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미술관 -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이야기
이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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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을 통해 사회의 여러 문제를 짚어보는 책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이유리작가는 탁월하다.

그의 글의 최대의 강점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에둘러 말하지 않고 논점을 정확하고 명쾌하게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게 별거냐고  할수도 있는데 잡문 나부랭이라도 쓰본 사람은 안다. 그게 별거라는걸.....

나같이 몇명 보지도 않은 리뷰정도만 쓰는 사람도 글을 쓸 때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한다.

' 아! 이게 확실한가? 괜히 이렇게 썼다가 틀렸다고 지적 받는거 아니야? 아! 이렇게 쓰면 너무 과격한가? 내가 제대로 생각한거 맞나? 혹시 이렇게 썼다가 상처받는 사람이 생기는 건 아닌가?' 등등등.... 아니 내 글을 몇명이나 읽는다고 저런 쓸데없는 걱정과 자기 검열로 글을 몇번이나 고쳤다 다시 썼다 하는거다.

그래도 자신없는 분야는 두리뭉실 쓰거나 에둘러서 뭔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둔다. 이 과정에서 글은 논점이 불분명해지고 재미없어진다. 

그러므로 이유리 작가가 아주 명쾌한 글을 쓴다는 것은 이런 위험부담을 다 작가 스스로가 안고 간다는 것이다.

다양한 방면에서의 공격이 예상됨에도 내 할말은 하겠다는 기개가 있는 글이다.

그래서 이 책은 멋있다. 


예를 들려고 하니 첫번째 이야기부터 심상찮다.



서양화에서 흔하디 흔한 그림이지만 이 그림의 제목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876년 쥘 르페브르라는 화가가 그림 <동굴 속의 막달라 마리아>다.

아니 비너스가 아니고 막달라 마리아? 예수의 제자 막달라 마리아라고?

신성모독으로 저 화가 종교재판에 회부되지 않았나싶은데 그런 일은 없었다. 

막달라 마리아가 저렇게 관음증적인 시각으로 그려진 것에 대해 이유리작가는 단호하게 그래도 됐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예수의 제자였으며 십자가 아래에서 다른 제자들이 회피했을 때에도 마지막까지 예수의 죽음을 지켰고, 부활한 예수를 처음으로 본 이도 막달라 마리아다. 그리고 예수 사후 광야의 동굴에서 은둔 수도자로 30년을 더 살았다고 한다.

이 정도면 기독교의 성인 반열 중에서도 베드로 못지 앟은, 아니 베드로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어야 하지 않겠나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베드로의 심기를 어지럽혔으리라.....

여자인 막달라 마리아가 자신들보다 더 예수와 그의 가르침과 더 가까웠다는 것을 어떻게 인정할 수 있었을까?

이후 기독교 역사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꾸준히 폄훼되었고, 심지어는 근거가 불분명한 기록을 인용해 마리아라는 이름이 같다는 것만으로 막달라 마리아를 창녀 출신으로 만든다. 심지어 591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가 설교를 통해서 말이다. 


마네의 그림 <올랭피아>에서는 올랭피아 외에도 한명의 인물이 더 등장한다. 

꽃다발을 들고 있는 흑인 하녀말이다.

이 흑인하녀는 이름도 없고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데 왜 그림속에 등장할까?


올랭피아는 인기 많은 쿠르티잔으로 설정됐기에 일단 미모가 출중해야 했다. 마네는 올랭피아의 미모가 돋보이려면 한눈에 비교될 많안 못생긴 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마네에게 그런 여자로는 흑인이 적격이었다. 이는 마네 이전에도 백인 남성 화가들이 흑인 여성을 소비한 방식이기도 하다. - 32쪽


수많은 그림해설하는 이들이 올랭피아란 그림이 당대 부르조아 사회에 던진 도발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이유리 작가는 이 그림속 흑인 여성 '로르'의 이야기를 전한다. 

