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공장 - 소설가 김중혁의 입체적인 공장 산책기
김중혁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대가 바뀌면 사물을 바라보는 방법이나 내용이 바뀐다는 것을 머릿속으로는 충분히 알지만 그래도 막상 맞닥뜨리게 되면 잠시 당황하는 순간들이 있다.

김중혁 작가의 메이드인 공장이 딱 그렇다.

 

공장이라니....

60년대생에게 공장은 어린 시절 공부못하면 가는 곳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곳이었고,

20대 시절에는 세계를 변혁할 주인공들이 있는 곳이어서 미래의 희망의 상징이었던 곳,

그리고 지금은 신자유주의의 도래 이후 수많은 노동자들의 피눈물이 맺히고 있는 곳

어쨋든 공장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곳이고,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져본적은 없는 그런 어떤 곳이면서 위의 전형을 벗어나본적이 없는 그런 곳이다.

 

책 앞쪽의 프롤로그를 읽다보면 나와 몇 살 차이나지 않는 이 작가 역시 비슷한 사회적, 세대적 경험을 공유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역시 김중혁이라는 이 귀엽게 삐딱한 작가는 세대적 공유경험을 살짝 뛰어넘어 준다.

그냥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냐는 듯이 그냥 우리 앞에 공장을 펼쳐준다.

 

"여기 보라고, 사람들이 있지 않냐고

종이와 콘돔과 브래지어가 이렇게 만들어진다네.

뭔가 좀 신기하지 않나?"

작가 김중혁이 독자에게 건네는 말은 딱 이정도이다.

무언가가 만들어지고,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일하고 있는 곳. 모든 걸 빼고 그냥 공장이 뭐냐고 하면 이렇게 대답하는게 김중혁의 쓴 이 책의 대답이 아닐까?

 

그런데 이 단순한 질문과 단순한 대답들이 참 유쾌하게 다가온다.

막연히 생각해도 내 손안에 들어오는 물건들이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생각해보면 참 신기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뭐 나서서 나같은 사람이 공장을 견학하려고 기를 쓰고 찾아갈것도 아닌데

이렇게 작가가 살짝 대신 다녀오고 들려주는 얘기들은 호기심의 충족과 함께 약간 뭔가를 훔쳐보는 듯한 관음증적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느낌도 든다.

 

그리고 드는 생각은 공장 역시 사람이 사는 곳!

결국은 물건의 얘기보다 그곳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맘에 와 닿는다.

사양산업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도대체 지금 그걸 만드는 사람이 있냐고 물어야 할 듯한 LP공장 사장님의 뚝심과 배짱은 존경스러울 정도다.

꼭 성공하시라고 어디가서 빌어드리기라도 하고 싶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또 세상을 살아갈만하게 하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스친다.

 

 

어디서나 있을법한 그런 이야기거리와 고민들과 풍경들이 딱 김중혁 스타일로 조곤 조곤 풀어나가는 것이 참 재미있다.

그의 에세이는 꽤나 편안하게 읽히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가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기 때문일듯하다.

가볍게 읽히지만 세상 그 무엇도 가볍게 여기지 않는, 그 나름의 존중을 보내주는 작가의 마음이 문장들 곳곳에 알뜰히 배어있다.

아마 글 뿐만이 아니라 공장을 찾아가는 김중혁작가의 마음도 그러했으리라 싶다.

그러니 독자 역시 그런 마음으로 작가와 함께 두런 두런 공장을 둘러보자.

 

뱀꼬리

김중혁작가와 일군의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소설리스트라는 사이트가 있는데 거기에 매주 김중혁씨가 '표지 甲'이라는 코너가 있다.

순전히 김중혁작가 개인이 좋아하는 표지를 선정하는건데

내가 보기엔 이 책 메이드인 공장이 표지 甲이다.

책을 읽고 나면 더 딱 그만인 표지라는 생각이 든다.

아 그리고 김중혁 작가 일러스트 솜씨가 좋은 건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의 표지와 삽화들 진짜 훌륭하다.

좋겠다. 재주많은 사람은.....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트] 자전거여행 - 전2권 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아무개가 거듭 군령을 어기기로 베었다. 바다는 물결이 높았다."라는 식의 문체를 보인다.  2권 172쪽

 

위의 인용문은 이순신의 <난중일기>의 한대목이다.

놀랍도록 김훈의 문체와 닮았다.

