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를 따랐던 젊은이들 가운데는 과격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극우 보수의 선봉대 또는 돌격대라고 할까? 이들 중 일부는 반탁운동의 선두에 섰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청부 살인 업자들이었던 것 같다. 시키는 사람이 좌익만 아니라면, 누구든 돈만 준다면, 그리고 시후 신분만 보장해준다면,
암살을 실행할 수 있는 사람들,
- P113

 그래도 여기까지는 괜찮다. 최소한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다. 문제는 경찰의 세 번째 특징이었다. 바로 전국 방방곡곡에서 경찰이 극우 테러 청년단과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경찰 문제가 불거져도 미군정은 친일 경찰들을 버리지 않았다. 왜? "반탁운동 세력의 쿠데타 시도는 경찰이 군정에충성하는 쪽으로 남음으로써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었다. 경찰만이 유일하게 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버치 문서 Box 3) - P131

미군정은 정치적 사안에 관계없이 자신들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경찰밖에 없다고 믿었다. 1945년 12월 30일 군성청을 마비시켰던 반탁운동 세력의총파업에서 경찰만이 동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군정은 가장 충성심이강한 경찰이 있기에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을 제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의 운영도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 P132

친일 경력의 경찰들은 이승만과 함께 김구를 그들의 경력을 은폐할 수 있는 지도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미군정 때 각 지방의 경찰서에는 이승만과김구의 초상화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서울의 미군정청에서 지방 경찰서에두 사람의 초상화를 붙이지 말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조상화는 1948년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지방 경찰서의 중앙 벽면에 붙어 있었다. (코넬리 소령에게 보내는 1947년 9월 10일부터 26일까지 전라남도, 전라북도 충청남도에대한 정치적 조사」, 1947년 9월 29일, 버치 문서 Box 2) - P133

2개의 캠프로 나뉘어 있다. 군정을 지지하는 것은 우익, 아닌 쪽은 러시아에 의해 이용당하는 쪽이다. 어느 쪽도 사회 개혁이나 경제 재건 또는 정치적권리나 자유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있다. 항상 권력만을 생각한다. 서울과 평양의 정당 본부는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을 시위에 동원하려고 하고 있으며,
상명하복의 구조를 갖고 있다. 노동자나 농민의 복지에 대해서는 신경쓰지않으면서 소수 지도자의 특권과 권위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예외적으로 아주 잘 교육받은 지식인들이 있는데, 이들은 담장 위에 앉아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그들 중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현명한 사람들이지만, 군사정부를 신뢰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한국 상황에 대해서 반대 의사를 갖고 있으면서 위험을 느끼고 있다.
- P134

최근 많은 연구자들이 제국에 편입되면서 나타났던 식민지 근대화론에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것이 왜곡되었든, 아니면 강제적으로 주입되었든 간에 그 결과가 ‘근대‘와 ‘자본주의 시장‘ 이라는 모습으로 현대 한국 사회의 기원을 형성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 제국의 한 모퉁이에서나마 식민지적 근대의 단맛을 느낄 수 있었던 대도시, 그리고 전통 시대의 모습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못한 지방 사이의 차이가 해방 후 한국 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구조에 미친 영향은 전혀 주목하지 않고 있다.
- P141

이러한 사회구조하에서 서구식 민주주의와 보통선거제도를 적용한다면,
결정적인 키를 쥐는 것은 비도시 지역이 될 수밖에 없다. 도시보다 비도시 지역에서 더 많은 대표를 뽑을 수밖에 없는 정치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당시 제헌헌법에서는 대통령중심제임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들의 투표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특이한 형태의 정부 구조를 규정하고있었기 때문에, 더 많은 수의 국회의원 선출을 좌우할 비도시 지역의 중요성은 그만큼 더 큰 것이었다. 1952년 개헌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로 바뀐 이후에도 도시보다 비도시 지역에서 선출되는 사람들의 표심이 더 중요할 수밖에없었다.
- P142

니콜스는 이승만의 지원으로 어떠한 간섭도 받지 않는 첩보 부대를 오류동에서 창설했다. 니콜스의 부대는 한국전쟁 이전부터 공산주의 조직들을 파괴하는임무를 맡았다. 그는 1947년 이후 남조선노동당 지도자들의 체포와 심문 그리고 고문, 1949년 한국군 내 공산주의자들의 숙청과 처형, 그리고 북에서내려오는 사람들을 스파이로 훈련시키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러한 니콜스의 활동이 청년단과 연결되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있다.
- P156