장 미셀 바스키아의 그림 <올랭피아의 하녀>를 통해서....



그래피티로 유명한 장 미셀 바스키아는 

어느 날 미술관에 가서 여자 친구에게 "이곳을 봐. 흑인이 하나도 없지?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흑인이 미술관에 들어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야."라고 말했다.

그저 한마디 말만으로도 미술계의 인종차별의 실상을 드러내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지 않은가?



후세페 데 리베라가 그린 <내반족 소년>이라는 그림이다. 

내반족은 발이 안쪽으로 휘는 장애를 가리키는 말이란다. 가난하고 장애가 있는 이 소년의 그림은 왜 그려진걸까?

흔히 좋은 말로 이 그림은 '어려운 환경에도 삶을 긍정하는 인간'에의 경의를 표현한 그림으로 소개가 되곤 했다지만 에이 그럴리가? 1642년에 그려진 이 그림을 생각하면 정말로 물감도 비싸고 그림은 부자나 권력자의 주문이 없으면 그려지는 것 자체가 어려운 시절이다. 그리고 당대의 부자나 권력자들이 하층민 소년에 대해서 저런 생각을 했을리가 없을텐데 말이다. 

비밀은 소년이 쥐고 있는 종이의 글자에 있다. 

"당신이 신의 사랑을 받으려거든 저에게 자선을 베풀어주세요."라고 라틴어로 적혀있는 것이다.

성격에서는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라고 했다.

부자와 권력자들은 바로 그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위해서 저런 그림을 주문하고 자신의 선행의 증거로 삼았던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훨씬 더 그럴듯하지 않은가? 


이유리 작가의 그림 해석은 기존의 해석과 다른 면들이 많다.

그래서 읽는 재미가 있고, 다르게 읽는데 주저함이 없으므로 역시 이 책은 끝까지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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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0-14 16: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멋있는 책이라니~ 막달라 마리아 그림은 그래도 한 번 본 그림이라 익숙한데 두 그림은 전혀 못 보던 그림입니다. 올랭피아가 아닌 로르에 대한 주목 참 좋네요. 그리고 <내반족 소년> 뒤의 해석이 역시 더 설득력 있는 것 같은데요?
이 책 미니님도 언급해주셨던 책이었던 것 같은데 관심이 더 생기네요! 고리타분한 해석보다 새롭게 접근하는 이런 시도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바람돌이 2022-10-15 13:39   좋아요 1 | URL
새로운 해석을 하면서도 정말 쉽고 명확하게 얘기한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에요. 이유리 작가의 다른 책을 봐도 그런 경향이 있는데 다른 책에서는 약간씩 걸리는 부분도 있었는데 이번 책은 그런 것 없이 모든 글이 다 좋았어요. 추천합니다.

잠자냥 2022-10-14 17: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 표지부터 삐딱하니 화끈하네요. ㅎ 흥미가 갑니다!

바람돌이 2022-10-15 14:15   좋아요 2 | URL
표지의 저분 남자예요. 심지어 저 그림을 그린 화가는 저 남자분의 아내고요.
뼛속까지 여자가 되고싶어했던 저 분은 성전환수술을 몇번이나 하다가 결국 수술휴유증으로 돌아가셨다네요. 안타까웠어요.

미미 2022-10-14 17: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말씀 이곳저곳에 공감만땅입니다. 자기검열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요?
최근 읽은 한나 아렌트 평전에서 자신을 용기있게 드러내고 현실을 겪어내는 삶에 대한
문구에 감동받은 기억이 떠오르네요. 그렇게 똑똑한 한나 아렌트도 결코 쉽지 않았을
그길을 뚜벅뚜벅 그렇게 걸었구나 뭉클뭉클했어요. 이유리 작가도 그런 사람같아요.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요.^^*

바람돌이 2022-10-15 14:17   좋아요 1 | URL
한나 아렌트는 왜 그렇게 감동적인 말만 한대요? ㅎㅎ
하긴 말만이 아니라 삶도 감동적이죠. 자신을 온전히 드러낸다는건 어떤 경우에도 참 용기가 필요한일이예요.
이런 책을 읽으면서 내게 모자란 용기를 충전하고 있습니다. ^^

coolcat329 2022-10-14 18: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바로 찜입니다. 마네의 올랭피아의 흑인하녀가 그런 의도 였다니 놀랐습니다. 제목이 왜 기울어진 미술관인지 알겠어요.

