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가장자리의 그늘에 서서 우리에게 손을 흔들던 아버지다. 그는 우리를 사랑하는 남자처럼, 우리에게 절대로 상처 주지 않을 남자처럼 온화하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어머니가 시선을 돌린 뒤로도오랫동안 아버지는 그곳에 선 채 양팔을 허공에 흔들며 그쪽으로 오라고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 P40

 "그때 학과사람들이 네 아버지에게 한 일은 부도덕했다. 스티브, 정말이야. 그건 모함이었고 다들 그걸 알았어. 그래서 그때 내가해야 했던 일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를 결정하는 거였다고 생각해." 그는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정말 그처럼 단순한 일이었어." - P45

이따금 창문 너머로 어머니 얼굴의일부분이나 우리를 미심쩍게 바라보는 눈이 보였지만 그 밖에 다른 기척은 없었다. 언제나처럼 어머니는 거기 있으면서도 없었다. - P64

"뭐, 말했듯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 있진 않을 거야." 그리고 그건 어쩌면 어머니가 자신에게도 해왔던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렇게 선을 그어 그의 존재를 감당했을 것이다. 그가영원히 곁에 있진 않을 거라고. "있잖아. 어떤 사람은 우리삶에 잠시 들어왔다가." 어머니가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고,
물위에 햇빛이 반짝였다. "그냥 그렇게 "어머니는 머리위로 손을 거칠게 내저었다. "그냥 그렇게 사라지는 거야." - P146

"내 말은, 넌 걱정할 필요 없다고." 어머니가 내 팔을 어루만졌다. "넌 절대 아빠처럼 되지 않을 거야, 스티븐, 넌 아빠와 전혀 달라." - P157

나는 가만히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내의 말이 맞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부분적으로는 나도 최근에 그녀에게서 멀어진 이유를, 적어도 그 당시에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는 이것이 내 인생 전반에, 그리고과거의 내 모든 연애 관계에 나타난 하나의 패턴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뚜렷한 이유 없이 물러나는 경향, 갑자기 상대에게 거리를 두는 경향. 내 태도가 앨리슨 자신이 처한 상황과어느 정도는 관련이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 P283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 곁을 지켰던 어머니, 아버지를 절대적으로 신뢰했고 데릭과 끝났다는 말을 믿었던 어머니. 그를 믿고 또 믿었던 어머니. 에드워드가 좀전까지 묘사했던남자가 침실에서 어머니 앞에 서서 자신이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거듭해서 말했던 남자(여러 해가 지난 뒤 어머니가 내게 말해주었다), 부엌에서 어머니에게 수없이 키스하고 손을잡은 남자, 어머니에게 자신의 헌신과 책임, 그리고 사랑을거듭 다짐했던 그 남자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 P305

내가 가졌던 것이 아니라 원했던 것의 이상화된모습이 되었다. 그는, 우리가 죽은 이들을 두고 종종 그러듯이, 기억 속에서 미화되었고, 그래서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이 되었다. - P333

 내가 그런일을 하는 이유는 착실하고 세심한 남편이어서가 아니라 그럴 필요가 있어서, 남을 기쁘게 하도록 길들여져서, 그런 일을 하면 내게 힘과 통제력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라는 사실을 들킨 것 같았다. - P350

예컨대 나는 아버지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자기 옷을 손수만들어 입거나 동네의 중고 가게에서 산 헌옷을 고쳐 입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언제나 옷차림이 깔끔하고 세련된 사람으로 보이기를 바랐고 실제로도 늘 그렇게 보였다.
아버지의 가족은 늘 가난했고 최신 패션이나 유행과는 거리가 먼 형편이었는데도 말이다. 또한 아버지가 세상이 사람을겉모습에 맞춰 대접한다고 믿었다는 것, 그래서 그는 세상에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친구들이나 여자들을 절대 집으로 데려가지 않았고, 어떤 여자와도 그런 일을기대하게 할 만큼, 가족이나 집을 보여주어야 할 만큼 오래사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P401