나는 <난중일기>를 읽지 않았으니 <난중일기> 전체의 문장이 이러한지, 아니면 작가 김훈이 자신의 문체와 똑 닮은 이 부분을 일부러 떼온건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건 김훈의 문체가 저 문체를 똑 닮았다는 거다.

김훈은 왠만해서는 감정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자신이 보고있는 것, 보여지는 것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역사를 이야기하고 풍광을 이야기하고 또는 사람들의 얘기를 하다가 그때서야 발견한듯 시선을 옆으로 돌린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이 뜬금없는 장면의 전환에 늘 김훈이라는 인간의 마음이 전해져온다.

기쁘다 슬프다 표현하지 않아도 절절하게 그 마음이 와닿는 것이다.

 이 마을 염부 권호원씨(67)는 14살 때 아버지를 따라 피란왔다. 아버지와 함께 등짐으로 돌을 날라 둑방을 쌓았다. 그 염전에서 권씨는 지금도 소금을 거둔다. "이제는 염전일을 할 젊은이가 없다. 염전은 결국 저절로 없어질 것"이라고 권씨는 말했다. 1세대의 둑방은 아직도 튼튼히 바다를 막고 있다. 고무래를 미는 권씨의 굽은 등 위로 서해의 폭양이 내리쬐고 있었다. 1권 256쪽

 

권씨의 굽은 등 위로 폭양이 내리쬐는 모습은 사실 그 자체일 뿐이지만 그 모습에서 나는 그가 살아온 노동의 세월과 삶의 신산스러움과 한 세대가 저물어감을 동시에 느낀다.

고무래를 미는 권씨의 모습에서 굳이 굽은 등을 찾아낸 것, 그리고 그 순간 그를 스쳐간 바람이든 바다내음이든 그 무엇이 아니라 내리쬐는 폭양으로 그의 모습을 설명한 것에서 내가 김훈에게 느끼는 건 소름이다.

구구절절히 풀어내야만 할 것같은 모든 장면을 단 하나의 스틸컷으로 압축해내는 이 능력이라니....

김훈의 글을 이끌어가는 가장 강력한 힘은 그의 짭고도 강렬한 문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그건 단순히 문체의 힘이 아니라,

세상의 가장 본질적인 장면을 포착해내고,  그것을 하나의 명징한 장면으로 표현해 낼 수 있는 그의 사유의 깊이의 힘이라는 것을......

 

김훈의 글은 자연을 빌려 인간을 얘기함에 탁월하다.

그의 글의 예리함은 그의 애정서린 눈길과 오랜 사유에서 나오는 것임에 분명하다.

그 예리함이 사람을 베지 않고 자연을 베지 않는 것은 또한 대상에 대한 애정이깊기 때문일터이다.

늘 피고지는 꽃들에서 꽃을 보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

돌산도 향일암 앞바다의 동백숲은 바닷바람에 수런거린다. 동백꽃은 해안선을 가득 메우고도 군집으로서 현란한 힘을 이루지 않는다. 동백은 한 송이의 개별자로서 제각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버린다.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져버린다.

..... 매화는 잎이 없는 마른 가지로 꽃을 피운다. 나무가 몸속의 꽃을 밖으로 밀어내서, 꽃은 뿜어져나오듯이 피어난다. 매화는 피어서 군집을 이룬다. 꽃 핀 매화숲은 구름처럼 보인다...... 매화는 질 때, 꽃송이가 떨어지지 않고 꽃잎 한 개 한 개가 낱낱이 바람에 날려 산화한다. 매화는 바람에 불려가서 소멸하는 시간의 모습으로 꽃보라가 되어 사라진다.....

....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빛은 이 그림자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들끓는다......산수유가 언제 지는 것인지는 눈치채기 어렵다. 그 그림자 같은 꽃은 다른 모든 꽃들이 피어나기 전에, 노을이 스러지듯이 문득 종적을 감춘다. 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1권 15~17쪽

 

때때로 자연을 보는 사유의 눈은 더 깊이 인간의 자연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김훈이 자전거 풍륜과 함께 넘는 산은 옛적 누군가의 산이기도 했을 것이다.

김훈은 유가의 산이 다르고 도가의 산이 다름을 이야기하며, 또한 등산객들의 산이 다르고 산에 깃들인 삶을 사는 이들의 산이 다름을 얘기한다. 어쩌면 산은 거기 있을 뿐인데 인간들이 다르다하는 것이겠다.

