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삶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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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를 읽는 마음은 뭔가 좀 특별하다. 원래 좋아한다는 것은 알고 싶다는 것이고 가까워지고 싶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아이돌 사생 팬도 아닌데 작가 집 앞에 가서 무작정 커피나 한 잔 하자는 무례를 저지를 수는 없으니 그냥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고대하던 에세이가 나오면 우아하게 커피를 내려놓고, 그 다음은 전혀 우아하지 않게 커피를 홀짝이다가 어느 순간 소파에 드러누워 좋아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한 줄 한 줄 새겨듣듯 읽어나가는 것이다. 가장 편한 친구와 어딘가 놀러가서 맘껏 수다를 떠는 느낌이랄까? 심지어 이 수다는 일방적이다. 굳이 내가 뭔가 이야기를 이어가지 않아도 된다. 작가가 알아서 일방적으로 내게 흥미로운 이야기나 그에게 궁금했던 생각을 일방적으로 이야기해준다. 나는 그저 듣기만, 아니 읽기만 하면 된다. 이 편안함을 어쩔 것이냐? 좋아하는 작가 앞에서 나는 소리내어 커피를 홀짝여도 되고 드러누워도 되고 비염에 시달리는 코도 팽팽 풀어가면서 가장 편한 포즈로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니.... 심지어 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는 보통 나의 생각과 코드가 잘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나의 읽기는 더욱 편해지는 것이다.몸도 마음도 모두 다.....


 보통 책 읽기를 좋아한다고 해도 그 책 읽기가 마냥 편한 것 만은 아니다. 어떤 책은 책상에 각 잡고 앉아 밑줄 긋고  머리를 쥐어 뜯어가며 읽다가 나의 지적 능력을 의심하는 회의론에 빠져들거나, 책의 내용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울부짖거나 뭐 그런 책들이 훨씬 많다. 얼마 전에 너무 재밌게 읽었던 <삼체>도 너무 너무 좋았지만 편한 책 읽기는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를 읽는 건 뭔가 편안하고 행복한 기분을 만들어준다. 그래서 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는 놓치고 싶지 않다.


 어린 시절의 일기에는 '나'에 대한 말들로 가득했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일까를 알기 위해 애썼던 십대의 내가 거기 있다. 그러나 돌아보면, 나라는 존재가 저지른 일, 풍기는 냄새, 보이는 모습은 타인을 통해서만 비로소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천 개의 강에 비치는 천 개의 달처럼, 나라고 하는 것은 수많은 타인의 마음에 비친 감각들의 총합이었고, 스스로에 대해 안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은 말 그대로 믿음에 불과했다. - 102쪽


 작가의 말처럼 나는 어쩌면 내가 아는 나를 확인하거나, 다른 나를 발견하고 싶어 에세이를 읽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경험이나 생각과 비슷한 이야기를 읽으면 그렇지 사는게 그런거야라는 위로를 받는 듯한 느낌, 그리고 내가 그렇게 틀리지 않았다는 확인을 받는 느낌이다. 나와 생각이 달라도 그 결이 완전히 적대적이지만 않다면-좋아하는 작가의 책에서는 그럴 일이 거의 없다- 아 나는 그 순간에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했으면 됐을텐데 왜 그랬을까라며 뭔가 더 나은 그런걸 발견한 느낌으로 내가 좀 더 나아질 수 있을거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타인의 글에서 나를 발견하고, 내가 아는 나를 좀 더 낫게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생각에 그친다 하더라도 그런 순간들이 모여 좀 더 나은 내가 언젠가는 만들어질 테니 그도 괜찮다.


 어머니의 빈소에서 시작하는 이번 에세이의 글들은 이제 연로하신 부모님을 둔 내게는 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졌다. 사랑하지만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 내 부모와 나의 관계가 글을 읽는 내내 투영되었고, 나의 아이들 역시 그러하리라는, 또한 그것이 당연하다는 마음을 다잡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렇게 책은 심각한 이야기도 사소한 이야기도, 그리고 과거도 미래도 역시 나의 일상에 닿는다.