건의서를 작성한 권태석은, 테러는 좌익이 아니라 우익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우익이나 중립적인 사람들 그리고 기독교 장로까지도 테러의 대상이되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친일 지주가 청년단을 통해 테러를 자행하는 것에 대하여 경찰의 지원 혹은 묵인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좌익 척결이라는 명분하에 자신의 사적 이익과 감정에 따라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체포하고 박해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농민들이 좌익을 옹호하도록 만드는 상황을 초래했다.
- P167

일부 연구자들은 미소공동위원회나 좌우합작위원회가 모두 미군정의
"쇼" 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찍부터 소련과의 타협보다 미국에 우호적인세력을 중심으로 분단 정부를 세우려고 한 것이 미국의 정책이요, 미군정의계획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버치의 문서 속에 나타나는, 미소공동위원회에대한 미군정의 대처는 생각보다 더 적극적이었다. 단지 하나의 쇼가 아니라실제로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안에 있는 조선임시정부의 수립을 위해 구체적으로 추진해 나가고 있었던 중이었고, 그 와중에 여운형이 암살된 것이다.
- P217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지 몇 개월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열강들이 한반도에 신탁통치를 실시하겠다고 한 것은 분명 우리 민족에게 큰 충격이 되었고,
응당 신탁통치 반대를 위한 거족적인 운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만약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결정이 헌장의 초안에 나타난 것과 같이 빠른 시간 내에 한국의 정당 ·사회단체 대표들로 구성되는 임시정부의 수립으로 이어지고, 통합된 임시정부하에서 미군과 소련군의 철수가 조기에 이루어질수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모든 정치 세력들이 이에 협조했다면, 한반도의 운명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1955년 분할 점령과 신탁통치를 끝내고 독립한 오스트리아와 유사한 운명이 되었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도 가능하지않을까?
- P227

 일정한 정도의 세금을 낼 수 있거나 해당 지역의 유지들만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었다. 1946년 중반 이후 지방에서는 이승만을 지지하는 독립촉성국민회와 청년단이 그 세력을 장악해 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간접선거를 통한 입법의원 선거 결과는 이승만을 지지하는 그룹의 압도적인 승리로끝났다. 친일 민족 반역자에 대한 처리와 농지개혁 등 해방 직후 처리해야만했던 문제를 다루는 법안이 입법의원에서 논의가 되었지만, 결국 동과되지못했던 것은 입법의원 내에서 이승만을 지지하는 그룹이 다수를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 P250

이렇게 미군정기에 형성된 구대 정치의 원형은 지금까지 계속 유지되고있다. 이러한 구태를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은 가까 뉴스였다.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안이 미국이 아니라 소련이 주도한 신탁통치안으로 알려졌다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다. 조선공산당 책임비서 박헌영이 뉴욕 타임스>의 존스톤 기자와 회견을 했는데, 이 자리에서 박헌영이 조선은 소련의속국이 되는 것을 원하고 있다고 보도되었다. 존스톤이 이승만과 연결되어있는 기자라는 점은 버치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 P281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정치 구도는 개혁과 반개혁의 구도가 되었어야 했다. 민주화를 했기 때문에 그 민주화를 막았던 사회구조를 바꾸어야 했다. 그러나 기득권 언론들은 이러한 정치 구도를왜곡했다. 개혁과 반개혁이 아니라 진보 보수, 좌우의 대립 구도가 된 것이다. 이런 구도 속에서 반개혁 세력은 청산 대상이 아니라 보수와 우익이라는모습으로 그 힘을 유지할 수 있었다.
- P282

해방 정국의 모습이 비로 이러한 정치 구도 왜곡의 원형을 보여준다. 해방후 한국 사회는 독립운동을 한 진영과 친일 세릭 간의 대립 구도가 되어야했다. 그러나 신탁통치안으로 왜곡한 가짜 뉴스들은 이 구도를 좌우 간의 대립 구도로 만들었다. 한국의 식민지화와 일본의 불의한 전쟁에 협력했던 사람들은 반탁운동을 하는 애국적 우익으로 꾸며졌다. 삼상회의 결정을 찬성한 세력은 소련의 속국이 되기를 원하는 매국 좌파로 규정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왜곡된 구도 속에서 반독립 세력은 처벌을 받기는커녕 우익으로서 한반도의 남쪽에서 주류 기득권 세력이 되었던 것이다.
-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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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자료들을 통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해보고자 한다. 미군정은 처음부터 분단 정부 수립을 추진한 것은 아니었을까?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조선에 대한 합의안은 단지 합의일 뿐 전혀 실현될 수 없는 방안이었는가? 미군정은 좌우합작위원회를 진정으로 지원한 것인가? 국내에 전혀 기반을 갖고 있지 못했던 이승만이 미군정과의 갈등 속에서도 빠른 시간 내에 한국민주당을 제치고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 P20

