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너를 돌려주는 이유 아침달 시집 43
황성희 지음 / 아침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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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난..... 이라고밖에.

- 나의 시를 가능하게 해준 누군가들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때로는 명복을 빈다
이런 사적 동기의 연대라도 괜찮다면
이제라도 진정한 개인이 되고자 한다
시간의 정면으로 나서고자 한다 - 시인의 말 중

- 그때 어떤 나무 밑에 기약 없이 서 있던 것도 같고
보드라운 뺨을 내주며 맞는 게 무섭지 않던 때도 있었다

그때 나는 싱싱해서 버려지는 게 두렵지 않았고
나를 다 써버리고 텅 비게 되는 날이 올 줄 몰랐다 - 쓰레기 소녀 중

- 모든 것을 좋다고 말하는 건 어떤 것도 좋아하는 게 아닌데 그건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그렇다면 나는 너무 오래 침묵을 지킨 것이 아닌가. - 소련 사과와 옥희 선생 중

-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모든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니라
말하지 않은 한 가지에 귀 기울이는 게 아니겠냐며

이런 이야기를 나눈 날에는 이만하면 우리도 괜찮다고
소외된 것과 타자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그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사람 중

- 오랫동안 나는 모두가 알아듣는 이야기를 위해
난해함의 독해와 무지함의 이해에 전념해왔다

최초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게 아니라
취후의 대화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에

나의 세계를 전달하려던 게 아니라
당신의 세계를 가지려던 게 아니라

우리의 세계 속에 머물고 싶었다
우리가 머물 세계를 가지고 싶었다

그러나 어제 동료에게
나는 너무 쉽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 어제 쉽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중

- 멀리서 보면 나는 불안의 전체
나로 뭉쳐 있기 위해 쓰는 안간힘 - 점묘 중

2025. oct.

#너에게너를돌려주는이유 #황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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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약과 공터 문학과지성 시인선 624
허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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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쁘고 슬픈 시가 슬프고 안쓰러운 시로.

허무함이 짙다가도 생의 한 구석을 깊이 찌르는 시들.

시집 전체가 다 좋기 어려운데...
그걸 해내는 시인, 허연.

너무 좋았다. 강력 추천.

지리멸렬하다는 것 이라는 시에 떠난 내 고양이 에코의 이름이 등장해서 무척 기쁜 마음이 들었다가 그리움에 조금 슬퍼졌다.

- 잊지 않고 흐르는 것들에게 고함
그래도 내가 노을 속 나비라는 생각 - 시인의 말

- 살았던 날들을 헤아려보면
어떤 날은 셀 수 있었고
어떤 날은 셀 수 없었다.

나무는 바람에 절을 하다 말고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듯
제단으로 들어갔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들의
선한 눈망울이
하늘을 올려다볼 때

마당에 널어놓은 홑이불이
천천히 흔들릴 때

사소한 슬픔이 새 한 마리와 함께
날아갔다.

너에게 시시한 기분은 없다. - 숯 중

- "슬프겠구나"라고 말하면
슬퍼지는 것들이 있었다. - 산을 넘는 소년 중

- 모닥불을 보고 찾아온 길고양이가 있었다.
캠핑 오는 사람마다 이름을 지어줘서 고양이 이름인 한 백 깨쯤은 된다고
캠핑장 아주머니가 말했다.

우리는 고양이에게 에코라는 이름을 붙였다. 에코는 우리 텐트에 올 때만 에코였다. 에코는 우리 구역에선 한 번도 빠짐없이 에코였다. - 지리멸렬하다는 것 중

- 베란다에 걸려 있는 빨래들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생은 잠시 초라해졌다가 다시 화색이 돌기도 한다.
경멸할 것은 없다. 어차피 다 노래니까. - 가여운 거리 중

- 나를 내어놓아도
흡족한 일은 찾아오지 않았다
먹고사는 일엔 늘 말문이 막혔다 - 청년기 중

- 세상에 남은 일은
삶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소멸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 공작도시 2 중

- 동작을 바꿀 때마다 오는 통증이
제게 사는 것에 대해 물었어요
아플 때면 생각할 게 많아져서 바빠요

사는 건 그저 가끔씩 체머리를 흔드는
잊지 못할 기억들에
두 손을 드는 일

경이로운 건 없어요
끔찍한 일이 가끔 있고
대부분은 그저 그래요

생을 바쳐 풀어야 할 문제들도 없어요
답은 다 다르니까요 - 병가 중

2025. oct.

#작약과공터 #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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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 제172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스즈키 유이 지음, 이지수 옮김 / 리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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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아쿠타가와 상이 인상적이었던 건 히라노 게이치로가 수상했을 때였는데,
그 이후로는 딱히 이 작가 싶은 수상자를 보지 못했다.

