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클레스(Pericles)와 역병. 투키디데스(Thukydides)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2권을 단 두 개의 단어로 요약하면 이렇다.
[파이데이아 독서 목록 1년 차]
[대구 책방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 투키디데스, 천병희 옮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서출판 숲, 2011년)
페리클레스는 고대 아테네의 전성기를 이끈 정치가다. 제1차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라케다이몬(스파르타)이 먼저 공격하면서 시작된다. 아테네는 여러 도시 국가들과 연합하여 델로스 동맹을 결성하여 스파르타가 이끄는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맞서 싸운다. 제1차 전쟁은 델로스 동맹의 승리로 끝이 난다. 페리클레스는 스파르타의 군주 아르키다모스 2세(Archidamus II)와 30년 휴전 평화조약을 맺는다. 평화를 되찾은 아테네는 번영을 누린다. 이 전성기에 나온 건축물이 바로 파르테논 신전이다. 신전 건축 공사의 총 감독을 맡은 조각가 페이디아스(Phidias)는 페리클레스의 친구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 가지 못한다. 승승장구한 아테네는 하나하나씩 도시 국가를 지배하고, 속국이 된 도시 국가 지도자들에게 공물을 바치라고 요구한다. 아테네의 지배욕에 진절머리가 난 도시 국가들은 스파르타의 편을 든다. 다시 펠로폰네소스 동맹이 형성된다. 펠로폰네소스 동맹국 지도자들은 라케다이몬에 회동하여 아테네와의 전쟁을 치를 준비를 한다. 그러나 스파르타는 처음엔 소극적인 자세를 보인다. 그들은 1차 전쟁 기간에 아테네의 막강한 해군력을 몸소 경험했다. 스파르타는 동맹국들에 최대한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방향으로 해결하자고 종용한다. 그러나 아테네는 자신들의 장점인 해군력을 동원하여 펠로폰네소스 동맹국의 해상로를 차단해 버린다. 이러면 스파르타와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경제력을 옥죄는 동시에 궁지에 몰린 친(親)스파르타 도시 국가들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다. 스파르타는 아테네에 해상 봉쇄령을 철회하지 않으면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아테네는 해상 봉쇄령 철회를 거부하고, 도리어 스파르타에 불리한 제안만 내놓는다.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한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다시 한번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눈다. 제2차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난다.
* [절판] 이소크라테스, 페리클레스, 데모스테네스 외, 김헌 외 2명 옮김 《그리스의 위대한 연설》 (민음사, 2015년)
[책 소개] 페리클레스의 민회 연설문 두 편과 추도사 한 편이 수록되어 있다. 연설이 나오게 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한 역자의 해설도 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안 읽어도 될 정도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발단과 당시 아테네의 상황이 잘 정리되어 있다.
2권의 백미는 페리클레스의 추도사다. 페리클레스는 전사자들의 무덤 앞에서 추도 연설을 한다. 그는 전쟁으로 인해 고통스러워도 아테네 민주정을 지키고, 헬라스(그리스) 전체의 번영을 유지하려면 스파르타와의 항전은 불가피하다고 호소한다.
전쟁 2년 차, 아테네에 역병이 돈다. 아테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적과도 맞서 싸워야 할 처지에 놓인다. 많은 아테네인이 목숨을 잃는다. 혼란에 빠진 민중은 페리클레스의 지도력을 의심한다. 페리클레스는 정치생명이 끝날 수 있는 위기를 맞지만, 민회에서 자신의 유능한 무기인 ‘말(logos)’을 이용하여 아테네인들을 설득한다.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1권에서 ‘자신이 체험한 것과 남에게 들은 것은 엄밀히 검토해서 기록’했다고 밝혔다. 자, 그렇다면 사료를 철저히 검토하는 일을 중시한 투키디데스처럼 똑같이 투키디데스에 맞서보자. 투키디데스의 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비판적으로 읽자는 뜻이다.