과거 일본 군국주의에 협력했던 인사들의 재기용에 대한 여론의 비판을 알면서도 미군정은 왜 이들을 계속 고용했어야 했는가?
- P21

이 지점에서 이승만이 내놓은 구호가 "덮어놓고 뭉치자."였다. 통일된 국가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친일 부역자를 비롯한 모든 정치 세력들이 뭉치는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좌파 정당들은 이러한 무원칙한 이승만의 원칙에 반발하면서 독촉중협으로부터 탈퇴했다. 이승만도 "덮어놓고 뭉지자."라고는 얘기했지만, "덮이 놓고는 수사에 불과했고 실제로는 중요한원칙을 갖고 있었다. 하나는 공산주의자들을 제외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위에서 "모든 한국인들이 예외없이 나를 따르기를 원한다."라고 언급했던 것은 바로 이것을의미한다. 결국 "덮어놓고 뭉치자."라는 구호는 그 앞에 "공산주의자와 나를반대하는 사람을 빼고"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했다. - P56

이승만은 1945년 10월 귀국한 이래로 통합의 아이콘이라기보다는 분열의 상징이었다. "덮어놓고 뭉치자."라고 했지만, 실상 자기에게 반대하는 사람을 빼고 덮어놓고 뭉치자고 말하는 것이었다. 자신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로 비난했다. 이승만의 주위에서 합리적인 보수주의자들이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미군정에 가장 협조적이었던 한국민주당이나 안재홍의 국민당이 모두 이승만과 일정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이승만을 통해 한국내 보수 세력을 통합하고 좌파에 대응하겠다는 계획은 더 이상 가능하지않게 되었다. 이승만을 ‘최고의 애국자‘라고 소개하면서 화려하게 데뷔시켰던 미군정의 정책은 실패로 돌아갔고, 이러한 실패는 이미 1916년 5월부터명백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말‘ 을 잘 못 쓴 것이다.
- P72

그의 최고의 약점은 다른 동료들과 협상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서 일하게는 하지만, 그들과 함께 하지는 못한다. 그는 스스로를 매우 외로운 사람이라고 자주 말해왔다. 반쯤 체면에 걸린 seemihypnotized) 사람들은 군정으로부터 환대를 받은 그에게 기꺼이 이글렸다.
그가 지금도 핵심적인 위치에 있는 것은 그의 능력 때문도 아니고, 그가 성취한 것 때문도 아니다. 단지 지금 경찰과 공무원들에게는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1947년 8월 4일, 정치고문단의 D.C. 유스(Youth)가 작성한 이승만 박사의 정치적 배경: 그의 현재 상태의 원인과 이유」, 버치 문서 3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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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무렵, 일본 정부는 미국의 일보본토 침공이 불가피해 보이는 상황이 되자 오키나와를 희생양으로 삼아 이를 저지하려고 했다. 그로 인해 발생했던 오키나와 전투는 역사적으로도 가장 잔혹한 전투로 꼽힌다. 오키나와 인구의 3분의 1에 달하는사람들이 죽었으며, 이들 중 많은 수가 집단 자살을 강요당했다. 미국이일본 본토를 침공하면 과연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미리 맛을 보여주기 위해 일본 정부가 의도적으로 연출한 집단 자살이었다.
- P506

그러나 이런 계획은 그때까지 줄곧 일본에서 권력이 작동되던 방식에커다란 위협이 되었다. 정치인들이 그동안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해 선심성 예산을 뿌리던 일을 앞으로 하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하는 정도의단순한 사안이 아니었다. 민주당의 계획이 실현되면 관료들이 그동안 사회 이곳저곳에 정치적·경제적 보호 장치를 임의로 배분해오던 재량을상당 부분 잃게 된다.
- P517

일본은 존 다우어가 미군정의 역사를 다룬 책(패배를 껴안고)에서 인상적으로 표현한 것처럼 ‘미국의 품Ameriein embrace‘에서 한 번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1980년대 말 이후로는 벗어나려는 시도를 사실상 완전히 포기했다. 요즘의 보통 일본인들은 미국에 대해 더 이상 특별한 호기심이 없다고는 해도 대체로 미국을 동경하는 경향이 있다.  - P520

