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냥님이 그러니까 100자평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단 110쪽으로 완전히 내 마음을 사로잡음. 민음사는 아이라를 더 내놓으시오!! 라고.....


이건 100자평으로 사람을 낚는 확고한 기술이다.

그리고 낚였다. 나는 원래 귀가 얇다. 


낚인 결과가 딱히 나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딱히 좋지만도 않고, 

또 뭔가 새로운 소설양식인듯하다가 좀 더 생각해보면 이른바 예술 감독들의 어이없는 코미디적 상황을 곁들인 한편의 재미없는 영화에서 많이 본듯한 상황이기도 하고......


뭔가 계속 주절주절하다가 마지막 한방으로 나를 격동시켜줄려나 했지만 뭐 그것도 없어서 섭섭하다가,

아니 없는게 이 소설의 주제지. 그 한방을 기대하는게 여전히 내가 근대 소설 문법에 얽매여있기 때문이야라고 생각하다가....


결국 이렇게 내 마음을 이랬다 저랬다 판단 불가능의 상태로 만드는 것이 이 소설의 궁극적인 목적이었던 듯도 하고....


하여튼 스토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또 딱히 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이 책에 대한 결론은

한 마디로 철저하게 취향을 타리라라는 것이다.

그리고 내 결론은 나의 취향은 아니라고 하려다가 아니지 않을까라고 급격히 후퇴하고,.....

이로써 오늘의 결론은 잠자냥님에게 낚이지 말자라는 것? 


아니 그런데 또 잠자냥님이 소개해주는 책들을 보면 취향 저격인 것도 많았는데....

결국 결론이 없다가 오늘의 결론이다.

소설도 도대체 뭐라고 얘기할지 말하기 참으로 애매하니 모든 결론이 일맥상통한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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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7-14 1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아니 제가 이 책 5별이긴한데 취향 타는 작품이라고 말씀드렸는데 😹

바람돌이 2026-07-14 13:34   좋아요 1 | URL
그 말은 이미 민음사는 아이라를 더 내놓으시라는 말에 사로잡힌 이에게는 들리지 않는답니다. 자고로 대부분의 오해가 다 자기가 듣고싶은 말만 들어서 생긴다는 진리가 여기서도 통한답니다. 그리고 저는 잠자냥님의 취향을 따라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인지라 원하는 말 이외에는 다 무시했다는 말이죠. ㅎㅎ

잠자냥 2026-07-14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위조지폐로 월급 받은 설정부터 곤란한 재미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

바람돌이 2026-07-14 13:35   좋아요 1 | URL
아니 진짜 궁금한게 그래서 그 위조지폐는 어떻게 됐어요? 나는 중간에 식당에서 빚 내놓으라는 영감님에게 줄지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고.... 결국 위조지폐는 계속 주인공한테 있잖아요. 내가 갑갑해서 원..... 처음부터 끝까지 다 곤란했습니다. ㅎㅎ

잠자냥 2026-07-15 15:40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 님 리뷰도 화답했습니다. 먼댓글 보내기 했는데 안 되는 거 같네요?! 😹

바람돌이 2026-07-15 18:03   좋아요 1 | URL
리뷰 페이지로 바로갔습니다. 잠자냥님의 오늘 글은 선물같아요. ^^
알라딘이 먼댓글 기능은 그냥 없는듯 삽니다. ㅎㅎ

다락방 2026-07-14 11: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에게 낚이지 말자!
명심하겠습니다. -언제나 낚여서 책 질러버리는 1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6-07-14 13:38   좋아요 1 | URL
자발적 낚임 원함증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저나 다락방님이나 불가능하니 그냥 빠져들죠. ㅋㅋㅋ

책읽는나무 2026-07-15 08: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의 독서 세계는 어나더 레벨이에요. 절대 낚이면 안 됩니다.
눈과 귀를 닫아야 합니다.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저도 에혀…잘 낚이게 되더라구요. 이 책 뭐야? 좋은 건가봐? 일단 사!ㅋㅋㅋㅋㅋ
그래도 바람돌이 님은 낚여서 사셨다지만 읽으시고 감상평도 쓰셨네요. 장하십니다.ㅋㅋ
저는 일단 사다놓기만 하고 읽진 않아서 원망도 못해요.ㅋㅋㅋ
그나저나 방학시즌 다가오는데 더 자주 뵐 수 있는 거죠?^^

