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5.18, 두레양서조합 사건
김상숙 지음 / 책과함께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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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점  ★★★★★  A+














19809, 갑자기 대구의 바위섬에 폭풍우가 덮쳤다. 민주주의가 익어가던 5월의 광주를 무자비하게 짓밟은 폭풍우가 대구까지 오고 말았다바위섬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주민들은 폭풍우를 피하려고 뿔뿔이 흩어졌다그들 중 일부는 폭풍우에 휘말려 모진 고생을 했다


반공 프레임에 갇힌 사람들은 바윗섬 생존자들을 빨갱이라고 손가락질했대구는 유독 바위섬 주민들을 싫어했다. 대구 토박이는 땅에 한 번 박히면 꿈쩍도 하지 않은 바윗덩어리만 보고 자라왔다. 광주를 제외한 1980년대 전국은 전두환을 위한 국가였다. 전국 언론사와 방송국은 광주에 폭풍우를 일으킨 전두환 정권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다 같이 입을 맞췄다. 신문과 TV는 국가를 무너뜨리려는 폭도들이 광주에 모여 있다는 가짜 뉴스를 퍼뜨렸다. 그러면서 북한의 지령을 받은 간첩과 손잡은 폭도들을 진압한 5월의 폭풍우를 옹호했다. 광주의 참상을 모르는 대구 시민들은 전두환 정권이 옳은 일을 했다고 믿었다. 


아득히 먼 옛날 대구에 바위섬들이 많았다. 그곳에 평등한 세상을 꿈꾼 공산주의자들이 모여 살았다.[주1]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분열하자 대구의 공산주의자들은 북쪽으로 건너갔다활발한 사람들이 살지 않는 바위섬은 점점 생기를 잃으면서 붙박이들이 살기 좋은 바윗덩어리로 변했다.


19809월에 사라진 대구의 마지막 바위섬은 경북대학교 후문(현재는 서문근처에 있었다. 이 바위섬의 이름은 두레 서점이다두레는 농사일을 돕기 위해 만든 작은 조직을 뜻한다. 두레 서점을 만든 바위섬 주민들은 과거에 농촌 문제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이었다. 이들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농민의 권익 보호를 위한 농민운동에 뛰어들었다. 이 시기의 박정희 정권은 강력한 추진력으로 산업화 정책을 밀어붙였고, 농촌 경제를 더 악화시키는 저곡가 정책까지 단행했다. 대구와 경북 지역 대학생들은 대학 4-H 연구회[주2]를 결성하여 박정희 정권의 농업정책을 비판했다.


대학 4-H 연구회 소속 학생들은 사회 문제를 깊이 파고들기 위해 두레 양서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조합원들이 모인 자리에 두레 서점이라는 바위섬이 생겼다. 두레 서점은 생각의 폭을 넓혀주는 책들이 잔뜩 펼쳐진 정원이자 젊은 민중 운동가들의 결속을 다지는 아지트였다. 두레 조합원들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 독재 체제에 반대하는 학생 운동을 주도했다. 민주화 바람이 불기 시작한 안동에 가톨릭교회와 연대하여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가톨릭농민회가 만들어졌다1979년에 경찰은 정권을 줄곧 비판해 온 안동가톨릭농민회 소속 간부와 가톨릭 신부들을 강제로 체포하고 감금했다박정희 정권의 비민주적인 만행이 알려지자, 경북대학교, 영남대학교, 계명대학교 학생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정권의 종교 탄압을 규탄하는 가톨릭 교구들의 기도회가 전국에 열렸다.


두레 서점에 가면 불온서적으로 알려진 마르크스(Karl Marx) 관련 서적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대구의 마지막 바위섬은 빨갛지 않았다두레 조합원들은 민주주의를 염원했다. 그들은 총과 탱크로 광주 시민들을 위협한 폭풍우의 진실을 알고 있었다. 전두환은 광주 민주화운동을 저지하기 위해 폭동 진압을 명분으로 계엄군을 동원했다두레 조합원들은 군부 정권이 감추려고 했던 광주 5·18 항쟁을 처음으로 접했다. 그들은 광주에 갇혀 버린 진실을 알리고자 유인물을 제작하여 배포했다. 하지만 바위섬 주민들도 계엄군이 통제하는 대구 한가운데에 갇히고 만다. 그들은 시민과 학생들이 동참할 수 있는 거리 시위를 계획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전략이 없어서 거세게 저항하지 못했다. 광주에 이어 대구마저 점령한 계엄군을 뚫을 힘이 부족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무르익었던 반공주의는 대구의 민주화 열기를 식게 했다. 보수적으로 변한 대구에 박정희반공’, 이 두 단어가 깊이 새겨진 바윗덩어리가 많아졌다.


바위섬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19809, 전두환 정권은 조용히 반독재 저항 운동을 준비하던 두레 서점을 습격했다. 두레 조합원들이 예상하지 못한 폭풍우가 갑자기 찾아왔다. 경찰은 민주화운동에 합류한 시민, 학생, 농민 100여 명을 강제로 연행했다. 두레 서점은 북한을 찬양하는 불온서적을 유통하고, 북한 간첩들을 은밀히 지원한 반국가단체로 낙인찍혔다대구에 하나뿐인 바위섬은 허망하게 사라졌다.


민중 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두레 조합원들은 혹독한 고문을 받았고, 감옥에서 치욕적인 가혹행위를 겪었다. 몇몇은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살아남은 바위섬 주민들을 계속 괴롭히는 것은 고문 트라우마가 아니라 죄책감이다. 그들은 광주 5·18 항쟁에 합류하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저항한 자신들을 스스로 실패자로 여긴다.


