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에 빌리는 오락실에 있는 대형 TV로 넷플릭스를이리저리 돌려 본다. 요즘은 이게 대세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지금까지 살펴볼 생각조차 않지 않았던 건 읽을 책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 P65

글을 쓸 수 있어서 좋다. 예전부터 글을 쓰고 싶었는데, 지금이렇게 쓰고 있다. 그래서 좋다. 하지만 이렇게 아플 줄 어느누가 알았을까? - P110

"의미 있어." 빌리는 창문에 대고 말한다. "내 이야기니까."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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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일생의 전반부를 이용해서 시나리오를 쓰고, 후반부를 이용해서는 시나리오에 따라 영화를 찍는다. 우리들은 완성된 시나리오에서 벗어날 수없다. - P98

비밀이란 그런 것이다. 비밀의 존재를 숨기고 없는 척할수록 그 비밀이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다. 어디를 가도 그 비밀이 따라온다. 시간이 쌓이면서 그 비밀을 지키고 싶기도 하고 없애버리고 싶기도 한 두 가지 생각이 끊임없이 경쟁을 벌이며 우리를 기진맥진하게 만든다. - P111

어떤 사람이 아주 희소한 언어를 익혔다면, 그 사람은 남은 삶을 모두 쏟아서라도 그 언어를 사용하는 타인을 찾으러 다닐 것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좋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을 찾을 수있다면 그들은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에도 그 희소한 언어를 이용해 서로 소통할수 있을 것이다. - P147

인간은 왜 기억이라는 걸 간직할까? 기억의 존재가 인간이 소멸을 향해 단호히 걸어가도록 할 뿐이라면,
그런 심리 메커니즘이 왜 진화 과정에서 도태되어 사라지지 않은것일까? 인간은 왜 자신을 살아가기 힘들게 하는 기억을 삭제할수 없을까? - P179

오드리가 눈을 깜빡거렸다. 또 울려는 줄 알고 장중쩌는 ‘울지마세요‘라고 말하려 했다. 다행히 그녀는 이내 눈물을 삼켰고, 눈빛에 희미한 빛 같은 것이 어룽거렸다. 너무 외로웠으니까요. 그녀의 대답에 장중쩌는 콜라를 마시다 말고 멍하니 그녀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순간 아래로 쑥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놀라서 아래를내려다봤지만 두 발은 바닥에 단단히 붙어 있었다. 그는 한참 후에야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했다. 그는 마음이 움직였던 것이다. 그 말을 내뱉은 순간 오드리의 목소리가 장중쩌의 마음을 관통했다. 너무 외로웠으니까요. 그녀는 장중찌가 오랫동안이 세상에 대해 품고 있던 이해하기 힘든 당혹감을 한마디로 정리해버렸다. - P246

몸안에 거대한 자물쇠가 있는데 열쇠는 내가갖고 있지 않은 듯한 기분이었다.  -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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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스러운 기억을 신이 나서 말할 수도있다는 것을 마흔 넘어서야 이해했다. 고통도 슬픔도 지나간 것, 다시 올 수 없는 것, 전기고문의 고통을 견딘 그날은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찬란한 젊음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 P27

사람은힘들 때 가장 믿거나 가장 만만한 사람을 찾는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힘들 때 도움받은 그 마음을 평생 간직하는 사람은 열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 대개는 도움을 준 사람보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먼저 잊어버린다. 굳이 뭘 바라고 도운 것은 아니나 잊어버린 그마음이 서운해서 도움 준 사람들은 상처를 받는다. 대다수의 사람은 그렇다. 그러나 사회주의자 아버지는 그렇다한들 상처받지 않았다.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 탓이고, 그래서 더더욱 혁명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 P102

"민족이고 사상이고, 인심만 안 잃으면 난세에도 목숨은 부지허는 것이여." - P137

 잘 죽었다고 침을 뱉을 수 있는 사람과 아버지는 어떻게 술을 마시며 살아온 것일까? 들을수 없는 답이지만 나는 아버지의 대답을 알 것 같았다. 긍게 사람이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내가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아버지는 말했다. 긍게 사람이제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사람이니 살인도하고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는 것이다.  - P138

질게 뻔한 싸움을 하는 이십대의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목숨을 살려주었던 사람을위해 목숨을 걸려 했던 이십대의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영정 속의 아버지가 꿈틀꿈틀 삼차원의 입체감을 갖는 듯했다. 살아서의 아버지는 뜨문뜨문, 클럽의 명멸하는 조명 속에 순간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죽은 아버지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살아서의 모든 순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헤쳐 모여를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도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 P181

