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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포와 도쿄 - 1920년 도시의 얼굴
마쓰야마 이와오 지음, 김지선 외 옮김 / 케포이북스 / 2019년 1월
평점 :
2021년에 천국의 도서관으로 떠난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의 별명은 ‘지(知)의 거인’이다. 눈만 뜨면 뇌가 고픈 거인은 엄청난 양의 책을 사 먹으면서 글을 썼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고루고루 먹는 삶을 살아온 그가 절대로 눈과 뇌에 대지 않는 ‘책’이 있었다. 거인이 먹지 않은 책은 바로 ‘소설’이었다. 지식욕이 왕성했던 젊은 시절의 거인은 소설을 즐겨 먹었다. 이랬던 그가 왜 소설을 먹지 않게 되었을까?
거인은 현 시대의 문학 속에서 ‘현실’을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책을 먹으면서 무럭무럭 성장했던 젊은 거인은 기자가 되었고, 본격적으로 책 밖에 펼쳐진 거대한 현실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다카시가 바라본 당시 일본은 경제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다카시는 경제 성장에 눈이 멀어 정의와 도덕을 짓밟는 사회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책과 펜을 무기로 만들어 부정부패를 일삼는 정치인들을 비판했다. 다카시는 화려한 금빛으로 물든 현실에 가려진 추악한 인간 군상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사회 문제에 민감한 다카시는 소설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거인은 현실과 동떨어진 문학에 완전히 등을 돌렸다. 다카시는 현실을 외면한 문학에 실망감을 느꼈다. 그는 현실을 꾸밈없이 보여주는 ‘논픽션’을 읽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했다.
다독가는 무지와 편견을 경계하기 위해서 책을 많이 읽으려고 한다. 하지만 다독가의 뇌는 생각보다 똑똑하지 않다. 뇌는 게으르다. 어려운 문제를 오랫동안 생각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뇌가 느슨해지면 인간의 정신 상태도 느슨해진다. 다독가도 예외가 아니다. 다독가는 스스로 못 느끼겠지만, 느슨해진 뇌의 명령을 순순히 따른다. 여기서 ‘편견’이 생긴다. 뇌는 너무나도 얇고 투명한 편견 콘택트렌즈를 만든다. 눈동자에 편견 콘택트렌즈를 낀 다독가는 왜곡된 상태로 책과 세상을 바라본다. 책과 세상은 여러 가지 색이 섞여 있다. 그러나 게으른 뇌에 속은 다독가의 눈에는 ‘검은색과 흰색’만 보인다. 다카시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눈동자에 달라붙은 편견 렌즈를 떼어내지 못했다. 그는 소설은 ‘검은 책’, 논픽션 서적을 ‘하얀 책’이라고 믿었다.
다카시는 에도가와 란포(江戸川乱歩)의 소설을 읽어봤을까? 그가 란포의 소설을 읽었다면 이야기에 ‘음침하고 불쾌한 검은색’이 칠해져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현실은 꿈, 밤의 꿈이야말로 진실.’ 생전에 란포가 사인하면서 자주 썼던 문장이다. 란포는 이 말을 신조로 삼아 글을 썼다. 그는 매혹적이면서도 기이한 ‘환상적인 세계’를 묘사했다. 란포가 묘사한 인물들은 평범하지 않다. 종이로 만든 인형을 사랑하는 남자(『압화와 여행하는 남자』), 신이 되고 싶어서 무인도에 지상 낙원을 만든 몽상가(『파노라마 섬 기담』)는 현실 도피적인 인물이다. 란포 소설에 반사회적인 인물도 등장한다. 그들은 상식을 넘어선 망상을 실현하거나 비뚤어진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범죄를 저지른다.
란포가 소설을 쓸 때 자주 다룬 소재를 네 가지 단어로 요약하면 ‘환상’, ‘범죄’, ‘몽상가’, ‘변태’다. 그래서 독자들은 란포의 소설을 자극적인 이야기로 취급한다. 하지만 란포의 소설은 ‘환상’이라는 가면을 쓴 ‘현실적인’ 이야기다. 지금까지 독자들은 란포의 글에 씌워진 가면만 보고 있었다. 《란포와 도쿄: 1920년 도시의 얼굴》은 란포 소설의 ‘환상’ 가면에 가려진 ‘현실’을 주목한 책이다.
란포의 소설 속에는 다카시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이야기, 즉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란포가 작가로 등단한 해는 1922년이다. 《란포와 도쿄》는 란포의 소설들을 모아서 ‘1920년대 일본 도쿄’의 얼굴을 복원한다. 1920년대 일본 도쿄는 서구식 근대화가 진행 중인 거대한 도시였다. 근대 도쿄의 얼굴은 유럽풍 문화로 분칠한 모습이었다. 도쿄로 삶의 터전을 옮긴 시골 사람들은 서구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도시인’이 되어 갔다. 도시인들은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셨고, 유흥가로 알려진 아사쿠사(浅草)를 산책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빨리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도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타지인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실업자로 전락했다. 그들은 빈곤에 시달렸고, 외로웠다. 고독한 도시인들은 지루한 일상을 잠시나마 벗어나기 위해 유흥가와 사창가로 향했다. 쾌락에 절인 도시인들은 더 자극적인 것을 원했다. 란포는 독자들이 흥분할 만한 자극적인 이야기를 쓰지 않았다. 그는 ‘환락의 도시’ 도쿄에서 위태위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사실대로 썼다.
란포는 지칠 줄 모르고 계속 커지기만 하는 근대 도쿄 중심부에 살았다. 그가 관찰한 것은 도시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괴로운 현실의 무게감에 짓눌린 채 살아온 도시 부적응자들은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쾌락만 쫓아다닌다. 중독성이 강한 쾌락 올가미에 걸린 사람들의 정신은 흐리멍덩하다. 그들은 망상에 가까운 ‘헛된 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망상에 빠지면 절대로 하면 안 되는 행동인지, 아닌지 판단하지 못한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삶이 피폐해진다. 란포의 소설에 환상만 있는 건 아니다. 그의 이야기에 우리 눈앞에 있으면서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불편한 현실’이 있다. ‘불편한 현실’이란 인간성이 매몰된 자리에 비뚤어진 욕망으로 채운 건물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는 도시의 모습이다. 란포의 소설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는 도시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도시 속 카나리아’다.
<정오표>
* 65쪽
보이이지만 → 보이지만
* 109쪽
영국의 마가렛 샌거 부인이 다이쇼 11년(1922) 일본으로 건너와 1개월 정도 머무르며 산아제한강연을 전국 각지에서 개최하여 관심을 모았다.
마가렛 샌거 → 마거릿 생어(Margaret San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