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속에서 버마 노동자들은 타이 노동시장의 최하부 공동화를 땜질해왔다. 타이 경제를놓고 보면 버마 노동자들이 빼앗은 일자리가 아니라 떠받친 일자리였다. 허울뿐인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같은 거창한 말을 하려는게 아니다. 그저 버마 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박해의 뿌리가 타이 노동자란 사실에 치를 떨었을 뿐.
닭장차에 실려 온 버마 노동자 수백 명이 경찰 몽둥이에 휘둘리며 모에이강 둑에 무릎 꿇고 추방을 기다리던 그 새벽녘 쓰라린 풍경은 여태 내 심장에 박혀 있다.
- P284

샨해방투쟁이 60년째다. 뒤집어 말하면 버마 정부가 정규군 40만에다 온갖 화력을 투입하고도 지난 60년 동안 산을 무릎 꿇리지 못했다는 뜻이다. "앞으로 60년 뒤에도 버마 정부가 무력으론 결코 산을 지배할 수 없다. 그 증거가 이 로이따이이다." 못석 말은 우스개가 아니다. 버마 정부군이 총을 내리고 평화를 향해 가야 하는 까닭이다. 그게 소수민족 자결권과 자치를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버마연방이다. 그게 버마 정부가 죽어라고 외쳐온 연방제다. 버마 정부는 1948년 독립 뒤부터 30여 개 웃도는 크고 작은 소수민족 무장세력을 단 한 번도 무력으로 제압하지 못했다. 결과는 이렇게 뻔히 나와 있다. 선택은 오롯이 버마 정부 몫이다. 소수민족해방조직들은 언제든 총 내릴 준비가 되어 있다. 버마 정부가 총을 거둔다면,
- P306

고백건대, 이게 ‘동무‘가 돼버린 버마전선 취재 30년이 내게 안긴 고민이기도 하여 기사를 쓸 때만큼은 그 얼굴들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써온 까닭이다. 그렇다고 내 고민이란 게 사실을 꾸미거나거짓을 말하거나 진실을 감추는 따위가 아님은 말할 나위도 없다.
내 고민은 적과 동지를 또렷이 구분하는 일일 뿐이다. 기자로서 내게 ‘중립‘ 이란 건 없다. 나는 객관성‘으로 위장해 자본과 권력을 좇는 상업 언론을 믿지도 따르지도 않는다. 오직 내 눈으로 보고 내 귀로 듣고 내 심장이 내린 명령을 좇을 뿐이다. 하여 내게 진실은 오직내 발에 채인 현장일 수밖에 없다.
기자로서 내 직업적 한계는 여기까지다. 나머지는 산 사람들 판단과 샨 역사에 맡길 수밖에.
- P313

그 시절 영국은 까렌, 까레니, 까친, 친 같은 소수민족을 무장시켜 이른바 분할통치로 다수 버마족을 지배한 데 이어,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독립을 미끼로 그 소수민족들한테 도움받았다. 그러나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약속도 책임도 저버린 채 사라졌다. 여기가 바로 상호 불신감과 적개심을 걷어내지 못한 채 오늘까지 이어지는 버마 민족분쟁의 출발지였다. 영국 식민주의가 낳은 저주의 유산이었다.
- P321

"다시 태어나도 버마가 안 변하면 또 총 들 수밖에. 까레니로 태어난 내 운명이고 내 자존심이고 내 명예야." 까레니 해방투쟁을 이끌어온 비투는 "어제는 오늘이고, 오늘은 내일이다. 1948년 독립 뒤부터소수민족 무력으로 짓밟아온 버마 정부 안 믿는다."고 딱 잘라 말한다.
"지금껏 맺었던 숱한 휴전협정 누가 깼어? 그게 내 답이야."
믿음 없는 버마 현대사, 평화는 아직 멀기만 하다.
- P332

까렌이 바깥세상에 알려진 건 비극의 현대사를 통해서다. 가렌과까친을 비롯한 소수민족을 앞세워 다수 버마족을 지배한 영국 식민주의자의 이른바 분할통치가 그 비극의 씨앗이었다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립 보장을 미끼로 소수민족들을 총알받이로 써먹고는사라져버린 영국 식민주의자의 배신이 그 비극의 싹이었다. 1948년독립한 버마가 소수민족의 자치와 자결 약속을 깨트리면서 줄기를뻗은 그 비극은 이어진 군인독재정부의 탄압 아래 무럭무럭 자라 결국 버마 전역을 뒤덮은 분쟁이라는 나무가 되었다.
- P335

눈여겨보면 그 국경 충돌이 달아오른 2009년은 타이와 캄보디아 두 정치판이 모두 뒤틀리던 때였다. 방콕에서는 군사정부에 이어군부 도움받아 집권한 민주당이 합법성 시비에 휘말렸고, 프놈펜에서는 장기집권해온 훈 센이 총선 들머리에 큰 혼란을 겪고 있었다.
이게 두 정부가 민족주의를 앞세워 쁘라삿쁘레아위히어를 정치적재물로 삼았던 배경이다. 걸핏하면 국경 긴장을 정치적 연장으로 써먹는 타이와 캄보디아 정치판의 해묵은 수법이었다.
- P409

