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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면의 조개껍데기
김초엽 지음 / 래빗홀 / 2025년 8월
평점 :
이제까지는 김초엽의 이야기들이 무난하게 읽혔기에, 이번엔 더 이해해 보고 싶어서 나름 집중해 읽었다.
왜 '아주' '그렇게까지' 좋지는 않았는지 알고 싶어서.
위트라고 해야 하나 유머가 부족한가?
전체적으로 이 사회가 끌어안은 모든 문제, 문제임에도 사소하다 치부되는, 모두들 좀 중요하게 여겨주면 좋겠는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공감하고 연대하고 수용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반면 적극적인 사회화는 힘에 부치는 느낌을 주는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다들 내향인 같달까?
'본질'에 대한 깊고 어지러운 상념들이 끌어올려졌다. 깊이 생각하면 너무 무한대의 생각들이 떠올라 막막하고 갑갑하고 결국 어지러워지고는 하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집중을 피해왔는데,
이번에야말로 김초엽을 제대로 마주 본 것 같다.
물성 자체에 대한 작가의 호기심 혹은 흥미 그것도 느껴졌다.
결국은 다 흘러 흘러 가는 유동적인 것들...
<수브다니의 여름 휴가>는 자발적 죽음에 대한 은유랄까. 삶에 대해 어떤 열망도 없는 그것과 유사한 느낌의 이야기인데.. 꼭 그것은 아니라고 느끼는 건 안드로이드가 인간화되었다가 다시 기계가 되고자 한다는 점이 trans의 개념이 조금 부연된 설명이 아닐까 하는 어설픈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양면의 조개껍데기> 낯섬을 받아들이는 감각의 혼란. 그것을 외계, 지구로 치환하여 더 거대한 이미지로 그려내면 이해가 좀 더 쉬워지는 느낌이다.
<달고 미지근한 슬픔> 에서는 동류를 찾아 연결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구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가 아닌 감각으로 이루어진 세계, 궁금하다. 실제의 부재.
- 또다시 아래로.
검푸른 물의 세계가 우리를 압도한다. 광활한 공간 속에서 오직 우리만이 바다를 마주하고 있다. 나는 이 거대한 외로움을 직면하는 것이 두려웠었다. 하지만 레몬은 진작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외로운 세계가, 그렇기에 얼마나 자유로운지. - 네가 여길 왜 좋아하는지 이제 알겠어. 레몬은 내 말에 픽 웃었다. - 106, 양면의 조개껍데기
- 이런 거죠. 원래 우리 언어는 불완전하잖아요. 기록도 불완전하고요. 아무리 애써도 문자로 전하고자 하는 의미에는 왜곡이 생겨요. 우리는 문자 그 자체에 담긴 정보로만 서로 소통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문자를 이렇게 수많은 다른 꼴로 새기는 거예요. 문자로는 마음을 온전하게 전달하지 못하니까, 더 잘 전해보고 싶은 거예요. 어렵죠? - 127, 진동새와 손편지
- 관찰 기록의 알아볼 수 없는 약어들 사이에서도, 단하의 눈에 확연히 들어온 한 줄은 이런 것이었다. 왜 모든 것이 거짓에 불과한 세상에서,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 있다'고 느낄까?
이로써 믿고 싶지 않지만 명백해진 사실이 있었다.
규은은 '몰두'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 257, 달고 미지근한 슬픔
- 당신들이 찾는 게 우리의 본질 같은 거라면,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하는 게 속 편해요. - 277, 달고 미지근한 슬픔
- 그 자각이 이끌어낸, 아직은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달고 미지근한 슬픔이 단하를 관통해 지나갔다. 존재하지만 그 존재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슬픔.
어쩌면 영원히 모르는 것들의 경계가 있고 그 경계를 알아내는 것조차도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깨달음에서 오는 슬픔.
하지만 그 슬픔에서는 여전히 달콤한 맛이 났다. 탐구할 가치가 충분한 슬픔이었다. - 292, 달고 미지근한 슬픔
- 인간은 살아가는 매 순간 너무 많은 것과 상호작용하고, 그래서 너무 많은 것을 상처 입히는 존재라고.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움직임마다 이 세계 전체가 몸에 감겨든다고. 누구도 원해서 태어나지는 않지만, 태어난 순간부터 이미 이 세계에 연루되기 시작한다고. - 358, 비구름을 따라서
- 아마도 저는 이 소설들을 쓰면서 그런 질문을 했던 것 같아요. 인간에게, 혹은 인간 성에 '본질'이라는 게 정말로 있을까? 기술이 발전하고 특히 인공지능이 탁월한 성능을 갖게 되면서 사람들이 많이 묻잖아요. 우리 인간에게 변치 않는, 침범 받지 않을, 고유하고 완전한 본질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그런데 이 소설들을 쓰면서 든 생각은 '그런 본질은 없을 수도 있겠다'라는 거였어요. 모든 것은 변화하고 인간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 인간이 인간을 정의하는 방식 역시 계속해서 변해가는데, 불변하는 인간의 본질을 찾으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럼에도 우리가 스스로 부여하고 싶은 고유성, 끝내 붙들고 싶은 어떤 소중한 가치가 있다면 그건 오히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 한계에 있을 것 같았어요. 편협한 한 개인의 몸에 갇혀 살아가고, 서로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고, 오해하고 충돌하고, 그러면서도 각자의 경계 밖을 이해하고자 갈망하고, 마음을 잘 전달하고 싶어서 고군분투하는 한계가 우리가 지닌 희미한 빛이자 가능성이기도 하지 않을까요. 여기 담긴 소설들은 그 한계와 가능성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려고 애쓴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작가 인터뷰 중
2025. sep.
#양면의조개껍데기 #김초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