누구든 일회용 삶을 살고 있어 우리는 모두 단 한 번의 삶을 살아간다. 그 단 한번의 삶에 좋아하는 작가가 있고, 그의 책을 읽을 수 있고, 심지어 그의 사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해지는 순간이다. 그래서 나는 에세이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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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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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찾아봤다면, 여러분은 강탈해가다는 끼어들다 intrude 혹은 침입하다 encroach upon라는 의미인 걸 알았을 겁니다. 강탈하다 usurp는 말은강탈해가다usurp upon의 완료 상태입니다. 강탈한다는 건 강탈하는 행위를 완성하는 겁니다. - P34

그들이 어떤 식으로든 함께한다면, 그들이 정말로 함께한다면, 그는 앞에서 끄는 사람이고 그녀는 따라가는 사람이다. 그것을 잊어선 안 된다. - P44

"그 광경에는 너무 야비한 게 있었다. 나는 그게 절망스러웠다. 개가슬리퍼를 물어뜯으면 벌을 줘도 좋아. 개도 물어뜯는 것에 벌이 따르는 게 정당하다고 인정할 게다. 하지만 욕망은 다른 얘기지. 어떤 동물도 본능을 따르는 것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을 수긍하지 못할 거다."
"그렇다면 수컷은 제지당하지 않고 본능을 따라야 하나요? 그게 교훈인가요?" - P129

그녀는 대꾸하지 않는다. 그녀는 얼굴을 가리고 싶어할 것이다. 그는 그 이유를 안다. 치욕 때문에 수치심 때문에, 그것이 그들의 내방객들이 성취한 것이다. 그것이 이 자신만만하고 현대적인 젊은 여성한테 그들이 한 짓이다. 그 얘기는 얼룩처럼 지역 전체에 퍼져 있다. 그녀의 얘기가 아니라 그들의 얘기가 퍼지는 것이다. 그들이 이야기의주인이다. 그들이 루시에게 그녀의 자리가 어디이며, 여자가 어디에소용이 있는지를 어떻게 알려줬는가에 대한 얘기. - P163

그는 더 기다린다. 하지만 더이상의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는 마침내 자기 생각을 말한다. "역사가 그들을 통해서 말을 하는 거야. 악행의 역사 말이다. 도움이 된다면 그런 식으로 생각해라. 개인적인 것으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그렇지는 않았을 게다.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거지."
"그렇다고 그게 더 쉬워지지는 않아요. 제가 증오의 대상이었다는충격이 가시지를 않아요. 그 행위에서요." - P219

그래요. 제가 가는 길은 잘못된 길일지 몰라요. 하지만 제가 지금 농장을 떠나면, 저는 패배하고 떠나는 것이 돼요. 그리고 그 패배감을 평생동안 곱씹으며 살아야 할 거예요. - P226

"그래요.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굴욕적이죠. 하지만 어쩌면 다시 시작하기 좋은 지점일 거예요. 어쩌면 그것이 제가 받아들이기를 배워야하는 것인지도 몰라요. 밑바닥에서 시작하는 것 말이에요. 아무것도없이 어떤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이, 카드도 없고, 무기도 없고, 재산도 없고, 권리도 없고, 품위도 없고."
"개 같군.
"그래요, 개 같아요." - P287

그녀는 한때 자기 어머니 몸속의 작은 올챙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견고하게, 그가 지금까지 그랬던 것보다 더 견고하게 살고 있다. 그녀는 운이 좋으면 오랫동안, 그보다 오랫동안 계속 살아갈것이다. 운이 좋으면 그가 죽은 후에도 이 화단에서 일상적인 일을 하며,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녀의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태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 존재는 운이 좋다면 그 어머니만큼 견고하고 오래 살아갈것이다. 그렇게 존재의 선은 이어질 것이다. 그의 기여, 그의 유산이가차없이 점점 더 희미해지다가 결국 잊힐 때까지. -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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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인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말하는나무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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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도 자신의 감정이나 현실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남녀. 그리고 타인에 대한 존중을 배우지 못한 남녀의 밀당이야기. 연애도 없고 더더구나 사랑도 없다. 그들의 언어가 소통불가능인것처럼 자기만의 우주에 사는 이는 타인의 우주를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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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02-28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저 이 책 기대하고 있는데 말이죠. 사두기도 했고요. 하하하하하.