그건 다른 면에서도 사실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도 데릭도 사랑했고, 학생들도 나도 사랑했지만 우리 모두에게 각기다르게 행동했다. 우리 모두가 아버지의 다른 면을 보고 퍼즐의 다른 조각을 갖게 되었다. 우리 중 누가 아버지의 진정한 면을 보았을까? 글쎄, 바로 그것이 항상 의문이었다. - P406

아버지를 어떻게 찾아냈는지 물었을 때, 줄리언은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형을 찾는건 그다지 힘들지 않았단다, 스티브. 그의 목소리가 갑자기 나직해졌다. 그냥 아무도-그래, 정말 아무도 형을 진심으로 찾고싶어하지 않았던 거야. 그게 다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는 물었다.
말한 그대로야. - P417

아버지는 서재 책상 앞 벽에 프루스트의 다음 구절을 적은작은 쪽지를 우리에게 남겼다.
진정한 낙원은 우리가 잃어버린 낙원이다. - P423

 다만 그때 나는 무엇이 어떤의미인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앨리슨과 핀이 나를 바라보면서 손을 흔들어 나를 부르는 지금은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나와 함께 있고 싶어한다는 것을. 내가 내려가 함께 놀기를 바란다는 것을. 그래서 잠시 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향해 작은 풀밭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빠르게, 너무 급하게 걸어가느라 두 사람에게 다다르고 나서야,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가 울고 있었다는 것을. - P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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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님이 그러니까 100자평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단 110쪽으로 완전히 내 마음을 사로잡음. 민음사는 아이라를 더 내놓으시오!! 라고.....


이건 100자평으로 사람을 낚는 확고한 기술이다.

그리고 낚였다. 나는 원래 귀가 얇다. 


낚인 결과가 딱히 나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딱히 좋지만도 않고, 

또 뭔가 새로운 소설양식인듯하다가 좀 더 생각해보면 이른바 예술 감독들의 어이없는 코미디적 상황을 곁들인 한편의 재미없는 영화에서 많이 본듯한 상황이기도 하고......


뭔가 계속 주절주절하다가 마지막 한방으로 나를 격동시켜줄려나 했지만 뭐 그것도 없어서 섭섭하다가,

아니 없는게 이 소설의 주제지. 그 한방을 기대하는게 여전히 내가 근대 소설 문법에 얽매여있기 때문이야라고 생각하다가....


결국 이렇게 내 마음을 이랬다 저랬다 판단 불가능의 상태로 만드는 것이 이 소설의 궁극적인 목적이었던 듯도 하고....


하여튼 스토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또 딱히 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이 책에 대한 결론은

한 마디로 철저하게 취향을 타리라라는 것이다.

그리고 내 결론은 나의 취향은 아니라고 하려다가 아니지 않을까라고 급격히 후퇴하고,.....

이로써 오늘의 결론은 잠자냥님에게 낚이지 말자라는 것? 


아니 그런데 또 잠자냥님이 소개해주는 책들을 보면 취향 저격인 것도 많았는데....

결국 결론이 없다가 오늘의 결론이다.

소설도 도대체 뭐라고 얘기할지 말하기 참으로 애매하니 모든 결론이 일맥상통한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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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7-14 1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아니 제가 이 책 5별이긴한데 취향 타는 작품이라고 말씀드렸는데 😹

바람돌이 2026-07-14 13:34   좋아요 1 | URL
그 말은 이미 민음사는 아이라를 더 내놓으시라는 말에 사로잡힌 이에게는 들리지 않는답니다. 자고로 대부분의 오해가 다 자기가 듣고싶은 말만 들어서 생긴다는 진리가 여기서도 통한답니다. 그리고 저는 잠자냥님의 취향을 따라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인지라 원하는 말 이외에는 다 무시했다는 말이죠. ㅎㅎ

잠자냥 2026-07-14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위조지폐로 월급 받은 설정부터 곤란한 재미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