바람돌이 2026-07-15 11:10   좋아요 1 | URL
그 어나더 레벨 근처에 가고싶은 1인이라서요. ㅎㅎ 물론 한국문학에서는 책나무님 레벨로 가고싶습니다. ^^
읽고 쓴 책이 얼마나 되겠어요. 바쁠때는 읽는 것도 못하고, 쓰는건 더 못하고요. 심지어 이 글은 책에 대해 쓴 것도 아니고 결국 잠자냥님더러 이렇게 아리송한 책 뭐냐 투정부리는 것일 뿐이고요.
다음 주면 방학입니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인사하는 방학이 되도록 노력하겠음다. ^^
 
딸기 이론
김숨 지음 / 민음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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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이주, 노동자

3가지 중 어느 것이 당신의 정체성에 규정적인 것인가? 당신의 삶에 결정적인 규정을 하는 것은 여성인가? 이주인가? 아니면 노동인가? 나를 규정하는 것은 저 3가지의 조건 중 여성과 노동자이다. 저기서 이주 하나가 빠진 것 만으로도 나는 적어도 나의 노동이 나의 여성성을 억압하지는 않는다. 


자 당신이 한번 떠올려보라. 여성과 노동자가 합쳐진 모습을.... 나의 모습이든 타자의 모습을 떠올리든 사실 일곱빛깔 무지개처럼 다종 다양한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당신이 떠올린 여성 노동과 내가 떠올린 여성 노동은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지만 장담할 수 있는 건 당신이든 나든 하나의 모습만 떠올리지는 않았을 거라는 거다. 


자 그럼 다음..... 저 3개의 조건이 모두 합쳐진 누군가를 떠올려보라. 여성 이주 노동자. 장담하건대 당신이 떠올리는 모습이나 내가 떠올리는 모습은 거의 비슷할 것이다. 저 3개의 단어가 합쳐진 곳에서 우리는 백인여성인텔리노동자를 떠올리지 않는다. 마치 저 단어들이 일반 명사가 아니라 고유 명사인 것처럼 우리는 동남아 어딘가에서 온 갈색의 작은 몸집의 여성을 떠올리는 것이다. 잘 생각해보라. 우리가 떠올리는 모습에서 얼굴을 구별할 수 있는지.....


나는 딸기를 따며 내 몸을 까맣게 잊곤 해. 내 몸에 자궁이 있다는 것도. 난 내 자궁을 보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내 몸이 출산 적령기의 몸이라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해. 딸기를 따다 보면 내 몸에 두 손만 있는 것 같아. 딸기를 따는 두 손만. 그럼에도 자궁은 내 몸에 있어.

 참, 네가 한 번도 물어본 적 없는 내 이름은 샤빼야.              -29~30쪽


 책 속에서 주인공 샤빼의 이름은 고작 2번정도 호명된다. 나도 이름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항변하지만 그 항변이 딱히 힘있지 않음을 상징하듯이 겨우 2번이다.  그리고 샤빼는 끊임없이 딸기딸기딸기하며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모든 순간들을 딸기를 단위로 호명한다. 인간 정신의 자율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가 극악한 노동을 겪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가혹한 노동은 인간의 정신을 포획한다. 딸기밭의 샤빼는 저절로 딸기딸기딸기하고 생각하게 된다. 나의 몸이 나의 정신을 규정한다. 노동이 나를 만든다. 그것이 긍정적일 때는 그저 적절한 시간과 강도로 내 삶의 나머지 시간이 보장될 때이지 노동으로만 이어지는 삶은 나의 정신을 파괴한다. 


  샤빼가 내 몸에 있는 자궁의 존재를 일부러 떠올리려 노력하는 것은 나라는 존재가 살고 싶은 삶을 잊지 않으려는 몸부림이고, 어쩌면 그것은 가족을 이루고 서로를 돌보는 그런 평범하디 평범한 삶의 모습일거다. 그러나 딸기밭의 노동이 무시하는 것은 그녀의 존재와 미래이다. 이름을 불러주지 않음으로써 그녀의 존재를 부정하고, 자궁의 존재로 상징 되는 그녀가 이룰지도 모르는 미래의 가족, 미래의 삶을 부정한다. 노동은 인간의 삶의 건강함을 유지하는 기본 조건이지만, 이 노동이 선을 넘을 때는 이렇게 인간 자체를 파괴하는 힘이 되어 버린다. 