일본 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하자, ‘영향력 대리인‘들은 갑자기 전례없는 새로운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때까지 이들에게 주어졌던 임무는일본 자민당과 관료사회와 재계의 지도부가 관심을 갖고 있는 어젠다를수행하는 것이었다. 이제 이들에게는 그것과 성확히 반대되는 임무가 주어졌다. 일본의 새로운 선출 정권을 깎아내리고 잠식하는 임무였다.
- P523

후쿠시마 원전을 둘러싼 문제는 알고 보면 자민당으로 대변되는 전후일본의 구조적 병폐에 그 직접적 책임이 있다는 사실, 민주당이 관료들및 미국 내에서 일본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의 반역에 가까운 행의로인해 사사건건 발목을 잡혔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정치세계에서는 모든 일이 금방 잊힌다. 일본처럼 언론이 국가 질서를 유지하는 세력을 자처하는 나라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일본의 언론은 공정하고도 절제된 보도가 아니라 특정 정치인의 결점을 대서특필해서 이슈화하는 행위를 통해 권력을 감시한다. - P554

달리 말하자면, 핵심적인 문제는 일본이 계속해서 과거를 청산하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신화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거짓 신화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동중국해와 동해 너머로부터 일본을향해 날아오는 위협과 비난이, 어떻게 대처해아 좋을지 모를 마연한 증오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아베와 극우세력이 전후 체제에 그토록 효과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제국의 망상에 사로잡힌 미국이 (때로는 무심결에) 이들을 도와주고 때로는방조했다.
- P598

사실을 말하자면 아베와 그의 무리도 진짜로 전쟁을 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전쟁이 수반하는 것들을 갈망한다. 사람들 사이의 열광, 목적의식, 명확함, 위계질서, 경의가 생겨나기를 원하고, 의심과 거리낌과 비판을 일소하기를 바란다. 이런 갈망은 그저 환상일 뿐이다. 사회전체가 빠르게 노화되고 있는 갸루와 초식남과 오타쿠의 시대에, 수백만의 젊은이가 천황을 위해 죽지 못해 안달이던 1930년대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리 없다. 아베는 그 시절의 정신 비슷한 것을부활시키지 못하면 일본이 거침없고 호전적인 중국에 맞서는 것은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중국도 물론 아베의 이런 착각을바로잡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국 또한 국가의 거대한 선전기구를 통해 일본이 모든 악의 근원이었고 지금도 그렇다는 관념을 중국 국민의 머릿속에 끊임없이 주입해 닝는다.  - P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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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둘 중 하나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는 동안 국내에서는 경제 모델을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 벌써 한 세대가 넘도록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엔저를 무기로 한 수출주도형 기업들이 무한한 자본과인력을 가져다 쓰던 경제 모델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하지만 기저에 깔린 만성적 경제 문제가 겉으로 드러날 때마다(그런 일이 과거 반복해서 발생했고 2012년 말에 또 한 번 찾아왔다) 정치 지도자들은 매번 똑같은 낡은 수법에만 의존하려고 했다. 엔화를 크게 평가절하하고, 인구가줄어만 가는 지방에 건설 프로젝트를 다시 돌려대고, 세계가 일본 제품을 더 사주기를 바라는 수법이 그것이다.  - P418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사례가 정치가 부재해도 사회가 정상 기능하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일본은 정치와 권력이 사라진 시장 중심의 사회라는 신자유주의적 환상과는 거리가 먼 국기다. 오히려 일본에서 정치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 시장을 간섭하고 동제하며 삶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정치의 존재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 P421

메이지 지도자들이 무대에서 사라진 이후로, 일본 정치에는 의심의여지 없는 명확한 통치권을 갖는 권력 집단이 존재하지 않았다. 경쟁관계에 있는 권력 집단들 사이의 분쟁에 대해 온전히 합법적인 판단을 내려줄 제도적인 절차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일본이 전혀 승산 없는 전쟁을 일으켰던 것 또한 공개적인 정치 절차가 없었던 데 그 직접적인 원인이 있다.
- P424

하지만 전후에 등장한 너그러운 형태의 질서 또한 일종의 정치 시스템을 필요로 했다. 외부 상황이 급변할 때 일본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이끌어갈 수 있는 종류의 정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이 필요로 했던 정치 시스템은 권력에 도전하는 잠재 세력들을 필요에 따라 흡수하거나 무력화할 수 있는 정치였다. 막강한 정부 부처들 사이에서 또는 그 부처들과 다른 세력들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해야 하는 정치였다.
그리고 해외 국가들에게, 일본이 그들에게 친숙한 정당과 선거와 총리와 법원과 같은 제도를 통해 운영되는 나라라고 안심시켜줄 수 있는 정치였다.
이러한 정치 시스템을 1955년 체제‘라고 부른다.
- P425

