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목요일에 주문한 《100단어로 읽는 중세 이야기》를 토요일 오후에 읽기 시작했고, 바로 다음 날에 완독했다. 후딱 읽은 책이지만, 나의 귀중한 주말을 앗아간 문제의 책이다.
* 김동섭 《100단어로 읽는 중세 이야기: 어원에 담긴 매혹적인 역사를 읽다》 (책과함께, 2022)
이 문제의 책을 비판하기 위한 자료를 찾느라 주말에 도서관 서너 군데를 이리러지 돌아다녔다. 도서관을 들락날락하면서 피와 눈물은 흘리지 않았지만, 땀은 많이 흘렸다. 비판적인 견해를 포함한 서평을 쓰면 글의 분량이 많아진다. 이러면 배보다 배꼽이 큰 서평이 되고 만다. 그래서 일단 ‘배꼽’을 먼저 써보기로 한다.
* 32쪽
헨리 8세는 무려 여섯 왕비를 맞이했다. 그중 둘은 참수를 당했고, 한 명은 화병으로 죽고,[주1] 한 명은 해산 중에 죽었으며, 또 한 명은 이유도 모른 채 소박을 맞아 쫓겨나 마지막 왕비만이 왕의 임종을 지켜보았다.
[주1] 헨리 8세(Henry VIII)의 여섯 왕비를 결혼한 순서부터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아라곤의 캐서린(Catherine of Aragon), 앤 불린(Anne Boleyn), 제인 시모어(Jane Seymour), 클레페의 앤(Anne of Cleves), 캐서린 하워드(Catherine Howard), 캐서린 파(Catherine Parr).
참수당한 왕비는 앤 불린과 캐서린 하워드다. 해산 중에 사망한 왕비는 제인 시모어다. 왕에게 쫓겨난 왕비는 아라곤의 캐서린이다. 클레페의 앤의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학자들은 그녀가 암으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캐서린 파는 헨리 8세가 죽은 해에 제인 시모어의 오빠 토머스 시모어(Thomas Seymour)와 재혼했다. 이듬해에 딸을 출산했지만, 며칠 뒤에 산욕열로 세상을 떠났다.
저자는 ‘화병으로 죽은’ 왕비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 주장의 출처가 궁금하다. 아라곤의 캐서린이 세상을 떠나자 헨리 8세 또는 앤 불린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소문의 진원지는 캐서린의 시신을 부검한 의사가 작성한 보고서였다. 의사는 보고서에 그녀의 심장이 새까맣게 변했다고 썼다. 현대 의학 전문가들은 암세포가 퍼진 심장에 검은 종양이 생긴 것으로 보고 있다.
화병은 미국 정신의학회가 편찬한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인 <DSM-IV>에 ‘hwa-byung’으로 표기되어 등재되었다. 그러나 2013년에 나온 다섯 번째 개정판인 <DSM-5>에 ‘hwa-byung’ 항목이 삭제되면서 현재 화병은 정식 병명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 133~134쪽
1537년에 태어난 제인 그레이는 헨리 8세의 증손녀(헨리 8세의 누이동생인 메리의 외손녀)였다. 헨리 8세에 이어 잉글랜드 왕위에 오른 에드워드 6세는 병약한 소년이어서[주2] 주위에서는 누가 다음 왕이 될지 수군거렸다. (중략) 하지만 메리 공주는 격노하며 자신이 왕위를 계승할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고, 왕실 자문회의도 메리의 손을 들어주었다. 결국 제인은 8일 만에 왕좌에서 내려왔다.[주3] 그리고 얼마 뒤에 참수되었다. 역사에서는 그녀를 ‘레이디 제인 그레이’라고 부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에드워드 6세(Edward Ⅵ)는 태어날 때부터 건강했다. 헨리 8세는 자신의 후계자인 에드워드 6세를 애지중지 키웠다. 헨리 8세의 수석 비서관은 왕의 발육 상태를 정기적으로 지켜봤다. 그는 프랑스 대사에게 한 말에서 왕자의 건강한 상태를 언급했다. “왕자님의 건강이 좋으며, 힘껏 젖을 빨고 계십니다.”