이 지뢰밭이 외진 국경이 아니라 방콕이라면 어땠을까? 방콕 사람들이 지뢰 밟아 죽어나가도 못 본 척했을까? 방콕에 박힌 지뢰라면 전쟁 끝나고 33년이 지나도록 내버려뒀을까?
이게 국경 현실이다. 이게 국경 사람들 삶이다.
- P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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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니 받거니 기분 좋은 담배질 끝에 화제를 바꾼다. "그나저나이 마을 내력은?" "여기도 몽족 마을이야. 무장투쟁 접은 1983년, 반롬화파몬Ban Rom Fa Pha Mon 이라고, 라오스 국경과 걸친 도이파DoiPhamon 산기슭에서 여기로 옮겨왔지." "그럼 라오스 사람이구먼?"
"우린 대대로 산속에 살았고, 더구나 그 시절엔 국경선이란 것도 또렷잖았으니, 어디가 타이고 어디가 라오스인지도 몰랐지. 알 필요도 없었고."
- P168

되돌아보자. 지도부나 엘리트 출신 당원들은 먹을거리도 없는 가난한 옛 동지들 심장에 대고 "영혼을 팔아먹었다."며 욕질할 자격이없다. 조직 해체 명령이 없어 총을 놓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조차 헷갈린 전사들만 덩그러니 산악에 남겨둔 채, 앞다퉈 제 살길 찾아 떠난 이들이 지도부였고 엘리트였다. 그렇게 떠난 이들은 머잖아 정치인으로, 학자로, 예술가로, 사업가로 이름 날렸다. 잘난 것 없는 타이공산당 경력을 적당히 흘려가며 떵떵거리고 살아왔다. 그이들이 못배우고 가난한 옛 동지들 사회복귀나 보상 위해 팔 걷어붙이고 나섰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다.
- P201

그놈의 나라‘가 불러 나라‘ 위해 목숨 걸고 15년 동안 반공전선 달린 마 와릿한테 떨어진 건 꼴난 버스비와 병원비 반값이다.
버스도 없고 병원도 없는 이 깊은 두메산골에서.
라오스와 국경을 맞댄 이 산골에서는 전직 자경단도 전직 공산당도 시민 대접 못 받긴 다 마찬가지다. 파묻어버린 타이 현대사의 그 밖들일 뿐.
- P215

한참 만에 사하이 사완이 말문을 연다. 1970년대 무장투쟁 시절 이 산악을 타고 다녔지. 다 지난 이야기지만, 세상은 아무도 몰라.
짓누르면 또 일어날 수도 있고, 좋은 세상 못 만든 우리 세대 탓이지만.." 그이 얼굴에 깊은 회한이 묻어난다.
- P251

"당신처럼 라오스에서 태어나 타이에서 살아온 국경 사람들은 두 나라 다툼에 심사가 복잡할 텐데?" "우린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전쟁 없이 평화롭게 살 수 있으면 돼. 우리 같은 국경 사람들한테 국적이니 국제법 따위가 뭐 그리 중요하겠어. 도시 사람들한테나 필요한 건진 몰라도, 어차피 우리야 짊어지고 살아야 할 의무만 있지 권리란 게 없으니까." "두 나라가 여기 땅을 놓고 서로 내 것이라 우겨왔는데, 본디 어느 쪽 영토인지?" "여기 국가란 게 어디 있었어. 서로 전쟁하기 전까진 타이도 라오스도 눈길 한 번 준 적 없었는데, 우리를 봐. 나만 해도 저쪽 라오스에서 여기 타이 쪽을 마음대로 건너다니며 살았잖아. 지금이야 막혔지만."
- P252

그렇다면 롬끌라오 해결책은 하나뿐이다. 국가 중심의 비무장지대를 시민 중심의 평화지대로 바꾸는 길 밖에 없다. 기술적으로 영토분쟁지역을 공유할 뿐, 두 나라가 영토주권을 포기할 일도 없다.
현실적으로 두 나라는 서로 잃을 것도 달라질 것도 없다. 그동안 두정부의 전략이란 것도 사실은 현상유지정책이었고, 특히 아세안에묶인 두 나라 사이에는 전쟁 가능성도 사라진 상태다.
. 더구나 교통마저 없는 첩첩산중 이 비무장지대에 경제적 이권을다툴 만한 건더기도 없다. 평화지대로 바꾼들 서로 손해 볼 일이 없다는 말이다. 오히려 ‘세계 최초‘로 영토분쟁지역에 평화지대를 창설함으로써 명분도 얻고 이문도 낼 수 있다. 무엇보다 타이와 라오스 정부가 죽기 살기로 매달려온 관광산업에도 그만이다. 그 평화지대는 고유한 전통문화를 지녀온 국경 사람들 중심으로 꾸리면 된다.
이 멋들어진 산악에다 그만 한 관광상품이 어디 있겠는가?
- P253

"전선에서 같이 싸워보니 어땠어요?" "본디 우린 학생이나 지식인 안 믿었어. 그이들은 잠깐 왔다 가는 거니까. 1965년부터 목숨 바쳐 싸운 우리하곤 달랐지.
근데, 나중에 보니 그이들이 타이공산당 상징처럼 되어 있더군, 무슨 지도자나 된 것처럼," "1970년대 학생운동 이끈 지도자로 타이공산당 무장투쟁에 참여했던 섹산 쁘라서꾼(탐마삿대학)과 티라분미Thirayut Boonmee(쭐랄롱꼰대학) 말하는 건가요?" "그 둘뿐 아니라숱하잖아. 난 그런 이들 관심 없어. 땅에 발 디딘 공산주의자 아니니까. 많이 배운 그이들은 머리와 입으로 혁명 외쳤지만, 우린 심장과발로 혁명전선을 달려왔어."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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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6-04 14: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이 공부가 많이 될 것 같네요.
마지막의 글을 읽으니 역사 왜곡, 이 떠오르네요. 많은 역사가 왜곡되었을 걸로 추측합니다.
싸움에서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 것처럼 보이듯이, 역사 또한 진술하는 측이 유리하게 작용할 듯합니다.

