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위험하고 힘든 환경에서도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떠나지 않고 있는 이유를 묻자, 그는 "레바논이 전쟁 중이라 해도 사람은 살아야지요. 아이들에게 예방접종도 해야 하고요. 나는 이스라엘이고 팔레스타인이고 따지고 싶지 않군요. 사람이 살아야 싸우기도 하는 것 아닙니까. 난 최소한 사람을 살리는 작업을 하고있는 겁니다. 의사니까요." - P35

하지만 이 마드라사에 있는 학생들은 그런 것을 전혀 모르고 자란단다. 다섯 살 무렵에 이곳으로 와서 이슬람 교리와 미국에 대한 적개심만을 배우지. 이 학생들이 자라면 국경 지대나 아프가니스탄으로 가서 탈레반 주축 세력이 되는 거야.
만약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지 않았다면 이들이 전쟁고아가 되었을까? 이들이 전쟁고아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과격한 탈레반이 되지도 않았을 테지. 이 학교에서 새로 배출되는탈레반은 영화 〈괴물〉에 나오는 돌연변이 괴물처럼 미국이 만든괴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 P66

체첸의 독립으로 막대한 석유 이권을 잃고 싶지 않았던 러시아는 9.11 테러 직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는 것을 눈감아주었단다. 그 대신 "체첸의 반군 지도자가 국제 테러 조직과 연관돼 있다"며 체첸을 탄압하는 데 대한 미국의 동의를 얻어 냈어.
이로써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고, 러시아군은 거리낌 없이 체첸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 냉전 시대에 라이벌이던 미국과러시아가 이렇게 죽이 잘 맞는 친구가 된 것은 중동의 석유 통제권을 장악하려는 미국과 체첸의 석유 통제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덕분이란다. 미국이 러시아의 체첸 인권 탄압을 외면한 이유도 이것 때문이야. - P116

체첸이 다시 세상에 등장한 건 2012년부터야. 시리아에 내전이 벌어졌는데 그 혼란을 틈타 IS(이슬람국가)라는 무장 조직이 이곳에 들어간 거야. IS는 처음에 시리아 사람들을 도와준다고 하더니 자꾸 외국인 전사들을 불러 모았어. 그중에 체첸 전사들이 가장 먼저 IS와 시리아로 들어왔단다. 체첸 사람들은 키도 크고 얼굴도 강인하게 생겨서 아랍 사람들과는 외모가 많이 다르단다.
체첸 전사들은 그동안 러시아와 싸우며 길러 온 전쟁 기술을 선보이며 IS 전투의 최전선에 등장했지. 우리가 들어 본 IS의 잔인한 수법은 거의가 체첸 전사들이 IS에게 전해 준 거야. 인질 참수나 잔인하게 사람 죽이는 방법 등으로 체첸 전사들은 다시 유명해졌어. 체첸 전쟁은 시간이 흐르며 이렇게 괴물을 만들어 낸 거야 - P123

지금 나는 안전한 나라에 사니까 나하고 상관없다고 언제까지장담하지는 못해, 시리아 사람들도 체첸 전사들이 자기네 나라분쟁에 와서 저렇게 잔인하게 사람을 죽인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
면 체첸 전쟁을 남의 나라 일로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았겠지. 누구도 예상 못 한 일이었어. 지금 시리아 전쟁은 다시 그 불똥이 유럽으로까지 튀고 있어. 유럽의 난민 문제를 불러오거나 IS 테러의온상이 되어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단다. 우리가 다른 나라 분쟁에 관심을 더 가져야 하는 이유는 전쟁을 미리 막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같은 지구에 살면서 슬픈 비극이 자꾸 되풀이되지 않게 해야 하잖아. 괴물이 된 체첸을 보며 엄마는 그 교훈을 깊이 새기게 되었어. 이제 또 다른 괴물이 안 나오게 우리가 다른 세상 소식에 관심을 좀 더 가져 보자.
- P124

