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적 낙관주의자 - 번영은 어떻게 진화하는가?
매트 리들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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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에 종말은 없다

어느 일간지의 북섹션에서 매트 리들리의 신작도서에 대한 소개를 접하게 되면서 저자가 말하고 있는 주장의 내용들이 흥미로웠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류의 미래가 낙관적이다는 전망이 담긴 책이었다.  그리고 책이 왠지 도발적으로 느껴졌다. 자연적인 삶을 예찬했던 헨리 데이빗 소로우와 화학 약품 사용의 위험성을 경고한 레이첼 카슨을 비판하기도 하며 지금 지구촌의 거대 화두인 지구 온난화 문제와 녹색 성장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듣보잡이라는 '듣도 보지 못한 잡놈' 이라는 뜻의 인터넷 은어가 있다. 아마도 이 책의 저자가 듣보잡 전문가라면 독자들은 이 책의 내용과 제목을 쉽게 외면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이 도발적인 책의 저자는 <게놈><붉은 여왕> 등 과학 베스트셀러를 쓴 대중적인 과학 저술가로 유명한 매트 리들리이다. 작가의 인지도 덕분인지 '이성적 낙관주의자' 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벌써부터(책을 읽지도 않았는데!) 저자의 주장이 수긍이 가는 느낌도 날 법하다. 

  

 

  신문기사에서 이미 읽어버린 책 

그런데 북섹션을 먼저 본 게 독서의 흠이었다. 간혹 북섹션을 담당하는 기자들은 자신이 소개하려는 책이 좀 더 잘 팔리기 위해서 책 내용을 과장하게 쓴다거나 혹은 노골적으로 책의 주요 내용을 대놓고 소개하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아마도 내가 접한 <이성적 낙관주의자> 북섹션 기사는 후자에 속한다.    

(참고문헌과 찾아보기 내용을 제외한) 총 540페이지의 두꺼운 책을 50여줄로 된 신문기사에서 이미 읽어버린 셈이다. 그리고 이 두꺼운 책을 굳이 다 읽을 필요도 없었다. 이 책의 해제를 담당한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의 글에서도 이 책의 주제를 접할 수도 있고, 고맙게도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변역가 조현욱 씨의 글에서도 다시 한 번 저자의 주장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과감하게 완독하지 않았다. 북섹션 기사와 이인식 소장의 서문, 그리고 옮긴이의 글만으로도 이 책의 중요 논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자의 논지를 간략히 소개하자면 인류가 지금까지의 번영의 시대로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집단지능' 덕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집단지능에 대한 언급은 책의 프롤로그뿐만 아니라, 이인식 소장의 해제문에서도 볼 수있다)   인류의 지능이 집단 내에서 서로 교환하여 새로운 문화가 탄생되었고, 오랜 세월을 거쳐 축적되었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남녀가 서로 만나 섹스를 하여 새로운 후손들이 번성하듯이 인류의 아이디어 역시 결합하여 인류의 두뇌가 점점 더 진화됨고 동시에 보다 수준 높은 문화들이 탄생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인류 번영의 힘에는 과학이 있어야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의 책을 읽었던 근본적인 목적은 매트 리들리의 낙관주의적 미래상에 대한 근거를 알고 싶었다.  도대체 무슨 근거를 가지고 인류와 지구의 운명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일까?  

   

 

  방대한 분량의 자료에 비해 빈약한 통계자료

이 책의 저자가 과학, 사회, 인류학, 역사 등 다양한 학문을 넘나드는 통계자료와 참고문헌들을 통해서 자신의 주장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지만, 이인식 소장은 매트 리들리의 주장에도 약간의 허점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의 서평에서도 저자가 제시한 통계자료가 애매하며 이를 이용하여 자의적으로 해석한 대목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하긴,  540페이지나 되는 방대한 분량의 책에 몇 줄 밖에 안 되는 주장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독자들이 저자의 주장에 수긍할 수 있을 정도의 도표와 그래프가 많이 없어서 저자의 근거를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표와 그래프 역시 조작 가능성 우려와 오류적 해석이 있을 수도 있지만, 복잡한 수치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책은 11장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챕터의 시작에만 그래프만 등장할 뿐, 글 내용에는 단 한 번의 사진자료나 그래프, 도표가 등장하지 않는다. 이 책에 수록된 그래프는 총 11개뿐인 것이다. 이 그래프만 가지고 저자의 주장을 수긍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었으며 문자로 설명하고 있는 통계자료와 수치들은 통계학 지식이 전무한 독자들에게는 읽기 어려울 수 있다.  

  

 

  대충 얼버무리고 있는듯한 내용들 #1 - 핵 감축이 되어가는 세계

사실, 세계 정세에 대해 깊이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지 못해서 저자의 주장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은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덤비는 격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러나 매트 리들리는 자신의 낙과주의적 전망을 강조하기 위해서 현재의 정세의 어두운 점을 심도 있게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느껴지기도 했다.  

