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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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초에 대만여행을 갔을 때 택시를 탔었다.

기사님께 호텔 이름을 말했지만 잘 모르시는 것 같아서 호텔에서 받은 명함을 건넸다.

대만의 택시 기사님들도 다들 핸드폰을 이용해 구글네비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니 우리가 묵은 호텔이 타이베이의 약간 외곽지역이라도 별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기사님의 행동이 정말 희안했다.

구글 네비를 향해 계속 음성인식을 시도하시는거다. 그거야 그럴 수 있지만 왠일인지 구글이 계속 음성인식에 실패하고 있었다.

그러면 그냥 간단하게 손으로 목적지를 입력하면 될텐데 기사님은 끝도 없이 음성인식을 시도하고....

우리는 이걸 내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기사님은 결국 명함에 있는 호텔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더니 호텔측과 한참을 대화를 나눈 뒤에야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엄청난 난폭운전을 지나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긴 했지만 난 앞의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차량에서 내린 뒤 우리끼리 "아 무서웠다. 앞으로 택시는 길거리에서 그냥 잡으면 안되겠다. 근데 그 기사 아저씨는 왜 그런거지?"뭐 이런 말들을 하는데 같이 있던 일행 중 한 명이 "그 기사 아저씨 글을 모르는 것 같아"라고 얘기하는게 아닌가?

 

아! 갑자기 뒤통수가 확 땡기는 느낌.

한국에서는 한글의 위대함과 교육열에 의해 적어도 문맹에 대한 고민을 해본적이 없었던 나는 택시기사님이 문자를 모른다는 상상 자체를 해본적이 없었던 거다.

아 그러고 보니 대만은 중국과 달리 여전히 번체자라고 해서 옛 중국 한자를 그대로 쓰고 있지.

그러면 문맹률이 생각보다 높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확 들었다.

 

<디디의 우산>을 읽는 것은 내게 대만에서의 경험과 같은 뒤통수 빡의 연타였다.

아마도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것이 그리 힘들었고, 읽고 나서도 한참을 먹먹했던 것 같다.

 

세운상가의 쇠락한 상가를 지키는 여소녀씨는 이곳을 새로운 상권으로 개발하고자 하는 서울시에 할말이 많다.

세운상가 일대를 개발한다면서 사십년간 맥을 함께한 자신에게 질문하나 하지 않는 프로젝트는 됐다고 생각한다.

서울의 길을 잇고 쇠락한 상가를 부흥시킨다고 할 때, 그곳에 터잡고 살아온 사람들은 배제되었다는걸 나는 생각해봤던가?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동성의 애인은 법적으로 아무 관련이 없어, 둘 중의 하나가 죽더라도 연락을 받을 수 없다는 것으로 늘 불안하다는 것을 나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아 어떤 사람에게는 무소식이 희소식이 될 수 없음이구나.

용산역 1번 플랫폼에 지금 들어오는 기차가 어디로 가는 기차인지 안내판의 문자로만 알려주는 기차역에서 그것을 읽을 수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몰랐구나.

보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글자를 點子라고 하듯이, 볼 수 있는 사람을 위한 모든 문자와 기호를 묵자(墨字)라고 한다는 것을 이제 알았구나....

묵자의 세계 안에 갇혀 있으면 점자의 세계를 볼 수 없으며, 상식의 세계에 갇혀 있으면 다름의 세계를 보지 못한다는 것도...

아! 얼마나 많은 것들을 생각하지 못함으로써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살아가는걸까?

대만에서 만난 택시기사님은 외국인들의 의아해 하는 표정속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최근에 읽었던 <내안의 차별주의자>나 <선량한 차별주의자>같은 인문서적들의 주제의식과 맞닿아 있는 문제의식들이다.

하지만 문학은 문학이다.

인문서적이 결코 닿을 수 없는, 사람의 마음과 상처를 섬세하게 알아주고 위로하는 거기에 문학의 자리가 있다.

