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날
16살짜리 머스마들은 축구공 하나면 세상을 가진듯...
음... 내가 할일이 없네...
미니 추구장 앞에 우리 반 녀석이 가져온 돗자리 깔고,
가벼운 책 한권, 집에서 뽑아온 커피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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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15-10-14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죠?
이런거 보면 애들이 꼭 화려하고 비싸고 최첨단이어야만 즐거운건 아니에요.
애들 놀라고 멍석 펴 주셨으니 바람돌이님은 휴식을.. ㅎㅎ

무스탕 2015-10-14 17:06   좋아요 0 | URL
다시 사진 보니.. 알라딘 보온병이에요?

바람돌이 2015-10-14 23:29   좋아요 0 | URL
무스탕님도 잘 지내시죠? 자주 와야지 하면서도 왜 자꾸 여유는 더 없어지는지 모르겠어요. ^^;;
오늘 간 곳이 시설이 좋아서 저렇게 아이들도 저도 호강이었죠. ㅎㅎ
책 보다가 옆에 응석부리는 녀석들과 잡담하다가 날씨도 정말 좋고 모처럼 여유롭게 쉬었어요.
책과 커피를 준비해간 저에게 속으로 박수를 보냈답니다. ㅎㅎ 그리고 저 보온병 맞아요. 저 빨간 알라딘 보온병이 정말 맘에 들더라구요. 그래서 오늘 개시.... ㅎㅎ

라로 2015-10-14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 님~~~~~부비부비❤️❤️
무슨 책 읽으시나 또 확대해서 봤더니 줌파 언니의 책이네요!! 저도 저 책 읽고 싶어서 여기서 찾았더니 아직 출간이 안되었다는 소리;;; 아마 이태리어로 출간했나봐요?? 그러니까 번역이 안 된 건가요???ㅎㅎㅎ
암튼 머슴아들 담임이신 거에요???
바람돌이 님의 천국이 무지 부러운 1인!!^^

바람돌이 2015-10-14 23:32   좋아요 0 | URL
저도 부비부비요. ㅎㅎ
저 책이 한국어로 먼저 번역이 되었나보네요. 이태리어로 출간한 거 맞아요. 일종의 줌파 언니랑 이태리어의 연애담이라고 할까요? 영어를 비롯한 모든 외국어에 울렁증 있는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저 높은 곳의 연애담입니다. ㅎㅎ
우리 반 머스마들 역대급 귀염둥이들이라서 요즘 아무데나 자랑하고 싶은 애들이에요. 요즘 쟤들 때문에 학교가 즐겁다니까요. ㅎㅎ
 
역사 ⓔ 2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역사 ⓔ 2
EBS 역사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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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와서는 역사에 대한 콘텐츠는 어쩌면 과잉이다 싶을 정도로 넘쳐난다.

그런 콘텐츠들 속에서 역사e가 가지는 강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디테일이 가지는 힘을 한껏 밀어붙인다는데 있다.

 

역사학계의 주류적인 흐름은 거대담론으로서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있을 수밖에 없다.

즉  역사를 거대한 하나의 흐름으로 보고 그 속에서 오늘날까지 큰 영향을 끼친, 또는 당대의 주도적인 정치, 사상, 경제, 문화분야들을 연구하여 그것의 법칙성을 찾아냄으로써 역사가 오늘날과 미래를 살아가는 교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학이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담론으로서의 역사연구는 당연히 수많은 인간들이 살아가고 만들어나간 그 세밀하고도 풍부한 경험들을 놓칠 수 밖에 없다.

그것들을 가지치기하지 않고 살려두다보면 역사는 도대체 뭘 얘기하자고 하는지 알 수없는 난해한 덩어리자체가 되버릴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버려진 것들, 작은 것들이 모여서 인간의 삶의 풍부함을 만들어낸다는 사실 또한 분명한 진리이다.

역사는 거대담론만으로 절대 완성될 수 없다.

역사는 인간 군상들이 만들어내는 것이고, 그 수많은 인간군상들은 집단성만큼이나 하나하나의 개별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역사학계의 오랜 논쟁과 고민의 지점이기도 했다.

