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있다. 글을 쓸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없으면 창작에 대한 욕망을 유보한 채 살아가게 된다. 글 쓰는 행위는 자신이 살면서 느낀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들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일이다. 창작의 욕망에는 작품이 되는 자신의 글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 욕망만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존재를 드러내는 욕망도 한데 섞여 있다. 이러한 욕망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점을 과시하는 행위를 의미하지 않는다. 글쓰기란 타인의 시선들이 겹겹이 쌓여서 만들어진 라는 외피 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는 진짜 내 모습을 발견하고 드러내는 일이다. 대부분 사람은 글쓰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글 쓰는 일을 주저한다. 그러나 타인이 만든 외피를 입지 않은 진짜 내 모습을 공개하는 것이 부끄러워서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한때 필자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글을 쓰게 되면 상대방에게 겉으로 밝히지 못한 내밀한 감정 또는 치부를 드러낼 때가 있다. 상대방이 확실히 편한 존재이거나 신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면 나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기가 쉽지 않다. 글을 쓰려면 시간상으로 여유가 있어야 하고 글을 편안하게 쓸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그보다 제일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내 글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야 하며 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최적의 환경이라면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글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지난달 20일에 (대구 페미니즘 북 클럽) 레드스타킹 멤버들이 처음으로 글쓰기 모임을 진행했다. 이 역사적인 모임에 나는 참석하지 못했다. 그날 모임에 불참해야 하는 특별한 사정은 없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때까지 나는 진짜 내 모습을 드러내는 글쓰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고, 혼자 있을 때 글 쓰는 일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글을 쓰거나 완성된 글을 그 자리에 공개한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다.

 

첫 번째 글쓰기 모임에 참석한 분들은 글 쓰고 낭독하는 시간이 너무 재미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두 번째 글쓰기 모임에 오라고 부추겼다. 결국 어제 있었던 글쓰기 모임에 참석했다. 나는 모임 전날에 뭘 써야 할지 고민했고,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글이 잘 써질지 걱정했다. 모일 당일에도 글감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일단 해보자는 심정으로 글을 쓰게 되니까 그런 근심과 고민은 싹 사라졌다. 언제 그런 생각을 했냐는 듯 문장들이 줄줄이 나왔다. 글 쓰는 시간은 50분이 주어졌는데, 제시간 안에 글이 완성되었다. 어제 모임에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이 참석했는데, 각자가 쓴 글을 낭독했다. 이 글쓰기 모임의 목적은 정해진 시간에 글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모임이다. 우리 모임에는 글이 완성되지 못한 멤버에게 벌칙을 주지 않는다. 완성되지 못한 글도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글을 못 썼다고 해서 비판하지도 않는다. 레드스타킹 글쓰기 모임은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온다.

 

내가 어제 모임에 쓴 글의 제목은 남매의 방이다. 글 제목은 글쓰기 모임에 참석했던 분들이 정했다. 어제 쓴 글에는 예전에 썼던 글의 일부 내용이 들어가 있다. 블로그를 통해 내 글을 봤던 분들은 아는 내용일 것이다. 글에 나오는 오늘은 어제를 뜻한다. 글쓰기 모임 시작하기 전에 오랜만에 책방에 간 건 사실이다. 남매의 방전문은 오늘 밤에 공개하겠다.

    

 

 

 

 

 

 

 

역시 금요일 밤에 있는 모임은 정말 즐겁다. 모임이 끝나고 나면 뒤풀이가 있으니까. 다음 글쓰기 모임이 있는 날은 다음 주 토요일이다. 당연히 독서 모임도 진행하고 있으며 나는 그 모임에도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요즘 내가 글 쓰는 일이 뜸해지는 바람에 작년 연말부터 독서 모임 후기를 쓰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레드스타킹 모임 후기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글을 안 썼을 뿐이지 독서 모임에 매일 참석하고 있다.

    

 

 

 

 

 

 

 

 

 

 

 

 

 

 

 

 

 

* 헨릭 입센 인형의 집: 예술의 전당 에디션(민음사, 2018)

* 헨릭 입센 인형의 집(민음사, 2010)

* 헨릭 입센 인형의 집(열린책들, 2018)

    

 

 

사실 연말에 레드스타킹 멤버 한 분이 연극에 출연했고, 나는 처음으로 연극 공연을 보게 됐는데 그 특별한 하루를 글로 기록하지 못한 게 아쉽다. 그 연극의 제목을 언급하자면, 페미니즘 연극의 고전이 된 헨릭 입센(Henrik Ibsen)인형의 집이다. 레드스타킹 멤버(내가 이 블로그에서 그 분을 가장 많이 언급했다. 내 블로그에 자주 방문한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가 작품의 주인공 노라 역을 맡았다. 연극과 예술을 사랑하는 페미니스트라면 한 번쯤은 노라가 되어 연기해보고 싶을 것이다.

    

 

 

 

 

 

 

 

 

 

 

 

 

 

 

 

* 미조구치 아키코 BL 진화론(길찾기, 2018)

    

 

 

이번 달 독서 모임 일정은 둘째 주 금요일과 넷째 주 금요일인데, 둘째 주 금요일은 밸런타인데이. 2월 14일에 읽을 책은 BL 진화론(길찾기)이다. 이성애자들의 날이라고 여겨지는 밸런타인데이에 남자들끼리의 사랑을 에로틱하게 묘사한 장르에 대해 논하게 된다. BL을 즐겨 읽는 레드스타킹 멤버들이 이 책을 선택했다. 역시나 책표지를 확인하자마자 흥분하는 멤버들이 있었다. 나는 BL를 즐겨 읽지 않지만, 작년에 이 책을 읽었고 리뷰를 썼다. 그 리뷰는 이렇게 끝이 난다.

 

 

 페미니스트들은 BL 진화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이 책은 페미니스트들이 모여서 토론하기에 딱 좋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내년에 레드스타킹멤버들과 다 같이 읽어보고 싶은 책으로 추천해볼까 생각 중이다.”

 

 

내가 이 책을 추천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내 소원이 이번 달에 이루어진다. 벌써 이 책에 대한 멤버들의 반응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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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0-02-01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cyrus님, 멋져용!!

cyrus 2020-02-01 22:15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 툐툐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얄라알라 2020-02-02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서 먼저쓰신 글의 댓글에 ˝50˝분이 들어가는군요. 역순으로 읽다보니^^

cyrus 2020-02-02 14:42   좋아요 1 | URL
원래 ‘남매의 방‘ 전문을 이 글에 포함할려고 했는데, 글 내용이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분리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