* [절판] 안드레아 배럼 《인문학, 상식에 딴지걸다: 지적인 사람은 절대 참을 수 없는, 황당하고 뻔뻔한 역사의 착각》 (라의눈, 2015)
에드워드 6세는 네 살 때 말라리아에 걸렸다가 완치되었다. 이듬해 다섯 살이 된 왕자를 만난 프랑스 대사는 그가 ‘잘생겼고, 강인하며, 같은 또래 아이들에 비해 엄청나게 큰 몸집이었다’라고 증언했다. 『영국 인명사전』에 왕자가 검술과 마상 창술 겨루기를 즐겼다는 내용이 있다. (《인문학, 상식에 딴지걸다》 188~189쪽)
* 엘리너 허먼 《독살로 읽는 세계사: 중세 유럽의 의문사부터 김정남 암살 사건까지, 은밀하고 잔혹한 역사의 뒷골목》 (현대지성, 2021)
궁전 안에 테니스 경기장이 있었는데, 1551년의 기록에 따르면 이 해에 왕자가 뛴 테니스 경기 횟수는 293회다. (《독살로 읽는 세계사》 142쪽)
* 앨리슨 위어 《헨리 8세의 후예들: 메리 1세, 에드워드 6세, 엘리자베스 1세, 레이디 제인 그레이》 (루비박스, 2005)
소년 왕을 미화하는 의도가 보이긴 하지만, 당대 사람들은 에드워드 6세를 건장하고 똑똑한 청년으로 묘사했다. 특이하게도 소년 왕의 왕성한 활동량을 강조한 증언과 반대되는 기록도 있다. 《헨리 8세의 후계자들》의 저자 앨리슨 위어(Alison Weir)는 에드워드 6세가 스포츠 활동보다는 머리를 쓰는 지적인 여가 활동을 선호했다고 주장한다. 소년 왕은 운동 신경이 좋았지만, 시합을 보는 것에 만족했다. 하지만 앨리슨 위어도 에드워드 6세의 병약한 소년 왕 이미지를 부정한다. 소년 왕이 스포츠 활동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신체가 부실하고, 어렸을 때부터 병약하다고 단정 지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헨리 8세의 후계자들》 35쪽)
[주3] 제인 그레이(Jane Grey)는 왕위에 오른지 9일 만에 폐위되었다(1553년 7월 10일~1553년 7월 19일). 그래서 그녀의 별명은 ‘9일 여왕’이다.
* 169쪽
기원전 52년 골 지방의 알레시아 전투에서 카이사르의 로마 군단에 항복한 켈트족의 수장 베르킨케토릭스(Vercingetorix)의 이름은 rix가 있다. 그러고 보니 전설의 아서 왕과 실존 인물 베르킨게토릭스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두 영웅 모두 이민족의 침략에 맞서 싸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 사람은 전설 속에 남았고 한 사람은 로마로 끌려가 처형되었다.[주4]
[주4] 갈리아인(골 족)은 프랑스에 터를 잡은 켈트인이다. 켈트인은 프랑스 이외에 영국 남부, 아일랜드, 벨기에 등지에 살던 부족인데, 여러 부족을 단합하여 로마군에 맞선 인물이 베르킨게토릭스다.
*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천병희 옮김 《갈리아 원정기》 (도서출판 숲, 2012)
* 장 크리스토프 뷔송, 에마뉘엘 에슈트 《13인의 위대한 패배자들: 한니발부터 닉슨까지, 패배자로 기록된 리더의 이면》 (책과함께, 2021)
베르킨게토릭스는 전술상의 한계와 판단 착오 등으로 카이사르의 로마군에 패했다. 그러나 갈리아족의 후예인 프랑스인들은 침략자 카이사르와 대등하게 맞서 싸운 베르킨게토릭스를 영웅으로 칭송한다. 최후의 항전인 알레시아 전투에서 패배를 직감한 베르킨게토릭스는 자유를 찾기 위해 함께 고군분투한 부족을 위해서 스스로 로마의 포로가 되었다. 베르킨게토릭스가 항복하는 장면은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기》 7권에 나온다.