 

또한 나무의 나이테 하나에서도 나무를 살아있게 하는 것은 새로 생겨난 나무둥치의 바깥면이지만, 나무를 나무답게 올곧게 지탱하는 것은 이미 죽은 중심부임을 얘기하며 건강한 사회가 어떠해야 하는지의 원형을 배우고자 한다.

자연과 인간은 결국 이 우주의 원리에 올곧게 부응할 때 가장 아름다울 수 있음이니,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우주의 원리를 끊임없이 묻고 답하고자 했던 그 태도가 어떤 것이었나를 김훈의 글속에서 발견한다.

 

김훈의 글을 읽는 또하나의 즐거움은 이토록 탁월하고 자유롭게  우리말과 한자어를 운용하는 작가를 어디서 다시 볼 수 있을까?

한글은 소리글자 답게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글임이 김훈의 글을 통해 알게된다.

숲이라고 모국어로 발음하면 입안에서 맑고 서늘한 바람이 인다. 자음 'ㅅ'의 날카로움과 'ㅍ'의 서늘함이 목젖의 안쪽을 통과해나오는 'ㅜ'모음의 깊이와 부딪쳐서 일어나는 마음의 바람이다. 'ㅅ'과 'ㅍ'은 바람의 잠재태이다. 이것이 모음에 실리면 숲 속에서는 바람이 일어나는데, 이때 'ㅅ'의 날카로움의 부드러워지고 'ㅍ'의 서늘함은 'ㅜ'모음쪽으로 끌리면서 깊은 울림을 울린다....숲은 글자 모양도 숲처럼 생겨서, 글자만 들여다보아도 숲속에 온 것 같다.   1권 59쪽

 

한자는 뜻글자답게 사유를 펼치고 사람의 사는 길을 표현함에 거침이 없다.

더불어 온갖 고전에 대한  김훈의 해석은 그의 어휘의 풍부함으로 한껏 빛난다.

우리말과 한자의 어우러짐으로 김훈의 글은 늘 간절하게 들린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으로 간절하고 자연과 세상과의 소통을 희구하는 마음 또한 간절함이다.

그의 말대로 간절한것은 아름답다.

 

그리고 그 간절함의 끝에 사람이 있다.

소금밭을 가는 염부의 굽은 등, 차를 덖음질하는 이의 구부러진 손마디, 소를 매질하는 농부, 80년 광주의 사람들, 도자기를 굽는 도공의 마음.....

그들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그의 글은 지극히 건조하지만, 그 건조함으로 오히려 간절하다.

또한, 그러므로 눈물겹게 아름답다.

 

보고 좋은 책, 즐거운 책, 생각하게 하는 책은 많고도 많지만,

늘 곁에 두고 읽고 또 읽고 음미하고 싶은 책은 그리 많지 않다.

내게는 김훈의 이 책이 그러하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14-11-20 0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의 문체~ 초기엔 김훈도 저리 간결하게 쓰지 않았더라고요.
<풍경과 상처>를 보면 후기에서 ˝이젠 이런 문장을 쓰지 않는다˝고 밝혔어요. ㅋㅋ
http://blog.aladin.co.kr/714960143/3234375
나는 <칼의 노래> 첫문장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에서 전율했지요.
김훈은 정말 대단한 작가에요. 글쓰기의 모범을 보는 듯한....

바람돌이 2014-11-21 09:25   좋아요 0 | URL
칼의 노래는 정말 그 문장 하나로 시작부터 마음을 확 뒤집고 시작하죠. ㅎㅎ
저는 김훈씨의 책이 칼의 노래부터 시작이라 이전 글은 못봤어요.
지금 김훈의 문장이 좋은 저는 풍경과 상처는 살짝 밀어놓을듯.... ^^

조선인 2014-11-20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래도 `풍경과 상처`가 제일 좋아요. 가장 김훈같지 않기에, 내 20대에 가장 잘 어울렸던 책이었거든요.

바람돌이 2014-11-21 09:28   좋아요 0 | URL
누구에게나 나만의 책이 있잖아요. ㅎㅎ
그리고 처음에 어떻게 만났는가가 중요하죠.
저는 지금은 전혀 좋아하는 작가가 아니지만 고등학교 때 이문열을 처음 만났을때의 그 마음은 여전히 남아있거든요. ^^
 
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엃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되는 거야.  -카프카-

 

카프카의 글에서 제목을 빌려온 박웅현씨의 책을 읽었다.

