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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의 노래 - 2023 부커상 수상작
폴 린치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1월
평점 :
이 책은 2024년 12월 11일에 다 읽었다.
지금까지 리뷰를 남기지 못한 것은 계엄 사태와 상관이 영 없지는 않다.
이 정도로 독재적으로 군림하는 정부의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심심찮게 받는데,
현실에서 계엄...이라니 계엄이라니!!! 하고 있는 와중이어서 더욱 그랬다.
해외 문학상 중 가장 취향에 맞고 좋아하는 상이 부커상인데, 그만큼의 기대를 가지고 읽어도 거의 대부분 좋았다.
이 책도 현실만 아니었으면 좋았다.로 끝나는 감상을 남겼을 것이다.
노동조합 탄압을 시작으로 음모와 음해, 견제와 감시의 분위기로 질식할 것 같은 답답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무너지는 가족을 어떻게든 유지해 보려는 아일리시의 노력이 도저히 해피엔딩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 암담함.
노동조합 때문에 연행된 남편, 돌봄과 치료가 필요한 치매 아버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위험 속에서 징집 명령을 받은 아들, 아직 어리고 미성숙한 막내.....
국외에 거주하는 여동생의 도움만이 유일한 희망 같아 보이지만,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상황을 온전히 전달할 수도 없는 아일리시의 상황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지배하려는 자들은 항상 비슷한 결로 세상을 망치는데,
세상의 정의, 선의, 상식이 제대로 믿음대로 작동하리라는 생각은 언제부턴가 망상의 일종으로 전락되어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슬픈 체념이 생긴다.
이 책을 읽던 24년 12월이... 더욱 그랬기에, 유쾌할 수 없는 뒷맛이 남았다.
- 제가 잘 알아들었는지 모르겠군요, 그가 말한다, 제 행동이 반란이 아님을 증명하라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스택 씨. 하지만 노동조합원으로서 내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헌법에 따른 권리를 행사하는 건데 어떻게 반란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지요? - 21
- 사과나무에서 오렌지가 떨어질 수도 있고 벤은 확실히 자기 나름의 남자가 될 것이다. 그래도 아일리시는 아이 안에서 래리와 닮은 점을 찾으면서 아버지에 버금가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만 모든 남자아이는 자라서 집을 떠나고, 세상을 만드는 척하면서 해체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 37
- 마이클, 그녀가 말한다, 당신이 래리를 만날 수 없다는 거 말이에요, 내가 이해가 안 가는 건 그거예요, 제가 법을 다 찾아봤어요, 협정도요, 이건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에요, 그러니까 말해봐요, 왜 저 사람들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도 되는 거죠, 왜 아무도 그만두라고 소리치지 않죠? - 50
- 그가 연설하며 사람들의 박수와 미소를 통해 지지자를 골라내는 동안 그녀는 회의실을 둘러보며 그들 사이에 있는 야수를 본다, 야수가 은폐와 위선을 어떻게 내던지는지, 이제 어떻게 드러내놓고 돌아다니는지 바라본다. - 90
- 넌 내가 아무것도 안 한다고, 가만히 서서 네 아버지가 돌아오기만 기다린다고 생각하겠지만 난 지금 우리 가족이 서로 떨어지지 않도록 지키고 있는거야, 왜냐면 바로 지금 우리를 떼어놓으려고만 하는 세상에서 그게 제일 어려운 일이니까, 가끔은 뭔가를 하지 않는 것이 네가 원하는 걸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이야, 가끔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일 줄도 알아야 돼, 가끔은 아침에 일어나서 시간을 더 들여 옷 색깔을 골라야 하는 거야. - 96
- 마크가 양손을 펼치고 시선을 피하다가 마침내 입을 열 때 결의가 느껴진다, 목소리가 돌처럼 단단하고 차분하다, 세상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요, 엄마, 마크가 말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온 세상이 다 봤어요, 공안부대가 평화 시위대한테 실탄을 쏘고 우리를 쫓아왔어요, 이제 모든 것이 바뀌었어요, 모르시겠어요? 이제 돌아갈 수 없어요. - 124
- 아일리시는 다시 고개를 돌려 아들을 마주하면서 남편에다가 아들까지, 그리고 또 얼마나 더 많이 잃어야 할까 생각한다, 슬픔 위에 슬픔이, 또 슬픔이 쌓인다, 시간 속에 멈춘 듯한 아들을 보며 그 모습을 기억에 새긴다, 마크가 케이크 쪽으로 가 세 번째 조각을 자른다. - 139
- 우리는 이미 터널에 들어왔고 돌아 나갈 수는 없어, 아일리시가 말한다, 반대편 빛이 보일 때까지 그냥 계속, 계속 앞으로 가야 해. - 234
- 왜 여기 남는 것을 선택하셨죠? 그가 말한다, 여기 당신을 위한 것은 하나도 없는데요, 당신은요? 아일리시가 말한다, 당신은 왜 여기 있죠? 난 할 일이 있으니까요, 그가 말한다, 나는 그 일이 끝나거나 관짝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여길 떠나지 않을 겁니다. - 300
- 적당한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이제 전하고 싶은 것을 표현 할 말이 없다, 하늘을 봐도 어둠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일리시는 자신이 줄곧 이 어둠과 하나였음을 안다, 여기 남는 것은 이 어둠 속에 남는 것이지만 그녀는 아이들이 계속 살아가기를 바란다, 아일리시는 아들의 머리를 어루만지고 몰리의 양손을 잡고서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이 힘을 준다, 그런 다음 말한다, 바다로, 우리는 바다로 가야 해, 바다가 삶이야. - 360
2024. dec.
#예언자의노래 #폴린치 #2023부커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