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주제인 ‘젠더 갈등‘과 ‘세대갈등‘도 상당 부분 ‘공감의 게임‘이다. 흥미로운 건 이 갈등들엔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 사이에 소통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소통 없는 ‘젠더 갈등‘과 ‘세대갈등‘에 소통의 싹이나마 틔우기위해서라도 다정한 편파성보다는 냉정한 공정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달리 말하자면, 다정한 편파성을 양산해내는부족주의에서 탈출하는 게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 P9

조고은이 지적한 두 가지 오해는 어떻게 볼 것인가?
첫 번째 오해와 관련, 나는 한국에선 페미니즘 운동이 너무과도한 게 아니라 운동이 겨냥하는 타깃이 정확하지 않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작 싸워야 할 대상(페미니스트 코스프레‘만 하면서 기득권을 지키려는 기성세대 남성)은 놓아두면서, 이대남에게 부담이 집중되는 변화만 추구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대남이 그런 전략에 반발하는 걸가리켜 백래시라고 부를 수 있을까?
두 번째 오해와 관련, 나는 페미니스트들이 백래시로보는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에선 조고은의 생각에 동의하지만, 그 주목의 목적과 내용은 소통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모색 역시 투쟁이다.
왜 투쟁을 타도 위주로만 여겨야 한단 말인가? - P33

‘유리천장‘이라는 말이 시사하듯이, 일자리 영역에선 사회전 분야에 걸쳐 상층부로 올라갈수록 여성 차별이 심해진다. 은밀하게 암묵적으로 이루어지는 차별인지라 정면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차별해소 방안이 장기적·포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세대간 불공정을 유발하는 경향이 있다. 여성 차별로 인한 수혜는 기성세대 남성이 보고 있지만, 그 차별을 해소하겠다며 이대남에게 집중된 대책을 내놓고 있는 게 이대남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있는 것이다. - P34

사실 그간 이대남 관련 논쟁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전체 성별 임금 격차의 책임은 이대남이 아닌 기성세대에게따져 물어야 할 것이었다. 여성의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이 나이가 들면서 벌어지는 성별 임금 격차의 요인이기 때문이다.  - P50

상징 투쟁과 진영 전쟁은 모든 문제를 흑백 이분법으로 환원* 시킨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무엇이건 상징이 되면 타협이없는 ‘올인 게임‘이 되고 만다. 상징은 늘 편 가르기에 따라
‘성역화‘되거나 ‘악마‘ 되기에 이런 상징투쟁에 타협은없다. - P62

"남성을 규탄하는 여성의 목소리‘는 선대 여성들이억압받아왔다는 역사적 맥락에 의해 언제나 정당했고, ‘이에 반박하는 젊은 남성의 목소리‘는 세상을 어지럽히려는불순함으로 언제나 매도당했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선대의 잘못들까지 모두 뒤집어씌운 채 그렇게 입을 다물고조용히 있을 것을 강요했고, 이에 이의를 제기하려 하는 이들은 언제나 여혐주의자, 복고주의자, 극우, 대안우파 따위의 불편한 꼬리표를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오늘날2030 남성들의 분노는 바로 이러한 맥락 속에서 형성되었습니다. 이는 물리적, 물질적인 문제이기 이전에 정신, 문화, 관념적인 억압의 문제입니다."1" - P63

젠더 갈등에서 상징 투쟁이 자주 일어나는 것에 대해 두렵게 생각해야 한다. 상징투쟁은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이미 정해진 모범 답안에서 후퇴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 P74

"20대 남성들은 성평등과 페미니즘을 다른 개념이라고 봐요. 이대남이 생각하는 성평등은 ‘육아? 우리도 할게‘, ‘경력 단절? 보상해야지‘ 이런 식으로 과거에 여성만지고 있던 의무나 페널티를 완화하는 것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게 현재 여성들에게 여성 가산점, 여성할당제와 같은 ‘결과의 평등‘을 제공하자는 건 아니에요." - P91