바람돌이 2026-07-14 13:35   좋아요 1 | URL
아니 진짜 궁금한게 그래서 그 위조지폐는 어떻게 됐어요? 나는 중간에 식당에서 빚 내놓으라는 영감님에게 줄지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고.... 결국 위조지폐는 계속 주인공한테 있잖아요. 내가 갑갑해서 원..... 처음부터 끝까지 다 곤란했습니다. ㅎㅎ

잠자냥 2026-07-15 15:40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 님 리뷰도 화답했습니다. 먼댓글 보내기 했는데 안 되는 거 같네요?! 😹

바람돌이 2026-07-15 18:03   좋아요 1 | URL
리뷰 페이지로 바로갔습니다. 잠자냥님의 오늘 글은 선물같아요. ^^
알라딘이 먼댓글 기능은 그냥 없는듯 삽니다. ㅎㅎ

다락방 2026-07-14 11: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에게 낚이지 말자!
명심하겠습니다. -언제나 낚여서 책 질러버리는 1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6-07-14 13:38   좋아요 1 | URL
자발적 낚임 원함증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저나 다락방님이나 불가능하니 그냥 빠져들죠. ㅋㅋㅋ

책읽는나무 2026-07-15 08: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의 독서 세계는 어나더 레벨이에요. 절대 낚이면 안 됩니다.
눈과 귀를 닫아야 합니다.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저도 에혀…잘 낚이게 되더라구요. 이 책 뭐야? 좋은 건가봐? 일단 사!ㅋㅋㅋㅋㅋ
그래도 바람돌이 님은 낚여서 사셨다지만 읽으시고 감상평도 쓰셨네요. 장하십니다.ㅋㅋ
저는 일단 사다놓기만 하고 읽진 않아서 원망도 못해요.ㅋㅋㅋ
그나저나 방학시즌 다가오는데 더 자주 뵐 수 있는 거죠?^^

바람돌이 2026-07-15 11:10   좋아요 1 | URL
그 어나더 레벨 근처에 가고싶은 1인이라서요. ㅎㅎ 물론 한국문학에서는 책나무님 레벨로 가고싶습니다. ^^
읽고 쓴 책이 얼마나 되겠어요. 바쁠때는 읽는 것도 못하고, 쓰는건 더 못하고요. 심지어 이 글은 책에 대해 쓴 것도 아니고 결국 잠자냥님더러 이렇게 아리송한 책 뭐냐 투정부리는 것일 뿐이고요.
다음 주면 방학입니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인사하는 방학이 되도록 노력하겠음다. ^^
 
딸기 이론
김숨 지음 / 민음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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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이주, 노동자

3가지 중 어느 것이 당신의 정체성에 규정적인 것인가? 당신의 삶에 결정적인 규정을 하는 것은 여성인가? 이주인가? 아니면 노동인가? 나를 규정하는 것은 저 3가지의 조건 중 여성과 노동자이다. 저기서 이주 하나가 빠진 것 만으로도 나는 적어도 나의 노동이 나의 여성성을 억압하지는 않는다. 


자 당신이 한번 떠올려보라. 여성과 노동자가 합쳐진 모습을.... 나의 모습이든 타자의 모습을 떠올리든 사실 일곱빛깔 무지개처럼 다종 다양한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당신이 떠올린 여성 노동과 내가 떠올린 여성 노동은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지만 장담할 수 있는 건 당신이든 나든 하나의 모습만 떠올리지는 않았을 거라는 거다. 


자 그럼 다음..... 저 3개의 조건이 모두 합쳐진 누군가를 떠올려보라. 여성 이주 노동자. 장담하건대 당신이 떠올리는 모습이나 내가 떠올리는 모습은 거의 비슷할 것이다. 저 3개의 단어가 합쳐진 곳에서 우리는 백인여성인텔리노동자를 떠올리지 않는다. 마치 저 단어들이 일반 명사가 아니라 고유 명사인 것처럼 우리는 동남아 어딘가에서 온 갈색의 작은 몸집의 여성을 떠올리는 것이다. 잘 생각해보라. 우리가 떠올리는 모습에서 얼굴을 구별할 수 있는지.....