바람돌이 2021-06-04 15:17   좋아요 2 | URL
저기 인터뷰하는 분들 모두 정부가 너무 빼앗아가서 굶어죽을 수가 없어 저항을 시작했던 분들이에요. 이런 분들의 역사가 타이에서는 전부 다 묻혔다고 합니다.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죠. 독립운동사조차도 묻힌 것들이 어찌나 많은지.... 동남아시아의 현대사를 보면서 우리나라보다 더 가혹하고 복잡한 역사에 마음이 많이 착잡해지네요.
 
리멤버 홍콩 - 시간에 갇힌 도시와 사람들
전명윤 지음 / 사계절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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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 대한 단상은 두개의 시기로 나뉘는 것 같다.

우산혁명 이전의 홍콩과 이후의 홍콩


내게 우산 혁명 이전의 홍콩에 대한 기억은 모두 영화속 홍콩이다.

중학교 시절 성룡의 영화에 열광했던 것에서 시작해 홍콩 영화의 계보는 그 시절 우리 모두를 열광하게 했었다.

천녀유혼 속에서 충격적일 정도로 예뻤던 왕조현과 장국영, 주윤발을 시작으로 한 홍콩 느와르영화의 전성시대, 그리고 왕가위감독의 중경삼림, 해피투게더....

이 시절을 지나 온 이들은 누구라도 할 것 없이 홍콩영화에 대해 얘기하라고 하면 끝도 없이 떠들 수 있는 내공 한자락쯤은 모두 장착하고 있을만큼 홍콩은 영화속 세상이었다.


우산혁명 이후의 홍콩은 이런 판타지속의 홍콩을 느닷없이 현실로 내 앞에 훅 갖다놓았다.

사실상 내게 있어 홍콩의 현실 역사란 딱 홍콩역사의 시작점인 아편 전쟁과, 1997년의 중국 반환이라는 이 두 지점으로만 기억되는 곳이었다.

이 곳에서도 현실 사람들이 살아가고 어려움을 겪고 일상을 영위하고 있을 터인데 그 중간지점은 온통 판타지로만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판타지를 걷어내고 아편전쟁 이후부터 지금까지 홍콩이 걸어온 역사와 그곳에서 살고 있는 현실의 홍콩인들을 보여주고자한다.

홍콩에 대한 역사서술 속에 지금의 홍콩인들을 만나면서 들은 얘기들, 그들의 생각들이 같이 어우러져 진짜 홍콩을 만나고 대면할 수 있는 책이다.

서슴없이 별 5개를 이 책에 주는 이유가 바로 그 현실감과 홍콩에 대한 저자의 애정에 있다.

저자는 홍콩의 송환법 반대투쟁 시기에 취재를 위해 몇번이나 홍콩으로 가서 그들의 투쟁의 현장을 직접 겪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경험을 이 책 속에 녹아내었다.

정식 기자도 아닌 사람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여행가이드로 살아가면서 정말로 홍콩이라는 땅과 그 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라는게 책의 곳곳에 녹아있다.


관광지로서의 홍콩, 영화속의 홍콩이 아니라 현실의 홍콩을 만나는데 더없이 좋은 책이다. 

또한 인구가 186배나 많은 너무나 버거운 저항대상-중국이라는 나라와 싸워야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지킬 수 있는 곳. 

코로나때문에 저항운동이 멈추자 기다렸다는 듯이 국가보안법(우리나라 국가보안법과 거의 비슷한 수준)을 통과시켜 홍콩의 자치권을 완전히 박탈시켜 그야말로 중국체제에 편입되어버린 땅.

자신이 중국인인지 홍콩인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새로운 세대들.


식민지는 단순히 국가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자신의 자율적인 삶에 대한 결정권을 가로막는 그 모든 것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지금의 홍콩이다.

책 속에서 "한국은 어떻게 이겼어요?"라고 묻는 홍콩 소녀에게 "한국도 항상 이긴것만은 아니야. 항상 졌어. 항상 지면서 다시 용기를 내서 계속 싸운거야"라는 말이 그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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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6-03 15: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홍콩의 민주화 ,,,,,
코로나로 인해 홍콩 시민들 중국에 짓밞히고 있는데도
어떤 국가도 관심 없이
이제는 각자 도생 ㅠ.ㅠ

바람돌이 2021-06-04 10:20   좋아요 0 | URL
코로나로 인해 모든 곳이 고통받고 있지만 홍콩에겐 더 치명적이었던것 같아 마음이 아팠어요.
코로나로 인해 시위가 중단된 틈에 국가보안법 통과라니.... 에휴 ㅠ.ㅠ
 
피에 젖은 땅 - 스탈린과 히틀러 사이의 유럽 걸작 논픽션 22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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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을 다룬 영화 <고지전>에서 가장 인상깊은 대목 중의 하나

정전협정이 맺어진 사실을 알고 모두가 환호할 때, 그 정전협정의 발효시간이 12시간이 남아있다면서 

"우리에겐 아직 12시간이 남아있다. 우리 군은 오늘 모든 전선에 걸쳐서 대대적인 총공격을 전개할 것이다. 12시간 뒤의 전선이 우리의 땅 우리의 영토가 될 것이다........... 마지막 총력전이고 다른 부대도 마찬가지다. 최고의 활약을 기대한다"

이후 영화는 어이없음과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찬 인민군과 국군의 모습을 교차시키면서 작전이고 후퇴고 없는 몰살의 마지막 장면으로 관객을 이끈다.

2년이 넘는 고지전의 기간동안 그래도 살아남았던 모든 군인들이 이 마지막 총력전에서 죽어나간다.