침묵하면 때론 공범이 될 수도 있어. 나는 그 죽음에 대한 침묵이 후세인의 만행에 동의한 것이나다름없다고 생각한단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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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8-26 14: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님 덕분에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

바람돌이 2021-08-26 15:34   좋아요 2 | URL
저는 페넬로페님 리뷰보고 이 책을 알게 돼서 읽고 있어요. 저자가 자신의 아들에게 얘기해준다고 생각하고 썼는데 쉽게 정리를 굉장히 잘하셨어요. 지금 재밌게는 보고 있는데 문제는 맘이 많이 아픕니다. 그래도 저자의 말처럼 침묵이 범죄의 공범이므로 열심히 읽고 있어요. ^^
 

존 그래디가 끊임없이 속삭이며 말의 몸통과 머리와 얼굴과 다리에 삼베 자루를 문지르고 안아 주는 15분 내내 롤린스는 말 고삐를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존 그래디가 안장을 골랐다.
그렇게 중얼대면 말한테 무슨 도움이라도 돼? 롤린스가 물었다.
나도 몰라. 내가 말은 아니잖아.
- P158

이 데 로스 옴브레스?(사람의 영혼은요?) 존 그래디가 물었다.
노인은 뭔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을 움찔했다. 마침내 대답하기를, 말과는 달리 사람은 결코 영혼을 공유하지 않으며, 타인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했다. 롤린스가 서툰 스페인어로 말도 천국에 가느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은 천국 같은 것이 필요 없다고 했다. 마지막으로존 그래디가 지상에서 말이 모두 사라진다면 말의 공동 영혼도 새로 영혼을 나눠 줄 말이 없으므로 사라지지 않겠느냐고묻자, 노인은 신이 그런 것을 허락할 리도 없는데 말이 사라지는 일 따위를 묻는 것은 어리석다고 대답했다.
- P166

그녀가 멕시코시티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그녀의모습은 북쪽 하늘에 충층이 쌓인 먹구름 아래 품위 있게 상체를 펴고서 말을 타고 산에서 내려오는 모습이었다. 앞으로비스듬히 기운 모자의 끈이 턱 아래에 단단히 묶여 있고 검은머릿결이 어깨 위로 이리저리 흩날리는데 뒤에서 번개가 검은구름을 뚫고 조용히 내리쳤다. 빗방울이 바람에 날려 후두둑떨어지는데도 태연히 말을 몰며 갈대가 무성한 희끄무레한 호수와 목초지를 지나는 그녀를 빗줄기가 야생의 여름 풍경 속에 완전히 감싸 안았다. 진짜 말, 진짜 사람, 진짜 땅, 진짜 하늘인데도 그것은 여전히 하나의 꿈이었다.
- P194

그녀는 그를 유심히 뜯어보았지만, 그 눈길에서 다정할이묻어났다. 그녀가 미소 지었다. 흉터에는 신기한 힘이 있지과거가 진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거든, 흉터를 얻게된 사연은 결코 잊을 수 없지. 안 그런가?
- P199

그들은 메사에서 폭풍이 북쪽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해가 지자 빛이 곤란을 겪었다. 발 아래 메마른 평원에 펼쳐진 검은 비취 모양의 라구니야스(늪지대)는 마치 또 다른 하늘을 꿰뚫고 있는 귀걸이 같았다. 서쪽에서 층층이 띠를두른 색깔들은 망치로 두들겨 맞은 구름 아래에서 피를 홀렸다. 순식간에 보랏빛이 온 땅을 감싸 안았다.
- P202

사람 안에 악한 면이 있을 수는 있네.
하지만 그건 그 사람의 악이 아니야. 어디서 악을 구하겠나?
대체 무슨 수로 그게 자기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나? 말도안 되지. 멕시코에서 악은 실재하는 존재야. 제 발로 걸어 다니지. 언젠가는 자네한테도 찾아올 거야. 아니, 벌써 찾아왔는지도 모르지.
- P284