나는 딸기를 따며 내 몸을 까맣게 잊곤 해. 내 몸에 자궁이 있다는 것도. 난 내 자궁을 보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내 몸이 출산 적령기의 몸이라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해. 딸기를 따다 보면 내 몸에 두 손만 있는 것 같아. 딸기를 따는 두 손만. 그럼에도 자궁은 내 몸에 있어.

 참, 네가 한 번도 물어본 적 없는 내 이름은 샤빼야.              -29~30쪽


 책 속에서 주인공 샤빼의 이름은 고작 2번정도 호명된다. 나도 이름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항변하지만 그 항변이 딱히 힘있지 않음을 상징하듯이 겨우 2번이다.  그리고 샤빼는 끊임없이 딸기딸기딸기하며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모든 순간들을 딸기를 단위로 호명한다. 인간 정신의 자율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가 극악한 노동을 겪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가혹한 노동은 인간의 정신을 포획한다. 딸기밭의 샤빼는 저절로 딸기딸기딸기하고 생각하게 된다. 나의 몸이 나의 정신을 규정한다. 노동이 나를 만든다. 그것이 긍정적일 때는 그저 적절한 시간과 강도로 내 삶의 나머지 시간이 보장될 때이지 노동으로만 이어지는 삶은 나의 정신을 파괴한다. 


  샤빼가 내 몸에 있는 자궁의 존재를 일부러 떠올리려 노력하는 것은 나라는 존재가 살고 싶은 삶을 잊지 않으려는 몸부림이고, 어쩌면 그것은 가족을 이루고 서로를 돌보는 그런 평범하디 평범한 삶의 모습일거다. 그러나 딸기밭의 노동이 무시하는 것은 그녀의 존재와 미래이다. 이름을 불러주지 않음으로써 그녀의 존재를 부정하고, 자궁의 존재로 상징 되는 그녀가 이룰지도 모르는 미래의 가족, 미래의 삶을 부정한다. 노동은 인간의 삶의 건강함을 유지하는 기본 조건이지만, 이 노동이 선을 넘을 때는 이렇게 인간 자체를 파괴하는 힘이 되어 버린다. 


  김숨 작가는 늘 과거든 현재든 인간의 생생한 고통의 시간을 지금 여기로 가져왔다.

위안부의 삶과 러시아 이주 한인들의 삶과 오키나와 학살 현장의 조선인과 일본인들.... 그리고 오늘 김숨 작가가 우리를 이끈 곳이 바로 지금, 여기 여성 이주 노동자이다. 


  김숨 작가의 이번 책은 유난히 불편하다. 왜냐하면 작가가 다루는 시간과 공간이 지금 바로 여기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참 교묘해서 작가가 아무리 과거가 과거로 끝나지 않음을 이야기해도, 그럼에도 독자는 과거는 과거로 인식한다. 또한 그 고통의 현장들이 과거의 이야기이기에 안심한다. 지금 우리는 전쟁의 현장에 있지 않잖아. 지금 우리가 위안부로 끌려가는 건 아니잖아.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아서 참 다행이야라는 등의 감정을 우리는 기본적으로 깔고 과거의 시대를 회상하고 글을 읽는 것이다. 그래서 타인의 고통에 연민하고, 타인의 폭력을 비판하는 것은 별다른 거리낌이 없고 어렵지 않다. 나의 정의로움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 나의 자존감을 충족시켜 준다.


  그러나 불현듯 끌려온 지금 여기는 어떠한가? 지금 여기라는 것은 이 모든 이야기에 나는 방관자이거나, 입만 살은 위선자이거나 둘 중에 하나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신문 기사로만 전해지는 삶의 이야기가 지금 당신 앞에 펼쳐진다. 이름을 가지고 매일의 삶을 살아내는 나와 같은 사람의 온기로 그가 다가올 때 방관자가 되거나 위선자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은 나의 양심과 나의 인간됨의 문제가 되는 것이며, 여기서 내가 나의 양심을 지키고 나의 인간됨을 지키고자 한다면 나의 불편함과 나의 시간과 그 밖의 나의 약간의 희생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비록 작더라도 그런 노력이 결국 나라는 인간을 만든다. 내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나라는 인간을 좀 더 괜찮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문학이 나라는 인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이렇게 불현듯 불쑥 다가온다. 


