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기브스를 풀었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기브스가 어찌나 무겁든지 누워서 자면 자다가도 몇 번씩 깨고 팔도 너무 뻐근하게 아파서 어쩔 수 없이 앉아서 자던 것도 끝이다. 컴퓨터 자판을 쓸 수 없어 서재에 리뷰나 페이퍼 하나 쓸려면 핸드폰으로 문서 작성해서 복사해서 붙이기 하던 것도 끝이다. (북플에서 바로 쓰기가 가능하지만 북플은 원하는 자리에 책이나 사진이 들어가지 않아서 불만이다. ) 어쨌든 재활은 한동안 해야 하지만 기브스를 푸니 일상 생활이 훨씬 쉬워진다. 기브스 하기 건에 한 달정도 아무 데도 못 가고 일만 했고, 이제 여름 휴가 가야지 하다가 팔을 부러졌고, 하여튼 집에서 콕 처 박힌지 3개월만에 드디어 외출이다. 멀리는 못 가도 하루 나들이 갔다 오자 해서 대구 간송 미술관을 다녀왔다. 작년에 간송미술관 개관할 때 갔다 왔지만 그 때는 진짜 사람에 치여서 너무 너무 힘들고 제대로 보지도 못했던 기억이 있어 지금은 특별전도 하나도 없고 하니 조용한 미술관에 가기로 했다.
역시 미술관이 특별전이 없으니 한산해서 좋다. 미술관 자체도 멋지게 지어져서 여기저기 둘러보기 좋았다. 다만 역시 특별전이 없으니 전시는 좀 부실하다. 전체 전시실 중 3개가 기획 전시 준비라며 닫혀있다. 하지만 미술관 관람의 만족도는 마음에 드는 작품 하나만 있으면 충분히 만족스럽다. 양이 많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간송 미술관 방문은 지난 번 방문보다 오히려 만족도가 높았다.

전시관의 입구는 이렇게 정선의 <등롱우계-등롱초 풀과 수탉)와 김홍도 작품 <황묘농접-노란 고양이가 나비를 희롱하다>, <하화청정 -연꽃과 고추잠자리>로 걸개그림을 만들어 관람객을 반긴다. 보통 부와 출세를 기원하는 뜻을 품고 있어 관람객에도 복이 깃들길 바라는 마음이리라... 개관 전시 때는 여기서 인증샷을 찍는 사람이 너무 많아 사진을 못 찍었던 곳이다.


전시실로 향하는 길을 통창으로 이렇게 바깥의 풍경을 실내로 끌어들인다. 햇살이 좋아도 너무 좋아 도저히 밖에 나갈 엄두가 안 나는 날씨라 그저 안에서 밖을 바라보기만.... 가을에 단풍 들 때 와서 산책해야지.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발견한 작품은 19세기 조선 화가 조희룡의 <매화서옥>이다. 간송미술관에는 오로지 한 작품만을 위한 메인 전시실이 있다. 지난 번 개관 전시에서는 이 자리를 신윤복의 <미인도>가 차지했었다. 이번에는 조희룡의 <매화서옥>인데 말 그대로 매화가 만개해서 핀 매화나무 아래 작은 서재가 주인공이다. 여러 작품과 함께 있다면 못 보고 지나칠 수 있지만 이렇게 한 작품만을 오롯이 전시하면 유심히 보지 않을 수 없고 그러면 보지 못한 것들이 보인다.

<매화서옥>전시실 입구는 그림속 서옥의 기물을 오브제로 재현해놓았다. 딸이 사진을 찍더니 나중에 자기 집 생기면 이렇게 해놓겠단다. 그래 꼭 집 사라고 응원해줬다.


만개해 흐드러지는 매화가 너무 아름다워 좀 울컥했다. 그러다가 저 좋은 그림 앞에서 마음을 비우지 못하고 나도 저런 별장 갖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세속적인 나에게 좀 뜨끔했다. 우리 딸과 나는 세속적인 욕심에서도 닮았구나 하면서..... 그래도 아름다운걸 갖고싶은건 당연한거지 하면서 자기암시를 좀 걸어줬다.
그리고 또 새롭게 본 전시는 영상 전시 <흐름>이다. 디지털 영상전시는 이제 그렇게 신기한게 아니지만 결국 얼마나 제대로 내용을 구성하느냐의 문제는 여전하다. 곳곳에 있는 아르떼 뮤지엄에서 이보다 더 규모있고 굉장한 전시를 꽤 봤지만 간송의 영상 전시는 특별했다. 딸이 나오면서 영상전시가 감동적인건 처음이야라고 했다. 나도 동감했다.


이렇게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로 영상을 만들었다. 바닥에 작은 언덕처럼 있는 것들이 의자다. 저기 반쯤 누운 자세로 영상을 볼 수 있는데 굉장히 편안했다. 역시 사람이 많지 않아서 골라잡아 앉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간송미술관에는 분위기 좋은 작은 도서관이 있다. 주로 미술관련 책과 간송미술관 소장품에 관한 책들로 이루어져있는데 사람이 거의 없어 맘먹고 와서 공부하겠다싶으면 해도 괜찮을듯하다. 이곳은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이용할 수 있다. 건물안으로 들어와서 라커룸쪽으로 가면 있는 공간. 다만 나는 오늘 공부하러 온게 아니라 둘러보기만.... 다만 갖고 싶은 책들이 많았던건 안비밀.

이렇게 감동적인 작품들을 만나고 아트샵도 구경하고(지난 번 개관 전시 때 뭘 너무 많이 사서 이번에는 구입 패스) 산책을 좀 더 하려다가 내리쬐는 햇살에 포기하고 집에 가는 길에 경주에 들렀다. 오로지 밥 먹고 커피 마시러... 딸이 자기는 갈 때마다 웨이팅했다는 불고기 전골집을 갔으나 내가 딱 한마디 했다. 이걸 웨이팅해서 왜 먹냐? 맛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딱히 맛있지도 않은 평범하고 무난한, 양은 도 적은 불고기 전골인데 말이다. 고기 추가함. ㅎㅎ
오늘 또 하나의 주인공은 불국사 내려와서 보문단지 가는 길에 있는 카페 브레스커피웍스이다.
요즘 경치좋은 곳은 전부 카페가 차지하고 있다. 다만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이 단점인데 이곳 역시 풍경과 건축이 기가 막혔고, 커피가 굉장히 맛있었다. 그리고 사람이 너무 많았다. ㅠ.ㅠ 그나마 사람들이 밥먹으러 빠져나가는 시간에 가서 한 자리를 겨우 차지할 수 있었다. 1층은 인공 연못 뷰, 2층은 제주도 컨셉의 정원뷰 둘 다 아름다웠는데 다음에는 평일에 오픈런해서 조용히 즐기고 싶었던 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