역사e가 위치하는 지점이 바로 고민의 지점, 이곳이다.

 

역사e 1권에 이어 2권에서도 역사e는 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실들을 발굴해내고 그것을 기존의 역사적 흐름과 접목해내고 그것의 의미를 되살려낸다.

 

1부에서는 주류역사에서 버려졌던 많은 사람들을 복원해내고 있다.

조선시대 주류담론을 생산해내는 것은 사대부 지식층들이었지만 그들 역시 그것을 유통시키는 존재가 없었다면 존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통자로서의 책쾌를 다시 이곳에 불러낸다.

노비 출신의 시인 정초부(초부는 나뭇꾼이란 뜻이니 제대로 된 이름으로도 불리지 못한 존재다)는 그의 시를 짓는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평생 양반들이 '노비가 시를 짓다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지?'라는 결국 구경거리의 신세 이상을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그런 그의 속내는 한 편의 시로 전해지는데, 평생을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시짓는 노비로 대접받아야 했던 시인의 씁쓸함이 그대로 전해져온다.

 

강가에 있는 나무꾼 집일 뿐

과객 맞는 여관이 아니라요

내 성명을 알고 싶다면

광릉에 가서 꽃에게나 물으시오

 

조선 최초의 여의사인 박에스더의 삶과 그 당시로는 참 드물게도 그런 부인을 내조했던 남편 박유산의 삶도 흥미로웠다.

자신이 기르던 아이가 왕이 되었을 경우 판서보다 높은 품계를 받았던 유모의 존재

역사속에 묻혀 조명되지 못한, 그러나 동학농민운동과 의병운동의 사이를 메웠던 활빈당

조선의 장애인 인식의 일면을 보여주는 세종실록의 기록

 

"옛날의 제왕은 모두 시각장애인에게

현송(거문고를 타며 시를 엂음)의 임무를 맡겼으니

이는 세상에 버릴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세상에 버릴 사람이 아무도 없듯이, 세상에 버릴 역사와 삶이 아무것도 없다하겠다.

 

2부에서는 사라진 것들을 되살리는 노력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실학자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역사시간에 시험용으로 이름만 외웠던, 그래서 어떤 가치가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만들어진 책인지 알려지지 않았던 그 책을 복원해낸 사람들. 그리고 실학자 서유구를 오롯이 오늘에 되살리고 있다.

다른 실학자들이 제도의 개혁을 주장할 때 서유구는 밥먹고, 씨 뿌리고 거두고, 땀흘리는 일상에서 개혁은 일어난다고 보았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바지를 걷고 밭을 갈고, 꽃을 가꾸고 옷을 지어입으며 이 책을 완성하였다.

온갖 농사와 의식주와 건강법, 일상생활의 모든 면을 망라한 이 백과사전은 내용의 방대함에 국가기관에서도 번역을 포기했는데 40여명의 소장학자에 의해서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번역해낸 학자들이 어쩌면 서유구의 정신을 제대로 이어받은 이들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일본의 군용모피를 만들기 위해 거의 멸종되어진 우리 시골마을의 삽살개를 다시 살려낸 사람들,

일본의 공업용 원료로 사용될 소금을 대량생산하기 위해 밀려난 우리 전통 소금 자염. 너무도 쉽게 다들 천일염이 전통소금이라고 생각하지만 노인들을 찾아 묻고 물어 원래 끓여서 만들던 자염의 제조법을 되살린 사람들

되살려낸 것 그 자체도 소중하지만 잊혀지고 사라지는 것들을 되살려내는 사람들의 마음과 노력은 또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2부 마지막은 야스쿠니신사와 도쿄전범재판에 대한 이야기다.

이것은 2부의 소제목에는 어울리지 않는듯 보이지만 우리가 잊어가고 있는 것들, 하지만 아직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전쟁의 신으로 또는 일본을 위해 희생한 일본인으로 둔갑해버린 조선인 강제징병자 2만 1000여명.

