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미술관 -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이야기
이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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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을 통해 사회의 여러 문제를 짚어보는 책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이유리작가는 탁월하다.

그의 글의 최대의 강점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에둘러 말하지 않고 논점을 정확하고 명쾌하게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게 별거냐고  할수도 있는데 잡문 나부랭이라도 쓰본 사람은 안다. 그게 별거라는걸.....

나같이 몇명 보지도 않은 리뷰정도만 쓰는 사람도 글을 쓸 때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한다.

' 아! 이게 확실한가? 괜히 이렇게 썼다가 틀렸다고 지적 받는거 아니야? 아! 이렇게 쓰면 너무 과격한가? 내가 제대로 생각한거 맞나? 혹시 이렇게 썼다가 상처받는 사람이 생기는 건 아닌가?' 등등등.... 아니 내 글을 몇명이나 읽는다고 저런 쓸데없는 걱정과 자기 검열로 글을 몇번이나 고쳤다 다시 썼다 하는거다.

그래도 자신없는 분야는 두리뭉실 쓰거나 에둘러서 뭔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둔다. 이 과정에서 글은 논점이 불분명해지고 재미없어진다. 

그러므로 이유리 작가가 아주 명쾌한 글을 쓴다는 것은 이런 위험부담을 다 작가 스스로가 안고 간다는 것이다.

다양한 방면에서의 공격이 예상됨에도 내 할말은 하겠다는 기개가 있는 글이다.

그래서 이 책은 멋있다. 


예를 들려고 하니 첫번째 이야기부터 심상찮다.



서양화에서 흔하디 흔한 그림이지만 이 그림의 제목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876년 쥘 르페브르라는 화가가 그림 <동굴 속의 막달라 마리아>다.

아니 비너스가 아니고 막달라 마리아? 예수의 제자 막달라 마리아라고?

신성모독으로 저 화가 종교재판에 회부되지 않았나싶은데 그런 일은 없었다. 

막달라 마리아가 저렇게 관음증적인 시각으로 그려진 것에 대해 이유리작가는 단호하게 그래도 됐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예수의 제자였으며 십자가 아래에서 다른 제자들이 회피했을 때에도 마지막까지 예수의 죽음을 지켰고, 부활한 예수를 처음으로 본 이도 막달라 마리아다. 그리고 예수 사후 광야의 동굴에서 은둔 수도자로 30년을 더 살았다고 한다.

이 정도면 기독교의 성인 반열 중에서도 베드로 못지 앟은, 아니 베드로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어야 하지 않겠나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베드로의 심기를 어지럽혔으리라.....

여자인 막달라 마리아가 자신들보다 더 예수와 그의 가르침과 더 가까웠다는 것을 어떻게 인정할 수 있었을까?

이후 기독교 역사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꾸준히 폄훼되었고, 심지어는 근거가 불분명한 기록을 인용해 마리아라는 이름이 같다는 것만으로 막달라 마리아를 창녀 출신으로 만든다. 심지어 591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가 설교를 통해서 말이다. 


마네의 그림 <올랭피아>에서는 올랭피아 외에도 한명의 인물이 더 등장한다. 

꽃다발을 들고 있는 흑인 하녀말이다.

이 흑인하녀는 이름도 없고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데 왜 그림속에 등장할까?


올랭피아는 인기 많은 쿠르티잔으로 설정됐기에 일단 미모가 출중해야 했다. 마네는 올랭피아의 미모가 돋보이려면 한눈에 비교될 많안 못생긴 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마네에게 그런 여자로는 흑인이 적격이었다. 이는 마네 이전에도 백인 남성 화가들이 흑인 여성을 소비한 방식이기도 하다. - 32쪽


수많은 그림해설하는 이들이 올랭피아란 그림이 당대 부르조아 사회에 던진 도발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이유리 작가는 이 그림속 흑인 여성 '로르'의 이야기를 전한다. 

장 미셀 바스키아의 그림 <올랭피아의 하녀>를 통해서....



그래피티로 유명한 장 미셀 바스키아는 

어느 날 미술관에 가서 여자 친구에게 "이곳을 봐. 흑인이 하나도 없지?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흑인이 미술관에 들어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야."라고 말했다.

그저 한마디 말만으로도 미술계의 인종차별의 실상을 드러내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지 않은가?



후세페 데 리베라가 그린 <내반족 소년>이라는 그림이다. 

내반족은 발이 안쪽으로 휘는 장애를 가리키는 말이란다. 가난하고 장애가 있는 이 소년의 그림은 왜 그려진걸까?

흔히 좋은 말로 이 그림은 '어려운 환경에도 삶을 긍정하는 인간'에의 경의를 표현한 그림으로 소개가 되곤 했다지만 에이 그럴리가? 1642년에 그려진 이 그림을 생각하면 정말로 물감도 비싸고 그림은 부자나 권력자의 주문이 없으면 그려지는 것 자체가 어려운 시절이다. 그리고 당대의 부자나 권력자들이 하층민 소년에 대해서 저런 생각을 했을리가 없을텐데 말이다. 

비밀은 소년이 쥐고 있는 종이의 글자에 있다. 

"당신이 신의 사랑을 받으려거든 저에게 자선을 베풀어주세요."라고 라틴어로 적혀있는 것이다.

성격에서는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라고 했다.

부자와 권력자들은 바로 그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위해서 저런 그림을 주문하고 자신의 선행의 증거로 삼았던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훨씬 더 그럴듯하지 않은가? 


이유리 작가의 그림 해석은 기존의 해석과 다른 면들이 많다.

그래서 읽는 재미가 있고, 다르게 읽는데 주저함이 없으므로 역시 이 책은 끝까지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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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0-14 16: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멋있는 책이라니~ 막달라 마리아 그림은 그래도 한 번 본 그림이라 익숙한데 두 그림은 전혀 못 보던 그림입니다. 올랭피아가 아닌 로르에 대한 주목 참 좋네요. 그리고 <내반족 소년> 뒤의 해석이 역시 더 설득력 있는 것 같은데요?
이 책 미니님도 언급해주셨던 책이었던 것 같은데 관심이 더 생기네요! 고리타분한 해석보다 새롭게 접근하는 이런 시도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바람돌이 2022-10-15 13:39   좋아요 1 | URL
새로운 해석을 하면서도 정말 쉽고 명확하게 얘기한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에요. 이유리 작가의 다른 책을 봐도 그런 경향이 있는데 다른 책에서는 약간씩 걸리는 부분도 있었는데 이번 책은 그런 것 없이 모든 글이 다 좋았어요. 추천합니다.