그 골짜기 하나, 봉우리 하나가 뭐라고......


권력을 가진 자가 그릇된 신념을 가지고 있고, 그 신념을 실현하는 것이 절대적이라 믿으며 현실을 자신의 신념에 맞추고자 할때 비극은 그 부피를 한없이 부풀리게 된다.

한뼘의 땅이라도 더 가지는 것이 국가의 미래를 위한 최선의 길이라고 믿는 국가 수뇌부의 신념의 현실화는 결국 수 만명 수십만의 비참한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역사가 수백만을 넘어서 추정치만 1,400만의 죽음으로 이어진 곳이 있다.

독일과 소련의 사이 폴란드 중부에서 러시아 서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발트 연안의 에스토리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Blood land - 피에 젖은 땅!

도대체 그 땅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무엇이? 누가? 왜?

역사적 비극은 어느 하나의 원인만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비극의 규모가 커지는 것은 그것을 키우는 모든 것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면서 누구도 그 흐름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굴종하고 체념하고 외면하고 또는 부추기면서이다.

이 모든 것들이 그 땅에서 일어났다.


1,400만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가 가리고 있는 것은 누군가의 이름이고 삶이다.

때로 역사가들은 쉽게 숫자에 함몰된다.

사실과 정확한 통계자료는 역사에서 기본 재료일 뿐이다.

그 숫자와 통계속에 인간의 삶과 숨결과 고통이 있음을 보지 못한다면 그 역사는 도대체 왜 존재해야 하는걸까?



1941년 12월 28일 새벽 12시 30분, 제나가 죽었다.

1942년 1월 25일 오후 3시, 할머니가 죽었다.

1942년 3월 5일 새벽 5시, 레카가 죽었다.

1942년 4월 13일 새벽 2시, 바샤 삼촌이 죽었다.

1942년 5월 10일 오후 4시, 레샤 삼촌이 죽었다.

1942년 5월 13일 아침 7시 30분, 엄마가 죽었다.

사비체프 집안 사람들이 죽었다.

모두 다 죽었다.

타냐 혼자만 남았다.


타냐 사비체바는 1944년 세상을 떠났다.   - P312


독일의 레닌그라드 봉쇄기간 동안 이 일기를 썼던 11살 소녀 타냐는 그렇게 모든 가족을 잃었고, 그녀 역시 결국 죽었다.

이제는 그 이름들을 부르는 것조차 불가능해진, 죽음의 통계 숫자로만 남아있는 이들을 복원하지 않는다면 비극은 언제든 다시 되풀이 될 수 있다.

이 책에서 그토록 희생자의 이름 하나하나를 부르려고 노력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이다.

희생자의 죽음이 아니라 삶을 보고자 할 때 비극의 진정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1929년의 자본주의 경제의 대공황은 독일 경제에 치명타를 날렸다.

사람들은 인플레로 인해 돈으로 벽지를 바르고, 지폐더미를 땔감으로 사용한다.

독일의 누구에게도 희망이 없어 보였을 때, 우리의 희망을 얘기하며 '히틀러'가 등장한다.

그는 독일인들에게 지금 독일인의 고통은 우리 자신 때문이 아니며, 독일인은 강하다고 강변한다.

유대인 같은 가상의 적을 설정하고, 유대인들을 독일과 온 유럽에서 제거하고 강하고 넓은 영토를 소유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독일제국을 건설할 때 독일인의 고통이 끝날 수 있다고 미래의 희망을 얘기한다.

뉘른베르크 나치 전당대회에서 독일 국민들은 히틀러를 향해 '그분이 오셨다'고 소리지르며 눈물과 감격으로 히틀러를 맞는다. 독일의 구원자, 구세주!!! 


1917년 러시아 혁명은 이 세계에 새로운 국가 모델을 창조했다.

그러나 혁명을 일으키는 것과 그 혁명 정신을 지키고 인류 최초로 시도하는 국가 모델을 새롭게 만들어나가는 일은 그 어떤 모범사례도 없이 새롭게 개척하는 길이다. 

그것이 심지어 규모가 작은 나라가 아니라 엄청난 규모의 경제크기와 영토를 자랑하는 러시아에서 일어났다는것이 어쩌면 비극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주변 자본주의 국가들의 이 신생체제에 대한 두려움은 공포의 극한이었고, 어쨌든 무너뜨려야 할 자본주의의 적이었다.

이런 상황속에서 등장한 스탈린은 세계 자본주의 제국들로부터 러시아 혁명을 보호하기 위해 '일국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이념을 창조한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야 단결하라'고 했던 마르크스가 이걸 봤다면 진정 사회주의 이념이 제대로 구현된 것이라고 했을까?

'일국 사회주의'의 진정한 문제는 최초이자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 소련을 보호하는 것이 역사의 진보라고 믿으며, 그 무엇보다 체제의 보호를 우선 순위에 두게 되는 것이었다.

그를 위해서는 사회주의 사상도, 러시아 혁명의 이념도 모두 유보될 수 있는 것이고, 어떠한 정책도, 잔학행위도 일국 사회주의 체제 - 소련의 보호라는 말로 용인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하는 모든 것이 혁명의 적으로 단죄될 수 있는 것이 되어버린다.

히틀러와 달리 스탈린의 이 정책은 소련을 지켜보고 있던 유럽의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들에 의해서도 묵인되었다.

이념이 현실을 앞지르고, 현실을 이념에 짜 맞추기 위해서 수많은 개인들, 민중들의 삶과 죽음에 애써 눈길을 돌리는 것이다. 이런 일은 이후 중국의 문화혁명에 대한 유럽 좌파들의 태도에서도 다시 한번 더 반복된다.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의 강력한 철권 통치자, 히틀러와 스탈린이 준비되었다. 