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힘겨운 삶을 사신 만큼 열린 마음을 갖고 계시리라 기대했습니다.
잘못 생각했군.
그런 것 같군요.
내 경험상 고통을 겪었다고 해서 마음이 더 넓어지는 것은아니더군.
- P334

난 사회적인 사람이 아니라네. 내가 겪은 사회는 여자를 억압하는 기계나 다름없었어. 멕시코에서 사회는 아주 중요해, 여자들은 투표권조차 없는 사회지. 멕시코 사람들은 사회나 정치에 광분하지만 실천은 형편없어. 우리 집안은 가추피네75) 이지만, 스페인인이나 크리오 요나 광분하기는 매한가지야. 스페인에 있었던 정치적 비극이 20년 전 멕시코 땅에서 그대로 되풀이되었네. 진실을 볼수 있는 사람들이 비극의 희생양이 된 거지. 전혀 다른 동시에 완전히 똑같아. 스페인 사람의 심장에는 자유에 대한 강한열망이 깃들어 있지만, 그 열망은 오직 자기 자신의 자유만을향하고 있네. 온갖 진실과 명예를 한없이 사랑하지만 그 본질은 사랑하지 않아. 피를 뿌리지 않는 한 어떤 것도 증명될 수없다고 강하게 확신하지.  - P335

그날 밤 여기 정원에서 구스타보는 커다란 부상이나 상실의 고통을 겪은 사람들은 강력한 유대감을 갖게 된다고 말했는데,
그 말이 맞았어.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한 유대감은 슬픔의 유대감이며, 가장 견고한 단체는 비통의 단체이지.  - P347

별들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누워 있는 동안 심장 속에 똬리튼 고통이 불꽃처럼 타올랐다. 세상의 고통이란 형태 없는 기생충 같은 존재가 알을 깔 따스한 인간의 영혼을 찾아다니는것이라는 상상을 하며, 무엇으로 인해 사람이 그런 존재에게무방비 상태가 되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존재에게는 마음이 없으니 영혼의 한계를 알 길이 없다는 것을 몰랐던 그는 영혼에ㅠ한계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에 떨었다. - P373

고 있었다. 핏빛 먼지가 태양을 온통 휘감았다. 그는 발꿈치로말을 살짝 때려 앞으로 나아갔다. 태양이 그의 얼굴을 구릿빛으로 물들이고 붉은 바람이 어둠의 땅을 건너 서쪽에서 불어오는데, 자그마한 사막의 새들이 마른 고사리 숲과 말과 기수사이에서 재잘거렸다. 기다란 검은 그림자는 마치 세상에 유일한 존재의 그림자인 양 말을 바싹 뒤따랐다. 그러다 어두워지는 땅속으로, 다가올 세상 속으로 점점 사라져 갔다.
- P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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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8-25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요, 저는요.... 코멕 맥카시는요, 몇 년 전에 <카운슬러>를 읽어보고 워매 뜨거라, 정나미가 똑 떨어져 다신 쳐다도 안 보는 작가거든요.
헌데 워낙 유명한 작가고, 제가 읽은 건 딱 하나 <카운슬러>밖에 없고 그래서, 한 권 정도 더 읽어도 괜찮겠다 싶어 지금 생각 중이랍니다. 이 책은 좀 덜 사납나요? 아이고, <카운슬러> 그거 말이 카운슬러지 잔혹 엽기 더티 도무지 드세서 말입니다.
이것도 그렇다면 맥카시는 걍 때려 치는 걸로.....
다 써놓고 보니 어려운 질문 같아 죄송합니다. 흑흑흑....

