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아이 펭귄클래식 21
오스카 와일드 지음, 김전유경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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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에서 참다운 행복은 남에게서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남에게 주는 것이다.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든 정싱적인 것이든,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행동이기 때문이다.
 
 - 아나톨 프랑스 -  

  

  

  동화 같은 9개의 단편들  

 

 

<행복한 왕자>라는 제목을 듣게 되면, 누구든지 ' 아! 그 동화. ' 라고 떠오르게 된다. 어떤 이는 어렸을 때 눈물을 훔치면서 읽었던 동화이며 또 어떤 이는 유치원 시절에 어여쁜 선생님이 구연하는 이야기로 들었을 것이다.  

굳이 소개 안 해도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많은 이들은 이 이야기를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라고 생각한다. 내용은 읽어보면 동화 같은 구성을 띄고 있다. 그러나 <행복한 왕자>는 단편소설로 분류된다. 아일랜드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이 이야기를 포함한 짤막한 단편소설들을 모아 출간하면서 이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 (1854~1900)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행복한 왕자>가 발표된 당시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오스카 와일드가 생전에 화려하고 대중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문학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생전의 화려한 인기들은 그의 머릿속에 나온 작품들 때문이 아니었다. 기성 사회의 흐름을 무시한 채 온 몸을 장식하고 있는 와일드 특유 패션 감각과 잘 생긴 외모 그리고 재치있는 언변 때문에 '오스카 와일드' 라는 이름을 상류층의 사회에 알릴 수 있었다. 작가로서의 명성은 상류층에서의 명성과 비교하면 길지가 않다. <행복한 왕자>가 수록된 단편집이 출간되었을 때는 책이 그다지 많이 팔리지 않았으며 지금도 오스카 와일드의 대표작이라고 일컫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는 출판사로부터 한 번 출판 거절당한 이력이 있었으며 출간 당시만해도 그렇게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행복한 왕자> 외 총 8편을 읽게 되면 그 당시 출판사들이 오스카가 쓴 원고를 손사레쳤는지 알 수 있다. 소설 구성과 내용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없다. 대중들이 좋아하지 않을법한 느낌이 든다. 다시 말하자면, 독자들의 시선을 끌 수 없는 흡인력이 부족하다. 동화 같은 와일드의 단편소설들은 어린이들에게는 좋아하겠지만 어른들에게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로만 볼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향한 오스카 와일드의 냉소적인 시선    

이 작품의 서문을 쓴 이안 스몰은 그와 관련된 편지와 글들을 통해서 실제로 오스카 와일드는 자신의 유일한 핏줄인 두 자녀를 사랑스럽게 여겼던 자상한 아버지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소설들은 단순히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로만 볼 수 없다. 이 짧은 단편소설들에서는 자본주의의 발달로 인해 물질만능주의가 팽배되어 가고 있던 유럽 사회에 대한 그의 시선을 읽을 수 있다. 

<행복한 왕자>에서 왕자는 도덕주의자이다.  자신의 발 밑에 위치하는 세상을 내려다보면서 몇 몇 사람들이 가난과 추위에 고통받고 있는 사실에 슬픔에 빠진다. 그래서 자신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금, 자신의 두 눈을 이루고 있는 푸른 사파이어 그리고 자신이 쥐고 있는 칼자루에 박힌 붉은 루비를 절친한 존재인 제비를 통해서 보내게 한다. 온 몸에 박힌 황금을 거의 다 때어낸 왕자는 예전과 같은 화려한 황금색이 감돌지 않았고 그냥 허름한 돌덩어리로 전락하고 만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왕자의 동상이 초라해졌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동료들 따라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지 못하면서까지 왕자의 덕행이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준 제비 역시 너무 쓸쓸하게 최후를 맞게 된다. 하느님의 구원으로 왕자와 제비는 따뜻한 천국으로 인도되면서 이야기는 헤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왕자와 제비의 참된 덕행의 실천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외면하는 도시 사람들의 모습은 작품을 다 읽었어도 뒷맛이 개운치 않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쓸모 없어진 왕자의 동상을 용광로에 녹여 다시 새로운 동상을 만들기로 결정하는데 끝내 녹여지지 않은 납으로 이루어진 왕자의 심장은 쓰레기터에 버려지고 만다. 이를 통해 본질적인 내면보다는 겉으로만 보이는 화려한 이면을 중시하는 인간의 심성을 확인할 수 있다. 

<별에서 온 아이>에서도 <행복한 왕자>에서 말하고자 하는 교훈과 유사하며 이에 대한 와일드의 생각이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야기가 시작하는 부분에서는 나무꾼들의 대화를 통해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의 양극화와 불평등을 냉소적으로 비꼬고 있다.  