잠자냥 2022-10-14 17: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 표지부터 삐딱하니 화끈하네요. ㅎ 흥미가 갑니다!

바람돌이 2022-10-15 14:15   좋아요 2 | URL
표지의 저분 남자예요. 심지어 저 그림을 그린 화가는 저 남자분의 아내고요.
뼛속까지 여자가 되고싶어했던 저 분은 성전환수술을 몇번이나 하다가 결국 수술휴유증으로 돌아가셨다네요. 안타까웠어요.

미미 2022-10-14 17: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말씀 이곳저곳에 공감만땅입니다. 자기검열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요?
최근 읽은 한나 아렌트 평전에서 자신을 용기있게 드러내고 현실을 겪어내는 삶에 대한
문구에 감동받은 기억이 떠오르네요. 그렇게 똑똑한 한나 아렌트도 결코 쉽지 않았을
그길을 뚜벅뚜벅 그렇게 걸었구나 뭉클뭉클했어요. 이유리 작가도 그런 사람같아요.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요.^^*

바람돌이 2022-10-15 14:17   좋아요 1 | URL
한나 아렌트는 왜 그렇게 감동적인 말만 한대요? ㅎㅎ
하긴 말만이 아니라 삶도 감동적이죠. 자신을 온전히 드러낸다는건 어떤 경우에도 참 용기가 필요한일이예요.
이런 책을 읽으면서 내게 모자란 용기를 충전하고 있습니다. ^^

coolcat329 2022-10-14 18: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바로 찜입니다. 마네의 올랭피아의 흑인하녀가 그런 의도 였다니 놀랐습니다. 제목이 왜 기울어진 미술관인지 알겠어요.

바람돌이 2022-10-15 14:18   좋아요 1 | URL
백인 남자 화가들 자신이 일부러 생각한게 아니라 하더라도 당대의 사회적 문화적 분위기가 저런 해석을 가능하게 할 것 같아요. 이 책에는 인종 외에도 여러가지 차별들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어요. 그래서 기울어진 미술관... ^^

희선 2022-10-15 0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림을 여러 가지로 보는 거 좋은 거겠지요 누가 뭐라 하든 자신의 생각을 밀고 나간다니 멋지네요 그렇게 그림을 보고 글을 써서 많은 사람이 그 글을 좋아하겠습니다 끝까지 멋있는 책이군요


희선

바람돌이 2022-10-15 14:19   좋아요 1 | URL
네 끝까지 멋있는 책이었고 작가인 이유리라는 분도 끝까지 멋있었습니다. 오랫만에 이렇게 명쾌하게 얘기해주는 책을 보는 저도 즐거웠고요. ^^

난티나무 2022-10-15 02: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됐기 때문에!!!!!!!!!!!!! 😡

바람돌이 2022-10-15 14:19   좋아요 1 | URL
실제로 책 안에 이유리 작가가 저렇게 썼어요. 그래도 됐기 때문이라고요. ^^

2022-10-15 0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0-15 14: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2-10-15 08: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아! 이 책 정말 근사하네요. 최근에 페미니즘 영향으로 예술 작품을 다른 시선으로 보는 경향이 우세한 듯 하잖아요. 미술 쪽이 특히 앞서가는 것 같은데 이유리 작가의 책은 그림 선정에서부터 문제 제기를 하는 것 같아요. 논점을 명확히 하는 글쓰기에도 큰 점수를 주신것 기억해 둘게요.
자기 검열 이야기하셨는데, 저도 그런 생각 많이 하거든요. 읽는 사람도 적은, 우리 조용한 알라딘서재에 독자리뷰일 뿐인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자꾸 검열하거든요. 저도 바람돌이님과 같은 생각 여러 번, 지금도 자주 하는 생각이라 너무 공감됩니다.

바람돌이 2022-10-15 14:30   좋아요 2 | URL
서양의 유명 미술관 가면 아는 그림보다 모르는 그림이 더 많잖아요. 사실 그 미술관에 들어올정도면 다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일텐데 우리가 잘 모르는거죠. 이 책에서 이유리작가가 제시하는 그림들은 처음 보는 그림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저는 나름 미술관도 많이 가고 미술사 공부는 좀 해서 이런 저런 그림을 많이 봣다고 생각하는데도 말이죠. 그래서 이유리 작가의 그림선정이 굉장히 신선햇어요.
어떤 글이든 글을 쓰는 사람은 자기 검열을 피할 수 없다고 봐요. 다만 그 자기검열을 어느 지점에서 하고 있는지는 항상 돌아보고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할뿐요. ^^

그레이스 2022-10-15 22: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유리 작가의 해석은 정말 달라요.
그림을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죠.
강하지않은 억양으로 설득해요
멋있는 책이예요

바람돌이 2022-10-17 14:16   좋아요 1 | URL
그림 좋아하시는 그레이스님이 동의해주시니 더욱더 제 기분이 업됩니다.
아이 참 제가 쓴 책도 아닌데 제가 왜..... ㅎㅎ
어쨋든 중요한건 이유리 작가는 앞으로 책이 나오면 다 보게 되겟구나 싶네요.
 

 아주 간단한 것이라도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 제도나 물건이나 체계가 누구를 기준으로 만들어졌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여성의 특성과 필요가 반영된 젠더데이터를 만들어, 이를 바탕으로 공백을 메우고 사회의 균형을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상황을 고려한정책이라면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 P19

성폭력의 원인은 화장, 야한 옷차림, 술이 아니라가해자다.
그래서 성폭력을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가해자가 되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 P36

여성이 자전거를 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자전거 조차 못 타게 하는 문화가, 어디에선가 눈에 보이지 않는약한 여성의 목숨을 빼앗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 P52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손해로 여기고 꺼린다면, 결혼과 출산이 이익이 되게 할 정책과 제도적·문화적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2016년 행정자치부가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대한민국 출산지도‘ 홈페이지를 만들었는데, 여기에 지역별 ‘가임기 여성 수‘를 표시한 지도가 있었다.
정부가 여성을 ‘애 낳는 도구‘로 본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여성들의 결혼과 출산 거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 P80

아내의 위치에 있다는 이유로 그녀에 대한 일상적인 폭력을용인하는 사회를 건설해 왔으며 ‘그것을 사소한 문제, 탈정치적문제로 치부했다고 말한다. "가정폭력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가장 광범위하고 가장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는 폭력이다." 폭력이 가부장제 속에서 강화된다.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사회 구성원보다는 가족 구성원으로서 구실을 우선적으로 요구받는다. 이에 따라 폭력 남편들은 자신이 아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일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을 때 자신에게 교정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폭력을 범죄가 아니라 역할 수행으로 받아들이는것이다. - P95