자민당은 정책을 결정하지 않았다. 누군가 정책을 결정한다면,
그것은 일본 관료가 오를 수 있는 커리어의 정점인 각 부처 사무차관들의 일이었다. 자민당의 주요 임무는 방해가 될 만한 힘을 가진 모든 주요 이해관계자가 정책을 지지하도록 매수하는 것(자민당은 야쿠자는 물론이고 PTA, 물가 인상에 반대하는 주부들의 연합까지 사회의 모든 주요 그룹과어떤 식으로든 연계를 맺고 있었다), 그리고 지배 엘리트층의 서로 다른 구성원들 사이에서 완충 작용과 중재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 P434

고이즈미의 연례 야스쿠니 참배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주변국들의 분노를 유발함으로써 얻는 실질적 이득이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런 질문은 일본 정치라는 연극무대에서 상징이 샂는 중요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 P482

무역 협의에 방해될까봐 또는 주변국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까봐 일본을 위해 순국한 가미카제비행사와 같은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못한다는 것은 많은 일본인에게받아들일 수 없는 모욕이었다. ‘전범의 위패가 함께 있다고 하는 사실도대다수 일본인의 생각을 바꾸지 못했다. 3장에서 보았듯이, 도쿄 전범재판은 ‘승자의 정의‘를 자의적으로 행사했던 일로 여겨져 그 정당성을거의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많은 일본인은 누가 전범으로 기소되고누가 기소되지 않았는가는 상당 부분 운의 좋고 나쁨의 문제였고, 실제로 얼마나 책임 있느냐보다는 누가 더 관료사회 내부의 정치에 능했는가에 따라 결정되었다고 믿고 있었다. 그렇게 믿을 만한 충분한 근거가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 P483

그러나 아베가 총리로 등극하면서 우파들은 선을 넘고 말았다. 고이즈미의 성공에 도취된 나머지 오히려 고이즈미 시절의 가장 중요한 교훈을 잊고 만 것이다. 우파의 패권 장악이라는 늑대는 개혁이라는 양의 탈을 쓰고 있어야 한다는 교훈 말이다. 아베는 총리로 취임하자마자, 고이즈미 때에도 가벼운 립서비스에만 그쳤을 뿐인 일련의 어젠다를 현실화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전후 헌법의 개정, 사과를 모르는 강한 군대, 일본 주권 체제에서 황실의 중심적 위치 인정, 1930년대 일본의 행위가서양 제국주의 및 동아시아에 무력을 통해 강요된 해외 사상 사회주의,
자유주의)으로부터의 위협에 대한 정당한 반응이었다는 견해의 보급이그것이다.
그러나 아베의 이런 어젠다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일본 국민의 대부분은 이 모든 것에 그저 당황했을 뿐이다. 그들의 삶, 그들의 고민과 너무나 동떨어진 주제였기 때문이다.  - P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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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굴레 8장 - 비즈니스

일본 기업들이 한 때 세계 시장을 지배했으나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그 지배는 끝났고, 버블경제가 무너지면서 일본의 수출형 대기업들은 약화되었다고 일반적으로 얘기하지만, 실제로 일본에서 최고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제조업체들은 소비자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부품산업, 정밀화학 등 첨단산업들의 부품이나 소재를 취급하는 기업들이 그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일본의 생산성 향상이 더딘 것은 종종 비효율적인 서비스 분야의 탓으로 여겨지곤 한다. 

일본 경제의 문제점은 잘되고 있지 않은 분야에서 잘되고 있는 분야로 인력과 자본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결여되어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효율성을 포기햇기 때문에 일본 대부분 국민의 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보장이 확보되어 왔다는 것이다. 현재에서는 효율성을 포기한 대가가 지나치게 가혹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일본 경제에 던지고 있다. 

현재의 일본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고용관행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의존도 강화, 블랙기업이라는 회사들이 정직원 자리를 주는 것처럼 가장해서 청년들을 뽑고 일정 기간후 해고를 반복하는 양태 등이다.이것이 일본 사회 내부의 종신고용이라는 고용관행을 뒤흔들면서 일본 사회가 그토록 중시하는 사회적 단결을 잠식하고 있다. 