우리가 잊는 순간 그들은 그 억울함의 공간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있어야 할 곳은 야스쿠니 신사가 아니라 그들의 고향 땅임을 잊지 말고 지속적인 반환운동을 추진해야 한다.

 

3부는 시대의 맥박, 살아있다는 표현으로 민족의 위기를 극복해냈던 순간들을 되살린다.

임진왜란 당시 초기의 열세를 뒤집어낼 수 있었던 조선의 화약기술의 발전과 비격진천뢰

의성김씨 명문가 종손으로 태어나 한평생을 파락호로 살면서 집안의 전 재산을 거덜낸 줄 알았으나, 그가 죽은뒤에야 밝혀진 진실은 그 많은 돈을 일제의 눈을 피해 독립운동자금으로 보낸 애국지사였다는 것. 독립운동의 역사에 김용환 그 이름 석자를 조용히 올려본다.

시집에 가져갈 장농값마저 빼앗아가버려 평생 시댁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 했던 딸의 시는평생 원망스러웠던 아버지에게 시를 쓴다.

 

................

그러면 그렇지 우리 아배 참봉 나리

내 생각한 대로, 절대 남들이 말하는 파락호 아닐진대.....

 

 

어쩌면 그 따님마저 이토록 의연한지...

평생의 원망을 저 하나로 날려보낼 수 있는 의연함이 명문 집안의 가풍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그와 함께 너무 평범하거나, 너무 작거나, 너무 사소해서 잊혀진 6264인의 독립운동가들을 오늘의 역사에 불러내본다.

집을 나간 장부는 뜻을 이룰때까지 살아돌아오지 않는다면 2개의 폭탄을 쥐고 상하이 홍커우공원으로 향했던 윤봉길의사의 마음과 6264인의 잊혀진 독립운동가의 마음이 다르지 않음을 오늘 다시 깨닫는다.

 

역사e가 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6264인의 독립운동가를 살려내는 것.

너무 사소해서 작아서 평범해서 우리 역사에서 잊혀진 것들. 하지만 그것들을 전체로서 오롯이 살려낼때만이 기존의 역사의 뼈대에 살이 붙고 근육이 붙고 피가 흘러 제대로 온전히 바라봐줄 수 있는 것들. 이런것들을 살려내는 그 첫걸음.

이것이 역사e가 하고자 하는 것, 역할이 될 것이다.

 

때때로 방송을 의식한 과장이나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도 보인다.

예를 들면 17, 18세기의 조선은 폐쇄된 나라라는 인상을 주지만 실상은 이미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외국어를 가르치고 외교관을 배출하는 시스템을 확보하고 있었으므로 폐쇄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라는 서술의 경우이다.

물론 조선은 역관을 국가에서 주도하여 길러내고 있었고 이들이 외교에서 일정 역할을 담보한 것은 부인할 수없는 사실이지만, 그것이 조선의 지배구조나 개별정책이 아닌 조선의 외교정책의 기본틀을 바꾸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그 시대 조선의 결정권을 가진 것은 사대부이지 역관이 아닌 것이다.

 

또한 조선의 장애인정책을 설명하는 부분에 있어 정조때의 재상이었던 체제공을 시각 장애인으로 표현하고있는데 이는 얼핏보면 두 눈이 모두 안보였다는 식으로 오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런데 체제공의 장애는 사시이다. 체제공의 초상화를 보면 그가 사시였던걸 알 수 있는데, 이 정도의 장애로 아무 부연설명없이 시각 장애인이란 표현을 쓰는건 지나친 과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방송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하지 말자.

실수라거나 잘못알았다면 고치면 그만이지만 방송효과를 노린 의도된 과장이라면 이 자체로 역사왜곡이 될 수 있다.

어떤 목표를 향한 과장, 왜곡은 항상 그 부작용이 더 컸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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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 세계사 3 - 로코코의 여왕에서 신의 분노 흑사병까지, 화려하고 치명적인 유럽 역사 이야기 풍경이 있는 역사 3
이주은 지음 / 파피에(딱정벌레)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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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뒷표지에 보면

 

"역사를 이야기 형식으로 가르친다면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다." - J.R. 키플링(정글북 작가)"

 

이 책의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선택한 출판사의 선전문구이다.