그래도 일본에서는 유력한 문학상이라 자주 읽어보고는 있는데
해가 갈수록 이 상 수상작은 건너 뛰는 게 내 시간 낭비가 아니겠구나 싶다.
(같은 결로 공쿠르 상도 포함)

이번에는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올라있고 여기저기서 추천한다는 풍문이 들려왔는데...
왜 베스트인가? 싶은 생각만 남았다.
형편없다라기보단, 그냥 평이하기 때문이다.
괴테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지루할 수 있기까지 하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괴테에 대해 오래 연구해온 학자 도이치가
아내와 딸과의 식사 자리에서 우연히 보게 된 괴테의 말이라고 인용된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
라는 구절이 이 모든 사유와 사건의 시작이다.
이 구절의 원전을 찾을 수 없는 갑갑한 마음은
괴테의 저서를 다시금 찾아읽게 되고,
괴테와 인연이 있는 80여 명의 사람들에게까지 질문을 던지면서
이 구절에 빠져들게 되는데...라고 소개할 수 있는데
여기까지 듣는다면 오호 그래서 그다음 사건은? 하는 호기심이 생기게 될 수도 있다.
나는 그랬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나지? 하는 희망을 가지고 읽었지만 얼마 되지 않는 책의 볼륨이 줄어들수록 실망하는 마음이 커졌다.
너무 슴슴하다.
괴테의 말을 빼면 이 이야기는 뭘까?
학자의 양심 문제를 조금 건드리는 부분을 빼면... 글쎄...

장점을 꼽자면,
괴테의 말들을 애정을 가지고 탐험할 수 있고,
학자들의 자기복제의 문제,
고풍스럽게 느껴지는 전체적인 분위기,
가족관계의 미묘한 감정 교류들 이런 지점은 소소하고 잔잔한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나는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눈밝은 독자는 아닌 셈이다.
이 책의 매력을 알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 "독일 사람은 말이야." 요한이 말했다. "명언을 인용할 때 그게 누구의 말인지 모르거나 실은 본인이 생각해 낸 말일 때도 일단 '괴테가 말하기를'이라고 덧붙여 둬. 왜냐하면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거든." - 23

- 우리의 사상을 표현하는 데 옛사람들이 엄선한 품위 있는 언어를 사용할 때, 그들이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을 우리보다 더 정교하게 열어서 보여준다는 점을 인정하는 게야. 거장들은 항상 옛사람의 장점을 이용하는데, 그 점이 그들을 위대하게 만든다네. - 118

- 크리스마스이브에 보낸 이메일에는 서른 명 정도가 곧장 의리 있게 답신을 해줬고, 그 수는 점점 늘어났다. 사람들 대부분이 출처는 모르겠지만 괴테의 말 같다고 했으며(평소 도이치의 주장을 생각해 보면 분명 그렇게밖에 대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몇 명은 출처로 추정되는 문헌을 알려주기도 했지만 전부 도이치가 이미 살펴본 것들이었다. - 129

- 결국 우린 과거의 시대를 남겨진 조각으로 상상하는 수밖에 없어. 고전학자가 착각했던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다만 우리가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획득함과 동시에 고대인의 시각을 잃어버리기도 한다는 점은 잊어서는 안 돼. - 147

- "어머, 당신이 왜 베버 씨 사이트를 보고 있어?"
어리둥절해진 도이치는 잠시 침묵한 끝에 상황을 이해했다. 베버는 아키코가 좋아하는 유튜버라는 것을. 그리고 생각했다. 자신의 명언 찾기는 결코 의미 없는 짓이 아니었다. 모든 것은 반드시 이어져 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무언가로부터 생겨났고, 우리는 아직 살아 있으니까. - 212

- "아무튼!" 요한이 말했다. "괴테가 이렇게 말했지. 내가 모든 것을 말했다.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마라." - 227

- 저는 학문을 파괴하고 싶은 것이 아니고, 고발하고 싶은 것도 아니며, 오히려 용인하고 싶습니다. 저는 학문이란 실패와 오류의 연속이라고 봅니다. 실패와 오류야말로 다양성의 근간이지요. 신화와 언어의 다양성이 곧 실패와 오류입니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는 실패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가 크게 실패해 드렸습니다. 실패하는 동안에는 분명 동료들에게 미안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해해 줄 것입니다. 저는 제가 <신화력>에서 쓴 힘을 실행했을 뿐입니다. - 232

2026. feb.

#괴테는모든것을말했다 #스즈키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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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극장 민음의 시 320
마윤지 지음 / 민음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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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하다.

마음을 편히 놓고 읽다가
어느 한 줄에 덜컥 낚이기도 하면서...