심지어 그들은 자국민들의 지지라는 든든한 배경을 소유했고, 심지어 스탈린은 유럽 지식인들의 침묵까지 가졌다.

독일제국의 건설이라는 신념, 일국 사회주의의 완성이라는 신념, 이 두 개의 신념이 맞부딪히는 곳에서 모든 현실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복무해야 한다.

신념과 사상이 현실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신념과 사상에 맞추어져야 한다. 

따라서 사상에 걸맞지 않는, 방해가 되는 현실사회는 당연히 변화와 파괴, 나아가 절멸의 대상이 될 뿐이다. 

Blood Land를 위한 모든 준비가 갖추어진 것이다.



1933년 우크라이나는 소련경제 5개년 계획의 실현을 위한 희생양이 되어야 했다.

스탈린에게는 소련체제의 우월성을 증명할 성과가 절실했고, 그것은 산업화와 집단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이었다.

농업의 집단화에 반대하는 부농으로 지칭되는 사람들이 강제추방되어 강제수용소로 강제이주당했다.

누가 부농이냐? 누가 사회주의 소련에 암적인 존재냐는 공산당 관료체제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결정되었고, 누가 더 많은 부농을 강제수용소로 보내는가 경쟁이 있었을 뿐이다.

다음으로는 소련의 산업화를 위한 식량공장, 산업화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식량수출기지로서의 우크라이나의 역할이 부여되었다.

과잉 설정된 목표는 우크라이나 농촌을 초토화시키고 수백만의 농민들을 굶어죽게 만든다.

오죽하면 농민들이 다음해 농사를 지을 종자까지 먹어치웠을까?

이 사태는 식량 수출량의 조절, 공출양의 조정이라는 아주 간단한 정책만으로 막을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스탈린에게 우크라이나 농촌의 상황은 관심밖이었다. 자신이 설정한 목표 달성, 자신이 생각하는 사회주의 국가의 경제 발전을 가로막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 이 단순한 생각이 수백만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다.

이러한 스탈린의 정책과 생각은 반대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과 추방으로 이어진다.

이번에 희생되는 것은 농업의 집단화 실패를 농민들의 토지소유욕이라고 몰아가기 위해 부농이라는 계층으로 뭉뜽거려진 농민이었고, 소련의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 민족주의적 분열을 가져온다고 추정되는 폴란드인들이다. 

심지어 이들 희생자의 대부부은 아마도 그러할 것이라고 짐작되는 잠재적 불확정적 반대자가 대부분이다.

사람들은 그가 한 일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 때문-농민이라는 존재, 폴란드인이라는 존재 때문에 처벌받는다.

희생의 규모는 얼마나 많은 반대자를 찾아내고 처벌하는 가에서 충성도를 확인하는 것으로 변질되어 무차별적인 탄압으로 연결된다. 이는 독일이든 소련이든 마찬가지이다.


본격적인 2차 세계대전의 시작은 비극을 더 강화시킨다.

히틀러는 그들이 생각하는 독일제국의 완성을 위해 동쪽으로 진군하고 폴란드를 점령한다.

히틀러에게 폴란드는 독일인이 이주해서 살아갈 새로운 땅이었고, 그것은 폴란드인의 절멸을 뜻하는 것이었다. 

미래의 어느 때고 있을지도 모를 폴란드의 재기를 방지하기 위해 폴란드의 지식인들을 몰살시키고, 독일제국을 건설한다는 그들의 목표는 현지 주민의 몰살이었다. 

전쟁수행을 위한 식량확보와 전쟁물자 확보를 위해 노동력을 남겨야 한다는 고려가 있을 때만 그들의 학살은 멈칫했을 뿐, 식량부족이라는 사태를 막기 위해 소련의 전쟁포로들을 학살하고, 동유럽과 소련 지역의 유대인들을 절멸시키고, 점령지의 주민들을 절멸시키는 이 비극이 어떻게 인간 세계에서 가능한 것이었을까?

히틀러와 스탈린의 학살 경쟁은 서로에게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기반을 제공해주며 오로지 학살의 상승곡선을 그릴 뿐이다. 


이 책의 최대의 강점은 바로 이 학살이 이루어지는 땅과 사람들. 죽은 이들의 이름과 삶을 꼼꼼하게 따라가는 성실함이다.

이토록 끔찍한 일들을 연구하고 찾아간 작가가 오히려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작가는 집요하게 학살의 현장의 모습, 그곳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학살에 참여한 사람들, 동조한 사람들, 또는 외면이라는 것으로 학살에 자기도 모르게 일조하게 되는 사람들, 그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보여주고자 한다.

사실상 기존의 역사서술은 이곳에서 벌어진 학살들을 숫자로 얘기하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정치적 역관계와 강대국들의 관계는 무엇인지를 찾는데 더 천착했다. 

그러면 왜 작가는 이렇게 집요하게 학살의 현장을 복구하는데 집착했을까?

그 대답을 작가의 말에서 찾아본다.



서구와 미국 역사가와 기념운동가들은 스탈린주의적 역사왜곡을 시정하려 하면서도 아우슈비츠 동쪽에서 희생된 거의 500만명에 가까운 유대인과 나치에게 죽은 거의 500만 명의 비유대인 희생자는 간단간단히 넘기는 모습을 보였다. 동방에서 특히 유대인들이 많이 죽어간 사실과 서방에서의 지리적 조건을 계산에 넣지 않는다면,홀로코스트는 유럽사에서 제자리를 찾았다고 볼 수 없다. 유럽인과 그 밖의 사람들이 아무리 ‘홀로코스트를 잊지 말자고 말한다고해도 말이다.
스탈린의 제국은 히틀러의 그것을 포괄했다. 철의 장막은 서방과 동방 사이를 갈랐다. 그리고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도 장벽을 마련했다. 이제 그 장막이 걷힌 상태에서, 우리는 원하기만 하면 볼 수 있다. 히틀러와 스탈린 사이에 있었던 유럽의 참된 역사를,  -p669



블러드 랜드에서 벌어진 일들을 정확하게 복구하는 데서 역사의 진실은 시작된다.