아 근데 나는 이 한 줄의 글이 어찌나 거슬리는지....

영국인 키플링이 어떤 맥락에서 저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저 말을 한 키플링이 역사를 제대로 교육받은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키플링은 아주 견고한 제국주의자의 논리로 무장하고 그 논리를 문학으로 전파했었다.

 

         백인의 의무    -키플링-

백인의 의무를 다하라

너희가 가진 최정예를 파견하라

용사들은 쉽게 못 돌아올 것이니

새 백성들은 교화할 일이 너무도 많은 탓이라

무력도 불사해야 하리라

참으로 미개한 원주민들,

막 포획되어 아직 야수와 같은

사납고도 유치한 이 무리들에게는

 

 

식민지 경험을 한 우리는 키플링이 말하는 바 미개한 원주민들에 속했다.

제국주의자들의 최정예 군대에 의해 무력을 통해서라도 교화를 받아야 하는....

출판사가 어떤 의도로 저 문구를 광고 문구로 선택했는지 그 의도는 알겠으나,

이 의도가 읽는 독자들에게 과잉 해석되어 마치 지금 학교의 역사교육이나 어린 시절의 역사교육이 재미가 없어서 내가 역사를 못했다는, 그래서 역사교육이 이렇게 재밌는 이야기를 통한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로 귀결되어버리는 걸 자주 목격했다.

물론 이것은 출판사의 본래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본래 의도와 달라지는 일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야기라는 형식 또는 요즈음 유행하는 말로 스토리텔링은 결국 역사교육의 방법론일 뿐이다. 효과적인만큼 한계도 분명한..... 

방법론을 본질적인 내용으로 치환해버리는 오류를 조장한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건 지나치게 과민한 반응일까?

 

거창하게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사실 하고 싶은 얘기는 별게 아니다.

이 책은 역사를 소재로 한 이야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역사'가 아니라 '이야기'이다.

그냥 재밌는 이야기... 더더구나 저자의 입담과 글솜씨가 좋아서 상당히 재밌게 읽히는 이야기.

어릴 적 할머니같은 어른들에게서 귀를 쫑긋대며 듣던, 또는 몇권 안돼서 아끼고 아끼며 읽던 동화책속의 이야기들.

이야기들은 재밌게 읽으면 된다.

이 책의 저자 역시 특별한 의미부여를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즐겁게 읽어 달랬다.

쓸데없이 과도한 의미무여를 할게 아니라는거다.

 

실제로 이 책을 읽는 건 꽤나 즐거웠다.

'스캔들'이란 말 자체의 사전적 의미가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이지 않은가?

원래 무난하고 도덕적인건 재미가 없다.

얘기 중에서도 뒷담화가 재미로는 최고다.

세계는 넓고도 오래됐으니 웃기고, 슬프고, 부도덕하고, 충격적인 인물들, 사건들은 넘쳐난다.

뒷담화를 할 소재가 무궁무진하다는거다.

그들의 사생활을 엿보고 본격적으로 뒷담화를 해보는건 재미의 영역만큼은 확실히 보장한다. 물론 최소한의 말솜씨는 있어야겠지만....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도 이야기꾼을 잘못 만나면 얼마나 썰렁해지던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저자인 이주은씨는 상당히 숙련되고 세련된 이야기꾼이다.

걸쭉한 입담은 아니지만 조근조근 맛깔나게 말을 버무릴줄 아는 이야기꾼이다.

 

또한 책속 각 장의 부제들을 보면

'합스부르크 가문, 악마를 낳다' '여왕의 연인, 그리고 슬픈 부인', '오스만 제국의 올드보이', '왕의 자리를 탐낸 꽃미남'......

이런 걸 선정적이라 하던가?

이런 제목들 치고 실제 내용이 부실하지 않은 경우가 드문데 의외로 이 책은 내용도 상당히 충실한 편이다.(덕분에 벌써 3권까지 나왔고 나 역시 1-3권을 다 읽었다)

이런 글들의 특성상 전체적인 내용에서 논쟁이 될 수 있는 부분은 모두 빼거나 ~카더라 식으로 소개하는 정도에 그치면서도 필요한 자료나 증거들은 성실하게 제시하고 있다.