두레 양서협동조합의 민주 항쟁을 실패로 단정할 수 없다. 두레 서점에서 시작된 대구 민주 항쟁은 끝나지 않았다. 독재 정치와 두레 서점이 사라졌어도 민주주의와 역사의 진실을 지키는 일은 계속되어야 한다민생은 뒷전이고 정쟁만 일삼는 우파 정치인은 반공주의를 활용한다. 정계 입문을 노리는 극우 선동가들은 광주 5·18 항쟁을 북한이 개입한 폭동이라고 주장한다








박정희의 이름이 새겨진 바윗덩어리는 동대구역 광장의 동상이 되었다. 농촌을 죽이고, 도시로 이주한 농민들을 빈민으로 만든 박정희 정권의 저곡가 정책을 생각하면, 농부 코스프레를 한 박정희의 모습은 부자연스럽다. 이렇듯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잘못된 과거는 지금까지도 민주주의와 역사의 진실을 위협하거나 왜곡한다성숙한 시민은 과거사에 짙게 드리워져 있었던 독재의 그늘을 잊어서는 안 된다독재의 그늘은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방심하면 암울한 그늘이 스멀스멀 나타날 수 있다. 민주주의를 가린 독재의 그늘을 부지런스레 걷어낸 민중 운동가들을 기억해야 한다두레 서점이 세월 속에 지워지더라도, 두레 양서협동조합의 항거 정신은 우리가 되새겨야 할 민주주의 정신이다.







<5월 18일과 815일을 함께 기억하고 싶은[주3] cyrus의 주석>








[1] 대구는 과거에 조선의 모스크바라고 불릴 정도로 사회주의자들이 많이 활동한 지역이었다. 현재 대구의 모습과 완전히 정반대인 붉은 대구를 자세히 알고 싶어서 참고할 만한 책이 있는지 찾아봤지만, 일반 독자들을 위한 책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때마침 일제강점기 시절에 활동한 조선 사회주의자들을 주목한 박노자의 신간 붉은 시대: 독립을 넘어 쇄신을 꿈꾼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 유토피아》(원영수 옮김, 한겨레출판, 2025년)가 출간돼서 대충 훑어보긴 했다. 그런데 대구와 경북 출신 사회주의자들이 많이 언급되지 않았다. 대구 · 경북 내 사회주의 운동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지는 책을 정독해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정독하지 않고 책을 살펴보다가 유일하게 발견한 경북 출신 사회주의자는 조선공산당 창립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인 권오설(1897/1898~1930)이다.




[주2] 4-H는 1920년대 미국에 발족한 청소년 단체이다. 두뇌(Head), 마음(Heart), (Hand), 건강(Health)의 머리글자를 뜻한다. 우리말로 번역된 4-H의 뜻은 (: Head), (: Heart), (: Hands), (:Health).




[주3] 815를 거꾸로 하면 518, 518을 거꾸로 하면 815. 경북 안동 출신의 시인 이육사는 좌익 계열의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1898~1958?)이 만든 의열단에 가입한 독립운동가. 시인이 태어난 날은 1904518일(음력 4월 4일)이다. 시인의 동생은 문학 평론가 이원조(1909~1955). 형제는 마르크스-레닌주의자(ML)였다.












[주4] 책 앞표지에 그려진 도안은 사발통문을 연상시킨다. 사발통문은 둥근 사발 형태로 글이 적힌 문서다. 동학 농민운동을 이끈 녹두장군 전봉준은 주동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도록 사발통문을 활용했다. 비상계엄령이 내려진 19805월 광주 5·18 항쟁을 알고 있었던 경북대학교 학생들은 광주 시민들을 학살한 전두환 정권과 계엄군의 만행을 폭로하고, 시위 장소를 알리는 사발통문을 배포했다



 비상계엄이 확대된 뒤 경북대학교 학생들은 524반월당에 모여서 시위하자고 사발통문이 돌았어요. 그날 막상 반월당에 가니까 경찰차만 길가에 쭉 있고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어요. 우리는 덕산빌딩 쪽에서 서성거리다가 시위는 포기하고 술 마시러 중앙공원 쪽으로 갔어요.


(대구의 5·18, 두레양서조합 사건》 중에서, 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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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5-08-16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시루스님의 글은 좋았지만, 이번 글은 특히 더 좋네요.
518과 815가 그런 관계로군요.

그런데 어떻게 알라딘에 글을 쓰면서 이렇게 깔끔하게 편집을 잘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html 편집을 잘 하시는 건가요?
알라딘에 사진을 넣으면 사진 크기 줄이기도 어렵고, 영 불편하기만 하던데요.
늘 시루스님의 글은 깔끔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cyrus 2025-08-17 07:42   좋아요 0 | URL
원래 이 책을 5월에 소개하려고 했는데, 차일피일하면서 미루기만 했어요. 광복절 날짜를 거꾸로 하면 518이라서 저는 특별한 방식으로 서평을 써봤어요.

글은 한글2022 프로그램에 쓰고요, 사진은 마우스 드래그 기능으로 크기를 조절해요. 사진이 너무 크면 가장자리 쪽이 잘린 채 나와서 제가 봐도 만족스럽지 못해요. 그래서 사진 크기를 줄이거나 작게 잘라서 편집해서 등록하는데, 문제는 해상도가 떨어져요. 원본 사진보다 선명하지 않아서 아쉬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