구세대의 관점에서 볼 때엔 1990년대생은 신인류다. 페미니즘을 대하는 태도가 전혀 다르다. 자신을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구세대에게 페미니즘은 무조건 지지해주어야 할 당위였다. 여기서 주의해야 한다. ‘무조건 지지해주어야 할 당위‘라는 건 형식적인 시혜 수준의 제스처일뿐, 그것은 실천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는 점이다. 즉, 공적영역에선 남성 페미니스트인 척하지만, 사적 영역에선 전혀 다른 인간이라는 이야기다. 이는 ‘미투 운동‘에서 드러난, 수많은 진보주의자의 성폭력 작태를 통해 질리도록 입증된 사실이다. - P92

반면 1990년대생에겐 그런 이중성이나 위선이 없다.
구세대는 생활은 반페미니즘을 실천하면서 머리로만 페미니즘을 긍정하는 반면, 1990년대생은 출생 이후 생활이곧 페미니즘 그 자체였다. 2008년과 2018년의 통계청 조사 결과를 비교해보자. 2008년엔 가사 분담에 대한 견해를 묻는 항목에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는 응답이 20대남성은 44.0퍼센트, 20대 여성은 61.3퍼센트로 나타났다. 2018년엔 어떻게 달라졌는가? 놀랍게도, 20대 남성은80.0퍼센트, 20대 여성은 83.0 퍼센트였다.  - P93

1990년대생 남성의 반페미니즘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자신이 남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과거 세대의 과오에 대해 연대책임을 묻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데, 페미니즘은 ‘남자 대 여자‘라고 하는 전통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경향이 있다. - P95

맞다. 우리는 ‘관념화된 집단‘으로서 정체성 정치를추구함으로써 사실상 집단 간 증오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고 있는 기존의소통방식을 의심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관념화된 집단‘ 이전에 개인 대 개인으로 만나야 한다. 어떻게? 시민단체를 포함해 공익을 위해 일하는 단체나 기관들이 바로 그런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 P124

작가 임명묵은 개딸 현상을 아이돌 팬덤의 문법이 정치 팬덤에 전면 이식된 것으로 보았는데, 이 진단이 의미심장하다. 아이돌 팬덤의 주요 행동강령은 ‘절대적 비타협주의‘이기 때문이다. 오직 오빠를 위하는 일에 타협을 해야 할 게 무엇이 있겠는가? 개딸은 오직 이재명을 지켜야한다는 이유로 검찰 개혁을 외쳤다. 검찰 개혁의 여러 방법론 가운데 ‘절대적 비타협주의‘를 내세우는 민주당 강경파초선 의원 모임인 처럼회와 그 리더인 최강욱을 위해서라면 페미니즘에 등을 돌리고 그 영웅인 박지현을 내쫓아야한다는 게 개딸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 P137

문제는 이런 현실주의 페미니즘은 인권운동으로서보편적인 설득력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일 게다. 개딸 현상이
‘피해 호소인‘ 사건처럼 ‘정치권력 우선주의‘인지 아니면아이돌 팬덤의 변형일 뿐인지 아직 단언하긴 어렵다. ‘개딸도 모르는 개딸‘이란 말처럼 문화적 현상으로서 아직 형성과정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개딸이 부디 2년 전 민주당여성의원들이 저지른 ‘피해 호소인‘ 사건의 불행한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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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은 힘이 세다. 그런데 그 힘은 조언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하는 사람에게 발휘된다. 고양감이 올라가고 자존감이 높아지는 쪽은 조언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하는 사람이다. 조언의 내용이나 조언을 받는 당사자의 반응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면 일단 내가 뭐라도 된 듯한느낌을 받게 된다. 조언을 통해 내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내가 가진 경험과 정보, 심지어는 느낌까지 제법 그럴듯하고 대단한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 P25

힘에 겨운 우리에게는 어쩌면 자신감이나 동기, 의욕 같은 심리적인 역량이 더 필요했을 수도 있다. ‘그럴수도 있지‘, ‘나도 그렇더라‘, ‘잘 했네‘ 같은 말을 덮어놓고 듣고 싶은 건 그래서 당연한지도 모른다. 조언을통해 진짜 얻고 싶었던 건 ‘위로‘ 아니었을까. - P27