다음으로 일본 경제의 문제점은 세계화에서 겪는 어려움이다. 해외파견 일본 회사원들은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결성하고 그 안에서만 생활한다. 현지에 있는 좀 더 현지 친화적인 다른 일본인이라는 역량을 활용하지 않으며, 현지 커뮤니티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글로버러 네트워크에 참여함으로써 집단지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박탈한다. 또한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는 자리에 외국인을 앉힐 수 잇는 포용력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외국인들은 일본의 기업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런 외국인들과 함께 일하는건 일본 기업문화의 면에서도 역시 곤혹스런 일이다. 사무라이 문화에서부터 유래된 일본의 기업문화는 자신이 속한 회사나 상사를 곤란하게 만드는 일을 하지 않으며, 일본의 엘리트 지배층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보호하기 위해 똘똘 뭉친다. 그것이 설령 엄청난 부패의 증거라 할지라도..... 

이는 일본이 실패를 인정하고 거기에 대처해나가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게 한다. 좋은 일본인은 자신의 조직, 사람을 배신하기보다는 '주주 가치'나 '공공의 선'같은 추상적인 원칙을 위반하는 쪽을 택한다. 


일본의 굴레 9장 - 사회문화적 변화

일본만의 독특한 창의성의 기원을 흔히 모순과 모호함을 참고 견디는 능력에서 찾는다. 예술 또한 같은 역할을 한다. 전후 일본문화의 상징이었던 샐러리맨은 야구나 TV프로그램같은 일본의 공식적인 문화에서는 이들의 출세에 필요한 덕목을 끊임없이 찬양하는 쪽으로 특화되었다. 그러나 만화를 포함해 좀 더 불온한 장르에서는 샐러리맨을 나약하고 무책임하며 절대 이룰 수 없는 섹스와 돈에만 관심있는 존재로 묘사한다. 샐러리맨은 스스로가 자기 목숨을 바쳐도 좋을 대의(회사)를 위해 싸우는 군인이라고 믿어야만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이 거대한 산업속 교체가능한 톱니바퀴에 불과하다는 자각도 함께 안고 살아야 했다. 이런 모슨은 일본에 속으로는 울면서 겉으로는 의연한 척하는 정서와 닿아있다. 이런 부조화는 일본 문화 전반을 규정짓고 이런 모순과 공생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점점 필수 덕목이 되어가고 있다. 

일본의 여성들에 있어 새롭게 나타난 갸루 현상이 말하는 것은 전통적으로 일본 여성들에게 요구되던 행동방식을 노골적으로 거부한다는 것에 닿아있다. 또한 전통적인 오바짱의 이미지를 깬 오바타리안이라는 아줌마 부대, 그 반대에 대형 폐기물을 뜻하는 은퇴한 남편을 가리키는 소다이고미 단어의 등장, 황혼이혼의 증가, 일본 전통적 남성상과 배치되는 초식남의 등장 등 일본 사회는 이전에 보지못했던 새로운 유형들의 인간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전통적으로 일본 남성들이 그들의 사회관계에서 가장 중시하던 동류의 남성집단(군대적 위계질서와 자기희생을 강요하던)의 의미도 변화하고 있다. 

여기에 일본의 지도층이 급격하게 쇠퇴하고 있는 것 역시 눈에 띄는 변화다. 특히 이는 후쿠시마 원전의 파괴와 더불어 전개돈 사건들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졌다. 수많은 일본인 개인은 실수나 혹은 더 큰 문제에 대해서도 기꺼이 책임지려는 훌륭한 태도를 보이지만, 이것이 조직으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조직은 실수하지 않는다. 즉 조직에서 실수를 인정하는 능력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이야기는 이런 것이다. 일본 기업들은한때 세계 시장을 지배했으나,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그 지배는 끝났다.
버블 경제가 무너지면서 일본의 수출형 대기업들은 약화되었다. - P327

대부분의 사람은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을 이 회사들이 여러 산업 분야에서 일본의 절대 우위를 이끌고 있다. 예를 들어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정밀화학 분야에서 일본 기업들의 전 세계 점유율을 합하면 70퍼센트가 넘고, 탄소섬유는 65퍼센트가 넘는다." 애플의 아이폰을 뜯어보면 일본 기업의 이름이 들어간 부품은 많지 않다. 조그맣고 화려한 기계인 아이폰은 미국에서 디자인해 설계되고, 중국에서 생산되어, 한국과타이완의 부품으로 채워진다. 하지만 이 중의 30퍼센트가 넘는 부가가치는 일본 기업으로부터 창출된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그것은이런 부품들을 이루는 핵심 소재를 일본 기업이 만들고, 이런 부품들을생산하는 공장의 설비를 일본 기업이 공급하기 때문이다. 보잉787 드림라이너에서도 일본 기업들이 창출하는 부가가치의 비중은 비슷하다. 보잉사와 에어버스사 사이의 경쟁은 유럽 기업과 미국 기업의 경쟁처럼 보이지만, 그 생산과정과 부가가치의 구조를 뜯어보면 프랑스 독일 연합과 미국 일본 연합 간의 기술구조technostructure가 정면 승부를 벌이고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 P330