바람돌이 2021-08-25 12:29   좋아요 0 | URL
헉 코맥 맥카시 후기작이 그렇군요. 저는 이 소설이 처음인데 이 소설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너무 좋아요. 말하자면 한 텍사스 소년의 성장기인데 그의 여정은 감동적입니다. 문장도 정말 끝내주고요. 강추합니다. 전 국경3부작을 다 보려구요.

Falstaff 2021-10-20 14:18   좋아요 0 | URL
근데요, 지금 마지막 페이지 읽고 딱 3분 지났거든요.
이거 참, 바람돌이 님께서 보시면 흉악해 하실 독후감을 쓰려고 준비중이랍니다.
마음에 안 드셔도 양해해주세요. 흑흑흑....

바람돌이 2021-10-20 17:04   좋아요 0 | URL
ㅎㅎ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와 똑같았다. 그들에게는 피가 있고 피에는 열기가 있다. 그의 모든 존경과 모든 사랑과 모든 취향은 뜨거운 심장을 향한 것이었고,
그것은 영원히 변함없을 것이었다.
- P13

소년은 음식을 먹었다. 밖이 점점 어두워졌다. 소년의 아버지는 커피를 마셨다. 그들은 아르투로가 트럭을 몰고 오기를기다렸다. 소년의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이 고장이 완전히 변해 버렸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불안해해. 200년 전의 코만치나 마찬가지 신세지. 백주 대낮에 뭐가 나타날지 아무도 몰라. 심지어 그것이무슨 색일지조차도.
- P42

롤린스는 말들을 끌고 통과한 뒤 철조망을 바로 펴 기둥에 못 박고서 뽑개를 안장주머니에 넣고 말에 올랐다.
대체 이런 곳에서 무슨 수로 말을 타겠어? 롤린스가 말했다.
타지 말라는 뜻이지, 뭐.
- P49

마음이 불안한데 그 이유를 모른다면, 그건 자기가 있지 말아야 할 장소에 있는데도 그걸 모르고 있다는 뜻이야?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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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못마땅한 사람, 현실을 제대로 들여다본 이후를 감당할 자신이 없는 사람은 ‘여기‘가 아닌 ‘저기 어느 곳의 매혹에 사로잡힌다. 파리의 시인 사를 보들레르 Charlos Pierro Baudeiarra 의 영혼은 이렇게 소리지른다. "마침내 나의 영혼은 폭발한다. 영혼은 현명하게나에게 외치는 것이다. 아무곳이라도 좋소! 아무곳이라도! 그것이이 세상 밖이기만 하다면! 3 가장 손쉬운 "이 세상 밖은 내가 살고있는 도시가 아닌 다른 도시다. 현실을 외면하고 싶을 때 우리는현실이 각인되어 있는 여기를 떠난다. 그리고 거기로 간다. 거기가어디든 좋다.  - P259

점점 베르사유는 루이 14세의 거처가 아니라 궁정 귀족사회 전체의 전시장이 되었다.
베르사유 궁은 궁전이 아니었다. 1744년 베르사유에는 하인을 포함해 1만 명 정도가 살았다고 한다. 베르사유는 파리를 대체하여왕의 궁정 예술을 찬양하는 ‘하나의 도시‘였다.
- P266

베르사유 궁정에 유폐되어 있던 세련됨은 이제 파리로 옮겨졌다. 모든것이 시각적으로 통제되었고 시각적 효과를 위해 동원되었던 베르사유의 전통은 파리로 이어졌다. 중세도시에 불과했던 파리는베르사유 몰락 이후 베르사유를 승계했다. 무조건 아름다워야 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심상이 아니라 시각적 자극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베르사유의 철칙을 물려받자 우리가 아는 파리, 우리가 사랑하는 파리가 등장했다. 잠시 베르사유에 주인공 역할을 넘겨주었던 파리는 다시 프랑스의 중심이 되었다. 파리는 베르사유를 그저 하나의 궁전으로 만들었다. 혁명 이후 프랑스에서 도시다.
운 도시는 오로지 파리뿐이었다.
- P268