남성은 나는 믿을 만한 사람이며 당신이 마음을 기댈 수 있을 만큼 미래가 밝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여성은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감을 유지하고 자존감에 상처받지 않게 해주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남성은 우리가 장기적인 관계를 갖길 바란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 허풍을 떨고, 여성은 애틋한 사랑의감정을 지속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우리가 나누는온갖 가식적인 말에는 과거를 아름답게 포장하고픈 마음과 미래를 희망차게 바라보고픈 심정이 오롯이 담겨있는 것이다. - P36

우리 뇌는 끊임없이 거짓 신호를 보내 과거를 내 입맛에 맞게 적극적으로 조작한다. 우리의 가장 자연스럽고 탁월한 가식은, 경험을 합리화하고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일이다. 우리가 거짓말을 가장 많이 하고또 가장 많이 속는 대상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어떤 의미에서 진실은 아예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마음에는 다양한 거짓과 가식이 있다‘는것만이 진실이지 않을까.  - P37

흥미로운 점은 성격이 매력적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바로 ‘내 성격‘이라는 것이다. 즉 내가 싫어하는 내 성격의 어떤 특성이 상대에게 보이면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내가 좋아하는 내성격이 상대에게 보이면 그의 성격이 마음에 든다고느꼈다. 또 내가 평소에 그런 성격이었으면 하고 바라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면 상대의 성격을 만족스러워했고, 상대방에게 내가 고치고 싶어 하는 성격 특성이 보이면 상대의 성격에 불만을 느꼈다. 우리는 상대의 성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기보다 순전히 내 기준에서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 P52

무엇이 나에게 중요하고 내 삶에 힘이 되고더 유리한지에 온 신경을 쏟는다. 어떤 것이 사실이 아니며 진실이 아니라 한들 경우에 따라선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지 않는 건 이제 내 삶이 그런 믿음에 기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일 뿐이다. - P101

이별의 뿌리를 자라게 한 것도 둘 모두의 몫이다. 만나는 동안 이별은 곳곳에서 신호를 보냈을 것이다. 그럼에도 헤어지는 이유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면 그건내가 관계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뜻, 상대에게 집중하지않았다는 뜻이 아닐까. - P119

사람은 외부 정보를 객관적으로 처리하지 못하고자신의 신념이나 생각과 일치하거나 유리한 것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이러한 현상을 선택 지각(selectiveperception)이라고 한다. 야한 것에 꽂힌 사람은 보이거나 들리는 자극마다 야한 의미로 해석하기 십상이고또 그런 자극만 귀신같이 찾아내어 보고 듣는다. - P126

 내 오류를 시인하는 일은 내가 나를 공격해 다치게 하는 것과 같은 정도의 타격을 입히기에 본능적으로 꺼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 대신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 내 세상이 잘못되었다는것을 받아들이는 일보다 상대의 행동이 나쁘다고 믿는편이 훨씬 쉽고 간편하다. 선택 지각은 이토록 게으르고 뻔뻔한 인지과정을 통해 강화된다. - P130

이처럼 ‘특정 성별에 유리하다‘ 같은 전제는 우리의능력을 흔든다. 남성이 여성보다 방향감각이 뛰어나다같은 말이 둘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 것처럼.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여성보다 남성이 방향감각이 좋다는편견은 그렇지 못한 남성들에게 불편감을 주고 수시로위축되게 만들었을 것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공감 능력이 좋다는 오해는 여성으로 하여금 자신의 정서를 자꾸만 의심하게 하지 않았을까. 공감이 어려운 마음을두고 혹여 나는 이기적인 사람인가 싶어 자주 자책했을 테니까. - P140

뻔한 소리처럼 들릴 위험을 감수하고 한마디 덧붙이자면, 인간다운 삶을 살고 인간다운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노력‘이 필요하다. - P170

애쓰지 않으면 우리는 또 습관처럼 무례하게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며 살게 될 수도 있다. 노력을 잃으면 사랑도 잃게된다. 사랑다운 사랑을 하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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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탐사선을 탄 걸리버 - 곽재식이 들려주는 고전과 과학 이야기
곽재식 지음 / 문학수첩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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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과학 서적을 읽기에는 기본 소양이 많이 모자라고,

그럼에도 또 호기심은 있어 과학서적을 기웃거리나 대부분 실패하고, 그리고 절망하고,

난 안돼를 연발하면서 머리카락이나 쥐어뜯는 나같은 천생 문과생도 이 책은 읽을 수 있다.