  김숨 작가는 늘 과거든 현재든 인간의 생생한 고통의 시간을 지금 여기로 가져왔다.

위안부의 삶과 러시아 이주 한인들의 삶과 오키나와 학살 현장의 조선인과 일본인들.... 그리고 오늘 김숨 작가가 우리를 이끈 곳이 바로 지금, 여기 여성 이주 노동자이다. 


  김숨 작가의 이번 책은 유난히 불편하다. 왜냐하면 작가가 다루는 시간과 공간이 지금 바로 여기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참 교묘해서 작가가 아무리 과거가 과거로 끝나지 않음을 이야기해도, 그럼에도 독자는 과거는 과거로 인식한다. 또한 그 고통의 현장들이 과거의 이야기이기에 안심한다. 지금 우리는 전쟁의 현장에 있지 않잖아. 지금 우리가 위안부로 끌려가는 건 아니잖아.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아서 참 다행이야라는 등의 감정을 우리는 기본적으로 깔고 과거의 시대를 회상하고 글을 읽는 것이다. 그래서 타인의 고통에 연민하고, 타인의 폭력을 비판하는 것은 별다른 거리낌이 없고 어렵지 않다. 나의 정의로움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 나의 자존감을 충족시켜 준다.


  그러나 불현듯 끌려온 지금 여기는 어떠한가? 지금 여기라는 것은 이 모든 이야기에 나는 방관자이거나, 입만 살은 위선자이거나 둘 중에 하나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신문 기사로만 전해지는 삶의 이야기가 지금 당신 앞에 펼쳐진다. 이름을 가지고 매일의 삶을 살아내는 나와 같은 사람의 온기로 그가 다가올 때 방관자가 되거나 위선자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은 나의 양심과 나의 인간됨의 문제가 되는 것이며, 여기서 내가 나의 양심을 지키고 나의 인간됨을 지키고자 한다면 나의 불편함과 나의 시간과 그 밖의 나의 약간의 희생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비록 작더라도 그런 노력이 결국 나라는 인간을 만든다. 내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나라는 인간을 좀 더 괜찮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문학이 나라는 인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이렇게 불현듯 불쑥 다가온다. 


  김숨 작가는 항상 인간의 고통이 머무는 곳을 지나치지 않고 관통해왔다. 가장 고통받는, 그러나 전해야 하고, 지금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꾸준히 해왔다. 작가의 책을 읽다 보면 김숨 작가가 자신이 그려내는 삶에 녹아들어 나의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음이 모든 문장 속에 스며 있다. 


  타인의 고통과 삶에 대한 기술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2 가지다. 거리 두기와 일체화, 다르게 표현하자면 타자의 삶에 대한 관찰의 치밀함과 공감 능력의 극대화이다.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더 독자에게 다가갈지는 결국 작가의 필력에 달렸을 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주 노동자가 아니지만 이 책을 읽는 모든 순간이 불편했다. 샤빼와 보파, 속행은 내 이웃의 삶이었고, 그들이 고통 받는 모든 순간에 나는 방관자였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김숨 작가가 원하는 것 역시 우리가 그들의 삶을 삶으로 느끼고, 불편함을 느끼는 것, 그리고 나와 그들의 삶이 이어져 있음을 아는 것이었을 것이다.


  누구든 가장 쉬운 것은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내 인생을 글로 쓰면 소설책 몇 권은 쉽게 나오리라는 큰 소리가 얼마나 흔하던가? 그 말을 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타인에게는 흔해빠진 신파임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자기 이야기만으로는 작가가 될 수 없다. 내가 작가가 되지 못하는 이유도 나는 내 이야기밖에 못하기 때문이다. 나 너머의 삶, 그 삶을 얼마나 핍진하게, 깊이 파고들어 그려낼 수 있느냐에 작가와 독자의 경계가 있지 않을까? 김숨 작가는 타인의 삶을 자신의 삶인듯 그려온 작가이다. 그 공감의 깊이가 나를 불편하게 하고 그리고 결국......나를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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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7-14 1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이 책 읽어봐애겠어요. 김숨과 이주노동자 라니요. 읽어야지요.