  김숨 작가는 항상 인간의 고통이 머무는 곳을 지나치지 않고 관통해왔다. 가장 고통받는, 그러나 전해야 하고, 지금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꾸준히 해왔다. 작가의 책을 읽다 보면 김숨 작가가 자신이 그려내는 삶에 녹아들어 나의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음이 모든 문장 속에 스며 있다. 


  타인의 고통과 삶에 대한 기술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2 가지다. 거리 두기와 일체화, 다르게 표현하자면 타자의 삶에 대한 관찰의 치밀함과 공감 능력의 극대화이다.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더 독자에게 다가갈지는 결국 작가의 필력에 달렸을 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주 노동자가 아니지만 이 책을 읽는 모든 순간이 불편했다. 샤빼와 보파, 속행은 내 이웃의 삶이었고, 그들이 고통 받는 모든 순간에 나는 방관자였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김숨 작가가 원하는 것 역시 우리가 그들의 삶을 삶으로 느끼고, 불편함을 느끼는 것, 그리고 나와 그들의 삶이 이어져 있음을 아는 것이었을 것이다.


  누구든 가장 쉬운 것은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내 인생을 글로 쓰면 소설책 몇 권은 쉽게 나오리라는 큰 소리가 얼마나 흔하던가? 그 말을 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타인에게는 흔해빠진 신파임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자기 이야기만으로는 작가가 될 수 없다. 내가 작가가 되지 못하는 이유도 나는 내 이야기밖에 못하기 때문이다. 나 너머의 삶, 그 삶을 얼마나 핍진하게, 깊이 파고들어 그려낼 수 있느냐에 작가와 독자의 경계가 있지 않을까? 김숨 작가는 타인의 삶을 자신의 삶인듯 그려온 작가이다. 그 공감의 깊이가 나를 불편하게 하고 그리고 결국......나를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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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7-14 1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이 책 읽어봐애겠어요. 김숨과 이주노동자 라니요. 읽어야지요.

바람돌이 2026-07-15 11:08   좋아요 0 | URL
김숨작가는 인물속으로 몰두해들어가는 필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늘 하게 돼요. 이번 소설도 1인칭 시점이라 특히나 몰두해서 불편하게 읽었습니다.
 
모두가 존중받는 사회를 위하여
우에노 지즈코 지음, 노경아 옮김 / 느린서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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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에서는 노동과 돌봄이 분리되지 않았고(정확하게는 분리될 수 없었고) 자본주의는 이 2가지를 공간적으로 완벽하게 분리해버렸다. 시장은 돌봄을 노동(급여를 받아 가치를 창출하는 시장에서의 노동)에서 쫒아내벼렸고, 따라서 돌봄은 가족애라는 신성 명제의 등장과 함께 온전히 여성의 의무로 규정되어 버렸다. 우리 사회에서는 오빠나 남동생의 대학 진학을 위해 딸이 10대 초반부터 공장에 가서 돈을 버는 K장녀 신화의 등장, 며느리가 된 여성이 병든 시부모나 남편을 봉양하는 효부 신화같은 것들이 노동을 노동이 아닌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좀 오래된 이야기인데 내 여동생은 결혼하고 얼마 안되어서 치매가 온 시어머니를 한 집에서 같이 살면서 10여년간 돌아가실 때까지 돌봤다.  이렇게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 때 구청에서 연락이 왔단다. 효부상을 주고 싶다고.... ㅎㅎ  이 건은 친정어머니의 "그런 상 받으면 뒷말만 많이 나오고 귀찮기만 하다. 니가 뭐 하나만 조금 삐끗해도 효부상 받은게 맞니 틀리니 하는게 사람들이다. 하나도 좋을거 없다"라는 강경한 말씀과 딱히 핅요도 없고 웃긴 상이라는 여동생의 냉소로 결국 여동생은 이 상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 웃기는게 이 시대의 이런 상도 친정어머니를 돌보거나 남편이 아내를 돌보는 경우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던거 같다. 아니면 그런 경우 자체가 희귀했던거 같다.