그것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일단 가장 좋은건 문과생이 좋아하는 고전과 역사들을 재료의 중심축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과학 몇 스푼이 딱 맛을 내는 감미료처럼 뿌려진다. 

그러면 음식맛은 음...... 당연히 맛있어 진다.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의 원형 우트나피슈팀의 방주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다른 지역의 여러 신화에서도 널리 회자되는 것은 이런 식의 대홍수가 이 시기 언제인가 있었을 가능성이 많았다는 것일거다.

그러면 작가는 살짝 지구의 기후 이야기로 옮겨간다. 

빙하기의 종말이었으면 어쩌면 이런 규모의 대홍수가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것.

지구는 아주 미세하지만 비틀거리면서 움직이고, 이 움직임 때무에 태양빛을 많이 받는 시절 또는 덜 받는 시절을 맞이할 때가 있어, 이것이 오랜동안 쌓이면 지구의 기후가 크게 바뀌기도 한다는 이야기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리고 빙하기의 종말 - 해수면의 상승과 기후의 온난화가 겹치면서 대규모의 홍수를 유발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우트나피슈팀의 이야기는 대홍수로 세상이 멸망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 후의 세상에서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이 늘어나고 새로운 문명이 시작되는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다는 해석을 덧붙인다.

문과생은 생각하기 어려운 해석으로 나같은 독자에게는 새로운 눈을 떠게 해주는 해석이다.

아 역시 다른 지식은 다른 눈을 뜨게 해주는구나 하고 감탄 중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연결이 항상 성공적일 수는 없어서 가끔은 연결에 무리가 있거나 지나친 일반화로 인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중국의 소설인 <수호전>을 다루면서 이 소설이 나오는 배경인 송대의 경제발전을 연결시키는데, 이 송대의 경제발전을 '점성도'라고 하는 가뭄에 잘 자라는 벼품종에서 비롯된 것으로 설명하고, 이것을 다시 주희의 성리학이 등장하는 배경으로 직결시키는 것이다.

그것을 만약 베트남에서 건너온 점성도라는 벼품종이 없었다면, 지금 한국인들이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성리학 문화도 생겨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바로 선언해버린다. 

경제발전이라는 것은 온갖 다양한 요소들의 합작품이다. 북방유목민족에 밀려 남쪽으로 밀려갈 수 밖에 없었던 송왕조가 어쩔 수 없이 강남지방을 본격적으로 개발할 수 밖에 없었던 정치적 상황, 그에 따라 선택된 벼의 품종- 베트남에서 온 점성도가 없었다면 그들은 그에 맞는 또다른 품종을 찾아내거나 만들어냈을 것이다. - 이모작, 삼모작이 가능한 기후환경, 나침반의 발명 이후 바닷길을 이용한 상업 무역의 발달..... 이 모든 것들을 한가지 벼의 품종으로 선언하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 된다.

또한 성리학이란 학문 역시 송대의 경제발전에 어느정도 기대고 있는 것은 맞지만 더욱 본격적인 등장배경은 북방유목민족에 쫒겨난 중국 한족의 문화적 자존심을 주된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의 과장된 선언적 단정들이 나타날 때마다 책을 읽다가 살짝 깬다고 할까? 


또 하나 230페이지에 조선의 증기기관 발명시도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조선의 김기두라고 하는 기술자가 증기기관으로 운행하는 배를 만들었는데 석탄 대신 숯으로 배를 움직여서 결국 실패햇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그리고는 이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고, 흥선대원군의 명령이었다는 기록만 있어 조선이 새로운 기술이나 산업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어 조선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없지 않았을까라는 말을 전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사실상 조선이 기술에 관심이 없어서 기록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조선이 증기기관으로 가는 데 사용한 엔진은 그 유명한 제너럴 셔먼호의 엔진이다.