 

dd를 만난 이후로는 dd가 d의 신성한 것이 되었다. dd는d에게 계속되어야 하는 말, 처음 만난 상태 그대로, 온전해야 하는 몸이었다. d는 dd를 만나 자신의 노동이 신성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랑을 가진 인간이 아름다울 수 있으며,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여길수 있는 마음으로도 인간은 서글퍼지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 P18

 

참으로 오랫만에 사랑에 관한 절절한 문장을 만났다.

작가는 이 책 곳곳에서 이런 칼날처럼 와닿는 문장으로 인간의 삶의 순간들을 표현한다.

저 문장만으로도 독자는 d 또는 dd의 상실을 예견하고 마음이 선뜩 내려앉는다.

 

아침에 인사하고 나갔던 사람이 돌아오지 못하는 순간이 얼마나 비일비재한지 우리는 생각치 않는다.

상실 이후의 삶에 우리는 전혀 내성이 없다.

dd를 잃은 d의 삶은 계속 되지만 누군가가 손 내밀어 "너 나 알지?"라고 명명해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늘 상실속에 멈춰있을 수 밖에 없다.

그 손내밈으로 d는 진공관속에서 울리는 음악이라는 다른 세계를 만나고, 그것이 dd를 추억하며 살아가는 새로운 방법의 세계로 한발을 딛는다. 

사는건 누구에게도 녹녹치 않다.

그래서 우리는 사실상 늘 슬프고 지친다.

그럼에도 살아간다. 그 슬프고 지치게 하는 순간들을 살아가는 손내밈의 순간, "너 나 알지?" 또는 "나 너 알아!"의 순간들로 인해 힘을 얻는다.

 

누군가는 이 책이 혁명을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혁명이 아니라 혁명 전과 후에도 여전히 계속되는 삶을 이야기한다.

광화문을 메웠던 감격의 순간과 대통력 탄핵을 결정하던 헌재의 그날이 아니라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계속 살아가야 하고, 이겨내야 하고, 견뎌내야 하는 사람들의 삶.

언제든 혁명이 인간의 모든 것을 해결해준 적이 있었던가?

그것은 인간의 견디는 삶에서 한번의 빛남 또는 한번의 축제같은 것이다.

축제가 끝나면 누군가는 쓰레기를 치워야 하고, 대다수는 일상의 삶을 또 견뎌내야 하고, 또 누군가는 그 축제에서도 소외된 자신을 추슬려야 한다.

혁명이 또는 축제가 의미 있는 것은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좀 더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용기를 주기 때문이고, 생각지 못했던 삶의 다양함을 하나라도 더 알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삶은 지속된다.

아니 지속되어야 한다.

오늘도 싸우고 있을 김지은씨에게도, 서울시청의 여성공무원에게도, 작업장에서 위험한 일에 무방비하게 노출되고 있을 노동자들에게도 여전히 삶은 지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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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9-08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월이면 코로나가 번지기 바로 직전이었네요.
그때만해도 이럴 줄은 상상도 못했죠.
그때가 마구마구 그립습니다.
잘 다녀오셨네요.ㅠ

바람돌이 2020-09-08 16:55   좋아요 0 | URL
1월 초였어요. 그때 안가고 1월말쯤 잡았으면 아마 못갔을거예요. 저도 그때가 마구마구 그리워요. 앞으로도 한동안은 힘들겠죠? 지금은 내년에는 좀 회복되었으면 하고 있습니다. ㅠㅠ
 

이렇게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거나움직일 때,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생각하지 않을 때, 나는죽음을 느껴요. 매우 정지된 지금을요. 너무 정지되어서,
지금 바로 뒤를 나는 상상할 수 없고요 궁금하지도 않아요. 지금이라는 것은 이미 여기 와 있잖아요. 그냥 슥..…- P113

죽음과는 얇은 금속판 한겹만을 남겨둔 채 체공하고 있었지만 그는 분명히 환멸의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어요. 그는 그것을 가지게 된 거죠. 탈출의 경험을내게는 그것이 없어.
나는 내 환멸로부터 탈출하여 향해 갈 곳도 없는데요.
- P114