남성이 임신에 기여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여성의 신성은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것이 되었다. 그리고 숭배 대상이 남근으로 바뀌었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인류가 자연에 순응하는 채집보다는 자연을 길들이는 집약적 농업을 통해 안정적으로 먹을 것을 구하게 되고, 육체적 힘이 필요한 농사가 남성의 일로 여겨졌다. 한곳에 머무르며 농사짓고 사는 집단 간 다툼이 벌어져도 힘이 센 남성이 적극적으로 군사를 조직하고 나서면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여성에게 있던 권력이 이렇게 차차 남성에게 넘어가고, 여성이 날마다 하는 반복적인 일은 폄하되었다. 이런 힘의 이동은 전세계의 신화가 뒷받침한다. 지역에 따라 시기는 다르지만, 예수탄생 전 1000년 동안 대모신은 서서히 사라지고 그 자리를 남신이 차지했다. - P134

그런데 나이팅게일은 아픈 병사를 묵묵히 치료하는 이미지에가둘 수 없는 투사였다. 그녀는 사실 ‘망치를 든 여인‘으로 불렸다. 군의 지휘관이 필요한 의약품을 주지 않자 잠겨 있던 약품 저장실을 과감하게 공격해서 붙은 별명이다. 나이팅게일이 든 ‘망치‘ 대신 ‘등불‘만 강조하는 것은 그녀의 혁신적이고 강한 모습을당대 남성들이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 P149

사실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도 돌봄은 지나치게 여성만의 일이었다. 그러다 전에 겪어 보지 못한 팬데믹 상황에서돌봄이 필요한 곳은 많아지고 여성의 부담이 더욱 커진 것이다.
UN은 2020년 4월에 발표한 정책 보고서에서 코로나19 가 여성들이 수십 년간 노력해서 일군 성평등 관련성취를 후퇴시킬 수 있다고 했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코로나19로 가중된 돌봄 노동이 육체적인 고통과 고립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 P164

정치철학자 이현재가 새로운 페미니스트들을 ‘규정할 수 없는 존재‘라는 점에서 ‘비체(abject‘라고 명명했다. 비체는 ‘대상이 아닌 주체로서 공포스럽고 더러운 것‘으로 여겨지며 ‘기존의언어와 질서로는 파악할 수 없는 존재‘다. 이들은 특정 정체성을공유하지 않고 저마다 다른 자리에 있는 ‘분절된 타자지만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며 서로 의존하고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공감을 통해 연대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낯설고 공포스럽던 메리와 그녀의 괴물에게서 비체가 보인다. 이때 비체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가능성이다. - P214

 약자로서 자신을 잘 성찰한여성의 상상력은 소외된 모든 사람에게로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혐오가 일상이 되어 버린 시대에 약자의 자리에서 세상을바라보는 글들이 더 많이 흘러나와야 한다. 여성이 글을 쓰는 이유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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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2-10-14 14: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벌써 읽고 계시군요!

바람돌이 2022-10-14 15:31   좋아요 1 | URL
네 책이 잘 읽혀서 금방 읽히네요.
내용은 새겨들을 것이 많아 좋구요. ^^
 

찾아다니고 떠들고 일을 꾸미는 한에서 그녀는 한없이 자애로웠고, 남에게 후하게 베풀라고 명하는 데는 누구보다도 능했다. 그렇지만 이래라저래라지시하기를 좋아하는 만큼이나 돈을 좋아했고, 친지들의 돈을 쓰는 법만큼이나 자기 돈 아끼는 법을 잘 알았다.  - P16

"결혼 문제에서는 더더욱 그렇지요. 이미 결혼한 분들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언니, 여자든 남자든 속지 않고 결혼하는 사람은 백에 하나도 안 될걸요. 어디를 보나 온통 그런사람들뿐인걸요. 사실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겠다 싶어요.
세상의 온갖 거래 중 상대방한테는 가장 많은 것을 기대하면서 자기는 가장 부정직하게 나오는 게 결혼이니까요."동 - P68

노리스 부인은 패니에게 애정이 전혀 없었고 즐거운 일을 만들어 주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에드먼드의 말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다름 아닌 자기가 세운 것이니만큼 자신의 계획이야말로 최상책이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모든 걸 자기가 아주 훌륭하게계획해 놓았으니 어떤 변경도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 될 거라고 믿은 것이다.  - P118

옆에서 지켜보는 패니는 얼마나 잘 숨기느냐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이기심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도 재미가 없지 않았고, 결국 어떻게 끝이 날지 궁금하기도 했다. - P195

"안할트를 하겠다는 분이 안 나서는 것도 놀랍지는 않네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크로퍼드 양이 말했다. "어밀리아야 당해도 할 말 없지요. 아가씨가 그렇게 기가 세니 남자들이겁을 낼 수밖에요." - P212

자리를 뜨든 말든, 다들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가운데 앉아있든 쓸쓸한 동쪽 방으로 물러나든, 눈여겨볼 사람도 아쉬워할 사람도 없었다. 뭐든 이보다는 나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P234

두 자매는 중대한 기질적 결함이나 견해 차이가 없었던 만큼 서로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때는 얼마든지 좋은 사이로 지낼 수있었으나, 이런 시련 앞에서 자비나 공정을 보이거나 명예롭게 처신하거나 동정을 베풀 만한 애정도 원칙도 없었다.  - P238

‘애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시골 생활에 익숙해진 느낌이에요. 일 년에 절반은 시골에서 사는 것도 즐거운, 대단히즐거운 일이겠다 싶네요. 물론 조건이야 있지요. 친지들 한가운데 자리한 적당한 규모의 아름다운 집에서 그들과 끊임없이 모임을 갖고, 그 부근에서 가장 뛰어난 사교 모임을 주도하며 더 부유한 집 마나님들도 능가하는 사교계의 주역으로 칭송을 받고, 그렇게 한바탕 여흥을 즐기다 돌아와서는 최소한세상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람과 정담을 나눌 정도는 돼야지요 - P304