평양에 식량을 구한다고 들어왔던 미국의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평양항구에 상륙후 무차별적으로 총을 쏘고 사람들을 살상하자, 열받은 평양주민들이 배를 급습하여 불태우고 선원들도 모두 죽여버린 사건이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다.

일은 벌어졌고, 이것을 수습해야 하는 평양감사 박규수는 정말 난감햇을 것이다.

나쁜 놈들이긴 하지만 남의 나라 상선과 선원들을 모두 불태우고 죽여버렸으니 잘못하면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를 대사건인것이다.

그래서 이 사건은 조용히 묻히고 함구령이 내린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새로운 기술에 관심이 많았던 박규수는 제너럴 셔먼호의 엔진과 남은 부재들을 중앙으로 올려보내고, 흥선대원군은 이것을 이용해서 서양의 배와 같이 빠른 배를 한 번 만들어보라고 한 것이 저 사건인 것이다.

물론 실험은 실패했다.

아무런 기술적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이 엔진을 이용해 배를 가게 하긴 했는데 연료를 뭘 써야 할지를 몰랐던 조선에서는 그나마 높은 열을 내는 숯을 열심히 땠던 것.

배는 가기는 가는데 한시간 동안 몇십미터쯤 움직였다고 하니 실패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실험이나 결과, 과정은 제너럴 셔먼호사건이 비밀이었으므로 절대 기록에 구체적으로 남길 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과정은 다음의 세가지 과정을 반복한다.

이 두가지를 연결하다니 참신한데! 여기에 이런 과학이 숨어있단 말야? 와 신박하다!!!

아 이건 좀 무리가 있는 연결인데? 좀 억지스럽지 않나?

에이 이건 역사지식이 좀 부족한 것 같아. 다른 상황도 고려해야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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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9-13 01: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포스팅 제목을 천재 문과생으로 읽었습니다 😊
역사 신화와 연결시킨 과학 흥미가득
이제 화상탐사선엔
걸리버 닮은 AI가 탑승🙊

바람돌이 2022-09-15 12:40   좋아요 2 | URL
앗 그렇게 읽으셨으면 그냥 계속 천재로 기억해주시길...... ㅎㅎ
이 책은 과학을 잘 아는 사람은 읽으면 심심할듯요. 저처럼 진짜 문외한인 사람은 재밌게 읽었습니다.
걸리버 닮은 AI 기대되네요. ^^

stella.K 2022-09-13 10: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꽈엔 도통 문외한인 저 같은 사람이 읽으면 좋겠군요.
곽재식 좋아하긴 하는데 책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네요.
요즘.책 많이 읽으시네요.
명절 잘 지내셨죠?^^

바람돌이 2022-09-15 12:41   좋아요 2 | URL
저도 진짜 문외한인데 재밌게 읽었습니다. ^^
이분은 유튜브나 팟캐스트로도 유명하시더라구요.
요즘 어쨌든 억지로라도 집에서 쉬고 있으니 책은 열심히 읽어지네요. 스텔라님도 즐거운 명절 되셧기를요. ^^

mini74 2022-09-13 12:4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약간의 갸우뚱~ ㅎㅎ 뭔지 알거 같아요 바람돌이님*^^* 문과생도 읽을 수 있지만 문과생이기에 찾아낼 수 있는 모자란 부분이 있는거 같아요 ~~ 이 글 곽재식 작가님께 보내드리는 거 어떠세요. 아주 좋아하실거같아요 바람돌이님 *^^*

바람돌이 2022-09-15 12:42   좋아요 1 | URL
보다가 갸우뚱???? ㅎㅎ 작가님께 보내라고요? 아휴 미니님 저 부끄럼도 많고요. 낯도 가리고요. 감히 이런 생각도 잘하고요. ㅎㅎ
그냥 여기서 저런 얘기 쓸때도 쓸까 말까 고민 백번쯤 하고요. ㅎㅎ