자본과 예술은 숨바꼭질한다. 예술은 충격을 주지만, 자본이 예술을 흡수하면 예술의 충격은 사라진다. 도발의 장소가 힙한 장소가되면 보헤미안과 그의 친구 댄디는 다른 거처를 찾아야 한다. 현대의 예술가는 19세기 제2제정기의 파리 현장에는 당연히 없다. 그들은 지금 파리의 어딘가에 숨어 있다.  - P320

히틀러는 군중을 움직이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빈에서바그너의 음악에 매료되었던 것처럼, 군중이 자신에게 매혹되기를 원했다. 그는 시민들이 정치 지도자에게 열광하도록 만드는 방법을 자신의 예술체험으로부터 터득하고 있었다. 이성이 아니라감성에 의해, 논리의 힘이 아니라 열광이라는 경험에 의해 정치에몰입할 수 있음을 알아챈 것이다. 그는 자신을 전시할 수 있는 발코니가 필요했다. 발코니에 서서 자신을 내보이면, 군중은 그를 바닥에서 올려다본다. 한번 그를 올려다본 사람은 그를 단순히 지지하는 게 아니라 그에게 열광한다. 유명인을 직접 마주친 사람, 더욱이 그 유명인과 한번 악수라도 한 사람은 곧 그 유명인에게 빠져든다. 총리의 발코니에 모이는 군중이 늘어날수록 히틀러에게 열광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 P338

"바그너를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극장에 가는 것이 아니라 바그너음악이 자기 안에 만들어내는 그 특별한 상태, 그 황홀경,
신비스러운 꿈의 세계로 벗어나는 그 탈출의 기회를 뜻했다. 17 바그너 음악이 제공하는 판타스마고리아 Phantasmagoria (환등상)는 종국에 "청취자를 국가주의적 자기 신격화와 잔인한 유머로 유혹 18한다. 히틀러의 바그너 애호는 한 권력자의 사적 취향이 아니었다. 그것은 예술로 위장되고 미화된 정치였다.
- P357

1942년 8월 9일의 연주는 현재의 콘서트홀 실황 연주나 레코딩된 음반으로 듣는 연주, 그러니까 오랜 기간 갈고 다듬은 수준에는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교향곡 7번은 100여명의 대규모 교향악단 편성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연주시간이 결코 짧지 않은 교향곡이다. 그러나 연주의 수준과 음악회의 감동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1942년 8월 9일 레닌그라드 오케스트라는 유흥이나 교양의 표식으로의 교향곡이 아니라 히틀러가 야만적인 전쟁을 벌일 때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았던 레닌그라드를 소리로 표현했다. 교향곡7번 연주는 인간임을 증명하는 행위였다.
- P378

 베를린에서 태어났지만 베를린을 떠난 벤야민이 물었는데, 베를린은 벤야민에게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예술은 인간의 야만스러운 과거를 망각하지 않고 기억함으로써 다시 그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고, 베를린은 그런 의미에서 파리처럼 아름답지도 빈처럼 웅장하지도 않지만 가장 독창적인 예술적 도시라고,
이곳에서 예술은 진실에 다가간다. 진실에 근접한 예술을 베를린은 품고 있다. 베를린의 천사는 이 또한 목격하고 있을 것이다.
- P393