어떤 이유에서던, 설사 인류의 진보를 위한 외면, 눈속임이라는 것을 핑계로 댄다해도  역사적 진실에 눈감는 것은 인류의 진정한 평화에서 걸림돌이다.

스탈린의 사회주의가 마르크스가 말했던 그 사회주의였다고, 인간의 평등을 위한 희생이었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스탈린이 되고 히틀러가 될 뿐이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라는 평범한 말은 역시 진리다.


희생자들은 사람이었다. 그들과 진정으로 동일시되고 싶다면, 그들의 죽음만 볼 게 아니라 그들의 삶을 봐야 한다. 정의상으로 희생자란 죽은 사람이며, 다른 이들이 그들의 죽음을 어떻게 이용하든 저항할 수가 없다. 희생자들의 죽음을 내세우며 어떤 정책을 미화하거나 스스로와 희생자를 동일시하는 일은 쉽다. 범죄자들이 저지른 행동을 이해하는 일은 별로 매력이 없다. 그러나 도덕적으로는 더 중요하다. 어쨌든 도덕적 위험은 누군가가 희생자가 될 때보다 범죄자나 방관자가 될 때 발생하기 때문이다. 나치 학살자들은 이해 불가능한 인간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유혹적이다. 예를 들어 베네시나 예렌부르크 같은 비범한 정치인이나 지식인들이 전쟁 중에 그런 유혹에 빠졌다. 그 체코 대통령과 유대계 소련 작가는 그런 식으로 독일인들에 대한 복수를 정당화했다. 다른 인간을 인간 이하의 존재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자신이 인간 이하다. 그러나 인간에게서 인간성을 부인해버리면 윤리란 불가능해진다.
그런 유혹에 굴복해 다른 사람들을 인간이 아니라고 규정하는 일은 나치의 입장으로 한 발짝 다가가는 것이다. 물러서는 일이 아니고말이다. 다른 사람들을 이해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이해를 포기하는 일, 다시 말해 역사를 버리는 일이다.  - P703



너무나 진부해 보이는 말이지만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다는 것은 여전히 진리이다.

어떤 이념이든지 현실을 그 이념에 맞추고자 할 때, 그것을 위기극복의 방법이라고 강변할 때, 타자를 나의 고통과 위기의 원인이라고 떠넘길 때 우리 속의 파시즘은 언제나 부활한다.

블러드랜드를 만든 이들이 인간이 아니었다고 저게 어떻게 사람이냐고 말하면 안된다.

그들은 인간이었다. 

인간이 인간을 학살한 것이고 절멸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다. 

그 말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언제나 똑같이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언제든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식민지시대를 겪었고, 한국전쟁을 겪었고, 남과 북에서 독재시절을 겪고 보고 들었던 우리 역사의 과거를 생각해보자.

지금 우리 안에 있는 북에 대한 그 적대감들을 생각해보자.

또한 지금 중국, 일본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 역시 생각해보자. 

우리는 우리와 다르다고 하는 가상의 적을 지금도 만들고 있지는 않는가?

일본의 우경화와 역사인식 부재를 비판하는 것과 그들을 증오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증오속에서는 일본의 시민사회와 연대하고, 함께 평화와 변화를 이끌어갈 최소한의 고리마저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

점점 커져가는 중국을 폄하하고 비웃는 것이, 그들의 중화제국 건설 의도를 비판하는 것과도 또한 다르다.

어쩌면 우리는 저 블러드 랜드가 만들어질 조건을 또 우리 안에 차곡 차곡 쌓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역사의 교훈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며 진부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역사는 반복된다. 마르크스의 말과는 달리 늘 비극으로, 아니 더 큰 비극으로.

우리안의 히틀러는 스탈린은 없는지 끊임없이 경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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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26 06:53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와우 완독을 축하드립니다^^ 이 책의 리뷰를 읽어보면 비참하다는 생각이 항상 드네요. 학살경쟁이란 말이 딱 맞는거 같다는~ 블러드랜드의 역사적 사실을 우리 주위에 적용해서 쓴 내용 정말 적절한것 같아요ㅎㅎ

바람돌이 2021-04-26 11:54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읽는 것도 힘들었지만 리뷰 쓰는게 더 힘들었어요. 저는 항상 읽는건 너무 좋은데 쓰는건 너무 힘들어.... 그래서 쓰지 말까 하다가도 이게 또 쓰지 않으면 왠지 읽지 않은 듯한 찜찜함.... 새파랑님도 아시죠? ㅎㅎ

미미 2021-04-26 08:5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와👍👍 정리까지 완벽하게!! 수고하셨어요! 마지막 단락 공감합니다. 언제든 반복될 수 있고 사소한 증오도 거기 한 몫하는거라 생각해요.