잠자냥 2025-02-28 17:32   좋아요 1 | URL
읽어….

바람돌이 2025-02-28 23:18   좋아요 0 | URL
읽어2
나만 읽을 순 없다!!! ^^
 

"행복이 가장 중요한... 가장 중요한 감정은아닙니다. 누구라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가 말한다.
누구라도 행복할 수 있지만, 불행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나처럼 특별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는 듣는 이들이 이렇게 해석해주기를 바라는 걸까? - P33

폴란드인이 말한다. "당신은 내게 평화를 줘요. 당신은 내게 평화의 상징이에요."
그녀, 즉 베아트리스가 평화의 상징이라니! 그녀는 그것보다 더 말도 안 되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 P57

 당신은 나에게 평화를 줍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소리인가! 비톨트 씨, 나는 당신의 삶의 수수께끼에 대한답이 아니에요, 당신의 수수께끼도 다른 사람의 수수께끼도 아니라고요! 그녀는 바로 이렇게 그에게 얘기했어야 한다. 나는 그냥 나예요! - P69

그녀는 익숙한 것들을 좋아한다. 그녀는 편안한 것을좋아한다. 그녀는 새로움을 위한 새로움을 싫어한다. 그녀의 남편이 그녀에게 호기심이 없다고 말하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마르티노프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그녀는 마르티노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 따라서 그의 음악을 싫어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런 태도가 그녀를 좋게 보이게 하지는않는다. - P79

책을 불사르는 것은 사람들을 불사르는 것의 전주곡이야. - P183

답은 한 가지밖에 없다. 그는 자신이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단지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증명하고 싶었다.
길고 본질적으로 의미 없는 일을 그녀를 위해 함으로써 그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왜 하필 시였을까? 길고 의미 없는 일이 잣대라면, 한 톨의 쌀에 산상수훈을 새겨서화려한 작은 상자에 담아 그녀에게 보냈으면 어땠을까?
답은 이렇다. 그는 그의 시들을 통해서 무덤 너머에서그녀에게 얘기하고 싶은 거다. 그녀에게 얘기하고 그녀에게 구애해서 그녀가 그를 사랑하고 그녀의 가슴에 그를 살아 있게 하고 싶은 거다. - P186

연인에게는 욕망의 대상인 몸이 영혼이다. 폴란드인은 그녀의 몸을 사랑했다. 폴란드인은 그녀의 영혼을 사랑한다(그는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그녀는 시들 속 어디에서 몸이 영혼으로 변모하는 것을 보는가? - P207

그가 그렇게 한 것은 영어의 주도권, 즉영어가 세계 공용어로 통하는 언어 식민주의적인 현실에 대한 그 나름의 저항감 때문이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나는 영어가 세계를 점령하는 방식이 싫습니다. 나는 그것이 발을 딛는 곳마다 소수의 언어를 으스러뜨리는 방식이 싫습니다. 나는 그것이 세계적이라는 주장, 즉 세상이 영어로 정확하게 반영된다는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 싫습니다. 나는 이 상황이 영어 원어민들에게 조성하는 오만함이 싫습니다. 따라서 나는영어의 주도권에 저항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을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의미심장한 발언이다.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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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03-01 1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어의 주도권뿐만 아니라 미국의 주도권에 저항하기 위해 모든 나라가 단결했으면 해요.
현재는 유럽 연합에 기대를 걸고 있어요.^^

바람돌이 2025-03-01 13:49   좋아요 1 | URL
유럽연합이 대항할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ㅠㅠ 영어의 영향력 확대가 다른 문화를 구축해가는 과정인지라 저항감이 들긴 해요
 
