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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의 지도 - 흑사병에서 코로나바이러스까지 지도로 보는 유행병과 전염병의 모든 것
산드라 헴펠 지음, 김아림 옮김, 한태희 감수 / 사람의무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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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인류의 생명을 살린 한 장의 지도가 있다. 그 지도는 콜레라 희생자가 늘어나던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만들어졌다. 존 스노(John Snow)라는 의사는 콜레라의 발병 원인과 경로 전염을 파악하기 위해 ‘죽음의 거리’가 된 런던 소호 가를 직접 돌아다녔다. 당시 사람들은 공기 중에 있는 독소가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을 일으킨다고 믿었다. 하지만 스노는 상수도의 오염된 물이 콜레라 대유행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집집이 돌아다니며 콜레라로 사망한 주민이 살았던 집을 조사해서 지도에 표시했다. 자신이 직접 만든 지도를 살펴본 스노는 콜레라 환자와 사망자들의 집이 특정 우물 펌프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스노가 의심한 우물 펌프가 콜레라 감염을 일으키는 진원지였다. 지도는 의사의 생각에 힘을 실어주었다. 한 장의 지도가 공기를 타면서 거리를 떠도는 저승사자와 같았던 콜레라의 실체를 밝혀주었을 뿐 아니라 죽음의 행렬을 멈출 해법을 보여주었다.
지도에는 넓고 거대한 세상이 축약되어 있다. 그렇지만 스노가 만든 콜레라 지도처럼 질병의 전염 경로도 담겨 있다. 역학 조사를 위해 만들어진 지도는 병균에 맞서 싸우는 의학자들이 반드시 챙기는 전투 장비다. 《질병의 지도》는 아주 작고 치명적인 적의 포위망을 뚫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류의 모습을 보여준다. 저자는 질병에 관한 모든 정보를 알려주면서 질병을 대하는 당대 사람들의 인식까지 들려준다. 과거 사람들은 실체와 감염 원인이 알려지지 않은 전염병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 사람들의 일상은 죽음과 너무나도 가까이에 있었다. 보이지 않은 적의 공격을 받아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다가 죽어가는 주변 사람들을 지켜보는 일이 전염병 대유행 시대의 흔한 풍경이었다. 전염병의 위력에 굴복하지 않은 사람들은 온몸을 죄어오는 고통을 최대한 덜어주고,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치료법을 찾기 위해 계속 시도했다. 그러나 적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고안한 치료법은 한계가 있다. 비과학적인 치료법은 오히려 죽음을 재촉하는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했다. 저자는 여러 가지 전염병에 내리 패배하는 인류의 처절한 모습도 보여준다.
질병에 굴복당한 사람들을 살리고, 질병에 언제 포위당할지 모르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인류의 도전들은 헛수고로 끝났다. 지금 보면 다시 거론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우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과거 사람들의 이야기를 왜 알아야만 하는가. 여러번 전 세계를 휩쓴 전염병 대유행 시대를 피부로 느낀 인류의 헛수고는 단순히 지나간 옛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전보다 더 강력해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염병 대유행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 우리가 다시 봐야 할 ‘역사’다. 이 역사는 무지한 그들을 비웃을 수 있는 ‘흑역사’가 아니다. 지금 우리는 살 수만 있다면 허무맹랑한 치료법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과거 사람들을 비웃을 처지가 아니다. 우리도 과거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있다. 전염병 대유행 시대가 길어질수록 사람들의 심리는 불안해진다. 전염병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은 사실과 거짓을 차분하게 판단하게 해주는 이성을 닳게 만든다. 이때 전염병과 관련된 가짜 정보들이 여기저기 나타나 이리저리 떠돌게 되고, 이성에 구멍이 숭숭 뚫린 사람들을 찾아 파고든다. 이 사람들이 백신 부작용까지 두려워하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에 현혹되기 쉽다. 