여기 사람들은 자꾸만 또 온다고 한다. 한번만 와도 되는데, 한번으로는 끝내지지 않는 마음이겠지. 미움이든우정이든 은혜든, 질기고 질긴 마음들이 얽히고설켜 끊어지지 않는 그 마음들이, 나는 무겁고 무섭고, 그리고 부러웠다. - P197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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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구 - 로마의 열병 / 다른 두 사람 / 에이프릴 샤워 얼리퍼플오키드 2
이디스 워튼 지음, 이리나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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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징구..... 아! 바바라......
단편은 말야. 이렇게 한방을 훅 날리는 맛에 읽는거라구. 이디스 워튼 책 처음 읽었는데 이 얇은 책만으로 훅 빠짐. 앞으로 읽을 이디스 워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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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2-10-27 13: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방 훅 날리는 맛. 단편을 이렇게 시원하게 한마디로 표현해주시다니. 저도 이 책 읽고 이후로 이디스 워튼 다른 소설도 찾아보게 되더라고요. 장편은 그 느낌이 또 다른것에 또 한번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바람돌이 2022-10-27 14:19   좋아요 1 | URL
앞의 단편 2개, 징구랑 로마의 열병 훅 후려치는 맛이 진짜 좋네요. ㅎㅎ 장편은 또 다른 맛이라니 앞으로 읽을 이디스 워튼 책들이 더더 기대됩니다.^^

희선 2022-10-27 02: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처음 만난 작가 책이 좋으면 다음도 기대되죠 이디스 워튼 다음 책 재미있게 만나시겠습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2-10-27 14:20   좋아요 1 | URL
맞아요. 그래서 어떤 작가에 대한 인상도 첫 책이 영향을 많이 끼치는 듯 하네요. 지금 취향에 맞는 작가 만나서 저 막 업돼 있어요. ㅎㅎ

다락방 2022-10-27 07: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짱이죠! 저는 이 단편집에서 <로마의 열병>을 진짜 좋아했어요. 후훗.
이 얼리퍼플 오키드 시리즈 중에 <엄마의 반란> 있거든요? 혹시 그것도 보셨을까요? 그것도 진짜 짱 좋아요!! >.<

바람돌이 2022-10-27 14:21   좋아요 1 | URL
오 엄마의 반란도 읽어보겠습니다. 로마의 열병을 좋아하는 다락방님 추천이라면 저에게도 맞을듯요. ^^

coolcat329 2022-10-27 08: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디스 워튼 단편은 안 읽어봤는데 한방!이 있군요.

바람돌이 2022-10-27 14:22   좋아요 1 | URL
실린 단편 4편 중에서 마지막 1편은 초기작이라 풋풋하고요. 나머지는 셉니다. ^^

책읽는나무 2022-10-27 14: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백자평도 한 방에 훅!!!!!ㅋㅋㅋ
이디스 워튼의 책이 그 시절 작가 중 단편을 제일 잘 쓴 작가가 아닐까?싶긴 합니다^^

바람돌이 2022-10-27 15:25   좋아요 2 | URL
그 시절 작가를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이제 브론테 자매가 남았는데 이들은 또 어떻게 저를 놀래킬지요. ㅎㅎ

단발머리 2022-10-27 14: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징구가 진짜 좋았는데요. 와.... 이런...... 감상이 막 이랬습니다. 아, 책 찾아서 한 번 더 읽고 싶어요^^

바람돌이 2022-10-27 15:26   좋아요 1 | URL
진짜 와 이런 감탄사부터 한발 뽑고 이야기해야 하는 작품입니다. ㅎㅎ

mini74 2022-10-30 1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성프롬 넘 좋았어요. 한방에 훅 날리는 맛이라 ~ 이건 읽어야해 를 부르는 백자평입니다 ~

바람돌이 2022-11-02 20:43   좋아요 1 | URL
징구 좋습니다. 다음 이디스 워튼은 다락방 읽으려면 석류의 씨 읽어야 하는데..... 이선 프롬 먼저 읽고 싶은 이 마음은..... ㅠ.ㅠ
 

"징구 아니에요?" 부인이 부드럽게 말했다.
순간 다른 멤버들은 전율을 느꼈다. 잠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교환했고, 그러다 일제히 안도하면서도 그들의 구세주에게 의문의 눈길을 보냈다. 모두 표정은 같았지만 각자 다른 감정의 단계를 거치고 있었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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