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악마와 마녀의 이미지는 대부분 중세에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가 지옥을 연상하면 바로 떠오르는 악마만 해도 악마가 어떻게 생겼는지 당장 상상이 된다. 그 이미지는 익명의 중세 예술가들의 상상력과 편견 덕분에 형상화된 것이다. 악마와 마녀의 형상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존재했다. 악마와 마녀는 가끔 잘 생기거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묘사된 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못생긴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 클로딘느 시게르 《못생긴 여자의 역사》 (호밀밭, 2018)
* 실비아 페데리치 《캘리번과 마녀》 (갈무리, 2011)
중세 서양의 정신적인 기둥은 기독교였다. 중세 서양의 기독교에서는 여성에 대한 가치관이 크게 왜곡되어 있었다. 하와(Hawwāh)의 원죄를 근거로 당시 교회와 남성들은 유혹을 일삼는 여성을 악한 존재로 여겨 지배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했다. 마녀는 바로 이런 사고방식에서 생겨난 희생양이다. 종교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생겨난 마녀사냥은 십자군 전쟁의 실패와 극심한 기아 등으로 더욱 확대된다. 전쟁의 실패로 인해 불만 세력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권력을 가진 특권층은 사회적인 혼란을 마녀 탓으로 돌렸다. 특히 노파나 혼자 사는 과부 등 힘없는 여성이 주로 희생양이 되었다.
* 페르난도 데 로하스 《라 셀레스티나》 (을유문화사, 2010)
*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 (열린책들, 2009)
마녀로 그려지는 늙고 추한 노파의 모습에는 노년과 죽음에 대한 중세 사람들의 두려움과 혐오감이 반영되어 있다. 늙고 추한 여자는 젊고 아름다운 여자보다 상대적으로 기피 대상이자 혐오의 대상이었다. 나이든 여성은 성애의 대상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취급했다. 중세에 나이든 여성은 미와 순결의 상징인 젊은 여성의 찬사와 대비되는 측면에서 육체적 쇠락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중세의 작가와 화가들 사이에 유행하던 소재 중 하나가 뚜쟁이였다. 남녀의 은밀한 관계를 이어주는 뚜쟁이는 주로 나이가 많은 노파로 묘사됐다. 특히 라 셀레스티나(La Celestina)는 탐욕스럽고 고약한 늙은 뚜쟁이의 대명사가 됐다. 소설 속 전당포는 대부분 사악한 인물로 그려진다. 전당포를 경영하는 사람은 서민을 상대로 고리를 챙기는 악덕업자로 묘사된다. 도스토옙스키(Dostoevskii)의 《죄와 벌》에서도 살해된 전당포 주인인 노파는 악을 상징한 인물이었다.
* [품절] 피지올로구스 《피지올로구스》 (미술문화, 1999)
* [품절] 피지올로구스 《기독교 동물 상징 사전》 (지와사랑, 1999)
중세 사람들은 밤에 인적이 드문 숲을 지나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왜냐하면 숲에 악마와 마녀의 집회 장소인 사바트(sabbath)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숲에 사는 동물은 악마나 마녀 못지않게 위협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중세 사람들은 모든 동물에게 상징적 의미를 붙였다. 《피지올로구스(Physiologus)》는 동물의 속성과 성경 구절에 나오는 은유의 표현을 분석해 놓은 ‘기독교 동물 상징 사전’이다. 피지올로구스는 ‘자연에 대한 박식한 자’라는 뜻을 가진 저자의 이름이지만, 책의 제목으로도 알려지게 됐다. 기독교 윤리의 영향을 받은 문화에서 동물은 ‘악의 화신’이라는 부정적인 존재의 상징으로 전락했다.
