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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기술
유시민 지음, 정훈이 그림 / 생각의길 / 2016년 6월
평점 :
글쓰기는 말하기와 함께 소통의 표현 방식이다. 소통을 잘하려면 자기 의사를 간결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글쓰기를 잘해보려고 각종 자료를 참고해보지만 도움이 안 된다. 글 잘 쓰는 비결이 있을 리 없다. 그저 써지길 기다릴 수밖에. 사실 이 서평도 이런저런 궁리 끝에 쓰기 시작했다.
내가 서평을 쓰는 이유는 자명하다. ‘이달의 당선작’에 뽑히려고 꾸준히 쓰는 것뿐이다. 서평대회 같은 이벤트가 있으면 평소보다 더 잘 쓰려고 한다. 조지 오웰에 따르면 글을 쓰는 일반적 동기는 네 가지다. 그중 하나가 ‘순전한 이기심’이다. 사람은 똑똑해 보이고 싶어서 글을 쓰기도 하며 사후에 기억될만한 글을 남기고 싶어 한다. 유시민은 오웰의 첫 번째 글쓰기 동기를 ‘자기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욕망’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이달의 당선작’에 뽑힐만한 글을 쓰려는 욕망을 드러냈다. 내 글이 ‘이달의 당선작’에 뽑히려면 일단 잘 써야 한다. 여기서 오웰의 두 번째 글쓰기 동기가 발현된다. 그것이 바로 ‘미학적 열정’이다. 나는 서평을 쓸 때 책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분명하게 밝힌다. 내 생각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면 독자는 내가 평가한 책을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 스스로 판단한다. 그뿐만 아니라 책에 대한 내 견해가 타당한지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럴 때 상대방의 의견을 귀담아듣고, 받아들여야 한다. 세 번째 동기는 ‘역사적 충동’이다. 절판본이나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의 서평을 작성할 때가 있다. 과거에 이런 책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네 번째 동기는 ‘정치적 목적’이다. 좋은 사회에 대한 생각을 상대방에게 전달하여 영향을 주려는 욕망이다. 나는 첫 번째, 두 번째 욕망에 충실히 따르는 글쓰기를 하고 있으므로 네 번째 동기와 무관하다.
이벤트 상금 혹은 적립금, 상품에 연연하면서 글 쓰는 내 모습이 속물근성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만약에 그렇게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유시민의 표현을 빌려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적립금 벌려고 글 쓰는 게 뭐 어때서요?’ 칭찬과 찬사의 수식어를 덕지덕지 발라놓은 주례사 서평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유형의 서평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내 서평은 ‘기름기를 쫙 뺀 글’이다. 무미건조한 글이다. 책 소개와 책을 읽은 소감을 쓰기보다는 해석과 평가에 치중한다. 유시민은 서평을 쓸 때 책 자체의 객관적 정보와 그에 대한 글쓴이의 주관적 해석이 적절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유시민의 생각과 다르다. 책 정보를 공들여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책 이름을 검색하면, 출판사가 만든 책 소개 글을 볼 수 있다. 만일 책에 대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면 서평에 반드시 소개한다. 출판사가 책을 객관적으로 소개하지 않았으면 그 문제점을 발견하고 정확하게 알린다. 그래야 책을 고르는 독자들이 스스로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서평 작성을 위한 배할 비율에 정답은 없다. 줄거리만 알리고 싶으면, 나만의 방식으로 줄거리를 정리하는 글을 써도 좋다.
‘이달의 당선작’에 뽑히는 글이 무조건 좋은 글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진 못하겠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좋은 글’의 기준은 천차만별이다. 내 글을 좋게 보는 사람이 있을 거고, 반대로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전자에 속하는 독자가 몇 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미학적 열정’에 대한 욕망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미학적 열정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도 주례사 서평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비록 이기심 때문에 서평을 쓰고 있지만, ‘자기 성찰’을 동반한 정직한 글쓰기의 중요성은 잊지 않았다. 글 한 편을 쓸 때 퇴고를 미루지 않는다. 다 쓰고 나서도 마음에 안 드는 문장이나 내용이 있으면 고치거나 지운다. 퇴고는 글쓴이 혼자서 실행해야 하는 ‘자기 검열’이 아니다. 내 글에 대한 상대방의 견해를 받아들이면서 수정하는 일도 퇴고 작업의 일부다. 유시민은 글쓰기를 자기 성찰을 동반하는 행위로 봤다. 나는 이 말을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싶다. 퇴고는 글만 고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성찰하는 과정이다. ‘내가 왜 서평을 쓰면서 이런 표현을 썼을까? 지금 다시 보니까 이 문장을 고치고 싶어.’ 번지르르한 상투어를 하나씩 지우고 나면 어느새 내 글 속에 ‘나다운 문장과 생각’이 보인다. 비록 그 문장이 화려하지 않더라도 정직하게 내 생각을 표현했고, 누군가가 글의 가치를 알아준다면 반쯤은 성공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