바람돌이 2022-10-15 14:18   좋아요 1 | URL
백인 남자 화가들 자신이 일부러 생각한게 아니라 하더라도 당대의 사회적 문화적 분위기가 저런 해석을 가능하게 할 것 같아요. 이 책에는 인종 외에도 여러가지 차별들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어요. 그래서 기울어진 미술관... ^^

희선 2022-10-15 0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림을 여러 가지로 보는 거 좋은 거겠지요 누가 뭐라 하든 자신의 생각을 밀고 나간다니 멋지네요 그렇게 그림을 보고 글을 써서 많은 사람이 그 글을 좋아하겠습니다 끝까지 멋있는 책이군요


희선

바람돌이 2022-10-15 14:19   좋아요 1 | URL
네 끝까지 멋있는 책이었고 작가인 이유리라는 분도 끝까지 멋있었습니다. 오랫만에 이렇게 명쾌하게 얘기해주는 책을 보는 저도 즐거웠고요. ^^

난티나무 2022-10-15 02: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됐기 때문에!!!!!!!!!!!!! 😡

바람돌이 2022-10-15 14:19   좋아요 1 | URL
실제로 책 안에 이유리 작가가 저렇게 썼어요. 그래도 됐기 때문이라고요. ^^

2022-10-15 0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0-15 14: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2-10-15 08: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아! 이 책 정말 근사하네요. 최근에 페미니즘 영향으로 예술 작품을 다른 시선으로 보는 경향이 우세한 듯 하잖아요. 미술 쪽이 특히 앞서가는 것 같은데 이유리 작가의 책은 그림 선정에서부터 문제 제기를 하는 것 같아요. 논점을 명확히 하는 글쓰기에도 큰 점수를 주신것 기억해 둘게요.
자기 검열 이야기하셨는데, 저도 그런 생각 많이 하거든요. 읽는 사람도 적은, 우리 조용한 알라딘서재에 독자리뷰일 뿐인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자꾸 검열하거든요. 저도 바람돌이님과 같은 생각 여러 번, 지금도 자주 하는 생각이라 너무 공감됩니다.

바람돌이 2022-10-15 14:30   좋아요 2 | URL
서양의 유명 미술관 가면 아는 그림보다 모르는 그림이 더 많잖아요. 사실 그 미술관에 들어올정도면 다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일텐데 우리가 잘 모르는거죠. 이 책에서 이유리작가가 제시하는 그림들은 처음 보는 그림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저는 나름 미술관도 많이 가고 미술사 공부는 좀 해서 이런 저런 그림을 많이 봣다고 생각하는데도 말이죠. 그래서 이유리 작가의 그림선정이 굉장히 신선햇어요.
어떤 글이든 글을 쓰는 사람은 자기 검열을 피할 수 없다고 봐요. 다만 그 자기검열을 어느 지점에서 하고 있는지는 항상 돌아보고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할뿐요. ^^

그레이스 2022-10-15 22: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유리 작가의 해석은 정말 달라요.
그림을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죠.
강하지않은 억양으로 설득해요
멋있는 책이예요

바람돌이 2022-10-17 14:16   좋아요 1 | URL
그림 좋아하시는 그레이스님이 동의해주시니 더욱더 제 기분이 업됩니다.
아이 참 제가 쓴 책도 아닌데 제가 왜..... ㅎㅎ
어쨋든 중요한건 이유리 작가는 앞으로 책이 나오면 다 보게 되겟구나 싶네요.