바람돌이 2026-07-15 11:08   좋아요 0 | URL
김숨작가는 인물속으로 몰두해들어가는 필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늘 하게 돼요. 이번 소설도 1인칭 시점이라 특히나 몰두해서 불편하게 읽었습니다.
 
방문자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다니엘 J. 옮김 / 오픈하우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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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기이함이 주는 긴장감, 열폭하게 하는 FBI, 자기 정체성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뇌하는 잭 리처. 이 3가지가 별 5개를 주고싶게 한다. 그러나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의 느슨함과 갑작스러움, 범인이 마지막 범죄를 왜 했을까에 대한 개연성부족이 별 1개를 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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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04-27 2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존의 리처의 팬들은 이번 책을 좋아할 것이고, 이 책으로 리처에게 입문한다면 실망이라고 말할 듯....그러니까 이번 책은 팬심으로 읽게 된다는 것이다. 당연히 나는 리처를 사랑하므로 이번 책은 별 5개로 좋았다.

다락방 2026-04-27 22: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으로 리처 입문하면 좋아할 수 없을거란 생각을 했어요. 물론, 저는 좋았습니다!!
사건 해결에 있어서는 마음에 안들었지만, 저도 리처 팬인지라.. 하핫

바람돌이 2026-04-27 22:54   좋아요 1 | URL
팬심을 이기기는 힘들죠. ㅎㅎ 고뇌하는 리처라니 어찌 반하지 않을까요 ? 다음편에는 또 길 떠나는 리처? 아니면 런던 간 리처? 여전히 기대됩니다. ^^
 
절창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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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쓸 때 힘을 주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힘을 빼는 일이다. 읽는 일도 마찬가지다. 너무 힘을 준 글을 읽을 때 독자는 빨리 지친다. 글이 주는 지나친 무거움, 과잉된 비장함 이런 것이 신경의 피로를 빨리 가져오고, 굳이 이렇게 비장하게 얘기해야 될까라는 질문이 자꾸 떠오르다보면 문맥을 놓치고 산만해지는 것이다. 물론 이 소설이 끝까지 그러했다면 아마도 다 읽어내지는 못했으리라.... 이 소설에는 선생님과 아가씨, 2명의 화자가 등장한다. 소설의 초반은 선생님의 진술로 시작한다. 그런데 이게 좀 훌륭한 문장 쓰기 연습 공책같은 느낌이랄까? 너무 힘을 준 문장들의 연속이어서 이걸 계속 읽어야 하나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인내를 갖고 읽어보자. 2부에서는 아가씨가 화자로 등장한다. 그리고 문장들에 지나치게 들어간 힘이 좀 빠지기 시작하는데 난 오히려 여기부터가 좋았다.


  첫 번째 화자인 선생님이 하는 다음 말에서 이 소설의 주제는 이미 제시된다. 이 즈음에서는 독자인 나는 투란도트나 인어공주 이야기의 예를 읽으면서 이 책은 책을 읽는다는 행위에 대한 것인가하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어쨌든 이 일의 처음은 '읽는'데에서 비롯했기에, 나는 그 행위의 목적어가 어떤 사태와 사람에 닿아 있다 할지라도, 본질적인 오독을 전제하지 않고는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  - 15쪽