- 밤
조용한 골목을 따라 지워지며
홀로 기쁨 - 시인의 말

- 접어 놓은지 오래된 슬픔은 못 입는다 - 사월 중

- 떨어져 나온 슬픔이
미처 다 걸어가지 못하고
멈추기 전에 낚아야 해요 - 개구리극장 중

- 낮은 환하고
광장은 캄캄하다
저 나란함이 빛나기 위해 - 여름 촉감 중

- 잊을 수 없는 것들을
아, 깜빡 잊었다
하고 말해 볼까 - 봄이 아니야 중

- 매일 매일의 밤마다 들어가
내가 자고 있는 동안 노래를 불렀습니다

끝나면 또 불러야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너무 많았습니다 - 우리 영혼의 바닥까지 줄을 내려 사랑을 길어 올리는 동안 중

- <동지>

12월에는 흐린 날이 하루도 없으면 좋겠다
그런 약속이 있으면 좋겠다

놀이터엔 애들도 많고 개들도 많으면 좋겠다
살도 안 찌고 잠도 일찍 들면 좋겠다
조금 헷갈려도 책은 읽고 싶으면 좋겠다
어디든 갈 수 있는 차표를 잔뜩 사고 안 아프면 좋겠다

30만 년 전부터 내린 눈이 쌓이고
눈의 타임캡슐 매일의 타임캡슐
다 흘러가고 그게
우리인가 보다
짐작하는 날들이 슬프지 않으면 좋겠다

묻어 놓는 건 숨기는 게 아니라 늘 볼 수 있도록 하는 거지
그 무엇보다 많이 만져 보는 거지
나중엔 번쩍 번개가 되는 거지
오렌지색 같은 하늘이 된다 맛도 향기도

손가락이 열 개인 털장갑
이를테면 깍지
햇빛의 다른 말이다
(전문)

- 한 사람의 빛을 읽고 나면
그 사람에 대해 조금 알게 될까
아예 모르게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이 아름답다고 짐작해 보았습니다 - 타임 코드 중

- 세상이 흔들리며 내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면 모든 슬픔이
내 것은 아니라는 슬픔을
몸은 아직 뼈로 이어져 있다는 걸 알게 될까 - 설탕 기둥 중

2025. oct.

#개구리극장 #마윤지
#민음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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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이야기
조예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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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의 섬이 정말 있으면 좋겠고.

인간의 여러 가지 부정적 감정을 다채롭게 펼쳐 보였다.
특히나 가족관계를 통해서...

부재와 결여, 죄책감, 의무.....

소재의 파고가 높은 편이지만
의외로 읽는 나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평정심으로 읽었다.
그런 대비가 좋았음.


- 선희가 나에게서 분리되려 한다. 내 젊음과 노동력과 시간을 잡아먹어 홀로 빛나게 된 꽃이 뿌리로부터 도망치려 한다. 꽃은 뿌리 없이는 오래 유지될 수 없다. 자유를 느낄지언정 곧 말라 죽어버릴 텐데. 그건 나에게도 선희에게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 수선화에 스치는 바람, 108

- 역시 운 때문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실력이나 열정은 결과와 비례하지 않을뿐더러 운은 짐작보다 큰 비중을 차지한다. 때로는 운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반쪽 머리의 천사, 133

- 내 이름이 우승하인 것도, 이름처럼 전국의 각종 육상 대회에서 상을 휩쓴 것도, 하다못해 출전을 앞두고 발목을 접질렸을 때도 전부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건 주인공의 극적인 성공을 위한 일시적인 시련에 불과해, 다 이유가 있을 거야,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건 없다는 걸 안다. 있다고 하더라도, 꼭 모든 사건에 대단한 의미가 있지는 않다는 걸 안다. 세상은 마구잡이로 흘러간다. - 반쪽 머리의 천사, 142

- 갑자기 어렸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엄마와 함께 아파트 옥상에서 금환일식을 목격한 날이었다. 장난감처럼 생긴 일식 관측용 안경을 끼고서 어두워진 하늘을 빤히 보며 난생처음, 나는 경외감이라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건 살아 있다는 게 감사할 정도로 벅차오르지만, 동시에 서글픈 기분이었다. 갑작스레 다른 세계로 동떨어지는 듯함 감각. 그 낯선 외로움에 나는 고개를 쳐든 엄마의 손을 붙잡고 집에 가자고 생떼를 썼었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자그마한 나에겐 마냥 거대한 부피감으로 감각되는 대상이 저 우주의 시선으로는 한없이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사실이 주는 괴리감이 두려웠던 것이다. - 안락의 섬, 313

- 남은 시간 동안, 눈을 감고 꿈속 플루와 라미를 생각했다. 안락의 섬과 무의미한 바깥을 생각했다. 삶과 죽음을, 시작과 끝을, 종말과 재건을, 망각과 사랑을 생각했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건 사랑의 기억들. 이 섬에서도 그런 기억은 계속 쌓였으니 나는 아마 그만큼 더 슬퍼질 것이다. 어디선가 하피가, 라미가, 플루가 이렇게 묻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모든 걸 없는 셈 치고 무로 돌아가는 건 너무 슬프지 않아? 기억이란 쇠퇴하지, 그리고 소중한 것은 다시 생겨나. 수수, 우리는 어디에나 있어.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있어. - 안락의 섬, 324

2025. oct.

#치즈이야기 #조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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