즉 이야기의 설득력을 높일 수 있는 자료들을 잘 수집하고 버무려놓았다.

또한 흑사병의 전파과정이나 이유들, 마녀재판의 이야기, 검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렸다는 조지 카버의 일생 같은 이야기는 선정성과 상관없이 생각해볼 거리들을 제공하여 약간의 지적 만족감을 느끼게도 한다.

 

이정도면 좋은 이야기책이라고 할만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괜히 역사책이라고 우기지 않는다면 그냥 역사를 소재로 잘 만든 이야기책으로 읽는다면 충분히 즐거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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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9 1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14-12-09 23:28   좋아요 0 | URL
우와 돌바람님 정말 오랫만이죠. 뭐 제가 게으르고 무심해서인지라 죄송하기만 해요. ㅠ.ㅠ
잘 지내시죠? 오랫만에 들어와서 여러분들이 그래도 잊지 않고 이렇게 인사해주시면 너무 반갑고 또 한편으로는 죄송하고 그래요. ㅎㅎ
집 주소는 그대로예요. 늘 게으른 저인지라 이사같은 어려운 일은 못한답니다. 반드시가 아니면요. ^^
자주 들를게요.

바람돌이 2014-12-12 09:45   좋아요 0 | URL
돌바람님 정말 감사하게 책 받았어요. 어젯밤 늦게 집에 들어갔는데 책이 와있더라구요.
예전에 등단하셨다는 얘기는 잠시 들었지만 이후 전태일 문학상까지 받으신지는 정말 몰랐어요. 의미도 큰 상이잖아요. 제 이름을 넣은 사인본 책은 진짜 감동이에요. 이런 훌륭한 작가님과 아는 사이라니, 제 자랑거리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

귀한책 잘 읽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서재를 막아놓으신건가요? 님의 서재로 들어가지지가 않네요.
또 하나 따로 써주신 타이프체 편지는 진짜 타이프인가요? 아님 새로운 글씨체?
오랫만에 타이프 글씨를 보니 옛날 생각이 나더라구요. ^^
 
역사 ⓔ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역사 ⓔ 1
EBS 역사채널ⓔ.국사편찬위원회 기획 / 북하우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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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e의 인기에 힘입어 EBS에서 역사e를 만들었다.

지식e만큼의 임펙트에는 조금 미치치 못하는듯 하지만, 자료로 쓰기좋아 관심있게 보고 있다.

결국 지식e와 같은 컨셉이다.

 

숨은 인물과 사건을 발굴하고, 뻔해 보이는 사건을 뒤집어보고, 낯설게 하고 그속에서 새로운 시선을 만드는 것

지식e나 역사e가 기여하는 바는 바로 이런 면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식e나 역사e에 열광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고....

 

역사e는 독립운동가 이회영으로 시작한다.

인상적인 시작이다.

 

 

 서른 살 청년 이회영이 물었다. "한 번의 젊은 나이를 어찌할 것인가?

 예순 여섯 살 노인 이회영이 답했다. "예순 여섯의 '일생'으로 답했다. (18 -19쪽)

 

 

조선의 유서깊은 양반가였으며 떵떵거리는 부자였던 이회영 일가는 일제에 의해 주권을 잃어버리자 집안의 재산을 정리해 간도 삼원보로 떠난다. 집안의 6형제가 함께 떠났으니 집안의 가풍을 짐작할만하다.

이 집안의 돈이 간도에 독립운동기지를 만들었고, 신흥무관학교를 만들어 무수히 많은 독립군을 배출해냈으며 상해임시정부에 쓰이고.... 돈만이 아니다. 함께 간도로 떠난 6형제 중 해방 이후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건 다섯째였던 이시영 한 사람뿐이었다.

예순 여섯의 '일생'으로 답했다라......

얼마나 당당하고 오만한 자신감인가?

하지만 이회영이라면 수긍이 간다.