서울은 콘스탄티노플이 아니다, 그런데 생로병사를 피할 도리가 없는인간의 운명을 생각하는 한 여기는 콘스탄티노플이다.
- P405

서울은 빈이 아니다,
그런데 세계로 열려 있는 도시는 어디나 세기말 빈을 닮았다.
- P415

서울은 파리가 아니다, 그런데 우정이 경쟁을 압도하면그곳은 어디든 19세기의 세계수도 파리가 된다.
- P419

서울은 베를린이 아니다. 그런데 예술은 비록세상을 구원하지 못해도 고통을 기억함으로써 인간의 편이 되어준다.
- P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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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도시에선 유난히 발걸음이 가볍다. 아무리 걸어도 도통 지치지 않는다. 눈은 호기심으로 빛나고, 코는 그 도시 고유의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각 도시 특유의 습기와 공기는 피부에 와닿는 감촉으로 내게 말을 건다. 보고 관찰하고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이상의 자극이 필요할 때는 그 도시의 예술이 가장 좋은 친구가 돼준다. 어느 도시는 그 도시만의 예술을 품고 있고, 예술은 도시를다른 방식으로 느끼게 해준다. 예술을 품은 도시의 매력은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며, 여행하며 읽는 책은 그 도시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이끌어준다.
- P5

 여행과 예술탐닉은 서로의 동반자이다. 로베르트 무질 robert Musil 이 말했듯이사람들이 현실감각을 얻으면 꿈을 잃는다. 여행은 현실감각으로비추어보면 미친 짓이다. 현실감각에 의존한다면, 여행은 하지 않는 것이 현실적이다. 현실감각을 얻은 대가로 꿈을 잃어버린 사람은 "더이상 나무 아래서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 사이로 하늘을보지 않으며, 오로지 일을 만들어내기만 한다. 유능해지기 위해서는 굶주리거나 꿈을 꾸어선 안 되고, 스테이크를 먹고 움직여야 한다. 4 여행의 이미지를 이처럼 선명하게 잘 보여주는 문장이 또 있을까?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나무 아래서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 사이로 하늘을 보는 것", 나는 발가락 사이로 하늘을 보고 싶었다. 이 책은 발가락 사이로 보았던 하늘에 대한 기록이다. 나는여행에서 인류의 보편언어인 예술을 만났고, 그 보편언어를 내가태어나고 자란 한국어라는 모국어로 옮겨놓는 번역자이다.
- P31

감을 도구를 사용해 다듬었다. 생존하기 위해서 하는 행동, 그 행동을 우리가 노동이라 부른다면 네안데르탈인도 호모 사피엔스도 노동했다. 그들은 모두 노동하는 인간 즉 호모 파베르다. 그런데 여기 지금 우리가 있는 쇼베는 호모 파베르의 작업 현장이 아니다. 쇼베는 먹을것을 저장하는 저장고가 아니다. 주술적 목적이든장식적 목적이든 상관없이, 쇼베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생존이라는 틀을 벗어난 행동이다.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차이는 "생존에 목적을 둔 세계에 대한 항의 여부에 달려 있다. 쇼베는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과 무엇을 통해 구별되는지를증명하는 행위가 탄생한 공간이다. 쇼베의 호모 사피엔스는 현재의 예술 인간‘ 호모 사피엔스와 다르지 않다.
- P73

예술을 통해 지금 현재의 한계에서 벗어나기를 상상하고, 경제적 유용성이라는 좁은틀에 갇히기를 거부하고, 인류의 보편언어로 의사소통하면서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여행을 시작하는 첫 장소는 당연 쇼베여야 한다. 쇼베에서 우리는 인류 보편언어로 이야기하는 법을 배운다. 쇼베에서 나는 가장 오래된 예술 인간‘이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를 만났다. 호모 사피엔스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섬이 아니다.
현재의 호모 사피엔스와 기원전 3만 7천년의 호모 사피엔스는 ‘예술-인간‘ 이라는 공통점으로 이곳 쇼베에서 인사를 나눈다.
- P74

모든 아름다운 것은 쇠락한다. 아름다움의 본질은 영원성이 아니라 쇠락에 있다.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무한한 존재가 아니기에 세상을 창조할 수 없다. 대신 인간은 유한하기에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다. 그리하여 예술은 신의 몫이 아니라 인간의 몫인 것이다.
- P116