바람돌이 2021-04-26 13:46   좋아요 4 | URL
정리는 정말 기본 내용만 한거라서 완벽은 절대 아니고요. 그래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는데 제 생각에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페넬로페 2021-04-26 09:59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완독에 리뷰까지 작성하시고.
수고 많으셨어요^^
블러드 랜드,
1400만,
듣기만 해도 끔찍하고 그 비참함을 우리가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ㅠㅠ

바람돌이 2021-04-26 11:56   좋아요 4 | URL
벽돌책은 한달에 1권으로 제한하자고 살짝 생각하고 있습니다. ㅎㅎ
예전에 영화 지슬 보면서 아 저 시대 안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어 좀 부끄러웠는데요. 이 책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을 하게 합니다.

coolcat329 2021-04-26 10:1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와~~~~읽으셨군요! 우선 축하드립니다. 저도 이 책 사놨는데 4단 서랍장위에 육중하게 놓여있기만 합니다.ㅠ
다각도로 매우 꼼꼼하게 쓰여진 책이라 이리 두꺼운가봅니다.

바람돌이 2021-04-26 13:52   좋아요 3 | URL
그렇게 쌓여있는 벽돌책은 저도 엄청납니다. ㅎㅎ 이제 한달에 한 두권 정도로 벽돌책 치우기 5개년 계획을 해볼까하다가 맞아 5개년 계획 따위 하다가 저따위 일이 일어났지 하고 또 반성을... ㅎㅎ
이 책은 정말 꼼꼼함과 성실함으로 쓰여진 책 맞아요. 그래서 저는 감사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syo 2021-04-26 10: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군인들이 제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예비군입니다. 다 읽어내셨군요. 제대 축하드립니다.... 나는 언제....

바람돌이 2021-04-26 13:54   좋아요 2 | URL
아 제가 드디어 예비군이 된거였군요. 아이 좋아라.... ^^
syo님 며칠 안남았어요. 어차피 읽을거 이벤트 기간에 읽어야죠. 으샤 으샤!!! 평소 syo님 독서 속도라면 얼마든지 가능하시면서 엄살은.... ^^ 어쨌든 화이팅입니다.

scott 2021-04-26 16: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와 바람돌이님 이 리뷰 새벽에 올리셨군요
이제야 읽어봄 ㅎㅎ
이런 감동의 깊이와 슬픔, 남겨진 후손들에게 크나큰 숙제를 던져주는
벽돌책, 많은 이들이 읽기 바랄뿐입니다
책값이 넘 높아서,,(원서 페이퍼백은 15불정도인데,,,)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씀에 동감 1000000배!!

바람돌이 2021-04-27 21:19   좋아요 2 | URL
저는 scott님의 리뷰와 계속 이어지는 페이퍼들에 감동 감동입니다.
아 책을 참 깊게 읽으시는구나, 한 번 읽고 글 하나 쓰고 던져 놓는 저의 자세를 반성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이 읽기에는 정말 분량도, 내용도 부담스러울듯... 하지만 이런 책을 읽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이야기 해주는 사람이 생기는건 좋을 거 같아요. 바로 scott님처럼요. ^^

mini74 2021-04-26 18:2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비판과 증오는 다른 문제 라는 말 동감합니다. 글 너무 좋아요 *^^*

바람돌이 2021-04-27 21:20   좋아요 3 | URL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갑자기 힘이 불끈 불끈! 어깨가 으쓱 으쓱! 역시 저는 칭찬에 약합니다. ㅎㅎ
비판과 증오는 정말 천지차이로 다른 것인데 그걸 뒤섞고 오해하는 일은 현실에서 너무 많이 일어나요. 슬픈 일인데 왜 인간은 늘 같은 잘못을 계속 하는지....

붕붕툐툐 2021-04-26 23: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의 인식에 깊이 공감합니다. 내 안에 히틀러가 스탈린이 있어서 늘 경계합니다. 누구 욕을 못하겠어, 나도 그래서..ㅠㅠ 이 책 요즘들 많이 읽으셔서 읽고 싶었는데, 벽돌책이었군요.. 그럼 전 조용히 패쓰해야할 듯.. 하지만 전 바람돌이님 페이퍼를 읽었으니 읽은 것과 마찬가지?ㅎㅎㅎㅎㅎ

바람돌이 2021-04-27 21:22   좋아요 2 | URL
툐툐님 공감에 뿌듯뿌듯요. ^^ 책들에서 읽는 교훈은 사실 삶 자체나 몸에 새겨지는게 아니기 때문에 자주 잊어버린다는 한계가 있는듯해요. 그래서 주기적으로 책을 읽고, 제 생각을 다시 재정립하고 제대로 몸에 새겨지도록 계속 생각하는게 중요한거 같아요. 툐툐님 이 책은 벽돌책이지만 어렵지는 않습니다. 음... 그렇다고요. ㅎㅎ

희선 2021-04-27 01: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사에서 배워야 할 텐데, 그런 거 다 잊어버리고 사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자기 나라만이 아니고 세계를 생각하고 모두가 같은 사람이다는 걸 잊지 않아야겠지요 전쟁 때 죽은 사람이 몇 사람이다가 아니고 누구인지 아는 게 더 중요하겠습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1-04-27 21:31   좋아요 2 | URL
맞아요. 하나 하나의 죽음은 해당자와 가족,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하나의 세상이 완전히 무너지는거잖아요. 그걸 잊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이 책이 주는 것 같아요.
 