《갈리아 원정기》 7권은 갈리아 정복에 성공한 카이사르가 자화자찬하면서 마무리 짓는다. 본인을 ‘역사의 승리자’로 묘사한 카이사르는 알레시아 전투 이후에 ‘패배자’가 된 베르킨게토릭스의 행보와 최후를 언급하지 않았다. 《13인의 위대한 패배자들》은 카이사르가 쓰지 않아서 생긴 《갈리아 원정기》 7권의 공백을 채워준다. 《13인의 위대한 패배자들》은 승자 위주의 기록으로 가득한 역사에 가려진 열세 명의 패배자를 재조명한 책이다.
이 책에 있는 베르킨게토릭스의 최후를 서술한 글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베르킨게토릭스는 죽었다. 그러나 그의 전설은 살아났다.”
* 176쪽
에드워드라는 이름은 빅토리아 여왕에 이어 20세기 초에 왕위에 오른 에드워드 7세에서 다시 등장한다. 하지만 모친이 62년[주5] 동안 왕좌에 있었기 때문에 에드워드 7세는 왕위에 오른 지 10년도 안 되어 세상을 떠나고 만다.
[주5] 빅토리아 여왕의 재위 기간은 1837년부터 그녀가 사망한 1901년까지다. 여왕은 64년 동안 왕좌에 있었고, 그녀의 통치 기간을 ‘빅토리아 시대’라 한다.
* 184쪽
앙리 2세가 마상 시합에서 사고로 절명한 뒤에 장남 프랑수아 2세가 급사하고, 동생 샤를 9세 역시 유전병인 결핵[주6]으로 요절한다.
[주6] 과거에 불치병이었던 결핵은 유전병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독일의 병리학자 로베르트 코흐(Robert Koch)가 결핵균을 발견하면서 ‘결핵은 유전병’이라는 인식이 틀렸음이 밝혀졌다. 결핵은 결핵균이 공기를 통해 전파되면서 생긴다.
* 389쪽
영국에서는 엘리자베스 1세와 빅토리아 여왕을 비롯해 여왕이 일곱 명[주7]이나 나왔지만, 프랑스에서는 단 한 명의 여왕도 찾아볼 수가 없다.
* 391쪽
마틸다는 왕이 될 자격이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회의 유리천장에 부딪혀서 왕이 되지 못한 불운의 여인이다. 이후 영국에서 첫 여왕이 출현한 것은 1553년 메리 1세에 이르러서다[주8]. (중략) 70년 넘게 왕위를 지키고 있는 엘리자베스 2세(재위 1953~)[주9]가 바로 그런 여왕들이다.
[주7, 주8] 마틸다 이후에 나온 영국 여왕은 제인 그레이다. 고작 9일 동안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그녀를 영국 국왕으로 인정해야 하는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래서 다수의 역사가는 메리 1세를 영국의 첫 여왕으로 보고 있다.
저자는 영국에 ‘일곱 명의 여왕’이 나왔다고 썼다. 따라서 마틸다를 제외한 일곱 명의 여왕은 제인 그레이(재위 1553년 7월 10일~1553년 7월 19일), 메리 1세(재위 1553~1558년), 엘리자베스 1세(재위 1558~1663년), 메리 2세(재위 1689~1694년), 앤(재위 1702~1714년), 빅토리아 여왕(1837~1901년), 엘리자베스 2세(재위 1952년~)다. 그런데 저자는 영국 최초 여왕이 메리 1세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영국 역대 여왕은 일곱 명이 아니라 여섯 명이다.
[주9] 엘리자베스 2세가 왕위에 오른 연도가 틀렸다. 1953년이 아니라 1952년이다.
* 440쪽
《신화의 이해》의 발행 연도는 2013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