....dd가 살았다면, 그래서 그들 공동의 삶이계속되었더라면, 자신과 dd도 마침내 이런 광경에 도달하게 되었을지를 생각해보았다. 잔혹한 광경이었다. 보잘것없고 혐오스러웠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얼마나 아름다울까. dd와 더불어 삶에 권태롭게 되는 것. 두 사람 각자와 공동의 사물에 둘러싸인 채 조금씩 닳아 사라져가는것, 삶이 없고, 닳아 없어질 물리적 형태도 없으므로 dd에게는 내내 도래하지 않을 광경이었다.- P138

차벽은 말이지 차벽은......벽으로써 시위 관리에 동원되지만 시위대가 그것에 손을 대고흔들기 시작하는 순간 그것은 더는 벽이 아니고 재산이되잖아. 국가의 재산, 시위대의 움직임은 가로막힌 길을뚫는 돌파 행위가 아니고 재산 손괴 행위가 된다. 관리자들이 행복해진다. 관리가 쉬워지니까. 더는 움직이지못하도록 막아둔 뒤, 시위대가 다녀간 자리에 남은 것들을 텔레비전이나 사진으로 대중에게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파손된 차벽과 도로에 널린 깨진 유리조각들을 부서진 재물, 재산을, 운동이 아닌 관리자의 방향으로 대중의 공감이나 이입이 이루어지도록, 그렇게 되도록 하는데에 재산 손괴, 만큼 효과적인 광경도 없을 거라고 서수경은 말했다. - P189

.....좋은 이야기를 읽고 자랐으면 좋겠어. 왜냐하면독서의 경험이란 앞선 삶의 문장을, 즉 앞선 세대의 삶 형태들을 양손에 받아드는 경험이기도 하니까. 이 생각과유사한 문장을 나는 최근 어떤 책에서 보았고 그 책의 저자는 아마도 롤랑 바르뜨였을 것이다. "산다는 것은 (…)우리보다 먼저 존재했던 문장들로부터 삶의 형태들을 받는 것"......(『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 민음사 2015)- P211

하지만 ‘나를 목격하고 있는 이 사람이 빨리 내 눈앞에서사라졌으면 좋겠다‘, 어른이 되는 계기라는 것을 그런 감정과 우연한 경험의 조합으로 받곤 하는 삶에 나타나는어른이란 어떤 인간일까를 생각하느라고 나는 잠을이룰 수가 아니야 실은 하필 그런 일을 겪고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이 김소리, 내 동생이었다는 점이 속상해 나는그 선생을 도저히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고,
- P242

20년을 함께 살아왔지만 유사시, 우리에게는 서로의 유사가 전달되지 않는다. 서수경에게 위급한 일이 생기면 그연락은 서수경의 가족에게 갈 것이다. 내게 위급한 일이생기면 김소리나 내 부모에게 갈 것이다.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서수경과 내가 조금 더 염두에 두는 가능성은 서로에게 연락이 오지 않을 경우이고 우리는 그 가능성과 살아가며 끊임없이 서로의 죽음을, 혹은죽음에 이르는 순간을 가정한다. 조금씩 독을 삼키듯 상실을 경험한다. 일상에서 내 기도의 내용은 서수경의 귀가이다. 서수경이 매일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저 바깥에서, 매일의 죽음에서 돌아온다.
- P257

한 사람이 말하는 상식이란 그의 생각하는 면보다는 그가 생각하지 않는 면을 더 자주 보여주며, 그의 생각하지 않는 면은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비교적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당신은 방금 너무 적나라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그렇지. 적나라赤裸裸. 그 광경은 마치 투명한 창을 통해 보이는 남의집 베란다처럼…… 우리는 왜 때때로 베란다를 청소하듯그것을 점검해보지 않는 것일까. - P266