저 인용글에 저자가 하고 싶었던 모든 말이 들어있다.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꼼꼼하게 읽고 그 속의 말들을 자신의 삶으로 변환시키는 데 진정한 독서의 의미가 있음을 이렇게 친절히 알려주는 책은 고마운 책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책들을 모두 따라 읽는게 중요한게 아닐게다.

나의 독서가 나의 삶을 변화시키고 그것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한  몫을 하지 않는다면 그 독서는 왜 하는걸까?

우리 아이들이 좀 더 큰다면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14-11-14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 인용구 속에 하고 싶은 말이 다 들어 있죠~
나의, 우리의 독서도 저래야 하는데...
세상은 책 읽는 사람들의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아서~ 에휴.ㅠ
 
길에서 어렴풋이 꿈을 꾸다 - 이동진의 영화풍경
이동진 글.사진 / 예담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참 예쁜 글!

만약 작가를 모르고 봤다면 여자가 쓴 글이라고 생각했을듯도 하다.

남자들의 글속에서 감성은 곧잘 모자라고, 여자들의 글에서 감성은 곧잘 지나치게 넘치는 경우를 자주 본다.(물론 모든 남녀가 그런것은 당연히 아니다. 언제나 예외들은 존재하는 법!)

그러나 영화의 촬영지를 찾아간다는 어쩌면 낭만적일 수 있는 여행길에서 자신의 감성을 적절하게 조절하고 풀어낸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넘치는 것은 모자란만 못하다지만 어디 그것이 쉬운일인가 말이다.

 

이 책에서 다니는 여행지는 이미 말한대로 영화의 촬영지들이다.
그런데 영화는 모두 유명세가 대단한 영화들이지만 그 촬영지들은 영화가 아니라면 절대로 관심이 가지지 않을 것같은 곳들 - 외지고 한적하고 그래서 가려면 죽도록 고생해서 가야하는 곳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소중하다. 이동진 이사람이 아니라면 언제 이런 곳을 책으로라도 보겠는가 말이다.

 

호주의 에어즈록에서 작가는 말한다.

"서로 몸을 맞대고 반갑게 비비기라도 하듯, 평상에 드러누워 끝없이 속살거리기라도 하듯, 별들은 일제히 소리를 냈다. 별이 별을 부추기고 별이 별을 흔들어 깨우는 압도적인 풍경을 올려다보고 있다니 현실이 꿈처럼 느껴졌다. 그 밤, 나는 별의 잔해였다." 세상에서 가장 큰 바위 에어즈 락, 그 바위외에는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사막과 하늘 외에는 없는 그곳의 밤이 나를 감싼다. 이 순간 나 역시 별의 잔해가 된다.

 

"사막에서는 모래 바람이 끊이지 않고 불어왔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이는 모래는 고체이고 액체이며 기체였다..... 사막에서 모래는 무형의 형질로 그 모든 것이 되었다. 그렇게 세상을 이룬 모래는 잔바람에도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끊임없이 속삭였다. 이제 어둠이 사막을 완전히 삼킨 후에도, 모래는 잠들지 않고 오래도록 수군댈 것이다."(스타워즈의 촬여장 - 튀니지) 모래는 바람의 잔영일테다. 아마도 나 역시 잠들지 못하고 모래의 수군거림을 내내 듣고 있었으리라....

평이한 문장들 속에서 이토록 깜찍하게 튀어나오는 문장들은 갑자기 나를 공간이동시킨다. 그저 평범한 여행이 특별함이 되는 보석같은 순간들이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촬영지 피지 모누리키섬을 찾은 것은 이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유머감각이 빛나는 곳이다.

아니 도대체 영화의 촬영지라고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1박2일동안 영화의 주인공처럼 살아보겠다는 발상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톰행크스처럼 불을 피워보려다 결국은 포기하고 라이터로 불을 피우고, 야자열매를 따서 목마름을 해결하겠다고 나무를 오르다 실패하고.... 농담 한마디 없이 웃기는 것도 가능하구나... 이 정도면 21세기 톰소여에 그대를 임명할 수 있겠구나... ^^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가의 여행지는 어디였을까?