40대에 가진 모든 것을 바쳐 독립운동에 투신하고, 개화적인 양반에서, 계몽운동가로, 50대에 아나키스트로 자신의 사상을 새롭게 정립해나가며 민족의 독립을 위해 전생을 바친 사람의 삶 자체가 답이 될 수 없다면 무엇이 답이 될 수 있겠는가?

나이 50에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고 온몸을 바쳐 투신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범인의 경지를 벗어나는 것이리라....

내 나이 60은?

음.... 생각하기 싫다......`

 

 

 

 

 이부자리 개기, 아침인사, 요강비우기, 집안청소.... 할아버지의 시중을 들며 익히는 바른 습관

 단정한 옷차림, 바른 몸가짐, 남을 대할 때의 예의범절... 할아버지를 보며 깨치는 '선비'의 덕목

 봇짐장수, 일가친척, 방랑객... 사랑채에 드나드는 사람들, 사랑채에 앉아 듣는 '세상 공부'

 ........

 할아버지가 손자를 직접 가르치는 최고의 교육법 '격대교육'

 

 

바쁜 부모를 대신해 세대를 건너뛰어 조부모를 통해 이루어지는 가정 교육.

16세기의 사대부 이문건은 손자를 기른 일종의 육아일기 <양이록>을 남긴다. 사화에 휘말려 귀양살이를 하던 이문건이 유일하게 남은 혈육인 손자를 기르면서 쓴 육아일기다.

손자는 뜻대로 자라주지 않는다.

일기의 마지막은 "할아버지와 손자 모두 실망하여 남은 것이 없으니 이 늙은이가 죽은 후에나 그칠 것이다. 아, 눈물이 흐른다"로 맺어진다. 대충 보니 이 때 손자가 딱 사춘기다. 부모 모두 잃고 혼자 남아 귀양살이 하는 할아버지 품에서 자란 손자의 사춘기가 얼마나 극심했을까? 근엄한 성인의 이미지 밖에 없는 율곡 이이도 사춘기때 새어머니와 맞지 않아 가출을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자식은 부모의 모습을 닮는다. 아니 조선에서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닮았을까?

이후 손자는 할아버지의 뜻대로 과거에 급제하지는 못하였지만, 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키고 그에 대한 상도 당연한 일이었다며 사양했단다.

결국 부모 또는 조부모의 삶이 자식의 본보기인 것이다.

아이들이 크면서 진짜 사는게 만만찮다. 잘 살아야 한다. 내 아이가 올바른 삶을 살게 하고싶다면.....

 

 

 

 나는 야스쿠니 신사 구석에서 천덕꾸러기처럼 서 있는 조선 비석을 발견했다.

 .........

 강제로 빼앗긴지 꼭 100년이 되던 해

 "남과 북은 일본으로부터 북관대첩비를 반환받기로 하고 이를 위한 실무적 조치를 취하기로 하였다. (제15차 남북장관급 회담 공동보도문)

2006년 북관대첩비는 원래 있던 자리에 다시 세워졌다.

 

 

 

오랫만에 열릴 예정이었던 남북당국 회담이 결국 무산되었다.
예상한바라 하더라도 안타까운건 어쩔수 없다. 상대에게 책임을 돌리는 공방전, 대화의 의지 자체가 없으면서 책임은 피하고 싶은 작태는 가소로울뿐이다.

 

1592년 임진왜란, 일본은 부산에 상륙한지 겨우 20일만에 서울을 함락시키고 60일만에 평양을 함락시킨다.

당시 서울까지 가는 길이 급하게 걸어가면 20일정도가 걸렸던 걸 감안하면 말이 안되는 속도다.

이러한 전세를 뒤집은 것은 이순신의 해전과 곳곳에서 일어난 의병들이었다.

함경도로는 한번도 진 적이 없어 전쟁의 신이라 불리던 가토 기요마사의 부대 2만 2천이 진격해온다.

의병장 정문부는 다른 의병부대와 곳곳에서 연합작전을 벌이며 일본군을 괴롭힌다.