일본의 비즈니스가 봉착한 문제에 대한 그간의 분석들을 보면, 일본에는 잘되고 있지 않는 분야에서 잘되고 있는 분야로 인력과 자본을 효과적으로 재배치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결여되어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 P335

비정규직들은 정규직과 사실상 똑같은 업무를하면서 월급은 그들의 반밖에 받지 못했다(일본 회사들이 정사원에게 먼 미래까지 지급해야 하는 금액을 현재 가치로 환산해 더하면 절반도 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곧 일본 산업 시스템의 충격을 흡수하며 착취당하는 대상이다. 과거에는 명목상으로만 독립법인인 중소 하청업체가 하던 그 역할을, 이제는 과로에 시달리는 저임금 비정규직이 하고 있을 뿐이다.
- P341

이러한 구조는 전후 일본에 그토록 중요했던 사회적 단결을 잠식하고있다. 안정된 고소득 직업을 장악한 소수의 귀족 노동자들이 절대다수의 저임금 노동자를 착취하는 양극화된 사회에서도 일본의 사회적 단결이 유지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P342

하지만 이 모든 성공에도 일본의 비즈니스는 세계화의 한 가지 중대한 측면에서 뒤처져 있으니, 그것은 바로 주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지위에 외국인을 앉힐 수 있는 포용력이다. 일본 회사에서 외국인의 부재는 중간 관리자 단계에서도 임원 단계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 P348

수 세기 동안 일본의 지배 계급이었던 사무라이들은 군주에 대한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충성만이 궁극의 미덕이라는 사상에 경도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일본 경제의 최상층에자리한 대부분의 기업은 3장에서 살펴보았듯이, 메이지 정부 초기에 설립되어 전직 사무라이들에게 주어졌던 회사들을 어떤 형태로든 직접물려받은 조직이다. 올림푸스의 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당시의 체계에 녹아 있던 문화적 특징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와 작동하고 있다.
일본 기업의 충실한 병사는 절대로 자신이 속한 회사나 상사를 곤란하게 만드는 일을 하지 않으며, 일본의 엘리트 지배층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보호하기 위해 똘똘 뭉친다.
- P354

그보다 아마 더 심각하면서충성·유착의 행동 규범과 직결되어 있는 훨씬 더 큰 문제가 있으니, 바로 일본이 실패를 인정하고 거기에 대처해나가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시스템은 실패 혹은 ‘창조적 파괴에 대처하는 제도적인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  - P355

한국의 기업들이 일본의 비즈니스를 크게 위협하는 세력으로 떠오른것에 대한 종합적인 설명은 환율 문제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책 한 권 분량이 필요하다. 하지만 세 가지 요소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은 확실하다.
1. 한국에는 국제화된 엘리트가 더 많다. 해외에서의 거주 경험과 영어 구사능력은 ‘한국적이지 않다‘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는커녕 한국의엘리트 계급에 들어가기 위한 필수 조건에 가깝다. 한국 재계와 학계의지도자들은 대부분 서구의 일류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일본 사회에서 지배층 엘리트가 되는 데 있어 도쿄대학 졸업장이 하는 역할을, 한국에서는 아이비리그(그리고 MIT와 스탠퍼드)가 하고 있다고 해도 심한 과장은 아니다.
2. 한국의 경제·정치 기관들은 훨씬 더 명확한 권력 구조와 뚜렷한책임 소재를 갖고 있어서, 빠르고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아이폰에 대한 반응으로 삼성이 애플을 단숨에 제치고 세계 제일의 스마트폰 판매사가 되는 동안 일본의 IT 업계 대부분이 우물쭈물하고 있던것이나, 일본 자동차 회사들의 가장 큰 수출 시장인 미국에서 현대자동차가 끈질기게 따라잡고 있는 것을 보라. 한국의 재벌들은 국내에서는소수에 의한 독재 성향으로 인해 비판받고 있지만, 누가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는지가 한눈에 명확하고, 그래서 일본 기업 대부분에 만연한 집단사고보다 저만치 앞서가는 태세를 갖추고 있다.
3. 마지막 요소는 말할 것도 없이, 한국은 실수가 허용되지 않는 위기상황에 놓여 있는 나라라는 점이다.  - P360