세계적인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의 무덤이 있는 스웨덴 포러섬이었다. 고인의 뜻에 따라 세계적인 거장의 겉을 모두 빼고 자연인 잉마르 베리만 하나만 남은 흙무덤 하나 보겠다고 스웨덴까지 날아가다니....

하지만 글을 따라 함께 가다보면 작가가 왜 이 곳을 굳이 가야했는지가 수긍이 간다. 무지 어려울것 같은 분위기와 명성에 압도되어 그의 영화를 하나도 못본, 그래서 잉마르 베리만이라는 영화감독에 대한 존경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나같은 사람에게도 그의 무덤은 신성한 성소처럼 느껴졌다. 한 사람의 삶이 마지막조차도 이렇게 비장하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니....

 

또 하나 이 책의 마지막 아름다움은 여행의 본질을 잊지 않음에 있다.

"여행이라는 것 역시 나그네에게는 삐걱대는 삶을 수리하는 기간일 것이다."

"누군가 잠깐 들른 휴식 공간이 다른 이에게는 삶의 터전이라는 것, 여행자는 종종 죄책감의 삯으로 환상을 소비한다."

"전경을 찍기 위해 사진기를 들이댈 때, 멀리서 나를 알아본 테오의 엄마가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 순간에는 사진 찍는 것보다 마주보며 나도 손을 흔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감성이 얼핏 평범해보이는 여행에세이를 비범하게 빛나게 한다.

그리고 책장을 덮으며 그와 함께 한 여행이 끝났을 때 내 입가에 미소 한자락을 머물게 한다.

 

(글 속의 붉은 글씨는 책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이에자이트 2013-06-04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전문기자로 여자로는 김혜리를 좋아합니다.금요일 밤 10시 문화방송 FM 성시경의 푸른밤에 고정출연하는데 아주 해박한 지식과 감칠맛나는 언변으로 영화이야기를 해줍니다.목소리가 좋아서 매주 듣습니다.추천!

바람돌이 2013-06-04 23:22   좋아요 0 | URL
김혜리씨의 책도 눈팅만 하고 있었는데 챙겨놔야 하겠네요. ^^
라디오를 따로 챙겨듣지는 않는데 혹시 팟캐스트로 떠있는지 확인해봐야겠어요. ^^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 한두 줄만 쓰다 지친 당신을 위한 필살기
이만교 지음 / 그린비 / 200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라딘에 서재를 만들고 잡문을 끄적이면서 생긴 은밀한 욕망
아 나도 누구처럼 글을 잘썼으면...
A는 어쩜 저럼 논리정연하게 자기 생각의 표현을 잘할까?
B는 똑같은 책을 읽었는데도 저렇게 감각적으로 글을 쓸수 있을까?
C는 쓰는 글마다 어쩌면 저렇게 사람을 웃게 만들수 있을까?
D E F...... 아 정말 끝없는 부러움의 대상들이라니.... 