  그러나 조금만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작가가 말하는 읽는 행위와 그 행위에 필연적으로 잠재한 오독은 책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이야기임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 우리도 흔히 마음을 읽는다고 하지 않나? 이 책은 결국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일, 그 마음을 알아주는 일, 아니 알아도 모르는 척 할 수 밖에 없는 이들과 그 고통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 중 하나인 아가씨는 타인의 상처에 접촉하면서 그들의 마음을 읽는다. 찔리고 베이고 피가 흐르는 상처를 만지면 그의 기억이 파도처럼 나의 온몸으로 넘어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읽어내는 기억, 마음은 거짓 없는, 오독의 가능성이 없는 진짜 마음일까? 기타 선생님의 상처를 통해 기억을 읽어야 할 때 아가씨는 미친 듯이 외친다. 아무것도 생각하지마, 그게 안되면 그냥 상관없는 다른 걸 생각해, 애인 얼굴이라도 떠 올리라고.... 정말로 아가씨는 기타 선생님의 기억을 읽지 못한다. 그러니까 이런 능력조차도 상대가 마음을 감추려고 한다면, 우리가 읽는 것은 결국 오독 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이것은 읽기의 불가능성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한다면 사람의 마음, 그것도 내 옆에 나와 관계를 맺은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가씨는 오언에게 " 절대로 네 마음은 읽지 않아"라고 하지만 이미 아가씨는 오언의 마음을 읽고 있다. 그렇게 상처를 헤집지 않아도 그의 표정, 말투, 몸짓만으로도 아가씨는 오언의 마음과 진심을 아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도 그렇다. 다른 건 몰라도 저 사람이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는지 아닌지 우리는 다 알고 느낄 수 있다. 흔히 사기꾼의 말에 넘어간 사람들이 "어쩜 그렇게 감쪽같이 나를 속였는지 모른다"라고 얘기하지만 사실은 그 사기꾼이 감쪽같은게 아니라, 그의 사기를 통해 얻을 댓가에 눈이 먼 내가 보고싶은 것만 보고 읽고 싶은 마음만 읽은  결과가 사기를 당하게 하는 것이다. 내가 진심이면 상대의 진심도 보인다. 아가씨의 너만은 읽지 않겠어는 너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이지. 너의 마음을 몰라가 아닌 것이다. 


  바로 여기, 안다고 해서 모든 마음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데 삶의 괴로움이 있다. 너를 받아들임으로써 내가 내 삶에 설정한 선을 무너뜨려야 할 때, 너의 마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가 내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그럴 때 인간은 과연 타인의 마음이 아무리 절절하다 하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 삶과 마음을 무너뜨려야 함께 할 수 있는 삶은 과연 끝까지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까?



  읽기의 어려움과 불가능성을 얘기하지만 그것은 읽기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임을 내가 너의 마음을 받아들일지의 여부의 문제라는 평범한 결론에 도달하는 이야기이다. 그래도 이 소설이 재밌는 것은 그 평범한 결론에 다다르는 여정이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진리란 결국 가장 쉬운 말로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닐까? 아가씨가 돌보게 된 어린 아이들에게 하는 말은 너무 평범하고 가볍다.


  그녀는 때린 아이의 어깨를 가만히 붙들고 말한다. 친구를 다치게 하면 안돼. 너 얘랑 친하잖아. 얘도 너 좋아하잖아. 좋아하는 사람을 이렇게 때리고 할퀴고, 상처를 주면 안 돼. 사과할 거지?    -344쪽


  그러니까 이토록 작은 진리에 이르는 것이, 그리고 상처주지 않는 온전한 마음의 교환이 사실은 너무 어렵다는 것을 이야기는 보여준다. 그럼에도 사실은 쉬운 것이라는 것을 또한 보여준다. 다만 그 쉬운 것에 도달하기 위해 무수한 오독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게 사람의 마음인 것인가? 내 마음을 아는 것도 어렵지만 타인의 마음을 아는 것은 더 어렵다. 그래서 초반의 그 힘이 잔뜩 들어간 문장들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사람의 진심에 도달할 수 있음을 작가는 문장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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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6-04-29 13: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음에 와 닿는 바람돌이 님의 리뷰입니다.
특히 마지막 문단 읽으며 고개 끄덕끄덕.^^

그리고 구병모 작가의 만연체 문장은 참…뭐랄까요. 읽어나갈 땐 꽤나 부담스럽기도한데 다 읽고 나면 어? 좋은데! 그런 느낌이 드는 거에요. 그래서 자꾸 중독되는 걸까? 싶기도 하더군요.