  

 어쨌든 책을 읽다 보면 가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 내가 제대로 아는게 아니었네, 이런 각도에서 보면 더 잘 보이는구나' 싶을 때가 있다. 이 책에서 아래와 같은 도표를 보았을 때다.



  

  이 도표에 의하면 자본주의에서 시장이 배출하는 산업 폐기물과 노동 시장이 부려먹을 대로 부려먹고 더 이상 노동력으로서의 가치가 없을 때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노인, 환자, 장애인은 동률의 선에 위치한다. 자본주의의 공장들이 산업 폐기물을 아무렇게나 버렸듯이, 쓸모없어 진 노동력도 배출하고 나면 그들이 어디로 돌아가는지 시장은 관심이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시장이 노동력 제공 이후의 삶을 보장해주거나 아니면 그 시장의 세금을 계속 받아먹은 국가가 노동 이후의 삶을 보장해주는 것이 당연한 거 같은데 시장도 국가도 그럴 생각이 없다. 그렇게 되면 불만이 생길 테니 이 불만은 가장 싼 방법으로 무마한다. 그게 바로 효부상이니 뭐니 하는 장치들이다. 국가가 나서서 가족 이데올로기를 알아서 홍보해주고 효부상이니 뭐니 하는 장치를 통해 시장의 잔인함을 은폐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이전의 나의 생각은 돌봄 노동이 노동으로 취급 받지 못하는 것을 복지 시스템의 문제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았다. 그러나 저런 도표 하나로 너무 명쾌해진다. 돌봄 노동이 노동으로 취급되지 못한 것은 자본주의 시장 자체의 원죄였음을.... 결국 산업 폐기물이 지구를 황폐화 시키듯, 임금 노동을 할  수 없는, 또는 없게 된 사람들에 대한 돌봄의 부재는 모든 인간의 삶을 황폐화 시킬 것이다. 고령화 사회라는 것은 결국 환자와 노인과 장애인이 증가하는 것의 다른 말이니 말이다.


  여전히 지금도 자본주의는 시장에서 밀려난 노동력에 대한 돌봄노동을 가정과 여성의 문제로 밀어내고 있다. 여성의 인권, 정치적 권리, 사회적 평등은 일견 많이 나아진듯하다가도 돌봄노동의 영역에 가면 오히려 더 많은 부불노동(무임금 노동)으로 채워진다. 작가가 말하는 페미니즘이 사라질 수 없는 이유에 공감하게 된다. 


마지막은(중략) 왜 인간의 생명을 낳고 기르고 그 죽음을 돌보는 노동(재생산 또는 돌봄 노동)이 다른 모든 노동의 하위로 취급되는가 하는 근원적 문제다. 이 의문이 풀릴 때까지 페미니즘의 과제는 사라지지 않을 뿐이다. -27쪽,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서 재인용, 1990


  나는 항상 페미니즘은 세상을 보는 시각의 문제라는 생각을 해왔다. 철학은 결국 세상을 보는 시각이고, 페미니즘은 기존의 철학의 시선이 놓친 틈을 기꺼이 벌려서 "자 보라고 이게 사소한 틈이 아니야. 이 틈 때문에 우리는 많은 것들을 제대로 보지 못해 왔으니 이제라도 제대로 보자고"라는 말로 느껴왔었다. 짧은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페미니즘의 문제를 확인하고,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명제, 세상의 사람들은 모두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그 명제를 확인한다. 