이 책에서는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부대 2만 2천 VS 정문부가 이끄는 의병 200 이라고 하지만 이건 엄밀히 말하면 과장이다.

함경도 지역 곳곳에서 일어났던 전투를 통틀어 북관대첩이라 하는데 2만2천대 200이라고 하면 마치 전면전을 벌인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전면전은 불가하다. 정문부의 의병부대를 비롯한 여타 의병부대가 상황에 따라 연합해가며 기습전을 벌였던 것으로 보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그럼에도 가토 기요마사의 정규군을 맞아 싸워 결국 그들을 패퇴시키고 함경도를 수복했다는 것은 엄청난 공적임에 틀림이 없다.

 

바로 이 북관대첩의 공적을 기록한 것이 북관대첩비, 정식명칭 '조선국함경도임명대첩비'이다.

그런데 이 비석이 1905년 러일전쟁 중 북상하던 한 일본장교에 의해 "이것은 일본역사의 수치다"라는 선언으로 강제로 떼어져 일본으로 건너가 결국 야스쿠니 신사 구석에 내팽개쳐지게 된 것이다.

 

1979년부터 한국정부는 북관대첩비의 반환을 일본에 요구하였으나 난항을 거듭하다가 2000년대 들어 남북공동외교활동에 의해 결국 2005년, 강제로 빼앗긴지 꼭 100년만에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남북이 같이 함으로써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겠는가?
북관대첩비의 글을 읽는 날, 남북회담의 무산이 더욱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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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3-06-13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께 인사를 드린적이 있는 지 모르지만 이렇게 다시 뵙게 되어 넘 반가와요!!!!^^
이 책은 저도 세실님께 받아서 갖고 있는데 [린 인] 다 읽고 읽어야겠어요~~~.^^

바람돌이 2013-06-13 14:2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시아님. 음... 저도 인사를 드린 적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시아님 서재 가서 해든이란 이름을 보니 분명 인사를 했던듯해요. ^^
닉네임이 원래 시아님이었나요????
하여튼 반가워해주셔서 감사해요. ^^
 
<운명의 날>을 리뷰해주세요.
운명의 날 - 유럽의 근대화를 꽃피운 1755년 리스본 대지진
니콜라스 시라디 지음, 강경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9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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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쓰여진 한 권의 역사르포!
1755년 11월 1일 기독교 최고의 축일 만성절 신앙심 돈독한 수많은 이들이 교회에서 예배를 보던 시간 - 리스본에 대지진의 재앙이 일어난다.
(만성절이 뭔지 몰라서 찾아봤다. 켈트족의 새해 11월 1일에서 유래해 기독교에 흡수된 축일, 모든 성자들의 날이란다. 그 전날 10월 31일이 할로윈데이고...) 

<운명의 날>은 바로 이 날이 포르투갈의 중세가 끝나고 근대가 시작되었다고 얘기한다.
역사에서 근대의 시작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사실 참 어려운 문제인데, 포르투갈은 이렇게 자연재해때문에 근대의 시작을 아주 명료하게 설정할 수 있다니... 그것도 기이하다면 기이하다. 
요즘 같은 시대에도 엄청난 자연재해 앞에 사실상 사람들은 속수무책이다.
시대가 거슬러 올라갈수록 당연히 더 심할테고 때로 자연재해는 한 사회를 완전히 파괴하거나 완전히 바꿔놓기도 한다. 

포르투갈이란 나라는 오늘날 유럽내에서는 경제적으로는 뒤처진 편이다.
하지만 한 때는 이 나라도 엄청난 부를 누렸다 .
교과서에서 배웠던 항해왕자 엔리케의 아프리카 서해안 탐험, 그리고 바스코 다 가마의 희망봉 발견 등으로 인도항로를 가장 먼저 선점했던 국가이니 말이다.
당대 동양에서 생산되던 향료는 같은 무게의 금과 바꾸어질 정도로 엄청나게 수지가 맞는 장사였다.
거기다 신대륙 브라질에서 들어오던 금, 은까지.....
그렇다면 한때 서구유럽의 아시아, 아메리카 침략에 가장 첫 출발점에 서 있었던 이 나라가 이후 다른 유럽 나라들에 그니까 영국, 프랑스 등에 오히려 뒤처지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나치게 많은 부당이익, 상업적 이익은 오히려 이 나라의 발목을 잡게 된다.
즉 다른 나라들이 후발주자로서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산업혁명으로 자국 내의 산업을 발달시키고 신흥부르조아지를 성장시키며 근대사회를 향한 도약을 준비하고 있을때 포르투갈은 여전히 중세에 머물러 있었다.
책은 이러한 포르투갈의 역사를 아주 잘 정리해놓고 있다. 