  " 왜 우리가 기뻐하는 거지? 인생은 부자를 위한 것이지 우리 같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데 말이야. 숲에서 얼어 죽거나 짐승에게 잡아먹히는 게 더 나을지도 몰라. " 
   다른 하나가 대답했다. 
   " 맞아. 대부분이 몇몇 사람에게 돌아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아주 적은 양을 나누어 가지지. 세상은 불공평해. 슬픔을 제외하고는 평등하게 나눠지는 게 아무것도 없어. "

            - [별에서 온 아이] 오스카 와일드, 김전유경 역, 펭귄클래식코리아, p 206 -   

이런 냉소적인 마음은 우연히 숲에서 별에서 온 아이를 발견되는 장면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훗날 별에서 온 아이를 키우게 된 착한 마음씨를 가진 나무꾼은 이 아이를 가엾게 여기면서 자신의 집으로 데러오려고 하지만 동행한 나머지 나무꾼들은 자신들의 가난한 처지를 이유로 대면서 이 아이를 키울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아이를 감싸고 있는 망토를 달라고 우기기도 한다. 부에 집착하면서도 자신의 영리를 위해서는 연약한 갓난아기마저 외면하는, 인간성이 상실된 자본주의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병리적인 사회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도덕한 행동을 하게 된다. 착한 나무꾼의 손에서 기른 별에서 온 아이는 남을 이해하지 않고 무조건 괴롭히는 불량 소년으로 자라고 만다. 비행에 대한 죄값으로 별에서 온 아이는 두꺼비 얼굴에다가 뱀의 몸을 가진, 기괴한 괴물로 변하게 된다. 못된 심성으로 가득찬 자신의 모습을 알아차리고 나서야 자신이 지금까지 저지른 과오들을 반성하게 된다. 그 후로 별에서 온 아이는 과오들을 스스로 반성하기 위해서 착한 일들을 하기 시작하며 결말에 이르러서는 아이는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으며 그토록 찾고 싶어했던 진짜 부모님을 만나게 된다. 옛날부터 전해내려오는 예언대로 별에서 온 아이는 선정을 베푸는 왕이 된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읽게 되면 독자들에게 교훈을 주는 동시에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소설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오스카 와일드는 무슨 의도에서인지 이 이야기에서는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마무리짓는다.  

하지만 아이는 그리 오랫동안 그 도시를 다스리지는 못했다. 고생을 너무 심하게 한 데다 너무 힘든 시험을 거쳤기 때문이었다. 삼 년이 지난 아이는 죽었다. 그리고 아이의 뒤를 이어 다시 사악한 왕이 도시를 다스렸다.

                                                   - [별에서 온 아이] p 227 -  

올바른 미덕보다는 부에 대한 끝이 없는 원초적 탐욕 그리고 따뜻한 휴머니즘은 사라지고 이기심이 많아져버린 세상을 표현하고 있다.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마음씨 착한 왕자들이 여러 명 있다고 해도 이 세상이 성서 속 낙원처럼 될 수가 없다. 오스카 와일드는 단편소설들을 통해서 자본주의의 폐해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인격적 완성으로 구축된 인간성과 박애주의를 강조하고 있지만 도덕주의로만으로는 사회의 병리적인 문제점들을 고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입장 역시 피력하고 있다.  


 

  작품의 구성대로 살아간 오스카 와일드의 삶  

이 두 작품 말고도 나머지 작품들 속에서도 선과 악으로 대비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런 설정을 통해서 오스카 와일드는 도덕적 가치 확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 설정된 선과 악의 대비는 이율배반적인 구도를 이루면서도 동등한 타당성과 현실성이 느껴진다. 어쩌면 이런 소설 속 설정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소설을 쓴 오스카 와일드의 삶 역시 이율배반적이었다. 이미 사회의 부조리한 이면을 꿰뚫은 오스카 와일드 역시 하나의 인간에게 미치는 사회의 거대한 기류를 거부할 수 없었는가 보다. 우리에게 오스카 와일드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자상한 아버지라는 모습보다는 생계와 인기를 위해서 사교계에 발을 내딛었던 독특한 이력과 동성애자라는 면이 더 많이 부각되기 마련이다. 더욱이 정신보다는 미적 가치와 감각을 중시하는 유미주의의 주창자라는 이미지가 더해져져서 오스카 와일드라고 하면 비도덕주의적인 인상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의 늘그막 인생을 알게 되면 오스카 와일드라는 작가가 딱하게 여겨질 것이다. 동성애 혐의로 인한 감옥 생활을 하고난 뒤 그는 가난하고 불우한 삶을 살기 시작하였다. 특히 그가 사랑하던 자식들을 이제 다시 볼 수가 없게 되었다. 결국, 병으로 쓸쓸하게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의 인생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해준 소설 속 주인공 행복한 왕자를 연상케 해준다.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사랑과 온정을 베풀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말로는 비참하였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서 화려하고 밝은 면은 어두운 면에 가려지고 말았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스스로 파괴했지만 결국에는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한 채 버려져야만 했던 불쌍한 왕자처럼 말이다.

 

 * 사진 출처  http://blog.naver.com/ruthkim0212?Redirect=Log&logNo=70017687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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