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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만든 세계 - 세계사적 텍스트들의 위대한 이야기
마틴 푸크너 지음, 최파일 옮김 / 까치 / 2019년 4월
평점 :
시대가 변하면서 ‘유튜브(Youtube)’라는 매체를 통해 영상으로 다양한 정보를 얻고자 하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유튜브가 대세 미디어라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집에 TV가 없다”, “유튜브로 뉴스를 본다”는 말은 더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TV에서 보여주는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했던 과거 세대와 달리 지금의 세대는 능동적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영상을 제작한다. 또 젊은 세대는 자신이 필요한 정보를 텍스트를 통해 얻기보다 유튜브 검색을 통해 얻는다. 내가 관심 있는 영상들을 찾아서 보다 보면 한두 시간 정도는 금방 지나가곤 한다. 내 휴식 시간은 책이 아닌 영상으로 채워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영상의 시대는 결국 텍스트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텍스트와 영상, 둘 중의 하나만 고르기 어렵다. 텍스트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반면, 영상은 구체적으로 보여줘서 그 느낌을 빠르고 정확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글은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특히 한 개인의 정체성이 댓글 수와 조회 수로 나타나는 요즘, 글로써 자기 생각과 느낌을 효과적으로 표현하지 못한다면 자아표현 욕구가 좌절되는 것은 물론이고 타자와의 소통이 부재한다. 이로 인한 치명적인 고독감은 피할 수 없다. 자신을 표현해야 타자에게 인식된다. 이때 주된 표현 방식은 바로 글이다. 이 같은 특성 때문에 새로운 미디어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지고 있지만 글의 위력은 줄어들지 않는다.
우리는 글쓰기가 인터넷과 유튜브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기술 형태라는 사실을 쉽사리 잊는다. 인간은 문자 없이 수천 년간 지구상에 존재해 왔고, 다시 수천 년 이상 세월이 흐른 뒤에 비로소 문자를 만들었다. 사실 고대인들은 문자가 없어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다. 그들은 ‘이야기꾼’이었다. 일하다가도 짬이 나면 모여 앉아 서로 이야기를 들려줬다. 《스토리텔링 애니멀(The Storytelling Animal)》의 저자 조너선 갓셜(Jonathan Gottschall)에 따르면 누구나 이야기를 좋아하고, 그 재미있는 이야기가 지속해서 알려지길 원한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라는 속담처럼 이야기의 전파력이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말은 영원히 보존되지 못한다. 따라서 이야기가 대대손손 전해지려면 입이 아니라 손이 필요하다. 전달받은 이야기가 잊히지 않으려면 손을 써야 한다. 그래서 인간은 한 가지 대책을 세우는데 그게 바로 이야기를 문자로 표현하는 기술, 즉 글쓰기다.
문학은 ‘말(言)로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기술’인 스토리텔링과 ‘문자로 이야기를 표현하는’ 글쓰기와 교차하면서 탄생했다. 《스토리텔링 애니멀》이 ‘왜 인간은 이야기를 좋아할까’라는 의문점에서 출발해 이를 다양한 시각에서 풀어낸 책이라면 《글이 만든 세계(The Written World)》는 ‘글이 어떻게 인간과 세계를 만드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역사를 바꾼 텍스트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전자의 책은 이야기의 힘을, 후자의 책은 글의 힘에 초점을 맞춘다.
《글이 만든 세계》의 저자는 16편의 유명한 텍스트가 만들어지고 보급되는 과정을 추적하고, 그 텍스트들이 어떻게 세계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준다. 이를테면 그리스에 속한 소국의 왕자였던 알렉산드로스(Alexandros)가 대제국을 거느리는 ‘대왕’이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텍스트는 호메로스(Homeros)의 《일리아스(Ilias)》였다. 왕자는 전장에 나갈 때도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세계를 제패하는 영웅이 되는 꿈을 키웠다. ‘세계 4대 성인’의 반열에 오른 부처, 공자(孔子), 소크라테스(Socrates), 예수는 자신들의 사상을 제자들에게 들려줬을 뿐, 직접 글을 남기지 않았다. 부처와 공자의 제자들은 ‘교사(teacher)’가 되어 스승의 생각들을 학문(불교, 유가 사상)으로 체계화하고, 이를 다른 제자들에게 전파했다. 교사가 된 제자들이 손을 쓴 덕분에(글을 쓴 덕분에)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이 성인들의 깨우침을 존중하면서 이어받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글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독약을 마시고 세상을 떠난 뒤에 그의 제자 플라톤(Plato)은 대화체로 스승의 말을 기록했다. 이렇듯 말하기와 쓰기가 하나가 되면 텍스트가 되고, 나아가 텍스트를 읽으면서 이를 기록하는 작업은 세상을 읽고, 그것을 바꾸는 행위가 된다.
글을 쓰는 것은 인간만 가능한 지적 작업이다. 고대인들은 문자로 소통을 하고 역사를 남겼다. 글쓰기가 없었다면 역사는 단절됐을 것이다. 글쓰기는 ‘역사’라는 정보를 자자손손 전달하는 매우 중요한 기술 형태이다. 글쓰기가 없었다면 고전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수천 년 전의 사상가들이 고민했던 학문의 진화는 이뤄지지 않았을 게 자명하다. 역사를 바꿀 정도로 세계를 변화시키는 글은 힘이 세다! 《글이 만든 세계》는 영상의 힘에 압도당해 점점 잊히고 있는 글의 힘을 돌아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