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터스 - 인종 혐오에 맞서 싸우는 행동주의자의 시원한 한 방!
이일하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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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들은 누굴까? 그들의 몸에 문신이 가득하다. 문신을 행할 수 있는 것은 엄연한 몸의 자유이지만, 이 사회에서 문신은 강렬한 폭력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영화를 보면 조직폭력배는 항상 문신하고 있다. 이들은 자기 과시나 결속력, 충성심의 표현으로 문신을 새긴다. 사진 속 남자들 모두 일본인이다. 큰 덩치로 봐서는 야쿠자 조직원들 같다. 이들이 문신을 보여주면서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 사진은 길거리 시위에 나선 일본인들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서양식 양복을 곱게 차려입고 나온 시위대원에 눈길이 간다. 시위 현장에 어울리지 않는 복장이지만, 평범한 시민처럼 보인다. 사실 문신에 새긴 남자들은 야쿠자가 아니라 시위대원이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온몸 가득 문신한 네오나치 시위대를 연상한다. 두 번째 사진에 나온 푸근한 모습의 시위대원과 대조된다. 첫 번째 사진 속 남자들이 과격한 몸싸움을 벌이는 시위대로 보일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일본에서 격한 반한(反韓) 감정을 드러내면서 가두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품은 극우주의 세력이다. 대부분이 재특회(재일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와 관련되어 있다. 이 단체 조직원들은 웹사이트를 통해 시위 시간과 장소 등 정보를 공유하고 있고, 시위 관련 비디오 등을 사이트에 올리고 있다. 일명 넷우익이라 불리는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일본과 일본인뿐이다. 넷우익 활동을 하는 이들은 가히 조직적이며 공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인터넷에서 한국인인 척 가장하며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대해 공격적인 말을 해대는가 하면, 역사를 왜곡한다. 일본뿐 아니라 여타의 다른 나라에서도 반한 감정을 갖게 하는 것이다.

 

 

 

 

두 장의 사진 중 하나는 재특회 시위와 관련되었다. 일본의 반한 시위 풍경을 본 적이 없는 한국인들은 문신을 새긴 남자들이 재특회 회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진짜 재특회 시위대원은 두 번째 사진 속 남자다.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해선 안 된다. 양복 입은 남자가 바로 재특회 설립자이자 회장으로 활동했던 사쿠라이 마코토다. 사쿠라이는 고등학교 졸업 후 아르바이트와 비정규직으로 생활하던 소심한 성격의 사람이었지만 ‘혐한류’로 장사하는 출판사와 일부 방송국으로 인해 한순간에 떠오른 ‘관심종자’다. 그는 위안부에 대해 “매춘부였던 사람들이 70년 지난 뒤에서야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며 떼를 쓰고 있다”고 망언을 했다. 강제 징용된 이들에 대해서도 “돈을 벌기 위해 지원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일본 내에서도 재특회의 과격한 행동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많지만 그들 자신은 폭력과 폭언으로 점철된 자신들의 행동에 자부심을 느낀다.

 

 

 

 

 

 

반한 극우 시위에 맞서는 반대 시위도 이어지고 있다. 첫 번째 사진 속 남자들의 정체는 혐한 시위에 반대하는 ‘오토코구미(男組)’라는 단체 소속 시위대원이다. 이들은 누구이고 왜 반대 시위에 나선 것일까. 재특회와 마찬가지로 이들도 인터넷상에서 만나 혐한반대 맞불 시위를 준비한다. 혐한 감정을 부추기는 혐오 발언을 반대하는 이들을 가리켜 ‘카운터스(counters)’라고 한다. 카운터스의 활동은 혐한 반대 시위에 그치지 않고 아베 정권의 안보법안 개정과 평화헌법 개정 시도에 맞서는 시민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15년 전 유학을 떠난 후 줄곧 일본에서 지내온 이일하 씨는 오토코구미의 활동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고, 영상에 담지 못한 기록들을 책으로 정리했다.

 

《카운터스》는 시위라는 어두운 주제만 다루지 않는다. 시위 현장 밖에 있는 오토코구미 대원들의 진솔한 모습까지 보여준다. 오토코구미의 혐한 반대 시위 선봉장에 나서는 다카하시는 전직 야쿠자 출신이다. 무력으로 시위를 저지하는 집단인 오토코구미가 특이할뿐더러, 대장인 다카하시도 범상치 않다. 나쁜 놈이 더 나쁜 놈을 잡는 상황이 이채롭다. 혐한 시위가 공권력 보호를 받고 카운터스 움직임이 오히려 경찰로부터 제지받는 일이 벌어졌다. 이때부터 오토코구미는 ‘조용한 운동’이었던 일본 시민운동의 역사를 바꿨다. 오토코구미는 혐한 시위 목소리가 거리를 뒤덮지 않게 하려고 확성기를 사용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 또 혐한 데모 행진을 저지하고자 온몸으로 도로를 점거한다. 재특회가 먼저 오토코구미 시위대에 폭력을 가하는 부득이한 상황이 발생하면, 다카하시 같은 덩치 큰 조직원들이 나서야 한다. 이들이 있어야 조직원들을 보호하고, 재특회의 과격한 진압을 막을 수 있다. 폭력을 미화할 수 없지만, 혐오 발언을 일삼는 자들을 응징하는 오토코구미 조직원들은 정의의 카운터펀치(counterpunch)다.