희선 2022-09-14 01: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사를 잘 아시는 바람돌이 님은 역사를 알아서 조금 억지가 있다는 것도 아셨군요 홍수 이야기, 지금 일어나는 일과 비슷할까 싶은 느낌이 들어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지 않아야 할 텐데... 재미있게 보기에 좋겠습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2-09-15 12:43   좋아요 1 | URL
어쩌다보니 제가 알고 있는 부분이 나온거네요. 머나먼 저 시절의 홍수나 자연 재해는 그야말로 자연의 사이클이었다면 지금의 기후위기는 우리 인간이 자초하고 계속 앞당기고 있다는게 문제겠지요. 그래서 더 위험한.....
자연과학쪽은 뭐라도 공부를 하다보면 이 지구의 운명을 걱정하지 않을수가 없는거 같아요.
 
앨리스, 깨어나지 않는 영혼
수잔 손택 지음, 배정희 옮김 / 이후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19세기의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을 얘기하며 여성의 재능을 꽃피울 조건을 이야기했다. 19세기의 버지니아 울프는 시대를 앞서갔다. 20세기의 수잔 손택이라면 버지니아 울프를 반복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손택의 앨리스는 20세기에 맞는 질곡과 굴레를 표현하는 것을 기대하고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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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9-13 13: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수잔 손택의 사진에 관하여, 라는 글은 뛰어났던 것 같습니다.

바람돌이 2022-09-15 12:45   좋아요 0 | URL
수잔 손택은 정말 뛰어난 저술가인데 제가 가진 기대에 비해서 이 책은 좀 많이 헷갈렸습니다.
지금? 왜? 그리고 이렇게 뜬금없는 방식으로?
저는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을 굉장히 인상적으로 읽었는데, 사진에 관하여도 읽어봐야겟네요.
 

 한반도의 고인돌은 크고 작은 다양한 규모의 고인돌이 밀집되어 있다. 실현 가능한 모든 형식이 공존할 정도로 고유양식도 없으며, 1인 1기로 조성되어 합장 흔적 역시 거의 없다. 심지어 무덤이 아닌 단순한 기념물로 세워진 것들도 있다. 요컨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한반도의 고인돌이다. - P13

정신적으로 성숙한 공동체만 죽음을 묵상하고 기념할 수 있다.
그리고 풍요로운 생산물을 평등하게 누리는 사회만 많은 실용적 기념물을 만들 수 있다. 즉 한반도 고인돌 사회는 묵상하고 기념하는 정신공동체였고, 평등하고 협업하는 경제공동체였다. - P17

새 모양 토기와 배 모양 토기가 혼을 실어 피안의 세계로 보내는 도구였다면, 집 모양 토기는영혼의 영원한 안식처로써 껴묻었을 것이다. 고상형 집토기들은 모두무덤에서 발굴한 껴묻거리였다. 부장용 집토기들은 상징적 건축물이다. 고상 건물은 만들기 어렵고, 난방과 취사를 해결할 수 없는 데다 생활에 필요한 여러 공간을 조성할 곳도 없다. 하지만 가장 귀하고 안전한 집이기에 귀중품 창고나 제사 의례용으로 쓰였을 것이다. 무덤에 껴묻을 최고의 집을 선택하라면 당연히 고상형 집토기일 수밖에 없다. - P39

하늘을 향한 가야인들의 사후 세계관은 무덤의 위치에서도 잘 나타난다. 낮은 평지에 무덤을 둔 신라나 고구려와 달리 마을 앞의 높은구릉 위에 무덤을 만들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높은 아크로폴리스에신전을, 낮은 네크로폴리스에 무덤을 조성했다. 그러나 가야의 아크로폴리스는 곧 네크로폴리스였다. 존귀한 영혼은 높은 곳에 묻혀 높은집에서 살며 높은 그릇으로 식사를 해야 한다고 믿었다. 지상의 낮은것들이 일상이라면 높은 것들은 존귀한 영원의 세계에 속한다. - P39

