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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거세당하다
저메인 그리어 지음, 이미선 옮김 / 텍스트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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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남성들만 겪는 고통 중의 하나가 포경 수술이다. 흔히 고래를 잡는다는 은유적인 표현을 쓰기도 한다. 또래의 친구들이 초등학교 고학년 겨울방학 때 엄마 손에 끌려가 ‘어른이 되는’ 수술을 받고 오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뒤로 아이들은 1, 2주 동안 통증으로 제대로 걷질 못해 뒤뚱뒤뚱 잰걸음 했다. 한때는 우리나라에서도 태어나자마자 포경 수술을 시키는 것이 유행이었다. 다행히 부모님은 나에게 ‘아들아, 고래 잡자’는 얘길 꺼내시지 않아 마음 편히 지나갈 수 있었다. 수술을 받지 않은 친구들은 또래 친구들한테 남자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유년의 통과의례처럼 치러지는 수술을 받지 않아서 수치심에 괴로운 적이 있었다. 귀두의 포피를 떼어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남자 어른이 되지 않았다’는 우스꽝스러운 자기 검열에 사로잡혔다.
포경 수술의 원조는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할례 의식이다. 유대인들은 선택받은 민족의 상징으로 생후 8일째 되는 날, 지금의 포경 수술이라 할 수 있는 할례 의식을 시행했다. 민족별, 지역별로 할례의식의 방식, 문화적 배경이 제각각이다. 남성 유대인은 할례 의식을 ‘신과의 계약’이라고 생각한다. 부족사회에서는 부족의 결속, 결혼 준비, 성기의 성화(聖化) 등 여러 가지 이유에서 할례를 한다. 아프리카 여성의 경우는 남자들과 같은 이유에다가 성감대를 둔화시킨다는 특별한 의미를 추가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여성 할례 의식은 여성들의 성적 욕구를 억눌러 처녀성을 지키고 결혼생활을 안정시킨다는 명목으로 행해져 왔다.
여성의 성욕은 병적인 것으로 치부됐다. 프로이트는 여성의 성을 ‘어두운 대륙’이라 불렀다. 여성 할례 폐습이나 프로이트의 음핵 무시에서 드러나듯 클리토리스는 남성성을 위협하는 사악한 부위로 지목돼 왔다. 모든 악과 질병이 비롯됐다는 ‘판도라의 상자’에서 ‘상자’라는 단어가 여성의 질을 가리키는 속어라는 점도 여성 성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연관 지을 수 있다. 음핵이 여성 쾌락의 중심으로 우뚝 서면 성적 파트너로서의 남성은 불필요해진다.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데 문제가 생긴다는 두려움이 생긴다.
우리나라는 여성 할례 의식이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여성들도 오랫동안 할례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클리토리스가 아니더라도 몸과 정신에 할례를 받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 ‘거세당한 여성(female eunuch)’이 너무 많다. 거세(去勢)는 생식 기능을 잃은 상태를 의미한다. 당연히 여성의 생식기도 거세 대상이 된다. 그런데 이 단어를 남성과 연관 지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거세’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환관(宦官)이다. 프로이트는 아동기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한 남자는 커서도 성기가 잘리지 않을까 불안을 느끼게 된다며 이를 ‘거세 공포’라 불렀다.
여자들만 느끼는 ‘거세 공포’가 있다. 일단 프로이트식 거세 공포는 잊어버리자. 급진 페미니스트 저메인 그리어는 ‘거세당한 여성’은 어린 시절부터 남성적인 욕망 속에 억압받으면서 성장한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여성으로서 자유와 욕망을 자기 검열하고 스스로 배제한다. 여자는 착하고 얌전해야 한다, 똑똑한 여자는 팔자가 세다, 여자는 무엇보다 예뻐야 한다. 이런 사회적 통념들은 가부장적 사회구조에서 여성을 억압하고 여성의 몸과 정신을 거세한다. 여성은 남성들이 만든 고정관념에 얽매여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치는 자신을 늘 의식한다. 남성의 의견에 따르고 남자 앞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않도록 조심한다. 인내와 희생은 여성의 미덕이라 여기고 여자운명은 남자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줄곧 자신의 욕망과 개성을 희생하는 여성은 이타주의와 사랑을 혼동한다. 그녀의 희생은 ‘거짓된 이타주의’에 불과하다.
여성은 성적으로 정숙해야 한다는 규범에 얽매여 성적 욕망과 표현을 억제(거세)한다. 여성이 남자에게 먼저 성관계를 요구하거나 성적으로 적극성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성에 대한 장벽을 쌓고 억제한다. 남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여자의 영혼까지 지배하고 구속하며 착취하고자 하는 욕망을 서슴없이 드러내곤 한다. 남성 위주의 억압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여자는 선택의 폭이 제한된다.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은 제대로 설 자리가 없다. 가부장적 질서 세계 아래 억눌려 있는 여성은 한없이 무기력해진다.
저메인 그리어의 ‘거세당한 여성’은 1970년 영국에 처음 소개되었다. 워낙 파격적이고 대담한 내용을 담고 있어 사회적 파문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 시기부터 급진적 페미니즘은 여성 문제를 더욱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 크게 부각함으로써 새롭게 급부상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읽고 나서 페미니스트가 ‘남성에 대한 적대감과 분노를 가진 여성’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그래도 40여 년 전 그녀의 담론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녀는 남성의 편견적인 시선에 벗어나지 못하는 답답한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 특히 남성의 욕망 앞에서 꿈과 자유를 스스로 파기하는 여성의 현실을 지적한다. ‘거세당한 여성’은 사회적, 제도적 억압을 스스로 뚫고 일어서는 여성이 아니다. 저메인 그리어는 남성의 기분을 맞추는 여장 배우가 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한다. 그리고 자신은 거세당한 사람이 아니라 ‘여자’라고 남자들을 향해 외친다.
‘남성들이 생각하는 여성, 남성들에 대한 고정관념’이 남성과 여성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 남성의 세계 안에서 만들어진, 남성에게 익숙한 이미지로 재현되는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은 여성들의 구별되는 특징 등을 한데 묶어 여성들의 다양한 능력들을 보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남성들에게 잘못된 환상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건강하고 완전한 성(The Whole Woman)이란 없었다. 우리는 규범적 남성성과 여성성이 강요하는 할례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저메인 그리어는 이미 문화적 할례를 거부했다. 《여성, 거세당하다》를 읽음으로써 완전한 성으로 거듭나는 독자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현실문화)의 ‘언어가 성별을 만든다’(정희진 편) 99쪽 정희진의 주석에 보면 그녀가 권하는 페미니즘 입문서가 소개되어 있다. <거세된 여성>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는데, 그 책이 바로 저메인 그리어의 《여성, 거세당하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