"국내 일반 인민은 상하이에서 임시정부가 설립되었다.
는 말을 듣고 소수의 조직이든 인물이 좋든 나쁘든 상관하지 않고 다 기뻐하여 금전도 아끼지 않고 적의 악형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외지에서 임시정부를 반대하던 자도 국내에 들어와서 금전을 모집할 때에는 다 임시정부의 이름을 파는 것이 바로 국내 동포가 임시정부를 믿는 증거다.
만약 5년의 역사를 가진 정부를 없앤다면 소수는 만족할지모르나 대다수는 슬퍼할 것이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개조하자. -김마리아
- P28

고향에 아내가 있었다. 당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해서, 대개의 남자들은 기약 없는 본부인을 두고 새로 결혼하기를 마다하지 않았고 주위에서도 이를 허물하지 않았다. 그러나김철수는 "조선이 낳은 혁명 여걸‘을 고작 첩으로 만들 수는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김마리아를 흠모하기에 더욱 그랬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마음을 조용히 접었다훗날 김철수는 먼저 간 김마리아를 그리며 평생 그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 다녔다). -김마리아 - P29

"어떤 인생을 살았기에 투사가 되었느냐 물었지요. 나는오히려 되묻고 싶습니다. 조선에서 어떻게 하면 투사가 안되고 살 수 있습니까? 친일 부호라면 몰라도 우리 같은 노동자는 싸우기 싫어도 싸워야 하는 게 현실이지요. 따지고 보면 기자 선생도 지금 붓으로 싸우고 있는 거 아닙니까?" -강주룡 - P39

정화가 임시정부의 안주인으로 불리며 26년간 임시정부의 역사를 함께한 것은 제 의지로만 된 일은 아니었다. 두어른의 죽음으로 만주행과 미국행이 틀어지며 상하이를 떠나지 못한 외부 상황 때문이기도 했다. 어찌 보면 마지못해상하이에 남게 된 것이지만, 정화는 상황을 탓하거나 주저앉지 않았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찾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정정화였다.
- P67

그는 조선최고의 천재로 꼽히던 사람인데, 최초로 우리나라의 한문학과 소설 역사를 정리한 국문학계의 큰 별인데…. 잘못된시대를 만나 어쩔 수 없어 총을 들었으나 마지막까지 붓을그리워했던 그의 운명이 새삼 서러워 나는 오래 울었다. 어쩌면 그 울음은 북에서 허수아비만도 못한 존재가 되어 스러져가는 내 운명을 향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박진홍 - P94

아무튼 우리는 야학이 생기니까 얼마나 좋은지. 나랑 같이 물질하던 또래 친구들이 다 야학에 들어갔어. 굴동 사는부춘화 언니랑 부덕량, 고순효(호적 이름은 고차동), 우리 동네 사는 김계석이랑 다들 다녔어. 나도 가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여자가 배우면 큰일 난다고 어찌나 반대를 하는지. -김옥련 - P123

결국 우리 셋은 6개월 형을 선고받고 감옥살이를 했어.
다행히 고순효랑 김계석은 다른 동네로 잘 피해서 감옥살이를 면했는데, 그 바람에 해방되고 독립유공자 선정할 때속상하게도 제외가 됐어. 감옥만 안 갔다 뿐이지 독립투쟁을 안 한 게 아니잖아. 친일파들한테는 웬만하면 이해해주자고 하면서 독립투쟁을 한 사람들한테는 왜 그리 깐깐하게 구는지…. - 김옥련 - P131

내가 본 중에 그 무렵에 선생이 젤 늙었던 것 같아요.. 일제 때도 씩씩하던 분이 툭하면 한숨을 쉬시고,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파요. 나중에 북에서 숙청당했느니 어쩌니 하는데, 난 알고 싶지가 않아요. 선생님이 어떤 사람이냐고 ? 글쎄, 내 생각엔 불쌍한 조선 여자를 위해 울었던 진짜 조선 여자인 것 같아요. 강하고 부드럽고 헌신적이고 부지런한, 믿음직한 성님. 나의 영원한 선생님이지요. -정칠성 - P153

알렉산드라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나는 볼셰비키다. 나는 억압받는 민족과 소비에트 정권을 위해 싸웠고 지금도 싸우고 있다. 나는 조선 인민이 러시아 인민과 함께 사회주의혁명을 달성해야만 나리의 자유와 독립을 이룰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알렉산드라의 뜻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안 백위군은 즉결재판을 열어 바로 사형을 언도했다. -김알렉산드라 - P216

기사를 보고 나는 실소했다. 일제의 검열 때문이라 해도내가 중국 군대까지 가서 비행사로 활동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고 "꽃 같은 여류비행사 따위의 말만 가득한 데다, 동지인 이영무를 연인이라 하니 어이가 없었다.
수많은 여성이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건만 여자를 보는 세상의 눈은 변함이 없구나 싶었다. 그래도 신문기사 덕분에 가족 친지들이 내가 조종사가 되어 전장을 누비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리라 생각하니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다. -권기옥 - P232

난징에서 나는 조선민족혁명당 부녀국에서 박차정 등과 함께 선전 활동을 전개했다. 그 무렵 윤세주 등 간부들의 권유로 독립군 장교인 리집중 동지와 재혼했으나 그 역시 가부장적으로 내 활동을 속박하기에 이내 헤어졌다. 당차원에서는 여성의 지위와 권리가 남자와 평등해야 한다고선전하고 있었으나 실제론 전혀 그렇지 못한 현실 앞에서나는 깊은 실망감을 느꼈다. 하지만 내게는 가야 할 길이 있기에 결코 후퇴하지도 후회하지도 않았다.
-이화림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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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04-27 0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19년에 여성독립운동가로 나온 우표가 생각나네요 안경신, 김마리아, 권기옥, 박차정 네 사람이었어요 그 우표는 거의 다 팔려서 여덟장 남은 것만 샀어요

http://image.epost.go.kr/stamp/data_img/sg/up20190211195036958.jpg


희선

바람돌이 2021-04-27 21:39   좋아요 1 | URL
와우 몰랏어요. 저도 알았으면 사둘걸.... 득템하신 희선님 부러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