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나의 안녕을 근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나 스스로 '나는 안녕하신가?'하고 문안하는 것은 아무 쓸모없는 수고일 따름이다. 아, 누군가 한 명은 내 싸이에 '잘살고계신가'하고 물었고, 또 어느 숙녀 한 분은 '오빠..쪼금...보고싶어요'하고 애교를 떨었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살고 있는 것인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서, 나는 충분히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출근을 하지 않기 시작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한동안은 아침 8시쯤이면 자동적으로 눈이 떠지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티비를 켜고, 불을 키고, 신문을 주워온다. 그리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며, 더 자도 된다는 사실에 행복해진다, 스르르.
하루 종일, 자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이창호와 최철한의 응씨배 결승 대국 중계를 본다. 인터넷으로도 티비로도. 바둑이란 게임은 지겹게 오래한다. 많이 줄었다지만, 응씨배는 합이 7시간이 넘는다. 그러는 사이, 내 바둑 실력은 1단이 줄었다. 인터넷 바둑 사이트에서 2단으로 내려앉았다. 초반 포석에서 손해를 많이 보고 시작해 아등바등 따라가다가 역시나 엷은 형국이 실속없이 무너져내려 지거나, 왕창 집을 챙겨 이겼다싶은 방심에 끝내기에서 응수를 제대로 못해 지고마니, 내리 그렇게 패배를 거듭하다가, 이내 레벨이 다운되고 만 것이다.
오래동안 묵혀 뒀던 기타를 꺼내 튕겨보기도 하지만, 이놈의 쇠줄은 연약한 내 손가락에 핏자국만 남기면서 쓰라려져, 내팽개치고 만다. 어스름 저녁이 되는 슬슬 배가 고파진다. 무엇인가는 먹어야 산다. 하루에 한 끼를 먹는 것도 귀찮다. 담배가 다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채고야, 겨우 밖으로 나온다. 어둠은 짙고 인적은 드물다. 담배 한 갑을 사서 한 가치를 꺼내물고는 즐비한 식당 중 가장 한적은 곳으로 찾아들어가 저녁을 해결한다. 배부름은 일찌감치 찾아오고, 포만감에 휩쓸리어 자연스레 당구장으로 향한다. 말이 당구장이지 그 늦은 시간에 나는 커피 한 잔을 얻어먹고 수다를 떨어 집으로 집으로.
당구 실력도 형편없이 줄었다. 한창 잘 나갈때는 이 근처에서 누구라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충천하였더랬다. 나이값을 하려는지, 공들은 제각기 돌아다니고, 다마는 저질이 되고, 늙으면 당구는 커녕, 죽어야 하는 것이어야 함을 나는 다짐한다.
야한 밤에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오는 것은 누구나가 생각하는 것처럼 전혀 외롭거나 씁쓸하거나, 허전하지 않다. 집에 들어와서는 티비를 켜고 컴퓨터를 켜고, 다음에 들어가 메일을 들춰보고, 카페에 들어가고, 알라딘 서재 창을 열어놓고, 간간이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고, 싸이에도 가보고, 싸이 카페에도 들어가보고, 타이젬 이라는 바둑 사이트를 항시 켜놓고, 레벨이 낮아진 김에 느긎하게 내 희생양이 될 대국 상대의 부름을 기다린다. 여전히 승률은 저조하다.
나의 사는 일상, 7일을 이렇게 살았다. 잘 사느냐고 묻는다면, 적어도 나는 이렇게 잘 살고 있다. 살아서 숨쉬는 것 자체로 잘 사는 것일수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숨만 쉬며 살아있는척하지는 않고 있다는 말이다. 잘 살고 있다. 됐다.
책? 거의 읽지 않는다. 애초에는 책을 열심히 읽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 책읽기라는 것이 그리 썩 좋은 의도의 책읽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나는 그간의 나의 책 읽기를 '외면으로써의 책읽기'라고 명명하였다. 나는 꾸준히 그 무엇인가를 '외면'함으로써 책을 읽었다. 누구나 그러할 것이다. 더 정확히는 무엇인가를 피하고 싶고, 미뤄두고 싶고, 잊고 싶어서 책을 읽었다고 말해야 하겠다. 일을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책을 꺼내들고 똥배짱을 부렸다. 화장실에서도 나는 책을 읽으며, 나오지도 않는 변을 보겠다고 애써 앉아있었다. 만날 친구도 하나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잊고 싶어 책을 읽었는지도 몰랐다. 오지않는 전화는 단지 시계일 뿐이라고 외면하고자 책을 읽었던 것인지도 모르고, 나 스스로 무식하고 터무니없고, 지지리 못났다는 사실을 감추고자 책을 읽은 것이다. 아니 읽는 흉내나 냈을 뿐이다.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
그런데, 지금 요 며칠은 그 외면할 대상을 찾지 못해, 책을 읽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계획은 있다. 이 생활이 열심히 지겨워지면, 그때는 이러저러한 책을 읽어야지 목록도 대강 머릿속에 짜여져 있고, 공부도 할 생각이고, 여기저기 싸돌아다닐 작정이다.
며칠전인가? 나의 이 생활의 어느 해방꾼이 전화를 걸어와, 내 안부를 묻는 척하면서, 내 생활의 극도의 변화를 반강요하는 요사스런 언행을 하였다. 괘씸하기는. 소.개.팅. 나는 나의 이 생활이 극에 달할때까지 어떤 외부의 변화를 수반할 생각이 전혀 없다. 죄송스럽지만 말이다.
하여간 나는 이렇게 살고 있고, 나는 누군가들이 쪼금은 보고싶어지지만, 행여나 나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 이들이 있다면, 얼마간 침묵하시라. 심지어 나의 부모님들도 침묵중이시니 말이다. 귀한 아들이 어떻게 쳐먹고쳐자는지 도무지 이 분들은 궁금해하질 않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짜증섞인 전화음성에 괜히 건드리기 싫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아 지금은 나 그냥 이렇게 산다. 어찌, 잘 사는 것 같은신가? 아 고마운 일은 그 사이에도, 즐찾이 한 분 늘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