피렌체의 ‘논-피니토‘는 돈으로 후원하는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돈을 필요로 하는 현실 속 예술가의 입장으로 예술을 보아달라는 메시지다. 그런데피렌체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돈으로 후원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피렌체를 해석한다.
- P175

그는 지금 껍질을 깨려 한다. 잘츠부르크를 벗어나는 것은 신하 예술가의 지위를 거부한다는 뜻이었다. 빈에서 그는 신하 예술가 이외의 또다른 가능성을 발견했다. 예술가는 새로운 가능성을 문득 느꼈을 때 보통 사람보다 기민하게 반응한다. 빈에서 모차르트는 궁정 밖의 사람들, 즉 관객을 발견했다.  - P203

황제는 미래를 보지않았다. 황제에게 미래는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불편한 것일뿐이었다. 한 사람이 68년 동안 황제였다. 68년의 시간은 그의 감각과 동시대인의 감각 사이의 거리를 점점 더 멀어지게 한다. 충분히 넉넉한 과거를 만끽했고 현재에서도 어떤 부족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굳이 미래에 기대를 걸 필요가 없다. 도무지 링슈트라에서는 미래가 느껴지지 않는다. 고딕 스타일로 설계된 시청사, 고대 그리스 스타일을 모방하여 온갖 조각상으로 치장된 제국의 사당은 건축양식으로만 보자면 고전적인 건물처럼 보인다.  - P226

랑슈트라세와 빈 대학 그리고 빈의 세련된 모든 외양은 황제의 확장이다. 그 황제는 하수도가 없다고 시침떼고 있다. 프로이트는 프란츠 요제프1세에게서, 그리고 확장된 황제의 링슈트라세에서 거시적 아버지‘를 느낀다. 그는 그 아버지를 살해하고자 하는 오이디푸스의 충동을 물려받는다. 모차르트가 시도했으나 실패했던 대담한 행위를 프로이트는 구체적으로 실행한다. 츠바이크는 가장 함축적으로, 하지만 가장 정교하게 프로이트적 충동을 이런 문장으로 표현했다. "모른 체하지 말고 확인하라는 것이다. 돌아가지 말고 들어가라는 것이다. 눈 돌리지 말고 깊이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외투를입히지 말고 벗기라는 것이다. 27 그 요구에 제일 먼저 답하는 사람들이 예술가다.
- P233

탐미는 탐욕보다는 교양적 행동으로 보이나, 모든 탐미가 탐욕보다 낫다고 할 수는 없다. 차라리 탐욕은 때로 생존을 위한 인간 본성이라고 정당화될 수도 있지만, 이유없는 탐미는 탐욕보다 때로는 더 위선적이고 속물적이다.
크라우스는 그걸 못마땅하게 여겼다. 예술이 신분을 표시하는 도구로 전락한 빈의 탐미주의에서 위선을 느낀 것이다. 침을 뱉고 돌아서거나 위선적인 세계와 담을 쌓고 살 수도 있었지만 크라우스는 예술가이자 작가로서 이 도시의 감추어진 위선을 문장으로 폭로한다. 그의 무기는 논쟁과 풍자다.
예술이 과잉 인정되거나 과대 포장될 경우 예술은 본연의 해방적 힘에서 멀어진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하는 탐미적 광풍이빈을 휩쓸 때 예술가의 목표는 형식적 완성이 된다.  - P243

장인도 신하도 아닌 자율적인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모차르트의 꿈은 이렇게 한참 후 빈에서 다른 예술가에 의해 이뤄졌다. 아버지로부터 분리되고 싶었던 그의 열정, 자율적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그의 충동, 그의 이른 죽음으로 완성하지 못했던 그 기획을쇤베르크가 완성했다. 비록 빈은 여전히 그의 음악을 사랑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모차르트가 부활한다면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완수했다고 쇤베르크에게 박수를 보낼 것이다. 모차르트를 발견하기 위해 빈에 왔지만, 빈을 떠날 때는 쇤베르크와 함께 떠난다.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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