내가 바라는 건 간단해. 그냥 그 아가씨가 나한테 따뜻한 눈길을 보내주고, 홍조와 아울러 미소도 자주 보여 주고, 어디에서건 옆에앉게 해 주고, 내가 곁에 앉아 말을 걸때마다 생기발랄해지는것, 내가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고, 내가 가진 것, 내가 즐거워하는 모든 것에 관심을 보이고, 나를 맨스필드에 더 오래 묶어두려고 애쓰고, 내가 떠날 때 다시는 결코 행복할 수 없으리라생각하면 돼. 그 이상은 바라지도 않아." - P334

"에드먼드라・・・・・・ 그래, 내가 보기에도 그 친구는 (대체로)잘해 주더군. 토머스 경도 자기 나름대로 잘해주지만, 그래봐야 높은 자리에서 어려운 말이나 늘어놓으며 자기 생각만고집하는 부자 이모부 투를 벗어나지 못하지. 토머스 경이나에드먼드가 힘을 합친들 그 사람의 행복과 안락, 명예와 품위를 위해 뭘 해줄 수 있으며 지금 뭘 해 주고 있냐고. 내가 앞으로 하려는 일에 비하면 말야." - P430

지금 네 태도를 보니 너도 제멋대로 고집을 부릴 줄 아는구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그럴 작정인 모양이고 너를 이끌어 줄 자격이 얼마간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거나 그에 순종할 생각도 없고, 심지어 조언을 구할 생각도없이 말이다. 이런 네 모습은 내가 상상한 것과 너무나, 너무나 다르구나. 이번 일로 네 집안, 네 부모, 네 형제자매한테 미칠 득실은 한순간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게지. 그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네가 이렇게 훌륭한 결혼을 한다면 그들이 얼마나기뻐할지, 너한테는 아무 의미도 없는 거야. 오로지 네 생각만하는 거지.  - P459

패니는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모두 암담했다. 그렇지만 이모부의 노여움을 산 것이 가장 가슴 아팠다. 이기적이고 배은망덕한 아이! 이모부한테 그렇게 보였다니! 이제는 영원히 불행해질 수밖에 없었다.  - P462

"아니다, 얘야. 이런 혼처가 나선 마당에 나 불편한 것쯤이야 무슨 상관이겠니. 네가 크로퍼드 씨처럼 대단한 자산가와결혼만 한다면, 난 너 없이도 잘해 나갈 수 있어. 그리고 명심해라, 패니 이렇게 흠잡을 데 없는 혼담이 들어오면 수락하는게 모든 아가씨들의 의무란다." - P480

잠시 애써 마음을 추스른 후 패니가 말했다. "난 여자라면누구나 같은 생각일 줄 알았는데요. 아무리 인기가 많은 남자라도 여자 쪽에서 마다하거나 적어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고요. 모든 면에서 나무랄 데 없는 남자라도 어쩌다 마음만 주면 상대편에서는 무조건 좋다고 할 거라는 생각은 곤란하다고 봐요. - P509

이제 피붙이들과 함께하며 그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게 될 것이었다. 여태껏 받았던 어떤 사랑보다도 더 큰 사랑을 모든 식구들한테서 받고, 두려워하거나 자제할 필요 없이 애정을 베풀고, 주위 사람들과 대등한 기분을 맛보고, 크로퍼드 남매이야기가 나올 염려도 없고 그들의 일로자신을 질책하는 듯한 온갖 눈총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니! 생각할수록 기쁜 일이었지만, 그런 심정을 다 내놓고 말할 수는없는 노릇이었다. - P533

도 기필코・・・……… 그릇된 삶의 원칙이 문제야, 패니 섬세함이 무뎌지고 정신이 썩고 타락한 게 문제야. 어쩌면 나한테는 잘된일인지도 모르지. 더이상 속을 태울 일도 없을 테니… 하지만 아니야. 그 사람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갖느니, 그 사람을잃는 고통이 더욱 커진다 해도 기꺼이 그 편을 택할 거야. 그사람한테도 그렇게 말했지." - P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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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런 벽지 - 영한대역
샬럿 퍼킨스 길먼 지음, 김경숙 옮김 / 시커뮤니케이션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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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럿 퍼킨스 길먼은 그 자신이 산후우울증으로 의사에게 휴식치료법을 처방받았었다.

휴식 치료법은 환자를 종일 침대에 누워 쉬게 하고, 방문객을 맞이하거나 독서 같은 지적인 활동을 금지시키는 것이다. 대신 영양이 풍부한 식사로 몸무게를 늘리며 전통적인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에만 충실하도록 하는 것이 이 치료법이란다.

결국 휴식 치료법이란 것은 여성이 우울증이나 신경쇠약에 걸리는 것은 남성의 영역인 지적인 활동을 넘보기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진단은 반은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우울증이나 신경쇠약의 원인 중 하나가 나이 지적인 활동이 인정받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무시당하고 제지당할 때 생길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돼먹지 않게 남성의 영역을 넘보지 말고, 여성 본연의 고유의 영역으로 돌아가라는 처방이 결국 휴식 치료법의 본질인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다운 처방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바로 이런 시대적 한계를 내가 지나치게 가볍게 보지 않앗나 하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얼마전에 읽었던 수잔 손택의 <앨리스, 깨어나지 않는 영혼>이나 요즘 읽고 있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 대해서 내가 앨리스나 에밀리 디킨슨의 감성을 따라잡지 못하는 부분이 많이 나왔는데, 이것이 당대의 여성이 감내해야 했던 좌절이 나의 생각보다는 훨씬 크지 않았을까라는 의구심이 생긴 것이다. 



어쨋든 샬럿 퍼킨스 길먼은 증세가 더욱 악화되자 의사의 처방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 - 지적인 일, 글쓰기를 계속함으로써 오히려 우울증을 극복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경험을 이 짧은 소설에 녹여냈다.

작가가 아닌 나 같은 사람이 이런 경험을 했다면 주변에 한두마디 말로 이 경험을 전달했을 것이다.

"아 우울증은 쉰다고 낫는거 아니야. 자기가 하고싶은 일을 찾아서 하는게 우울증 극복에 더 좋아."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문제는 나같은 사람의 이런 식의 경험담은 사회적 파급력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럼 샬럿 퍼킨스 길먼같은 작가들은 이런 경험을 어떻게 승화시킬까?


작가는 역시 다르다.

자신의 경험을 개인의 경험으로 한정짓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 억압, 시대의 불합리를 찾아내고 문학의 힘으로 그것을 고발한다.

이 짧은 소설로 나는 문학의 힘이 은유에 있다는 것을 강렬하게 느낀다.


먼저 소설 속 주인공의 남편인 존에 대해서 살펴보자.