 

 

 

 

재특회의 도를 넘어선 과격한 혐오 발언과 행동은 외려 자기네 주장에 근거도 확신도 없다는 점만을 부각할 뿐이다. 폭력은 거짓을 감추려는 행동일 뿐 자신들의 주장이 확실하다는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카하시도 우익이다. 그는 극우세력의 반한 시위가 인간으로서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다고 지적한다. 오토코구미는 일본 사회가 보편적 이성과 인간성으로부터 일탈하려는 상황을 막고 있는 셈이다. 만약 그들이 행동으로 나서지 않았으면 일본 시민들은 반한 시위를 방조했을 것이다.

 

재특회는 민족주의도 우익도 아니다. 오토코구미는 좌익도 우익도 아니다. 서로 다른 두 단체에 속한 사람들은 평범한 보통사람들이다. 재특회는 일본의 오랜 경기 침체와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 퇴조가 초래한 산물이다. 회사 여직원이거나 호감이 가는 청년, 집 안에서는 좋은 아빠인 이들이 시위 현장에선 과격한 말을 쏟아낸다. 반면 일상화된 혐오 발언과 폭력 시위가 방치되는 최악의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시민들은 오토코구미 시위에 자발적으로 동참한다. 이들은 이념의 차이를 떠나 반한 시위의 부당함에 공감하고, 행동으로 연대한다. 평화와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오토코구미의 모습은 혐오 발언에 무감각해진 우리 사회가 본받아야 할 점이다. 흔히 사람들은 혐오 발언 및 사회적 약자 차별 문제를 ‘놔두면 해결될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도 일본처럼 간과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혐오 발언은 자유의 선을 넘은 비인간적인 표현이다. 이를 알면서도 우리는 조금쯤 옆으로 비켜선 채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며 옹졸하게 반항한다.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글쓴이 주)  결단력이 없으면 행동주의자가 되는 일이 어렵다. 이 책 마지막에 나오는 오토코구미 일원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처음 재특회가 이상한 짓을 하고 다닐 때 나섰어야 했어. 코리아타운에 오기 5년 전부터 알았는데 말이야. 그러니까 한국도 미리미리 막아야 할걸?” (231쪽)

 

 


※ 글쓴이 주 : 김수영의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구절 일부를 인용했습니다.

 

※ 흑백 사진은 21세기북스 출판사 공식 홈페이지에서 가져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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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as 2016-06-07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이상한 짓을 할때 나섰어야 했다는 말이 참 와닿네요. :0

cyrus 2016-06-07 19:29   좋아요 1 | URL
일베 회원들이 세월호 유가족 단식 시위를 하고 있을 때 방해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들도 언젠가는 어버이연합처럼 단체 시위로 나설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좀 걱정됩니다. 일베 회원들의 몰상식한 행동과 혐오 발언을 심각하게 바라보기만 할뿐 확실히 대처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ㅠㅠ

2016-06-07 2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6-07 20:10   좋아요 0 | URL
아마도 정신 못 차리는 일베 회원들이 나이가 들어서 어버이연합 비슷한 단체를 만들 것 같습니다.

박람강기 2016-06-07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극적으로 자신의 신념을 드러내는 모습이 멋지네요..

cyrus 2016-06-08 18:37   좋아요 0 | URL
혐한 시위 반대하는 사람들이 처음에 자발적으로 모여서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동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조직적으로 시위를 하는 단체가 생겼습니다. 정말 대단한 시민들입니다.

transient-guest 2016-06-08 0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지막에 인용하신 부분이 맘이 닿습니다. 이곳에서는 힐러리 vs 트럼프의 구도로 갈 것 같습니다. 트럼프 같은 놈이 나오기 시작할 때 잡았어야 하는데 무능하고 무력한 공화당 지도부는 초반에 주도권을 빼앗긴 후 다시 찾지 못했지요.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저지하지 않으면 그런 놈은 계속 나올 것 같습니다. 일베나 어버이연합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지금이라도 더 적극적이고 조직적으로 대항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cyrus 2016-06-08 18:46   좋아요 0 | URL
극우세력 시위, 일베의 혐오발언 문제 등의 심각성을 누구나 알고 있는데, 이를 구체적으로 제재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담론이 형성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심각성을 깨달으면 자발적으로 대항할 겁니다. 그러지 못하고 `시위 대 시위` 양상으로 가면 물리적 충돌만 일어날 뿐입니다.

transient-guest 2016-06-08 23:09   좋아요 1 | URL
개인적으로 일베나 어버이연합 사람들은 좀 맞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만.. 폭력 vs 폭력의 구도로 물타기 되는 건 막아야겠죠..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