* 로버트 단턴 《고양이 대학살》 (문학과지성사, 1996)
아마도 고양이는 마녀사냥의 광풍 속에서 여성 다음으로 가장 많이 희생된 존재일 것이다. 중세에 들어서면서 고양이는 이교도의 상징이자 악마의 앞잡이가 되었다. 역사학자 로버트 단턴(Robert Darnton)에 따르면 중세에 기록된 마녀사냥 관련 문헌들은 마녀들이 고양이로 변신한다고 증언한다. 물론, 이 허구적인 증언을 그대로 믿을 필요가 없다. 마녀사냥 문헌은 마녀로 억울하게 누명을 씌운 피해자의 진술보다는 마녀 신고자의 (허언에 가까운)목격담과 마녀재판을 담당한 법조인들의 증언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중세 사람들은 이단적 존재가 된 고양이를 마녀들이 숭배한다는 죄를 뒤집어씌워 무참히 살해했다. 17세기 후반 프랑스에서는 모의재판으로 고양이를 잡아 죽이는 사육제가 열렸다고 한다. 이 사육제는 부르주아 계급에 향한 분노를 표출하는 놀이 문화였다. ‘고양이 대학살’을 처음으로 감행한 사람들은 파리의 가내 수공업자들이었다. 당시 파리의 가내 수공업은 부르주아에 속하는 ‘장인’과 프롤레타리아에 속하는 ‘직인과 수습공’ 체제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직인과 수습공들은 장인의 부인이 키우는 고양이만도 못한 생활고에 시달렸다. 고양이가 먹지 않은 사료를 한 끼 식량으로 먹은 수습공들은 고양이보다 못한 자신들의 삶에 분노하여 길 고양이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 사건은 프롤레타리아 민중들의 저항 의식이 표출되는 축제 형태로 확산됐다.
* 제프리 버튼 러셀 《마녀의 문화사》 (르네상스, 2004)
* [품절] 브라이언 이니스 《고문의 역사》 (들녘, 2004)
* [품절] 구사노 다쿠미 《환상동물사전》 (들녘, 2001)
* 진 쿠퍼 《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화상징사전》 (까치, 1994)
고양이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 대부분은 과거에 ‘악마와 마녀와 계약을 맺은 동물’로 낙인찍혔다. 중세의 악마 연구자와 마녀 사냥꾼들은 악마와 마녀의 존재를 식별하는 (말도 안 되는) 기준을 만들었고, 자신들의 논리를 판화나 팸플릿 형태로 유포했다. 영국의 마녀 사냥꾼 매튜 홉킨스(Matthew Hopkins)[주1]는 <마녀의 발견>이라는 책을 써서 마녀를 식별하는 방법과 고문 방식 등을 상세히 정리했다. 그 책의 속표지에 동물의 모습으로 묘사된 악마들을 묘사한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은 《마녀의 문화사》(르네상스)와 《고문의 역사》(동녘)의 도판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 그림에 등장한 동물들은 마녀가 부리는 잡귀들이다. 이들을 ‘퍼밀리어(familiar)’라고 부르는데, 고양이와 같은 마녀의 시중을 드는 일을 하는 동물들도 퍼밀리어에 속한다[주2]. 악마 연구자들은 동물을 악마로 분류하여 이름을 붙였다.
<마녀의 발견> 속표지에 고양이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동물들이 나온다. 그레이하운드, 코커스패니얼, 토끼, 족제비(정확히 말하면 긴털족제비의 일종인 웨일스족제비) 등이다. 개도 고양이와 함께 악마의 동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고양이는 비를, 개는 바람을 불러온다고 하여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다(raining cats and dogs)’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주3]. 토끼는 번식력이 좋아 다산을 상징하는 동물로 알려졌지만, 악마 연구자들은 토끼의 번식력을 문란한 성행위와 연관 지어 해석하면서 토끼마저도 악마의 동물 범주에 포함시켰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불만이 있는 개인은 자신의 분노를 약자에게 표출한다. 그러므로 요즘 우리 사회에 빈번해지는 여성, 노인, 동물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낯설지 않다. 증오와 혐오를 동반한 폭력의 기원은 마녀사냥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폭력은 그 규모의 크고 작음을 떠나 우리의 일상사에 언제나 간여해왔고 영향을 미쳐왔다. 우리는 여러 집단이나 조직에서, 정치의 광장에서, 그리고 인터넷 바다에서 크고 작은 마녀사냥이 연일 벌어지고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다만 둔감할 따름이다. 아주 오래된 잔혹극은 그칠 줄 모른다.
[주1] 매튜 홉킨스의 악행을 소개한 필자의 글. 『영국의 마녀사냥꾼』(2018년 11월 1일 작성, http://blog.aladin.co.kr/haesung/10437641)
[주2] 구사노 다쿠미, 《환상동물사전》, 들녘, 2001, 307쪽.
[주3] 진 쿠퍼, 《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화상징사전》, 까치, 1994, 10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