그런 포르투갈에 근대국가를 향한 도약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대지진이었다는 것은 역사의아이러니라 하겠다.
대지진 이후 망연자실한 왕실과 귀족들을 대신해 복구과정을 주도한 것은 재상으로 임명되었던 폼발 후작 - 카르발류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지진으로 파괴된 리스본의 복구 사업을 추진하면서 이를 통해 구귀족세력을 약화시키고, 특히 포르투갈을 중세에 머물게 하는데 가장 혁혁한 공헌을 하고 있던 카톨릭세력을 제거한다.
그리고 노예제의 철페(식민지인 브라질은 당연히 제외다) 유대인이나 종교간 차별을 없애고 모든 포르투갈 백성에게 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한 마디로 근대 포르투갈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실행한 인물, 유럽의 최신 사상인 계몽사상을 포르투갈에 접목시켜 실현하고자 한 인물이다.
당연히 그에 대한 저항세력이 많을 수 밖에 없다.
구귀족세력과 카톨릭세력의 반발이 얼마나 치열했겠는가?
그 반발에 대한 카르발류의 대응은 철저한 전제군주제의 확립을 통한 절대적인 탄압이다. 

여기서 카르발류의 모순점이 드러나게 된다.
계몽사상을 받아들이고 포르투갈의 근대화를 이루고자 했지만 그의 정치체제론은 절대군주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절대군주제를 통해 그의 이상을 이루고자 한 것.
근대사회는 일시적으로 절대군주제를 통과하지만 결국은 모순이 드러나고 대립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영국이나 프랑스같은 사회는 그런 대립이 시민혁명을 통해 폭력적으로 해소되고 정리되게 된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그런 시민사회의 성장에 따른 자연스런 근대로의 이행과정을 생략하고, 카르발류라고 하는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에 의해 강제 이행되고 있다.
결국 사회 내부에서 카르발류를 지지해줄 수 있는 확고한 기반세력이 부재하고, 따라서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왕에게 전적으로 기대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것.
결국 이런 상황은 왕의 죽음과 함께 카르발류의 전격적인 몰락과 구체제로의 너무나 쉬운 복귀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카르발류라는 이 인물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책 저자에 의하면 그런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대재앙으로부터 수도 리스본을 구하고 재건한 포르투갈의 영웅적인 인물로 기운듯하다.
그렇다면 그 위기를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카르발류가 저지른 수많은 정치적 보복과 음모들, 그리고 누구든 저항하는 자는 가리지 않고 국왕에 대한 반역으로 강력처단했던 공포정치는 어떻게 봐야 하는 걸까?
중세에서 바로 근대를 강제 도입하고자 했던,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리라 확신했던데서 그는 그가 살았던 포르투갈이라는 사회를 벗어날 수 없는 인물이 아니었을까?  
그가 뛰어난 정치인었던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한 시대의 영웅으로까지 격상될 수 있을지는 사실 의문스러운 것은 이런 면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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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8-26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르발류에 대한 문제의식은 계몽적 전제군주 모두에 대한 문제의식이기도 합니다.매우 좋은 글인데 댓글이 하나도 없고 추천도 없어서 아쉬운 마음에 글 남깁니다.

바람돌이 2009-08-27 01:02   좋아요 0 | URL
근대를 지향했던 중세의 군주들, 결코 중세의 특권들을 놓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던 이들이죠.
매우 좋은 글이라고 노이에님이 말씀해주신 것만으로 저는 오늘 하루 뿌듯할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