바람돌이 2026-04-29 14:30   좋아요 2 | URL
구병모 작가의 책은 몇 권 더 읽어야 호불호가 가려질거 같아요. 이걸 좋다고 해야할지 내 스타일 아니라고해야 할지 좀 헷갈리더라구요. ㅎㅎ 나무님은 많이 읽으셨을테니 나무님의 좋은 느낌을 믿고 따라가겟습니다. ^^
 
세계문학 단편선 미니미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이상원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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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사촌 레이첼>의 마지막은 내게는 전율이었다. 1951년의 작가가 21세기의 나를 질타하는 느낌이었다. 세월이 흘러도 사람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가지고 혹시 이 여자가 살인범이 아닐까 의심하는 너는 뭐냐고, 너는 이미 젊은 과부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이 소설 속 주인공을 보고 있었지 않냐고.... 통념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편견, 폭력적 시선에 대해 나에게 묻고 있었다. 그 순간 대프니 듀 모리에는 내 인생의 작가가 되었다. 


  그런 내게도 이 소설을 들 때는 약간의 머뭇거림은 있었다. 장편을 잘 쓰는 작가가 단편도 잘 쓰는 건 아니니 혹시라도 실망해서 내 인생의 작가에 시들해지면 어쩌나 하는 뭐 쓸 데 없는 걱정을 했었다는 말이다. 결론은 그가 쓴 글은 장편도 단편도 모두 같다는 것이다. 뻔히 주어진 주제, 예상 가능한 상황, 그럼에도 마지막의 전율로 나아가는 이야기의 힘은 역시 대프니 듀 모리에라 감탄하게 만든다.


  작고 소담한 그리고 평화로워 보이는 표지와는 다르게 이 작은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공포다.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지지만 결국 하나의 주제 - 인간이 느끼는 가장 큰 공포는 무엇인가로 귀결된다.


  새 떼를 보며 그들의 평화를 이야기하고 나도 하늘을 날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하는게 인간이다. 그런 새떼가 마치 누군가에 이끌린 듯이 엄청난 무리가 되어 인간 세상을 공격할 때 우리 지구의 정복자라 자만하던 인간들이 할 수 있는게 있기나 할까? 지금의 우리의 평화는 그저 새들이, 동물들이, 아니면 주변 이웃들이 나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대책 없는 낙관에 근거한 건 아닐까? 너무도 디테일하게 묘사되는 새들의 공격과 인간의 대응을 읽으면 아마도 실제로도 그러하리라 하게 된다. 


  산책 후 집으로 돌아갔더니 낯선 이들이 집을 차지하고 있고, 집의 가구도 구조도 모든 것이 바뀌었다. 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나의 신분을 증명해 줄 이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왜? 왜 아무도 나를 모르지? 내 집은 어디에? 기숙 학교에 다니는 내 딸은 또 어디에? "침착해야 해. 심장이 이렇게 미친 듯이 뛰면 안돼. 당장이라도 목구멍에서 울음이 치솟을 것 같지만 그러면 안 돼."라고 자신을 다독이지만 출구는 없다. 모두가 친절한 얼굴과 친절한 말로 나를 모른다고 한다. 마지막은 슬펐다. 계속 왜? 어떡해야 하지?를 끝도 없이 되뇌이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헤매고 있을 앨리스 부인의 모습 때문에.... 그런 결말은 원치 않지만 우리의 끝을 우리는 모르는 거니까.


  마지막 작품은 시력 이상으로 수술을 하고 푸른 렌즈를 끼게 된 부인의 이야기다. 3개의 이야기 중 그나마 어쩌면 코믹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수술 후 몇 달 만에 푸른 렌즈를 끼고 본 세상은 이게 무슨 말이야? 나를 제외한 모든 인간이 동물 머리를 하고 있다. 그나마 강아지는 낫다. 그토록 친절하게 나를 보살펴주던 의사와 간호사와 남편 모두가 무섭고 교활하고 언제든지 나를 공격할 거 같은 뱀과 독수리 등등의 머리를 하고 있다니..... 주인공의 공포가 느껴지지만 그래도 꽤 코믹한 상황 아닌가?