묵자의 상태가 상식이라서 그걸 부를 필요도 없어, 그것이 너무 당연해 우리는 그것을 지칭조차 하지 않는다..........토요일 오전 열한시라는 묵자의 세계를 사는 사람은 묵자를 읽지 못하는 누군가가 용산역 1번 플랫폼에도 있을 수있으며 그가 동행인 없이 홀로 서서 열차를 기다릴 수도있는 상황을 가정하지 않는다. 보는 이는 보지 못하는 이를 보지 못한다. 보지 못하는 이가 왜 거기 있는가? 그는고려되지 않는다. 용산역 1번 플랫폼의 상식에 그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는 거기 없다…… 나는 아직 그것을 볼 수있었으므로 거기 있었지만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상식의세계라는 묵자의 플랫폼에서, 다시 한번,
- P275

누군가 그에게,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그들이, 그러니까이스라엘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을 대하는 태도를 우리가어떻게 생각하면 좋은가,라고 울적하게 묻자 도슨트는 완고하고도 묵직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위 캔트, 저지 뎀We can‘t judge them,
그 말은 내게 주문처럼 들렸다.
아마도 그는 그 장소에서 그 대답을 반복해왔을 거라고서수경은 말했다. 사람들이 자꾸 물을 테니까. 거길 방문하는 세계인들이, 그렇겠지. 그러니까 그렇게 즉시 대답할 수 있었겠지. 우리는 그들을 재단할 수 없어. 우리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어. 몇번이고 반복된 질문에 훈련되고준비된 표정과 어조, 그런데 그것은 그 자체로 이미 상투어가 아닐까? 2013년의 비르케나우에서 우리가 들은 대답은 한나 아렌트가 "두려운 교훈" 이라고 한 그것, 말과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상투성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두었을까…- P282

서수경과 나는 그 침묵 속에서 함께 침묵하는 동안 평화적 시위를 원하는 사람들의 갈망에서 상처를 보았다. 누군가 다치는 광경을 우리는 너무 보았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누구도 다치게 하지 말라.
우리는 이미 너무 겪었다고,
-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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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미적지근한 온기를 참을 수 없어 d는 사물과의 접촉을 줄였다. 모든 것이 이렇게 될 수는 없으니 변한 것은 내 쪽이라고 d는 생각했다.
내가 차가워졌다,라고.
- P11

dd를 만난 이후로는 dd가 d의 신성한 것이 되었다. dd는d에게 계속되어야 하는 말, 처음 만난 상태 그대로, 온전해야 하는 몸이었다. d는 dd를 만나 자신의 노동이 신성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랑을 가진 인간이 아름다.
울 수 있으며,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여길수 있는 마음으로도 인간은 서글퍼지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 P18

그 좋은 것은 언제든 전쟁 한번으로, 하루 혹은 반나절도되지 않는 폭격으로 아무것도 아닌 것, 잿더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지……… 젊은 양반은 그것을 아는가우리는 사무치게 그것을 알아…… 젊었을 때 첫번째 전쟁을 겪은 그녀들은 자신들의 인생 중에 언제고 두번째 전쟁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생각이라기보다는 거의 무의식적인 확신과 예감을 지닌 채 살아왔기 때문에, 부지불식그와 같은 방식으로 과거의 여전한 현재를 이따금 확인하게 되며, 그런 것을 보면 자신들의 내적 삶에서 …… 그러니까 그 맴속에서…전쟁은 완전하게 중단된 적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P28

대낮에 내가 너무 야속하고 부끄러워서 눈물이났어. 그때 내가 매우 놀라며 깨달았지. 내가 우는구나 부끄러운 것을 다 느끼는구나 살아서 이렇게 있구나. 그러자 이번엔 그게 기쁘고 막막해 눈물이 났다. 내가 살아야겠다 이왕에 여기까지 살았으니 끝내 살아보자는 뚜렷한맴이 들었어.…… 그 확고하고도 뚜렷한 맴을 먹게 된 것이 부끄럼 덕이었으니 그것이 나를 살렸지.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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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존과 함께 보냈던 길고 긴 나날을 돌이켜보았다. 그런데 기억에 남은 날들은 너무도 적었다. 끝없는 시간을 손에 넣었다고 생각했기에 결국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선택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삶을 낭비했다. 그래서 기꺼이내 삶에 플라스티네이션 처리를 했다. 고치 속에 숨은 누에처럼.
세계 곳곳에서 삶이 영원히 이어졌지만, 사람들은 전보다 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함께 나이 들지 않았다. 함께 성숙하지도않았다. 아내와 남편은 결혼식 때 한 선서를 지키지 않았고, 이제 그들을 갈라놓는 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권태였다.
- P59

