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중세의 어두운 면을 논할 때 많이 언급되는 사례로 초야권(初夜權)이 있다. ‘농노의 결혼 첫날밤에 신부를 차지하는 영주의 권리’라는 뜻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영주가 농노의 결혼을 허락한 조건으로 농노의 신부와 첫날을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영국의 폭정에 대항하는 중세 스코틀랜드인들의 투쟁을 그린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 영국 왕 에드워드 1세는 스코틀랜드 영주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초야권을 부활시킨다.
* 필리프 브르노 《만화로 보는 성의 역사》 (다른, 2017)
* 김응종 《서양의 역사에는 초야권이 없다》 (푸른역사, 2010)
* 김응종 《서양사 개념어 사전》 (살림, 2008)
초야권은 오랫동안 역사적 사실로 인정받아 왔다. 나 역시 중세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초야권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역사학계는 ‘초야권이 있다’는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초야권이 실제로 있는지도 확실치 않다고 주장하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초야권의 실재 여부를 둘러싼 논쟁은 19세기 중반부터 시작되었다.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김응종 교수는 중세의 영주가 농노의 성을 착취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면서도, 초야권은 ‘날조된 신화’라고 주장한다. 초야권(droit de cuissage)이라는 단어는 프랑스 계몽주의자들의 책에 언급된다. 계몽주의자들은 중세를 ‘암흑기’로 몰아세우고, 구제도(ancien régime)의 정점에 위치한 봉건 영주와 그들에게 예속된 가톨릭(구교도)을 비판했다. 계몽주의자들은 중세의 몽매함을 비판하기 위해 초야권을 언급하기 시작했고, 중세는 ‘전근대’를 상징하는 시대로 자리 잡게 되었다.
* 보마르셰 《피가로의 결혼》 (문예출판사, 2009)
보마르셰(Beaumarchais)의 희곡 《피가로의 결혼》은 18세기 귀족 사회의 위선을 풍자한 작품이다. 수잔느와의 결혼을 앞둔 백작의 하인 피가로가 초야권을 부활시키려는 바람둥이인 알마비바 백작의 흉계를 미리 알아채고, 백작의 부인을 끌어들여 백작을 골탕 먹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을 본 루이 16세는 귀족에 대한 풍자를 못마땅하게 여겨 공연을 금지했다. 보마르셰는 이 작품을 무대 위에 올려놓기 위해서 3년 동안 수정 작업을 했다. 기득권에 위치한 귀족층은 이 작품에서 솔솔 풍기는 혁명의 냄새를 참지 못했을 것이다. 귀족을 ‘야만적인 중세의 악습’을 행사하는 구시대적 인물로 묘사된 설정은 중세의 전근대적 면모를 비판하는 계몽주의자들의 인식과 맥을 같이한다.
초야권을 언급한 사료가 있긴 하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 연구가는 사료의 신빙성을 의심한다. 초야권의 실재를 부정하는 입장을 보이는 책은 김응종의 《서양사 개념어 사전》 (살림, 2008), 《서양의 역사에는 초야권이 없다》 (푸른역사, 2010), 필리브 브르노의 《만화로 보는 성의 역사》 (다른, 2017)가 있다.
* [절판, No Image] 아우구스트 베벨 《여성론》 (까치, 1990)
* 수전 브라운밀러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오월의봄, 2018)
* 후쿠다 가즈히코 《섹슈얼리티 성문화사》 (어문학사, 2011)
그렇지만 여전히 중세에 초야권이 있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초야권이 실제로 있었다고 주장하는 책들이 판매되고 있다. 독자들은 이러한 주장을 접할 때 신중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강간의 역사를 집대성한 수전 브라운밀러(Susan Brownmiller)의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오월의봄, 2018)는 1975년에 나온 페미니즘 고전이다. 그러나 이 책도 시대적 흐름에 반영하지 못한 오류가 곳곳에 보이는데, 브라운밀러는 중세의 야만적인 강간 문화를 열거하면서 초야권을 언급한다.
중세시대에는 야만적인 아내 구타, 궁정 성매매를 비롯해 봉건적 압제와 무법 상태가 어디랄 것 없이 만연했으나, 대륙에서 여성이 처한 상황은 영국보다 훨씬 더 나빴던 것으로 보인다. 초야권 혹은 대감의 권리는 장원의 영주 밑에 있는 농노나 봉신 신분인 신랑 신부가 영주에게 일정량의 생산물을 기한 내로 지불하지 않으면 영주가 그 대가로 신부의 처녀성을 취할 권리를 갖는 관습으로 분명 일종의 강간이었다. (45쪽)
브라운밀러는 초야권을 ‘일종의 강간’으로 규정했다. 그녀는 주석을 통해 아우구스트 베벨(August Bebel)의 《여성론》 (까치, 1990)을 참고했음을 밝혔다(미주, 640쪽). 《여성론》은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1879년에 발표되었다. 베벨은 초야권을 부정하는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초야권이 근대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초야권의 존재여부는 종종 부인되어왔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미풍과 신앙의 규범으로 삼고자 하는 바로 그 시기에 이 같은 제도가 시행되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 것임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초야권이 중세시간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근세까지도 남아 있었으며, 중세 봉건법전 속에서 하나의 분명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76, 77~78쪽)
후쿠다 가즈히코의 《섹슈얼리티 성문화사》 (어문학사, 2011)는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성에 관한 토막 상식을 백과사전 형태로 정리한 책이다. 이 책에서는 초야권을 ‘결혼세’와 동일한 풍습으로 보고 있는데, 이러한 입장은 결혼세의 목적을 잘못 전달할 수 있다. 중세 농노에 속한 여성은 다른 장원의 남성 농노와 결혼해 이주하려면 영주에게 세금을 내야 한다. 초야권을 결혼세 징수의 명분으로 볼 수 있지만, 결혼세는 농노의 성이 아닌 노동력을 보상받기 위한 목적으로 내는 세금으로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