  3가지의 단편이 모두 나를 뺀 주변이 나를 공격할 때 내가 느낄 공포를 이야기하고 있고, 예측 가능한 얘기를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독자를 끌어들이는 작가의 필력은 대단해서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게 한다. 어쩌면 한 편의 이야기를 다 읽을 때까지 내가 숨을 쉬었는지 돌아봐야 하는.....올해는 나쓰메 소세키의 책을 다 읽어야지 하는 결심을 했는데, 이러면 또 대프니 듀 모리에의 책을 먼저 다 읽어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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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4-16 20: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의 사촌 레이첼] 이 진짜 좋았어요. 제 경우에는 [레베카] 보다 레이첼이 더 좋았습니다. 크-
저도 대프니 듀 모리에 작품 다 읽어봐야지 싶어서 다른 책도 사두었는데 여태 안읽고 있네요. 하핫;;
<새>라는 단편 너무 무서울 것 같은데요. 히치콕의 새 도 생각나면서요 ㅠㅠ

바람돌이 2026-04-17 09:03   좋아요 1 | URL
저도 레베카보다 레이첼을 훨씬 더 좋아합니다. ㅎㅎ
그리고 저도 원래 날개 달린것들을 무서워하는지라 히치콕의 영화도 안봤는데 이번에 읽으면서도 두근두근하면서 읽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히치콕의 새는 이 단편에서 모티브를 따온거고 많이 덧붙였겠다 싶더라구요. 소설은 공포스러웠지만 그 공포가 길지 않아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ㅎㅎ

꼬마요정 2026-04-17 00: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의 사촌 레이첼>은 아직 안 읽었는데 읽어봐야겠어요. 대프니 듀 모리에 단편집이 있는데 다는 못 읽었답니다. <새>는 좀 충격이었어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왜? 왜? 이랬는데 생각해보면 그게 공포인 듯 싶었어요. 어쩌면 인간이 하는 행위를 뒤집은 건가 싶기도 하구요. 저도 대프니 듀 모리에 책 다 읽고 싶어요. ㅎㅎㅎ

바람돌이 2026-04-17 09:08   좋아요 2 | URL
레이첼은 강력 추천합니다. 저는 레베카보다 훨씬 좋았어요. ^^
새는 그렇게 끝나는게 더 무섭지 않았나요? 그런 상황이 정말로 온다면 인간은 그냥 끝이겠구나 싶더라구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으리가 믿고 있는 것들이 우리를 공격할 때 우리는 정말 무방비하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배신도 아는 사람의 배신이 더 무섭고 고통스러운거겠죠.

단발머리 2026-04-17 08: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대프니 듀 모리에 좋아서 유명한 그 두 작품과 <희생양>, <인형>을 읽었어요. <새>가 유명한 작품이던데 무서워서 아직 못 읽고 있었는데, 바람돌이님 리뷰 보니 다시 찾아볼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나를 뺀 주변이 나를 공격하는건 망상일텐데, 그게 여성의 목소리일 때, 저는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고 느끼거든요. 역시나, 대프니 듀 모리에입니다!

앗, 그리고 저의 최애도 <나의 사촌 레이첼>이에요~~

바람돌이 2026-04-17 09:12   좋아요 2 | URL
저도 희생양과 인형 찾아서 읽어보려구요. 이 단편집은 총 3편밖에 안 실린 미니미니 책인데 그 3편 모두가 좋았어요. 그 유명한 장편때문에 여성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읽었는데 여기 단편들은 그저 인간 보편으로 읽히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 관점도 그 나름대로 충분히 이해가 갔고 저는 좋았어요.

조만간 레이첼 최애모임이라고 한번 개최해야 할까요? ^^

희선 2026-04-18 03: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집에 모르는 사람이 있고 자신을 모른다고 하면 무서울 것 같네요 꿈 같은 느낌도 듭니다 그런 꿈 꿀 수도 있겠지요 다른 사람 머리가 동물이 되다니... 렌즈를 빼면 본래대로 보이는 건지...


희선

바람돌이 2026-04-22 16:06   좋아요 1 | URL
아 저 렌즈는 빼면 실명이기 때문에 못뺍니다. 저라면 어쩔까 생각해봤어요. 눈이 안보이는 동안 주인공은 친절한 사람들 덕분에 매우 행복했거든요. 그런데 눈 뜨자 마자 충격가 경악이 시작되는거죠. 음 그러고 보니 인생의 흔한 아이러니 같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