2009년 미륵사지석탑 해체 과정에서 금제사리봉안기를 발견했다.
그동안 삼국유사』의 기록을 토대로 미륵사는 서동과 선화공주가 세웠다고 추정했는데, 금제사리봉안기」에는 전혀 다른 사실이 기록되어있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여기에는 "사태적덕의 따님인 사택왕후가선한 인연으로 정재를 희사하여 가람을 세우고 기해년 639년 정월 29일사리를 봉안했다"라고 새겨져 있다. 즉 미륵사의 주인공이 선화공주가아니라 백제의 사택왕후라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 P50

현재 각황전은 2층이지만, 장육전은 3층이었다. 장육전 내부에는화엄경을 새겨넣은 거대한 석경벽을 세웠는데, 화엄석경은 임진왜란때 불타 지금은 1만 9,000여 조각으로 남아 있다. 추정하면 600여 매의 돌판에 총 55만여 자를 새긴 대규모 경관이었다. 내부 고주가 서있는 5칸 3칸 기둥 사이 사방으로 석경벽을 두르고, 이를 순회하며 화엄경 전편을 읽을 수 있는 구조였다. 이른바 장육전은 건축으로 쓴 화엄경이었고, 화엄사가 화엄종의 종찰이 되는 종교적 근거였다. - P68

몸체의 목조 기둥들은 무거운 지붕 무게 때문에 길이가 줄어들게된다. 특히 모퉁이에 지붕 하중이 집중되기 때문에 모퉁이 기둥은 안쪽 기둥보다 조금 더 줄어든다.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네 모퉁이 기둥을 조금 높게 하는 ‘귀솟음‘이라는 건축 기법이 발전했다. 경사진 지붕은 아래 기둥을 바깥쪽으로 밀어내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안쏠림‘이라 하여 수직선보다 약간 안쪽으로 기둥을 기울인다. 중국 송나라 때 출간된 건축 기술서 『영조법식』에는 귀솟음과 안쏠림의 기준수치를 계산하여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고려의 건축은 기계적인 중국식 기술보다는 전체의 조화를 우선하여 유연한 기술을 발달시켰다. 즉창작자로서 목수의 판단과 안목이 건축의 격을 좌우하게 된 것이다. - P92

이러한 세부 기법들의 개발은 물리적 변형을 보완하기 위함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심리적 불안을 제거하고 시각적 안정을 얻기 위한 방편이 되었다. 지붕 처마를 수평으로 맞추면 처마 선이 처져 불안해 보이므로 아예 추녀 부분을 들어 올린다. 지붕 끝의 추녀가 무게 때문에처지더라도 수평선보다 올라가 있어 안정된 모습을 보이게 된다. 또 기둥의 가운데를 볼록하게 배흘림하면 원통형 기둥보다 더 견고해 보인다. 두 점을 지나는 직선은 단 하나지만, 곡선은 무수히 많다. 직선이 휘어지면 곡선이 되지만, 곡선은 휘어도 곡선이다. 귀솟음도 안쏠림도 배흘림도 물리적 변형을 막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수평, 수직,
직선으로 변하지 않는다. 변형되더라도 여전히 솟은 채로 쏠린 채로,
배흘린 채로 안정되어 있다. - P92

 텅빈 누각을 통해 낙동강 물줄기가 들어오고 지붕 위로병산이 펼쳐진다. 누각 아래로는 입구가 있어 사람들의 출입을 알 수있다. 누각의 존재는 자연경관을 산, 강, 사람의 천지인 경관을 수직으로 나눈다. 이는 성리학자들이 자연을 이해하는 태도이고, 이를 바라볼 수 있는 자리는 서원의 주인인 원장이 앉는 자리다.  - P159

자연을 선택해 인공적환경으로 치환시키는 이러한 수법을 ‘차경‘이라 한다. 경제적이고 생태적인 차경 수법은 한국의 대표적인 조경법이었다. 건축물은 자연을담아내는 액자 역할을 한다. 액자가 크고 화려하면 그림이 죽는다. 건물이 화려하면 자연이 초라해진다. 만대루는 기둥과 지붕밖에 없는 매우 간단한 건물이며, 화려한 단청도 장식도 일절 없다. 건물은 자연을학문을, 정신을 담는 그릇에 불과하며, 그 담기는 내용물이 건축의 실체다. 성리학자들은 이러한 생각으로 서원을 건축했다. - P160

