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131일 두 번째 글쓰기 모임. 스몰토크에서 이 글을 쓰다

 

 

 

내가 지금까지 산 페미니즘 도서가 몇 권인지 잘 모르겠다. 사 모은 책들은 모두 내 방에 있다. 이제는 책을 꽂아둘 공간이 없다. 그래도 어머, 저건 사야 해!’라고 생각하는 책이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사들인다. 책을 너무 좋아해서 그런지 가끔 서점이나 책방에 가서 책을 사는 꿈을 꿀 때가 있다. 나는 예지몽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서점에 가는 꿈을 꾼 날에는 반드시 책을 산다. 왠지 서점이나 책방에 가면 사고 싶은 책이 있을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드니까. 실제로 예감이 들어맞은 경우가 많다. 오늘도 책을 사는 꿈을 꾸면서 아침에 일어났고, 저녁에 헌책방에 갔다. 그곳에서 네 권의 책을 샀는데 모두 다 만족스럽다.

 

나는 이동진처럼 수집한 책들을 분야별로 분류해서 보관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고 싶지만 많은 책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 책을 꽂을 수 있는 빈칸만 있으면 좋다. 빈칸이 보이는 대로 책을 꽂는다. 내 서재는 자유분방하면서도 무질서한 상태로 놓인 책들로 채워져 있다. 그래도 페미니즘 책은 항상 내 눈에 보이는 곳에 둔다. 특정 분야의 책을 보려는 특혜는 아니다. 페미니즘 독서 모임에 참석하면서 페미니즘을 더 많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페미니즘 책에 더 많이 눈길을 주게 되었다.

 

내 방에 동생이 가끔 들어온다. 동생은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다. 집에 동생의 빈 자리가 길어지게 되면서 동생의 방은 자연스럽게 사라졌고, 그곳은 어머니가 자주 드나드는 창고가 되었다. 그래서 동생이 대구의 집에 오는 날이면 내 방은 남매의 방이 되기도 한다. 동생은 내가 샀거나 도서관에 빌린 페미니즘 책을 보면 항상 오빠는 진짜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네라고 말한다. 그 말의 의도가 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페미니즘에 관심 많은 오빠가 대견스러워서 하는 말인지 아니면 페미니즘에 관심 많은 오빠가 평소와 다르게 이상하게 느껴져서 그런 말을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나는 그런 말을 듣는 게 부담스럽다. 다행히도 동생은 내가 어떤 이유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인지 꼬치꼬치 캐물은 적이 없다. 그런 상황이 오게 되면 난감하다. 진지하게 설명하기도 귀찮고, 아무리 열심히 말해도 내 독서의 목적을 이해해줄 리 만무하다. 나는 요즘 같은 시대에 페미니즘을 모르면 안 되잖니라는 식으로 말한다.

 

과연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상황이 생기면 어떤 반응을 보일 거고, 어떻게 대응할까? 가족이나 친구가 페미니즘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페미니스트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페미니스트도 서운하거나 외로운 감정을 느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약이 된다고 했던가. 주변 사람들의 참견을 한 쪽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 넘기는 페미니스트들도 있을 것이다. 나도 가족이나 친구가 나의 페미니즘 공부에 왈가왈부한다면 일단 듣는 척하고 무시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주변 사람이 내가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책을 읽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페미니즘 책을 나만 아는 비밀 공간에 따로 보관하려는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공간에 또 다른 책(솔직히 고백하자면 빨간 딱지가 붙어 있는 책들이다)이 있어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대구에 페미니즘 전문 책방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페미니즘 책방이 생긴다면 내가 사 모은 페미니즘 책들을 기부하고 싶다. 그러면 책장에 빈 곳이 생기고, 그 자리에 새로운 책들이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당연히 새로 들어온 책 중에 페미니즘 책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면 또 책장에 책을 꽂아둘 자리가 없어서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애서가라면 죽을 때까지 마주해야 할 악순환이다. 일단 고민을 잊고 책을 안으면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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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0-02-01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0 분동안 쓴 글!
훌륭하십니다^^

cyrus 2020-02-02 14:41   좋아요 1 | URL
별말씀을요. 저는 가벼운 에세이를 썼는데요. 사실 그날 글쓰기 모임에 참석한 멤버는 소설을 썼어요. 미완성 상태이지만, 결말을 궁금하게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

stella.K 2020-02-02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남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그게 뭐 문제가 될까 싶기도한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가부장이 지배하는 나라니
페미니즘을 읽는다는 이유만으로 따나 안 시키면 그것도 다행이겠다 싶다.
언젠가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을 읽는 것만으로도 어깨 피고 읽을 날이 꼭 오리라고 믿는다.^^

cyrus 2020-02-02 21:42   좋아요 0 | URL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남자들의 모임에 대한 신문기사를 봤는데요, 거기에 달린 댓글에 페미니즘 공부하는 남자들 욕하는 내용이 많아요. 그래서 저는 친구들에게 페미니즘 공부한다고 얘기하지 않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