우리는 매듭 덕분에 선조들의 지혜와 목소리를 고스란히 살려 대대로 전해 왔다. 기다란 삼줄, 부드럽고 탄력 있는 삼으로 만든 줄을길게 펴서 고아 놓으면 적당한 탄력이 생겨서 똬리를 튼다. 그 줄을묶어서 모양이 제각각이 되도록 만든 서른한 가지 매듭은 저마다입술과 혀의 모양에 대응하여 각기 다른 음절을 표시한다. 불교 승려의 염주처럼 둥글게 묶은 삼줄의 매듭은 단어와 문장, 이야기를형성한다. 그리하여 말은 실체와 형상을 부여받는다. 줄을 더듬어내려가다 보면 매듭을 묶은 이의 생각이 손끝에 느껴지고 그 사람의 목소리가 뼛속에 전해진다.
- P116

"그런데 당신도 우리 매듭 책에 담긴 말을 배웠잖아. 우리 난족의매듭 묶기에서 우러난 지혜를, 그렇다면 당신도 우리한테 해마다.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건가?"
토무는 껄껄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보아하니 마음이 편치는않은 모양이었다.
"아뇨,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제가 촌장님한테 배운 것들은.…오래됐으니까요. 보호받는 대상이 아니에요. 저작권으로도, 특허권으로도"
- P132

늙어 가다 보면 사람은 점점 파충류와 비슷해진다. 아침에 햇볕을 흠뻑 쬐지 않으면 돌아다니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다음번에 베스가 들를 때 인공 태양등을 사다 달라고 부탁해야겠다. 겨울 아침에는 볕을 쬐기가 힘드니까.
- P171

홍옥을 먹을 때면 내가 정말로 살아 있는 느낌이 난다. 세포 하나하나가 내게 이렇게 말한다.
"그래, 아아, 이거야, 더 줘, 부탁이야.‘
내 생각에 몸은 저 나름의 지능이 있다. 정신은 결코 하지 못할 방식으로,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말할 줄 아니까.
- P178

엄마는 내가 태어나고 얼마 안 돼서 밀물에 휩쓸려 돌아가셨다.
아빠가 탑을 세우기로 마음먹은 자리 근처에서,
"밤에 바닷물 속에서 해파리의 빛이 깜박거릴 때면, 네 엄마의 반짝이던 눈이 보여, 파도가 우리 탑에 부딪혀 부서질 때면 네 엄마가부엌에서 냄비를 덜그럭거리던 소리가 들리고, 그런데 내가 어떻게떠나겠니? 네 엄마가 저 바다의 일부가 돼 버렸는데."
사랑이 아빠를 묶어 놓았다. 엄마에게, 저 끈질긴 밀물에게.
- P199

"안 돼. 그 사람들은 죽음을 피해 달아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하지만 현실 세계를 포기하고 시뮬레이션이 되기를 선택하는 순간, 그 사람들은 죽어. 죄악이 존재하는 한 죽음도 존재해야 해. 삶이 의미를 얻는 수단이 바로 죽음이니까."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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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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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중)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 시를 쓴 사람

어쩌면 사랑에 목마른 젊은 시인의 치기가 보여주는 저 문장을 쓸 때, 가난해도 백석은 행복했을 것이다.

사랑을 하고 시를 쓸 수 있었으므로...

 

 

"서과나무에 사과가 안 열린다면, 사과가 열매를 맺었다고 쓰면 되는거야. 알겠어? 그게 바로 창조의 원리거든. 그걸 잘 알아야 해. 우리 문학가들은 창조자들이야. 당이 원하는 인간이 있다면, 우리는 그걸 만들어내는 거야. 그게 우리가 하는 문학이야. 알겠어? 자네는 시로 그 힘을 보여야 해.‘- P150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정해진 시어들, 아니 선동구호들만으로 시를 쓰라는 요구를 받는 시인이라니.

