니까 그런 근심과 고민은 싹 사라졌다. 언제 그런 생각을 했냐는 듯 문장들이 줄줄이 나왔다. 글 쓰는 시간은 50분이 주어졌는데, 제시간 안에 글이 완성되었다. 어제 모임에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이 참석했는데, 각자가 쓴 글을 낭독했다. 이 글쓰기 모임의 목적은 정해진 시간에 글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모임이다. 우리 모임에는 글이 완성되지 못한 멤버에게 벌칙을 주지 않는다. 완성되지 못한 글도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글을 못 썼다고 해서 비판하지도 않는다. 레드스타킹 글쓰기 모임은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온다.

 

내가 어제 모임에 쓴 글의 제목은 남매의 방이다. 글 제목은 글쓰기 모임에 참석했던 분들이 정했다. 어제 쓴 글에는 예전에 썼던 글의 일부 내용이 들어가 있다. 블로그를 통해 내 글을 봤던 분들은 아는 내용일 것이다. 글에 나오는 오늘은 어제를 뜻한다. 글쓰기 모임 시작하기 전에 오랜만에 책방에 간 건 사실이다. 남매의 방전문은 오늘 밤에 공개하겠다.

    

 

 

 

 

 

 

 

역시 금요일 밤에 있는 모임은 정말 즐겁다. 모임이 끝나고 나면 뒤풀이가 있으니까. 다음 글쓰기 모임이 있는 날은 다음 주 토요일이다. 당연히 독서 모임도 진행하고 있으며 나는 그 모임에도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요즘 내가 글 쓰는 일이 뜸해지는 바람에 작년 연말부터 독서 모임 후기를 쓰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레드스타킹 모임 후기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글을 안 썼을 뿐이지 독서 모임에 매일 참석하고 있다.

    

 

 

 

 

 

 

 

 

 

 

 

 

 

 

 

 

 

* 헨릭 입센 인형의 집: 예술의 전당 에디션(민음사, 2018)

* 헨릭 입센 인형의 집(민음사, 2010)

* 헨릭 입센 인형의 집(열린책들, 2018)

    

 

 

사실 연말에 레드스타킹 멤버 한 분이 연극에 출연했고, 나는 처음으로 연극 공연을 보게 됐는데 그 특별한 하루를 글로 기록하지 못한 게 아쉽다. 그 연극의 제목을 언급하자면, 페미니즘 연극의 고전이 된 헨릭 입센(Henrik Ibsen)인형의 집이다. 레드스타킹 멤버(내가 이 블로그에서 그 분을 가장 많이 언급했다. 내 블로그에 자주 방문한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가 작품의 주인공 노라 역을 맡았다. 연극과 예술을 사랑하는 페미니스트라면 한 번쯤은 노라가 되어 연기해보고 싶을 것이다.

    

 

 

 

 

 

 

 

 

 

 

 

 

 

 

 

* 미조구치 아키코 BL 진화론(길찾기, 2018)

    

 

 

이번 달 독서 모임 일정은 둘째 주 금요일과 넷째 주 금요일인데, 둘째 주 금요일은 밸런타인데이. 2월 14일에 읽을 책은 BL 진화론(길찾기)이다. 이성애자들의 날이라고 여겨지는 밸런타인데이에 남자들끼리의 사랑을 에로틱하게 묘사한 장르에 대해 논하게 된다. BL을 즐겨 읽는 레드스타킹 멤버들이 이 책을 선택했다. 역시나 책표지를 확인하자마자 흥분하는 멤버들이 있었다. 나는 BL를 즐겨 읽지 않지만, 작년에 이 책을 읽었고 리뷰를 썼다. 그 리뷰는 이렇게 끝이 난다.

 

 

 페미니스트들은 BL 진화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이 책은 페미니스트들이 모여서 토론하기에 딱 좋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내년에 레드스타킹멤버들과 다 같이 읽어보고 싶은 책으로 추천해볼까 생각 중이다.”

 

 

내가 이 책을 추천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내 소원이 이번 달에 이루어진다. 벌써 이 책에 대한 멤버들의 반응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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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0-02-01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cyrus님, 멋져용!!

cyrus 2020-02-01 22:15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 툐툐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얄라알라 2020-02-02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서 먼저쓰신 글의 댓글에 ˝50˝분이 들어가는군요. 역순으로 읽다보니^^

cyrus 2020-02-02 14:42   좋아요 1 | URL
원래 ‘남매의 방‘ 전문을 이 글에 포함할려고 했는데, 글 내용이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분리했습니다. ^^;;
 

 

 

 

 

 

 

 

오늘같이 날씨가 좋은 날(대구는 어제부터 오늘 오전까지 비가 내렸는데 생각보다 날씨가 쌀쌀하지 않다)에는 책방 서재를 탐하다에 간다. , 수요일 저녁에 문을 여는데 아쉽게도 이번 주가 책방의 마지막 야간 영업이 있는 주일이다. 밤에 책방을 찾는 손님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야간 책방을 찾은 유일한 손님이다. 주로 밤에 오는 책방 단골손님은 우주지감 회원들인데, 내가 가장 많이 책방에 왔다. 책방에 파는 음료는 한 번씩 다 마셔봤다. 평소에 잘 마시지 않던 커피를 최근 들어 많이 마셨다. 오늘 주문한 음료는 시나몬이 들어간 유럽 카푸치노.

 

수요일에 책방을 찾는 우주지감 회원 두 분이 있다. 그리고 밤에 책방을 지키는 우주지감 회원의 남편도 책방에 온다. 수요일은 이 세 분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날이다. 총 네 명이 한주씩 번갈아 가면서 밥을 샀는데, 지금까지 먹은 음식으로는 짬뽕, 찜닭, 물회, 돈가스 등이 있다. 미식까지는 아니지만, ‘수요 음식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를 포함한 네 사람은 저녁 식사를 같이하기 위해 책방에 모인다. 식사를 마치면 다시 책방으로 돌아와 차나 커피를 마시면서 책방의 문이 닫을 때까지 담소를 나눈다. 별일 아니지만, 이 시간이 정말 행복하다. 그런데 내일이 수요 음식회마지막 날이다. 과연 내일 최후의 만찬이 될 음식은 뭘까? 내일은 내가 밥을 사는 건 아니니까 조금 비싼 음식을 선택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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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0-01-28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 그럴듯한 소설이 나올 수 있는 이야기 같아요 ㅎㅎ 책보고 밥먹고 ㅎㅎ 정말 좋네요

cyrus 2020-02-01 17:43   좋아요 0 | URL
제가 소설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없어요. 책방에서 리뷰를 쓰고 싶은데, 결국 그 소원은 이루어지지 못했네요.. ^^;;

카스피 2020-01-29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책을 읽으면서 함꼐 식사도 하는 분들이라니 넘 부럽습니당^^ 그나저나 큰 서점이 아닌 동네서점에서 야간에 책손님이 드는것은 요즘은 거의 없지 않나 싶어요ㅜ.ㅜ

cyrus 2020-02-01 17:43   좋아요 0 | URL
네, 없죠. 밤에 커피 사러 책방을 찾는 손님도 많지 않아요... ㅠㅠ

Angela 2020-01-31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과 식사 그리고 사람들. 글에 기쁨이 보이네요. 그런 분위기 좋아요~

cyrus 2020-02-01 17:44   좋아요 0 | URL
요즘 제가 책 좋아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다보니 글 쓰는 일이 뜸해졌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