은밀한 욕망이라고 했다.
내놓고 누구처럼 글을 잘 쓰고 싶어요라고 말하기에는 좀 많이 처진다는거 알거든.
뭐 욕망도 내놓고 말할 수 있는건 어느정도 기본은 갖춰야 하는거다.
그러니까 겉으로는 아주 쿨한척....
뭐 잘 쓰는 사람만 글을 쓰나요? 그냥 쓰는거죠.... 돈받고 팔 글도 아닌데 잘 못써면 어때서요라는 뻔한 말로 나자신을 위로하기도 하고 위장하기도 하고....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 글쓰기에 대한 욕망이 아주 절실하지 않은것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뭔가가 절실하면 저절로 노력이 들어가야 하는데, 즉 글쓰기방법에 관한 책을 열심히 읽고 또 좋은 문장이 있으면 이건 어떻게 썼지 생각도 하고 국어 문법 공부도 좀 하고 뭐 이런 노력 말이다.
그런데 이런 노력은 전혀 않으면서 무작정 '아! 나도 글을 잘 썼으면...'하고 막연한 탄사만 날리는게 지금의 딱 나라고나 할까?
그러면서 글이 붜 별거야? 그냥 열심히 쓰다보면 느는거지 하면서 무작정 열심히 쓰기만 한다.(아 물론 열심히의 기준은 내 기준이다.) 
뭐 이렇게 쓰기만 해도 전혀 늘지 않는 것은 아니더라...
서재 생활 초기의 내 글과 비교하면 용됐다는 느낌이 들때도 있고, 가끔 업무상 일을 하다 다른 사람의 글을 보면 문법에 안맞거나 문장이 고르지 않은 것들이 예전과 다르게 눈에 확 들어오는 경우가 있으니말이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어느 정도의 경지를 뛰어넘고 싶으면 거기서부터는 본격적인 공부가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할 것인가 말것인가에는 어느정도의 절실함이 요구되는법.
처음으로 글쓰기에 관한 책을 손에 들면서 내가 가진 은밀한 기대는 내게도 글을 진짜 잘 쓰고 싶은 욕구가 생기지 않을까? 제목도 "나를 바꾸는 글쓰기..."라잖아.
근데 이런 기대는 불발로 끝날 가능성을 항상 자신 안에 안고 있는 법.
자기 내면에서 쓰야한다는 치열한 욕구가 생기지 않는 한은 어떤 책을 읽는다고 그게 생길수는 없는법이니... 
그래서 저자는 자기에게 가장 절실한 것을 쓰야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다고 한다.
이 말을 바꾼다면 글쓰기에 대한 욕구가 절실해야 한다 또한 그것을 쓰고 말하고 싶은 욕구가 그만큼 절실해야 함을 말하는 것일게다.
글쓰기의 유형이나 방법론을 말하는 것은 그 다음 얘기이다.
내게는 무엇이 그리 절실할까? 결국은 그것부터 찾을 일이다.
서재귀퉁이에서 서평을 쓰는 일조차도 해당 책이 내게 절실했거나 정말로 좋았을때 쓰기가 쉬워지는것도 그런 의미일테다.
내게는 아직은 그런 욕구가 그리 절실하지 않은지 뒷편의 글쓰기에 대한 구체적인 지도에서는 책을 읽는 속도가 더뎌지기 시작했다.
저자의 말이 어느 하나 마음에 와닿지 않는 것은 없었으나 그의 첨삭지도나 예제문장들을 보면서는 이것들을 다 신경쓰면서 글을 쓰려고 하면 나는 절대 글을 못쓰겠구나 싶었다.
저자 역시 그 모든 규칙들을 일일이 신경쓰면서 글을 쓰는 작가는 없다 했으나 그럼에도 글을 쓰고 다시 읽고 고치고를 반복하는 퇴고의 과정은 정말 없어서는 안되겠구나싶은 마음을 갖게 했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가장 싫어하는게 퇴고구나...
왜 나는 내가 쓴 글을 다시 한 번 읽어보는 것도 싫을까?
그래서 내 리뷰엔 추천이 별로 없는 것도 아마 이것과 무관하지는 않을 터....

내게 이 책은 오히려 앞부분의 독서법을 얘기하는 곳에서 더 유용했다.
책을 읽되 제대로 읽고싶다는 욕구는 글쓰기의 욕구에 우선한다.
특히나 요즘처럼 나이를 먹어 읽은 책의 내용은 물론이고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여부조차 불투명할때는 더더욱 말이다.
어떻게 하면 내 독서를 더 풍요롭게 하고 내 자신이 좀 더 잘 기억하고 내 삶의 지평을 확대해주게 할 수 있을까라는 나의 고민에 이 책은 아주 유용한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한 권의 책을 읽되 그것과 관련이 되는 책들을 모두 모으고 그 중에서도 최소한 10여권을 가려내고 한 권 한 권 읽으며 맘에 드는 문장에 밑줄을 치며 씨앗문장을 찾아내라는 권고....
가끔은 책을 음미한다기 보다는 그저 책을 읽기 위해 읽는 것처럼 후다닥 읽어버리고 말때가 많은데 책 역시도 음미하면서 읽어야 한다는 당연한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가을, 아직은 글쓰기보다는 책을 읽고 싶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냐 2009-09-10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밀한 욕망에 공감..사실 직업상 글쓰기 수련 혹독하게 받았으나, 그 글은..그냥 드라이하게 문맥 맞게 쓰는 법을 배운거고...글은 늘 자신없어요.

바람돌이 2009-09-11 14:10   좋아요 0 | URL
그래도 마냐님 글은 참 쉽고 재밌게 읽힌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수련도 받으셨군요. 하기야 직업이 그렇죠? 저는 말하기 훈련 받고 싶은데 왜 그런 수련은 안해주는걸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