 

"저 역시 시를 썼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말들은 제 안에서 점점 지워지고 있습니다. 음식 이름들, 옛 지명들, 사투리들..- P162

시인이 시를 쓸 수 없게 만드는 사회에서 백석은 언어 자체를 잊어버려간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하고 안타까웠다.

한국전쟁 이후 온 국토가 폐허가 된 북한에서 중요한 것은 아마도 생존이었을 것이다.

공습의 공포, 전쟁의 공포, 모든 인민이 멸절될 수 있다는 그 공포는 아마도 절망이었을 것이다.

그런 절망은 거의 항상 절대자에 대한 쉬운 열망을 가져온다.

인간의 나약함은 절대적인 절망상황에서는 너무도 쉽게 비상식적인 권위를 희망으로 여긴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처참한 경제의 몰락으로 고통받던 독일인들이 히틀러를 창조했고,

한국전쟁 이후 폐허의 공포가 김일성을 창조했다.

어디 그 뿐이랴?

강대한 자본주의 국가에 위협받던 소련에서는 스탈린의 독재가 용인됐고,

마오쩌뚱은 문화혁명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냈다.

그곳들에서는 항상 문학이든 예술이든 존재하기 힘들다.

인간의 마음을 규격화하는것이 어떻게 예술과 양립할 수 있을까?

 

김연수의 소설 일곱해의 마지막을 읽으며 시를 잃어가는 시인 백석을 만난 밤

지금의 한국사회를 생각한다.

코로나란 공포가 다시 우리를 강타하고, 불신과 증오가 난무하고, 이 사태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전가하고 싶은 사람들.

처음엔 신천지였고,

지금은 사랑제일교회고.

증오는 나아가 어제 오늘 진행된 온갖 공무원 시험에 대한 비판으로,

개학하는 학교로, 정부는 왜 셧다운을 하지 않는지 비난에 비난....

 

신천지나 사랑제일교회, 광복절 집회를 통해 바이러스를 퍼뜨린 세력들에게는 구상권을 청구하면 된다.

그리고 집회를 허가한 공직자들은 공식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사태가 기독교 세력 전체에 대한 증오로 연결되어서는 안된다.

이러다가 한국에서 기독교 금지법안이라도 만들라고 요구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분노와 화가 어떤 존재 전체의 금지로 나아가서는 안된다. (아 제발 내가 기독교인이라서 이런 말을 한다고 오해하지는 말자. 나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 다만 모든 종교를 존중하여 절에 가도 교회에 가도 이슬람 사원에 가도 기도를 할 뿐... 그 종교의 성인들은 다 인간다운 사회를 위해 헌신한 분들이라고 믿는 사람일 뿐이다.)

 

모든 증오는 결국 시인이 시를 쓰지 못하는 사회로 나가는 첫걸음이다.

백석이 시를 쓰지 못한 것은 그가 권력이 원하는 사회의 일률적인 규격을 맞출 수 없는 영혼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세력에 대한 일방적인 증오와 폭력은 곧 코로나라는 바이러스만큼 전염의 힘이 세다.

인간의 힘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직면했을 때 인간은 언제나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그 책임을 밀고 싶어해왔다.

지금은 기독교를 증오하지만, 이 사태가 더 걷잡을 수 없어진다면 그 다음에는 누구를 증오할까?

 

시인은 언제나 시를 쓸 수 있어야 하고, 삶은 언제나 계속되어야 한다.

시와 삶을 지속시키는 건 언제나 증오나 배제가 아니었다.

시를 쓰지 못하는 백석의 삶을 오늘 다시 살펴보는 김연수의 책이 나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하지만, 우리 공동체의 연대가, 다른 사람을 살피는 배려가 우리를 시와 삶으로 이끌어갈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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