이중 하나는 거짓말 (니트 에디션) (3종 중 1종 랜덤)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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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 어쩌다가 친구에게 우리 집의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가정사를 말한 적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친구의 반응이 나는 정말 의외였는데 "너는 어쩌면 그런 이야기를 이제야 하니? 그렇게 오랫동안 우리가 친하게 지냈는데 어쩜 한번도 표를 낸 적이 없니?"라며 정말 진정으로 서운해 하는 것이었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 때 부터의 절친이었고, 아주 오랜 시간을 서로의 집을 오가며 지낸 사이였기도 했다. 내가 나의 가정사를 얘기하지 않았던 건 어린 마음에 부끄러웠기 때문이었고, 어느 날 얘기 끝에 말했던 건 그저 그 가정사가 더 이상 나의 부끄러움이 아닌 그저 흔하디 흔한 이야기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저 담담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친구의 서운함이 나는 더 충격이었고 더 서운했었다. 그러냐고 웃고 말았지만 내 맘속에선 왜 친구라고 해서 말하고 싶지 않은 것도 말해야 하지? 말하지 않은 게 이상한거야?라고 생각했던 듯..... 


  소설을 읽다 보면 이렇게 잊혀진 오래된 기억들이 소환된다. 소설 속 인물들의 상처와 아픔 들을 읽다 보면 그것들이 나의 생의 어느 한 순간과 만나는 것이다. 그러면 소설이 그냥 내 얘기가 된다. 공감의 깊이가 달라진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속의 아이들은 모두 혼자 감당하기 힘든 고통의 시간들을 지나고 있다. 시간이 지나도 아물기 힘든 그런 상처와 고통들. 아이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고통을 내려놓는 길을 찾아간다. 그것은 소설 속 지우를 통해 표현된다.


...지우는 '다 죽이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결국 그 마음을 내려놓은 것'임을 깨달았다. <내가 본 것> 마지막 화는 바로 그런 마음을 담아 끝낸 거였다. 그런데 삶은 지우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지우가 누군가를 살리는 이야기를 쓴 순간 삶은 가차없이 지우에게서 가장 소중한 존재를 데려가버렸다. -215쪽


  삶은 늘 우리를 배신하다. 하지만 지우는 공들여서 그린 새 그림에 누군가가 다가와서 "개를 참 잘 그렸네"라고 얘기할 때 좌절이 아니라 "그렇죠? 개가 참 잘 생겼죠?.... 그러니 이리 와 다시 한번 자세히 보세요. 이 개가 얼마나 잘 생겼는지."(232쪽) 이렇게 지우는 삶이 나를 배신하는 순간을 견디고 버티고 건너가는 힘을 배운다.(이럴 때 배운다는 말은 얼마나 잔인한 말인지....)


  소설 속 아이들이 처한 고통은 어쩌면 말함으로써 더 힘들어지고 고통스러워지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때로 사람들은 말을 해야 알지라고 친밀을 빌미로 고백을 강요한다. 최고는 부모가 그렇다. 하지만 그렇게 몇 마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또는 설명하고 싶지 않은 고통들은 세상에 널려있다. 내가 나의 고통을 입으로 내놓는 자체가 상처이고 고통인.... 그냥이라는 말 속에는 그 깊은 상처가 숨어있다. 그럴 때 그냥이 뭐냐고 캐묻고 닥달하는 것은 그 자체로 폭력이 된다. 그냥이라는 말을 받아주고 그저 손잡아주는 그런 순간도 필요한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의 순간을 버텨가는 힘을 찾아낸다. 사랑하는 이와의 순간들을 기억하고, 새로운 애정의 대상을 찾고...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그로써 충분하다. 지우 이모의 "가족밖에 믿을게 없어"라는 말은 지극히 공허하지만, 지우가 선일씨에게서 "나는 너랑 살게 돼 기쁘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은 충분한 순간이다. 


  소리와 채운의 상처와 고통도 끝나지 않을 것이지만 삶의 어느 순간 순간에 그것을 안아줄 누군가가 또는 시간들이 다가올 것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또는 캐묻지 않고 그냥 그랬어. 그냥 힘들고 아팠어라는 말의 무게를 안아줄 수 있는 누군가가... 그것이 지우가 기르던 도마뱀이던, 채운이 함께 했던 개 뭉치든, 아니면 소리의 아빠든... 그렇게 우리는 늘 그냥 그랬어라는 말의 무게를 알아 줄 존재를 갈구한다. 그리고 그런 존재는 언제든 있다고 그렇게 믿고 싶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친구와의 대화를 소환한 오늘.