저자는 2017년 루마니아에 홍역 환자 수가 전년보다 급증한 사례를 들면서 백신을 거부하는 태도가 전염병 대유행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질병의 지도》에 소개된 발진티푸스는 가난한 사람들이 걸린 전염병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가난한 발진티푸스 환자들은 사회로부터 강제로 격리되거나 멸시받았다. 《질병의 지도》는 전염병 대유행 시대의 환자들이 차별받는 현실에도 주목한다. 나병(한센병)과 에이즈 환자들은 살아 있어도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환자들을 위험 존재로 취급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전염병 감염 경로를 밝혀내는 작업을 훨씬 더 어렵게 만든다. 환자의 삶을 비참하게 만드는 발진티푸스의 위력을 확인한 어느 의학자는 “발진티푸스의 역사는 인류 고난의 역사와 같다”고 말했다. 2019년 11월 중순에 시작된 전염병 대유행에 지친 사람들은 의학자의 말에 들어 있는 발진티푸스를 ‘코로나19’로 바꾸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를 위협하는 전염병이 생각보다 많다. 게다가 현행 치료법과 백신도 소용없는 변이 병원균이 나타나고 있다. 전염병의 역사는 인류 고난의 역사다. 하지만 전염병 대유행에 인간만 고생하는 것이 아니다. 인류는 살기 위해서 전염병을 전파하는 동물을 찾아내 도살했다. 심지어 전염병을 전파할 가능성이 있는 동물마저 도살 대상이 되었다. 모든 인간은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런 이유만으로 인간을 지구의 유일한 주인이라고 볼 수 없다. 전염병의 역사는 동물 고난의 역사이기도 하다.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알
* 42쪽
특별한 치료은 없지만 → 특별한 치료법은 없지만
* 82쪽
특히 젊은 시절의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주1]는 『동백 아가씨(The Lady of the Camellias』에서,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에서 이 질병에 영감을 받았다.
[원문, 원서 82쪽]
notably Alexandre Dumas, the younger, in his novel The Lady of the Camellias and Giuseppe Verdi in his opera La Traviata.
[주1] 《몬테크리스토 백작》과 《삼총사》를 쓴 알렉상드르 뒤마(1802~1870)와 《동백 아가씨》의 작가 뒤마(1824~1895)는 동명이인이다. 두 사람은 이름이 같은 부자(父子) 관계다. 그래서 두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 아버지를 ‘뒤마 페레(père)’, 아들을 ‘뒤마 피스(fils)’라고 부르기도 한다. ‘père’와 ‘fils’는 각각 아버지와 아들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원서(The Atlas of Disease)의 ‘the younger’는 아버지와 이름이 같은 영미권 남성의 이름 뒤에 붙이는 ‘junior(Jr.)’와 같은 의미로 번역할 수 있다. ‘젊은 시절의 알렉상드르 뒤마’는 《동백 아가씨》의 작가를 아버지 뒤마로 잘못 알고 있는 역자의 오역이다.
* 110쪽
기원전 5세기 히포크라테스의 글에서도 장티푸스처럼 보이는 병에 대한 묘사가 발견된다. 그리고 로마의 황제 카이사르[주2]가 열병을 치료하고자 냉수욕했다는 보고에서 그가 앓았던 병이 장티푸스일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원문, 원서 110쪽]
A description of what appears to be typhoid is found in the writings of the fifthcentury BC Greek physician Hippocrates, and a report of Emperor Caesar Augustus of Rome taking cold baths in order to treat a fever is thought to refer to the illness, but it is impossible to be sure.
[주2] ‘Caesar Augustus’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가 아니라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옥타비아누스(Octavianus)의 칭호이다. 그는 카이사르의 양자 및 정치적 후계자로 지명받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다. 원로원은 초대 황제에게 ‘존엄한 자’라는 뜻의 아우구스투스(Augustus)라는 존칭을 주었다.
* 150쪽
특별한 치료이 없으며 → 특별한 치료법이 없으며
* 182쪽
검증된 치료은 없음 → 검증된 치료법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