* 도널드 케이건, 허승일 · 박재욱 옮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까치, 2006년)
투키디데스의 그리스어 문체는 난해하다. 투키디데스는 전업 작가가 아니라 군인이다. 얼마나 문체가 어렵게 썼으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연구자들이 번역의 어려움에 불만을 토로한다. 고대 전쟁사 연구의 권위자인 미국의 역사가 도널드 케이건(Donald Kagan)은 총 4권으로 구성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번역했다. 그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번역하는 일 자체가 ‘해석’이라고 말한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도널드 케이건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4권을 축약한 책이다.
* 메리 비어드, 강혜정 옮김 《고전에 맞서며: 전통, 모험, 혁신의 그리스 로마 고전 읽기》 (글항아리, 2020년)
영국의 고전학자 메리 비어드(Mary Beard)는 『어느 투키디데스를 믿을 것인가?』라는 글에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투키디데스의 문체가 최악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녀는 더 나아가 투키디데스가 쓴 글의 신뢰성을 의심한다. 투키디데스는 ‘남에게 들은 것’을 참고했다고 주장만 했을 뿐 정보를 제공해준 사람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그렇다면 투키디데스는 과연 누구로부터 연설문과 사료를 입수했을까? 투키디데스가 검토했어도 그에게 사료를 제공한 익명인을 100% 신뢰할 수 있는가?
도널드 케이건도 투키디데스를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는 것을 경계한다. 투키디데스는 ‘시켈리아(시칠리아) 원정’이 아테네의 ‘중대한 실수’였다고 주장한다(2권 65장 11~12절). 페리클레스의 죽음(아테네를 덮친 역병은 전쟁 영웅마저 쓰러뜨릴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이후 아테네는 적임자를 찾지 못한 상태였다.
[파이데이아 독서 목록 1년 차]
[대구 책방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 아리스토파네스, 천병희 옮김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 1》 (도서출판 숲, 2010년)
투키디데스는 페리클레스 이후에 등장한 아테네 지도자를 ‘고만고만한 수준’의 지도자라고 평가한다. 그들이 페리클레스에 못 미칠 정도로 정치적 역량이 떨어진다고 본 것이다. 투키디데스는 그들이 너무나 한심해 보여서 이름조차 입에 담기 싫어했던 것일까? 지도자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당시 아테네의 형편을 풍자한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의 희극 『아카르나이 구역민들』을 먼저 본 독자라면 지도자들이 누군지 알 수 있다. 클레온(Kleon)과 니키아스(Nikias)다. 그들이 주도한 당파 싸움은 아테네의 군사력을 떨어뜨렸다. 무기력한 아테네는 항복할 때까지 승기조차 보이지 않는 전쟁을 억지로 질질 끌고 갔다. 무능한 지도자로 인해 전쟁이 길어지자 민중은 지쳐만 간다.
하지만 케이건은 투키디데스의 견해를 반박한다. 시켈리아 원정의 가장 큰 실패 요인은 아테네인들의 소극적인 태도라고 주장한다. 투키디데스는 시켈리아 원정을 ‘당연히 질 수밖에 없는 무모한 전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케이건은 만약 아테네인이 제대로 된 지도자를 지지해서 적극적으로 전쟁에 임했으면 승산이 있었을 것으로 예측한다.
비어드는 투키디데스가 ‘페리클레스의 광팬’이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투키디데스는 페리클레스가 대중을 마음대로 주무른, ‘명망과 판단력을 겸비한 실력자’라고 평가한다(2권 65장 8절). 그러면서 페리클레스가 명망이 높았다고 증언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페리클레스는 자신의 정부(情婦) 아스파시아(Aspasia)와의 관계 때문에 정적들의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아스파시아는 소크라테스(Socrates)와 교류할 재색을 겸비한 여성이었지만, 정적들은 그녀의 과거 직업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아스파시아는 상류층 인사들을 접대한 고급 매춘부였다. 민중은 페리클레스의 지도력을 비난할 때마다 내연녀 아스파시아도 같이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심지어 페리클레스의 아들조차도 아버지와 정부를 싫어했다.
투키디데스는 페리클레스의 정치적 경력과 연설문 전문을 여러 장에 걸쳐서 기록하는 내내 아스파시아를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다. 투키디데스는 ‘명확한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독자라면 자신의 책을 유용하게 여길 것이라고 내다봤다(1권 22장 4절). 과연 우리는 이런 투키디데스를 믿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