존은 극도로 현실적인 사람이다. 신념이나 미신의 강한 공포 따윈 아주 질색팔색하는 사람, 손으로 만지거나 눈으로 보거나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한 얘기는 대놓고 조롱하는 사람. - 7쪽

난 매일 매 시간 단위로 스케줄을 처방받는다. 그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일일이 관리해준다. - 17쪽

그러자 그이는 나를 품에 안고는 복덩이 아기 거위라 부르며, 원한다면 지하실에라도 내려가 하얗게 페인트칠도 해주겠노라 말했다. -27쪽

다정한 존! 그는 날 다정하게 사랑해주고, 내가 아픈걸 싫어한다. 요 전날 난 그와 진심을 담아 합리적인 대화를 나누려 애쓰며, 사촌 헨리와 줄리아네 집에 놀러가는 걸 허락해주길 얼마나 바라는지 말해보려 했다. 

하지만 그는 내가 갈 힘도 없고, 간다 해도 버틸 수 없을거라 말했다. - 49쪽


19세기는 이성과 합리주의의 시대이다. 종교를 누른 인간 이성의 힘을 맹신하던 시대 존은 바로 그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간 - 이는 당연히 남성이기도 하다- 의 표상이다. 

신경증에 시달리는 아내와는 다른 존재로서 당대의 기준으로 볼때 이상적인 인간상일 것이다.

또한 그는 다정하고 배려깊은 남편이기도 하다. 

아내의 건강을 걱정하고 고쳐주려 노력하며, 불안해하는 아내를 아기처럼 보살펴주는 그런 자상한 남편 말이다. 

그러나 오늘 날의 우리는 안다.

존의 행동은 가스라이팅에 다름 아니며, 그의 다정함은 아내가 남편의 말을 거역하지 않는 한에서만 발현되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의 이성과 합리성 역시 자신의 아내가 자신이 생각하는 범위를 벗어나지 않을때까지 가능한 것임을 말이다.

그는 다정하게 아내의 요구를 하나씩 하나씩 묵살한다.

그걸 꼭 해야돼? 쓸데없지 않아? 당신 힘든데 왜 하려하지?

그에게 아내는 한없이 어리석고 보살펴줘야 하며 생각따윈 할 수 없는 아름다운 인형일 뿐이다. 


작가는 남편의 캐릭터를 왜 이렇게 설정했을까?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남편들이 훨씬 많았으므로 그런 남편의 캐릭터를 선택할수도 있었을텐데 말이다.

그러나 남편의 캐릭터를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캐릭터로 설정하면 아내의 우울증은 개인의 우울증이 된다. 

나쁜 남편 때문에 생긴 문제로 말이다.

작가는 존을 당대의 가장 이상적이고 모범적인 가장의 캐릭터로 설정함으로써, 여성의 우울증이 개인의 문제 혹은 일부 나쁜 인간으로 인해서 생긴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라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 남성 일반과 사회구조의 문제라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휴식치료법을 처방받고 별장 2층의 누런 벽지가 있는 방에 갇힌 아내의 캐릭터를 통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고, 설사 표현하더라도 묵살되며, 생각과 지적인 노동 모든 것이 금지되는 삶이 인간 - 여성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그 과정을 아주 리얼하게 보여준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재미도 있고 기분전환이 되면서 내 성향에 맞는 일을 한다면 오히려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러나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난 한동안 글을 썼다. 그러나 은밀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나를 정말 기진맥진하게 만든다. -11쪽

존에게 난 그토록 도움이 되고 진정한 안식과 위안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난 이미 짐에 비견될 수 있으니! - 25쪽

그 어떤 일도 손댈 가치가 없는 느낌이고, 그저 끔찍하게 초조하고 짜증이 난다. 난 아무 이유 없이 울고, 하루종일 울고 있다. -41쪽

전엔 이런 생각을 해 본적이 없지만, 결국 존이 나를 여기서 지내게 한 건 차라리 잘 된 일이란 생각이 들어. 보다시피, 아기보다야 내가 더 수월하게 견뎌낼 수 있으니. - 53쪽


이 책에서의 아내는 지성과 분명한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표현할 줄도 아는 그런 여성이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그런 생각은 늘 무시당하고 이건 당신을 위해서야라는 말로 강요되는 타인의 생각에 번번히 묵살당한다.

가까운 사람에게 계속 자기 생각을 무시 당하며 당신 생각은 나쁘다는 말을 계속 듣다보면 자존감은 바닥을 치게 된다.

이럴 경우 인간 유형에 따라서 나타나는 대응은 보통 두가지 인데 하나는 그 관계를 깨버리고 독립된 자아를 찾을 수 있도록 벗어나는 것이다. 

작가인 샬롯이 첫번째 남편과 이혼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박차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은 적응하는 쪽을 택한다.

맞아 내가 이렇게 생각하면 안되지.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 내가 받아들이고 내가 변해야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책속의 아내 역시 그런 선택을 하는데, 사실상 지금도 19세기에도 여성이 온전히 혼자의 힘으로 서서 자존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를 생각하면 대부분의 여성이 이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선택 역시 개인적인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인 선택이다. 

나를 죽이고 사회적 억압을 받아들인 여성의 몸과 정신은 그러나 온전할 수가 없다. 

그녀는 하루종일 울고 짜증을 내고 나중에는 오히려 이런 상황이 행복한 것이라는 자기 기만에 빠진다. 

그러면서 '나'라는 존재 자체가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 사라진 '나'는 어디로 갔을까?


벽지무늬가 변하는 밤마다 열심히 살펴본 결과 드디어 난 알아내고야 만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문양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데 그건 놀랄 것도 없다! 그 뒤에 있는 여인이 그걸 흔들고 있으니 말이다! - 79쪽

그는(남편 존) 내게도 온갖 질문들을 물으며, 아주 다정하고 자상한 남편인 척 했다. 마치 내가 그의 속내를 꿰둟어보지 못하기라도 한 듯! - 85쪽

"당신과 제니가 아무리 막아도 난 드디어 탈출했어요. 이제 벽지도 거의 다 뜯어내서, 날 다시 가둘 수 없을거야."

그런데 이 남자 뭘 기절까지 한거야? 어쨌든 그는 기절했다. 그것도 벽으로 난 나의 길을 가로막으며. 그래서 난 매번 그의 몸을 넘어서 기어가야만 했다! -99쪽


아내는 억압된 자신을 벽지속 문양속에서 발견한다. 