곡운구곡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었다. 김수증의 이상이 응축된 소우주였고 시와 그림으로 추상화한 거대한 건축이었다. 그는 화음동 삼일정의 세 추녀에 각각 음양, 강유인의라고 썼다. "인간사는음양의 굴곡이 있으니 때로 단단하고 때로 유연해야 하나, 늘 어질고의로움은 잊지 말라"는 일생의 깨달음을 남긴 것이다. - P193

그러나 한국의 기독교도들은 오히려 한옥 교회를 배척했다. 유교적 체제의 봉건적 모순에 질식했던 그들에게 전통이란 버려야 할 적폐있고 서구의 것이 유일한 구원이었다. 또한 가톨릭이나 개신교가 선교모국의 건축과 문화를 이식했던 것처럼 서양식 고딕 교회를 더 이상적이고 현대적인 것으로 인식했다. 하지만 성공회는 토착 건축과 전통문화를 존중했다. 비록 그것이 시대를 너무 앞선 것이었다 할지라도 그시대 성공회의 건축은 높게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 P230

20세기 후반 유럽의 철학계는 2,500 년 동안 견고하게 쌓아온 저구 사유의 전통을 부정하고 분해하는 디컨스트럭션, 즉 해체주의적 파고가 높았다. 해체적 사고는 이성과 남성과 직선 중심의 전통을 감성,
여성, 곡선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는 다시 이분법적 서구 사상의 전동으로 회귀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크 데리다 등이 주창한해체적 사고는 달이성, 탈남성, 탈직선의 세계를 지향하여 다양하고자유로운 세계를 열고자 했다. - P295

1990년 탈냉전 이후 지구촌을 신자유주의라는 이념 아래 급속한세계화가 진행되었다. 금융 자본은 세계화의 동력이며 디지털 기술은대단한 수단이었다. 건축의 소중한 가치였던 역사적 지역적 맥락이란세계화 속에서는 구태의 껍질이 되었다. 새로운 건축적 가치란 얼마나많은 자본을 투여하고, 얼마나 빨리 첨단 기술을 도입하느냐로 바뀌었다. DDP는 일시적으로 불시착한 외계의 우주선인가, 아니면 새롭게열린 영원한 우주인가? DDP를 둘러싼 상반된 평가들은 건축 시장의세계화 속에 혼재하는 혼란과 갈등이다. - P298

 역사의 질곡과 진실을 알아야 역사적 건축에 도전할 수 있다. 그래서 건축은 기초적인 인문학에 속하며, 지식인 건축가는 포괄적인 인문학자로서 성찰하고 사유하며 깨닫고 실행해야 한다. 승효상은 자신의 사유를 명확한 언어로 표현하는 지식인 건축가이며, 10여 권의 깊이 있는 저서를 쓴 인문학자이다. - P309

사유원은 자연 속의 단독자로서 인간의 의미를 묻고 고독을 공유하며 어울려 생각하는 건축적 장소다. 여기에서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앞서 실존적 생명체로 존재하며, 자신의 내면을 응시해 근원과 영혼을 맞닥뜨릴 것이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영원히 안 올지도 모르는 미래를 예측한 건축이라면, 사유원은 태초로 돌아가 변치 않을 본질을 담은 건축이다. 과거가 오래된 미래라면, 미래는 새로운 과거일수 있다. 근원과 본질은 여전히 중요하다. - P309

 그러나 삶과 일체화된 시간은 진동하는 추처럼 왕복적이다. 숨과삶을 품는 건축은 영겁을 지나도 근본과 현재 사이에서 또 묻고 또 대답한다. 과거가 영원한 현재라면 미래 또한 늘 현재일 수 있다. 근원을묻고 현재의 물음에 충실히 답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미래다. - P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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