도쿄전력은 일본 기업들의 전반적인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축소판과도 같다. 후쿠시마 재난 현장의 수많은 도쿄전력 직원은 사고 직후 긴박했던 며칠 동안 영웅적이고, 글자 그대로 자기희생적인 행동을 보여주었다. 반면 도쿄전력의 경영진은 명백한 직무 유기를 해오고 있었고 결국 파멸적인 결과를 불러왔다.  - P365

야구나 TV 프로그램 같은 일본의 공식적인 문화가 샐러리맨의 출세에 필요한 덕목들을 찬양하고 있었던 반면,
방대한 망가(만화)를 포함해 좀더 불온한 문화 장르에서는 샐러리맨을나약하고, 무책임하며, (절대 이룰 수 없는 섹스와 돈에만 관심 있는 존재로 묘사했다. 샐러리맨들은 회사와 일을 위해 자기희생을 불사할 정도의 열정을 보여야 했을 뿐 아니라, 이것이 핵심인데, 거기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그 열정을 스스로 믿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심리28상태를 표현하는 일본 단어가 마코토誠다. 마코토는 보통 ‘진정한 sincere‘
이라고 번역되지만, 서양에서 이 단어를 쓸 때처럼 정말로 믿고 있지는않으면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죄책감과 같은 어감은 들어 있지 않다. 그 대신 일본어의 마코토에는 개인의 내적인 감정을 사회의 외부적 기대와 일치시키기 위해 강제로 끼워 맞춘다는 느낌이 있다.
- P372

 하지만 이 모든가루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특징은 전통적으로 일본 여성들에게 요구되던 행동 방식을 노골적으로 거부한다는 점이다.
- P377

일본의 문화와 사회는 오랜 세월 동성 간의 집단, 그중에서도 특히 남성으로 이루어진 집단들을 중심으로 작동해왔다. 수 세기 동안 일본 남성들은 혈연관계가 없는 다른 남성들과의 유대관계를 통해 정서적인 지지와 경제 · 정치적인 연대를 얻을 수 있었다.  - P389

하지만 이는 곤란한 문제를 일으킨다. 일본의 가장 뛰어난 강점 중 하나는 사회적 결속력이다. 단합과 상호 신뢰와 책임감에 있어 거의 전 국민적으로 통일된 의식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일본의 보통 남성들이 이제더 이상 자상하고 따뜻한 어머니의 품에서 자랄 수 없고,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을 당연시하지 않는다면 과연 이런 가치들이 유지될 수있을 것인가. 남성들만으로 이루어진 집단은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다.
결혼과 가정이라는 개념이 무너지면, 남성 집단은 다시금 지배적인 사회 조직으로 부활한다. 하지만 미래의 남성 집단은 상당수의 서구 사회에서 그랬듯 야만스럽고 무례한 형태로 변할 수 있다.  - P402

일본 관료사회에서는담당 부처의 명예와 해당 산업을 지탱하는 기업들의 안위가 일반 국민의 생명보다 더 중요하곤 하다.  - P407

수많은 일본의 개인은 실수나 혹은 더 큰 문제에 대해서도 기꺼이 책임지려는 훌륭한 태도를 보여준다. 문제를 일으키고도 나서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변호사 뒤에 숨어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미국인 다수의경멸스러운 행태는 일본에서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조직‘으로 넘어오
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 P408

이처럼 조직에서 실수를 인정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것은, 일본에서 제도적 협약이라는 것을 둘러싼 신성함에 가까운 아우라에 그 뿌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2장에서 도쿠가와 막부가 일본의 제도적질서를, 이의 제기가 불가능한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기울인 의도적인 노력에 대해 얘기했다. 이들은 신성한 존재가 신성을 대신해 제도적 질서를 만든 것이 아니라(왕권신수설), 제도적 질서가 신성 그 자체의 발현인 것처럼 여기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제도의 신성성은 막부가붕괴된 이후에도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메이지 정부에 들어서는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 민족주의 국가를 건설해 전 국민을 동원하는 데 필수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메이지 정부는 그렇게 해서 홉스주의적 약육강식이 난무하던 19세기 말의 세계질서에서 독립국가로 살아남으려고했다.
- P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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