누런 벽지의 무늬를 섬세하게 관찰하고 묘사하고 - 왜냐하면 2층방에 갇혀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지적인 활동이라는게 벽지를 관찰하는 것 외에는 없으므로 - 빠져들면서 어느샌가 방이 곧 벽지이며 자신이 갇혀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다. 

나의 몸과 정신이 모두 갇혀있음을 자각할 때 세상과 타인에 대한 올바른 지각이 돌아온다.

자상한 남편이 아니라 나를 통제하고 억압하는 남편의 본모습이 이제 보이는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거기서 제대로 된 삶을 찾기 위한 탈주가 시작되는 것이다. 

소설의 뒷부분의 해석에 있어서 정신분열 증상의 환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 듯한데 나는 그에 대해 반대한다.

아내가 갇힌 자아를 자각함으로써 자신의 탈주를 위해서는 남편이라는 존재를 넘어서야 함을 자각하는 과정이 그 분열적인 증상들이 의미하는 바가 아닐까?

그래서 마지막의 기절한 남편의 몸을 넘어서 기어가는 것은 세상속으로 나아가는 자각한 여성의 첫걸음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또한 여성이 진정으로 미치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넘어서야 하는지를 너무도 분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아닌가말이다.


직설적인 말보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 소설은 문학에서 은유의 힘을 제대로 보여준다.

19세기에 이 소설을 읽은 여성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어떤 사람은 나처럼 읽었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그저 우울증의 증상의 끔찍함으로 읽었을 수도 있을테다.

하지만 어느쪽으로 읽든 여성이 한 존재로서 온전히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의 의미는 분명히 알 수 있었을테다.

존과 이름조차 갖지 못한 아내, 그리고 벽지속의 여인까지 그들은 은유로 인해 개인이 아니라 당대 사회의 일반을 상징하고, 또한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여성이 한 인간으로 남자와 똑같이 존중받지 못하는 것에 불행의 원인이 있음을 자각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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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10-10 14: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누런 벽지라는게 당시 빅토리아 시대 여성들이 처한 상황을 뜻하는 것으로 봐도 되는 건가요?
바람돌이님 글 이해하기 쉽게 써주셔서 막힘없이 잘 읽었습니다.
<다락방...> 읽으시려고 준비 열심히 하시는 모습 너무 멋집니다!

바람돌이 2022-10-10 14:47   좋아요 3 | URL
그동안 읽은게 없어서 지금 진짜 진땀빼며 읽고 있을 뿐입니다. ㅠ.ㅠ
저는 누런 벽지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보게 해주는 하나의 매개로만 봤어요. 사실 왜 어렸을 때 자려고 누웠는데 잠은 안오고 할일은 없고 하면 천정에 벽지 무늬 세면서 온갖 생각을 하잖하요. (왜 제가 어릴 때라고 하냐면 좀 커서는 눈이 나빠져서 천장에 벽지무늬가 안보여서요. ㅠ.ㅠ)
아내는 건강을 이유로 2층 침실에 갇혀있고 거기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거죠. 그래서 눈에 거슬리는 누런 벽지의 문양을 보는데 그 과정에서 온갖 생각을 하게 되는 그런 과정을 보여주는 매개라고 생각해요. 짧은 소설인데 저는 정말 인상적으로 읽었습니다.

coolcat329 2022-10-10 15:12   좋아요 3 | URL
아 그렇죠 ㅎ 저희 어렸을 땐 벽지가 참 화려했죠. 방에 누워 벽지 무늬 눈으로 좇으며 시간보내기도했죠.
지금은 벽지가 모던해서 무늬가 없네요. ㅎ
누런 벽지는 갇힌 자신의 처지를 직시하게해주는 매개라고 보면 되겠군요.

새파랑 2022-10-10 15: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여성작가 단편집에서 읽었었는데 저도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ㅋ 역시 벽지는 무늬없는 흰색이 제일 좋은거 같다는 ^^

바람돌이 2022-10-10 22:44   좋아요 2 | URL
뭐 저는 무늬가 있든 없든 이제는 눈이 나빠서 주로 누울때는 벽지 무늬가 안보인다는....
저 아내는 벽지에 무늬가 없었다면 다른 나무이 결이라든가 뭐 이런걸 관찰하지 않았을까요? 방에 갇혀서 할 일이 없잖아요. ㅎㅎ

프레이야 2022-10-10 15: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 정말 확 정신이 드는 소설이었어요.
퍼킨스 다른 것들도요.
은유는 힘이 세지요.^^

바람돌이 2022-10-10 22:47   좋아요 3 | URL
딱히 기대 없이 읽은 책이었는데 진짜 쨍하고 정신히 확 들었어요.
그래서 이분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려구요. 생각보다 여러권 번역되어 있더라구요.

미미 2022-10-10 17: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릴때 방에 벽지무늬가 보는 각도에 따라 해석이 달라져서 무섭고 또 재밌기도 했는데 이걸로 작가가 자신의 상황과 사회적 억압을 고발하는데 적용한점이 놀라웠어요!ㅎㅎ

바람돌이 2022-10-10 22:48   좋아요 2 | URL
작가들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 그들에게는 은유가 있으니까라고 생각합니다. ^^
그래서 독자인 저는 많이 행복하네요. 이 짧은 단편으로 또 좋아하는 작가가 생겨서 기뻣어요.

파이버 2022-10-10 22: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여주인공이 2층 방에 갇혀 벽지를 보고 있는 것은 치료가 아니라 형벌인 것 같아요. 그 시절의 남자들은 그걸 정말 치료라고 생각했는지 의문입니다... 아내는 가만히 있는 장식품이 아닌데요. 그 시절 사람들은 정말 갑갑했을 것 같습니다.

바람돌이 2022-10-10 22:50   좋아요 3 | URL
그래서 정말로 똑똑한 여자들은 미쳤던거 같기도 해요. 그렇게 자신의 말이 무시당하고 인정받지 못하는데 미치지 않을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또 지배남성들에 의해서 다른 얘기를 하는 여성이 용납받지 못하고 미친것으로 내몰렷을 수도 있겠구나 싶구요. 어떤 시대든 그 시대의 주류에 반하는 깨어있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언제나 참 힘든 삶이겟구나라는 생각을 더 하게 되네요.