약자가 약자인 채로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 사상이 페미니즘이다. -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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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6-05-15 11: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신간 도서들 확인하러 알라딘에 접속하면 우에노 지즈코의 책을 눈여겨 보곤 했는데, 이 책은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제가 책을 통해서 배우는 페미니스트 중 한 사람이 우에노 지즈코에요. 바람돌이님이 인용한 문장은 저도 공감합니다. 제가 우에노 지즈코를 존경하는 이유가 한 문장에 나와 있습니다. ^^

바람돌이 2026-05-15 13:04   좋아요 1 | URL
여러분들이 우에노 지즈코의 책 이야기를 해서 언젠가는 읽어야지 했는데 이번에 나온 책이 마침 분량이 작아서 가볍게 시작했습니다. 강연을 모은 책이었는데 분량보다 훨씬 큰 울림을 주는 책이었습니다.다른 책도 챙겨서 읽어야겠구나 했어요. 저 한문장은 정말 강렬하죠. 중요한 것을 한마디의 명제로 압축해서 쓸 수 있는 것도 진정한 능력인듯합니다. ^^

희선 2026-05-16 12: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 님이 쓰신 제목이 좋네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아직은 먼 듯합니다 한사람 한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그런 사람이 늘어난다면 조금 달라지겠지요


희선

바람돌이 2026-05-18 08:53   좋아요 1 | URL
사실 현실로 들어가면 약자가 약자인 채로 존중받는거 너무 너무 힘들어요. 인간이란게 약자앞에서 동등하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우월감을 먼저 느끼는 존재라고 느껴지거든요. 결국 제도가 만들어지고 그 제도가 당연하다는 것을 계속 교육해야 어느 정도라도 이루어질텐데 쉽지 않은듯해요.

다락방 2026-07-14 1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오늘 바람돌이 님 서재 왔다가 뽐뿌 제대로 받고 가네요. 특히나 올려주신 저 표를 보니 맞아, 정말 그렇지! 하게 되고 말이지요. 이 책도 사겠습니다. 제가 드리는 땡투로 부자 되세요.

잠자냥 2026-07-14 11:3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잠자냥에게 낚이지 말자고 하더니 바람과 돌이님에게 낚이고 있는 다락방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6-07-14 11:57   좋아요 0 | URL
하여간 누구에게든 낚이네요. 하하하하하

바람돌이 2026-07-14 13:41   좋아요 1 | URL
부자 부자 좋아 좋아.... ^^
이 책은 딱히 새롭다는 생각은 안 들었지만 원래의 정리 안된 생각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좀 되는 느낌이에요.그래서 읽기에는 편했습니다. ^^

잠자냥님 원래 우리는 서로의 돈을 책값으로 탕진하게 만드는 비밀조직 아니었나요? ㅋㅋ
 
방문자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다니엘 J. 옮김 / 오픈하우스 / 2026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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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기이함이 주는 긴장감, 열폭하게 하는 FBI, 자기 정체성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뇌하는 잭 리처. 이 3가지가 별 5개를 주고싶게 한다. 그러나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의 느슨함과 갑작스러움, 범인이 마지막 범죄를 왜 했을까에 대한 개연성부족이 별 1개를 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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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04-27 2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존의 리처의 팬들은 이번 책을 좋아할 것이고, 이 책으로 리처에게 입문한다면 실망이라고 말할 듯....그러니까 이번 책은 팬심으로 읽게 된다는 것이다. 당연히 나는 리처를 사랑하므로 이번 책은 별 5개로 좋았다.

다락방 2026-04-27 22: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으로 리처 입문하면 좋아할 수 없을거란 생각을 했어요. 물론, 저는 좋았습니다!!
사건 해결에 있어서는 마음에 안들었지만, 저도 리처 팬인지라.. 하핫

바람돌이 2026-04-27 22:54   좋아요 1 | URL
팬심을 이기기는 힘들죠. ㅎㅎ 고뇌하는 리처라니 어찌 반하지 않을까요 ? 다음편에는 또 길 떠나는 리처? 아니면 런던 간 리처? 여전히 기대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