9장 '전환점 소동 - 1900년 이후의 비관주의' 라는 챕터에 포함되어 있는 '핵 아마겟돈' 이라는 작은 꼭지의 글의 결말은 너무 낙관적으로 마무리짓고 있다.  

 핵 감축은 단지 운이 좋았던 덕분일지 모른다. 아직도 위험이 아주 사라진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특히 한국과 파키스탄 국민들에게 그렇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좋아졌지 나빠지지 않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 매트 리들리 <이성적 낙관주의자> p 446~447 -

 

요즘 북한의 도발로 인한 한반도 정세의 긴장감 조성 탓인지 모르겠지만, 주장의 말이 그리 수긍이 가지 않았다. 세계의 평화적인 안정 도모하기 위해서 지난 5월에 UN에서 '2010년 NPT 평가회의' 가 개막되었다. 그리고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 간에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 을 체결하였다. 이번 회의에 참석한 국가 정상들은 한목소리로 '핵 없는 세계' 를 만들자고 촉구했지만,  미국과 러시아가 체결한 협정이 제대로 이행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그리고 이번 회의에서 미국은 감축보다는 비확산 쪽으로 감안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불리한 입장에 처하면 '국제 사회의 규칙' 이라는 명분 아래에 미사일 감축협정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이번에 맺은 러시아 간의 새로운 무기감축협정 역시 얼마나 신뢰성이 오래 갈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  

  

 

   대충 얼버무리고 있는듯한 내용들 #2 -  

  가상의 시나리오에 불과한 아프리카의 웃음  

10장 '오늘날의 양대 비관주의 - 2010년 이후의 아프리카와 기후' 에서는 아프리카 국가의 빈곤율과 저성장 문제의 오류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 대륙의 경제적 성장을 위한 그의 대안은 가상의 시나리오에 불과하다. 

 

상향식 변화의 깔끔한 사례로는, 아프리카 전역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뜻밖에도 휴대전화에 신나게 몰입한 것을 들 수 있다. (중략) 휴대전화는 일자를 찾는 일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서비스에 대해 돈을 지불하고 받는 것도 가능하게 해준다. 휴대전화 결제 제도가 사실상 비공식적인 은행이자 지불 시스템이 됐기 때문이다. 가나의 티셔츠 제조업자들은 휴대전화 결제를 이용해 미국 바이어로부터 직접 돈을 받을 수 있다. (중략) 이 같은 진보는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  p 484 ~ 485 -

  

선진국의 수준 높은 산업기술을 아프리카 대륙과 같은 개발도상국에게 전수하는 것도 좋지만, 선진국이 쉽게 참여에 호응해줄지 의문이다. 그리고 개발도상국 사이에서 드러나고 있는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의 독점 및 횡포, 그리고 보다 많은 자본 창출을 위한 다국적 기업과 선진국 간의 은밀한 커넥션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의 힘에 밀려 자본의 이익과 혜택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기회마저 보장되지 못한 상황이다. 선진국들의 막강한 권력 사이에 끼인 채 빈곤과 질병의 고통을 겪으면서 흘리고 있는 아프리카의 눈물이 2100년에는 과연 웃을 수 있을지 낙관적으로 예상하기에는 아직 이르게만 느껴진다.  

     

 

  2100년 후, 이 책의 평가는?

인류의 수준 높은 번영이 있기에 저자의 낙관주의적 전망은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소개하고 있는 미래에 대한 저자의 긍정적인 예견들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2100년에 태어난 후손들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신들의 미래를 정확히 예견한, 앨빈 토플러 버금가는 불멸의 미래학의 고전이 될 것인지 아니면 너무 낙관적으로 가득찬 허무맹랑한, 별 볼 일 없는 두꺼운 책이 될지는 그 미래의 후손들이 100년 전의 석학의 주장에 대해서 평가를 내릴 것이다.  

나는 이번 저자의 주장이 미래의 긍정적인 전망을 그리고 있는 최적의 가상 시나리오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리고 이 최적의 시나리오를 통해서 역으로 인류의 밝은 미래를 위한 청사진을 모색하는데 유용한 자료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매트 리들리가 소개하고 있는 이 수많은 참고문헌과 자료들 중에서는 믿을만한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대한 데이터들을 종합하여 가상적인 미래를 구상하는 것보다는 앞으로의 낙관적인 인류의 미래를 구현하기 위해서 모든 국가들에게는 자신들의 국가적 이익을 지키는데 급급하기보다는 개방적이면서도 자발적인 참여 자세가 필요할 때이다.

  

 

* 기사 출처 

[멀고도 먼 '핵 없는 세계']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6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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