어쩌면 그 때 친구의 서운했던 마음에 "00아 내가 너와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말하지 않았던게 아니야. 네가 아니라 누구에게도 그냥 말하고 싶지 않았어. 그걸 생각하는 내가 싫고,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나는 더 싫었던거 같아. 그런데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여전히 나는 너에게 아무 말도 안했을 것 같아. 그냥 그랬어."라고 말할수 있을듯하다. 나이가 든 너는 어쩌면 그래 그런 마음도 있어라고 해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똑같이 나이가 든 나는 그렇지?라고 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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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5-02-26 01: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제 나이가 들어 늙어서야
말하지 않으면 그런대로, 섭섭해하지 않고 물 흐르는대로 그냥 흘러 갑니다.
어릴때나 젊었을 땐 그런 것들이 왜 그리 섭섭하고 소외당한다고 느꼈을까요!
이제는 너무 말해주는 사람이 부담스러워요 ㅠㅠ

이 책, 호불호가 나눠져 읽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바람돌이 2025-02-26 22:47   좋아요 1 | URL
이제는 넘 말해주는 사람이 부담스럽다는 그 말이 팍 와닿습니다. ㅎㅎ 저도 그래요.
사실 개인사들 대부분은 우리가 몰라도 그 사람을 사랑하는게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나이이기도 하더라구요. ㅎㅎ

이 책은 호불호가 나뉜다는 말에 동감합니다. 저는 호쪽이지만요. 이 책의 인물들의 이야기는 사실 너무 뻔한 이야기이고 그것에 대한 결말도 어쩌면 너무 뻔한 이야기일수도 있어요. 이런 이야기 너무 많지 않나하는.... 하지만 저는 그 뻔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가의 방식이 너무 맘에 들더라구요. 아이들이 시를 쓰고 동물들에 마음을 쏟는 그 순간순간들이 너무 공감이 갔어요.

금방 읽으니 한번쯤 읽어보셔도 좋을거 같아요.

희선 2025-02-26 06: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친한 친구여도 말하기 어려운 게 있을 듯합니다 소설에서 비밀을 말했다는 말을 보면 그런 거 꼭 말해야 해 하고 생각할 때 많아요 비밀을 나누는 친구가 그렇게 좋은 걸지... 비밀을 말하면 더는 비밀이 아닌데... 다른 사람한테 말할 수 없는 것도 있지요 누군가한테 말해서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있기는 하겠습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5-02-26 22:49   좋아요 1 | URL
소설에서는 누구도 자신의 비밀을 직접적으로 털어놓지 않습니다. 그저 그러려니 하며 서로 보듬어줄뿐.... 그 보듬어주는 방식도 너무 서툴지만 그래서 더 진심으로 느껴지기도 했구요.
말씀하신대로 어떤 것들은 말해서 편해지는 것도 있겠지만 말하지 않음을 알아주는 것도 우리가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일거 같아요.

새파랑 2025-02-26 1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숨기고픈 사실을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건 좋은거 같아요. 인생에 그것보다 값진 보물이 있을까요?

니트에디션 표지가 예쁘네요~!! 페넬로페님 말씀 보니 호불호가 좀 있나봅니다~~

바람돌이 2025-02-26 22:51   좋아요 1 | URL
어린 시절엔 왜 그렇게 숨기고 싶은게 많았을까요? 나이가 들수록 사실 그거 다 별거 아냐 가벼워지는듯도 합니다. 한없이 가벼워져서 더 좋은 친구인거 같기도 해요. ^^

페넬로페님 말씀처럼 호불호가 갈릴수 있는게 너무 뻔한 이야기라서요. 어쩌면 청소년소설로 봐도 될듯요. 하지만 저는 그 뻔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가의 방식이 참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