책읽는나무 2022-10-10 23: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휴식 치료라는 게....ㅜㅜ
침대에 누워 자게 하고, 독서같은 지적인 활동 금지!!!! 어머니와 아내의 역할 충실!!ㅜㅜ
날짜 다가오기 전에 빨리 읽어야 할 목록 중 한 권이네요. 누런 벽지!!!
제목또한 강렬한 누런 벽지!!!
그 시절 여성들은 어떻게 살아냈을까요?ㅜㅜ

바람돌이 2022-10-11 12:01   좋아요 2 | URL
이 때 당시의 신경증이나 우울증의 원인을 여성이 여성스럽지 못해서, 그러니까 쓸데없이 남자의 영역인 지적인 영역에 도전한다든지 뭐 이런 것 때문으로 진단한거 같아요. 그러니가 너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고, 그리고는 여성 고유의 영역으로 돌아가면 낫는다 뭐 이런....
누런벽지는 단편이라서 읽는데 30분이면 되어요. 다만 내용이 워낙 강렬해서 자꾸 다시 되짚어서 읽게 되기는 하더라구요.
저는 훨씬 뒤인 우리 어머니들 생각만 해도 도대체 어떻게 살아내셨는지 싶을때가 많아요. ^^

희선 2022-10-11 02: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버지니아 울프한테도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으라고 했다고 한 말 본 것 같기도 하네요 누워서 쉬는 게 안 좋은 건 아니지만 책은 못 보게 하는 건 안 되죠 그때는 왜 그렇게 했는지... 그때 갇힌 여성도 많았다고 들은 듯합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2-10-11 12:03   좋아요 2 | URL
이 때 당시 우울증같은 병에 대한 일반적인 치료법이었던거 같아요. 저 쉰다는게 육체만 쉬는게 아니라 정신을 더 쉬어주라는게 문제죠. 참 여성을 억압하는 방식도 다양했다 싶습니다.

다락방 2022-10-11 12: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른 출판사 책으로 읽었는데요(아마도 허랜드 뒷편에 실려있었을 거예요) 이 단편을 쓰고 샬롯은 그 단편을 자신에게 지적 활동하지 말고 쉬라고 처방한 의사에게 보냈다고 하더라고요. 거기에서 얼마나 짜릿함이 느껴지던지요!!

바람돌이 2022-10-11 12:39   좋아요 2 | URL
샬롯 진짜 멋진 여성! 완전 짜릿하잖아요. ^^
저는 이 책 읽기 전까지 이 사람에 대해서 하나도 몰랐는데 진짜 깜짝 놀랐어요. 지금 다른 책도 읽으려고 막 찾아보고 있어요. 물론 다락방 미친여자책 참고 도서 먼저 읽어야겟지만 말입니다. ㅠ.ㅠ
이 책 읽고 저는 얼마전에 읽은 수잔 손택의 앨리스 깨어나지 않는 영혼을 다시 읽어보려고 도서관에서 다시 빌려왔어요. 수잔속택의 책도 그렇고 지금 제가 헤매고 있는 에밀리 디킨슨도 그렇고 이 책을 읽고 나니까 뭔가 제가 놓친것들이 보일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구요.

2022-10-11 1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0-11 1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2-10-12 22: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게는 아주 충격적인 장면이었어요
넘 몰입했었나봐요
아마도 김승섭작가의 책에서 소개를 받은 걸로 기억해요^^

바람돌이 2022-10-12 23:04   좋아요 2 | URL
요즘 19세기 여성작가들의 작품들 열심히 읽고 있는데 이게 진짜 확 끌리는 면들이 많아요.
다음 작가는 또 어떤 작품일까 막 설레는 기분이랄까 그렇네요.
이분 책도 지금 보관함에다 막 쑤셔넣고 있어요. 다 읽을거야 하면서..... ㅎㅎ

공쟝쟝 2022-10-16 14: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짝짝짝. 바람돌이님, 이 리뷰 또 너무 *근사*해요.
베티 프리단 식으로 말하면 <말할 수 없는 문제>와도 관련되어 있겠죠?
이런 리뷰 마니 써주세용~
아~ 여자들이 책 많이 읽으면 좋겠다~
아~ 여자들이 독후감도 많이 썼으면 좋겠다~
아~ 여자들은 이렇게 날이갈수록 멋져지기만 하는 것인가, 여성들이여! 나는 여자라서 행복해요 크흐흐

바람돌이 2022-10-17 14:14   좋아요 1 | URL
하하하 감사합니다. 아 저는 아직 베티 프리단을 읽지 않았으므로 말할 수 없는 문제는 알 수 없지만요.
페린이(페미니즘 어린이)인 제가 더 분발하겠습니다. ^^

scott 2022-11-09 15: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이달상 추카 합니다

11월 !문학, 책 보다 맛나는 거 드시면서 건강 잘 챙기세요 ^^

바람돌이 2022-11-09 20:41   좋아요 0 | URL
감사 감사합니다. 맛난거 너무 많이 먹어서 얼굴이 자꾸 똥그래지고 있어요. ㅠ.ㅠ

거리의화가 2022-11-09 1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실크스타킹 한 켤레> 책에서 이 작품 읽었어요. 저도 특히 인상적이었던 단편으로 기억합니다. 빈 구석 없이 당시 사회에서 여성들의 속박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해요.
바람돌이님 이달의상 축하드립니다*^^*

바람돌이 2022-11-09 20:4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저도 실크스타킹 한켤레 전체로 여성작가들 단편도 읽어보고 싶어요. 지금 보는 다미여 끝나고 나면 샬럿퍼킨스 이분의 다른 책들도 한번 읽어보려구요.

모나리자 2022-11-09 15: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바람돌이님~
감기조심하시고 행복한 나날 보내시길 바랄게요.^^

바람돌이 2022-11-09 20:4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모나리자님도 감기 조심하세요. 그리고 책도 대박나시고요. ^^

thkang1001 2022-11-09 1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바람돌이 2022-11-09 20:4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thkang1001 님도 행복한 한주 되세요. ^^

bookholic 2022-11-09 2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 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 축하드립니다.
이 글 읽고 <누런 벽지>를 리스트에 올려 두었는데.. 저도 꼭 읽어보겠습니다 ㅎ
즐거운 시간 되시고요..

바람돌이 2022-11-09 20:4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누런 벽지는 분량이 진짜 얼마 안되어서 금방 읽어요. 북홀릭님의 리뷰도 기대하고 있을게요. ^^

강나루 2022-11-10 04: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바람돌이 2022-11-12 16:4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강나루님도 축하드리고 행복한 주말 되세요.

thkang1001 2022-11-10 0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바람돌이 2022-11-12 16:43   좋아요 0 | URL
저야말로 늘 감사드립니다. ^^
 

 즉 막달라마리아는 신학적으로 마음대로 채울 수 있는 ‘무형의 빈 공간null?
‘이었다. 그녀에게 날을 세운 베드로의 정통파 교회가 기독교 주류가 되면서, 그 빈 공간은 너무도 쉽게 얼룩덜룩한이미지로 더럽혀졌다. - P22

 올랭피아는 인기 많은쿠르티잔으로 설정됐기에 일단 미모가 출중해야 했다. 마네는 올랭피아의 미모가 돋보이려면 한눈에 비교될 만한 ‘생긴‘ 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마네에게 그런 여자로는 흑인이 적격이었다. 이는 마네 이전에도 백인 남성 화가들이 흑인 여성을 소비한 방식이기도 하다. - P32

대중들은 켈러가 시각·청각 장애로 세상의 더러운 것들을 접하지 못해, 순백의 영혼을 지녔을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었다. 이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켈러는 튀어나온 눈을없앤 뒤 유리로 만든 파란색 의안을 새로 끼웠고, 수수한 하 - P40

얀색 드레스를 입은 채 카메라 앞에 서야 했다. 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재능을 갖췄지만 ‘불행히도‘ 장애를 지닌 여성은, 사회가 편안하게 소화할 수 있는 안전한 이미지였다. 사람들은 동정이 깃든 눈길로 그녀에게 ‘숭배의 박수를 쳤다.
헬렌 켈러를 향한 이 같은 ‘낭만적‘ 시선은, 영국의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1829-1896의 그림 <눈먼 소녀>에서도찾을 수 있다. - P41

"커버링은 주류에 부합하기 위해 남들이 선호하지 않는 정체성의 표현을 자제하는 것"이라며 "사회가 소수자성을 ‘티내지 말라‘고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주류의 눈치를 살폈던 대처는 자신의 여성 음색을, 루스벨트는 자신의 장애를 숨긴 셈이다. 그렇다면 대중의 시선에 민감한 정치인들만 커버링을택했던 걸까.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조각가이자 천재 화가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1475-1564 도 일평생 자신의 본 모습을 커버링했다. 왜냐하면 그는 성소수자였기 때문이다. - P61

특기할 사실은 대리모 사업을 옹호하는 쪽이 그 이유로자신의 유전자(남성의 정자)를 가진 아이를 갖고자 하는 열망을내세운다는 점이다. 즉 대리모 출산은 부계 ‘혈통‘을 지키기위해 모성을 착취하는 ‘가부장제의 폭력‘임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과 다름없다. 《대리모 같은 소리》의 저자 레나트 클라인의 말처럼 말이다. "불임인 이들이 다른 제3자 여성의 포궁(자궁)과 난자를 빌려서까지 ‘자기‘ 아이를 낳고자 하는 욕망은 - P78

근본적으로 남성의 것이며 이 절차가 보장하는 것은 ‘대리모를 의뢰한 남성‘의 유전자인 것이다." 이때 가난하고 어두운피부의 여성은 ‘걸어 다니는 자궁‘으로 환원될 뿐이다. - P79

툴루즈 로트레크는 이런 성 구매 경험을 토대로 자신을 엄숙한 성도덕으로부터 ‘해방된‘ 예술가로 포장했고, 19세기 프랑스를 지배하던 성 보수주의 규범에 반항한 화가로 평가받는 데 성공했다. 그렇지만 의도했든 아니든, 툴루즈 로트레크가 그린 ‘노동으로서의 성매매‘는 성구매자를 ‘서비스이용자‘로, 포주를 ‘사업가‘ 혹은 ‘관리자‘로 은연중에 정당화한다. 결과적으로 툴루즈 로트레크의 그림이 성매매 현장의폭력성을 가리는 역할을 했다고 하면 너무 박한 평가일까. - P88

 실제로 드가가 그린발레리나는 앞서 보았듯 얼굴이 뭉개져 있거나 땀 흘리거나푸념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등 아름답게 묘사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지 않고 그들을현실 속의 인간으로 대한 증거가 아닐까. 무엇보다 드가는누드모델 출신이었던 수잔 발라동을 비롯해 메리 커샛, 마리브라크몽 같은 여성 화가들을 발탁하고 작업을 격려한 화가이기도 하다. 이렇듯 여성에 대해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했기에, 성매매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여성의 처지를 툴루즈 로트레크보다 더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지 않았을까. - P93

어쨌거나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셋 중 누가 주문했든 그들 모두 부자였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부자는 왜 굳이 목돈을 들여 <내반족 소년을 주문했을까. 바로 가난한 사람의 존재는 부자들에게 천국을 보장하는 ‘보험‘이었기 때문이다. - P174

그래서일까. 요즘 영화나 드라마에서 원주민은 더 이상괴성을 지르며 백인을 공격하는 악인이나 머리 가죽을 벗기는 원시인으로 재현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대평원에서 생태주의적 삶을 영위하는 초월자나 현자로 그려진다. 백인에게 영적인 각성을 주는 사람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런 신화적, 낭만적인 재현은 이제 원주민들이 백인에게 그다지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방증이다. 어쩌면 죄의식의 위장된표현일지도 모른다. 원주민을 야만시하는 신성시하든 둘 다타자화인 것은 매한가지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원주민들이침묵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면, 이런 낭만적인 시각은 곧바로거둬진다. - P190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은 이렇게 얘기했다. "중요한 질문은 동물들이 이성을 가지고 있는가, 말을 하는가가아니다. 그들이 고통을 느낄 줄 아는가이다." 맞는 말이다. 비건 활동가 캐럴 애덤스의 말대로 "정의란 호모사피엔스라는종의 장벽에 갇힌 취약한 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 P220

기후 위기의 책임을 인간 일반으로 설정하면 윤리적 책임과 결단을 요구할 주체를구분하고 가시화하기 어려워, 사실상 책임자에게 면죄부를주는 것과 다름없게 된다. 모두의 잘못이라고 하면 아무의잘못도 아니게 되듯 말이다. - P228

이 덕분에 폴록의 추상표현주의 그림은 CIA의 간택을받을 수 있었다. 자유를 억압하는 공산주의와 달리 미국의예술은 자유를 수호한다는 이미지가 필요했는데, 더할 나위없이 자유로운 그의 화법은 이에 딱 들어맞았다.  - P261

 추상표현주의가 각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순수성‘
때문이 아니라 뚜렷한 ‘정치성‘ 때문이었다. 미국은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공격하며 "예술가의 미적 상상력은이데올로기와 타협해서는 안 되며 정치적으로 악용되어서도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알고 보면 이 말은 곧 스스로를 비판하는 말이기도 했던 셈이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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